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타 스캔들’, 공감 가는 로맨틱 코미디 만든 연출의 비결

일타스캔들

드라마를 보다 보면 때론 주인공만이 아니라 주변 인물 혹은 지나치는 역할조차 연기 공백이 없어 보이는 작품을 만날 때가 있다. 조연들이 ‘미친 존재감’을 보이는 건 이제 어제 오늘 일이 아니지만, 거의 단역처럼 보이는 이들조차 진짜 현실에서 튀어나온 것처럼 착 달라붙는 연기를 보여줄 때 시청자들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드라마에 보다 깊숙이 빠져들게 된다. 디테일한 밑그림이 그 위에 전개되는 사건들에도 보다 리얼한 생동감을 주기 때문이다. 

 

tvN 토일드라마 <일타 스캔들>은 바로 그런 드라마다. 이 드라마의 중심은 역시 타이틀 롤인 전직 핸드볼 선수였다가 지금은 반찬가게를 운영하는 남행선(전도연)과 자칭 타칭 ‘1조원의 사나이’로 불리는 수학 일타강가 최치열(정경호)이다. 자문 관련한 논란과 잡음들이 생겨났지만, 정경호의 최치열이라는 일타강사 연기는 시청자들을 드라마에 빠져들게 만드는 공감 가는 몰입감을 선사했다. 

 

유명한 일타 강사들이 하는 강의 스타일을 철저히 분석한 듯한 대본도 그렇지만, 특유의 끼가 넘치는 강의 과정들을 디테일하게 보여준 점이 먼저 리얼한 공감을 만들었다. 게다가 정경호는 지나치게 넘치는 프라이드와 더불어 어딘가 빈 구석을 드러내는 인간적인 면을 통해, 본인은 진지하지만 보는 이들은 웃음을 자아내게 만드는 코미디 연기를 더해줬다. <일타 스캔들>이 강남 학원가를 둘러싼 사교육 문제 등을 풍자하는 다소 무거운 메시지를 갖고 있지만, 그 결은 로맨틱 코미디라는 걸 정경호는 첫 회 만에 분명히 보여줬다.

 

여기에 전도연의 연기가 더해졌으니 더할 나위가 없어졌다. 물론 <프라하의 연인>처럼 전도연 역사 로맨틱 코미디 연기에도 일가견이 있는 배우지만 그간 영화에 주력하면서 다소 무거운 연기들을 해왔던 게 사실이다. 그래서인지 반찬 가게를 하며 조카 남해이(노윤서)를 딸처럼 키운 남행선이라는 인물의 억척스럽지만 따뜻하고 그래서 조금씩 만들어지는 최치열과의 달달하고 코믹한 연기가 반갑기 그지없다. 

 

남행선의 딸 같은 조카 남해이 역할의 노윤서는 <우리들의 블루스>로 익숙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똑 부러지는 자기주도형 고등학생 역할을 선보인다. 이모지만 엄마 같은 남행선이 짊어지고 있는 버거운 짐을 그 누구보다 이해하고 그래서 자신은 짐이 되지 않으려는 그 마음이 따뜻하게 다가오는 인물이다. 이제 신인이지만 연달아 괜찮은 존재감을 드러내는 연기를 선보이고 있다. 

 

하지만 <일타 스캔들>이 웰메이드라고 여겨지는 대목은 주변 인물 하나하나 허투루 보이지 않는 대목에서다. 남행선의 절친 김영주 역할의 이봉련은 대사 하나하나를 찰떡같은 연기로 표현해 시청자들의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는 유쾌한 분위기를 선사한다. 최치열의 매니저이자 기획자인 지동희 역할의 신재하도 일에 있어서는 적당히 경직된 모습을 보여주지만 마치 형 동생 관계 같은 끈끈함을 잘 표현하고 있고, 저마다 개성이 톡톡 튀는 학부모를 연기하는 장영남, 김선영, 황보라의 찰진 연기도 빼놓을 수 없다. 

 

심지어 이 드라마에는 “엄마가 진짜 너무하셨다. 조금만 밀어주면 전교 1등 할 애를 어떻게 이렇게 방치를...” 같은 현실에서 튀어나온 듯한 대사를 치는 학원 실장이나, 이미 학원에서 선행을 해 자신의 수업은 잘 듣지 않는 학생들을 보며 그 현실의 답답함을 드러내는 전종렬(김다흰) 같은 담임선생님은 물론이고 그런 선생님의 현실을 개탄하면서도 “우리도 경각심이 필요하긴 해. 학원강사들만큼 연구 안 하잖아요, 솔직히.”라는 대사를 툭 던지는 다른 선생님까지 빈틈이 없다. 

 

사실 이처럼 주조연은 물론이고 그보다 작은 역할들까지 리얼한 연기가 나올 수 있는 건 배우들의 연기력도 연기력이지만 공감 가는 대사를 채워 넣는 대본과 더불어 그 상황에 대한 디테일을 파고들어 연기지도를 하는 연출자의 공이 절대적이다. 그 하나하나의 공들임이 똑같은 로맨틱 코미디라고 해도 작품의 질감을 달리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일타 스캔들>은 그래서 다소 가볍게 웃고 달달해하며 볼 수 있는 로맨틱 코미디면서, 그 이면에 깔린 풍자적 요소들까지 공감대로 끌고 갈 수 있는 드라마가 되고 있다. 웰메이드란 이런 데 쓰는 말이다. (사진:tvN)

‘어른 김장하’, 감탄하고 먹먹하다 부끄러워지는 인물 다큐

어른 김장하

“김장하 선생님께 고맙다고 인사를 갔더니 자기한테 고마워 할 필요는 없고 자기는 이 사회에 있는 것을 너에게 주었을 뿐이니 혹시 갚아야 할...” 문형배 헌법재판소 재판관은 김장하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놓으며 말문을 잇지 못했다. 거기에는 선생님에 대한 고마움의 차원을 넘어 진심에서 우러나는 존경심, 숭고함에서 느껴지는 먹먹함, 그 분처럼 살고 싶지만 그렇게 하기가 결코 쉽지 않았다는데서 오는 부끄러움 같은 것들이 뒤섞여 있었다. 

 

“갚아야 된다고 생각하면 이 사회에 갚아라. 제가 조금의 기여를 한 게 있다면 그 말씀을 잊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렵게 말문을 이은 문형배 재판관의 그 말 속에는 김장하 선생님이 자신의 길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가가 담겼다. 어떻게 살라고 말하기보다는 당신이 그렇게 살아오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주변 사람들에게 전해지는 영향력. 김장하 선생님이 후원한 무수한 장학생들 중 한 명인 문형배 재판관이 보인 눈물에는 선생님에 대한 진심어린 존경이 담겨 있었다. 

 

경남 MBC가 제작한 인물 다큐 <어른 김장하>가 잔잔하지만 깊은 여운을 남기며 세간에 화제가 되고 있다. 유튜브에 공개된 이 2부작 인물 다큐를 보다보면 가슴 한 구석이 뜨거워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처음에는 저런 분이 실제로 있는가 싶다가, 그 행적 하나하나에 묻어난 선생님의 인간애에 먹먹해지고, ‘어른’이라는 단어가 갈수록 세속화되고 퇴색되는 시대 앞에서 한없이 부끄러워진다. 

 

그것은 특히 돈을 벌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지만 돈을 제대로 쓸 줄 모르는 사회에서 선생님이 해온 일들이 마치 기적처럼 느껴지는 면이 있어서다. 20세 약관의 나이에 남성당 한약방을 열어 ‘박리다매’로 큰돈을 벌었지만, 그 돈을 대부분 가난해 학업이 어려운 학생들을 위해 쓰고, 학교 재단까지 만들었지만 100억대가 훌쩍 넘는 고등학교를 국가에 흔쾌히 헌납했다. 

 

이것이 뉴스를 통해 김장하 선생님에 대해 알려진 내용이지만, 다큐멘터리는 그 선생님의 행적을 김주완 기자가 추적해가면서 그 이외에도 곳곳에 보이지 않는 선생님의 손길이 닿아 있다는 걸 찾아나간다. 선생님은 마치 지역 사회에서 어려운 이들에게 늘 ‘준비되어 있는’ 1순위 기부자였다. 공간이 없어 연극을 계속 하기 어려운 이들에게는 공간을 얻기 위한 돈을 내줬고, 가정폭력 피해여성과 자녀들을 위해서는 그들의 상처를 회복시키기 위한 집을 세우는데 기부를 했다. 

 

여성인권에 대해 말도 못 꺼낼 분위기였던 2000년대 초반 호주제 폐지 활동에도 참여했고, ‘새로운 차별을 없애자’는 취지로 형평운동기념사업회에 오래도록 함께 했다. 또 지역신문이 살아야 지역 토호들이 어려움을 안다는 생각에 진주신문을 도왔는데, 매달 적자 폭이 1천만 원씩 나는 걸 지원하기도 했다. 형평운동가 강상호 묘소를 찾아 다시금 재단장하는 데도,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일제강점기 인명록’을 만드는데 있어서도 선생님의 손길이 묻어났다. 

 

이처럼 해온 일들이 많지만 상대적으로 언론에 의해 알려지지 않은 건 선생님이 이런 일이 알려지는 걸 극도로 꺼리셨기 때문이란다. 이 다큐멘터리의 인터뷰어로 나선 김주완 기자는 “인터뷰를 안하려는 분을 인터뷰하는” 고충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김장하 선생님 인터뷰가 어려운 게 뭐냐면 답변이 결과적으로 본인의 자랑일 수밖에 없는 그런 질문을 제가 던지잖아요. 그러면 그 때부터 답변을 안하고 침묵을 지켜버리거든요.”

 

갖가지 지역 행사에 참여하면서도 선생님의 이런 드러내지 않으려는 모습은 당시 찍힌 사진들을 통해서도 확인됐다. 늘 중심에 자리를 마련해도 항상 ‘끄트머리’에 앉아 있는 모습이 그것이었다. 심지어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직접 한약방을 기습적으로 찾을 정도로 외부에 잘 나서지 않는 선생님은, 노 대통령이 당선된 후 청와대에서 식사라도 같이 하자는 제안을 단칼에 사양하셨다고 한다. “나라 일 얼마나 바쁘고 많냐? 나 같은 사람 안 만나도 된다.”고 했다는 것. 

 

그 많은 돈을 벌었지만 자신을 위해서는 소박하기 이를 데 없는 삶을 살았다. 자가용 승용차 없이 늘 대중교통으로 다녔고, 서민들이 찾는 식당에서 소박한 음식들을 즐겼다. 하다못해 수십 년 째 똑같은 소파에 방석을 쓰고 있었고, 손님 올 때마다 차를 내려주는 다기조차 그대로였다. 한 사람이 찻잔 옛날 거를 안 바꾸고 계속 쓰는 이유가 있냐고 묻자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한다. “안 깨지데?”

 

다큐멘터리가 특히 큰 울림을 주는 건 자본주의가 고도화되어 가고 있는 현 사회에 돈이란 어떤 것이고 어떻게 쓰여야 비로소 그 쓰임새가 생기는 것인가를 선생님이 보여주고 있어서다. “돈이라는 게 똥하고 똑같아서 모아놓으면 악취가 진동을 하는데 밭에 골고루 뿌려 놓으면 좋은 거름이 된다.” 그 말씀처럼 선생님은 돈으로 호의호식을 하는 대신, 사람농사를 지으셨다. 그렇게 선한 영향력은 대풍을 이룬 사람농사로 사회를 조금은 살만하게 만들고 있었다. 진정한 ‘어른’의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하게 만드는 다큐멘터리를 만났다. (사진:MBC경남)

유연석이 그나마 문가영의 처지가 눈에 밟히는 이유(‘사랑의 이해’)

사랑의 이해

“이런 거다. 괜한 오기를 부리게 하고. 흔들렸으면서도 끝내 솔직하지 못했던 이유. 그 남자의 망설임을 나조차 이해해버렸으니까. 감정에 솔직할 수 있는 권리가 나한테 없다는 거. 발버둥 쳐봤자 내가 가진 처지라는 게 고작 이 정도라는 거.” 안수영(문가영)이 하상수(유연석)에 대해 갖는 감정은 복잡하다. 그에게 흔들리긴 하지만 자신의 초라한 처지는 그의 작은 망설임조차 스스로 이해하게 만든다. JTBC 수목드라마 <사랑의 이해>가 다루는 사랑이야기는 그 관계 에 끼어드는 서열과 차별의 첨예함으로 인해 늘 어떤 넘지 못할 선을 마주한다. 

 

안수영이 말하는 처지란, VIP 접대 술자리에 상품 소개가 아닌 일로 앉아 있어야 하는 그런 처지다. 육시경(정재성) 지점장은 그 자리에서는 상품 소개가 아니라 VIP를 즐겁게 해주는 게 그의 역할이라고 했지만 그건 다른 말로 하면 술을 따라주고 웃어주는 그런 일을 하라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더 이상 그런 불편한 자리에 나가고 싶지 않다고 하자 육시경은 대놓고 안수영을 괴롭힌다. 문서고 정리를 하루 만에 혼자 끝내라고 하고, 누구도 그를 도와주지 말라고 으름장을 놓는다. 혼자 하기에는 버거운 양이라며 박미경(금새록) 대리가 돕겠다고 하자 육시경은 “하찮은 일에 신경 쓰지 말라”고 선을 긋는다. ‘하찮은 일’이라는 말은 안수영의 마음에 금을 긋는다. 

 

혼자 문서고 정리를 하는 안수영이 하상수는 눈에 밟힌다. 같이 하자고 하자 안수영의 입에서는 날선 말들이 툭 튀어나온다. “지점장님 얘기 못 들었어요? 이런 하찮은 일에 신경 쓰지 말고 본인 업무에 충실하라고. 기계적인 일이잖아요. 괜찮아요. 정말.” 안수영이 눈에 밟혀 다가오려는 하상수지만, 그들 사이에는 육시경 지점장이 그어 놓은 선이 있다. 

 

<사랑의 이해>는 사회생활에서도 서열로 나뉘는 이해관계 속에서 과연 사랑은 어떤 양상을 띨 것인가를 보여주는 드라마다. 고부갈등, 집안의 반대처럼, 멜로드라마가 남녀의 사랑을 다루기 마련이고, 그 사랑을 가로막는 장애요소가 그 시대의 풍경을 보여주는 것이라면 이 드라마는 이제 이해관계가 사랑 같은 관계에 장애가 되는 현 시대를 보여준다. 

 

흥미로운 건 이러한 보이지 않는 서열과 차별이 존재하고 거기서 어떤 선을 느끼는 건 안수영만의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안수영이 하기 싫어도 어쩔 수 없이 VIP 술 접대를 하러 간 것처럼, 하상수 역시 육시경 지점장과 함께 VIP 골프 접대를 하러 간다. 그런데 그 VIP가 알고 보니 같은 은행 동료이자 학교 후배인 박미경 대리의 아버지다. 라운딩이 끝났을 때쯤 박미경은 하상수와 함께 동창 결혼식을 가려고 그를 픽업하러 오고 거기서 만난 아버지에게 냉랭하게 대한다. 아버지가 의도적으로 딸이 마음에 두고 있는 것 같은 하상수를 접대를 빙자해 만나본 거라는 게 불편해서다.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박미경 대리는 부유한 집 자식이라는 사실 때문에 받는 편견이 싫다. 그는 뭐든 자신이 노력해 이뤄왔고 학교에서도 전액 장학금을 받아왔지만, 결혼식장에서 만난 동창은 그것이 착한 척하는 가식이라며 쏘아붙인다. “너 장학금 받고 다닌 거 되게 자랑스럽게 여기는데 다 가져놓고 그거까지 뺏은 거야, 너. 너한테 밀려서 전액 장학금 놓친 애가 알바 세 탕 뛴 거는 알아? 네가 만약에 걔처럼 알바 하면서 공부했으면 그래도 장학금 탔을까? 네가 공부에만 집중할 수 있었던 것도 결국 알바 따위 할 필요 없었던 너희 집안 재력 덕분이라고. 그 옷, 그 가방 은행 다니는 월급쟁이가 살 수 있는 거 아니잖아.”

 

그 날 술에 취한 박미경은 하상수에게 자신의 답답한 마음을 털어 놓는다. 그는 자신이 제일 좋아했던 게 ‘달리기’라며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달리기는 명확하거든. 그것마저 부모덕이라고 말하는 애들은 없으니까. 난 그냥 인정받고 싶어서... 우리 엄마, 아빠 딸로 안 태어났어도 지금 이대로 잘 살고 있을 거다. 영포점 PB팀 박미경으로. 나도 자기들처럼 얼마나 노력하는데... 근데 지금 중요한 건 선배가 내 말을 배부른 소리처럼 들을까 봐.”

 

하상수를 두고 안수영이 스스로 느끼는 처지와 박미경이 느끼는 처지는 정반대지만 그것이 무엇이든 이들의 남녀 관계 사이에 어떤 장벽이나 장애처럼 선을 긋는 건 분명하다. 하상수는 안수영과 박미경 사이에 서 있고, 그들 사이에는 다른 처지로 선이 그어져 있다. 그런데 궁금한 건 KCU은행 영포점에서 은행경비원 정종현(정가람)처럼 안수영과 같은 처지에 있는 이를 제외하고 모두가 안수영을 차별의 시선으로 바라보는데 유독 하상수만 그를 눈에 밟혀하는가 하는 점이다. 

 

그건 아마도 그의 어머니 때문이 아닐까. 에스테틱 원장으로 일하는 그의 어머니 한정임(서정연)은 늘 VIP들을 상대해야 하는 일을 한다. 고객인 강남 사모들의 여드름 짜는 일도 마다치 않고 해온 인물이다. 남편이 사망한 후 아들을 잘 키워내기 위해 어떻게든 돈을 벌어야 했기 때문이다. 하상수는 어쩌면 안수영의 모습에서 어머니가 겹쳐 보이는 게 아닐까. 그 같은 처지가 보이는 게 아닐까. 

 

<사랑의 이해>는 이처럼 우리 사회에 스펙과 빈부, 집안 등으로 보이지 않게 그어져 있는 무수한 선들을 살핀다. 사랑이야기는 이 드라마의 메인이지만, 그건 어쩌면 이러한 선들을 보다 극명하게 보여주고 과연 그 선들을 넘는 진정한 관계는 가능한가를 묻기 위한 장치처럼 보이기도 한다. 물론 그 역시 안수영이 육시경 지점장에게 접대를 나가지 않겠다고 한 걸 “그의 선택”이라고 말할 정도로 그의 처지를 아직은 잘 이해하지 못한다. 그건 안수영의 입장에서는 능동적인 ‘선택’이 아니라 당연하게 거부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과연 이러한 몰이해와 오해를 넘어 하상수와 안수영은 이해에 도달할 수 있을까. 그 보이지 않는 선을 넘어 처지를 뛰어넘는 사랑을 할 수 있을까. (사진:JTBC)

‘오늘은 좀 매울 지도 몰라’가 먹방, 쿡방 시대에 던지는 질문

오늘은 좀 매울 지도 몰라

아마도 요리를 소재로 하는 드라마나 프로그램에 익숙한 분들이라면 이 드라마는 낯설 수 있다. 탕수육 하나를 만드는데 이틀이 넘게 걸린다면 그 누가 그 과정을 보려 할 것이며, 그러한 레시피를 따라하려 할 것인가. 하지만 이 드라마는 그 과정을 촘촘히 따라가며 보여주고, 시청자들은 그 과정을 보는 내내 먹먹해진다. 도대체 이러한 마법의 레시피는 어떻게 가능해진걸까. 

 

왓챠 오리지널 시리즈 <오늘은 좀 매울 지도 몰라>가 그 드라마다. 6회에 등장한 ‘띄엄띄엄 탕수육’을 보면 이 드라마가 어떻게 이 지리한 과정조차 먹먹한 감동으로 만드는가를 확인할 수 있다. 말기암 환자인 아내 다정(김서형)을 위해 매일 건강식을 차려 내주는 남편 창욱(한석규). 그런데 갈수록 입맛이 없어지는 아내가 어느 날 갑자기 탕수육이 먹고 싶다고 한다. 그것도 파인애플이 소스로 들어간 탕수육을. 

 

창욱은 무엇이든 아내가 먹고 싶은 요리가 있다는 사실에 반가워한다. 그래서 기왕 하는 거 제대로 하겠다며 탕수육에 남다른 욕심(?)을 낸다. 일부러 황학동 시장까지 찾아가서 중식용 웍을 구입하고 중식도도 마련한다. 마트 직원(양경원)이 마침 자신이 탕수육 장인을 찾아가 1년 동안 설거지만 하면서 받은 비법을 알려준다. 탕수육은 겉바속촉의 튀김옷이 전부라며, 다리부터 리듬을 타서 웍 돌리는 법도 가르쳐준다. 

 

그저 한 끼 탕수육을 뚝딱 먹을 줄 알았던 아내는 남편의 부산이 괜히 번거롭게 한 것 같아 미안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행복해한다. 그건 그냥 탕수육이 아니라 남편의 정성과 마음이 담기기 때문이다. 옥수수전분, 감자전분, 찹쌀가루, 통밀가루를 섞어 따뜻한 물로 익반죽을 해 걸쭉하게 농도를 만들고 현미유까지 한 국자 넣고 이제 거의 다 한 줄 알았던 창욱은 그 반죽을 24시간 이상 숙성해야 ‘겉바속촉’이 된다는 레시피에 허탈해한다. 

 

겨우 하루가 더 지나 이제 본격적으로 탕수육을 만들기 시작하지만, 안타깝게도 마침 아내가 고통을 호소하며 쓰러져 응급실로 이송된다. 그 정신없는 과정 속에서 탕수육은 실패로 돌아간다. 다음날 병원에서 아내를 간호하는 아들을 위해서 탕수육을 만들려 하지만, 반죽의 숙성이 지나쳐 엉망이 되어버리는 것. 그러면서 창욱은 이런 생각을 한다. “욕심을 버리고 하루만 일찍 만들었다면 아내가 탕수육 맛을 보지 않았을까?”

 

사실 이건 실패담이다. 요리를 다루는 콘텐츠들은 그 많은 쿡방이 증거하고 있듯이 실패담보다는 성공담을 그리기 마련이다. 게다가 요즘 프로그램에서 보여주는 요리 레피시들은 대부분 ‘간편함’과 ‘쉬움’을 강조한다. 심지어 몇 분 만에 뚝딱 만들어 그만한 맛을 낼 수 있는 레시피가 있다는 걸 은연 중에 강조한다. 그래야 시청자들도 따라하고픈 욕구가 만들어지기 때문일 게다. 

 

먹방 같은 프로그램들은 요리가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어지는가 보다는 얼마나 많이, 빨리 또는 맛있게 먹을 수 있는가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러한 요리를 다루는 콘텐츠들을 통해 음식은 간편하고 쉬우면서도 빠르고 많이 만들어내 먹을 수 있는 어떤 것으로 치부되는 경향이 생겼다. 그런데 과연 그러한가. 우리는 음식을 너무 가볍게만 보고 있는 건 아닌가. 

 

물론 음식과 요리에 지나치게 신성성을 부여해 그 노동을 ‘엄마들’에게만 부여하는 식의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오늘은 좀 매울 지도 몰라>가 보여주는 것도 엄마가 아닌 남편이자 아빠의 요리니까. 누가 하느냐의 성역할 구분을 떠나서 이 드라마는 그 많은 음식을 다루는 콘텐츠들의 홍수 속에서 우리가 슬쩍 잊고 있었던 음식 나아가 삶에 대한 예의를 묻고 있다. 

 

사실 창욱이 이토록 음식에 정성을 다하는 건 아내가 말기암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이전에는 아마도 무엇이든 대충 사서 먹곤 했을지 모르지만, 말기암 투병을 하는 아내 앞에서 창욱은 음식과 요리의 진짜 의미를 생각하게 된다. 거기 들어가는 정성들이 단지 말초적인 맛이 아니라 몸을 위한 것이고, 그래서 그 음식 하나하나가 몸을 살리기도 하는 소중한 가치를 갖는다는 걸 그는 알게 된다. 또 음식에 더해지는 정성은 맛이 아니라 그 음식을 먹을 사람에 대한 마음이 더해지는 것이고, 그래서 그건 나아가 그 누군가의 삶 하나에 대한 예의를 드러내는 일이기도 하다. <오늘은 좀 매울 지도 몰라>가 주는 잔잔하지만 먹먹한 감동은 바로 여기서 비롯된다. (사진:왓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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