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단둘이 여행 갈래?’, 이효리가 껴안은 건 엄마만이 아니었다

엄마, 단둘이 여행 갈래?

“이런 강도 보고 저런 산도 보고 들판도 보고 이러면서 힐링이 되는 거야. 여행이라는 건.” 이효리의 엄마 전기순씨가 그렇게 말할 때 그에게서는 순간 소녀 같은 설렘이 느껴졌다. “저런 산만 쳐다보면 산이 너무 좋은거야 엄마는. 저런 데서 막 누비고 다니며 버섯도 따고 고사리도 꺾고 도라지도 캐고...” 엄마는 그런 산 같은 자유로운 삶을 꿈꿨던 모양이었다. 

 

JTBC ‘엄마, 단둘이 여행 갈래?’를 통해 함께 경주로 여행을 떠난 이효리와 엄마는 어딘가 그런 일이 낯설고 어색해 보였다. 그런 여행이 그리 많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었고, 취향도 너무나 달라 이효리가 뭘 하자고 해도 이런 저런 이유로 싫다고 말하는 엄마였다. 야경이 좋다며 보러가자고 하면 잠을 자야 한다고 하고, 찜질방에 가자고 하니 머리가 망가진다고 안된다고 한다. 네일아트라도 해보자고 하니 집에 가면 밭일할 걸 뭐하러 그걸 하냐고 하신다. 

 

대릉원에 관심이 있다고 가서는 해설사의 이야기를 들으며 어딘가 무관심해 보이고, 경주에 가면 봐야 한다며 첨성대 앞에 가서도 사진 몇 장 찍고는 다 했다고 돌아선다. 그런 엄마의 모습이 이효리는 우스우면서도 왜 그런 지 알 수 없다는 표정이다. 특히 여행 오면 남는 게 사진인데, 엄마는 사진을 찍을 때마다 싫어한다. 왜 찍느냐며 손사래를 치고, 애써 찍으려 하면 어색해한다. 

 

교복을 입고 소녀처럼 변신해 찍은 사진들 중에서 잘 나온 걸 고를 때도 엄마는 이효리에게 “너 사진빨 잘 받는다”고 하면서도 자신의 모습은 보기 싫다 하신다. 귀엽다, 예쁘다, 잘 나왔다고 이효리가 계속 말하지만, 엄마는 부정한다. “늙어가지고 잘 나온 게 어딨어. 다 꼴보기 싫구만.” 웃는 모습이 예쁘다는 이효리의 말에도 “웃는 것보다 그냥 다물고 찍는 게 자연스럽다”고 하신다. 그런 엄마에게 이효리가 농담처럼 슬쩍 말을 얹는다. “자신의 모습이 맘에 들지 않아요? 사랑하도록 해봐요. 전여사님 우리 모두가 다 늙잖아요.”

 

이효리의 엄마지만 보다보니 자꾸만 우리네 엄마들이 겹쳐진다. 어렵게 살았고 그 어려움을 벗어나기 위해 여유도 없이 일하며 살아오면서, 이제 좀 여유가 생겼어도 여전히 과거처럼 ‘실용적인 선택’이 삶의 습관이 되어 살아가시는 엄마들. 그래서 나이들고 눈가에 주름이 생기고 하는 일들을, 애써 숨기면서 살고픈 마음이 더 많은 엄마들이다. 캠코더로 엄마를 찍던 이효리가 “엄마 팔자걸음이다”라고 말하자 금세 ‘일자걸음’으로 고쳐 걷는 모습에서 엄마들의 그런 마음이 느껴진다. 

 

하지만 그런 마음이 있으면서도 “눈가 주름도 쫙 펴졌으면 좋겠어. 쫙 다리미로 다린 것처럼.”이라고 딸이 말하자 엄마는 욕심은 한도 끝도 없다며 그걸로 만족하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슬쩍 딸 자랑을 한다. “대한민국 사람들이 다 예쁘다고 난리들인데 뭐. 예쁘고 착하고 얼마나 너그럽고 착한 딸이냐 엄마한테 그래.” 그러면서 “한번 겪어봐라. 한번 부딪쳐봐라.”라는 말로 남들 이야기가 기쁘면서도 자신에게는 좀 소원한 것 같은 마음의 아쉬움도 드러낸다. 

 

가난했던 삶. 당신이 어려서 사랑을 못받아 자식들에게는 사랑을 듬뿍 주면서 키우려 했지만 막상 아빠를 만나고 나서 여유도 틈도 없었다는 말을 꺼내며 엄마는 슬쩍 눈물을 훔친다. “울어?”하고 묻는 이효리에게 “뜨거운 거 먹으니까 눈물이 난다”고 했지만 아마도 속 깊은 곳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올라왔을 테다. 이효리는 쉽지 않은 이야기를 꺼낸다. “나는 엄마랑 아빠랑 같이 있으면 지금도 약간 긴장이 계속 되는 거 같아. 무슨 일이 벌어질까봐. 하도 일이 벌어지니까. 둘이 따로따로 있으면은 괜찮은데 같이만 있으면...”

 

“그런 점에서 너희들한테 미안하다. 엄마로서.” 그렇게 말하는 엄마에게 이효리는 엄마가 사과할 건 없다며 늘 아빠가 먼저 시작했고 그래서 자신이 신랑을 순한 사람으로 골랐다는 이야기도 꺼내놓는다. 이효리는 자꾸만 그 아픈 과거의 이야기를 꺼내놓으려 하지만 엄마는 그걸 꺼내놓고 싶지 않다. 그 과거를 부정하고 싶다. 식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엄마가 “좋은 얘기만 하자”고 할 때 이효리가 하는 답변이 가슴에 와닿는다. “좋은 얘기 나쁜 얘기가 어딨어? 다 지난 얘기지.”

 

누구나 가족사에 아픔 하나쯤은 다 있게 마련이다. 특히 치열하게 살 수밖에 없었던 시대를 부모님들과 겪어온 현 세대들이라면 이효리와 엄마의 이런 여행이 남일처럼 느껴지지 않을 게다. 하지만 그런 아픈 과거들은 애써 부정한다고 사라지는 게 아니지 않을까. 이효리는 있는 그대로를 직시하려 한다. 나이들어 잔주름이 생기면 생기는 거고, 본래 팔자걸음을 걷는 건 숨길 일도 아니다. 그러나 아픈 가족사 역시 애써 부정하기보다는 있는 그대로 마주하고 받아들일 때 비로소 새로운 삶의 길이 열릴 수 있다고 이효리는 말하고 있다. 

 

“너무 사랑하는 엄마가 힘들 때 아무 것도 해줄 수 없었던 그 시간이 나에겐 너무 고통스러운 시간으로 평생 가슴에 남아 있고, 그래서 더 잘해야 됐는데 반대로 이상하게 그것 때문에 더 엄마를 피하게 되는 안보고 싶은 그런 마음이 좀 있었던 것 같았어요. 그게 미안함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나의 무기력한 모습을 다시 확인하는 게 너무 두려워서였는지 모르겠지만 이번에는 그런 마음을 좀 정면으로 바라보면서, 그런 마음들이 엄마하고 나의 사랑을 확인하는데 방해가 되지 않도록 그런 마음들을 용감하게 물리쳐 보고 싶어요.” 

 

‘엄마, 단둘이 여행 갈래?’ 같은 제목에는 사실 부모와 조금 소원해진 자식들에게는 필요한 ‘용기’ 같은 게 느껴진다. ‘단둘’이 여행을 가는 일은 가족의 일상을 벗어나는 일이고, 그래서 한 걸음 떨어져 그 살아왔던 삶을 좀더 직시할 수 있는 기회가 아닐 수 없다. 이효리와 그 엄마의 지극히 사적인 여행처럼 보이는 이 프로그램이 그들의 이야기를 넘어 우리들의 이야기처럼 다가오는 건 그래서다. 한때는 피하고 부정하고 싶었던 과거를 솔직하게 꺼내놓고 마주하는 이효리의 용감한 마음은, 우리도 갖고 싶고 또 가져야될 것 같지만 용기를 내지 못했던 그 마음이기 때문이다. (사진:JTBC)

‘학전 그리고 뒷것 김민기’, 그는 모든 위대한 낮은 자들의 뒷것이었다

학전 그리고 뒷것 김민기

“나는 뒷것이야. 너희는 앞것이고.” 김민기가 했다는 그 말은 그의 삶과 그가 가난한 예술인들을 위해 만들었던 학전(學田)이 해온 일을 압축해 설명해준다. 학전을 세워 ‘지하철 1호선’ 같은 최장기 공연은 물론이고 다양한 뮤지컬, 아동극 그리고 가수들의 공연을 무대에 올렸던 김민기. 하지만 그는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무대 위가 아니라 무대 아래서 스포트라이트를 비춰주는 역할을 자임했다. ‘학전’이라는 이름 그대로 나서지 않고 묵묵히 예술가들의 못자리가 되어준 것이다.

 

SBS 다큐멘터리 ‘학전 그리고 뒷것 김민기’ 3부작은 개관 후 33년을 버텨왔지만 재정난과 김민기의 건강악화로 지난 3월 폐관한 학전과 이 소극장을 세운 김민기의 삶을 담았다. 제목에도 담긴 ‘뒷것’이라는 표현은 그 자체가 먹먹하다. 모두가 앞으로 나서려 애쓰는 세상이 아닌가. 그런데 뒤를 자처한다는 뜻이 담긴 데다, ‘것’이라는 표현 또한 자신을 낮추는 뉘앙스가 담겨 있어서다. 

 

다큐멘터리가 포착한 김민기의 삶은 모든 위대한 낮은 자들의 뒷것을 자처하는 삶이었다. 다큐멘터리에 참여한 황정민, 장현성, 강신일, 이정은 등등 무수히 많은 유명 배우들은 물론이고, 고 김광석을 비롯해 윤도현, 강산에, 정재일, 노영심 같은 음악인들의 면면을 통해 알 수 있듯이 학전은 그들의 든든한 못자리였고, 그 못자리를 지킨 건 다름 아닌 뒷것 김민기였다. 

 

하지만 김민기가 뒷것을 자처한 건 학전을 통한 가난한 예술인들만이 아니었다. 피혁공장에서 일하며 만났던 노동자들의 어려움을 알고는 그걸 음악으로 담아 무수한 노동자들을 위로해준 ‘공장의 불빛’이라는 음악극을 만들었고, 어린 나이에 일터로 나온 그들에게 야학의 길을 열어 주었다. 노래가 모두 금지곡이 되고 모든 길이 막혀 농사꾼이 되겠다고 연천에 내려가서도 그는 농민들의 뒷것이었다. 중간유통업자들 때문에 농민들은 제 값을 못받고 소비자도 비싸게 쌀을 사야하는 상황에 직거래를 통해 모두가 좋은 길을 열어줬던 거였다. 

 

그는 공부를 하고 싶어도 못하는 아이들을 위해 신정동에 중학교 과정을 무료로 가르치는 야간학교를 열기도 했고, 농사 짓겠다고 내려가서도 달동네 아이들을 위한 유아원 건립을 위해 공연을 해달라는 요청에 기꺼이 나서기도 했다. 또 ‘지하철 1호선’의 큰 성공을 거뒀을 때도 거기에 머무르지 않고 어린이들을 위한 아동극에 뛰어들었다. 돈이 되지 않지만 꼭 필요한 일이라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다큐멘터리가 조명한 김민기의 뒷것의 삶을 들여다 보면, 그가 뒷것을 자처해 지지해온 세상의 진정한 앞것들이 무엇인가가 새삼스럽게 눈에 띤다. 그들은 가난해도 삶과 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작품을 통해 말하는 에술가들이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며, 집의 생계를 위해 하고픈 학업도 포기하고 어린 나이에 생업에 나선 학생들이고, 결코 돈벌이의 마음으로는 할 수 없는 농사를 짓는 농군들이며 나아가 우리 사회의 미래가 될 어린이들이다. 즉 김민기가 뒷것을 자처해 지지해온 것들은, 그 무엇보다 소중한 가치를 가진 존재들이지만 세상의 앞것을 자처하는 이들에 의해 가려져 뒷것으로 치부되어온 것들이다. 

 

‘학전 그리고 뒷것 김민기’는 그래서 모든 위대한 낮은 자들의 뒷것을 자처한 김민기의 삶을 들여다 본 다큐멘터리면서, 그 삶이 지탱했던 진짜 세상의 앞것이 되어야할 존재들을 위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실로 이런 존재들이 있어 세상은 그나마 살아갈 수 있고 또 살만해지는 게 아닐까 싶다. 결국 학전은 간판을 내렸지만 모두가 염원하듯 병을 툴툴 털어버리고 돌아와 다시 부활하는 학전의 모습이 보고 싶다. 그 어두운 시대에도 늘 깨치고 나아가 끝내 이겼던 그의 모습처럼. (사진:SBS)

‘걸스 온 파이어’, 걸그룹 오디션이 지겨웠다면 이 여성보컬그룹 오디션을 보라 

걸스 온 파이어

또 오디션이야? 아마도 JTBC ‘걸스 온 파이어’에 대한 시청자들의 선입견은 익숙하게 봐왔던 아이돌 오디션의 어떤 풍경이 아니었을까. 차례 차례 어디 만화를 찢고 나온 듯한 비주얼의 출연자들이 등장하지만, 어설픈 춤실력에 실망하거나 춤은 잘 추는데 노래실력은 엉망인 이들이 자신들의 아직 부족한 실력을 애써 매력으로 채워보려 안간힘을 쓰는 그런 오디션... 하지만 그건 ‘걸스 온 파이어’에 대한 단단한 착각이고 선입견이다. 

 

그런 선입견을 잘 알고 있다는 듯이, ‘걸스 온 파이어’는 첫방부터 1대1 맞짱승부를 통해 이 오디션이 그런 뻔한 걸그룹 오디션과는 완전히 다르다는 걸 보여줬다. 스스로를 구례에서 올라온 돌+I라고 소개한 감담영이 연 첫 무대부터가 달랐다. 그의 무대는 마치 한영애가 시간을 되돌려 소녀가 되어 부르는 것처럼 자유분방했고 물론 만만찮은 노래실력을 바탕으로 하고 있었다. 

 

그래서 김담영이 무난하게 첫 번째 맞짱승부에서 승리해 다음 무대로 진출할 거라 여겨졌지만, 스스로의 가능성을 ‘미지수’라 부른 조예인이 기타를 치며 부르는 무대는 이런 예상을 모두 깨버렸다. 오디션 심사계의 ‘시조새’로 불리는 윤종신 심사위원이 극찬했던 것처럼 조예인의 목소리 톤은 독보적이었고, 중저음에서 고음까지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진성과 가성의 중간 정도를 내는 데서 나오는 공명감의 조절은 기가막혔다. 걸그룹? 이건 거의 보컬리스트를 뽑는 오디션에 가까웠다. 

 

실제로 ‘걸스 온 파이어’는 우리가 흔히 오디션으로 많이 봐왔던 걸그룹을 뽑는 그런 오디션이 아니다. ‘국내 최초 여성보컬그룹’을 결성하는 오디션이다. 따라서 끼와 열망은 대단하지만 노래는 적당히 춤은 어느 정도 하는 수준으로는 참여조차 하기 어려운 오디션이다. 반대로 노래는 기본 이상이어야 하고 춤이 아니라도 표현으로서의 퍼포먼스를 할 줄 알아야 하며 끼와 열망은 당연한 이들만이 가능한 오디션이다. 

 

이런 오디션이라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두 번째 맞짱승부에 올라온 괴물토끼 윤민서는 아이브의 ‘일레븐’을 집착과 광기에 가득한 화자의 목소리로 표현해내 한 편의 뮤지컬 같은 무대를 만들었다. 가창력이 완벽하게 뒷받침 되어 있어 낯설 수도 있는 그 표현들이 선우정아 심사위원의 표현대로, ‘기술’의 차원을 넘어 ‘예술’이 될 수 있는 무대였다. 하지만 이토록 압도적인 무대를 선보여 괴물토끼가 아니라 ‘괴물’처럼 여겨졌던 윤민서가 당연히 압승할 거라고 생각했던 건 다음 무대를 펼친 ‘행복한 쿼카’ 최아임에 의해 깨져버렸다. 

 

박혜원의 ‘막차’를 자신의 이야기를 하듯 부른 최아임은 그 진심이 얹어진 무대로 모두를 몰입하게 만들었고, 발라드가 끄집어내는 슬픔의 감성을 모두에게 전파시켰다. 파워풀한 가창력의 소유자처럼 보이지만, 그걸 애써 강조하기보다는 꾹꾹 눌러 가사에 진심을 얹어 전하려는 그 모습이 오히려 더 큰 감동으로 다가왔다. 윤민서라는 괴물의 무대와 박혜원이라는 감동의 무대. 물론 승패는 갈렸지만 승패가 그리 의미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훌륭한 무대들의 향연이었다. 

 

노래와 퍼포먼스만이 아니라 작사 작곡 능력을 갖춘 출연자도 돋보였다. 만만찮은 끼를 가진 중국에서 온 레타와 맞선 자작곡 ‘누워있고 싶다’를 선보인 자넷서가 그 주인공이다. 그의 무대는 마치 프로 가수의 쇼케이스를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켰다. 한번 듣고 나니 2절부터는 ‘아 걍 다 때려치고 누워있고 싶다-’라는 후렴구를 따라부르게 됐다는 영케이 심사위원의 말이 실감되는 무대. 그냥 발표해도 차트에 오를 것 같은 공감가는 가사와 따라하고 싶은 훅이 느껴지는 곡을 오디션 무대에서 보게 될 줄이야. 

 

절친으로 참가했지만 라이벌로 이수영과 맞짱승부를 하게 된 김예빈의 무대도 돋보였다. 블루스 록 장르의 ‘Better babe’를 톡톡 터지는 탄산수처럼 시원시원한 고음의 매력으로 소화하며 뇌쇄적인 퍼포먼스까지 펼쳐보였다. 뮤지컬계에서 떠오르는 샛별로 이아름솔이 ‘천둥호랑이’라는 수식어에 걸맞게 제시제이의 ‘Mamma knows best’를 진짜 뮤지컬을 하듯 폭풍 가창력으로 소화했지만, 오디션만 이번이 네 번째라는 이나영이 자신의 진심을 차곡차곡 쌓아가며 부른 박정현의 ‘미안해’는 더더욱 진짜 뮤지컬 같은 무대를 보여줌으로써 모두를 감동하게 만들었다. 

 

3세대 아이돌 에이프릴의 메인보컬 출신 김채원과 맞붙었던, ‘그세계 아이돌’ 이송화의 무대도 충격 그 자체였다. 세계 최초 K팝 AI 아이돌 ‘이터니티’로 데뷔해 ‘얼굴없는 가수’로 활동해온 이송화는 레드벨벳의 ‘몬스터’라는 곡을 진짜 괴물의 탄생을 알리는 듯한 무대로 소화해냈다. 사이버 세상에 더 이상 머물지 말고 밖으로 나와달라는 MC 장도연의 재치 있는 멘트가 공감가는 실력자였다.

 

‘걸스 온 파이어’가 이른바 K팝이 아닌 ‘뉴K팝’을 주창하며 ‘여성보컬그룹’을 탄생시키겠다고 내세운 기치에는 ‘결국 중요한 건 본질’이라는 메시지가 읽힌다. 가수라면 노래를 잘해야 하는 게 기본이고, 또 그걸 잘 표현해내는 게 본질이라는 것. 화려한 퍼포먼스만이 아닌 진짜 마음을 건드리는 음악의 본질로 돌아가자고 이 프로그램은 말하는 듯하다. 아마도 오디션이 ‘거기거 다 거기’라는 선입견을 가진 분들이라면 이 프로그램을 한 번 보는 것만으로도 그 선입견을 깨주는 메시지에 깊게 공감하지 않을까 싶다. 첫방을 내놓은 것뿐이지만 벌써부터 다음 출연자들이 어떤 무대를 선보일지가 기대된다. (사진:JTBC)

‘푸바오와 할부지’, 푸바오는 떠났지만 우리에게 영상으로 남은 푸바오 

푸바오와 할부지

“할부지는 활짝 미소 지으며 너를 보내줄거야. 눈물 보이지 않는다고 서운해하면 안된다. 할부지에게 와줘서 고맙고 고맙고 고마워. 네가 열 살, 스무 살이 되어도 넌 할부지의 영원한 아기판다라는 걸 잊지말렴. 사랑한다.” 작년 12월 SBS에서 방영됐던 4부작 ‘푸바오와 할부지’의 마지막회에서 할부지 강바오 강철원 사육사는 푸바오에게 그런 편지를 남겼다. 

 

당시 이미 올해 초 푸바오가 중국으로 떠난다는 사실을 알고 있던 푸덕이들은 아마도 강바오의 그 편지에 담긴 마음과 똑같았을 게다. 그리고 드디어 그 날이 왔다. 지난 3일 푸바오는 중국으로 떠났다. 하지만 푸바오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은 떠나는 과정부터 중국 쓰촨성에 도착하는 과정은 물론이고 작은 해프닝조차 논란으로까지 이어질 정도로 더 뜨거워졌다. 

 

푸바오의 존재를 잘 몰랐던 대중들이라면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가 의아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푸바오의 탄생부터 현재까지의 일상들을 지속적으로 SNS나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봐왔던 푸덕이들에게 이런 이별 앞에 흘리는 뜨거운 눈물과 관심은 당연한 일이었다. 푸바오를 지켜보며 응원하며 푸며들었던 푸덕이들은 어느새 내 가족 같은 끈끈한 감정을 갖게 됐으니 말이다.

 

코로나19 시기, 그 힘겹던 시절에 탄생해 각별했던 푸바오는 ‘행복’을 의미하는 그 이름처럼 모두에게 행복감을 선사하는 존재였다. 많은 이들이 푸바오에게서 받은 위로의 정체는 ‘무해한 편안함’이었다. 복잡하게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천진난만한 얼굴로 세상 걱정 하나 없다는 모습을 보여주는 푸바오는 그것만으로 대중들을 위로하기에 충분했다. 

 

푸바오가 이토록 국민적인 사랑을 받는 존재가 될 수 있었던 데는 할부지 강철원을 비롯해 작은 할부지 송영관 같은 우리네 사육사들의 남다른 애정이 더해져서다. 다른 나라에서의 판다 사육이 일정한 거리를 두는 방식이었다면, 강바오나 송바오가 보여준 푸바오에 대한 애정은 ‘할부지’라는 닉네임에서 알 수 있듯이 거의 가족 같은 방식에 가까웠다. 

 

물론 야생으로 돌아가야 하는 푸바오를 위해 어느 정도 독립할 시기가 됐을 때는 강바오 역시 거리를 뒀지만, 어린 나이에는 진짜 할아버지가 손녀를 챙기는 것처럼 살뜰했다. 다큐멘터리 ‘푸바오와 할부지’는 이 관계를 마치 푸바오의 엄마인 아이바오가 홀로 해야 하는 육아를 할아버지인 강바오가 챙겨주는 방식으로 담아냈는데, 그건 마치 우리네 사는 모양을 닮아 있었다. 

 

강바오의 푸바오 육아 방식은 여러모로 한국적인 색깔이 묻어났다. 어려서 사랑을 듬뿍 받은 아이는 나이 들어 어떤 어려운 상황에 놓이더라도 그 사랑의 힘으로 모든 걸 잘 극복해내리라는 믿음이 그 안에 담겨 있었다. ‘푸바오와 할부지’는 물론이고 푸바오를 담은 유튜브 영상들이 담고 있는 이 믿음은 푸덕이들 또한 할부지의 마음에 동화되어 푸바오 가족의 일원처럼 여겨지게 만든 힘이었다. 

 

“이 셔츠를 보내주고 싶습니다.” 푸바오가 중국으로 돌아가는 날짜가 확정된 후 SBS는 그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푸바오와 할부지’ 시즌2를 방영했다. 그 첫 회에 출연한 송영관 사육사는 떠나는 푸바오에게 무얼 해주고 싶냐는 질문에 그런 의외의 답변을 내놔 모두를 뭉클하게 만들었다. 멀리 떠나는 푸바오를 편안하게 떠날 수 있게 익숙한 체취가 담긴 자신의 셔츠를 보내주겠다는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져서다.  

 

2회에 푸덕이를 자처하며 방송에 나온 산다라박은 일본에서 중국으로 돌아간 샹샹이 일본어를 듣고는 멈춰서고 달려오는 영상을 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건 다름 아닌 한국어가 더 익숙할 푸바오가 앞으로 그를 보러 찾아올 한국인들에게 보여줄 모습이 겹쳐졌기 때문이다. 푸바오는 떠났지만 우리는 푸바오를 보내지 않았다. 그가 담겨진 무수한 영상들은 봐도 봐도 질리지 않고 새록새록 우리를 푸며들게 할 테니. 전현무가 은근히 내비친 속내처럼, ‘푸바오와 할부지’가 다음 시즌으로 이어져 중국 쓰촨성에 살아가는 푸바오를 찾아가는 그 광경이 이어지길 많은 푸덕이들은 바라고 바랄 것이다.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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