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규, 칼날이 아닌 칼자루가 되어야

'남자의 자격' 초반부에서부터 이경규는 확실한 보검이었다. 한동안 위기설을 겪고 난 후여서인지 그는 프로그램을 대하는 자세부터가 남달랐다. 새로운 예능의 형식으로 자리한 리얼 버라이어티쇼에 적응하려는 모습이 역력했고, 늘 전면에 서서 프로그램을 좌지우지하던 과거의 방식을 버리려 노력했다. 김국진 앞에서 이경규는 의도적으로 약한 모습을 보였고, 지나치게 열성적인 모습으로 이 대한민국 평균 이상의 연령들에게 피해를 주는 김성민에게 당하는 모습을 스스럼없이 보여주었다.

50대 이경규의 이런 자세는 의미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리얼 버라이어티쇼는 음악으로 치면 독주보다는 합주를 해야 하는 형식이며, 그 합주에서 함께 출연하는 출연진들과의 적절한 토크 배분은 매우 중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서열이나 개그의 공력으로 독보적인 이경규라는 보검은 자칫 잘못하면 같은 아군의 말문을 막아버리는 무시무시한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따라서 자신이 당하고 낮추는 모습을 보여주는 이경규의 노력은 그 자체로 '남자의 자격'이라는 프로그램의 전제조건이 되는 셈이다.

이것을 위해 '남자의 자격' 제작진 역시 초반부에 어떤 장치를 마련하려 했던 노력의 흔적이 보인다. 그것은 멘토로서 이외수나 남진 같은 대선배를 세워두었던 점이다. 이 멘토들은 외부에 서서 '남자의 자격' 팀원들이 비교적 공정하게 자신의 모습을 드러낼 수 있게 해주었다. 이경규는 이들 멘토들에게도 서슴없이 속내를 끄집어내는 공력을 보였지만, 결국에는 무너지고 초라한 모습을 연출함으로써 프로그램의 팀워크를 살렸다.

하지만 '남자의 자격'은 어느 순간부터 멘토가 등장하지 않게 되었고, 그러자 이런 균형은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다. 이경규는 다시 프로그램의 중심부에 섰다. 그와 형 동생하며 편안하게 얘기할 수 있는 김태원의 캐릭터는 도드라졌고, 그와 마치 톰과 제리 같은 관계를 유지하는 김성민의 캐릭터도 부각되었다. 무엇보다 전체적으로 평균 이하의 체력에 몰려 지쳐있는 모습과 늘 상반되는 자세를 보여주는 김성민은 이 프로그램의 보물 같은 존재가 되었다.

반면 본래부터 수비형 토크가 장기지만, 유독 '남자의 자격'에서만은 이경규를 향한 공격형 토크를 했던 김국진은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 버렸다. 허약 캐릭터이자 이경규의 집사 캐릭터인 이윤석은, 시체 캐릭터이자 새로운 이경규의 오른팔이 된 김태원 앞에서 잘 보이지 않게 되었고, 윤형빈은 왕비호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선배님들의 개그에 리액션을 하는 캐릭터로 굳어져갔다. 이정진은 웃기지 못하는 예능인으로서의 캐릭터도 걸기가 어려운 상태가 되었다.

물론 캐릭터는 그렇게 쉽게 잡히는 것도 아니고, 보다 많은 시간이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현재의 이런 모습들이 앞으로도 그대로 지속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현재는 '남자의 자격'의 도드라진 캐릭터들, 즉 이경규와 김태원, 김성민이 다른 캐릭터들의 빈 부분을 잘 메워주고 있다. 2PM의 춤을 배워 UCC를 만드는 과정에서 보면 이 세 명의 캐릭터가 얼마나 이 프로그램의 동력이 되는가를 쉽게 알 수 있다. 삶이 그대로 묻어난 캐릭터에서 나오는 김태원의 촌철살인, 뭐든 열심히 하려는 태도에서 비롯되는 김성민의 긍정적인 에너지, 그리고 독보적이라 할 수 있는 이경규의 예능감은 '남자의 자격'의 가장 큰 재미요소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균형감각이다. 이 존재감이 너무나 드러나는 캐릭터들과 상대적으로 존재감이 잘 드러나지 않는 나머지 캐릭터들 사이의 균형감각. 이것은 이제 리얼 버라이어티쇼로 대변되는 달라진 예능의 환경 속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닐 수 없다. 집단 MC체제가 성립된 이유는 그만큼 다양하게 시청자가 감정이입할 수 있는 캐릭터들이 다수 존재한다는 점 때문이다. 과거와 달리, 시청자들은 늘 전면에 나서서 웃기는 자만을 쳐다보지는 않는다.

묵묵히 누군가의 얘기를 들어주고 받아주는 캐릭터 역시 다양한 기호와 취향을 요구하는 시청자들에게는 소중한 존재들이다. 김C가 현재 예능의 블루칩으로 부상한 것은 그의 탁월한 예능감 때문이 아니다. 리얼 버라이어티쇼처럼 지속적으로 봐야하는 프로그램에서 캐릭터는 예능감보다 우선적인 것이 인간적인 매력이다. 인간적인 매력의 캐릭터는 마치 밥 같아서 예능감으로 무장한 맛깔난 반찬 같은 캐릭터들보다 더 오래도록 음미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따라서 예능적인 존재감이 덜 하더라도 그 캐릭터가 가진 인간적인 매력이 부각될 수 있는 기회는 충분히 제공되어야 한다.

캐릭터들 간의 균형 감각이 만들어지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분위기다. 그런 면에서 이 팀의 수장이라고 할 수 있는 이경규의 역할은 지대하다고 할 수 있다. 이경규는 실로 혼자 버라이어티쇼를 해도 풍부한 즐거움을 줄 수 있는 공력의 소유자다. 하지만 리얼 버라이어티쇼에서 혼자 선다는 것은 프로그램의 죽음과 같다. 미약하지만 같은 팀원의 모습들 속에서 캐릭터를 발견해주고 뽑아내주는 역할 또한 그의 몫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캐릭터가 발현될 수 있는 분위기를 위해 스스로 가장 낮은 자의 길을 선택하는 것이 자신도 살리고 프로그램도 살릴 수 있는 길이다.

일일 아르바이트 체험에서 이경규가 중국집 주인아주머니에게 이리 저리 끌려 다니는 모습을 보여줄 때, 패러글라이딩처럼 그동안 한 번도 보여주지 않았던 모습을 몸소 보여줄 때 이경규라는 개그맨은 위대해 보인다. 나이 오십에서도 여전히 청년의 정열을 발견하게 된다. 그는 이미 우리나라 예능계에 한 획을 그은 인물이고, 지금도 그 획을 계속 긋고 있는 진행형 개그맨이다. 하지만 대단한 개그맨이 위대한 개그맨이 되려면, 그 높은 곳에서 늘 바닥으로 걸어 내려와야 한다. 이경규라는 보검은 무엇이든 자를 수 있기에, 그 스스로가 칼날을 쥐고 다른 이들이 칼자루를 쥐게 해주어야 빛이 난다. '남자의 자격'은 그런 면에서 이경규에게는 '위대한 개그맨의 자격'을 묻는 시험대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임주은, 빙의연기가 끄집어낸 그녀의 스펙트럼

처음에는 그저 평범한 여고생 같은 이미지였다. '메리대구 공방전'에서 눈에 잘 띄지 않는 되바라진 중학생 역할을 했던 임주은이었기에 그것은 더욱 그랬다. 그 지나치게 평범해 보이는 얼굴은 임주은이라는 연기자를 그저 지나치게 만들었다. '여고괴담'류의 이제는 트렌디해 보이는 여고생 원혼의 연기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귀신에 빙의되는 윤하나라는 연기를 해야 하는 임주은은, 평범한 여고생의 얼굴에서 순식간에 분노로 일그러진 원혼들의 얼굴로 변모하고 있었다. 이러한 변신은 임주은이라는 평범해 보이는 연기자의 속에 꽤 많이 내재된 연기의 스펙트럼이 있다는 것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혼'은 표현이 자극적일지는 몰라도, 완성도로 보면 명품이라고 할 만큼 짜임새가 있는 작품이다. 얼개만 그런 것이 아니라, 작품이 전하는 메시지나 그것을 전하는 방식 또한 신선하다. 보통 공포물이라고 하면 원혼을 무서워해야 하는데, 오히려 인간 같지 않은 인간들이 더 무섭고, 따라서 이들을 처결하는 원혼의 복수가 속 시원하게 느껴지는, 그 아이러니한 체험을 이 드라마는 주고 있다. 공포물을 표방한 사회극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혼'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거의 모두 갖고 있는 양가적인 모습이다. 신류(이서진)는 연쇄살인범을 잡는 범죄자 프로파일러지만, 처참하게 파괴된 자신의 가족의 복수를 위해 그 능력을 사용한다. 따라서 과거의 피해자지만, 현재의 가해자가 된다. 살인범들에게 복수를 가하는 것이지만, 다른 면에서 보면 그 역시 하나의 치밀한 연쇄살인범으로 볼 수도 있다. 바로 이 점, 피해자가 가해자로 돌변하는 것은 이 드라마가 가진 하나의 구조다. 그 핵심적인 중심에 서 있는 인물이 바로 윤하나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윤하나를 연기하는 임주은의 역할이 녹록치 않게 된다. 그녀는 피해자로서의 모습과 가해자로서의 모습을 동시에 품고 순간순간 오가야 한다. 그것도 한 인물의 변화가 아니다. 여러 원혼들이 그 속으로 들어오기 때문에, 그 많은 캐릭터들을 받아들여야 한다. 상대적으로 평범한 얼굴은 오히려 이 연기를 더 효과적으로 만든다. 조금 크게 떠지면서 힘이 들어가는 눈빛으로의 변신은 편안한 소녀의 눈빛에서 시작하기 때문에 보는 이들을 더 소름끼치게 만든다.

'여고괴담'이 수많은 여성 스타 연기자를 발굴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기본적으로 이러한 여성이 원혼으로 등장하는 공포영화는 연기자들을 연기하게 만드는 구석이 있다. 한 가지 모습이 아닌 여러 모습을 한 작품에서 드러나게 해준다는 이야기다. 그런 면으로 보면 여러 인격체를 그 속으로 끌어들여 복수를 하는 '혼'이 임주은에게 요구하는 연기는 그 폭이 더 넓다. 그리고 임주은은 그것을 꽤 능숙하게 해내고 있다. 이 변신이 '혼'이라는 작품의 핵심적인 것이라고 봤을 때, 임주은의 연기는 말 그대로 '혼'을 살렸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신인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드림', '친구', '태삼', 그들은 도대체 왜 싸우는 걸까

그만큼 키워줬는데 내 뒤통수를 치려 해? 드라마 '드림'에서 아시아 최고의 스포츠 에이전트 회사인 슈퍼스타코프 사장인 강경탁(박상원)이 남제일(주진모)에게 갖는 불만이다. 한편 남제일은 입장이 다르다. 충성해서 이만큼 회사를 키워냈는데 고작 나를 이렇게 취급해? 그는 개처럼 충성하며 회사를 키워온 자신을 바닥으로 내친 강경탁과 맞선다. 그런데 여기에 이상한 점이 하나 있다. 이들은 서로 대립하는 관계에 서 있고, 분명 남제일이 선이고 강경탁이 악인 입장을 고수하고 있지만, 대결과정에서 보면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는 측면도 있다는 점이다.

"내가 사람 하나는 제대로 가르쳤군", 하고 강경탁은 자신의 뒤통수를 치는 남제일을 인정하고 남제일 역시 그 앞에 서면 어떤 선배로서의 예우 같은 것을 지켜주는 모습을 보인다. 이처럼 남제일과 강경탁의 대결은 선과 악으로 나눠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저 비정한 대결구도로 그려진다. 강경탁이 이기기 위해 갖은 수단을 다 쓰는 것처럼 남제일도 적당히 언론을 이용하고 국내종합격투기의 중계권을 쥐고 있는 장수진 PD(최여진)와도 손을 잡는다. 두 사람은 가진 것의 많고 적음이 있을 뿐, 사실은 같은 과다. 이것은 마치 링 위에 서 있는 두 명의 파이터들처럼 선악의 구분이 없다. 그들은 그저 링의 법칙에 충실할 뿐이다.

한편 남제일에 의해 파이터로 키워지게 된 이장석(김범)은 불우한 환경 탓에 소년원에도 다녀온 전력이 있다. 그는 자신이 길거리의 쓰레기가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 링 위에 선다. 이장석을 트레이닝하는 박병삼(이기영)은 전 복싱 동양챔피언 출신의 명트레이너지만 선수를 키워줄 능력은 부족한 인물이다. 그래서 기껏 키워놓은 선수를 빼앗기고 그러면서도 "그 놈을 위해서는 잘된 일"이라고 위안을 삼는 인물이다.

'드림'이라는 남성들의 세계를 다루는 드라마에 등장하는 남자들은 이처럼 늘 무언가와 사투를 버리고 있지만 정작 행복해보이지는 않는다. 그것은 모든 권력을 쥐고 있는 강경탁도 마찬가지다. 그는 아버지의 트라우마 속에 갇혀 자신을 학대하며 살아가는 인물이라고도 볼 수 있다. 남제일이 성공하려 하는 것은 이미 성공했던 자의 추락이 주는 회귀욕망이겠지만, 그는 그렇게 성공하려는 것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잘 알지 못하는 것 같다. 그는 강경탁이 되려는 것일까. 그들은 모두 링의 법칙이 가지는 비정함을 다 알고 있으면서도 그 법칙과 대항하든가, 아니면 링을 떠나 새로운 삶을 모색하려 하지 않는다.

이장석은 자기존재의 증명을 위해 링 위에 서는 인물이지만, 그 과정까지 즐기는 인물인 것 같지는 않다. 즉 그는 이 드라마의 대부분 남자들이 그렇듯이 어떤 목표를 위해 현재를 감내하고 있는 인물이다. 남자들의 이런 모습들은 실제 사회생활에서도 전혀 낯선 것이 아니다. 모두가 지향하는 성공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인지도 모르고, 무작정 달리면서 정작 자기 자신의 생활을 즐길 줄도 모르고, 늘 누군가를 위해 살아가는 자세를 고수하는 이런 모습들은 우리네 사회의 남자들이 갖는 대부분의 태도를 보여주지만 그것이 이 시대에는 어떤 울림을 주지 못한다. 지금은 미래가치로 제시되는 성공보다는 현재적 행복을 추구하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미래를 다가올 현재로 볼 때, 현재를 즐기지 못한다면 그 삶은 영원히 불행할 것이다.

이것은 '드림'의 불쌍한 남자들이 처한 환경이고, 실제로 '드림' 같은 삶을 살아가는 현실의 남성들이 처한 환경이며, '드림' 같은 남성의 세계를 그리는 드라마들이 처한 환경이기도 하다. '드림', '친구', '태양을 삼켜라' 같은 드라마 속에서 남자들은 모두 똑같은 성공의 욕망에 사로잡혀 있지만 그것이 주는 가치는 과거적 향수에 머물고 있다. 이 드라마들의 시청률이 낮은 것은 대진운 탓도 크겠지만, 그 스스로 취하고 있는 가치관이 현재의 시청자들에게 보다 큰 공감을 일으키지 못하는 탓도 크다. 막연한 성공의 욕망을 향해 질주하던 남자들의 세계는 이제 저물어가고 있다. 가끔씩 사투를 벌이는 드라마 속의 남자들을 보면서 저들은 왜 저렇게 싸우고 있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그 때문이다.

어른보다 아이를 열광시킨 생존의 콘텐츠, 왜?

생활 속에 산재한 위기와 그 탈출법. 어른들이 꼭 챙겨 봐야 할 것 같은 콘텐츠지만 여기에 매료된 것은 아이들이다. 놀이터, 부엌, 학교, 길거리. 아무 생각 없이 생활하던 자신의 공간이 사실은 위험으로 가득 차 있다는 사실은 아이들에게 못내 충격적으로 다가온다. 한번 아이들의 눈을 사로잡은 위기의 상황을 담은 영상들은, 끝내 아이들에게 어른들의 손을 잡아끌게 만든다. "저것 좀 봐." 일상에 무뎌져 그 속에 숨겨진 위기에도 무감각해진 어른들은 아이의 손에 이끌려 비로소 거기에 관심을 갖게 된다.

이것은 이제 200회를 맞은 '위기탈출 넘버원'이 서 있는 독특한 프로그램의 위치를 말해준다. '위기탈출 넘버원'은 프로그램도 프로그램이지만 아이들용 과학학습만화로 출간되어 대박을 친 상품이기도 하다. 출판시장에서 아이들의 눈을 사로잡는 것은 '○○○에서 살아남기'나 '노빈손' 시리즈 같은 과학과 생존을 연결시킨 서바이벌 형식의 콘텐츠들이다. 그 이유는 극명하다. 주변환경의 위협은 아이들에게 있어서 생존과 직결된 문제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바로 그 극단적인 상황과 그 상황을 이겨내기 위한 과학적인 해법은 아이들의 성장과 거의 궤를 같이 한다. 어떤 것을 처음 접할 때의 두려움과 호기심은 아이들의 성장 동력이다.

'위기탈출 넘버원'이 200회를 거듭하면서 10%대의 안정적인 시청률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바로 그 일상 속에 존재하는 두려움과 호기심에 대한 환기가 여전히 우리의 시선을 붙잡아두는 매력이 있기 때문이다. 어떤 작은 일상의 일이 삶과 죽음을 나눌 수 있다는 형식의 '위기의 순간! 죽느냐 사느냐'는 충격적이면서도 생존의 노하우를 준다는 점에서 어떤 정보적 의미를 갖는다.

지나치게 자극적으로 흐를 수 있는 콘텐츠에 균형을 잡아주는 것은 이 프로그램의 형식이다. 실제 상황보다는 가상의 시뮬레이션으로서의 재연 상황을 보여주고, 그것을 하나의 문제형식으로 만들어 퀴즈로 진행하는 방식이 그것이다. 이 부담 없어 보이는 퀴즈의 방식은 자칫 충격적으로 다가올 정보들과 균형을 맞춰준다. 위기상황의 나열만이 주는 자극을 피하고, 오히려 위기를 사전에 피할 수 있는 노하우를 알려주는 정보적 접근은 이 프로그램의 큰 장점이다. 어른들은 물론이고 아이들이 함께 이 프로그램을 즐기면서, 한편으로는 배울 수 있는 것은 바로 이런 유화된 형식 덕분이다.

이 프로그램은 또한 정보가 주는 공익적인 가치를 무시할 수 없다. 성수대교가 붕괴하고, 삼풍백화점이 무너지고, 가스가 폭발하고, 지하철에 불이 나는 등 엄청난 인재를 겪으면서도 우리의 안전 불감증은 여전한 편이다. 이 프로그램의 정보를 찾아볼 정도로 적극적인 관심을 갖는 아이들과, 눈에 보여야 그제야 관심을 갖는 어른들 사이에 놓여진 격차는 우리들에게 어느새 무뎌진 안전에 대한 감수성을 생각하게 한다. '위기탈출 넘버원', 그 200회의 저력은 바로 이 우리가 일상에서 잊고 있는 빈틈을 공략하는 살아있는 정보들에서 비롯된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