달라지는 아줌마 드라마의 패턴

‘아줌마 드라마’ 하면 떠오르는 것은? 대기업 총수 아들과 그 아들에 낙점을 받은 신데렐라? 시어머니에게 구박받는 며느리? 해서는 안 되는 일도 자식사랑으로 치부하면 다 되는 모성애? 그것도 아니면 억척 아줌마의 눈물겨운 홀로서기? 물론 아줌마들이 트렌디한 가족드라마에 시선을 빼앗기는 건 과거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막연히 상정하는 ‘아줌마 드라마’라는 범주가 영원히 지속되는 건 아니다. 최근 들어 3,40대 아줌마들을 중심으로 시청하는 드라마의 패턴이 조금씩 달라지면서 과거 ‘아줌마 드라마’로 통칭되던 개념은 재정립이 필요하게 되었다. 이른바 ‘이모 드라마’의 출연이다.

아줌마요? 이모라 불러주세요
‘커피 프린스 1호점’은 청춘을 다루는 드라마. 등장인물의 연령대는 20대가 대부분이다. 그렇다면 이 드라마를 가장 많이 본 시청자 층의 연령대는 어떻게 될까. 10대나 20대가 많을 것 같지만 실제로는 다르다. AGB 닐슨의 타깃별 시청점유율에 따르면 이 드라마를 본 시청자 중 30대 28.2%, 40대 19.1%로, 3,40대 점유율이 거의 50%에 이른다. 반면 10대(14.8%), 20대(18.5%)는 전체의 30% 정도를 차지한다. 이 중에서도 30대 여성이 19.4%로 가장 많이 나타난 걸 보면 이 드라마의 주 시청층은 30대 중년 여성층이라고 말할 수 있다. 드라마 성공의 주 동력이 이른바 이모 팬들에게 있었다는 말이다.

7월 둘째 주 국립국어원 신어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모 팬’이란 이렇게 설명되어 있다. ‘10대∼20대 청춘 스타들을 열성적으로 좋아하는 중년 여성. 팬들이 보통 연예인의 이모뻘이 된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과거 젊은 스타들에 열광하는 팬층이 10대였다면 이제는 그 저변이 중년층으로까지 넓어지고 있다는 반증이다. 팬 미팅 자리나 각종 인터넷 팬클럽에서 이모 팬들의 활약은 점점 두드러지고 있다. 주지훈 같은 젊은 스타의 팬 미팅 자리에서 ‘오빠’ 대신 ‘지훈아’를 외치는 이들은, 특유의 경제력(?)을 바탕으로 10대 팬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자신들이 좋아하는 스타의 뒷심이 되고 있다. 아예 가입조건에 이준기씨보다 나이가 많아야 한다는 조건을 달고 있는 이준기의 팬클럽 ‘준스레이디’는 돈을 모아 이준기 모교에 장학금을 지원해주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드라마 성공, 이모들의 마음에 달렸다
중요한 것은 이들 이모 팬들이 미치는 드라마 성공에 대한 영향력이다. 준스레이디의 한 이모 팬은 ‘커피 프린스 1호점’의 성공이 그 드라마가 중년의 마음 속에 감춰진 순정만화 필을 건드렸다는 데 있다고 말한다. 순정만화에서 막 나온 듯한 젊고 잘 생긴 미소년들이 등장해 예쁘게 사랑하는 모습이 이 드라마에 열광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멋진 장면에는 문자를 주고받으며 드라마를 볼 정도라는 이모 팬들은, 흔히 ‘아줌마 드라마 = 여성드라마’라는 공식도 깨고 있다.

AGB 닐슨의 조사에 따르면 전문직 장르 드라마를 표방하며 나온 범죄수사물 ‘히트’의 주 시청자층은 전체 시청자 중 3,40대 여성층이 무려 30%(30대 19%, 40대 12%)를 웃돈다. 이어 나왔던 ‘에어시티’ 역시 사정은 마찬가지. 전체 중 3,40대 여성이 25%(30대 13%, 40대 12%)다. 최근 시작해서 호평을 받고 있는 ‘개와 늑대의 시간’ 은 첫 방송에서 3,40대 여성층이 29%(30대 16%, 40대 13%)를 차지했다. 흔히 오인되고 있는 멜로 드라마 위주의 시청패턴을 할 것이라 여겨지는 중년 여성층들은 이제 액션과 서스펜스를 다루는 드라마에도 열광한다는 것이다.

뜨는 이모 드라마의 조건
최근 들어 드라마 여 주인공들의 연령대가 30대를 겨냥하고 있는 것은 이러한 경향을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내 이름은 김삼순’이후부터 드라마에서 주목해온 30대 여성 시청층에 대한 희구는 이제 그 계보를 만들어도 될 정도가 되었다. 김삼순(김선아)에서 ‘여우야 뭐하니’의 고병희(고현정), 그리고 현재 방영되는 ‘9회말 2아웃’의 홍난희(수애)와 ‘칼잡이 오수정’의 오수정(엄정화)이다. 하지만 주인공의 연령대가 비슷하다 해서 ‘커피 프린스 1호점’, ‘개와 늑대의 시간’ 같이 소위 뜨고 있는 드라마와, ‘9회말 2아웃’, ‘칼잡이 오수정’을 같은 선상에서 바라보는 것은 어려운 것 같다.

그것은 ‘9회말 2아웃’, ‘칼잡이 오수정’이 어느 정도의 30대 감성을 가져가긴 하지만 여전히 결혼에 목매는 과거 아줌마 드라마의 틀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이들 드라마가 취하고 있는 여주인공들의 일에 대한 부분이다. 결혼에 목매는 여성을 그리기 때문에 홍난희나 오수정의 직업을 통한 자아성취 같은 부분이 상당부분 사라지면서 현대여성들의 또 다른 욕망, 즉 일에 대한 자아성취 욕구를 채워주지 못하는 것이다.

떴거나 뜨고 있는 이모 드라마의 조건 속에는 반드시 여주인공(혹은 남성이라도)이 분명한 자기 직업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저 ‘내 이름은 김삼순’의 김삼순이 그랬고, ‘여우야 뭐하니’의 고병희가 그랬으며, ‘커피 프린스 1호점’의 미소년들과 고은찬(윤은혜)이 그랬고, ‘개와 늑대의 시간’의 이수현(이준기), 강민기(정경호), 서지우(남상미) 심지어는 마오(최재성)가 그렇다. 이런 면에서 보면 이제 모든 드라마들은 멜로나 장르를 떠나 전문직으로 갈 것이 요구되고 있다 할 것이다.

이모 팬들이 드라마에 요구하는 것
이모 팬들은 그저 갑자기 등장한 외계인이 아니다. 그들은 우리 사회에 일찍이 팬 문화를 만들었던 세대들이 이제 중년이 된 것뿐이다. 그들은 드라마를 보면서 젊음에 대한 향수를 가지는 것에 멈추지 않는다. 그들은 여전히 젊으며 적극적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찾아가고 표현한다. ‘커피 프린스 1호점’이 있는 홍대 앞을 기웃거리고, 고생하는 스텝들과 연기자들에게 줄 도시락을 싸들고 ‘개와 늑대의 시간’의 촬영장을 찾아갈 준비를 한다.

이들은 꾸준히 자신들의 감성에 맞는 드라마를 희구해왔다. 정말 느낌이 좋은 연기자, 느낌이 좋은 드라마를 찾으면서, 한편으로는 그 대체 욕구로 외국 드라마를 기웃거렸다. 미드가 주로 남성시청자들의 시선을 빼앗았다면, 일드는 정확히 이모 팬들의 시선을 잡았다. 바삭하게 잘 구워낸 듯한 쿠키 같은 일드를 보면서, 신파에 트렌디에 푹 젖어 습기를 먹어버린 우리네 드라마란 쿠키는 언제쯤 달라질까를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은 현실로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이제 아줌마 드라마라고 다 같은 것으로 분류하지 말자. 든든한 이모들이 있으니까.

기대 이상 전문직 장르 드라마, ‘개늑시’

이제 막 새롭게 등장한 전문직 장르 드라마들에서 우리가 기대했던 것은 오랜 전통과 노하우를 가진 미드 수준의 그것이 아니었다. 우리가 기대한 것은 그저 장르에 충실한 드라마였을 뿐이다. 그것은 적어도 소재가 획일화된 우리네 드라마 풍토에서 장르 드라마가 가진 다양성을 확보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기 때문이다.

‘하얀거탑’, ‘외과의사 봉달희’에서 가능성을 보인 전문직 장르 드라마는 그러나 ‘히트’와 ‘에어시티’에서 만족할만한 결과를 얻지 못했다. 물론 형사라는 직업과 공항이라는 공간만 가지고도 이들 드라마는 가치가 있었지만 중요한 것은 전문직 장르 드라마로서 기본적으로 지켜야할 장르에 충실하지 못한 단점이 있었다.

액션이든 미스테리든 휴먼드라마든 장르는 그것을 선택 혹은 표방하는 순간, 거기에 충실할 것이 요구된다. 연쇄살인범을 좇는 형사물에서 갑작스런 멜로가 섞이고, 공항이라는 긴박한 공간 속에서 국정원 요원이 뛰어다니는 상황에 멜로와 휴먼드라마가 틈입하는 건 용납하기가 쉽지 않다. 이것이 ‘히트’와 ‘에어시티’가 훌륭한 캐릭터와 좋은 소재를 갖고도 기대만큼의 성과를 이루지 못한 이유다.

이런 면에서 보면 MBC 수목 드라마 ‘개와 늑대의 시간’은 기대 이상의 전문직 장르 드라마라 할 수 있다. 먼저 기본적으로 이 전문직 장르 드라마는 액션과 스릴러라는 장르가 갖춰야 하는 요건들을 제대로 구비하고 있다. 먼저 이수현(이준기)이라는 캐릭터가 가진 상처와 그로 인한 갈증이 살해당한 부모에 대한 복수심으로부터 생겨나고 있다는 점이다. 어찌 보면 단순할 수 있는 이 설정은 그러나 이수현 눈앞에서 벌어진 어머니의 살해장면이 등장하면서 강력하게 자리를 잡는다.

이 복수심을 속에 품고 태국과 한국을 넘나드는 액션극이 장르적으로 성취를 이루고 있는 것은 적절한 타이밍으로 전개되는 이야기 때문이다. 태국의 어린 시절에서 지우(남상미)와 추억을 만들 즈음, 갑자기 등장하는 어머니의 살해장면은 상황을 급박하게 만들어버린다. 한국에 들어와 강중호(이기영)에 의해 자라나 국정원 요원이 되는 것까지 아픔을 잊고 평탄한 삶을 살아갈 것 같은 장면들이 연출될 즈음, 갑자기 이수현은 어머니를 살해한 마오(최재성)를 보고 다시금 복수의 불길에 휩싸인다. 이후에도 이수현의 감정은 적절한 간격으로 완급조절되면서 시청자를 긴장과 이완이 반복되는 즐거움에 빠뜨린다.

이렇듯 이 드라마가 가진 강점은 액션, 서스펜스가 가진 장르적 호흡을 제대로 이해하고 활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거기에 중심이 되는 것은 마오라는 강력한 카리스마를 가진 적과 거기에 도달하기엔 아직도 약하기만 한 이수현의 성장이다. 이 대척 구도는 사실상 거리가 멀면 멀수록 시청자들에게 더 흥분되는 재미를 줄 수 있다. 그러기 위해 이 드라마가 활용한 멜로는 기존 전문직 장르 드라마들이 활용한 멜로의 방식보다 효과적이다. 제목에서부터 드러나듯, 이수현이 죽이려는 마오는 그가 사랑하는 지우의 아버지이기에, 그들의 멜로가 강해질수록 이수현은 더 깊은 혼란에 빠질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드라마가 하려고 하는 이야기는 기억에 대한 것이다. ‘개와 늑대의 시간’은 바로 사고로 기억을 잃어버린 이수현이 처한 정체성을 상징한다. 복수의 일념으로 마오의 심복을 하게 된 이수현이 기억상실로 그 복수심을 잊어버리는 상황은 이 드라마가 가진 최대의 극적 장치가 아닐 수 없다. 기억 하나를 중심으로 원수와 심복의 갈림길에 서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지금 이수현이 서 있는 지점에서 마오에 대한 복수를 하게되는 곳까지의 거리는 점점 더 멀어진다. 그것이 바로 이 드라마가 주는 재미의 핵심이다.

그렇게 장르에 충실하면서 얻어낸 재미는 이수현이 가진 기억이라는 문제를 끄집어내면서 의미까지 확보한다. 복수심이나 충성심 같은 감정이라는 것은 기억이 만들어내는 정체성에서 비롯된다는 것. 인간은 그것이 개인지 늑대인지 판단하기 어려운 상황을 겪을 수 있을 만큼 이성적인 존재만은 아니라는 것을 드라마는 얘기해준다. 군더더기 없는 연출과 무엇보다도 양 대척점을 이루고 있는 마오와 이수현을 연기하는 최재성과 이준기의 광적인 연기는 이 전문직 장르 드라마에서 장르적인 충실 그 이상의 것을 기대하게 만든다.

가정법의 드라마, ‘완벽한 이웃을 만나는 법’

‘이웃사촌’이란 말이 남의 나라 얘기처럼 들리게 되어버린 사회에서 살아가면서, 완벽한 이웃을 꿈꾸는 것은 어쩌면 퍽이나 쓸쓸한 일이 될 것이다. 그만큼 사람들은 자신들만의 섬에서 외롭게 고립되어 살아가고 있다는 말이 될 테니까. 그런 면에서 SBS 수목드라마 ‘완벽한 이웃을 만나는 법’은 도시 생활에 외롭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환타지다.

유사부부, 유사연인, 유사이웃
그들이 이웃사촌으로 지내고 있는 곳에는 교수지만 본색은 제비인 백수찬(김승우)이 살고 있고, 촌사람이라 살림해줄 처자 하나 얻지 못했지만 정작 살림은 제 차지인 양 이웃주부들의 어려움을 해결해주는 양덕길(손현주)이 제비교수와 유사부부 관계를 형성한다.

이웃에 사는 정윤희(배두나)는 대기업 회장 아들 유준석(박시후)의 비서라지만 비서로서 넘지 말아야할 선을 수시로 넘나들고, 그 누구도 못 들어오게 철통같은 방어 벽을 쳐놓은 유준석 실장은 이 대책 없는 비서의 침범에 유사연인 관계를 형성한다.

이웃들은 모두 제각각의 삶을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웃사촌이란 말에 걸맞게 서로 유사가족 관계를 형성하고, 심지어 이방인으로 살인사건을 수사하는 형사 강역개(김뢰하)마저 유사이웃 관계로 끌어들일 정도다.

현실에선 좀체 보기 힘든 흐뭇한 그들
재미있는 것은 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우리가 현실사회에서 직업이나 출신 등을 통해 선입견으로 판단했던 그런 유형의 인물이 아니라는 점이다. 백수찬은 분명 유부녀를 꼬드기는 제비지만, 악랄하고 비열한 현실의 제비가 아니다. 오히려 오갈 데 없는 양덕길을 받아주고, 연애에 젬병인 이웃들을 돕는 착한(?) 제비이기도 하다.

정윤희는 현실에는 있을 수 없는 자격미달의 비서이며, 유준석은 현실이라면 자질 운운하며 자격미달의 비서를 자를 것이 분명한 그런 실장이 아니다. 도회지에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양덕길 역시 우리가 현실에서 생각하는 그런 촌사람이 아니며, 심지어 정윤희를 비서로 발탁한 회장조차 우리가 현실에서 생각하는 권위적인 모습의 회장이 아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완벽한 이웃’들은 현실이라면 문을 꼭꼭 닫아걸고 무관심한 그런 이웃이 아니다. 그들은 전임강사가 된 백수찬이나 만년 과장으로 묵힐 줄 알았던 변희섭(이원재)이 부장이 됐을 때 자기 일처럼 축하해주는 이웃들이다.

즉 이 드라마에는 제비 같지 않은 제비, 촌사람 같지 않은 촌사람, 비서 같지 않은 비서, 실장 같지 않은 실장, 형사 같지 않은 형사, 회장 같지 않은 회장, 그리고 무엇보다 이들이 엮어내는 (현실의 각박한) 이웃 같지 않은 이웃들이 등장한다. 하지만 이상한 일이다. 이 비현실적인 인물들이 무차별로 엮어가는, 그다지 극적인 사건 전개도 두드러지지 않은 이 드라마를 보면서 내내 흐뭇해지는 것은.

직설법이 아닌 가정법의 드라마
그것은 이 드라마가 시청자들에게 구사하는 화법이 직설법이 아닌 가정법에서 기인하기 때문이 아닐까. 드라마는 현실을 직접 묘사하기 보다 현실과 드라마 사이의 간극을 최대한 넓혀 시청자들을 꿈꾸게 한다. 비록 제비지만 저처럼 여자의 마음을 쏙쏙 알아채는 남자가 있다면, 촌사람이지만 저렇게 정이 가고 재주 많은 사람이 있다면, 사무적이고 기계적인 비서 같진 않지만 사람을 사람으로 진심으로 돌보는 비서가 있다면, 그리고 어쩌면 그런 사람들이 모여 가족 같은 이웃으로 살아가는 곳이 있다면.

이 드라마는 그런 곳에서 나도 살고 싶다고 생각하는 순간 다시 현실을 돌아보게 만드는 그런 가정법의 드라마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알 것이다. 가정법이란 사실 현실에선 가정일 뿐이지만, 마음 속에서는 늘 꿈꾸는 것이기에 가능한 거라는 걸. 늘 굳은 얼굴로 좀체 웃을 줄 모르는 현대인의 외양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유준석이, 도무지 넘어올 수 없게 그어놓은 선을 대책 없이 넘어오는 정윤희의 엉뚱함에 ‘특이해’라고 읊조리며 미소지을 때 시청자도 같이 미소짓게 되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그러니 살면서 알게 모르게 아무도 들어올 수 없게 두터운 벽을 만들며 살게된 시청자분들이라면 마음이 흐뭇해지는 드라마다. 잠깐동안의 드라마 속에서라도 완벽한 이웃을 만나고 싶다면, 그렇다면 말이다.

윤은혜의 남장여자 연기 살린 ‘커프’의 공유

‘커피 프린스 1호점’을 만나기 전까지 공유가 거쳐온 역들은 그가 가진 개성과는 잘 어울리지 않는 옷이었다. 물론 특별 출연한 것이지만 ‘슈퍼스타 감사용’에서 감사용(이범수)과 나란히 달리기 경주를 하는 박철순(공유) 역에서도 그의 개성은 숨겨져 있었다.

최근에 했던 드라마, ‘어느 멋진 날’에서의 서건 역은 지나친 무게의 옷을 입혀 공유의 연기 운신을 너무 어렵게 만들었다. 공유 특유의 투정이나 어리광을 부리고 장난기가 가득한 소년 같은 이미지는 ‘커피 프린스 1호점’의 한결을 만나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이 드라마는 무엇보다 그 중심에 윤은혜가 해야하는 고은찬이란 남장여자 연기가 서게 된다. 그것이 어색하게 틀어지게 되면 드라마는 긴장감을 잃고 흐트러질 수밖에 없다. 여기서 더 어려운 것은 그녀가 남장여자란 사실을 시청자는 물론 극중 배역들까지 모두 알고 있으면서도, 드라마의 재미를 배가시키기 위해 한결 만은 끝끝내 몰라야 한다는 점이다.

윤은혜라는 연기자가 이 남장여자의 연기를 자기 속에 있는 남성성과 여성성을 잘 버무려 연기해낸 것은 분명한 사실이나, 이것은 어찌 보면 시청자와 드라마 사이의 어떤 약속과도 같다. 그녀는 여자인데 남자행세를 하게 되는 것이고 그걸 한결은 모른다는 암묵적 동의다.

이 부분에서 중요해지는 것은 그녀가 여자라는 사실을 모르고 사랑에 빠지게 되는 한결이란 캐릭터다. 한결이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서 고은찬은 영원히 남자가 될 수도 있고, 어쩌면 여자로서 함께 사랑에도 빠지게 될 수 있는 것. 고은찬이 남장여자가 되는 것은 사실 그녀가 남자처럼 행동하고 건들댈 때가 아니라, 공유가 그녀에게 다가가 ‘한번만 안아보자’고 말하는 순간이다.

그런데 이건 쉬운 문제가 아니다. 연기자의 이미지가 너무 진지하다면 상황 자체가 너무 무거워지고, 그렇다고 너무 가벼웠다가는 캐릭터의 매력이 떨어지게 된다. 게다가 시청자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 즉 고은찬이 여자라는 사실을 오로지 그만 모르면서 가슴 설레고 힘겨워하는 연기를 한다는 것은 자칫 과장의 늪에 빠질 수 있다.

그런 면에서 공유는 자신이 가진 소년 같은 이미지를 제대로 활용한다. ‘이 감정 도대체 뭐야’ 하고 정신과 의사를 찾아가거나, 감촉을 잊지 못해 난감해하는 그의 얼굴이 보일 때, 시청자들이 쿡쿡 웃으면서 청춘의 설렘 속으로 빠져들게 하는 건 바로 그 소년의 이미지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그렇게 조금씩 웃음을 동반한 풋풋함에서부터 가슴 한 켠이 따뜻해지는 감정 속으로 빠져들면서 남자라도 상관없다는 투로 “끝까지 가보자”고 말하는 그에게서 어느 누가 애정을 갖지 않을 수 있을까. 극중 배역인 한결은 소년 같으면서도 상처를 갖고 있고, 능력도 있는데다가 때론 세심한 배려(특히 가족에 대한)도 보여주는 여성들의 환타지를 자극하는 인물이다.

그런데 공유가 이렇게 제 몸에 맞는 한결이란 옷을 입게 된 것이 우연이었을까. 이것은 절대 우연이 아니다. 그것은 연기자에게서 끌어낸 이미지의 결과 드라마의 캐릭터를 제대로 엮어낸 이윤정 PD의 연출력이다. 미니시리즈 첫 여성 연출자라는 꼬리표에서 드러나듯 그녀가 가진 여성적인 섬세함과 꼼꼼함이 만들어내는 드라마의 파괴력은 대단하다.

이것은 딱히 공유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윤은혜는 ‘궁’이 성공했지만 늘 가수출신 연기자라는 연기논란을 일으켰고, 이선균은 ‘하얀거탑’에서 김명민이 연기한 장준혁이란 캐릭터 속에서 억울하게도 힘 한번 써보지 못하는 최도영이란 캐릭터의 연기를 해야했던 경험이 있다. 게다가 가수로서의 이미지가 더 많은 채정안은 ‘해신’ 등에 등장했지만 그다지 주목받는 역할은 맡지 못했던 연기자다.

하지만 이들이 중심이 되어 엮어 가는 ‘커피 프린스 1호점’에서의 캐릭터들은 과거의 어떤 연기보다 이들의 몸에 딱 맞아 보인다. 본래 최한성(이선균)이 한유주(채정안)에게 피아노 연주를 하게 되어 있던 대본을, 이선균이 피아노를 잘 못 친다고 하자 보다 자연스럽게 하기 위해 차라리 전화로 노래를 부르는 장면으로 바꾼 에피소드는 이윤정 PD가 어떻게 연기자에게 맞는 캐릭터 옷을 입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그렇게 이윤정 PD라는 연출자에 의해 조탁된 한결을 연기한 공유의 이미지는 과거와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늘씬한 키에 조각 같은 몸매를 과시하듯 늘 초반부에 웃통을 벗어 젖히고 나오는 이미지로 굳어있던 공유는 이제 섬세한 결을 가진 소년 같은 이미지를 갖게 되었다. 남자라고 해도 날 사랑해준다는 남자, ‘커피 프린스 1호점’의 한결이 선물한 공유의 이미지는 한동안 여성들의 가슴을 설레게 만들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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