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여덟의 순간’, 청춘의 미숙함이 풋풋함으로 다가오는 이유

 

미숙한 청춘의 아픔과 풋풋함이 느껴진다. 아마도 이건 JTBC 월화드라마 <열여덟의 순간>이 포착한 이 드라마만의 매력일 게다. 아무런 잘못도 저지르지 않았지만 자꾸만 오해를 받는 최준우(옹성우). 이전 학교에서 폭행과 절도로 강제전학을 당했다는 사실은 전학 온 학교에서도 단 하루 만에 도둑질을 했다는 누명을 쓰게 만든다.

 

실제로는 반장으로 학교 선생님들은 물론이고 학생들에게까지 완벽한 신뢰를 얻고 있는 마휘영(신승호)의 짓이라는 사실을 최준우는 알고 있지만 모른 척 한다. 하지만 최준우는 마휘영이 앞에서는 그를 도와주는 척하면서 사실은 그를 도둑으로 몰아가고 있다는 걸 알고는 그 앞에 나선다. 그러자 마휘영이 드디어 그 숨겨진 얼굴을 드러낸다. “알면 어쩔건데? 이 쓰레기 새끼야.” 그러자 최준우도 그토록 드러내지 않던 속내를 꺼내놓는다. “쓰레기는 너 아냐?”

 

<열여덟의 순간>의 이 엔딩 장면은 최준우라는 무존재감의 청춘이 자기 존재를 드디어 드러내는 순간이다. 드라마는 마휘영이라는 인물을 그저 악역으로만 세우려 하지 않았다. 그가 겪는 스트레스 또한 보여주었다. 학원에서는 공부 천재 조상훈(김도완)과 비교되고, 집에서는 모든 것에서 잘 난 형과 비교된다. 완벽하고 싶은 마휘영은 그 스트레스 때문에 아토피로 쉴 새 없이 손을 긁어댄다.

 

그런 그가 보복하듯 학원 선생의 시계를 슬쩍 쓰레기봉투에 버린 것이고, 마침 아르바이트생으로 거길 왔다가 그걸 수거해간 최준우가 범인으로 몰렸던 것이다. 마휘영이 최준우에게 “쓰레기 새끼야”라고 말한 건 그래서 어쩌면 스스로에게 말한 것인지도 모른다. 완벽하고 싶고 그래서 그런 척하지만 사실은 가식으로 가득 채워져 있는 자신에게.

 

<열여덟의 순간> 첫 회는 이렇게 미숙해서 아픈 청춘들을 전면에 끄집어낸다. 최준우는 유수빈(김향기)이 안타까워했던 것처럼 ‘무존재감’으로 살아가는 청춘이다. 그 ‘무존재감’을 잘 표상하는 건 그의 이름표다. 그는 최준우라는 이름을 갖고 있지만 전학 와 마휘영의 부탁으로 얻게 된 중고 교복의 이태호라는 이름을 달고 다닌다.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으로 일하면서 붙은 박영배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 그러면서도 그는 자신의 이름이 최준우라고 애써 알리려 하지 않는다.

 

무엇이 그를 이렇게 만들었을까? 그런 그에게 유수빈이 다가와 이태호라는 이름표를 떼내 주며 말한다. “전학생. 너 귀신? 무슨 애가 색깔이 없어. 분하지 않아? 존재감 없이 사는 거.” 대신 종이를 붙여 최준우라는 이름을 써준 후 돌아서며 유수빈은 한 마디를 콕 집어낸다. “잘 가라 전학생. 잘 살아. 계속 그렇게 존재감 없이.”

 

한편 마휘영은 최준우와는 정반대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려 안간힘을 쓴다. 그래서 자신을 가장하기도 한다. 아마도 마휘영이 최준우를 “쓰레기”라고 부른 건 그런 가장된 모습을 알아차렸다는 사실 때문일 게다. 둘은 그래서 부딪치고 갈등하며 상처를 줄 것이지만 어쩌면 서로의 부족한 면들을 채워줄 수 있는 그런 존재들이 될 수도 있다.

 

무엇보다 무존재감으로 어딘가 아픔을 갖고 있는 듯한 최준우라는 인물이 주는 몰입감이 적지 않다. 그 모습은 어딘지 매일 입시와 경쟁 사회 속에서 버텨내고 있는 청춘들의 ‘침묵’을 보는 듯해서다. 소소한 청춘드라마처럼 보이지만, 섬세한 감정들이 교차하는 <열여덟의 순간>에서 젊은 날의 미숙했지만 풋풋했던 시절을 떠올려보게 되는 건 그 무존재감에 대한 안타까움과 공감이 함께 하기 때문일 게다.(사진:JTBC)

우울한 현실 위로하는 '호텔 델루나'의 독특한 판타지

 

과연 구찬성(여진구)은 장만월(이지은)을 구원할 것인가. tvN 토일드라마 <호텔 델루나>에서 장만월은 삶과 죽음을 벗어나 있는 존재다. 그는 고목이 되어버린 나무에 묶여버린 채, 천년 넘게 죽지 못하고 살아왔다. 물론 살아있다고 해도 그것을 삶이라 부르기 어렵다. 오래 전 그가 사랑했던 고청명(이도현)이 오기를 그는 기다린다. 한 자리에 붙박여 고목이 되어 잎 하나 내놓지 못하는 나무는 그래서 장만월 자신이다.

 

그 나무가 있는 곳에 세워진 호텔 델루나 역시 장만월의 모습 그대로다. 그 곳은 억울하게 죽은 원귀들이 찾는 곳이다. 장만월은 그들을 ‘힐링’시키고 그렇게 이승의 원을 지워준 후 저 세상으로 보낸다. 그 곳은 실제 구청에 등록되어 있는 곳이지만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곳이기도 하다. 삶과 죽음이 걸쳐져 있는 곳. 살아있지만 죽어있는 것처럼 보이고, 죽어 있지만 살아있는 건, 고목이나 호텔 델루나나 장만월이나 마찬가지다.

 

그 곳에 구찬성이 들어온다. 그는 아무런 능력이 없는 평범한 인간이다. 하지만 장만월이 그에게 일종의 저주를 내린다. 귀신을 볼 수 있게 만들어 놓은 것. 끔찍하게 죽은 귀신들의 형상은 가뜩이나 마음 약한 구찬성에게는 공포 그 자체다. 그래서 호텔 델루나나 그 곳을 그대로 닮은 장만월, 그리고 어두운 곳에 음산한 기운을 풍기고 있는 고목 또한 구찬성에게는 공포로 다가온다.

 

하지만 구찬성은 그 평범한 인간이 가진 착한 심성으로 그 공포를 연민으로 끌어안는다. 그것은 이 곳을 찾는 원귀들의 무섭게 일그러진 형상 그 너머에 담겨진 저마다의 사연들을 듣기 시작하면서다. 두 눈이 없는 원귀는 그래서 공포로 다가오지만 그가 살아생전에는 차츰 앞이 보이지 않던 시각 장애를 가진 사람이었다는 걸 알고는 연민의 존재로 바뀐다.

 

그리고 그 눈이 없는 원귀가 저 세상으로 돌아가기 전 자신을 따뜻하게 대해줬던 손길을 기억하고 그를 만나고 싶어 하자 구찬성은 자신의 손을 빌려 그 손길을 준 사람을 찾아준다. 하지만 장만월은 그 ‘따뜻한 손길’이라는 것이 사실은 원귀가 그렇게 믿고 싶은 기억일 뿐, 실상은 살려 달라 내민 손을 뿌리친 뺑소니범의 손길이라는 걸 알려준다. 그 사실을 깨달은 원귀가 그 뺑소니범을 해코지하려 할 때 구찬성은 자신을 던져 그걸 막아준다. 그런 복수가 결국 원귀를 먼지처럼 사라지게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서 흥미로운 건 뺑소니범을 뒤늦게 경찰에 넘기고 구찬성이 하는 이야기다. 원귀가 그 뺑소니범이 뿌리친 손길을 애써 ‘따뜻한 손길’로 기억하려 했던 건 바로 그 원귀 자신의 따뜻한 심성 때문이었다는 것. 현실에서 억울하게 죽음을 당한 존재는 그렇게 구원받는다. 그 억울함은 물론이고 그가 얼마나 따뜻한 사람이었는가를 구찬성 같은 누군가가 기억해준다는 것. 그것이 구원이다.

 

<호텔 델루나>는 죽은 공간에 피어나는 잎과 꽃을 이야기한다. 그 곳은 아무런 희망도 없고 원망과 아픔만을 떠안은 죽음들이 존재하는 공간이다. 이것은 아마도 우리네 현실을 에둘러 말하는 것일 게다. 판타지란 결국 현실의 결핍 위에 존재한다고 하지 않던가. 그 무엇도 바뀌지 않을 것 같은 죽음 같은 현실 속에서 판타지적 존재로 서있는 건 그래서 장만월이 아니라 구찬성이다. 구찬성은 그 죽음 같은 현실 위에 따뜻한 온기를 하나씩 던져 넣는다.

 

고목에 잎이 피어나고, 장만월의 사막 같은 마음에 조금씩 촉촉함이 생겨나며, 호텔 델루나가 어둡고 칙칙한 죽음의 공간에서 밝은 삶의 에너지가 더해지는 과정은 그래서 이 드라마가 시청자들에게 주는 기묘한 힐링 포인트다. 처음에는 공포의 존재로 귀신을 보며 화들짝 놀라기만 했던 구찬성이 이제 그 귀신들에게 다가가 “커피 한 잔 더 하시겠습니까?”하고 묻는 장면은 그래서 그 자체로 위로가 된다.

 

깨지고 망가진 형상을 가진 귀신들은 그래서 더 이상 공포의 존재가 아니다. 대신 현실에서 어떤 억울한 사연들을 갖고 찾아온 아픈 존재들이다. 아마도 우울한 현실에 무엇 하나 희망을 찾기 어려운 대중들이라면 그 아픈 존재들에 이입할 수 있을 게다. 살아도 살아있는 것 같지 않고, 그렇다고 죽은 것도 아닌 그 어정쩡한 공간에서 오히려 더 고통스러운 그 존재들을 이해의 눈으로 바라보고 보듬어주는 구찬성이 구원의 존재처럼 보이는 이유다.(사진:tvN)

고통과 안락사 사이, ‘의사요한’이 집어낸 새로운 지점

 

드디어 SBS 금토드라마 <의사요한>이 기존의 의학드라마와는 어떤 다른 지점을 갖고 있는가가 드러났다. 그것은 이 드라마가 소재로 가져온 ‘통증의학과’와 관련이 있다. 흔히 마취를 먼저 떠올리게 하는 통증의학과. 하지만 통증을 관리한다는 의미는 이들이 하는 일이 가진 논쟁적 부분들을 끄집어낸다. 그것은 안락사와 관련된 이슈이기도 하다.

 

<의사요한>의 시작은 강시영(이세영) 통증의학과 레지던트가 자신의 환자가 죽는 경험을 한 후 의사직을 포기하고 마다가스카르로 떠나려던 지점부터다. 강시영은 삼촌이 교도소장으로 있는 교도소에 아르바이트로 잠깐 갔다가 거기서 환자를 죽게 했다는 사실로 복역 중인 차요한(지성)을 만나면서 조금씩 마음을 되돌린다.

 

당장 눈앞에 자신이 손을 쓰지 않으면 죽을 수도 있는 환자를 보고 외면하지 못하는 강시영은 자신이 결국 ‘의사’라는 직업을 벗어버릴 수 없다는 걸 알게 된다. 차요한은 그런 강시영을 통해 파브리병이 의심되는 환자의 생명을 구해내려 한다. 하지만 강시영은 차요한이 과거 환자를 죽게 했던 마취과 의사라는 사실을 알아내고 갈등한다. 3년 전 말기 환자에게 치사량의 진통제를 투약해 죽게 했고 그래서 3년 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인 차요한의 정체를 알게 된 것.

 

하지만 자신을 살인자로 지칭하는 강시영에게 차요한은 반박한다. “환자를 살해한? 왜 그런 표현을 쓰지? 보통 안락사 했다고 하던데?” 강시영은 차요한에게 ‘환자를 포기하고, 버리고, 환자의 숨통을 멈춘 일’이 ‘살해’와 다를 게 없다고 했다. 그런 강시영 역시 비슷한 일을 겪었다는 걸 알아차린 차요한은 되묻는다. “혹시 그 쪽도 해봤냐? 환자를 포기하고, 버리고, 환자의 숨통을 멈췄냐? 살릴 수 있는 환자였냐? 치료할 수 있는 환자였냐? 대답해! 살릴 수 있는 환자였냐?” 결국 강시영은 “아니다. 살릴 수 없었다. 살릴 수가 없었다”며 눈물을 보였다.

 

이 장면은 향후 <의사요한>이 어떤 특별한 지점의 이야기를 다룰 것인가를 잘 드러낸다. 즉 살릴 수 없는 환자를 그 고통 속에 내버려둬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고통을 없애주는 것이 맞는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다. 흔히들 쉽게 안락사를 ‘살인’과 다를 바 없다고 치부하지만, 고통을 줄여주는 것을 업으로 삼는 통증의학과 전문의의 입장에서 보면 그건 통증을 없애주는 한 방법일 수 있다.

 

“고통을 멈추는 것 외엔 할 수 있는 게 없다”면 의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의사가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고통은 끝나지 않는다”고 말하는 차요한의 이야기는 그래서 이 드라마가 가진 논쟁적 부분들을 끄집어낸다. 과연 이런 생각을 가진 차요한은 복귀한 병원의 다른 의사들과 얼마나 큰 갈등을 불러일으킬 것인가.

 

지금까지 의학드라마라고 하면 주로 환자를 살리는 일에만 집중해왔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의사요한>은 정반대로 환자의 ‘존엄’을 위해 그 고통을 없애주는 의사의 또 다른 고민의 지점을 다룬다. 과연 우리는 이 차요한이라는 의사의 선택에서 안락사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공감할 수 있을까. 자못 궁금해지는 부분이다.(사진:SBS)

‘놀면 뭐하니?’의 실험 참신하지만, 복병은 과거와의 싸움

 

프리뷰라고는 하지만 이제 드디어 김태호 PD의 새 프로그램은 그 베일을 벗은 것이나 다름없다. MBC 예능 <놀면 뭐하니?>가 토요일 <무한도전>의 시간대에 들어온 것. 이 프리뷰는 이미 유튜브를 통해 선보인 바 있다. 그러니 사실상 진짜 시작은 다음 주라고 봐야한다.

 

김태호 PD의 신작이라는 점은 굉장한 부담감이 더해질 수밖에 없는 무게를 갖는다. 그래서 왠지 대작을 기대하게 하지만 김태호 PD는 거꾸로 ‘소소함’을 선택했다. 물론 그 ‘소소함’은 시작이다. 그 ‘소소함’이 점점 ‘큰 일’로 번져가는 과정을 우리는 이미 <무한도전>에서 목격한 바 있다.

 

어느 날 유재석을 만나 불쑥 카메라를 건네고 아무 거나 메모리를 채워오라는 그 미션 하나로 그 릴레이 카메라는 ‘여정’을 떠났다. 조세호에서 태항호, 유병재, 딘딘 그리고 유노윤호를 거쳐 한 달여 간을 돌던 카메라는 다시 김태호 PD의 손에 들어왔고, 거기 담겨진 영상들은 제작진의 편집을 거쳐 먼저 유튜브에 선을 보인 후, 프리뷰로 방영됐다.

 

이 과정에서 유재석과 김태호 PD가 고민했던 회의 내용이 눈에 띈다. 무언가 ‘대중성’을 따르기보다는 ‘실험성’과 ‘의미 있는 도전’에 더 방점을 두겠다는 것. 하지만 그 안에도 야심은 엿보인다. 소소함으로 시작했지만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들이 들어와 거대해지는 어떤 ‘사건’을 이들은 꿈꾸고 있었다.

 

아마도 첫 번째 간단한 실험으로 무언가 가능할 거라는 걸 보게 된 김태호 PD가 카메라 두 대를 돌림으로써 가져올 영상은 더 거대한 결과가 아닐까 싶다. 여기서 중요한 건 기존 <무한도전>을 찍던 방식과 완전히 달라진 릴레이 카메라의 촬영 방식이다. <무한도전>은 출연자 주변에 카메라들이 그들을 찍는 방식을 취한다. 따라서 그 모습은 진짜 리얼한 실제라기보다는 카메라 앞에 선 이들이 보여주는 ‘쇼’에 더 가깝다.

 

하지만 제작진이 사라지고 카메라를 통째로 건네서 그들 스스로 찍어온 영상은 다를 수밖에 없다. 거기에는 제작진의 개입이 없다는 점에서 이들의 리얼한 일상이 담긴다. 실제로 이 프리뷰에서 의외로 재밌게 다가온 건 그간 예능 프로그램에서 많이 보지 못했던 태항호와 친구들이 찍어온 영상이었다. 낮부터 대학로에서 만나 잡담을 하며 술을 마시는 그들의 모습에서 제모나 탈모 이야기 같은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는 토크는 흥미진진했다.

 

만일 이렇게 카메라 몇 대를 누군가에게 건네는 ‘소소한’ 일이 향후 점점 많은 이들의 일상을 담아내고 그것이 겹쳐지거나 혹은 거기 등장한 인물들이 다시 만나게 되는 일들이 생겨난다면 우리는 이 ‘릴레이 카메라’를 통해 좀더 저들의 세계 깊숙이 들어갈 수도 있을 게다. 그리고 이것은 유튜브 세대들이 익숙하게 봐온 영상들이기도 하다. 별 의도 없이 현장으로 뛰어 들어가 거기서 발견되는 어떤 일들을 포착하는 것만으로도 더 리얼한 재미가 만들어지는 그런 영상.

 

여기서 맞닥뜨리게 되는 건, 김태호 PD와 유재석이 과거 <무한도전> 시절의 캐릭터쇼가 아니라 지금 유튜브 세대들에게 소구할 수 있는 새로운 영상 실험을 시도하게 되면서 생겨나는 향수와 현재 사이의 부딪침이다. 다시 김태호 PD가 유재석과 함께 돌아온다고 했을 때 아마도 <무한도전>의 팬들은 그 연장선의 어떤 프로그램을 더 기대할 수도 있을 게다.

 

하지만 김태호 PD는 <무한도전> 시즌2로 돌아온 게 아니었다. 대신 <놀면 뭐하니?>라는 새로운 프로그램으로 온 것이고, <무한도전>과는 다른 어떤 실험을 하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실험은 어쩌면 <무한도전> 시절의 얼굴들과는 또 다른 새로운 얼굴들이 등장할 것으로 보인다.

 

즉 새로움을 원하는 시청자들은 <놀면 뭐하니?>의 실험이 흥미롭고 재미있을 수 있다. 하지만 <무한도전>에 대한 여전한 향수를 가진 시청자들이 그 연장선에서 <놀면 뭐하니?>를 보게 되면 어째서 다른 제목으로 이런 실험을 했을까 의아해질 수 있다. <무한도전> 시즌2의 한 실험으로 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생각할 수 있다는 것.

 

하지만 이건 프리뷰 다음에 이어질 본방을 보고나서 판단해도 늦지 않을 일이다. 만일 <놀면 뭐하니?>의 본방이 <무한도전>과는 다른 또 다른 확장된 세계를 가능하게 할 수 있는 실험이라면 그것은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이 될 수 있다. 어쨌든 김태호 PD와 유재석은 과거의 향수에 머물기 보다는 지금 현재를 선택한 것만은 분명하다.(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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