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의 연기와 우리의 삶

 

우리에게 스타란 무엇일까. 젊은 시절 멀리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을 설레게 만들었던 연인이자, 언제나 피곤한 몸을 기댈 수 있는 넉넉한 어깨를 가진 친구 같은 존재일까. 우리와는 다른 별세계에 있으면서 가끔 우리에게 그 빛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으로 화려한 삶을 살아가는 꿈의 존재일까. 아니면 도무지 우리가 범접할 수 없는 우리와는 다른 신적인 아우라를 가진 존재일까. 그저 냉정하게 바라봐 자본주의의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만들어낸 신을 대체하는 인간상품의 하나일까.

 

스타를 바라보는 시각은 이처럼 극에서 극으로 달린다. 한없이 찬사의 대상이 되다가도, 어느 순간에는 끝없는 지탄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한없이 동경의 대상이 되다가도, 어느 순간 동정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가 비치는 그곳에는, 또한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충격적인 자살 소식과 거의 폭력에 가까운 근거 없는 끔찍한 루머들이 떠다닌다. 스타와 소속사 사이에 분쟁이 벌어지면 종종 발견되는 노예계약의 징후들은 대중들을 혼란에 빠뜨린다. 그 신적인 존재가 노예였다니. 신과 노예의 사이. 지금 스타가 서 있는 자리다.

 

그들은 실제의 삶과 비치는 삶이 다르다. 그들은 우리에게 있어서 콘텐츠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다. 따라서 그 콘텐츠가 캐릭터로 구현해 내는 판타지나 가상성은 사실상 우리가 받아들이는 그들의 실체다. 하지만 그것은 그들의 실제 삶과는 유리되어 있다. 드라마 속에서 누구나 꿈꾸는 신데렐라의 역할을 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소속사에 계약되어하기 싫은 일이라도 웃으면서 해야 하는 입장에 서 있을 수도 있다. 이 실제의 삶과 비치는 삶 사이에 혼란이 오게 되면 그 존재는 파탄으로 몰릴 위험이 있다. 자살은 꿈꿔왔던 삶과 현실의 삶의 괴리에서 비롯되는 바가 크다. 따라서 스타란 기본적으로 이 극한의 정체성의 혼란과 존재의 괴리감을 감당해야 하는 존재다.

유어 아너

이렇게 된 것은 스타가 엔터테인먼트 산업을 통해 물질화된 상품인간으로 포장되기 때문이다. 인간적인 삶과 상품으로써의 삶. 이것은 자본주의 세상 속에서 단지 스타만이 겪는 일은 아닐 것이다. 우리들은 저마다 집에서는 한 아이의 부모이고, 한 부모의 자식이며, 한 아내의 남편이자, 한 남편의 아내이지만, 집을 나서서 자본의 세상으로 출근하게 되면 연봉 얼마로, 회사 이름으로, 또 직함으로 구획되는 상품의 삶을 살게 된다. 그러니 스타란 바로 이러한 자본주의의 삶을 가장 극단적으로 표상하는 존재가 아닐 수 없다. 스타에게서 갖는 동경과 동정은 사실상 우리 스스로 자신에게 갖는 감정과 다르지 않다. 스타는 우리에게 그것을 대리하는 존재로 서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스타를 꿈꾼다. 그것이 딱히 저 TV와 스크린 속의 인물들이 아닐지라도, 자신의 삶 속에서 스타가 되기를 누구나 바란다. 주목받고 싶고, 가치를 인정받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 문제는 그 가치를 평가 내리는 기준이 돈으로 수치화되어 있다는 점이다. 질적인 가치가 양적인 가치로 등급 매겨지는 그 지점에 현대인들의 비극이 있다. 질적인 가치가 아무리 뛰어난 사람이라도 양적 가치가 부여되지 않으면 아무도 그것을 주목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지금은 양이 질을 담보하는 시대다. 일단 양을 채워라! 그러면 질은 따라올 것이니!

 

지금과는 다른 삶에 대한 희구는 우리의 본능이다. 이미 주목받고 있는 스타들은 차라리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살고 싶다고 말한다. 하지만 바닷가의 모래알처럼 드러나지 않는 삶 속에 묻혀있는 이들은 거꾸로 모두의 주목을 받는 스타를 꿈꾼다. 변신 욕구는 우리의 본능이지만 팍팍한 현실에서 변신은 그다지 용이하지 않고 때론 용납되지도 않는다. 따라서 우리는 그것을 대체하는 존재로서 스타를 희구하게 된다. 스타에 대한 열광과 현실에 대한 낙담은 같은 동전의 양면이다. 그렇다면 스타를 희구하는 우리네 삶은 늘 그 자리에 머물러 현실을 낙담하면서 변신욕구를 스타를 통해 자위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여기서 우리는 스타와는 다른 배우라는 존재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먼저 시대가 낳은 명배우라는 호칭이 어색하지 않은 메서드 연기의 대가 김명민의 목소리부터 들어보자. “제 이름이 아니라 캐릭터만 쭉 올라오는 배우가 됐으면 좋겠어요. 저 작품을 했던 사람이 이 작품을 했다는 게 의심 갈 정도로 캐릭터의 차별화가 확실했으면... 사람들이 제 이름을 제대로 모르고 못 알아봐도 제가 배우의 길을 제대로 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뿌듯하죠.” 그는 또 이런 말도 했다. "저는 배우가 되고 싶었어요. 아무리 스타라는 딱지를 갖다 줘도 저는 그거 거절하려고 그랬어요. 저는 그냥 배우로 불리고 싶었고 같은 배우들 사이에서도 ‘저 놈은 정말 연기 잘하는 놈’ 이렇게 인정받고 싶은 게 제 꿈이었어요.”

 

김명민은 이미 스타다. 하지만 그는 왜 그다지도 스타를 거부하고 배우를 고집하는 것일까. 스타와는 달리 배우란 실체이기 때문이다. 2009년 방영된 김명민이라는 연기자를 조명한 다큐멘터리 'MBC스페셜'의 타이틀은 아이러니하게도 '거기에 김명민은 없었다'였다. 아마도 이 표현은 연기자라면 최고의 찬사라고 여겨질 것이다. 작품 속에서 연기자가 배역의 이름이 아닌 자신의 이름으로 존재한다는 것은 수치가 아닐 수 없다. 자신의 이름을 지움으로써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사람들, 바로 배우라는 직업을 가진 이들이다. 그러니 김명민이 자신의 이름을 지워버리는 작업은 그 직업이 가질 수 있는 스타로서의 욕망을 덜어내고, 대신 그 자리에 온전히 실체로 세워둘 수 있는 배우라는 길을 걸어가는 과정이다. 이것은 한 인간의 존재로 봤을 때, 양적 가치의 세상에서 질적 가치를 고집함으로써 그 존재를 실체로 만드는 과정이기도 하다.

연인

물론 연극의 시대에서 영상의 시대로 바뀌면서 연기의 방식도 다양해졌다. 메서드 연기가 국룰로 여겨지던 시대는 연극의 시대였다. 처음부터 끝까지 쉬지 않고 극을 이끌어 나가야 하는 배우들에게 메서드 연기는 당연했다. 하지만 매번 찍은 걸 모니터로 확인해 가며 보다 효과적인 연기를 찾아나가는 요즘 같은 영상의 시대에 연기는 본인이 빠져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효과도 중요하게 됐다. 김명민 스스로도 최근 들어 너무 지나치게 메서드를 고집하는 것이 대중들에게 부담을 주는 것 같다며 이를 덜어내는 연기를 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메소드 연기든 그렇지 않든 배우들의 연기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우리는 이미 스타로서의 삶을 욕망하도록 강요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우리는 끝없이 수치로서 환산되는 자신의 양적 가치를 높여나감으로써 사회에서 생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른바 인플루언서, 유튜버의 시대가 아닌가. 그리고 그것은 어느새 물질적 욕망으로서 우리 속에 들어와 있다. 이것이 생존이기에 우리는 경쟁을 해야 하고, 누군가 스타가 될 때, 누군가는 낙오되어 그 위를 부러움의 시선으로 올려다봐야 한다. 낙오되면서도 그 시스템을 탓하지 않고 자신을 탓하며 오히려 자신을 밟고 성공한 그들을 부러워하는 것. 이것은 자본주의 사회가 스타라는 존재를 통해 우리들에게 끊임없이 교육시켜 온 결과이기도 하다.

 

하지만 스타는 허상이다. 그래서 그 존재는 좀체 변신하려 하지 않는다. 스타로 만들어준 그 신적 이미지를 왜 스스로 부수려 하겠는가. 그들은 스타로 군림하며 가짜의 삶을 살아가지만 그것이 그들에게 지우는 짐 또한 혹독하다. 실체를 잃어버린 삶이나, 실제와 가상을 혼돈하는 삶은 늘 파탄으로 우리를 내몰기 마련이다. 하지만 배우들은 다르다. 스타가 가진 고정된 가짜의 신적 이미지는 배우라는 무한히 변신을 해야 하는, 그럼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야 하는 이들에게는 거꾸로 부담으로만 작용한다. 그들은 끊임없이 변신함으로써 그 속에서 자신의 실존을 찾아나간다.

 

우리는 각자의 삶이라는 무대 위에 서 있는 배우들이다. 우리는 그 위에서 새로운 삶, 새로운 인생을 꿈꾼다. 스타라는 자본주의가 마련한 시스템 위의 허상을 좇을 것인지, 아니면 배우라는 본연의 실존을 좇을 것인지는 모두 우리의 선택에 달린 문제다. 흔히 가십 정도로 치부하며 입에 오르내리는 스타 혹은 배우. 이 두 존재가 우리네 삶에 던져주는 질문은 이처럼 의미심장하다.

2024. 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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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키드와 TV의 작은 역사  (0) 2025.01.09

‘원경’, 운명을 알면서도 피하지 않는 자의 쓸쓸함

원경

차주영이 이토록 매력적인 배우였던가. tvN, 티빙 월화드라마 ‘원경’의 힘은 이 배우의 아우라에서 나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 싶다. 특히 우아함 속에 슬쩍 드러나는 쓸쓸한 눈빛은 작품 속 원경(차주영)이라는 인물의 깊은 내면을 고스란히 담아낸다. 그 눈빛은 마치 앞으로 자신이 마주할 비극적인 운명을 알면서도 피하지 않는 자의 쓸쓸함을 담고 있다. 

 

‘원경’이 흥미로운 건 조선 초기의 혼돈기를 다루면서 이성계(이성민)와 이방원(이현욱)이 아닌 원경왕후라는 인물에 초점을 맞춘 점이다. 그 역사적 사실은 이미 여러 차례 사극으로 재현된 바 있어 누구나 다 알고 있지만 이처럼 관점을 바꿔 놓으니 또 다른 서사가 가능해졌다. 지금껏 주목하지 않았던 원경이라는 인물이 재조명되었고, 조선의 역사에 이 인물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했는가가 새삼 주목되게 했기 때문이다.

 

이 사극에서 이방원은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인물이다. 자신만의 조선에 대한 야망이 있었고, 그걸 펼쳐내기 위해 형제들마저 죽이는 난을 일으켰다. 여기에 격분한 이성계는 계속 해서 자신의 세력들을 동원해 이방원을 위협했다. 그건 왕의 입장에서 보면 역모에 해당하는 일이지만, 그 주축이 아버지라는 점은 이방원을 복잡한 심경 속에 빠뜨린다. 야망과 불안감 그리고 분노와 회한이 뒤섞여 흔들리는 그런 인물. 

 

이 인물을 붙잡아 주는 이가 바로 원경이다. 이방원이 감정이 폭발하고 마구 흔들리고 있을 때 원경은 흔들림 없이 차분한 모습으로 그를 붙잡아준다. 결단이 필요할 때는 이방원을 결심하게 만들고, 지쳤을 때는 기대게 해준다. 이성계가 군사를 일으켜 이방원을 위협할 때도 원경은 부자 관계인 그들의 연을 끊어지지 않게 하면서도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묘안을 내놓는다. 이성계 앞에 이방원 홀로 다가가게 한 것이다. 

 

하지만 이방원과 이성계가 그 깊은 갈등을 풀어내고 같은 목표를 갖게 되면서, 원경이 오히려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될 거라는 건 어느 정도 예측된 일이다. 이방원은 이성계와 마찬가지로 권문세족들의 힘을 약화시켜 왕권을 강화하려 했고, 그래서 특히 원경의 외척세력인 민씨 일가들과 대립하고 있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원경은 이 사실을 알고 동생들인 민무구(한승원), 민무질(김우담)은 물론이고 아버지인 민제(박지일)에게도 자중하라는 조언을 해왔다. 

 

또 권문세력들의 힘을 누르기 위해 한양으로 도읍을 옮긴 후 이방원과 새 조선을 만들어가겠다는 의지를 드러내지만, 원경의 이 마음이 자신의 집안 사람들과 같을 리가 만무다. 민무구와 민무질이 야망을 드러내고 그래서 결국 이방원에 의해 숙청되는 일이 예고된 이유다. 대범하기 그지 없는 원경이 동생들의 숙청까지는 받아들일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 이상의 위협이 다가올 때 과연 그것까지 받아들일 수 있을까. 

 

원경이 매력적인 건, 바로 그렇게 흘러갈 운명이라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이를 피하지 않고 걸어나가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이 복잡한 내면을 차주영은 흔들리지 않는 차분한 어조와 어딘가 쓸쓸한 눈빛으로 표현해낸다. 이방원이 원경을 견제하기 위해 여러 후궁들을 들이고, 그들이 용종을 잉태해도 이 인물은 대담하고 대범하기 이를 데 없는 모습이다. “왕자를 낳으면 내 아들로 알고 키우면 그만이네”라고 말하는 대범함이라니.

 

이토록 왕후로서의 대범함을 가진 인물이지만 남편 이방원에 대한 애증 또한 원경은 드러내는 인물이다. “그대는 결국 나의 사랑을 잃게 될 것이오”라고 말하는 이방원에게 원경은 “전하의 사랑을 잃는 것이 저를 잃을 이유가 되지는 않습니다”라고 말하고는 사가로 떠난다. 그리고 그 곳에서 결국 원경이 보고싶어 찾아온 이방원을 맞이한다. 또 이성계와 일전을 벌이기 위해 떠나는 이방원에게 합방을 스스로 요청해 자신의 뜨거운 사랑을 드러낸다.

 

왕후로서의 면모와 더불어 한 여인으로서의 모습을 모두 가진 이 인물이 이토록 매력적으로 그려질 수 있었던 건 다름 아닌 차주영의 깊이 있은 내면연기 덕분이다. 특히 강인함 속에 언뜻 드러나는 쓸쓸한 눈빛은 이 인물에 대한 연민의 감정마저 느끼게 만든다. 흔들리지 않는 자에게서 언뜻 비쳐지는 감정만큼 보는 이들의 마음을 뒤흔드는 게 있을까. 차주영은 원경이라는 인물을 통해 그걸 꺼내 보여주고 있다. (사진:tvN)

‘나완비’의 이준혁, ‘옥씨부인전’의 추영우, 외조하는 남성 판타지에 쏠린 시선

나의 완벽한 비서

배우 이준혁과 추영우에 대해 쏠린 대중적 시선이 어딘가 예사롭지 않다. 이준혁은 최근 출연하고 있는 SBS 금토드라마 ‘나의 완벽한 비서’로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글로벌 OTT 라쿠텐 비키에 따르면 이 작품은 전 세계 123개국에서 시청자 수 1위를 기록하며 이준혁에 대한 폭발적인 관심을 만들어내고 있다. 한편 JTBC 토일드라마 ‘옥씨부인전’으로 추영우 역시 대세 배우로서 급부상중이다. 이 작품에 이어 올해 방영될 차기작 세 편(중증외상센터, 광장, 견우와 선녀) 또한 기대를 모으고 있는 것. 

 

이 두 배우가 주목되는 건 역시 이들이 출연하고 있는 작품 덕분이다. 올해 들어 시청률과 화제성에서 가파른 성장곡선을 그리고 있는 드라마는 단연 이들이 출연하고 있는 두 작품이다. 물론 두 작품은 성격이 다르다. 하나는 오피스 로맨스물이고 다른 하나는 사극이다. 하지만 이 두 작품에는 공통되는 지점이 하나 눈에 띤다. 그것이 외조하는 남성 판타지가 들어 있다는 점이다. 

 

‘나의 완벽한 비서’의 유은호(이준혁)는 딸을 홀로 키우는 싱글대디다. 딸과 시간을 보내기 위해 직장에서의 불이익까지 감수하고 육아휴직을 할 정도로 이 인물은 일단 가정의 행복을 최우선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살림은 물론이고 가사까지 완벽하다. 아이를 위한 건강식은 물론이고 일정까지 착착 정리해 관리하는 프로 살림꾼이다. 그런데 이 완벽한 살림의 능력은 고스란히 비서로서의 능력으로도 발휘된다. 

 

엄청난 열정으로 스카우트라는 일에 뛰어들어 자수성가했지만 자기 관리는 도무지 하지 않는 강지윤(한지민)에게, 갑자기 나타난 비서 유은호는 그래서 구원의 존재가 된다. 보기만 해도 정신 사나워지는 사무실을 완벽하게 정리해주고, 처리해야 할 업무에 맞게 자료를 준비해주며, 실제 스카우트 업무에서도 전직 회사 인사팀에서 발휘했던 능력을 활용해 성과를 낸다. 그저 업무적인 도움만 주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으로 피폐해진 강지윤이 기댈 수 있게 해주는 역할도 한다. 이러니 강지윤에게 유은호는 저 숱한 드라마 속 재벌2세보다 더 한 판타지가 아닐 수 없다. 

 

유은호가 보여주는 외조하는 남성 판타지는 현재 여성들의 달라진 욕망을 보여준다. 스스로 거둔 성취를 일의 영역에서도 느끼고 싶어하는 무수한 직장여성들은 이제 그저 돈많은 재벌3세가 판타지가 되지 못한다. 다른 세계의 저들과 어우러지는 것 자체가 피곤할뿐더러, 그것이 진정한 자아성취의 행복감을 주지도 못할 거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대신 자신이 하는 일을 묵묵히 한 발 뒤에서 밀어주고 응원해주는 그런 판타지가 훨씬 더 강력하다. 유은호 같은 남성 판타지가 단박에 여심을 사로잡은 이유다. 

옥씨부인전

외조하는 남성 판타지는 ‘옥씨부인전’의 송서인(추영우)이었지만 천승휘로 또 성윤겸으로 정체를 바꿔가며 살아가는 인물에서도 똑같이 드러나는 모습이다. 본래는 송씨 집안의 자제인 줄 알았지만 기녀에게서 난 서자라는 사실을 알고 이 인물은 천승휘라는 전기수로서 살아간다. 송서인 시절부터 마음에 뒀던 노비 구덕이(임지연)를 변함없이 사랑하지만 이 인물의 사랑법이 독특하다. 물론 구덕이가 옥태영이라는 양반집 딸로 정체를 바꿔 성윤겸이라는 인물과 혼례를 이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천승휘의 사랑은 전면에 나서는 게 아니라 한 발 뒤로 물러나 도와주는 사랑이다. 

 

집 나간 성윤겸이 사망했다며 과부로서의 삶을 강요받을 위기 상황에 몰리자 천승휘는 성윤겸인 척 연기를 해 옥태영을 구해낸다. 얼굴이 비슷하게 생긴데다 천승휘가 타고난 연기자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그렇게 옥태영과 부부처럼 살게 된 천승휘는 집안 일을 도맡아 하며 외지부로 일하는 아내를 돕는다. 사극이라는 외형을 갖고 있지만 일하는 여성으로서의 옥태영을 외조하는 천승휘의 남성 판타지가 도드라지는 지점이다. 

 

‘나의 완벽한 비서’의 유은호나 ‘옥씨부인전’의 천승휘를 통해 드러나는 외조하는 남성 판타지가 예사롭지 않게 보이는 건, 이 두 작품의 강력한 힘이 바로 이 판타지에서 나오고 있다는 걸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에는 이 판타지를 실감하게 만드는 이준혁과 추영우의 호연이 바탕이 된 것이지만, 이렇게 연기와 역할이 맞아 만들어내는 판타지의 동력에는 현실적인 욕망이 공조하기 마련이다. 

 

일하는 여성들의 자기 성취에 대한 욕망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진 요즘이다. 물론 그 욕망은 육아나 가사 같은 여전히 힘겨운 현실에 부딪쳐 좌절되거나 꺾이는 일이 적지 않다. 그래서 생겨난 외조하는 남성 판타지는 아마도 향후에도 드라마의 중요한 동력으로 등장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준혁과 추영우의 급부상이 단지 좋은 배역을 잘 소화해낸 것에 머물지 않고 신드롬적인 느낌을 주는 건 이런 현실이 밑그림에 깔려 있어서다. (사진:SBS,JTBC)

달리는 속도에서 걷는 속도로

응답하라 1988

급한 일이 없는 날이면 약속장소에 늘 30분 정도 일찍 나간다. 서촌이나 북촌, 인사동, 종로에서 주로 약속을 잡는데 그곳 골목길들을 걷는 게 재미있어서다. 30분 정도 먼저 도착해 골목길들을 슬슬 걸어 다니며 돌아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지금은 카페와 음식점들로 가득 채워져 말 그대로 인파가 몰리는 익선동 골목도 7,8년 전만 해도 한옥의 처마를 그늘 삼아 슬슬 걷기 딱 좋은 길이었다. 비 오는 날 우산 하나 들고 그 길에 들어서면 고즈넉한 분위기에 순간 도시 한 복판에 있다는 게 믿기지 않는 아늑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당시에는 그 골목길에 '거북슈퍼' 하나가 달랑 있었는데, 비 오는 날 그 가맥집에서 병맥주를 마시며 빗소리를 듣는 기분이 그만이었다. 물론 거북슈퍼가 있던 자리에 세련된 음식점들이 잔뜩 들어선 지금은 그곳을 잘 찾지 않는다. 그때의 정취가 잘 느껴지지 않아서다. 대신 요즘은경복궁역 뒤편 서촌 쪽에 약속을 하고 그 골목길들을 쏘다닌다. 그곳 골목길은미로처럼 뻗어있어 일단 들어서면 다른 세계로 들어온 것 같은 기분을 준다. 구불구불 이어진 골목길을 따라 걷다 보면 발길이 어디에 닿을지 못내 궁금해진다. 어쩌다 길을 따라 수성동계곡까지 올라가 겸재 정선이 그린 그림의 풍경이 눈앞에 펼쳐지는 걸 보다 보면 이곳이 서울 한복판에 숨겨진 별천지라는 생각이 든다. 구석구석 걸어 다녀야 비로소 보이고 발견되는 별천지.

 

그때는 가치를 미처 몰랐던 것들이 있다. 집에 놓여있던 유선전화기 앞에서 사랑하는 누군가의 전화를 애타게 기다리던 시간과, 마음을 글 몇 줄에 담아 적어보던 편지들 그리고 한쪽 귀로 나누어 듣던 워크맨 노래들 같은 게 그것이다. 골목길도 그랬다.그저 좁기만 했던 골목은 더럽게만 느껴졌고, 그 골목 한편에 놓인 평상에서 골목으로 들어오는 아이들 하나하나에 인사를 하고 참견을 하던 이웃 아주머니들의 오지랖은 불편하게만 생각되었다. 하다못해 왁자하게 떠들며 골목을 누비고 다니는 아이들은 시끄럽기 그지없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그 골목이 싹 밀어진 자리에 세워진 말끔한 아파트에 살다 보니 이제 알게 되었다. 그것이 꽤 그립고 따뜻한 시간들이었다는 것을.

응답하라 1988

‘응답하라 1988’은 쌍문동 봉황당 골목 풍경으로 시작한다. 택이네 집에서 함께 ‘영웅본색’을 보던 친구들이 6시 괘종시계 소리와 함께 집집마다 “밥 먹어라” 하고 부르는 엄마들의 소리에 집으로 돌아간다. 변진섭의 ‘새들처럼’이 배경으로 흘러나오는 가운데, 카메라가 훑어 보여주는 골목길 정경은 당대를 살았던 이들의 기억을 되살려 놓는다.익숙한 철제문들과 현관 위에 놓인 화분들, 포스터들이 잔뜩 붙였다 떨어진 흔적이 가득한 담벼락, 위로 넣고 앞으로 빼내는 시멘트로 만들어진 옛날 쓰레기통과 그 옆에 놓인 연탄재들, 버려진 의자들, 대야들. 도둑이 넘어올 수 없게 깨진 사이다병과 맥주병을 거꾸로 꽂아 놓은 담장, ‘사글세 있습니다’, ‘잠잘 방 있습니다’ 같은 전단이 붙어 있는 전봇대, ‘양담배 있습니다’라 적힌 담뱃가게, ‘금은보석 고급시계’라 적힌 촌스럽기 이를 데 없이 화려한 봉황당이라는 간판... 그 풍경들 위로 훗날 이때를 회고하는 덕선의 내레이션이 들려온다. “서울특별시 도봉구 쌍문동 봉황당 골목. 난 이 골목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인터넷도 없고 스마트폰도 없던 시절. 지금 생각하면 그 많은 시간들을 우린 대체 뭘 하면서 보냈을까?”

 

'응답하라 1988'이라는 드라마가 건드린 정서적 뇌관은 지금은 찾기 힘든 그 골목길 풍경에 있었다. 지금은 사라져 버렸거나 혹은 사라져 가는 것들을 그 1988년의 쌍문동 골목길에 옮겨 놓은 것이다. 이제 보니 그 골목길은 사람과 사람을 얇디얇은 벽으로 막아놓은 아파트와는 달리, 사람과 사람이 길로 연결된 정이 넘치는 공간이었다. 아이들은 그 골목에서 함께 놀며 자랐고 부모들은 이웃사촌이라는 말이 실감 날 정도로 이웃인지 가족인지 알 수 없는 정이 있었다. '응답하라 1988'의 그 쌍문동 골목길은 지금의 차가운 디지털 세상의 풍경에 결핍된 어떤 것들을 채워주기에 충분했다. 그 풍경을 보고 지금 도시에 하나둘 생겨나고 있는 골목길로 자꾸만 마음이 이끌리는사람들은 아마도 비슷한 생각을 했을 게다. 저런 곳에서 살고 싶다.

응답하라 1988

내게도 그런 골목길들이 있었다. 포장도 되지 않은 흙길들이 대부분이었던 70년대 나의 고향 경기도 안성의 골목길들에는 여지없이 아이들이 와하고 소리치며 달려가곤 했다. 나뭇가지로 땅바닥에 금을 그어 놓고 무슨 뜻인지도 모른 채 ‘십자 가이상’, ‘팔자 가이상’, ‘오징어 가이상’, ‘접시 가이상’ 같은 놀이들을 하곤 했다. '오징어게임'이라는 드라마가 바로 그때 했던 ‘오징어 가이상’을 소재로 한 것이다. 놀이터도 별로 없던 시절, 우리의 골목길은 땅만 있으면 뭐든 놀 수 있던 놀이 공간이었다. 방과 후 집에 돌아와 가방을 던져 놓고 그 골목길로 나가면 항상 같이 놀 수 있는 친구들이 있었다. 그 친구들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다 보면 골목길 집집마다 밥 냄새가 피어올랐고, 엄마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밥 먹어라!”

 

새마을 운동의 물결이 그 시골 마을에도 일렁이기 시작하면서 땅에 금 긋고 놀던 놀이들은 학교 운동장으로 밀려났다. 비가 오면 푹푹 들어가던 흙길은 널찍한 신작로로 바뀌었고 그 위로는 시멘트가 덮여 트럭 같은 차들이 달리기 좋은 길로 바뀌었다. 우리들은 금 그을 수 있는 새로운 땅을 찾았고, 방과 후 집으로(사실은 골목길로) 가던 발길은 이제 학교 운동장으로 모여들었다. 가끔 소나기라도 내리면 시멘트로 포장된 신작로 위로 먼지들이 몽글몽글 떠오르곤 했는데 그때 풍기던 텁텁한 냄새는 지금도 갑자기 소나기를 맞아 처마 끝에 비를 피할 때면 속절없이 코끝을 스치는 기억이 됐다. 빼앗긴 자의 아련함이랄까. 마음껏 금을 그으면 새로운 세상이 펼쳐지곤 했던 우리들의 골목길이 시멘트로 덮이고 그 위로 신난다는 듯 자동차들이 쌩쌩 달리는 빨라진 세상의 변화 속에서 친구들은 뿔뿔이 흩어져갔다...

 

김훈은 '밥벌이의 지겨움'이란 에세이의 ‘길의 원리 행함의 원리’라는 글을 통해 ‘길은 명사라기보다는 동사에 가깝다’고 했다. 길이란 사람의 ‘행함’에 맞게 나는 것이고 그래서 논두렁길의 구부러짐은 농사꾼의 몸의 조건에 따라 ‘이리저리 휘어들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 길들이 어느 날 차들이 달리는 도로로 바뀌었다. 구불구불 넘어야 했던 산길 대신, 터널을 뚫어 낸 길로 차들이 쌩쌩 달려가면서 그 고갯길들의 ‘존엄’은 사라지게 됐다. 나의 기억 속에 구불구불 미로처럼 펼쳐져 있고 비가 오면 처마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이 흙들을 오목하게 파이게 했던 그 골목길 대신, 일직선으로 뻗어있어 편리하긴 하지만 각진 길들 과 빗물이 스미지 못해 하수도를 향해 흘러내려가는 시멘트길로의 변화는 그래서 사람의 길에서 자동차의 길로 바뀌며 생겨난 삶과 생각의 변화처럼 다가온다.

 

골목길의 땅은 빈 공간이었다. 거기에는 아무 표식도 기능도 강요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빈 도화지나 마찬가지였다. 그 위에 우리들은 매일 오징어도 그리고 접시도 그리고 팔자도 그려가며 놀았다. 동그랗게 원을 그려놓고는 돌을 세 번 튕겨 만들어지는 공간만큼을 내 땅으로 삼을 수도 있었다. 물론 우리들의 놀이가 끝나고 나면 슥슥 다른 친구들의 발길에 지워진 후 그들의 도화지가 되었다. 무한한 가능성과 상상의 공간. 하지만 그 공간 위로 시멘트와 아스팔트가 덮이고 금이 그어졌다. 차도와 인도가 나뉘고 횡단보도가 생겼다. ‘사람은 왼쪽 자동차는 오른쪽’으로 가야 한다는 규칙도 생겼다.

 

그 규칙을 가진 길은 ‘생산성’이라는 척도로 채워졌다. 느긋이 걷곤 하던 길을 이제 사람들은 경쟁하듯 달리기 시작했다. 차들이 쌩쌩 달렸고, 때론 사람과 사람이, 때론 차와 차가, 때론 사람과 차가 부딪쳐 사고를 냈다. 경쟁사회의 시작이었다. 땅에 금을 몇 개 긋고 하던 놀이의 ‘오징어 게임’은 이제 선을 넘으면 진짜 죽는 살벌한 경쟁의 ‘오징어 게임’이 됐다. 저녁이 되면 풍겨오던 밥 냄새와 “밥 먹어라” 외치던 엄마들의 목소리가 있던 자리는 기억 저편으로 사라져 갔다.

오징어 게임

변화의 물결에 휩쓸려 서울로 전학을 온 나는 한동안 차만 타면 멀미를 했다. 차의 속도로 쌩쌩 달려가던 그 변화 앞에 몸이 미처 적응하지 못했던 거였다. 하지만 내가 서울의 속도에 적응하며 더 이상 차멀미를 하지 않게 되던80년대를 거치며 도시는 급속도로 변했다. 땅은 포장되었고, 오래되고 낡은 집들은 밀어내지고 그 자리에 아파트와 빌딩들이 세워졌다. 외국인들의 시선에 특히 민감한 한국인들은 1988년 서울올림픽을 기점으로 이런 변화를 가속화했다. 개발 위에 다시 개발을 얻는 재개발이 서울 전역에서 이뤄졌다. 그렇게 30여 년 간 자잘한 도시의 골목길들이 사라져 갔다.

 

그런데 이건 웬일일까. 신사동 가로수길, 이태원 경리단길, 마포구 연남동길, 망원동 망리단길... 최근 몇 년 간 도심을 중심으로 골목길들이 곳곳에서 생겨나 증식하고 있다. 거기에는 저 '응답하라 1988'이 상기시켰던 잃어버린 골목길에 대한 향수와 추억 그리고 나아가 어떤 보상심리 같은 것들이 어른거린다. 물론 개발과 재개발 속에서도 골목길들은 늘 존재했다. 70년대의 종로와 명동, 무교동거리가 상업화의 물결을 탄 도시의 활기였다면, 80년대 야타족과 오렌지족으로 대변되는 압구정동 로데오거리는 과시경제의 상징이었고, IMF의 그늘 속에서 90년대 후반부터 지금까지 커져온 홍대거리는 젊은이들의 문화적 갈등과 고민의 흔적이었다. 그렇다면 최근 생겨난 가로수길부터 망리단길에 이르는 골목길들의 전성시대는 도대체 뭘까. 압축성장과 개발의 뒤안길에서 사라져 버린 길들에 대한 회한이자 그리움 같은 게 아닐까.

응답하라 1988

압축성장과 개발시대의 길이란 속도를 의미하는 차들이 장악한 공간이었다. 본래 마을이란 삶의 공간과 어우러져 자연스럽게 생겨난 상점들로 구성되어야 하지만, 그저 빨리 지나치게 만드는 차들의 길이 생겨나면서 공간은 사람이 머무는 곳이 될 수 없었다. 최근 들어서는 골목길들이 차들을 밀어내고 대신 ‘걷는 사람들’을 애써 채워 넣고 있는 건 그래서 반가우면서도 안쓰럽다. 사람들이 차에서 내려 걷기 시작하자 신사동 가로수길은 그 골목골목까지 도시에 걷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는 거리가 되었고, 부암동길은 도시적인 풍경 속에 자연을 느끼며 걸을 수 있는 길이 됐으며, 삼청동길은 역사가 보이는 길, 이태원 경리단길은 이국적인 풍경을 걷는 길이 되었다. 하지만 거기 그냥 있는 것이 당연한 길이 아니라 굳이 무슨무슨 길이라고 지칭되는 것 자체가 얼마나 우리에게 골목길 같은 사람들이 걷는 길이 낯선 공간이 되었는가를 말해주는 것만 같다.

 

서울 구석구석에 골목길이 생겨나는 건 도시에 인간적인 온기를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나를 설레게 한다. 하지만 '젠트리피케이션'이 생겨나는 골목길을 보다 보면 그곳 역시 자본화의 고속도로가 깔림으로 해서 밀려나고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안타까움을 피할 수 없다. 카페와 음식점들로 가득 채워지기 전, 고즈넉한 한옥의 처마를 내주던 익선동 골목길이 그립다. 그곳 거북슈퍼에서 잠시 다리를 쉬게 하고 병맥주 한 잔을 홀짝이던 그 한적한 온기가 자본의 열기로 채워져 있는 것이 못내 아쉽다. 그래도 나는 약속시간 30분 전에 도착해 골목길을 찾는다. 그렇게 한 명 두 명 걷다 보면 없던 길도 만들어질 거라고 믿으며.

2024.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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