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 편견과 맞설 때 더욱 빛나는 이유

 

“어느 때보다 반짝반짝 빛났던 <라디오스타>였습니다.” 김국진의 정리 멘트는 그 어느 때보다 의미심장했다. 새해 첫 해를 맞아 내보낸 첫 번째 아이템으로는 너무 소소한 것이 아닌가 생각되었던 이른바 민머리(?) 특집이 사실은 진정한 <라디오스타>만의 매력을 한껏 보여준 결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라디오스타'(사진출처:MBC)

새해를 기념한다는 조금은 억지스런(?) 짜 맞추기에 출연한 민머리 연예인들은 홍석천, 염경환, 숀리, 윤성호. 그다지 핫(hot)하다고 말하기는 어려운 게스트들이다. 하지만 막상 방영된 이 특집은 민머리에 대한 이야기에서 시작해 각종 편견을 뒤집는 통쾌한 유머의 장으로 이어졌다. 그 방식이 흥미로웠던 것은 일단 대머리라는 공통점(?)으로 모여진 이들이 그 대머리에 대한 편견과 오해에 대해 이야기하고는 차츰 또 다른 편견에 대한 이야기로 옮아갔다는 점이다.

 

먼저 주목됐던 건 홍석천을 통해 알게 된 성 소수자에 대한 편견이었다. 우리가 흔히 막연하게 갖고 있던 편견을 홍석천은 과감하고 솔직하게 속내를 드러내 보임으로써 분위기를 긍정적으로 만들었다. 용산구청장을 꿈으로 꼽으며 그 이유로 이태원이라는 공간이 가진 편견을 끄집어낸 건 대단히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본래 범죄 같은 것으로 이미지가 좋지 않은 이태원이었지만 자신의 가게를 포함해 차츰 예쁜 가게들이 들어서면서 이미지가 바뀌었다는 것.

 

이것은 아마도 홍석천 자신이 이태원이라는 공간을 동일시한 부분이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자신이 가게를 이태원에서만 많이 하는 이유 역시 ‘좋은 표본’을 만들고 싶었던 것이라는 것. “손가락질 받는 우리도 뭔가 하면 잘 할 수 있다는 표본을 만들고 싶다. 긍정적인 이미지를 만들고 싶다”고 홍석천은 말하기도 했다.

 

홍석천은 커밍아웃 이후에 그저 편하게 술 한 번 마시기도 어려운 편견에 시달렸다고 스스럼없이 말했다. 자신을 제정신으로 보지 않는 시선들 때문이었다는 것. “열심히 살고 싶은데 의욕을 꺾는 분들이 있다”고 웃으며 말했지만 어찌 실제 상황이 그렇게 허허로운 일만이었을까.

 

<라디오스타>와 홍석천의 만남이 특히 주목된 이유는 그 대화의 공간이 너무나 편안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흔히 성 소수자라는 편견 때문에 던지기 힘든 질문들이 스스럼없이 던져졌고, 거기에 대해서 홍석천도 아무 거리낌 없이 대화를 나누고, 심지어 유머로 승화시키는 모습까지 보여줬으니 그 자체로 <라디오스타>는 성 소수자와 대중들 사이의 거리를 좁혀준 셈이 되었다.

 

다이어트 전도사로 유명한 숀리가 다이어트에 대한 편견을 깨준 것도 이번 특집의 또 하나의 의미였다. 다이어트를 하면 닭 가슴살만 먹어야 하는 것에 대해서도 숀리는 먹고 싶은 것을 참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라고 말했고, 흔히들 작심삼일을 하는 걸로 다이어트를 포기하는데, 그럴 것이 아니라 매번 작심삼일 하는 마음으로 해야 다이어트에 성공할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염경환은 김구라에 의해 자주 언급되면서 갖게 된 자신의 이미지를 특유의 넉살좋은 입담으로 풀어냈고, 오랜 만에 나온 개그맨 윤성호는 홍석천과의 대립구도를 살짝 넣으면서 <라디오스타>의 양념 역할을 톡톡히 해주었다. 무엇보다 어딘지 개그에서 멀어진 듯한 윤성호의 의외로 재밌는 모습들은 역시 그에 대한 우리의 편견을 깨주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홍석천을 발견한 것은 이번 <라디오스타> 특집의 최대 수확이면서 동시에 전체 예능의 성과이기도 했다. 성 소수자의 편견을 깬 것은 물론이고 홍석천만이 구사할 수 있는 유머를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남자와 단 둘이 있으면 오해를 받기 일쑤일 정도로 사실은 평범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그 작은 일도 누릴 수 없는 자신을 솔직히 드러내면서도 유쾌함을 잃지 않았던 것은 아마도 <라디오스타>만이 가진 개방적인 분위기 덕분이었을 게다.

 

<라디오스타>는 지금껏 수많은 숨은 예능인들을 발굴해낸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흔히 어떤 이미지로 고정되어 있어 그 면만을 보아온 대중들에게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그 이미지가 만드는 편견을 벗겨버리는 역할을 해왔던 것. 새해를 맞아 소소하게 보인 민머리 특집은 그래서 <라디오스타>가 올해에도 이 무대를 통해 꾸준히 이미지의 편견을 벗겨내고 새로운 면모들을 찾아낼 수많은 예비 예능인들을 기대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방송콘텐츠의 힘과 아티스트에 대한 주목

 

방송콘텐츠의 힘이 갈수록 커져간다. 그 사실을 가장 잘 알 수 있는 건 음원차트다. <무한도전>에서 방영된 ‘박명수의 어떤가요’에서 정형돈이 부른 ‘강북멋쟁이’가 1년2개월만에 소녀시대가 새로 발표한 신곡 ‘I got a boy'를 2위로 밀어내고 1위를 차지했고, 유재석이 부른 ‘메뚜기 월드’는 5위, 길성준이 부른 ‘엄마를 닮았네’는 10위에 각각 올랐다.

 

'무한도전'(사진출처:MBC)

이를 두고 <무한도전>이 음원시장을 교란하고 있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을 정도다. 그저 이벤트로 만들어진 음악이 1년여를 준비해서 내 논 음반을 무색하게 만든다는 것에 대한 기획사들의 허탈감이 묻어나는 얘기다. 물론 너무 오버할 필요는 없다. 그저 박명수의 꿈에 대한 도전을 통해 그 도전의 가치를 담으려는 기획의도가 있었을 뿐이다. 수익 전부를 좋은 일에 쓰겠다는 <무한도전>의 선의를 굳이 왜곡할 필요는 없다.

 

다만 이번 논란이 보여주고 있는 가요계의 달라진 환경과 그 환경에서 맹위를 떨치기 시작한 방송콘텐츠의 힘은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강북멋쟁이’의 음악적 가치에 대한 논란에 갑작스레 등장한 소녀시대가 내놓은 ‘I got a boy'에 대한 비교에는 현 아이돌 시장의 위기감이 사뭇 느껴진다. 달라진 대중들의 취향 속에서 아이돌 그룹은 점점 힘든 환경에 처하게 되었다.

 

가요를 보는 대중들의 시선은 이제 가수 개개인의 아티스틱한 면모를 찾게 되었다. 작년 가요계에서 주목받은 버스커버스커와 싸이는 바로 그 대중들의 달라진 취향을 잘 드러내주는 것이었다. 대중들은 한 덩어리로 뭉뚱그려져 보이는 아이돌 그룹에서 아티스트적인 면을 발견하기가 어려웠다. 아티스트적인 면모란 차별화된 음악성, 독특한 목소리 혹은 창법의 개성, 음악에 분위기를 부여하는 스타일 등이 모두 겹쳐져서 나오는 것이다. 이런 면모는 개개인을 자세히 바라볼 때 발견될 수 있다. 그룹은 그 자체로 이 발견을 저해하는 요소가 될 뿐이다.

 

물론 대중의 취향이라는 것이 언제고 변화할 수 있는 것이지만 바로 이런 음악가적인 면모에 대한 대중들의 갈증은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기획사들이 지금껏 가수들과 음악을 만들어왔다면, 이제는 발견하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작년 YG가 우연히 발견한 싸이 열풍은 이제 앞으로 기획사들의 변화를 만들어낼 공산이 크다. 심지어 아이돌에게서도 아티스트적인 면을 요구하는 현 상황에서 기획사가 기존처럼 가수들을 퍼포먼서에 머물게 하는 건 자칫 시대착오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K팝스타2>에서 YG의 양현석 대표는 쏟아져 나오는 아이돌의 피로감에 대해 얘기했다. 그리고 <K팝스타2>가 발굴한 악동뮤지션에 대해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 프로그램에서 양현석이 악동뮤지션을 캐스팅하면서 한 말은 의미심장하다. “악동뮤지션은 아무것도 가르칠 게 없다. 우리는 연습실과 밥만 제공하겠다. 자작곡을 들을 수 있는 기회만 달라.” 이 말은 만들기보다는 이미 본인들이 갖고 있는 개성과 끼와 음악성을 그저 극대화할 수 있게 옆에서 도와주겠다는 얘기다. 양현석은 악동뮤지션을 지금 대중들이 원하는 아티스트로서의 요건을 이미 갖추고 있다고 본 것이다.

 

<K팝스타2>가 발굴한 악동뮤지션이 오디션 무대에서 부른 곡들(‘다리 꼬지마’와 ‘매력 있어’)은 일찌감치 음원시장 1위를 차지함으로써 현 대중들의 달라진 취향을 고스란히 반영했다. 거기에는 자작곡의 매력으로 대중들을 움직이는 아티스트가 있었고 그것을 극대화해 보여주는 방송 콘텐츠의 힘이 있었다.

 

<무한도전>에서 박명수가 만든 일련의 곡들의 가치평가는 차치하더라도, 적어도 이 곡들이 지금의 달라진 대중들의 취향에 부합하는 면은 분명히 있다고 여겨진다. 어쨌든 그것이 박명수와 <무한도전> 멤버들이 함께 만든 곡이라는 점이고(개성은 분명히 있다) 그 곡이 <무한도전>이라는 엄청난 파워를 가진 방송 콘텐츠로 소개되었다는 점이다.

 

사실 박명수의 곡들과 소녀시대가 발표한 신곡의 퀄리티를 비교한다는 것은 무의미하다. 이번 ‘어떤 가요’에 나온 곡들은 이전 <무한도전>이 해왔던 일련의 가요제 곡들과 성격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전의 곡들은 전문가들이 붙어서 함께 만든 곡들이라 노래의 퀄리티가 분명 있었지만 이번 곡은 어쨌든 초보 작곡가의 곡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음원차트의 ‘강북멋쟁이’와 ‘I got a boy'의 순위를 질적인 가치 차이로 보는 건 넌센스다. 다만 이 차트의 순위가 말해주는 건 질적 차이가 아니라 작금의 달라지고 있는 대중들의 취향이다. 따라서 이 순위를 가지고 단순 비교해 굳이 기획사에서 위기감을 느낄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다만 이 차트가 말해주고 있는 대중들의 취향에는 귀 기울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지금 가요계는 만들던 시대에서 발견하는 시대로, 또 음원만큼 다양한 스토리 콘텐츠가 중요해진 시대로 변해가고 있다.

<내 딸 서영이>, 그 막장과 국민드라마 사이

 

<내 딸 서영이>가 시청률 40%를 넘겼다고 난리들이다. 하긴 그럴 만도 하다. 최근 들어 40% 시청률이라는 것은 거의 경이적인 수치가 되어버렸으니 말이다. 하지만 시청률 40%를 넘겼다고 섣불리 국민드라마 운운하던 시절은 지나갔다. 작년 <추적자>는 20% 안팎의 시청률에 머물렀지만 국민드라마로 칭송되었다. 이제 국민드라마라는 칭호가 시청률이 아니라 대중들의 공감대에 의해 결정되고 있다는 반증이다.

 

'내 딸 서영이'(사진출처:KBS)

그렇다면 <내 딸 서영이>는 과연 이런 의미에서의 국민드라마가 될 가능성이 있을까. 항간에는 막장드라마라는 비판이 있지만, 그래도 그 가능성만은 충분한 드라마라 여겨진다. 먼저 이서영(이보영)이라는 젊은 세대가 생각하는 가족에 대한 관점과 이삼재(천호진) 같은 아버지로 대변되는 나이든 세대가 생각하는 가족에 대한 관점이 갈등하고 부딪치면서 어떤 교집합을 찾아가는 면모가 대단히 참신하게 여겨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좋은 기획의도와 설정이 존재하는 것과 동시에, 이 드라마는 자칫 잘못하면 막장으로 흘러갈 자극적인 포인트들도 갖고 있다. 즉 서영이 아버지를 부정했던 그 과거의 비밀이 그렇고, 초반부터 이미 복선으로 제시되었던 강성재(이정신)의 출생의 비밀이 그렇다. 이 비밀들은 흔히 그러하듯이 자극으로만 치닫게 되면 막장이 될 수도 있지만, 잘만 균형점을 잡으면 드라마가 굴러가게 하는 적절한 동력이 될 수도 있다.

 

초반에는 이 균형이 잘 유지되었다. 이삼재의 입장에서 보여준 절절한 부성애가 시청자들의 마음을 울렸고, 동시에 아버지를 부정하고 난 후 가시방석에 살아가는 이서영의 마음도 시청자들을 아프게 했다. 또한 이서영을 위해 모든 걸 배려하는 강우재의 모습은 훈훈하면서도 극에 긴장감을 주기에 충분했고, 이상우(박해진) 역시 강미경(박정아)과 풋풋한 연인관계를 이어가면서 후에 드러날 이서영과의 얽힌 관계가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이 많은 비밀들이 풀어져 나가는 단계에 이르러 <내 딸 서영이>는 균형점을 잃고 그 흔한 막장드라마들이 쓰던 자극 코드들을 반복하고 있다. 강미경의 오빠가 서영이의 남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이상우가 강미경과 헤어지는 것도 모자라 최호정(최윤영)과 결혼까지 하는 것은 과도해 보이고, 강우재가 서영이의 비밀을 알아채고도 직접 소통하려 하지 않고 끊임없이 변죽만 때리는 행동도 그다지 개연성 있다 여겨지지 않는다.

 

게다가 강우재와 서영이의 비밀을 둘러싼 냉전이 해소되지도 않은 채, 갑자기 드러난 강성재의 출생의 비밀 역시 너무 전형적인 자극 코드로 풀어내짐으로써 <내 딸 서영이>는 마치 갑자기 막장드라마가 된 듯한 장면들을 연달아 보여주었다. 분노에 미친 듯이 고함을 지르고, 누군가의 뺨을 때리고, 어제까지 그토록 아끼던 자식을 하루아침에 원수 보듯 하는 모습이 그렇다. 물론 이 비밀들이 얼마나 엄청난 사건인지 이해되지 않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것을 풀어내는 방식이 조금만 달랐다면 <내 딸 서영이>는 더 큰 감동을 시청자들에게 전할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

 

우리가 흔히 통칭해서 부르는 막장드라마라는 수식은 참 애매한 표현이다. 그저 출생의 비밀이 들어간다고 해서 모두가 막장드라마가 되는 것도 아니고, 그게 없다고 해서 막장드라마가 되지 않는 것도 아니다. 중요한 건 공감대와 자극의 문제다. 공감대가 없이 자극으로 자꾸 흘러가게 되면 같은 소재를 사용한다고 해도 대중들은 막장으로 드라마를 인식하게 된다. 그만큼 그 자극 코드들이 너무 많이 사용되면서 대중들을 학습시켰기 때문이다.

 

시청률 40%가 넘었다고, 단지 그 수치적인 것에 호들갑을 떨 필요는 없다. 그것이 그대로 드라마의 공감대가 높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니까. 대신 <내 딸 서영이>가 그 시청률이라는 수치를 위해 더 멀리 가기 전에 빨리 본래의 좋은 의도, 즉 세대와 계층과 성별이 서로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그런 드라마로 돌아오길 바란다. 시청률 높은 막장드라마가 되느니 차라리 조금 시청률이 낮은 국민드라마가 되는 편이 낫지 않겠는가.

너무 많은 사건들, 김대희표 체념의 공감

 

작년 대선에서 5060세대들이 한 목소리를 내며 그 투표의 힘을 보여줬을 때, 2030세대들의 입에서 나온 말들은 “멘붕”이었다. 그토록 많은 SNS 상에서의 결집된 젊은 목소리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온 정반대의 결과에 큰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 때 SNS 상에서 떠도는 농담 하나가 있었다. 그것은 <개그콘서트>의 ‘어르신’ 코너에 등장하는 일명 ‘소고기 할아버지’ 김대희의 목소리를 딴 것이었다. “○○○가 당선되면 뭐하겠노... 기분 좋다고 소고기 사먹겠제...”

 

'개그콘서트'(사진출처:KBS)

사실 이 ‘소고기 할아버지’가 그토록 임팩트 있는 개그라고 처음부터 생각되었던 것은 아니다. 그저 비슷비슷한 상황이 반복되며 “소고기 사먹겠제-”를 연발하는 것으로 얼마나 그 개그가 지속될 수 있을까 생각되기도 했다. 하지만 웬걸? 김대희의 목소리는 점점 더 대중들을 빨아들였다. 이미 한 생을 거의 다 살아서 이제 큰 기쁨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듯한 소고기 할아버지의 체념의 목소리는 이상하게도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도대체 이 기이한 힘은 어디서 온 걸까.

 

대선 이후 자신이 투표한 후보가 당선되지 않은 나머지 48%의 멘붕에 이어, 마치 상징적인 사건처럼 ‘웃음 전도사’였던 황수관 박사가 별세했다. 그리고 2013년이 되기를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연초가 되자마자 하루가 멀다 하고 사건과 논란이 쏟아져 나왔다. 김태희와 비의 열애설은 비의 군복무가 불성실했던 것이 아니냐는 논란으로 이어졌고 그건 또 연예사병이란 존재가 반드시 필요한가에 대한 찬반논란으로도 번졌다.

 

오연서와 이장우의 열애설이 터지면서 엉뚱하게도 프로그램에 불똥이 튀면서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던 중, 또 놀라운 비보가 전해졌다. 고 최진실씨의 전 남편이었던 조성민씨가 사망했다는 소식이었다. 최진실, 최진영 그리고 조성민까지 이어진 이 불행의 가족사는 남아있는 아이들을 안타깝게 만들었다. 이제 겨우 일주일도 지나지 않은 2013년이지만 너무 많은 사건들이 쏟아진 느낌이다.

 

‘소고기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점점 마음 한 구석을 파고들게 된 것은 아마도 이런 시끄럽고 슬프고 아픈 현실의 소식들이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현재와 관련이 있을 게다. 인생을 달관한 자의 체념의 목소리. 마치 당장 죽을 것처럼 힘겨워하고 분노하고 슬퍼하지만 인생이 뭐 그리 대단한 것이겠냐는 듯한 그 ‘소고기 타령’은 의외로 우리를 허허롭게 웃게 만든다. 늘 긴장상태로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 혹은 생존하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고 있는 우리에게 던져지는 ‘소고기 할아버지’의 목소리는 우리의 그 긴장상태를 관조적으로 비웃음으로써 우리를 이완시켜준다.

 

사실 ‘어르신’이라는 <개그콘서트>의 코너는 작년 국민드라마로 추앙받았던 <추적자>의 박근형 캐릭터에서 따온 것이다. 그 특유의 사투리가 섞인 목소리로 “욕봐래이-”하고 말하던 박근형의 그 노회함을 김원효가 뒤틀어서 웃음으로 만들어냈던 것. 그 노회함을 비트는 이 개그에서 김대희가 만들어낸 ‘소고기 할아버지’의 달관은 의외의 수확이 되었다.

 

참 많은 일들이 우리 앞에서 벌어지고 있다. 아니 거의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 정신없는 현실들 속에서 때론 화가 나고 때론 슬퍼하고 또 때론 지나치게 행복해 했다면 가끔 저 ‘소고기 할아버지’의 ‘소고기 타령’을 떠올려 보시라. 자칫 염세적으로 되거나 체념을 넘어 비관에 이르면 곤란하겠지만, 잠시 동안의 ‘소고기 타령’ 생각은 마치 가끔 내쉬며 마음을 가라앉히는 한숨처럼 우리를 위안해줄 것이다. 너무나 복잡한 세상, 바로 그것이 소고기 할아버지에 점점 공감하게 되는 이유일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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