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이'의 유머가 만드는 사극의 새로움

숙종(지진희)이 뒤늦게 왕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동이(한효주)는 과거를 회상한다. 어설프게 칼을 휘두르며 "나는 이 나라의 왕이다"하고 소리치는 숙종. 동이와 주식(이희도), 영달(이광수)과 함께 돼지껍데기에 술을 마시며 "내 특별히 어주를 하사하지"하고 너스레를 떠는 숙종. "그런데 전하께서 그리 미남자십니까?"하는 동이의 질문에 입을 다물지 못하며 "그 말을 내 입으로 어떻게 하겠느냐"고 웃는 숙종. 그가 왕이란 걸 미처 깨닫지 못한 동이는 스스로를 바보라고 자책하지만, 그 장면은 보는 이들에게 흐뭇한 미소를 짓게 만든다.

이 유쾌함은 '자나깨나 동이 걱정'을 하는 두 캐릭터, 주식과 영달이 그가 숙종이란 걸 깨닫고 이제 죽게 생겼다며 술을 마시는 장면에서도 이어진다. 상상 신으로 그들에게 사약을 내리며 "한 번에 주욱 들이키거라"하고 풍을 치듯 말하는 숙종의 모습에서 전통적인 사극이 가진 무거움은 쉬 해체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이 숙종은 동이를 만난 자리에서 자신을 왕이 아니라 예전처럼 대해달라며 "이건 어명"이라고 말한다. 저마다 정치적 이득만을 노리는 중신들 앞에서는 엄하디 엄한 왕이지만, 선한 낮은 자들 앞에서는 한없이 자신을 낮추며 그들의 허례 없는 삶을 오히려 부러워하기도 하는 왕. '동이'의 왕은 기존 사극의 왕과 이처럼 다르다.

사극의 힘은 물론 주인공에서 나오는 것이지만, 사극 전체의 분위기를 만드는 것은 그 왕에서 비롯된다. 왕이 어떤 성정을 가지느냐에 따라 사극은 전혀 다른 이야기를 전하게 된다. '대장금'에서 중종(임호)은 엄격하지만 자애로운 모습으로 음식을 즐겼고, '이산'에서 영조(이순재)는 사사로운 감정을 숨긴 권위의 왕을, 정조(이서진)는 한없이 정이 깊은 왕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 왕의 성정에 따라 사극의 분위기도 달라졌다. '동이'는 여기서 한 차원 더 나아가 유머러스한 왕의 면모를 과시한다. 그러자 사극은 유쾌함을 입기 시작했다.

이 특유의 명랑함과 유쾌함은 '동이'가 초반의 소소함을 벗어내고 차츰 시청률 고공행진을 하게 만든 저력의 원천이다. 초반의 무거움은 성인 동이 역할을 연기하는 한효주로 넘어오면서 발랄해졌다. 한없이 즐거워지고 웃게 만드는 그 밝음은 '동이'만의 매력을 만들었다. 바로 유머의 힘이다. '동이'의 초반부에 제기된 '대장금'의 아류, 혹은 뻔한 여성사극이라는 혹평이 사라지게 된 것은 이 유머가 깃든 사극이 '동이'만의 독특한 영역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게다가 성장드라마를 입은 여성사극으로서의 '동이'는 그 위에 탐정극의 묘미를 덧붙였다. 궁궐에 들어온 동이는 끊임없이 조정의 사건에 연루되는데, 그 사건들을 저 스스로 해결해나가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한번 물면 놓지 않는 '풍산 동이'의 그 끈질김은 모두가 포기하는 시점에서도 포기할 줄을 모르고 사건으로 한 걸음 더 발을 딛는다. 탐정극 특유의 의문부호를 만드는 연출구성은 끊임없이 호기심을 자극하며 시청자들의 눈을 붙잡는다. 무엇보다 보는 이를 유쾌하게 만드는 동이라는 아이가 곤경에 처하고 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야 되는 그 지점은 시청자들을 더욱 극에 몰입하게 만든다. 극적인 순간에 사건을 해결하는 동이는 어찌 보면 '소년탐정 김전일'을 사극으로 보는 것만 같은 쾌감을 선사한다.

하지만 살인이 벌어지는 사건은 자칫 분위기를 어둡게 만들 수 있고, 이 미스테리들은 자칫 사극을 어렵게 만들 수도 있다. 여기서 힘을 발휘하는 것은 다시 유머의 힘이다. 긍정적인 캐릭터들의 힘겨운 상황 속에서도 던져지는 유쾌한 유머들은 극을 다시 발랄하게 만드는 힘이 된다. 게다가 주식과 영달 같은 순수한 아이 같은 눈높이의 캐릭터들은 복잡해질 수 있는 사건을 보다 쉽게 풀어 전해주는 역할도 해준다.

사건이 해결되고 나면 주인공에게 확실한 포상을 주는 것도 사극 전체를 명랑하게 만드는 이유가 된다. 첫 번째 문제를 해결했을 때 동이는 어식을 하사받고, 두 번째 문제를 해결했을 때 감찰궁녀가 된다. 세 번째 문제를 해결하자 동이는 이제 숙종의 마음을 조금씩 얻기 시작한다. 이 일련의 위기와 그 극복을 통한 충분한 포상의 과정은 주인공의 성장과정이기도 하지만, 주인공에게 감정이입된 시청자들을 흐뭇하게 만드는 이유가 된다.

초반의 부진을 쉬 깨버린 '동이'의 저력은 그 명랑한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유머에 있다. 서민들을 다루는 사극 속에서 이 유머는 그네들의 해학적인 삶을 통해 익히 보여진 바 있으나, 아직껏 왕이 그 유머의 중심에 선 적은 없었다. 이것이 바로 '동이'이라는 사극이 보여주는 새로움이며, 그 새로움이 만들어내는 저력의 이유다.

MBC 파업과 ‘무한도전’ 결방, 왜 지지받을까

토요일 저녁, 우리는 ‘무한도전’이라는 세상에서 웃고 울었다. 그 세상에서는 어딘지 평균 이하인 인물들이, ‘최고는 아니지만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가장 낮은 위치를 확보하자, 그 눈높이는 서민들에 맞춰졌다. 불가능에 도전하는 모습은 서민들의 고단한 삶을 위무해주기도 했고, 때론 공감의 눈물을 흘리게 했고, 때론 희망을 갖게도 만들었다. TV 속 오락 프로그램은 그렇게 현실 바깥으로까지 손을 뻗었다. 그들의 세상은 언제부턴가 리얼이 되었고, 따라서 그 ‘무한도전’에서 도전하는 그들의 모습은 세상을 바꾸어가는 작은 힘이 되었다.

그 도전들을, 그 작은 힘을, 희망의 작은 상징을, 벌써 6주째 못보고 있다. 파업 때문이다. 하지만 무슨 일일까. 계속된 결방으로 시청자들이 주말의 즐거움을 빼앗겼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분들이 ‘무한도전’ 결방에 대해 지지를 표하고 있다. ‘무한도전’의 결방이, 아니 MBC의 파업이 정당하며, 그 파업이야말로 시청자들의 진정한 볼 권리를 얻게 해줄 수 있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기 때문이다. 시청자들은 이미 타협을 통해 통제 속에서 만들어지는 ‘무한도전’은 더 이상 진정한 ‘무한도전’이 아니라는데 합의하고 있다. 그러니 ‘무한도전’의 결방은 진짜 ‘무한도전’을 위한, ‘정당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약속을 하고 자리에 앉자마자 그 작은 권력을 이용해 약속을 깨버리는(게다가 거기엔 늘 외압의 흔적이 존재한다) 80년대식 이미 식상한 트렌디 드라마 같은 이야기. 왜 파업이 결정되었고, 왜 그다지도 오랫동안 지속되고 있는가는 관심이 있는 분들에게는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들은 이야기일 것이고, 관심을 아직 갖지 못한 분들에게는 이게 무슨 소리인가 할 정도로 낯선 이야기일 것이다. 관심과 무관심 사이의 거리는 그만큼 멀다. 지금 MBC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태가 제대로 언론을 통해 알려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한 국가의 공영방송사가 한 달 넘게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데, 어째서 이렇게 조용한 걸까.

처음에는 천안함 사태로 묻혀 졌고, 이대로 가다보면 곧 있을 지방선거와 월드컵으로 또 묻혀질 가능성도 높다. 그러니 MBC의 파업은 이슈화가 되지 않으면 오히려 정부가 바라는 바가 될 거라는 주장이 설득력 있게 들린다. 지방선거 같은 중요한 사안에 MBC의 공백은 실로 클 수밖에 없다. 이렇게 일련의 상황들을 늘어놓고, MBC에서 벌어진 일들을 끼워 맞춰보면 마치 잘 짜여진 대본을 보는 것만 같다. 상황은 그다지 낙관적으로만 보이지는 않는다. 현재 MBC 노조측이 파업의 잠정 중단을 고민하는 이유는 이처럼 잘 짜여진 대본의 흐름대로 흘러가지 않기 위한 몸부림으로 보인다.

‘무한도전’이 작금의 MBC 파업에 있어서 상징적인 존재가 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렇게 철저히 입을 다물고 있는 언론들 속에서, 대중들이 MBC 파업을 실감할 수 있는 것으로 ‘무한도전’의 공백만큼 큰 게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무한도전’이 지금껏 해왔던 정신들, 즉 불가능해보여도, 끝까지 도전하고, 최고가 아니어도 최선을 다하는 그 정신은, 현 MBC 파업 속에 깃든 정신과 맞닿아 있다. 누군가의 통제 속에서 과연 ‘무한도전’ 같은 프로그램이 만들어지고 방영되고 또 지지를 받을 수 있었을까.

파업의 와중에도 ‘검사와 스폰서’라는 민감한 사안을 방영한 ‘PD수첩’에서, ‘무한도전’의 그 도전정신을 보게 되는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잘 짜여진 대본, 낙관적으로만 보이지 않는 상황. 그것이 무슨 상관일까. 본래 ‘무한도전’은 그 짜여진 대본 바깥으로 나와 도전함으로써 그 정체성을 만들었던 존재가 아니었던가. 불가능해 보이는 도전에 최고가 아니어도 최선을 다했기에 지금의 위치에 설 수 있었던 게 아니었던가. ‘무한도전’의 정신은 지금껏 MBC를 버티게 해준 그 힘을 그대로 닮아있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파업으로 ‘무한도전’은 결방되고 있어도, MBC의 ‘무한도전’은 끝나지 않고 있다고.

죽은 정보가 아닌 산 경험의 여행, '1박2일'

점심식사를 위한 메뉴판에 봄을 알리는 몇몇 풍경이 적혀져 있고, 그 옆에는 거기에 상응하는 액수가 적혀져 있다. 그 풍경을 찍어오면 그 액수를 점심식사비로 지급하겠다는 거다. 경상남도 어느 길목에서 '1박2일'의 출연진들은 차에서 내려 갑자기 만난 풍경 속에서 봄을 찍어댄다. 무엇보다 압권은 이 메뉴판에 적혀진 'UFO 10억'이라는 문구. 재미로 적어놓은 것이지만 '1박2일'은 이 문구 하나로 재미있는 추억거리를 만들어낸다. 조작사진을 찍고, 거기 우연히 찍혀진 눈곱만한 흔적을 UFO라 우기며 결국 협상을 하는 그 일련의 과정들은 어찌 보면 단순해 보일 수 있는 여행에 의외의 즐거움을 선사한다.

사실 '코리안 루트'라고 거창한 제목을 달고 강원도 속초에서부터 경상도를 거쳐 전라도를 도는 3박4일 간의 대장정이지만, 프로그램이 재미를 주는 요소들은 의외의 장면에서 발견된다. 속초에서 아바이 마을을 찾아가 아바이 순대와 생선 구이로 포식을 하고 '가을동화'의 촬영지를 돌아보지만, 사실 그 여행의 진짜 재미는 그들이 이동하는 작은 차에서 만들어졌다. 차 안의 좁은 공간에 강호동과 함께 앉아 엄청난 압축률(?)을 보여준 MC몽이 그 장본인이다.

영덕에서 게임으로 낙오(?)된 은지원은 혼자 대중교통을 이용해 진주를 거쳐 베이스캠프인 하동에 도착했는데, 그 단순한 여행을 즐겁게 채워준 것은 인근에 사는 친구와 우연히 길에서 만난 사람들이었다. 청도의 그 유명한 미나리쌈에 곁들인 삼겹살 점심은 그 곳을 지나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아는 여행의 코스. 하지만 '1박2일'이 이 코스를 더욱 재미있게 만든 것은 턱없이 부족한 삼겹살이었다. 결국 미나리만 소처럼 먹던 출연진들은 저녁의 복불복 제안을 수락하는 조건으로 삼겹살을 얻어먹었다.

하동 베이스캠프는 박경리 작가의 '토지'의 배경이 되는 최참판댁. 하지만 이 의미 깊은 공간의 재미는 냉수마찰을 걸고 벌이는 복불복 게임으로 채워졌다. 이승기와 이수근을 홀딱 젖게 만든 그 해프닝은 여행자들 특유의 객기가 주는 즐거움이 깃들여졌다. 사실 '1박2일'이 제공하는 지역의 정보는 작은 것이 아니지만, '1박2일'이 주는 여행의 재미는 그 정보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즉 코리안 루트는 '1박2일'이 제안하는 우리네 지역의 특산물과 여행지의 코스지만, 재미는 그것을 소개하는 데 있지는 않다는 얘기다.

이것은 '1박2일'이 구사하고 또 시청자들에게 제안하는 '여행의 기술'이다. 여행은 제주도에 간다고 해도 별 의미와 재미를 못찾을 수도 있고, 그다지 멀지 않은 인근 지역을 가서도 특별한 의미와 재미를 얻을 수도 있다. 서점의 여행서적 코너에 가면 널려있는 수많은 책들 속에 들어있는 여행지의 정보들이나, 컴퓨터를 켜고 지역명만 치면 줄줄이 달려 나오는 여행지의 숙소나 먹거리 정보, 그리고 관광 명소는 막상 여행을 실제 떠나는 이들에게는 죽은 정보나 다름없다. 그 정보들은 누군가의 소중한 경험이지만, 여행을 떠나는 당사자들에게는 참고 그 이상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여행은 스스로 써나가는 것이지, 누군가가 쓴 길을 걷는 것은 아니다.

"여행할 장소에 대한 조언은 어디에나 널려 있지만, 우리가 가야 하는 이유와 가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는 듣기 힘들다." 알랭 드 보통은 '여행의 기술'이라는 책의 서문에서 이런 문제제기를 했다. 여행의 묘미는 알랭 드 보통이 말하는 것처럼, 그 이유와 가는 방법을 자기 자신에게 묻고 답을 얻을 때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1박2일'의 매주 떠나는 여행이 특별하고 재미를 주는 이유는 우리네 여행지들이 품고 있는 보석 같은 풍광과 독특한 지역만의 풍미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여행을 스스로 써나가는 '1박2일'만의 여행의 기술 덕분이기도 하다.

5주년 맞은 '휴먼다큐 사랑'의 끝나지 않은 사랑이야기

아이를 낳고 3개월 시한부 판정을 받은 소윤이 엄마. 곧 떠날 몸이지만 소윤이의 돌잔치를 위해 버티고 또 버틴다. 의학적으로는 살아있는 것이 기적이라는 그 몸으로 소윤의 첫 생일날 아이에게 전화를 걸어 힘겹게 '곰 세 마리'를 불러주고 "생일 축하해"라고 말해준다. 그것이 소봉씨가 소윤이에게 해준 처음이자 마지막 생일 축하가 되었다.

'휴먼다큐 사랑 - 엄마의 약속'편을 통해 엄마라는 존재의 위대한 사랑을 보여주었던 소봉씨. 그렇게 엄마가 떠나고 이제 5살이 된 소봉씨를 빼닮은 소윤이는 '곰 세 마리'를 불러주면 싫어할 정도로 그 어린 시절 엄마에 대한 기억이 남아있다. 소봉씨를 보내고 소봉씨가 쓰던 두건을 쓴 채 유방암 투병을 하고 있는 소봉씨의 엄마는 그 병조차 "몸소 체험하라고" 소봉씨가 '동지의식'으로 내려준 것이라 생각한다. 그녀는 '소봉씨를 추억할 시간을 더 많이 갖기 위해' 건강을 찾아야한다고 말한다. 그렇게 소봉씨의 사랑은 소봉씨 가족들의 기억 속에 살아남아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심한 장애를 갖고 태어나 그 누구도 입양해가지 않던 '로봇다리 세진이'. 유난히 그를 사랑하는 독종엄마(?)의 아들이 된 세진이는 그 장애를 이기고 세계 수영대회에서 여러 번 메달을 딴 차세대 수영 기대주가 되었다. 재수 없다며 더럽다며 다른데 가서 수영하라는 편견을 이겨내며 수영을 배운 세진이는 물 속에만 들어가면 하늘을 날고 있는 자유로움을 느낀다고 한다.

울면서 "일반인이 되고 싶다"고 말하던 그 세진이는 이제 중학교에 입학에 작은 영웅으로 불리고 있다. '휴먼다큐 사랑'을 통해 알려진 세진이의 삶은 이제 그가 엄마와 함께 하는 강연을 통해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고, 편견을 앓는 세상의 장애를 일깨워주고 있다. 공평한 세상. 자신에 대한 세상의 편견을 이겨낸 세진이는 이제 그 공평한 세상을 위해 매일 혹독한 연습을 이겨내고 대회에 나가고 강연을 다닌다. 장애와 아픈 아이들을 위해, 입양을 못간 아이들을 위해 뛰는 세진이의 사랑은 그렇게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행복이라는 것을 좀체 느껴보지 못했던 창원씨. 그에게 어느 날 나타나 "정말 행복하게 만들어주겠다"고 약속했던 영란씨는 말기암 투병 속에서도 밝게 웃으려 애쓰고 있었다. 그런 영란씨에게 "아직은 안된다"며 힘내라고 말하는 창원씨 역시 강한 모습을 보이려 애썼지만, 그녀가 잠이 들면 비로소 흘러내리는 눈물을 감출 수 없었다. 영란씨는 창원씨가 있기 때문에 살아나갈 수 있다고 말했다. "없으면 죽을 거 같아서 한 번도 마음 편히 가라고 얘기해본 적이 없다"며, 자신이 "너무 못된 것 같다"고 말했다.

자신들을 갈라놓는 이유가 죽음이 된다면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기억하고 싶어 예쁘게 사진찍자고 영란씨에게 웨딩드레스를 입힌 창원씨는 눈시울을 붉히며 "너무 예뻐서 못 잊을 거 같다"고 말했다. 그 웨딩드레스가 창원씨가 영란에게 해준 마지막 선물이 되었다. 그리고 꽤 세월이 흘렀지만, 창원씨의 시간은 그 때 그 시간에 멈춰 있었다. 영란이 선물해준 시계는 이제 가지 않는다. 시계를 뒤로 돌려 "2555일만 가면 우리는 막 웃고 있을 것"이라는 창원씨의 마음 속에 영란은 여전히 살아있었다. "모든 기억을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그 시간"을 찾기 위해 그는 지금도 기억 가장 먼 곳으로 떠나 고행하듯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가정의 달이면 어김없이 찾아와 시청자들을 감동하게 했던 '휴먼다큐 사랑'. 2006년 방영되어 5주년을 맞았지만, 그 때 보았던 그 사랑은 여전히 지금도 진행형이다. 우리가 일상으로 여기며 그 소중함을 알지 못했던 사랑이라는 가치는, 그들의 힘겨운 시간들 속에서 한 순간조차 아름다운 삶의 기억으로 남아있었다. '휴먼다큐 사랑'은 그렇게 그들의 이야기에서 우리의 이야기가 되었다. 우리는 모두 언젠가는 떠나갈 몸이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토록 아름답게 사랑하는 것이고, 그 사랑은 우리 생이 다해도 여전히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휴먼다큐 사랑'은 우리에게 넌지시 전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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