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한 유산'의 후속작, '스타일'이 갖지 못한 것

꿈의 시청률 47%를 기록하고 종영한 '찬란한 유산'의 후속으로 들어온 '스타일'은 첫 회부터 17%의 시청률을 냈다. 아무리 대단한 작품이라고 해도 이런 수치는 이례적이다. 그런 면에서 '찬란한 유산'은 후속 작품에도 찬란한 유산을 남긴 셈이다. 하지만 정작 '스타일'은 '찬란한 유산'의 뒤를 잇는 작품으로서는 확연히 다른 스타일을 갖고 있다.

'스타일'은 먼저 외관이 화려하다. 칙릿을 추구하는 이 작품에는 무수한 명품의 이미지들이 꿈틀댄다. 명품 백과 옷들이 마치 광고로 도배된 패션잡지의 그것처럼 화면 전체를 도배하고 있고, 주인공들은 패션쇼를 하듯 연거푸 옷을 갈아입고는 마치 무대처럼 화려한 세트와, 화보의 배경처럼 판타지를 자극하는 장소에 서 있다. 어디 그것뿐인가. 그 화려한 패션쇼를 연출하는 당사자들의 조각 같은 몸들은 이 화보 같은 드라마 속에서 계속 전시된다.

그저 멍하니 쳐다보고 있으면 그 눈을 휘둥그레하게 만드는 '엣지'나는 상품들에 눈을 멀게된다. 박기자(김혜수)의 까칠함과 이서정(이지아)의 지질함이 주는 대비효과는 아무래도 상관없다. 그런 구도는 이미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를 본 분이라면 심지어 식상하다 여겨질 수도 있는 일이다. 그럼에도 마음을 빼앗기는 이유는 똑같은 설정에도 그 인물들이 입고 있는 옷이 다르고, 그 인물들이 서 있는 화보(?)의 배경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것은 마치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서 그 영화의 내용보다도 시골출신 촌뜨기 주인공 앤드리아가 이것 저것 명품들을 입어보는 그 행위에 더 빠져드는 것과 같다. '스타일'은 확실히 이 칙릿의 대표격인 '악마가 프라다를 입는다'의 판타지 요소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가 어떤 매력적인 스토리텔링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거기에는 사회생활 속에서 여성들이 겪는 고통과 판타지가 인물들을 통해 공감할 수 있게 하는 스토리텔링이 있었다.

'스타일'의 스토리텔링 역시 마찬가지로 이 사회생활 속의 여성의 욕망을 다루고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스토리텔링이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서처럼 잘 드러나지가 않는다. 이것은 아마도 좀 더 압축적인 영화의 옷과 다를 수밖에 없는 드라마의 옷 때문이기도 하지만, 공감하기 어려운 캐릭터에서 비롯되는 바가 더 크다. 이 드라마에서 인물들은 지나치게 오버하고 있다. 박기자는 '엣지'를 남발하면서 확실히 어떤 카리스마를 보여주고는 있지만 그 안에서 자신만의 매력적인 캐릭터를 구축하지는 못하고 있다. 박기자가 가진 긍정적인 면들, 예를 들면 실력 같은 것이 구체적으로 제시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이서정 캐릭터에서 발견된다. 명품에 빠져 있지만, 배신한 남자친구에 대해서는 신파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주는 그녀는, 명품이 주는 쿨한 이미지와 신파가 주는 지질한 이미지의 충돌을 겪고 있다. 시청자들은 명품에 혹하는 그녀의 캐릭터에 감정이입되다가도, 남자친구 앞에서 구질구질하게 구는 그녀에게서 몰입을 방해받는다. 무엇보다 이 캐릭터는 안정되어 있지가 않고, 허공에 붕 떠 있는 듯한 설정 속에 서 있다. 이서정 캐릭터가 이런 상태에 머물게 되면, '스타일'의 스토리텔링은 부각되기가 어렵다. 그 스토리텔링이 특별한 것도 아닌 이미 나와 있는 것이기에 더욱 그렇다.

따라서 현재 2회가 지난 '스타일'은 드라마 스토리텔링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주인공의 문제(혹은 욕망)를 제시해주지 못하고 있다. 아직까지 이서정이 좌충우돌하는 그 장면들을 마음 속으로 공감하며 따라가기 어렵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남게 되는 것은 말 그대로 드라마의 스타일뿐이다. 뭔지 몰라도 화려하고 감각적인 그 스타일.

극중에서 서우진(류시원)은 '광고로 도배한 패션잡지'라는 이유로 박기자의 인터뷰를 거절한다. 그는 어떤 요리로서의 진정성에 도달하려고 하는 인물이지만, 드라마는 그 캐릭터의 진정성을 잘 포착해내지 못하고 있다. 그저 준비된 듯한 인터뷰 멘트와 역시 화보 같은 배경 속에 서 있는 그에게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스타일'이 서우진의 목소리로 비판했던 그 '광고로 도배한 패션잡지' 같은 상품 전시장의 드라마가 되지 않으려면, 우선 드라마가 전하려는 스토리텔링의 중심을 먼저 드러내야 한다. 그리고 그 중심의 키는 이서정이 쥐고 있다. 드라마에 있어서 스타일은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스타일만으로 드라마가 되는 것은 아니다. '찬란한 유산'은 '스타일'과는 정반대의 입장에서 스타일이 아닌 스토리텔링의 중요성을 말해주었던 드라마다.

대결토크쇼 '절친노트', 김구라에서 이경규로

'절친노트'가 패러디한 것은 영화 '데스노트'. 그 노트 위에 이름을 적으면 그 당사자가 죽음을 맞이하는 '데스노트'가 가진 신적 권위의 스토리텔링을 끌어온 '절친노트'는, 그 힘으로 사이가 나빠진 연예인들을 절친으로 만드는 갖가지 미션을 수행하게 만든다. 따라서 초창기
'절친노트'를 그 자체로 상징화하는 것은 그 메인MC를 맡았던 김구라와 문희준이었다. 김구라의 독설과 그 독설의 피해자였던 문희준은 '절친노트' 속으로 들어와 절친이 되는 모습을 리얼로 보여줌으로써 이 프로그램의 정체성을 심어주었다.

이 당시 '절친노트'의 구조는 먼저 몹시 불편한 관계의 인물들이 만남을 통해 당시의 사건들(?)을 환기시키고, 노트가 시키는 대로 절친의 미션을 수행하게 함으로써 가까워지게 만들며, 결국 속에 있던 앙금을 털어내는 그 과정을 보여줬다. 이것은 김구라가 가진 캐릭터의 힘을 프로그램화한 인상을 심어주었다. '독설의 김구라가 절친의 손을 내민다'는 그 스토리는 현재의 리얼 토크쇼가 요구하는 양면성, 즉 어색한 관계의 폭로와 변화해가는 마음을 보여주는 진정성의 리얼리티를 충족시켰다. 폭로와 감동이라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두 요소는 이렇게 '절친노트'라는 틀 속에 들어와 공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이러한 불편한 관계의 인물들(연예인들)이 한정적이라는 데 있었다. 따라서 '절친노트'의 스토리는 조금씩 유화되어갔다. 몹시 불편한 관계는 어색한 관계로 격하되었고, 만남은 그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이 아니라, 친해지기를 독려하는 과정으로 바뀌었다. '절친하우스' 같은 코너는 우리가 흔히 겪는 MT같은 분위기를 연출하면서 '절친노트'가 변하고 있음을 알려주었다. 하지만 그것은 어쩌면 초창기 강한 토크를 선보였던 '절친노트'의 위기였는지도 모른다. 김구라의 독설가 캐릭터는 '절친노트'의 아이콘으로 작용했지만, 바로 그것 때문에 화해쪽으로만 기울게 됨으로써 토크쇼를 점점 밋밋하게 만들었다.

'절친노트2'가 김구라 대신 그 중심에 이경규를 세운 것은 여러 모로 의미가 있다. 이것은 김구라의 '절친노트'에서 이경규의 '절친노트'로의 이행이다. 여기서 이경규는 김구라가 하지 못했던 토크를 선보인다.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이경규 특유의 대결토크다. 김구라처럼 원죄(?)가 없는 이경규는 출연진들을 노골적인 대결의 장으로 끌어낸다. 그 토크쇼에서 이경규는 토크에 불을 지르는 캐릭터로 등장한다. 때로는 옆자리에서 특유의 깐죽 토크로 대결에 불을 지르기도 하고, 때로는 그 스스로 토크에 뛰어들어 분위기를 한껏 격앙시키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이 프로그램 속의 '절친파이터'는 이 촉매제 역할을 하는 이경규가 단연 돋보이는 코너다.

이경규가 메인으로 서면서 '절친노트'는 게스트 섭외에 있어서 그만큼 폭이 넓어졌다. 비교적 연령대가 높은 연예인들은 물론이고 어린 아이돌들도 이경규라는 캐릭터는 좀 더 쉽게 요리할 수 있는 위치에 서 있다. 그것은 연배가 갖는 자연스러움이 묻어나기 때문이다. 토크가 갖는 폭로의 수위도 높아졌다. 후배 연예인들의 폭로 앞에서 쩔쩔 매는 이경규의 모습은 이제 이 프로그램의 새로운 아이콘이 되었다. 폭로를 통한 권위적인 모습의 해체는 대결토크가 갖는 자극적인 맛을 절친이라는 과제로 되돌리는 역할을 해준다. 김구라의 '절친노트'가 보여주었던 어색함의 리얼리티는, 이경규로 와서 솔직함의 리얼리티로 바뀐다. '싸우면서 친해진다'는 것이 이경규의 '절친노트'가 가진 새로운 스토리다.

김구라에서 이경규로 바뀐 '절친노트'는 따라서 이제 좀더 안정된 구조를 갖게 되었다. 이경규의 절친노트는 김구라가 가진 독설의 아이콘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저 '무릎팍 도사'가 갖는 대결토크쇼의 대세를 끌어들였다. 토크가 갖는 폭로의 강도도 높아졌고, 그걸 통해 서로의 마음이 열리고 소통하게 되는 감동의 강도도 덩달아 높아졌다. 한때 김구라의 전성시대를 아이콘화 했던 '절친노트'는 이제 이경규를 그 자리에 세워놓고 있다. '절친노트'의 등장과 그 변화가 토크쇼의 변화와 어느 정도 맞물려 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이것은 어쩌면 이경규의 부활과 새로운 전성시대를 예고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소통하는 드라마와 겉멋에 빠진 드라마, 그 명암

작품의 질적인 부분은 일단 차치하자. 시청률과 시청자들의 평가만을 놓고 볼 때, 작품의 성패를 가름하는 것은 질적인 부분보다는 시청자와 작품 간의 소통에 있기 때문이다. 최근 두 드라마가 이 소통에 있어서 상반된 길을 걷고 있어 눈길을 끈다. 세대를 넘어서 거의 모든 대중들의 공감을 통해 시청률 40%를 넘어선 ‘찬란한 유산’과, 세련된 스타일에도 불구하고 전혀 공감을 얻지 못하는 인물설정으로 이제 시청률 5%대로 추락한 ‘트리플’이 그것이다.

드라마를 대중들과 소통하는 하나의 커뮤니케이션으로 봤을 때, 주목해야 할 것은 그 드라마가 구사하는 화법이다. 그런 면에서 ‘찬란한 유산’의 화법은 지나칠 정도로 친절하다. 이것이 지나치다고 표현하는 것은 그것 때문에 심지어 세련된 느낌마저 상쇄되기 때문이다. 모든 걸 세세히 설명해주는 화법은 겉으로 보기에 폼이 나지 않게 마련이지만, ‘찬란한 유산’은 그런 겉멋에 연연하지 않는다. ‘찬란한 유산’은 고은성(한효주)이 어떻게 바닥까지 떨어지고 그 바닥에서 장숙자(반효정) 여사를 만나고 다시 어떻게 조금씩 상승하는가를 차근차근 설명해준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이 드라마가 말하려는 주제가 간결하고도 명료하기 때문이다. 이 드라마는 기본적으로 권선징악을 말하고 있고, 따라서 시청자들은 이미 초반부터 이야기가 어떤 방향으로 갈 것인지를 다 파악하고 있다. 이런 경우 드라마는 철저히 시청자들과의 공감을 목표로 흘러간다. 고은성은 좀 더 잘 되어야 되고, 백성희(김미숙)는 파멸해야 하며, 고은성을 도왔던 인물들은 그만한 보상을 받아야 하고, 고은성을 통해 선우환(이승기)과 그 가족들은 좀 더 성장해야 한다. 드라마는 바로 이 시청자들의 바람을 하나씩 이루어주는 과정이 된다. 즉 소통은 이미 드라마의 시작과 함께 시작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반면 ‘트리플’은 정반대다. 이 드라마의 주제는 시청자들의 공감을 끌어내기가 어렵게 설정되어 있다. 오빠-동생 사이에서 싹트는 사랑(신활과 이하루)이나, 친구의 아내와 사랑에 빠지는 것(장현태와 최수인), 결혼을 외면하고 바라는 사랑(조해윤과 강상희)은 모두 보통 사람들이 겪는 그런 것이 아니다. 그러니 ‘트리플’은 시작부터 바로 이 보통 사람들의 생각들이 만들어내는 벽을 뚫기 위해 고군분투해야 한다. ‘트리플’의 주제가 바로, 이런 상식 밖의 일들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숨 쉬고 사랑하고 아파하면서 살아간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이런 어려운 주제의식은 작가와 PD의 대단한 자신감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트리플’은 그 도전적인 주제의식에도 불구하고 전혀 소통하려는 노력을 보이지 않는다. 대신 그들의 빗나간 사랑의 풍경을 예쁜 그림으로만 보여주려고 했다. 소통은 겉모습으로 덮어지는 것으로 얻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관계 속에서 서로 고민하는 모습들이 비춰질 때, 시청자들은 비로소 ‘그래 저럴 수도 있겠다’고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트리플’의 주인공들은 이런 고민이나 표현을 지질한 어떤 것으로 여기는 이른바 쿨한 인물들이다. 그들은 고민은 차치하고 그저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라고 한다. 그러다 보면 모든 건 다 지나가고 해결될 것이라고. 이 주제의식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우리네 시청자들과의 소통에 있어서는 굉장히 어려운 길을 선택한 것만은 분명하다.

‘찬란한 유산’이 바로 그 소통을 바탕으로 해서 만들어진 드라마로서 보다 효과적으로 공감을 가져갈 수 있었다면, ‘트리플’은 소통의 벽에 부딪칠 수 있는 상황을 뛰어넘어야 하는 드라마로 어떤 공감을 얻어낼 수가 없었다. 이것은 어쩌면 작품을 대하는 PD나 작가가 가진 마인드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른다. 드라마에 대한 쌍방향의 소통이 늘 순간순간 일어나는 요즘, 늘 겸손한 자세를 견지하며 시청자들의 마음을 읽는 마음은 제작자들이 가져야할 가장 중요한 덕목이 되었다. 한때의 성공이 가져온 지나친 자신감은 때론 독이 되며, 반대로 오랜 기간 묵혀졌던 힘겨운 시간들은 때론 약이 된다. ‘트리플’의 참패와 ‘찬란한 유산’의 성공은 바로 그 갈림길에서 생겨난 것이다.

감초 연기의 대가 이문식, '선덕여왕'이 재발견한 감초, 류담

"니들 위장이란 거 해봤어? 안 해봤으면 말을 말어." '개그콘서트' 달인 코너의 대사가 아니다. '선덕여왕'에서 웃음을 책임지고 있는 죽방(이문식)과 고도(류담)가 나누는 대화 중 하나다. 덕만(이요원)이 미실에게 접근하기 위해 용화향도들까지 속인 것에 대해 마치 죽방이 그것이 위장이라는 것을 미리 알고 있었던 것처럼 너스레를 떠는 장면이다. 그런데 그 말을 들은 고도 역할의 류담이 하는 말이 예사롭지 않다. "아휴 지겨워. 맨날 말을 말래." 이것은 '개그콘서트' 달인의 패러디다. 달인 김병만이 늘 하는 말, "안 해봤으면 말을 말라"는 그 말을 '선덕여왕'의 죽방고도가 나누는 웃음의 코드로 끌어들인 것이다.

'선덕여왕'의 죽방고도 콤비만 떼놓고 보면 진짜 '개그콘서트'의 달인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죽방이라는 캐릭터는 늘 "자기는 다 알고 있었다"거나, "뭐든 다 할 수 있다"고 허세를 부리는 '선덕여왕'의 달인이라고 할 수 있다. 다른 것이 있다면 류담이 맡은 역할이다. '개그콘서트'에서 류담은 달인의 머리를 툭 치며 "나가!"하고 면박주는 역할을 하고 있지만, '선덕여왕'에서 류담은 거꾸로 죽방에게 늘 얻어맞는 역할을 하고 있다.

죽방고도 콤비는 긴장감 넘치는 사극 속에 늘 존재하는 감초 역할이다. 어리숙한 도둑이라는 캐릭터는 사극 이외에도 드라마 속에 늘 빛나는 감초 역할을 해왔다. 누군가의 물건을 훔쳤는데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모르는 어리숙함은 늘 드라마에 웃음과 함께 극의 긴장감을 동시에 가져올 수 있는 캐릭터다. 죽방고도가 훔쳐온 연적 에피소드는 그 대표적인 사례다.

연적으로 해구신을 산 그들로 인해 향도들은 일제히 신체검사(?)를 받게 되는데, 이것은 주인공 덕만을 위기로 몰아넣는다. 반면 그 해구신을 숨기기 위해 고도의 입에 그걸 밀어 넣으면서도 아까운 듯 다 먹지는 말라는 죽방은 폭소를 자아내게 한다. 도둑이란 캐릭터는 더 큰 도둑(이를테면 나라를 훔친) 앞에서는 용인되기 마련. 그것도 그 큰 도둑의 물건을 훔치는 도둑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이문식은 이미 정평이 난 감초연기의 달인이다. 그의 감초연기가 여타의 배우들과 다른 점은 그 웃음 속에 서민적인 눈물까지도 묻어난다는 점이다. '일지매'에서 생니까지 뽑아가며 연기투혼을 한 이문식은 뜨거운 부정을 보여줌으로써 웃음은 물론이고 감동까지도 선사했다. '선덕여왕'에서 이문식은 좀 더 웃음의 코드에 접근하는 인물이면서 동시에 덕만이 기댈 수도 있는 형님 역할을 하고 있다.

이문식의 감초 연기야 이미 정평이 났지만, 류담의 연기는 재발견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개그콘서트' 달인에서 그의 존재감은 미미하다. 중심에 선 김병만의 개그를 돋보이게 하는 것이 그가 맡은 역할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덕여왕'에서의 그의 감초 연기는 보통 개그맨들이 드라마로 진출할 때 넘기가 좀체 어려운 까메오 역할 그 이상을 보여주고 있다. 류담이 연기하는 고도는 그만큼 자연스럽게 드라마에 녹아있다는 말이다.

그간 보지 못했던 그의 다양한 표정 연기는 이문식과 콤비를 이루면서 더욱 빛이 난다. 억울한 얼굴과 놀라서 동그랗게 뜬 눈, 가끔씩 보이는 바보 같은 웃음은 '달인'에서는 보지 못했던 어린아이 같은 천진난만함을 류담에게서 발견하게 한다. 거구의 몸 역시 '달인'에서는 주목되지 못했지만, '선덕여왕'에서는 이문식과 대비되면서 이른바 훌쭉이와 뚱뚱이 캐릭터를 만들어낸다.

사극처럼 진지하고 긴장감이 넘치는 드라마 속에서 자칫 감초 역할이 차지하는 비중은 간과되기 쉽다. 하지만 감초는 그저 드라마에 부가되는 웃음이라는 양념만은 아니다. 논리적인 접근보다는 감성적인 접근이 필요한 부분에서 감초라는 캐릭터는 사건을 스스로 만들어내기도 하는 자체로 극을 움직이는 하나의 틀로서 작용하기 때문이다. '선덕여왕'의 달인, 죽방고도가 돋보이는 것은 이 두 가지 역할, 즉 웃음을 주는 역할과 극을 움직이는 역할을 모두 잘 소화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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