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멸되어가는 지역의 위기 속, ‘어쩌다 사장2’의 가치

어쩌다 사장2

전라남도 나주시 공산면. 조용했던 마을에 활기가 넘친다. 그 곳에 유일한 할인마트가 그 진원지다. 그 마트에 따뜻한 캔 커피를 사러 온 근처 어린이집에서 일하는 여성은 갑자기 얼어붙어 버린다. 저 앞에 조인성이 서 있어서다. 물론 계산대에는 차태현이 있다. 조인성에 눈을 떼지 못하는 여성은 “진짜 잘생기셨다”며 “퇴근하고 또 오고 싶다”고 말한다. 왜 아닐까. 세상 따뜻하게 손님을 맞아주는 차태현에 그저 옆에서 미소만 지어줘도 설레는 조인성이 있으니. 

 

tvN <어쩌다 사장2>가 다시 시작됐다. 지난 시즌1에서 화천의 작은 마을, 아담한 슈퍼를 배경으로 너무나 따뜻한 시골마을의 정을 전해줬던 프로그램. 도시에서는 느낄 수 없는 사람들의 온기가 가득 채워진 슈퍼의 풍경을 그저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한 주 간의 피로를 풀어줬던 그 프로그램이다. 그런데 시즌2는 그 배경을 나주시 공산면으로 옮겼고, 슈퍼에서 살짝 규모를 키운(?) 할인마트로 업그레이드했다.  

 

<어쩌다 사장2>는 일단 예능프로그램이니만큼 웃음을 주는 본분에 충실하다. 시즌1처럼 자그마한 시골 슈퍼인 줄 알았는데 눈앞에 나타난 거대한 규모의 할인마트 앞에서 황당해하고 아연실색하는 차태현과 조인성의 넋 나간 모습이 그것이다. 식료품은 물론이고 문구, 공산품 나아가 정육점까지 직접 운영해야 하는데다, 하나의 독립적인 식당이라 해도 될 법한 분식집에서 찾는 손님들을 위해 음식을 만들어 제공해야 한다. 

 

시즌1에서 슈퍼를 겪으며 어느 정도 익숙해졌던 경험치는 이 커진 규모 앞에서 거의 다시 시작하는 단계로 차태현과 조인성을 기죽인다. 포스 이용하는 법도 다시 익혀야 하고 바코드가 찍히지 않은 상품을 구매하려는 고객 앞에서 진땀 흘리며 따로 적어둔 가격표를 찾고 또 찾아야 한다. 걸려오는 전화 주문에 맞춰 물건들을 준비해 배달도 가야되고, 고기 부위도 제대로 모르는 상황에 일일이 고기를 찾아 썰어 내줘야 하는 정육점 장사 앞에 멘붕을 겪어야 한다. 

 

규모가 커진 만큼 아르바이트생들의 수도 늘었다. 이 정도 규모라면 많이 불러야 한다고 생각했던 걸까. 예능을 아는 차태현과 조인성은 동료 배우들을 부르며 아주 작은 슈퍼라는 거짓말로 안심시킨다. 자신들이 아마 당했을 거짓말이 그것이었을 게다. 그래서 자신들처럼 그들도 마트 앞에 오자마자 “사기 당했다”는 반응을 보인다. 그 아르바이트생은 임주환, 이광수, 김우빈이다. 마스크까지 쓴 터라 시골마을에서는 잘 알아보지도 못해 아이돌이라며 BBS라고 소개해도 그러려니 하는 상황. 심지어 김우빈은 오랜만에 ‘테레비’에 나온다고 잔뜩 꾸미고 왔는데 오자마자 앞치마하고 일해야 하는 상황을 투덜대면서도 받아들인다. 

 

<어쩌다 사장2>의 초반 웃음 포인트는 시즌1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는 않다. 하지만 규모가 커진데서 오는 멘붕 상황은 마트에서의 스토리를 더 풍요롭게(?) 만든다. 인근 음식점에 음료수를 배달하러 가는 이야기만으로도 색다른데, 이 마트는 사장님 부부가 얘기한 것처럼 직접 트럭을 몰고 가 팔 물품을 싸게 구매해 와야 하는 미션도 주어졌다. 물론 시즌1에서 중요한 재미 포인트로 잡혔던 음식 장사도 빠지지 않는다. 시즌1에서 도움을 줬던 고성의 어부 후배가 찾아와 이번에는 우동에 욕심을 내는 조인성에게 갖가지 신선한 재료들을 공수해준다. 

 

하지만 역시 <어쩌다 사장>만의 진짜 묘미는 누가 봐도 도드라지게 반짝이는 이 배우들이 나주의 이 작은 마을에 들어와 그 곳 사람들과 교감하며 전하는 그 따뜻한 온기들이다. 마트 운영이 익숙하지 않아 물건 하나 찾지 못하는 이들에게 오히려 그 물건이 어디 있다는 걸 알려줄 정도로 마트에 친숙한 손님들을 그 마을이 가진 도시와는 다른 끈끈한 관계를 잘 보여준다. 

 

연예인들이라고 해서 특별히 다른 존재들이라 볼 순 없겠지만 어쨌든 이 작은 마을에 이들이 찾아와 열흘 간 마트를 운영하는 일은 이 곳의 작지 않은 이벤트임에 틀림없다. 그래서 마트를 중심으로 마을이 활기를 띤다. 사람들이 찾아오고 그들과의 이야기들이 전파를 타고 화제가 된다. 물론 여기서 중요해지는 건 차태현이나 조인성 같은 먼저 다가와 친숙한 손을 내미는 출연자들의 면면이고, 이를 따뜻한 이야기로 포착해내는 유호진 PD 같은 연출자의 섬세한 시선이다. 

 

열흘간의 이야기지만, <어쩌다 사장2>가 전하는 이 곳의 풍경들은 요즘처럼 도시화로 인해 심지어 ‘소멸 위기’까지 느끼고 있는 지역의 상황을 염두에 두고 들여다보면 그 자체로 남다른 가치를 전한다. 차태현과 조인성이 한 작은 마을에서 벌이는 마트 경험처럼 보이지만, 이를 통해 유호진 PD가 진짜 담으려는 건 그 작은 마을 사람들이 차태현과 조인성과의 만남들을 통해 전하는 따뜻한 마음들이기 때문이다. 저런 곳에서 살고 싶다는 마음이 들게 만드는 그 카메라의 시선들이 예사롭지 않다. 어쩌면 그 시선 속에서 우리가 도시로만 모여 들면서 잃어버린 무언가를 찾을 수도 있을지 모르니 말이다.(사진:tvN)

김태리, 남주혁의 청춘멜로, 1998년을 소환한 까닭(‘스물다섯 스물하나’)

스물 다섯 스물 하나

‘응답하라 1998’이 아닐까. tvN 토일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는 오프닝에 90년대 풍경과 더불어 당대의 추억과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복고적 영상을 선보였다. 마치 옛날 드라마를 보는 것만 같은 톤 앤 매너를 연출적 포인트로 삼은 것. 신원호 감독의 <응답하라 1997>이 떠오르는 건 당연하다. 당시 <응답하라 1997>도 PC통신의 접속 장면과 신호음을 오프닝에 담아 당대의 추억 속으로 시청자들을 이끌었기 때문이다. 

 

<스물다섯 스물하나>는 1998년을 시대적 배경으로 가져왔다. 이 시대적 배경이 중요한 건 IMF라는 사건(?)에 의해 여기 등장하는 청춘들, 나희도(김태리)와 백이진(남주혁)의 삶이 통째로 흔들리는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네 꿈을 뺏은 건 내가 아냐. 시대지.” 이렇게 말하는 코치의 말 속에 이 시대의 무게감이 느껴진다. 나희도는 다니던 학교 펜싱부가 사라지게 되면서 어려서부터 꿈이었던 펜싱을 더 이상 못하게 될 위기에 처하고, 백이진은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고 홀로 살아남아야 하는 생존 상황에 놓이게 됐다. 

 

그래서 1998년을 떠올리게 하는 풍경들이 드라마 속에 담겨진다. IMF도 그렇지만, 만화 풀하우스, 미국 직배 영화에 맞서 스크린쿼터를 요구하는 영화인들의 시위, PC통신, 비디오 플레이어, 금 모으기 운동, 더블데크, 만화 대여점... 풍경만으로도 당대로 기억을 소환시키는 소품들과 광경들이 <스물다섯 스물하나>에 채워진다. 현재 너무 치열해진 경쟁사회에 코로나19까지 더해져 갑갑한 청춘들의 현실을 떠올려 보면 IMF가 막 터진 그 때가 오히려 좋았던 시절이라는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여러모로 90년대, 그 중에서도 IMF를 전후한 시기는 복고를 담는 콘텐츠들에는 막강한 힘을 발휘한다는 걸 이 드라마도 여지없이 보여준다. 

 

그런데 이 시대가 주는 무게감과는 사뭇 상반되게 <스물다섯 스물하나>는 청춘멜로가 갖는 풋풋함과 설렘, 밝고 명랑한 분위기가 가득하다. 그 이유는 나희도가 당대의 이런 어수선한 분위기에 대해 던지는 대사 속에 담겨 있다. “사람들은 무언가를 잃어가나 보다. 그치만 나랑은 상관없는 어른들의 일이다. 난 뭔가를 잃기엔 너무 열여덟이니까. 내가 가진 것들은 잃을 수 없는 것들이다. 예를 들면 꿈, 동경.” 즉 이 나희도나 백이진 같은 청춘들은 시대의 무거움과 마치 정면승부를 펼치겠다고 선언하는 것 같은 발랄함을 보여준다. 

 

나희도의 이런 발랄함과 생기 넘치는 에너지는 빵빵 터지는 코믹한 상황들을 통해 시청자들에게 유쾌하게 전해진다. 백이진과 처음 만나게 되는 순간부터가 그렇다. 생계를 위해 신문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는 백이진이 던진 신문에 오줌 누는 소년상의 성기 부문이 잘려나가자 따지는 나희도의 대사는 빵빵 터지는 웃음과 더불어 이 엉뚱발랄한 캐릭터를 잘 드러낸다. “신문사절 안보여? 신문을 사절한다는데 왜 사절을 안 해서 가만있는 애를 고자로 만드냐고?”

 

펜싱부가 사라지자 자신이 동경하는 고유림(보나) 선수가 있는 태양고로 전학을 가고픈 나희도가 사고를 쳐서 강제전학을 하려던 계획이 번번이 수포로 돌아가는 에피소드들도 큰 웃음을 선사한다. 패싸움에 뛰어들어 펜싱 실력으로 남자들까지 제압하지만, 정작 자신이 붙잡히게 되길 원해 부른 경찰들이 자신은 놔두고 도망치는 친구들만 뒤쫓자 툭 던지는 한 마디가 그렇다. “잡히려면 도망가야 되는구나.”

 

또 펜싱을 고집하는 나희도와 말다툼을 하다 대여점에서 빌려온 풀하우스를 엄마가 찢어 버리자 찢겨진 부분을 손으로 그려 붙여 대여점에 몰래 되돌려주려다 백이진에게 딱 걸리는 에피소드도 마찬가지다. 백이진 앞에서 무슨 말을 하는 지도 알 수 없게 우는 나희도의 모습도 우습지만, 그가 그려놓은 엉성한 그림과 ‘외않되...?’라고 잘못 쓴 대사에 키득키득 웃는 백이진의 모습도 빵빵 터진다. 

 

하지만 백이진에게 드리워진 ‘시대의 그늘’은 그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크고 무겁다. 아버지 사업의 부도로 피해를 입은 업체 아저씨들이 찾아와 그에게 아버지 때문에 겪는 어려움을 토로할 때 백이진은 이렇게 말한다. “저도 절대 행복하지 않을 게요. 아저씨들 고통들 생각하면서 살겠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어떤 순간에도 정말, 어떤 순간에도 정말 행복하지 않을 게요. 정말 죄송합니다.”

 

마침 그 순간 우연히 그 광경을 보게 된 나희도는 슈퍼 앞 평상에 앉아 ‘함부로’ 백이진의 그 무거운 현실을 툭툭 꺼내놓으며 과거 학창시절 방송반에서 잘 나가던 그 백이진과 너무 다르다고 말한다. 어찌 보면 무례할 수 있는 그 ‘함부로’ 던지는 발언을 그러나 백이진은 좋다고 말한다. 그 이유는 그렇게 아무렇게나 말할 수 있는 나희도를 통해 자신에게도 있었던 그 시절이 떠올라서다. “너 보면 내 생각이 나. 열여덟의 나 같애.” 그는 그 때로 절실히 돌아가고 싶어 한다. 그는 심지어 그 때의 ‘걱정들’이 그립다고 한다. “뭐 숙제가 너무 많고, 방송부 선배들이 너무 무섭고 축제 때 무대에서 실수할까봐 뭐 좋아하는 여자애가 나 안 좋아할까봐 뭐 그런 걱정.”

 

당대에는 하늘이 무너질 것처럼 힘들게 느껴졌지만 지나고 나면 그 때의 ‘걱정들’조차 그리워지는 어떤 시기가 온다는 것. <스물다섯 스물하나>는 스물둘이 열여덟을 만나 위로를 받는 이야기다. 그건 장차 스물다섯 스물하나에 그 때를 이야기하며 그 걱정들조차 그리워하는 어떤 순간들을 불러올 거라는 예감을 만든다. 

 

“우리 가끔 이렇게 놀자. 싫어도 해. 선택지 없어 해야 돼. 네가 그 아저씨들한테 그랬잖아. 앞으로 어떤 순간도 행복하지 않겠다고. 난 그 말에 반대야. 시대가 다 포기하게 만들었는데 어떻게 행복까지 포기해? 근데 넌 이미 그 아저씨들하고 약속했으니까. 이렇게 하자. 앞으로 나랑 놀 때만 그 아저씨들 몰래 행복해지는 거야.”

 

즉 1998년의 IMF 상황이라는 무거운 시대의 분위기를 가져왔지만 드라마는 청춘의 풋풋함으로 그 ‘시대와 대결하는’ 듯한 건강함을 보여준다. 이 청춘멜로가 시청자들의 시선을 잡아끄는 건 코로나19로 인해 가뜩이나 힘겨운 현실에 잠시 동안이나마 시간을 되돌려 숨 쉴 틈을 제공하고 있어서다. 그런데 왜 하필 1998년이라는 시대적 상황이었을까. 

 

그것은 IMF로 인해 암울하기 그지없었던 그 시대 역시 결국 잘 지나왔다는 사실을 통해 현재에 던지는 위로가 크기 때문일 게다. 하지만 그것만큼 의미 있어 보이는 건, 마치 어디로 갈지 알 수 없었던 청춘의 시대를 거쳐 이제 중년으로 가고 있는 우리 사회가 이제 그 시기를 되돌아보고픈 청춘의 시대로 인식하고 있어서다. <스물다섯 스물하나>는 그래서 지금의 청춘들에게 어려운 시기는 어느 때나 지나간다는 위로를 건네고, 지금의 중년들에게는 잊고 있던 그 때의 에너지를 다시금 떠올리게 해주고 있다. (사진:tvN)

이효리씨 ‘여가수 유랑단’도 부탁해(‘서울체크인’)

서울체크인

어째서 이효리와 함께 하면 주변사람들까지도 빛이 날까. 티빙 오리지널 파일럿 예능 <서울체크인>이 담은 이효리의 서울나들이가 특별하게 느껴진 건 바로 이런 점들이다. 서울나들이에서 이효리가 마치 제집처럼 편안하게 찾아간 엄정화는 물론이고, 즉흥적으로 만나고 싶다는 마음에 마련된 브런치 모임에 나온 화사, 김완선, 보아까지 <서울체크인>에서는 남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이런 마법 같은 일은 어째서 가능한 걸까.

 

Mnet <MAMA>의 호스트로 서울에 온 이효리. <서울체크인>은 그가 서울에서 보내는 2박3일 간을 담았다. 가장 먼저 눈에 띤 건 무대 위 카리스마 넘치는 이효리와 무대 아래에서 정반대로 털털하기 이를 데 없는 이효리의 ‘온 앤 오프’가 전하는 상반된 매력과 그것이 전하는 기분 좋은 호감이다. <MAMA>무대를 위해 <스트릿 우먼 파이터>의 댄서들과 함께 리허설을 하는 모습에서 보여준 멋짐과, 리허설이 끝나고 대기실에서 ‘팔팔한’ 그들과 자신을 서슴없이 비교해가며 농담을 던지는 털털함이 그것이다. 

 

가비, 허니제이를 콕 집어 “엉덩이 들이대지 말라”고 하라며 농담을 던지고, 아이키가 “왜 저는 의식하지 않으시냐”고 하자, “너 정도까지는 내가...카바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가비는 다리미로 엉덩이 좀 눌러서 오라고 해.”라는 말로 빵빵 터지게 만드는 이효리. 그는 그렇게 함께 후배들과 화기애애한 이야기를 나누며 “너희들이 있어 너무 좋다”고 말했다. 

 

하지만 <스트릿 우먼 파이터> 후배들 앞에서는 대선배의 모습이었던 이효리는 엄정화 앞에서는 후배로서의 또 다른 모습을 드러낸다. 모두가 다 바뀌었는데 나만 그대로인 것 같았다는 리허설을 하며 느낀 소회를 전하는 이효리에 “내가 그 기분 모를 것 같애”라며 혼잣말하듯 툭 던지는 그 말은 가슴을 쿡 찌른다. 그 날 이효리가 느낀 그 소회를 이미 엄정화는 일찍이 39살에 ‘유고걸’을 들고 나온 이효리를 통해 느꼈었다고 했다. 

 

술과 안주는 물론이고 뭐든 던지는 대화를 척척 받아주고 들어주며 넌 아직 괜찮다고 얘기해주는 엄정화 앞에서 이효리는 금세 너무나 살가운 동생 같아진다. “아유 좋다 언니 있으니까”라며 문득 엄정화에게 “언니는 언니 없이 어떻게 버텼어요?”라고 묻는 이효리는 갑자기 눈이 촉촉해진다. 그 시간들을 오롯이 홀로 버텨왔을 언니의 마음을 고스란히 느끼는 이효리다. 순간 엄정화라는 레전드 가수의 면면이 새롭게 느껴진다. 이효리가 느꼈을 엄정화의 시간들에 대한 뭉클함이 전해진다. 

 

그 날 술 한 잔 걸치고 기분이 좋아진 이효리는 김완선, 보아, 화사와 함께 ‘댄스 가수들 모임’ 한 번 하자고 제안한다. 이튿날 <MAMA>에서 <스트릿 우먼 파이터> 후배 댄서들과의 화려한 무대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고, 다시 엄정화의 집에서 자축하듯 샴페인을 마시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 이효리는 다음날 진짜로 엄정화, 김완선, 보아, 화사와 함께 브런치 모임을 갖는다. 

 

화사야 이미 MBC <놀면 뭐하니?> ‘환불원정대’ 활동으로 익숙하지만, 김완선과 보아는 이효리와 함께 방송을 통해 전해지는 모습이 낯설다. 이효리는 김완선과는 사석에서 만나본 일이 없다고 했고 보아와는 결혼 전에 마지막으로 봐서 너무 오래도록 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래서 어색할 듯싶지만 의외로 이들은 금세 언니 동생 하는 친한 사이가 된다. 여기에도 이효리의 남다른 존재감이 돋보인다. 

 

김완선이 대선배라 그 앞에서 조신한 모습을 보이는 이효리가 너무나 웃긴 화사가 “선배님”하며 웃자 두 사람은 눈을 마주치며 웃는다. 무대 위에서 화려한 모습과는 정반대로 털털한 이효리의 친근함이 힘일 발휘한다. 손톱을 마구 붙였다 떼어 망가진 모습을 보여주자 “왜 이렇게 손톱이...”라며 말문을 못잇는 김완선에게 “더럽죠?”라고 말하고 “시골에 살아가지고”라고 스스럼없이 말하는 이효리다. 그래서였는지 김완선은 금세 본연의 호쾌한 캐릭터를 드러낸다. 

 

최근에 2년 만에 앨범준비를 했다며 집에서만 있다가 ‘몸을 움직이니까’ 너무 살 것 같았다는 김완선의 이야기에 공감하고, 주변 시선 불편하지 않냐는 질문에 “시선이 없어. 이제는”이라고 말하는 김완선은 어느새 이효리 같은 ‘내려놓는 편안함’의 면모를 드러낸다. “내가 뭘 하든 관심 없으니까 내가 마음대로 한다”며 음악을 취미처럼 한다는 김완선의 말에 “좋은 포인트”라고 인생선배에 대한 배움의 자세를 보여주는 이효리. 또 이와는 반대로 ‘좋은 본보기’로 계속 되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낀다며 어릴 때 ‘무대 공포증’ 경험을 털어놓는 보아에게는 “그랬을 것 같애”라며 선배로서 공감해주는 이효리. 이것이 그가 자신은 물론이고 함께 하는 주변인들까지 빛나게 만드는 그만의 존재감이었다. 

 

기분 좋은 브런치 만남에서 이효리는 전날 엄정화와 술을 마시다 아이디어 차원에서 불쑥 떠올렸던 ‘여가수 유랑단’ 이야기를 꺼낸다. “여자 댄스 가수들이 모여가지고 전국 투어 콘서트를 하자. 여가수 유랑단 해가지고. 버스에 외국 록스타들처럼 사진을, 얼굴을 쫙 붙여. 그 다음에 대전, 대구, 부산 돌아다니는 거야.” 그 말에 김완선은 “하자”며 “자기야 천재 아니야”라며 반색한다. 남자 게스트로 지드래곤, 방탄소년단을 이야기하는 이들의 얼굴은 벌써부터 설렘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이 아이디어 역시 실제로 구현될 수 있을까. <서울체크인>을 파일럿으로 연 김태호 PD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는 대목이다. 이효리의 한 마디로 실현된 ‘환불원정대’처럼 ‘여가수 유랑단’ 프로젝트도 이어질 수 있기를.(사진:티빙)

‘악의 마음’, 김남길만큼 중요한 진선규의 존재감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

“프로파일러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아요? 빌딩이 높아질수록 그림자가 길어진다고 했습니다. 잘 들으세요. 머지않아 우리도 미국처럼 인정사정없는 놈들 나타납니다. 얘네들은 동기가 없어요. 그럼 어떻게 해야 돼 우리도 그런 놈들 미리미리 대비를 해야 될 거 아닙니까?”

 

SBS 금토드라마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에서 국영수(진선규)는 아직 프로파일러도 또 과학수사의 개념도 잘 모르던 시절 형사들에게 그렇게 외친다. 세기말에서 2000년대로 넘어오던 시절, 국영수의 이 외침은 왜 프로파일러가 필요해졌는가를 잘 말해준다. 실제로 당시에는 영웅파니 지존파니 막가파니 하는 강력사건들이 등장해 ‘엽기적인’이라 표현되었던 잔혹한 범죄들이 고개를 들던 시기였다. 

 

국내 1호 프로파일러인 권일용 교수의 실제 이야기를 소재로 한 원작 논픽션을 드라마화한 이 작품에는 그를 모델로 그려낸 송하영(김남길)이라는 인물이 주인공이다. 하지만 당대에 실제 범죄행동분석팀을 만든 건 그가 아니라 그에게 이 새로운 길을 제안한 윤외출 경무관이다. 그를 모티브로 창조된 인물이 국영수다. 

 

송하영이 하고 있는 일들, 이를테면 이미 범인이 특정되어 심지어 유죄 판결까지 난 사건에도 미심쩍은 부분들을 끝까지 파고 들어 증거를 통한 진실을 찾아내려는 그의 행동들이 프로파일러라는 길로 꽃을 피울 수 있게 해준 인물. 국영수는 모두가 반대하는 범죄행동분석팀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주장하고, 그래서 송하영을 적임자로 발견해낸다. 

 

“야 너 그 프로파일러라고 들어봤어? 우리 식으로는 범죄행동분석관인데 프로파일러한테 필요한 자질이 다 있다 너한테는. 일단은 지금처럼 포기하지 않는 것. 거기에 열린 마음. 직관, 상식, 논리적 분석력. 사적 감정 분리까지 두루 필요한데 그런 건 둘째 치고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감수성이거든. 에.. 뭐 타인에 대한 감수성이라고 이해하면 될라나? 사람의 마음을 분석하는 일이니까.”

 

그렇게 프로파일러의 길을 제안하며 국영수는 송하영에게 초콜릿 두 봉지와 존 더글라스가 쓴 <마음의 사냥꾼>이라는 책을 선물한다. 이 책은 25년 간 FBI에서 저자가 범죄수사 분석방법과 프로파일링을 개발해 살인사건을 해결하는 행동분석 수사기법을 다룬 책이다. 존 더글라스는 우리에게는 넷플릭스 시리즈 <크리미널 마인드>로 잘 알려진 인물이다.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은 그래서 우리 식의 <크리미널 마인드> 같은 소재적 뉘앙스를 담고 있다. 프로파일링의 선구자로 불리는 존 더글라스의 이야기가 <크리미널 마인드>라면 국내 1호 프로파일러인 권일용 교수와 이 부문의 또 한 명의 선구자인 윤외출 경무관의 이야기가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인 셈. <마음의 사냥꾼>이라는 책은 그 접점을 만들어 준다. 

 

여기서 드라마적으로 중요한 인물은 당연히 주인공인 송하영이다. 악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이유에 대한 그의 진심이 이 인물을 통해 제대로 구현되어야 시청자들이 공감하고 몰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송하영은 좀체 웃지 않는다. 표정변화도 거의 없다. 시종일관 진지하고 오로지 범인이 왜 그런 일들을 벌였는가를 애써 들여다보려 하는데 집중한다. 이 진지함이야말로 이 드라마가 그저 흔한 자극적인 범죄수사물을 훌쩍 넘어서는 가장 큰 미덕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드라마 수용자들인 시청자 입장에서 보면 송하영의 시종일관 진지한 모습은 자칫 무겁게 느껴질 수 있다. 그 진지함은 당연하지만 그걸 보는 것이 힘겹게 느껴질 수 있는 것. 그런 점에서 송하영에게 이 길을 열어주고 팀을 꾸려 나가는 국영수의 존재감이 얼마나 중요한가가 느껴진다. 그는 사건 앞에 진지하지만 또한 술에 취하기도 하고 적당히 농담도 건네는 인간적인 면모도 갖추고 있다. 그래서 송하영과 함께 서 있으면 그 진지함의 무거움을 국영수라는 인물이 조금은 편안하게 풀어준다. 

 

국영수가 송하영에게 이 길을 제안하면서 <마음의 사냥꾼>이라는 책과 더불어 초콜릿 두 봉지를 건네는 장면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국영수는 송하영의 프로파일러로서의 남다른 면모를 높이 치지만 동시에 이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도 이해하고 있다. 그래서 초콜릿 두 봉지에 그 마음을 담아 전할 정도로 따뜻한 인물이다. 

 

진선규라는 배우의 진가가 주인공 역할인 김남길만큼 돋보이는 건, 누군가의 삶과 죽음 앞에 서게 되는 이 국영수라는 인물이 가진 진정성과 더불어 또한 인간적인 면모까지 더해내는 진실성까지 연기해내고 있어서다. 그가 있어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이라는 무거울 수밖에 없는 이야기에 숨통이 트인다. 또한 진짜 선구자의 길이라는 것이 대단한 영웅서사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어찌 보면 자기 위치에서 제대로 일을 하려는 평범해 보이는 인물들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걸 이 배우는 연기로 보여주고 있다.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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