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좀 매울 지도 몰라’가 먹방, 쿡방 시대에 던지는 질문

오늘은 좀 매울 지도 몰라

아마도 요리를 소재로 하는 드라마나 프로그램에 익숙한 분들이라면 이 드라마는 낯설 수 있다. 탕수육 하나를 만드는데 이틀이 넘게 걸린다면 그 누가 그 과정을 보려 할 것이며, 그러한 레시피를 따라하려 할 것인가. 하지만 이 드라마는 그 과정을 촘촘히 따라가며 보여주고, 시청자들은 그 과정을 보는 내내 먹먹해진다. 도대체 이러한 마법의 레시피는 어떻게 가능해진걸까. 

 

왓챠 오리지널 시리즈 <오늘은 좀 매울 지도 몰라>가 그 드라마다. 6회에 등장한 ‘띄엄띄엄 탕수육’을 보면 이 드라마가 어떻게 이 지리한 과정조차 먹먹한 감동으로 만드는가를 확인할 수 있다. 말기암 환자인 아내 다정(김서형)을 위해 매일 건강식을 차려 내주는 남편 창욱(한석규). 그런데 갈수록 입맛이 없어지는 아내가 어느 날 갑자기 탕수육이 먹고 싶다고 한다. 그것도 파인애플이 소스로 들어간 탕수육을. 

 

창욱은 무엇이든 아내가 먹고 싶은 요리가 있다는 사실에 반가워한다. 그래서 기왕 하는 거 제대로 하겠다며 탕수육에 남다른 욕심(?)을 낸다. 일부러 황학동 시장까지 찾아가서 중식용 웍을 구입하고 중식도도 마련한다. 마트 직원(양경원)이 마침 자신이 탕수육 장인을 찾아가 1년 동안 설거지만 하면서 받은 비법을 알려준다. 탕수육은 겉바속촉의 튀김옷이 전부라며, 다리부터 리듬을 타서 웍 돌리는 법도 가르쳐준다. 

 

그저 한 끼 탕수육을 뚝딱 먹을 줄 알았던 아내는 남편의 부산이 괜히 번거롭게 한 것 같아 미안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행복해한다. 그건 그냥 탕수육이 아니라 남편의 정성과 마음이 담기기 때문이다. 옥수수전분, 감자전분, 찹쌀가루, 통밀가루를 섞어 따뜻한 물로 익반죽을 해 걸쭉하게 농도를 만들고 현미유까지 한 국자 넣고 이제 거의 다 한 줄 알았던 창욱은 그 반죽을 24시간 이상 숙성해야 ‘겉바속촉’이 된다는 레시피에 허탈해한다. 

 

겨우 하루가 더 지나 이제 본격적으로 탕수육을 만들기 시작하지만, 안타깝게도 마침 아내가 고통을 호소하며 쓰러져 응급실로 이송된다. 그 정신없는 과정 속에서 탕수육은 실패로 돌아간다. 다음날 병원에서 아내를 간호하는 아들을 위해서 탕수육을 만들려 하지만, 반죽의 숙성이 지나쳐 엉망이 되어버리는 것. 그러면서 창욱은 이런 생각을 한다. “욕심을 버리고 하루만 일찍 만들었다면 아내가 탕수육 맛을 보지 않았을까?”

 

사실 이건 실패담이다. 요리를 다루는 콘텐츠들은 그 많은 쿡방이 증거하고 있듯이 실패담보다는 성공담을 그리기 마련이다. 게다가 요즘 프로그램에서 보여주는 요리 레피시들은 대부분 ‘간편함’과 ‘쉬움’을 강조한다. 심지어 몇 분 만에 뚝딱 만들어 그만한 맛을 낼 수 있는 레시피가 있다는 걸 은연 중에 강조한다. 그래야 시청자들도 따라하고픈 욕구가 만들어지기 때문일 게다. 

 

먹방 같은 프로그램들은 요리가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어지는가 보다는 얼마나 많이, 빨리 또는 맛있게 먹을 수 있는가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러한 요리를 다루는 콘텐츠들을 통해 음식은 간편하고 쉬우면서도 빠르고 많이 만들어내 먹을 수 있는 어떤 것으로 치부되는 경향이 생겼다. 그런데 과연 그러한가. 우리는 음식을 너무 가볍게만 보고 있는 건 아닌가. 

 

물론 음식과 요리에 지나치게 신성성을 부여해 그 노동을 ‘엄마들’에게만 부여하는 식의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오늘은 좀 매울 지도 몰라>가 보여주는 것도 엄마가 아닌 남편이자 아빠의 요리니까. 누가 하느냐의 성역할 구분을 떠나서 이 드라마는 그 많은 음식을 다루는 콘텐츠들의 홍수 속에서 우리가 슬쩍 잊고 있었던 음식 나아가 삶에 대한 예의를 묻고 있다. 

 

사실 창욱이 이토록 음식에 정성을 다하는 건 아내가 말기암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이전에는 아마도 무엇이든 대충 사서 먹곤 했을지 모르지만, 말기암 투병을 하는 아내 앞에서 창욱은 음식과 요리의 진짜 의미를 생각하게 된다. 거기 들어가는 정성들이 단지 말초적인 맛이 아니라 몸을 위한 것이고, 그래서 그 음식 하나하나가 몸을 살리기도 하는 소중한 가치를 갖는다는 걸 그는 알게 된다. 또 음식에 더해지는 정성은 맛이 아니라 그 음식을 먹을 사람에 대한 마음이 더해지는 것이고, 그래서 그건 나아가 그 누군가의 삶 하나에 대한 예의를 드러내는 일이기도 하다. <오늘은 좀 매울 지도 몰라>가 주는 잔잔하지만 먹먹한 감동은 바로 여기서 비롯된다. (사진:왓챠)

왕자보다 망나니, 이토록 다크한 김은숙과 송혜교라니

더 글로리

“난 왕자님은 필요 없어요. 난 왕자가 아니라 나랑 같이 칼춤 춰줄 망나니가 필요하거든요.” 문동은(송혜교)이 주여정(이도현)에게 선을 긋는 이 대사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더 글로리>의 색깔을 분명히 드러낸다. 그리고 이건 그간 판타지와 멜로를 오가는 작품을 줄곧 써왔던 김은숙 작가와 멜로 퀸으로 자리매김해온 송혜교가 이 작품을 통해 건네는 일종의 선언 같은 것이다. 달달한 멜로를 기대했다면 그건 섣부른 기대일 뿐이라고. 이 작품은 피가 철철 흐르고 살점이 문드러져 그 상처의 고통이 화면 바깥으로 전이되어 올 정도의 살풍경한 폭력과 복수가 그려질 것이라고. 

 

박연진(신예은)과 그 패거리들로부터 심각할 정도의 학교폭력을 당했지만, 그 누구도 고교시절의 문동은(정지소)을 그 지옥에서 구해주지 않았다. 모두가 방관했고, 심지어 선생님은 친구들끼리 그럴 수도 있는 일을 왜 키우냐며 피해자인 문동은의 뺨을 때렸다. 엄마조차 돈 앞에서 딸이 당한 폭력을 방치했다. 온 몸이 박연진 패거리들 때문에 맞고 찢어지고 심지어 지져져 흉터 아닌 곳을 찾기가 어려울 정도였지만 그 누구도 금수저 부모를 둔 박연진과 그 패거리들이 문동은에게 저지르는 폭력을 막아주지 않았다. 

 

그러니 차라리 죽는 게 나을 것 같았던 문동은은 한겨울 차가운 강물 앞에도 서보고, 한 발만 나서면 이 모든 고통이 사라질 수 있을 것 같은 건물 옥상에도 서보지만 그 순간 ‘꿈’을 가져보려 한다. 그 꿈은 바로 ‘박연진’이다. 어차피 죽을 거면, 또 사는 게 지옥이라면 혼자 죽지 않고 혼자만 지옥에 사는 게 아니라 저들과 함께 죽어 함께 지옥불에 떨어지겠다는 꿈. 문동은은 이제 복수의 일념 하나로 버텨내며 검정고시를 거쳐 대학을 가고 과외 선생을 하며 돈을 벌면서 저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를 계속 주시한다. 그러면서 아주 오래도록 철저한 복수를 계획하고 하나씩 실천해 나간다. 

 

<더 글로리>는 전형적인 복수극이지만, 그렇다고 속 시원한 사이다 판타지만을 보여주는 그런 드라마는 아니다. 대신 가해자와 피해자 그리고 방관자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를 문동은 이라는 인물과 그의 복수의 시선을 통해 하나하나 촘촘히 그려나간다. 한 사람의 삶 전체를 망가뜨렸던 가해자들이고, 또 현재도 여전히 그런 삶을 살아가고 있지만 저들은 부자라는 이유로 명품에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호화로운 삶 속에서 살아간다. 꿈은 없는 자들이 꾸는 거라며 자신의 꿈은 그저 ‘현모양처’라고 말했던 박연진은 잘 나가는 건설사 대표 하도영(정성일)과 가정을 꾸려 어린 딸과 단란하게 살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문동은이 그들의 삶 속으로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반짝반짝 빛나는 것처럼 보이던 저들의 삶의 추악한 실체들이 까발려지기 시작한다. 직접적으로 가해자를 처단하는 그런 방식이 아니라 그들의 욕망이 서로를 파탄으로 만들고 또 그 과정에서 실체가 공개됨으로써 ‘사회적 죽음’을 만들어내려는 문동은의 복수극은 어딘가 다르다. 그건 이 사회가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갑과 을로 나뉘어 돌아가는 두 세계의 폭력을 드러내는 일이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는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을 때는 가진 자가 못 가진 자 위에 군림해 갖은 폭력을 일삼지만, 못 가진 자가 복수를 계획할 때는 상황이 정반대가 된다. 가진 게 없어 잃을 것도 없는 문동은이 모든 걸 다 가지고 있는 박연진을 압도할 수 있는 이유다. 게다가 문동은은 살려고 복수하는 것이 아니다. 같이 죽고 싶은 것이다. “우리 천천히 말라죽어 보자. 연진아. 나 지금 너무 신나.”

 

<더 글로리>라는 복수극은 처절하고 자극적이지만 김은숙 작가의 은유적 설정들이나 대사들은 그 복수극에 울림을 만들어낸다. 예를 들어 건축가가 꿈이었던 문동은이 복수를 시작하면서 이를 바둑에 비유하는 장면이 그렇다. 바둑은 “자기 집을 잘 지으면서 남의 집을 부수면서 서서히 조여 들어와야 한다”고 주여정이 설명하자 마치 그것이 자신의 복수방식이라는 듯 “마음에 든다”고 문동은이 말하는 것. 

 

게다가 압권은 그 대사를 거의 웃지 않는 얼굴로 무심하면서도 섬뜩하고 그러면서도 슬픔을 머금은 낮고 처연한 목소리로 연기해내는 송혜교의 연기다. 그 연기가 더해져 자극적인 복수극에 어떤 품격 같은 것이 만들어진다. 잊지 않기 위해서 웃지 않는다는 이 인물이 그래서 가끔 그를 돕는 강현남(염혜란) 앞에서 웃는 모습을 슬쩍 드러낼 때 그 웃음은 그간 송혜교가 출연했던 그 어떤 멜로보다 더 가슴에 와 닿는다. 

 

최근 들어 학교폭력은 드라마의 주요 소재로 자리했다. 그만큼 이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 것인가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있다는 이야기다. <더 글로리>는 물론 문동은이 하나하나 저 가해자들을 향해 압박해가는 복수극의 묘미가 담겨 있지만, 그 밑바닥 깊숙이 이 인물로 대변되는 피해자와 약자들의 상처를 들여다보려는 작가의 시선도 느껴진다. 김은숙 작가도 송혜교 배우도 지금껏 보지 못한 새로움을 담고 있지만, 그 새로움이 신선하게 다가오는 이유다. (사진:넷플릭스)

뮤지컬 영화 선입견 깬 ‘영웅’, 그 압도적인 감동의 이유

영웅

뮤지컬 영화는 안된다? 우리에게는 이러한 선입견이 있다. 극장에서 보는 영화가 주는 몰입감을 극 중 노래나 춤이 오히려 깨버리는 결과가 종종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이것은 뮤지컬 자체가 익숙하지 않은 대중들에게는 더더욱 그렇다. 대사를 하다 노래를 하는 광경이 주는 이질감이 낯설어 생겨나는 결과다. 

 

게다가 이미 오래도록 무대에 오른 뮤지컬 공연이 원작이라면? 원작을 가진 작품들이 갖는 숙제처럼 원작과의 비교가 부담으로 다가온다. 이미 뮤지컬로 본 작품을 굳이 영화관에서 또 봐야 하나 하는 질문이 따라온다. 또 뮤지컬은 극장을 찾아갈 때부터 관객들이 그 형식을 기대하지만, 영화에 익숙한 관객들이 극장에서 뮤지컬을 보는 경험은 기대를 깨는 일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윤제균 감독의 <영웅>은 다르다. 눈이 하얗게 쌓인 벌판을 눈보라를 뚫고 걸어 나가는 안중근(정성화)의 스펙터클한 광경으로 문을 여는 이 뮤지컬 영화는 그 장면만으로 원작과는 다른 영화만이 보여줄 수 있는 게 있다는 걸 체감시킨다. 실로 그건 중간 중간 등장하는 스펙터클만이 아니다. 공연장에서 배우들이 펼치는 연기는 노래와 동작 정도를 통해 그 감정이 전해지지만, 영화는 그 배우가 노래하며 흘리는 눈물과 비장한 얼굴 표정, 떨림 하나하나까지 포착함으로써 감정을 극대화시킨다. 

 

또 장면이 교차되거나 판타지를 더한 환상적인 연출도 가능해진다. 그런 연출과 편집은 뮤지컬과는 달리 영상에 스토리텔링을 더해주고, 장면 전환에 있어서도 속도감을 부여한다. 이처럼 영화만이 갖는 강점들을 <영웅>에 가져온 윤제균 감독은 이를 통해 뮤지컬과 영화 사이의 간극을 메워버린다. 실로 뮤지컬을 봤던 필자의 경험을 빌어 단언하건대, 뮤지컬도 좋지만 영화가 주는 감동은 뮤지컬을 압도한다.

 

안중근을 소재로 하는 스토리 역시 <영웅>이라는 작품에 선입견을 만든다. 이미 너무나 많이 알려진 역사적 사실들이라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윤제균 감독은 <영웅>을 통해 안중근을 전기 속에 등장하는 역사적 인물로만 그리지 않았다. 윤제균 감독이 가장 잘 하는 것이지만, 그는 이 작품 속에서 독립을 위해 투신하는 투사들을 모두 웃고 울고 농담도 하는 사람냄새 나는 인물로 그렸다. 

 

시작은 ‘단지동맹’을 하는 안중근과 동지들의 비장함으로 열지만, 금세 영화는 이들이 만두가게에서 보여주는 너무나 평범하면서도 웃음이 터지는 일상적인 면면을 담는다. 윤제균 감독이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서도 밝힌 바지만, <영웅>은 소재만으로도 숨이 턱턱 막히는 긴장감과 비장미로 채워질 수밖에 없는 작품이다. 그래서 윤제균 감독은 그 사이사이에 숨통을 틔워주는 이완의 요소가 필요했다고 했다. 그건 주효했다. 영화는 비장함과 동시에 따뜻함과 유쾌함이 더해져 감정을 요동치게 만든다. 윤제균 감독이 잘 하는 ‘감정적 롤러코스터’에 올라타게 만든다. 

 

여기에 뮤지컬 영화가 갖는 노래는 이러한 감정들을 더욱 극대화한다. 정성화는 말할 것도 없고 김고은, 박진주 같은 배우들은 노래 잘 하기로 이미 유명하지만, 이들은 <영웅>에서 그저 노래를 위한 노래를 부르는데 머물지 않는다. 영화이기에 더욱 그것이 강조된 것이겠지만, 이들은 노래 또한 연기의 하나로 풀어낸다. 정성화의 비장함은 기막힌 노래실력과 더불어 부릅뜬 눈빛만으로도 관객들을 압도하고, 김고은의 노래는 하나의 절규가 되어 듣는 이들의 폐부를 찢는 듯한 소름을 안긴다. 여기에 때론 귀엽고 때론 우습다가도 때론 아프디 아픈 박진주의 노래도 빼놓을 수 없다. 

 

특히 안중근의 어머니 조마리아 역할의 나문희가 부르는 ‘사랑하는 내 아들, 도마’는 그 유명한 편지 속 문구 “항소는 일제에 목숨을 구걸하는 짓이니 그냥 죽어라”라는 대사와 함께 절절한 엄마의 마음을 담아 관객들의 가슴을 휘저어 놓는다. 제 아무리 뮤지컬로 몇 차례를 봤고, 이 내용을 소설이나 역사를 담은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전해 들었어도, 나문희의 노래 앞에서는 누구나 펑펑 눈물이 터질 수밖에 없는 장면이다. 

 

<영웅>이 담고 있는 안중근의 서사는 세 면모가 겹쳐져 있다. 하나는 독립운동을 위해 기꺼이 한 목숨을 던지는 의사 안중근의 모습이고, 다른 하나는 한 부모의 아들이자 아내의 남편이자 아이들의 부모인 인간 안중근의 모습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마치 예수가 죽을 것을 알면서 고뇌하면서도 그걸 외면하지 않고 기꺼이 그 곳을 향해 걸어 나가는 구도자이자 메시아 같은 도마 안중근의 모습이다. 이 세 면면은 <영웅> 속 안중근을 비장하면서도 인간적이고 그러면서도 숭고한 인물로 각인시킨다. 

 

최근 극장은 굳이 그 곳을 찾아야 하는 이유를 제시해야 될 상황에 놓였다. <아바타:물의 길>이 그 이유로 스펙터클한 체험을 제시하고 있다면, <영웅>은 시각적, 청각적 체험은 물론이고 감정적 체험까지를 제시하고 있다. 극장 체험이 결코 아깝지 않은 영화다. 심지어 뮤지컬을 봤던 관객일지라도. (사진:영화'영웅')

‘카지노’, 최민식의 인생 도박 모험에 빠져들 수밖에 없는 이유

카지노

역시 최민식은 최민식이다. 3회까지 첫 공개된 디즈니+ <카지노>는 한 마디로 최민식의 아우라가 전편을 장악하고 있는 드라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결코 무너지지 않을 것 같은 단단함과, 깡패들 사이에서 보여주는 살벌함과 더불어, 최민식 특유의 쓸쓸하고 처연한 정서가 더해져 <카지노>의 주인공 차무식(최민식)은 종횡무진이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툭하면 사고를 치고 교도소에 들락거리는 깡패 아버지와 그에게 돈도 뜯기고 연일 두드려 맞으면서 기구한 일생을 살아온 어머니 사이에서 거친 삶과 동시에 인간적인 연민도 가진 인물, 차무식. 그의 80년대와 2000년대를 넘나드는 파란만장한 이야기가 <카지노>의 서사다. 그는 어쩌다 필리핀까지 가게 되어 그 곳에서 카지노를 운영하며 대부가 되는 인물로, 그 과정은 마치 인생이라는 도박판 위에서 그가 순간순간 던지는 레이스에 가깝다. 

 

시청자들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이 인생 도박 모험의 롤러코스터를 바로 이 차무식이라는 인물을 통해 체험하는 짜릿함을 경험하게 된다. 당시에 수백억씩 되는 돈을 주무르는 욕망의 레이스도 있지만, 돈과 연결된 범죄의 어두움과 거기서 나올 수밖에 없는 살벌한 누아르적 분위기도 빠지지 않는다. 최민식이 대단하다 여겨지는 건, 이 차무식이라는 인물에 입체적인 얼굴을 부여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건 친구들에게는 끈끈한 친구의 얼굴이지만, 여지없이 살벌한 범죄자의 얼굴이기도 하고 때론 어머니를 한없이 가엾게 바라보는 아들의 얼굴이기도 하다. 

 

그래서 시대를 뛰어넘어가며 이 여러 얼굴을 프리즘처럼 보는 와중에 시청자들은 자연스럽게 그 모험의 여정에 참여하게 된다. 여기에 그의 과거에 깃들인 복고적 풍경들과 사건들이 향수를 자극하고, 이미 그 시대를 겪었던 이들이라면 차무식이 하는 어떤 선택들이 일으킬 결과를 어느 정도는 예감하면서 보게 되는 기대감도 커질 수밖에 없다. 도박, 폭력이라는 소재 자체가 자극적이지만 <카지노>에 감성적인 요소를 부여하는 건 차무식의 이런 다차원적인 얼굴이다. 최민식의 아우라가 <카지노>를 쥐락펴락하며 끌고 가는 힘이 되는 이유다. 

 

스타일로 보면 <카지노>에는 여러 결들이 겹쳐져 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수리남> 같은 누아르적 분위기가 묻어나고, 마치 <나르코스> 같은 다큐 영상을 보는 듯한 실감나는 연출이 더해져 있다. 또 80년대와 2천 년대를 오가며 당대의 시대적 풍경을 담아내는 지점에서는 <파친코>가 떠오르기도 한다. 하지만 <카지노>를 <카지노>로 만드는 건 역시 최민식이다. 그가 만들어내는 거칠면서도 감성적인 정조가 <카지노>만의 차별적인 색깔을 부여한다. 

 

물론 최민식 이외에도 <카지노>에는 벌써부터 존재감을 제대로 보여주는 배우들이 즐비하다. 무식의 아버지 역할의 김뢰하는 물론이고 무식의 청년시절을 연기한 이규형, 필리핀에서 무식과 카지노 동업을 시작하는 민석준 역할의 김홍파, 국세청 조사 팀장 강민정 역할의 류현경, 무식의 진정한 은사로 짧지만 강력한 존재감을 보여준 진선규 등등 조연들의 활약이 빛난다. 그 누구보다 무식이 필리핀에서 만난 상구 역할의 홍기준은 <카지노>가 발견해낸 보석같은 배우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진짜 본 게임에 들어올 배우들은 아직 얼굴도 보이지 않았다. 이동휘, 손석구, 허성태, 김주령 같은 향후 어떤 연기를 보여줄지 기대되는 대목이다. 

 

3회만 먼저 공개되었지만 이미 서사의 몰입감은 다음 주를 못내 기다리게 만들 정도로 촘촘하게 쌓였다. <범죄도시>를 연출한 강윤성 감독은 액션 연출만 잘 하는 줄 알았는데, 인물의 감정을 촘촘히 그려내면서 서사를 쌓아가는 실력도 만만찮다는 게 느껴진다. 이 정도면 작품으로서는 분명 모두가 기대할만한 수작이다. 과연 디즈니+가 가장 기대했던 만큼, 그만한 파장과 화제를 불러일으킬 작품이라는 건 분명해졌다. 그간 좋은 작품을 내고도 생각만큼 주목받지 못했던 디즈니+가 이번에는 다른 결과를 낼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사진:디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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