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 장벽과 김밥지옥에도 어쩌다 사장3’을 계속 보게 만드는 건

어쩌다 사장3

 

“근데 사장님이 와야 되요. 이거 줘야 돼요.” tvN <어쩌다 사장3>에서 엄마와 함께 와서 식사를 하는 한 꼬마가 그렇게 이야기하며 무언가를 꺼내든다. 자신이 직접 그려 만든 태극기다. 아이가 그걸 굳이 그려 사장님(차태현)에게 주려 하는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차태현이 선물이라며 볼펜을 줘서다. 그 볼펜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아이는 그걸 그려 선물로 가져온 것. 

 

그걸 받은 차태현은 태극기에 아이의 이름인 ‘민’을 적어 굳이 그 아이가 그린 거라는 표시를 한 후 식당 벽 잘 보이는 곳에 테이프로 붙여준다. 또 함께 온 언니 서현이 꾹꾹 눌러 한글로 쓴 메모도 그 밑에 붙여 놓는다. 거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우리에게 친절하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 서현과 민’ 

 

사실 별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이 한인 마트가 미국 캘리포니아의 마리나라는 바닷가 마을에 있는 곳이라는 점은 그 소소함에 깃든 따듯한 마음들을 새삼스럽게 한다. <어쩌다 사장3>가 굳이 언어도 잘 소통하기 어려운 이역만리까지 날아오게 된 건 바로 이런 ‘거리감’ 때문에 더더욱 반가울 수 있는 마음들을 만나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실제 현실은 쉽지만은 않았다. 역시 영어가 능숙하지 않은 차태현과 조인성은 손님 응대 자체가 쉽지 않았고, 꽤 큰 규모의 마트와 바코드도 사용하지 않는 계산만으로도 정신을 차리기 어려울 정도였다. 게다가 이 마트의 가장 큰 특징이자 난관으로 ‘김밥’이 있었다. 단돈 2불에 한 줄이라 너무 싸면서도 맛있는 김밥은 만들면 바로 동이 나버리는 밑빠진 독 같은 상품이었다. 

 

김밥 마는 것 자체도 익숙하지 않은 이들은 그래서 시작부터 마트 영업을 하는 것인지 김밥집을 하는 것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김밥을 만드는 일에 몰두할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영어 소통이 원활했던 한효주가 응대에 나서고, 그 뒤로 합류했던 박경림이 영어면 영어, 손님 응대면 응대 못하는 것 없는 슈퍼 알바 역할을 함으로써 난관들을 극복해나갔지만, 그래도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차태현, 조인성의 활약이 초반 잘 보이지 않은 건 아쉬운 지점이었다. 그들의 불편함이 시청자들도 편안하게 보기 어렵게 만든 이유였다.

 

그렇지만 한 5일차 정도가 지나면서 그 낯선 환경들이 점차 친숙해져가며 영어가 능숙하지 않아도 자신감있게 소통하려 하는 변화들이 생겨났다. 차태현은 짧게나마 다가가 소통하려는 모습을 보였고, 조인성 역시 촬영 스케줄 때문에 안좋았던 몸 컨디션이 조금씩 회복되며 음식을 내주는 모습에 활기가 더해졌다. 여기에 윤경호, 박병은처럼 낙천적이고 유쾌한 인물들이 가세해 분위기가 밝아졌고, 묵묵히 열심히 하면서도 엉뚱한 매력을 가진 김아중까지 더해져 초반과는 다른 느낌이 만들어졌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 보면 이런 변화를 진짜 만든 건 서현과 민이같은 마트를 찾아준 손님들의 환대였다. 딸과 함께 온 엄마가 한국인이고 아빠가 미국인이라는 한 손님은 어려서 10년 동안 대구에서 살았다며 차태현은 물론이고 조인성, 박병은과 한국말로 화기애애한 대화를 나눴다. 세나라는 한국이름도 가진 딸에게 한국음식들을 소개해준 이 손님은 다른 테이블에 앉은 미국손님에게 영어가 능숙하지 않은 사장들 대신 콩국수 먹는 법에 대해 알려주는 등의 도움을 주기도 했다. 알고 보니 그 미국손님은 지역 신문 리포터였고 그래서 이 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신문에 소개하기도 했다. 

 

그러고보면 이들이 왔다는 소식에 먼 길을 굳이 달려와 집에서 만든 음식이라며 갖다 준 손님들이 있었고, 영업이 끝나고 나서 간식을 챙겨오는 손님들도 있었다. 물론 연예인들과 <어쩌다 사장>이라는 프로그램의 팬이라고 밝히기도 했지만, 그건 어쩌면 타지 생활을 해온 그들인지라 누군가의 ‘환대’가 얼마나 큰 힘이 되는가를 체화하고 있어서가 아닐까. 

 

이들의 환대가 그들의 삶에서도 고스란히 느껴지는 순간들도 <어쩌다 사장3>에서는 발견된다. 우체국에서 일한다는 친구이자 동료로 마트를 찾은 손님들은 각각 74년, 75년 그리고 80년에 여기 왔다고 자신들을 소개했는데, 뭉클해졌던 건 그 중 한 분의 아버지가 마트에 온 걸 발견하고는 모두가 마치 자신의 아버지라도 되는 듯 벌떡 일어나는 장면이었다. 

 

91세의 연세에 눈도 안좋아 아들도 잘 알아보지 못하는 그 아버지를 보며 친구들도 마음이 좀 그렇다고 말했다. 한때는 그 분하고 낚시를 많이 다녔다는 친구는 낚시이야기를 하며 신이 나신 아버지에게 “찌 움직이는 게 보여요? 아버지?”라고 물었고 그러자 아버지는 자기 집에 낚시 도구들이며 다 있다며 오면 다 주겠다고 말했다. 

 

아버지는 아내가 안동 간고등어가 먹고 싶다고 해서 마트에 온 거라고 했다. 눈도 안 좋은데 이역만리에서 안동 간고등어를 찾기 위해 이 한인 마트까지 찾아오신 아버지의 마음이 느껴졌다. “8년째 병수발 하는데 내 나이 지금 90이여. 어떤 땐 좀 내가 너무 오래 살았나 싶기도 하고...” 그 긴 세월을 타지에서도 버텨낼 수 있었던 건 아마도 마음을 열어준 누군가의 환대가 있어서가 아니었을까. 그 환대가 김밥지옥에 영어지옥에 빠져 얼어붙었던 <어쩌다 사장3>를 조금씩 녹여주고 있었다. (사진:tvN)

‘유퀴즈’, 페이커의 말이 이 프로그램의 가야할 길처럼 들린 이유

유 퀴즈 온 더 블럭

“우승컵을 따겠다는 목표보다는 최선을 다하겠다는 목표가 있었고 결승 끝나고 인터뷰에서도 3대0으로 졌어도 웃는 모습으로 그만큼 경기를 즐기자는 생각으로 임했다 말씀 드렸는데 그런 목표가 있었기 때문에 우승은 사실 뭐 팬분들이 원하는 거니까... 그런 면에서 저는 좀 기뻤죠.” 

 

페이커(이상혁)가 tvN <유퀴즈 온 더 블럭>에 나왔다. 3년 전에도 출연한 적이 있었지만 그 때와 지금은 상황이 또 달라졌다. 2023 리그 오브 레전드 월드챔피언십 우승. 누적 시청자가 4억명이고 마지막 결승에는 전 세계 1억명 시청자가 동시 접속을 했을 정도로 세상이 집중했던 그 경기에서 그가 이끈 T1이 우승을 차지했다. 롤을 잘 모르는 이들조차 응원전에 참여했고, 광화문광장에는 월드컵도 아닌데 1만5천명이 모여 야외에서 응원전을 펼치기도 했다. 그러니 이 엄청난 관심이 집중됐던 경기에서 우승을 차지하고 돌아온 페이커의 3년 만의 재출연이 각별할 수밖에. 

 

페이커는 그러나 게임에서만 빛나는 존재가 아니었다. 그가 그렇게 게임을 잘하게 된 데는 단단한 마인드와 생각들이 존재한다는 걸 <유퀴즈>에서의 이야기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경기 후 카메라 감독님이 패배한 상대팀을 향해 엄지를 내리는 포즈를 해달라고 요청한 일이 있었는데 페이커가 정반대로 ‘엄지척’을 했던 상황에 대해 유재석이 묻자 내놓은 답변에서부터 그가 얼마나 타인을 배려하고 생각하는가가 묻어났다.  

 

아마도 자신이 엄지척했던 이유만 얘기했다면, 자칫 엄지를 내리는 주문을 했던 카메라 감독님이 오해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페이커는 “사실 엄지 내리는 포즈는 스포츠에서 자주 쓰는 포즈”라며 그래서 해도 괜찮았다고 먼저 전제함으로써 카메라 감독님의 의도를 오해받지 않게 한 후, “경기 자체가 재밌어서” 굿 게임의 의미로 엄지척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려줬다. 

 

게이머 하면 떠올리는 이미지가 하루종일 게임만 하는 모습이지만 그것이 편견이라는 것도 그는 알려줬다. ‘평정심’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하는 그는 게임을 마인드 스포츠라 불렀다. 그래서 롤을 잘 할 수 있는 방법이 뭐냐는 질문에 자신은 책이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책을 통해 어떤 마음 자세를 가져야 하는가 태도를 가져야 하는가 하는 것들을 생각한다는 거였다. 

 

그 말이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는 건, 이번에 손목 부상으로 한 달 간 쉬게 됐던 상황에 대해 물어봤을 때 했던 답변을 통해 알 수 있었다. “팀의 문제점이나 개선점을 제 부상으로 인해서 많이 볼 수 있어서 그런 것들은 오히려 긍정적으로 많이 된 것 같아요.” 어찌 보면 자신은 물론이고 팀의 위기일 수 있는 그 상황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는 관점. 그것은 아마도 책을 통해 얻어진 것이라 여겨져서다. 

 

이 날 페이커의 <유퀴즈> 출연이 특별하게 느껴진 건 ‘최고의 위치’에 선 이가 보여주는 삶의 태도가 어떤 품격을 만드는가를 그가 보여줬기 때문이다. 그는 솔직하게 어렸을 때는 돈을 많이 벌고 싶어서 게임을 했다고 했다. 하지만 그 목표를 달성하고 나서는 명예가 목표가 됐다고 했다. 그렇지만 커리어도 쌓이자 동기부여를 위해 새로운 목표가 필요해졌는데 그래서 세운 목표가 ‘팀을 위한 우승’이었다고 했다. “저 스스로보다는 다른 사람을 위한 목표가 있으면 계속해서 내가 그 목표를 따라갈 수 있겠구나 생각했습니다.”

 

이 말은 <유퀴즈>나 이 프로그램을 이끌어가는 유재석에게도 인사이트를 주는 이야기가 아닐 수 없었다. 어찌 보면 <유퀴즈>라는 프로그램도 이 프로그램을 이끄는 유재석도 예능에 있어서 가장 높은 위치에 서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게다. 일반인도 유명해질 정도로 영향력이 있는 프로그램이고, 유재석이야 두말 할 필요가 없는 자타공인 유느님이니 말이다. 스스로가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한 목표를 세운다는 페이커의 말은 그래서 하나의 삶의 지혜처럼 들렸다. 

 

또 책을 보는 것만큼 사람을 만나는 것도 좋더라며 “사람도 책과 비슷하다”고 한 페이커의 말 역시 <유퀴즈>와 너무나 어울리는 말이다. 사람을 만나는 프로그램이 아닌가. 하나의 책을 들려주듯, 어떤 책을 들려줄 것인가를 심사숙고하고 그 책을 어떤 자세로 읽을 것인가를 고민해온 것이 이 프로그램이 걸어왔던 길이다. 물론 초창기의 모습에서 조금은 빗겨나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보다 유명인이나 연예인들의 이야기가 많아진 아쉬움이 있지만. 

 

무엇보다 <유퀴즈>가 가야할 방향에 대한 덕담처럼 들린 페이커의 말은 ‘겸손’에 대한 이야기였다. “겸손이 가장 중요하다고 느끼는 게 겸손한 자세로 저 사람이 어떤 의도로 말을 하는 구나를 거름없이 들을 수 있어야지 더 많이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예를 들면 물병이 있는데 이렇게 반 정도가 차 있으면 반 밖에 못 담잖아요. 근데 내가 비어있는 물병이고 그거를 다 받아들일 수 있다라고 생각을 하면 더 많이 배울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렇게 느껴서 겸손이 제일 중요한 것 같습니다.” 이미 가득 채워진 잔은 더 이상 채워질 수 없다. 화려하게 채우려 하기보다 오히려 비워내고 맞아들이려 하는 자세가 더 많은 걸 담아낼 수 있다는 페이커의 말을 <유퀴즈>는 경청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사진:tvN)

MBC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3’, 갈수록 세지는 생리얼, 생고생, 찐행복의 향연

MBC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3>가 돌아왔다. 이번엔 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다. 시즌2의 여행지였던 인도도 쉽지 않은 여행이라 여겨졌지만, 이번도 만만찮다. 기안84가 전면에서 이끄는 생리얼 여행기. 이번에는 어떤 이야기들이 담겼을까.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3

돌아온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3>, 이젠 어엿해진 폼

MBC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3(이하 태계일주3)>가 돌아왔다. 지난 시즌2가 끝난 지 약 4개월만이다. 지금에서 돌아보면 올 한 해 MBC 예능은 <태계일주>가 열고 닫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작년 말 첫 방송을 내보내고 좋은 반응을 얻었던 <태계일주>는 시즌2에서 덱스가 합류하면서 제대로된 진용을 갖추게 됐다. 그리고 돌아온 시즌3는 보다 어엿해진 폼으로 이제는 당연한 듯 기안84, 빠니보틀 그리고 덱스가 보다 단단한 팀워크로 뭉쳐졌다. 어언 1년 사이에 출연자 구성이 완성된 느낌이다. 

 

여행지를 보면 시즌1이 남미를, 시즌2가 인도를 그리고 이번 시즌3는 아프리카를 선택했다. 이미 해외여행도 일상이 되어버린 현재라고 해도, 여행자들이 쉽게 선택하는 선택지들은 아니다. 이건 <태계일주>의 의도된 선택이다. 보다 낯선 곳으로 보다 깊숙이 들어가보는 게 이 여행 프로그램의 차별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즌1에서는 아마존강 정글에 사는 현지인의 집에서 하루를 보내기도 하고, 볼리비아 산속에서 만난 포르피와의 진한 우정을 피우기도 했다. 시즌2에서는 갠지스강 바라나시에서 현지인들과 함께 운동을 하기도 하고, 결혼식장에 초대되어 여흥을 즐기기도 했다. 시즌3 역시 마찬가지다. 시작부터 벨로수르메르까지 홀로 들어간 기안84가 거기서 만난 원주민 청년 예르페, 플로라와 함께 작살낚시를 하기도하고 그들 집에 초대받아 그들의 삶 그대로의 하룻밤을 보내기도 했다. 이처럼 <태계일주>는 익숙한 여행지보다는 낯선 곳을 찾아가고, 그것도 멀리서 바라보는 여행이 아니라 아예 그들의 삶 깊숙이 들어가는 여행을 보여주고 있다. 

 

시즌3를 보면 이제 시즌2로부터 하나의 구성 형식이 만들어졌다는 걸 실감하게 한다. 그것은 먼저 기안84가 혼자 더 야생적인(?) 체험을 한 후, 빠니보틀과 덱스를 만나 함께 여행하는 형식이다. 이렇게 구성한 이유는 첫 회에 이 프로그램의 백미라고 할 수 있는 ‘생리얼’을 기안84의 ‘나홀로 여행’을 통해 먼저 전면에 보여준 후, 동생들이 합류한 후의 달라지는 여행의 양상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앞부분이 어딘가 날 것의 여행이면서도 외로운 느낌을 준다면, 동생들과 함께 하는 여행은 그 자체로도 행복한 느낌을 선사한다. 시청자들 입장에서는 ‘생리얼’ 여행의 묘미가 재미있긴 하지만, 그것만 반복되면 자칫 보기 힘들어지는 지점을 풀어줄 수 있는 형식이다. 당근과 채찍을 적절히 오가는 구성이랄까. 

 

기안84라 가능한 반전의 서사

역시 <태계일주>는 기안84라는 독특한 인물의 힘에서 나온다. 이번 시즌3에서도 그는 원시의 바다에서 원주민들과 함께 작살낚시를 하고 싶다는 버킷리스트를 내세움으로써, 마다가스카르 여정의 출발지점인 벨로수르메르까지 가는데만 며칠이 걸리는 수고를 들였다. 에티오피아까지 12시간, 거기서 마다가스카르까지 5시간, 그 곳 수도 안타나나리보 공항에서 모론다바로 경비행기를 타고 가서 또 배를 타고 벨로수르메르까지 가는 머나먼 여정이 펼쳐진 것. 

 

하지만 지루할 수도 있는 여정 자체가 흥미롭게 된 것 역시 기안84 덕분이었다. 갑작스레 폭우가 쏟아져 안타나나리보 공항에서 비행기를 탈 수 없게 되자 근처 숙소에서 머물게 됐을 때도 그는 굳이 폭우 속에 길거리로 나와 현지인들이 파는 라면을(빗물이 다 들어간) 먹는 모습을 보여줬고, 모론다바에서 벨로수르메르까지 가는 배를 기다리면서도 현지인이 바닷가 근처에서 파는 음식을 현지인들도 놀랄 정도로 게걸스럽게 먹어치우는 광경을 보여줬다. 

 

누가 현지인이고 누가 여행자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 역전된 상황을 보여주는 건 기안84 특유의 색다른 여행기의 특징이다. 벨로수르메르에서 만난 원주민 청년들과 바다 한가운데로 나가 꿈꾸던 작살낚시를 시도하지만 물 속 깊숙이 들어가지도 못하고 지쳐버린 모습을 보여준다거나(그걸 하러 그 먼 곳까지 갔다는 사실이 웃음을 만든다), 근처 섬에서 잡은 물고기로 요리를 해먹을 때 즉석에서 회를 쳐 초고추장을 찍어 먹는 모습으로 원주민들을 오히려 놀랍게 만드는 모습이 그렇다. 

 

또 굳이 마다가스카르 MZ들을 만나고 싶다고 해서 야밤에 불빛도 없는 곳을 배를 타고 가 그곳 주민들의 진수식 파티에 참석했을 때도 그들이 놀랄 정도로 흥에 겨워 춤을 추는 기안84의 모습이 등장했다. 또 해변에서 덱스와 운동을 하다가 사람들이 운집해 있는 걸 보고 찾아간 곳에서 말 한 마디 잘못해 그 곳 원주민들과 권투시합을 벌이게 된 상황도 그렇다. 뭐든 도전해 보려하고 또 자신이 강하다는 걸 증명해 보이려 하는(물론 그렇지 않다는 걸 발견하기도 하지만) 기안84가 있어 이런 여행의 새로움과 반전들이 벌어진다. 

 

올해 MBC 연예대상 과연 이견 없이 기안84일까

사실 이런 생리얼형 여행기는 유튜브 여행 크리에이터들이 시도해 최근 주목받고 있는 방식이다. 그 대표주자가 바로 빠니보틀이다. 그의 인도 여행기는 그간 지상파나 케이블 같은 여행 프로그램이 보여주지 못했던 보다 깊숙한 그들의 진짜 삶을 포착해냄으로서 유튜브 구독자들을 열광케 했다. 또 특유의 소통력으로 우연히 만난 현지인들과 가까워지고 그렇게 나누는 찐 교감은 그 리얼함으로 여행 콘텐츠의 새로운 길을 열어주었다. 그가 곽튜브나 원지 같은 동료 여행 크리에이터들과 함께 김태호 PD가 연출한 <지구마불 세계여행> 같은 프로그램을 하게 됐던 것 역시 이처럼 달라진 여행 예능의 트렌드를 그들이 선도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상파 같은 보다 정제된(?) 프로그램을 내놓은 플랫폼의 경우 여행 크리에이터들의 날것 그대로의 여행만으로는 어딘가 부족한 면이 있었다. 그건 지금껏 지상파나 케이블을 통해 봐왔던 여행 예능들이 주던 어떤 안정감과 밀도있는 여행기에 대한 관성이 남아 있어서다. 그런 점에서 기안84는 이 여행 크리에이터들이 하는 ‘생리얼’ 여행과 동시에 기성 여행 예능이 가진 안정감이나 밀도 같은 것들을 균형있게 채워줄 수 있는 대안적 인물로 떠올랐다. 그는 <나 혼자 산다> 같은 프로그램을 통해 지상파 예능의 결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진심에서 우러나는 ‘야생’에 대한 욕구를 드러낸다. 날 것의 생리얼, 생고생 그리고 찐행복을 어떻게 기성 여행 예능의 안정감 속에 안착시킬 수 있는가를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고나 할까. 

 

물론 그건 본인이 의도적으로 연출했다기보다는 그의 성향 자체를 드러낸 것에 가깝다. 이미 <나 혼자 산다>에서도 가끔 등장했던 그의 여행기가 독특한 성향들을 보여줬던 것처럼 말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기안84는 이제 레거시 미디어에서 뉴미디어로 옮겨가고 있는 현 과도기적 방송의 트렌드 속에서 그 다리 역할을 하는 인물처럼 보인다. <태계일주>는 그래서 기안84라는 인물이 중심일 수밖에 없다. 이 과도기적 인물이 진심을 드러냄으로써 독특한 색깔이 만들어진 여행 예능이기 때문이다. 

 

섣부른 예측이지만 이미 많은 이들이 올해 MBC 연예대상은 이견 없이 기안84라고들 말한다. 과연 그렇게 될 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그가 방송의 과도기를 표징하는 인물이라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그 시대적 의미만으로도 연예대상감은 충분하다 생각되는. (사진:MBC, 이 글은 매일신문에도 게재되었습니다)

‘콩콩팥팥’, 나영석 사단의 저력이 느껴지는 힘 뺀 예능의 맛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

tvN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난다(이하 콩콩팥팥)>에서 4개월간 농사를 지으며 보냈던 인제에서의 마지막 밤. 그들은 불멍을 하기로 한다. 장작에 불피우는 것조차 초보인 이들은 불이 잘 붙지 않아 계속 토치로 다시 불을 붙이는 걸 반복한다. 어디서 들었던 ‘불멍’의 감성이 생각과는 다르다는 걸 느끼면서 이광수의 여지없는 투덜댐이 시작된다. “이게 만약 불멍이라면 다신 안 하고 싶어.” 불은 잘 안 붙고 연기에 눈은 맵고 넣어 놓은 고구마는 아직 익지 않았다. 

 

30분만에 깨진 캠프파이어의 환상. 하지만 그렇게 조금 지나고 나니 제법 불이 붙고 불멍의 분위기가 피어난다. 출연자들이 반색하며 이 프로그램에서 아마도 김우빈이 가장 많이 했던 말일 듯한 “좋다”란 말이 튀어나온다. 익은 고구마를 꺼내 돌려먹고, 불멍 앞에서 빠질 수 없는 컵라면을 둘러 앉아 먹는다. 투덜대던 이광수는 금세 불멍의 즐거움에 빠져든다. 서로 좋아하는 걸 묻고 말하는데 김우빈이 이 프로그램을 하며 좋았던 소회를 털어놓는다.

 

“저는 이거 하면서 제일 좋았던 건 뭐냐 하면 흙 밟고, 손으로 만지고, 비 맞고, 새입 난 거 손으로 만지고, 냄새 맡고... 그런 게 너무 좋았어요.” 그 말에 더해 김기방이 한 마디를 곁들인다. “되게 원초적인 감각을 느낄 수 있는 거.” 김기방, 이광수, 김우빈 그리고 도경수. 벌써 만난 지 10년이 된 죽마고우들의 10년 전 팔팔 했던 이야기도 빠지지 않는다. 

 

그러더니 도경수가 불씨가 남은 숯을 입으로 호호 불며 톡톡 터지는 소리를 들려준다. 그런 걸 하나하나 다 돌아가면서 하는 게 웃기다는 제작진의 이야기에 “좋은 건 다 같이 하는 게 좋다”고 입을 모아 출연자들이 말한다. 어찌 보면 불 하나 피워놓은 것일 수 있지만, 그 소소한 불멍 하나로 이토록 사운드가 가득 채워지고 보는 이들의 마음까지 훈훈하게 만들어진다는 게 신기하다. 갑자기 쥐불놀이를 하고 싶다며 집게로 숯을 들고 돌리고, 그걸로 네 사람이 굳이 ‘LOVE’를 그리며 사진에 남기려 애쓰는 모습은 거의 스펙터클이다. 

 

이 마지막밤 불멍의 풍경은 이제 마무리된 <콩콩팥팥>이 가진 독특한 재미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것만 같다. 사실 이 프로그램의 제목에 담긴 ‘콩 심은 데 콩나는’ 이야기는 과거 예능에서는 금기로 불리던 소재였다. 이른바 ‘쌀로 밥 짓는 이야기’가 그것이다. 너무 뻔한 걸 해서는 먹히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방송에 대한 대중들의 감성이 달라졌다. 너무 과잉된 걸 하는 건 오히려 웃기지도 또 재미있지도 않게 됐다. 그건 리얼리티가 떨어지는 것이고 인위적인 느낌이 강하기 때문이다. 너무 애써 웃기려는 것도 너무 애써 재밌게 하려는 것도 그래서 부담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워낙 많은 콘텐츠들이 쏟아져 나오고, 우리의 일상 또한 영상과 정보의 홍수에 휩쓸리고 있어서인지, 요즘은 ‘멍’ 계열의 예능들이 오히려 주목받는다. 불멍, 물멍 같은.

 

<콩콩팥팥>은 시작부터 그 끝이 보이는 예능이다. 농사라는 소재 자체가 그렇다. 여름에 씨를 뿌리고 가을에 수확하는 과정이 담길 수밖에 없다. 초보농사꾼들이라는 사실이 하나하나 겪어내며 부딪치는 좌충우돌의 재미요소를 만들고, 그 와중에 인제의 이 작은 마을에 사는 인심 좋고 정많은 사람들을 알아가고 친해지는 과정이 주는 재미가 있는 게 사실이지만 그 과정을 우리는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 결국 콩 심은 데 콩이 나는 걸 보여주려는 것 아닌가. 

 

하지만 콩 심은 데 진짜 콩이 나고, 그 콩을 수확해 쪄서 먹어보고 또 갈아서 콩국수를 만들어 먹는 과정은 보기만 해도 뿌듯하다. 농사가 쉽지 않은 초보 농부들에게 쑥쑥 자라줘 용기와 보람을 준 깨는 잎으로 고기를 싸먹고, 깨는 털어서 들기름을 만든 후 그걸 양껏 부어 고소한 기름막국수까지 먹게 해준다. 그 고소한 향기가 TV화면을 뚫고 안방까지 전해지는 느낌이다. 

 

떠나온 밭에 남겨두고 왔던 배추며 무로 김장을 담그는 모습은 그래서 이 프로젝트의 대미가 된다. 그냥 사서 하는 김장이 아니라, 하나하나 직접 키워 수확해 하는 김장이니 얼마나 각별할까. 모두가 둘러 앉아 함께 김장을 하며 나누는 대화는 그간 4개월 간의 추억만으로도 포만감이 느껴진다. 

 

어찌 보면 그냥 틀어놓고 크게 집중하지 않은 채 슬쩍슬쩍 봐도 될 정도로 부담없는 ‘멍’ 계열의 프로그램처럼 보이지만, 이를 또 집중해서 보면 더더욱 재밌게 만들어준 건 다름 아닌 이광수를 중심으로 김기방, 김우빈, 도경수, 찐친들의 티키타카였다. 이미 친한 그들의 케미는 그래서 너무나 자연스러웠고, 시청자들에게는 새로웠다. 이광수는 예능 출연이 많았지만, 이처럼 자신이 중심에 서서 끌고가는 역할을 맡아 새로운 면모가 돋보였고, 다른 출연자들은 말 그대로 예능 초보자들이었다. 특히 이광수와 티격태격하는 모습과 발군의 요리실력에 귀여움을 독차지 하는 막내였던 도경수는 ‘재발견’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매력을 보여줬다. 

 

처음에는 데면데면했지만 차츰 아버지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따뜻한 정을 보여주신 이웃 동근 아버님이나, ‘홍반장’처럼 우직하게 도움을 주고 재미도 줬던 망치 형님 같은 마을 주민들의 환대도 빼놓을 수 없다. 이들은 외지인들이 그 곳에 적응할 수 있게 드러내지 않고 도와줬고 그 마음은 고스란히 시청자들에게도 전해졌다. 

 

<콩콩팥팥>의 저력은 나영석 사단이 갖고 있는 균형감각을 다시금 발견하게 만든다. 힘 빼고 편안하게 볼 수 있는 예능의 맛을 밑반찬으로 내놓고, 그러면서도 출연자 구성과 그 케미만으로도 빈 틈 없는 재미를 채워넣은 것이 그렇고, 초보가 조금씩 농사를 알아가는 재미를 자연스러운 시간의 흐름 속에서 발견하게 해주는 ‘힘 뺀 연출’이 그렇다. 늘 그래왔듯이 <콩콩팥팥> 역시 한때는 금기로까지 이야기됐던 익숙함을 넘어 ‘뻔할 수 있는’ 소재 속에서도 새로운 재미를 찾아낸 예능으로 각별하게 기억될 것 같다.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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