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는 속도에서 걷는 속도로

응답하라 1988

급한 일이 없는 날이면 약속장소에 늘 30분 정도 일찍 나간다. 서촌이나 북촌, 인사동, 종로에서 주로 약속을 잡는데 그곳 골목길들을 걷는 게 재미있어서다. 30분 정도 먼저 도착해 골목길들을 슬슬 걸어 다니며 돌아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지금은 카페와 음식점들로 가득 채워져 말 그대로 인파가 몰리는 익선동 골목도 7,8년 전만 해도 한옥의 처마를 그늘 삼아 슬슬 걷기 딱 좋은 길이었다. 비 오는 날 우산 하나 들고 그 길에 들어서면 고즈넉한 분위기에 순간 도시 한 복판에 있다는 게 믿기지 않는 아늑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당시에는 그 골목길에 '거북슈퍼' 하나가 달랑 있었는데, 비 오는 날 그 가맥집에서 병맥주를 마시며 빗소리를 듣는 기분이 그만이었다. 물론 거북슈퍼가 있던 자리에 세련된 음식점들이 잔뜩 들어선 지금은 그곳을 잘 찾지 않는다. 그때의 정취가 잘 느껴지지 않아서다. 대신 요즘은경복궁역 뒤편 서촌 쪽에 약속을 하고 그 골목길들을 쏘다닌다. 그곳 골목길은미로처럼 뻗어있어 일단 들어서면 다른 세계로 들어온 것 같은 기분을 준다. 구불구불 이어진 골목길을 따라 걷다 보면 발길이 어디에 닿을지 못내 궁금해진다. 어쩌다 길을 따라 수성동계곡까지 올라가 겸재 정선이 그린 그림의 풍경이 눈앞에 펼쳐지는 걸 보다 보면 이곳이 서울 한복판에 숨겨진 별천지라는 생각이 든다. 구석구석 걸어 다녀야 비로소 보이고 발견되는 별천지.

 

그때는 가치를 미처 몰랐던 것들이 있다. 집에 놓여있던 유선전화기 앞에서 사랑하는 누군가의 전화를 애타게 기다리던 시간과, 마음을 글 몇 줄에 담아 적어보던 편지들 그리고 한쪽 귀로 나누어 듣던 워크맨 노래들 같은 게 그것이다. 골목길도 그랬다.그저 좁기만 했던 골목은 더럽게만 느껴졌고, 그 골목 한편에 놓인 평상에서 골목으로 들어오는 아이들 하나하나에 인사를 하고 참견을 하던 이웃 아주머니들의 오지랖은 불편하게만 생각되었다. 하다못해 왁자하게 떠들며 골목을 누비고 다니는 아이들은 시끄럽기 그지없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그 골목이 싹 밀어진 자리에 세워진 말끔한 아파트에 살다 보니 이제 알게 되었다. 그것이 꽤 그립고 따뜻한 시간들이었다는 것을.

응답하라 1988

‘응답하라 1988’은 쌍문동 봉황당 골목 풍경으로 시작한다. 택이네 집에서 함께 ‘영웅본색’을 보던 친구들이 6시 괘종시계 소리와 함께 집집마다 “밥 먹어라” 하고 부르는 엄마들의 소리에 집으로 돌아간다. 변진섭의 ‘새들처럼’이 배경으로 흘러나오는 가운데, 카메라가 훑어 보여주는 골목길 정경은 당대를 살았던 이들의 기억을 되살려 놓는다.익숙한 철제문들과 현관 위에 놓인 화분들, 포스터들이 잔뜩 붙였다 떨어진 흔적이 가득한 담벼락, 위로 넣고 앞으로 빼내는 시멘트로 만들어진 옛날 쓰레기통과 그 옆에 놓인 연탄재들, 버려진 의자들, 대야들. 도둑이 넘어올 수 없게 깨진 사이다병과 맥주병을 거꾸로 꽂아 놓은 담장, ‘사글세 있습니다’, ‘잠잘 방 있습니다’ 같은 전단이 붙어 있는 전봇대, ‘양담배 있습니다’라 적힌 담뱃가게, ‘금은보석 고급시계’라 적힌 촌스럽기 이를 데 없이 화려한 봉황당이라는 간판... 그 풍경들 위로 훗날 이때를 회고하는 덕선의 내레이션이 들려온다. “서울특별시 도봉구 쌍문동 봉황당 골목. 난 이 골목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인터넷도 없고 스마트폰도 없던 시절. 지금 생각하면 그 많은 시간들을 우린 대체 뭘 하면서 보냈을까?”

 

'응답하라 1988'이라는 드라마가 건드린 정서적 뇌관은 지금은 찾기 힘든 그 골목길 풍경에 있었다. 지금은 사라져 버렸거나 혹은 사라져 가는 것들을 그 1988년의 쌍문동 골목길에 옮겨 놓은 것이다. 이제 보니 그 골목길은 사람과 사람을 얇디얇은 벽으로 막아놓은 아파트와는 달리, 사람과 사람이 길로 연결된 정이 넘치는 공간이었다. 아이들은 그 골목에서 함께 놀며 자랐고 부모들은 이웃사촌이라는 말이 실감 날 정도로 이웃인지 가족인지 알 수 없는 정이 있었다. '응답하라 1988'의 그 쌍문동 골목길은 지금의 차가운 디지털 세상의 풍경에 결핍된 어떤 것들을 채워주기에 충분했다. 그 풍경을 보고 지금 도시에 하나둘 생겨나고 있는 골목길로 자꾸만 마음이 이끌리는사람들은 아마도 비슷한 생각을 했을 게다. 저런 곳에서 살고 싶다.

응답하라 1988

내게도 그런 골목길들이 있었다. 포장도 되지 않은 흙길들이 대부분이었던 70년대 나의 고향 경기도 안성의 골목길들에는 여지없이 아이들이 와하고 소리치며 달려가곤 했다. 나뭇가지로 땅바닥에 금을 그어 놓고 무슨 뜻인지도 모른 채 ‘십자 가이상’, ‘팔자 가이상’, ‘오징어 가이상’, ‘접시 가이상’ 같은 놀이들을 하곤 했다. '오징어게임'이라는 드라마가 바로 그때 했던 ‘오징어 가이상’을 소재로 한 것이다. 놀이터도 별로 없던 시절, 우리의 골목길은 땅만 있으면 뭐든 놀 수 있던 놀이 공간이었다. 방과 후 집에 돌아와 가방을 던져 놓고 그 골목길로 나가면 항상 같이 놀 수 있는 친구들이 있었다. 그 친구들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다 보면 골목길 집집마다 밥 냄새가 피어올랐고, 엄마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밥 먹어라!”

 

새마을 운동의 물결이 그 시골 마을에도 일렁이기 시작하면서 땅에 금 긋고 놀던 놀이들은 학교 운동장으로 밀려났다. 비가 오면 푹푹 들어가던 흙길은 널찍한 신작로로 바뀌었고 그 위로는 시멘트가 덮여 트럭 같은 차들이 달리기 좋은 길로 바뀌었다. 우리들은 금 그을 수 있는 새로운 땅을 찾았고, 방과 후 집으로(사실은 골목길로) 가던 발길은 이제 학교 운동장으로 모여들었다. 가끔 소나기라도 내리면 시멘트로 포장된 신작로 위로 먼지들이 몽글몽글 떠오르곤 했는데 그때 풍기던 텁텁한 냄새는 지금도 갑자기 소나기를 맞아 처마 끝에 비를 피할 때면 속절없이 코끝을 스치는 기억이 됐다. 빼앗긴 자의 아련함이랄까. 마음껏 금을 그으면 새로운 세상이 펼쳐지곤 했던 우리들의 골목길이 시멘트로 덮이고 그 위로 신난다는 듯 자동차들이 쌩쌩 달리는 빨라진 세상의 변화 속에서 친구들은 뿔뿔이 흩어져갔다...

 

김훈은 '밥벌이의 지겨움'이란 에세이의 ‘길의 원리 행함의 원리’라는 글을 통해 ‘길은 명사라기보다는 동사에 가깝다’고 했다. 길이란 사람의 ‘행함’에 맞게 나는 것이고 그래서 논두렁길의 구부러짐은 농사꾼의 몸의 조건에 따라 ‘이리저리 휘어들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 길들이 어느 날 차들이 달리는 도로로 바뀌었다. 구불구불 넘어야 했던 산길 대신, 터널을 뚫어 낸 길로 차들이 쌩쌩 달려가면서 그 고갯길들의 ‘존엄’은 사라지게 됐다. 나의 기억 속에 구불구불 미로처럼 펼쳐져 있고 비가 오면 처마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이 흙들을 오목하게 파이게 했던 그 골목길 대신, 일직선으로 뻗어있어 편리하긴 하지만 각진 길들 과 빗물이 스미지 못해 하수도를 향해 흘러내려가는 시멘트길로의 변화는 그래서 사람의 길에서 자동차의 길로 바뀌며 생겨난 삶과 생각의 변화처럼 다가온다.

 

골목길의 땅은 빈 공간이었다. 거기에는 아무 표식도 기능도 강요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빈 도화지나 마찬가지였다. 그 위에 우리들은 매일 오징어도 그리고 접시도 그리고 팔자도 그려가며 놀았다. 동그랗게 원을 그려놓고는 돌을 세 번 튕겨 만들어지는 공간만큼을 내 땅으로 삼을 수도 있었다. 물론 우리들의 놀이가 끝나고 나면 슥슥 다른 친구들의 발길에 지워진 후 그들의 도화지가 되었다. 무한한 가능성과 상상의 공간. 하지만 그 공간 위로 시멘트와 아스팔트가 덮이고 금이 그어졌다. 차도와 인도가 나뉘고 횡단보도가 생겼다. ‘사람은 왼쪽 자동차는 오른쪽’으로 가야 한다는 규칙도 생겼다.

 

그 규칙을 가진 길은 ‘생산성’이라는 척도로 채워졌다. 느긋이 걷곤 하던 길을 이제 사람들은 경쟁하듯 달리기 시작했다. 차들이 쌩쌩 달렸고, 때론 사람과 사람이, 때론 차와 차가, 때론 사람과 차가 부딪쳐 사고를 냈다. 경쟁사회의 시작이었다. 땅에 금을 몇 개 긋고 하던 놀이의 ‘오징어 게임’은 이제 선을 넘으면 진짜 죽는 살벌한 경쟁의 ‘오징어 게임’이 됐다. 저녁이 되면 풍겨오던 밥 냄새와 “밥 먹어라” 외치던 엄마들의 목소리가 있던 자리는 기억 저편으로 사라져 갔다.

오징어 게임

변화의 물결에 휩쓸려 서울로 전학을 온 나는 한동안 차만 타면 멀미를 했다. 차의 속도로 쌩쌩 달려가던 그 변화 앞에 몸이 미처 적응하지 못했던 거였다. 하지만 내가 서울의 속도에 적응하며 더 이상 차멀미를 하지 않게 되던80년대를 거치며 도시는 급속도로 변했다. 땅은 포장되었고, 오래되고 낡은 집들은 밀어내지고 그 자리에 아파트와 빌딩들이 세워졌다. 외국인들의 시선에 특히 민감한 한국인들은 1988년 서울올림픽을 기점으로 이런 변화를 가속화했다. 개발 위에 다시 개발을 얻는 재개발이 서울 전역에서 이뤄졌다. 그렇게 30여 년 간 자잘한 도시의 골목길들이 사라져 갔다.

 

그런데 이건 웬일일까. 신사동 가로수길, 이태원 경리단길, 마포구 연남동길, 망원동 망리단길... 최근 몇 년 간 도심을 중심으로 골목길들이 곳곳에서 생겨나 증식하고 있다. 거기에는 저 '응답하라 1988'이 상기시켰던 잃어버린 골목길에 대한 향수와 추억 그리고 나아가 어떤 보상심리 같은 것들이 어른거린다. 물론 개발과 재개발 속에서도 골목길들은 늘 존재했다. 70년대의 종로와 명동, 무교동거리가 상업화의 물결을 탄 도시의 활기였다면, 80년대 야타족과 오렌지족으로 대변되는 압구정동 로데오거리는 과시경제의 상징이었고, IMF의 그늘 속에서 90년대 후반부터 지금까지 커져온 홍대거리는 젊은이들의 문화적 갈등과 고민의 흔적이었다. 그렇다면 최근 생겨난 가로수길부터 망리단길에 이르는 골목길들의 전성시대는 도대체 뭘까. 압축성장과 개발의 뒤안길에서 사라져 버린 길들에 대한 회한이자 그리움 같은 게 아닐까.

응답하라 1988

압축성장과 개발시대의 길이란 속도를 의미하는 차들이 장악한 공간이었다. 본래 마을이란 삶의 공간과 어우러져 자연스럽게 생겨난 상점들로 구성되어야 하지만, 그저 빨리 지나치게 만드는 차들의 길이 생겨나면서 공간은 사람이 머무는 곳이 될 수 없었다. 최근 들어서는 골목길들이 차들을 밀어내고 대신 ‘걷는 사람들’을 애써 채워 넣고 있는 건 그래서 반가우면서도 안쓰럽다. 사람들이 차에서 내려 걷기 시작하자 신사동 가로수길은 그 골목골목까지 도시에 걷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는 거리가 되었고, 부암동길은 도시적인 풍경 속에 자연을 느끼며 걸을 수 있는 길이 됐으며, 삼청동길은 역사가 보이는 길, 이태원 경리단길은 이국적인 풍경을 걷는 길이 되었다. 하지만 거기 그냥 있는 것이 당연한 길이 아니라 굳이 무슨무슨 길이라고 지칭되는 것 자체가 얼마나 우리에게 골목길 같은 사람들이 걷는 길이 낯선 공간이 되었는가를 말해주는 것만 같다.

 

서울 구석구석에 골목길이 생겨나는 건 도시에 인간적인 온기를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나를 설레게 한다. 하지만 '젠트리피케이션'이 생겨나는 골목길을 보다 보면 그곳 역시 자본화의 고속도로가 깔림으로 해서 밀려나고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안타까움을 피할 수 없다. 카페와 음식점들로 가득 채워지기 전, 고즈넉한 한옥의 처마를 내주던 익선동 골목길이 그립다. 그곳 거북슈퍼에서 잠시 다리를 쉬게 하고 병맥주 한 잔을 홀짝이던 그 한적한 온기가 자본의 열기로 채워져 있는 것이 못내 아쉽다. 그래도 나는 약속시간 30분 전에 도착해 골목길을 찾는다. 그렇게 한 명 두 명 걷다 보면 없던 길도 만들어질 거라고 믿으며.

2024.11.4

‘하얼빈’의 안중근 의사로 돌아온 현빈의 어른이 되는 과정

하얼빈

영화 ‘하얼빈’은 끝없이 펼쳐진 꽁꽁 얼어붙은 강 위를 걸어나가는 안중근(현빈)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영화 ‘듄’을 촬영했던 카메라 ARRI 65에 담겨진 광활한 압도적인 광경 속에 홀로 걸어가는 안중근의 모습은 너무나 외롭고 고독하며 힘겨워 보인다. 영화 속에서 안중근은 육체적인 고통보다 더 큰 정신적인 고통을 감내하는 중이다. 신아산 전투에서 ‘만국공법’을 지켜야 한다며 풀어준 적장 때문에 동료들이 희생되는 사건을 겪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포기하고픈 마음에 얼음바닥에 눕기도 하지만, 그는 끝내 일어나 다시 그 얼음 위를 걸어나간다. 그 때 내레이션으로 흘러나오는 안중근의 목소리는 그가 무엇 때문에 포기하지 않았는가를 드러낸다. “그 순간에 깨달았습니다. 나는 죽은 동지들의 목숨을 대신하여 살고 있다는 것을.” 바로 먼저 간 동지들이 그를 계속 걷게 만들었던 거였다. 

 

‘하얼빈’에서 안중근을 연기한 현빈은 그 두만강을 건너는 장면을 몽골의 홉스골이라는 호수에서 홀로 그 한복판으로 들어가 걷고 쓰러지고 누워버리다 다시 일어나 걷는 그 일련의 과정들을 통해 찍었다고 한다. 영화만 봐도 그 촬영이 얼마나 힘겨웠을지 느껴지는데 이에 대해 ‘유퀴즈 온 더 블럭’에 나왔던 현빈은 의외의 말을 꺼내놨다. 힘들기보다는 그 “고립되어 있고 외로이 있는 상황들이” 오히려 안중근 의사를 연기하는데 도움이 됐다는 거였다. 끝이 보이지 않는 얼음 위를 한 발 한 발 끊임없이 내디뎌야 되는 그 마음이 어땠을지 그 혹독한 촬영 현장 덕분에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하얼빈’ 촬영 당시, 홉스골에서 있었던 이 이야기는 현빈이라는 배우의 현재를 잘 보여준다. 한때는 비현실적으로 잘 생긴 외모 이야기가 배우로서의 이야기보다 더 많았던 현빈이었다. 하지만 그의 필모를 잘 들여다보면 그가 배우로서 얼마나 노력해왔고, 그 결과 현재의 아우라를 갖게 됐다는 걸 실감할 수 있다. 실제로 그를 스타덤에 올린 ‘내 이름은 김삼순’을 보면 당시 그가 연기했던 현진헌이라는 인물이 가진 새로움이 느껴진다. 김삼순을 직원으로 둔 까칠한 연하남 사장이다. 그 까칠한 인물이 김삼순에게 점점 빠져들고 그래서 한라산 꼭대기에서 “누구 맘대로 김희진이야! 난 삼순이가 좋다고 그랬지?”하고 말하는 장면에서 시청자들이 울컥하게 된 건 현빈의 눌러주는 연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무려 50%가 넘는 시청률을 기록한 이 작품을 통해 현빈은 폭넓은 팬층을 확보한 배우가 된다. 

 

그리고 김은숙 작가의 ‘시크릿 가든’으로 현빈은 스타 배우로서의 정점을 찍는데 이 작품 역시 쉬운 역할은 아니었다. 백화점을 소유한 재벌3세 역할이었지만 스턴트우먼인 길라임(하지원)과 몸이 바뀌게 되고 사랑에 빠지게 되는 판타지가 들어 있는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이 작품으로 백상예술대상에서 대상을 받은 현빈은 무수한 광고의 모델이 될 정도로 신드롬급의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현빈은 이러한 초절정의 인기 속에서도 그 순간에 깊숙이 빠져들지는 않았다. 그건 평소 부모님이 현빈에게 “큰 거에 빠져 심취해 있으면 작은 것의 감사함을 모를뿐더러, 그것이 없을 때의 상실감도 클 수 있다”고 말해왔기 때문이라고 한다. 세상의 이목이 다 집중되던 그 순간에 현빈은 해병대에 입대했고, 그래서 백상예술대상의 대상 수상소감도 군대에서 군복을 입고 찍은 영상으로 전해졌다.

 

‘유퀴즈 온 더 블럭’에서 그는 군대가 차분하게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해줬다고 말했다. “제 일과 현빈이라는 사람을 떨어져서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어요. 그 시기가 굉장히 좋았던 시기였던 것 같아요. 내무반에서 TV를 보다가 다른 사람들의 작품이 나오면 그게 어느 순간 하고 싶은 거예요. 내 직업을 내가 이만큼 좋아하고 있고 이걸 놓지 않고 있구나 하는 걸 새삼 느끼게 된 좋은 시간이었죠.” 

 

이 시간들이 자양분이 되어 현빈은 전역 후 보다 성숙한 배우로서의 면모들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영화 ‘역린’으로 첫 사극을 찍었는데, 단 한 줄로 ‘세밀한 등 근육’이라고 써 있는 그 몸을 만들기 위해 헬스가 아닌 맨 몸 운동으로 잔근육을 만들 정도로 그는 연기에 진심이었다. 드라마 ‘하이드 지킬, 나’에서는 이중인격을 가진 인물을 연기했고, 영화 ‘공조’에서는 임무를 받고 남한으로 내려와 남한 형사와 공조 수사를 진행하는 북한 형사를 연기했다. ‘협상’에서는 처음으로 악역에 도전했고, 드라마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에서는 실제 게임 속으로 들어가는 판타지 설정의 드라마에 그의 연기가 현실감을 부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리고 ‘사랑의 불시착’으로 또 한 번의 신드롬을 불러 일으키며 함께 연기했던 손예진과 세기의 결혼에 골인해 가정을 이뤘다. 

 

이러한 일련의 성장 과정들이 있어서일까. ‘하얼빈’으로 돌아온 현빈은 어딘가 달라보인다. 안중근이라는 인물의 내면을 보다 깊이있게 담아내고 있는데, 그건 그 서른 즈음에 죽을 걸 알면서도 그 길을 외면하지 않고 걸어간 안중근을 이해하려한 그의 노력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또한 ‘하얼빈’에서 현빈은 다른 배우들과의 앙상블에 있어서도 도드라진 면모를 보인다. 물론 그가 주인공이지만 함께 독립 투쟁을 한 다른 인물들이 똑같이 주목될 수 있게 해준다. 그래서 ‘하얼빈’은 안중근 한 사람만이 아니라 우덕순(박정민), 이창섭(이동욱), 김상현(조우진), 공부인(전여빈) 같은 여러 독립군의 면면이 살아있는 작품이 됐다. 

 

“내가 한발짝 뒤로 물러나면서 어른이 되는 것 같다.” ‘유퀴즈 온 더 블럭’에서 현빈은 가정을 꾸린 후의 변화를 그렇게 말했다. 자신이 점점 뒤로 가면서 이 상황들을 책임져가는 것. 내 중심에서 내가 중심이 아닌 사람이 점점 되어가는 것이 바로 ‘어른’이 되어가는 것이라는 이야기다. 아마도 현빈의 연기에서 느껴지는 깊이는 여기서 나오는 게 아닐까. 한발짝 뒤로 물러남으로써 생겨나는 여유는 깊이를 만든다. 연기에 있어서나 삶에 있어서나 현빈이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글:국방일보, 사진:영화'하얼빈')

하얼빈

“모든 걸 포기하고 죽으려 했습니다. 죽은 동지들의 참담한 비명이 귓가를 맴돌고 눈앞을 떠돌았습니다. 그 순간에 깨달았습니다. 나는 죽은 동지들의 목숨을 대신하여 살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내가 해야할 일을 알았습니다. 대한제국을 유린하는 일본 늑대의 우두머리, 늙은 늑대를 반드시 죽여 없애자고.” 우민호 감독의 영화 ‘하얼빈’은 이러한 내레이션과 함께 죽은 줄 알았던 안중근(현빈)이 꽁꽁 얼어붙은 두만강을 건너 살아돌아 오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영화관에서 봐야 그 압도적인 스케일이 느껴질 법한 그 광경은 실제 두만강의 풍경은 아닐게다. 칼바람이 불어오는 얼음 위를 홀로 걸어나가는 모습은 보기만 해도 오한이 들 것 같은 느낌으로, 그 곳을 걷는 이의 마음 속을 들여다보게 만든다. 그 마음은 지옥이다. 

 

그는 신아산 전투에서 포로로 잡힌 일본군 장교 모리(박훈)를 ‘만국공법’을 지켜야 한다는 이유로 풀어줬다가 동료들이 희생되는 충격적인 사건을 겪었다. 내레이션으로 나온 그 말 그대로 그는 ‘모든 걸 포기하고 죽으려는’ 마음까지 있었을 게다. 꽁꽁 얼어붙은 두만강 위를 걷다가 그 차디찬 얼음바닥에 누워버린 그는 그러나 끝내 일어나 다시 그 얼음 위를 걸어나간다. ‘길을 잃고’ 방황하던 그를 붙잡아준 건 아이러니하게도 그를 절망하게 만든 먼저 간 동지들이었다. ‘하얼빈’은 이 일로 목표를 분명히 알게 된 안중근이 늙은 늑대,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하기 위해 계속 앞으로 나가는 이야기다. 그 끝이 결국 자신의 죽음이라는 걸 알면서도. 

 

사실 안중근의 이 이야기를 모르는 한국인들은 없을 게다. 누구나 역사책을 통해서 그 이야기를 접한 바 있고, 역사 다큐멘터리나 심지어 예능 프로그램에서조차 그 이야기는 자주 등장했다. 뮤지컬과 영화로도 제작된 ‘영웅’이 있었고, 종교적으로 그려낸 영화 ‘도마 안중근’도 있었으며, 보다 인간적인 안중근의 면면을 따라간 김훈 작가의 소설 ‘하얼빈’도 있었다. 이 정도면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를 굳이 영화로 왜 만들었을까 싶지만, 본래 역사를 소재로 하는 작품들은 시대에 따른 재해석이 담기기 마련이다. 우민호 감독의 ‘하얼빈’은 저 두만강을 건너는 장면이나, 사막을 건너가는 장면처럼 마치 지옥도 같은 압도적인 풍광으로 펼쳐진 절망적인 심리적 상황 속에서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나아가는 위대한 인간의 모습으로 안중근을 재해석했다. 그래서 안중근을 비롯한 독립투사들이 은거지에 모여 대화를 나누는 장면들은 마치 램브란트의 그림을 보는 듯한 음영이 분명한 영상으로 담겼는데, 그것 역시 이들의 내면이 투영된 것처럼 표현된다. 어둠이 금세라도 이들 잡아먹을 것처럼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지만, 그 어둠은 오히려 이들의 굳은 의지가 드러나는 얼굴을 빛나게 한다. 

 

결코 ‘하얼빈’은 편안하거나 유쾌하게 즐길 수 있는 영화는 아니다. 절망의 어둠 속을 들여다보는 일이고, 꽁꽁 얼은 길을 함께 걸어가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요즘처럼 어려운 극장가에서 400만 관객을 돌파했다는 건 놀라운 일이다. 도대체 무엇이 이런 영화의 힘을 만들어내고 있는 걸까. 

 

혹자는 ‘국뽕’을 이야기하지만, ‘하얼빈’은 결코 감정에 호소하는 작품은 아니다. 이는 마지막에 사형대에 오르는 안중근의 모습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영웅’에서 그 장면은 비장하게 그려지며 관객들의 감정을 끌어올리지만, ‘하얼빈’에서는 무감하게 처형되는 장면으로 간단히 연출된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의 흥행은 여러모로 그 누구도 예상 못했던 현 시국의 영향을 얘기할 수밖에 없다. 이런 시국이 아니라면 그저 평범한 대사 한 줄로 여겨졌을 이토 히로부미가 조선인에 대해 말하는 대사가 이토록 큰 화제가 됐을 리 없기 때문이다. “조선이란 나라는 어리석은 왕과 부패한 유생들이 지배해 온 나라지만 저 나라 백성들이 제일 골칫거리야. 받은 것도 없으면서 국난이 있을 때마다 이상한 힘을 발휘한단 말이지.” 메인 예고편에도 고스란히 들어간 이 장면에서 관객들 대부분은 현재 벌어진 탄핵 정국을 떠올렸을 게다. 비상 계엄 선포라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을 때 국회로 달려가 이를 저지했고, 탄핵안 통과를 위해 국회의사당 앞에 구름 같이 모여 응원봉을 들었던 시민들을 떠올렸을 게다.

 

우민호 감독이 한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서 이 장면에 대해 꺼내놓은 이야기 역시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이토 히로부미가 실제로 한 말이에요. 유생들이나 왕은 하나도 두렵지 않은데, 마차 타고 총독부를 갈 때마다 자신을 쏘아보는 민초들의 눈빛이 너무 서늘했다고요. 민초들에겐 두려움을 느낀 거죠. 그런데 지금 시대가 이렇다 보니 그게 또 다른 의미로 받아들여지게 돼 참 아이러니하고 서글프기도 하네요.” 당대의 민초들의 눈빛처럼 현재의 관객들도 같은 눈빛으로 이 영화를 쏘아보며 현 시국을 생각하지 않았을까. ‘하얼빈’은 그래서 그 절망적인 시국을 외면하지 않는 눈빛들이 모여든 영화처럼 보인다. 물론 이건 우민호 감독이 의도한 바는 아니다. 하지만 임진왜란과 일제강점기에 무능한 기득권자들에 의해 비극에 내몰린 민초들이 그 절망을 뚫고 나오는 그 과정들이 지금도 반복되고 있다는 건 감독의 말처럼 서글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영화는 풀 한 포기 자라날 것 같지 않은 얼음 위를 걸어가는 안중근의 모습으로 시작하지만, 그가 사형대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장면에서 화면을 전환해 하늘을 향해 뻗어있는 나뭇가지들을 보여준다. 꽁꽁 얼어붙은 겨울의 절망이 꽃이 피어나는 봄으로의 희망을 꿈꾸는 장면이다. 그런데 그 봄은 그냥 오는 게 아니라고 영화는 말하고 있다. 누군가 포기하지 않고 가야할 길을 꿋꿋이 걸어간 이들이 있어 그 봄이 오는 것이라고. “어둠은 짙어오고 바람은 더욱 세차게 불어올 것이다. 불을 밝혀야 한다. 사람들이 모일 것이다. 사람들이 모이면 우리는 불을 들고 함께 어둠 속을 걸어갈 것이다.” 안중근의 외침이 가슴에 와닿는 꽁꽁 얼어붙은 시국이다. (글:이데일리, 사진:영화'하얼빈')

‘나의 완벽한 비서’의 이준혁이 자극하는 판타지

나의 완벽한 비서

‘살림’이나 ‘비서’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우리는 저도 모르게 여성을 떠올리는 경향이 있다. 가부장적 시대를 거치며 오래도록 성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을 우리도 모르게 갖게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이러한 성 역할 고정관념은 깨지고 있다. 드라마만 봐도 그렇다. ‘소년심판’ 같은 드라마에 등장하는 여성 판사가 그렇고, ‘낭만닥터 김사부’에 등장하는 남성 간호사처럼 한때 판사하면 남성을 간호사 하면 여성을 떠올리던 고정관념을 깨는 인물들이 최근에는 일상적으로 등장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나의 완벽한 비서’는 이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드라마다. 제목에 등장하는 ‘비서’는 다름 아닌 이준혁이 역할을 맡은 유은호라는 남성이니 말이다. 

 

그런데 이 유은호가 강지윤(한지민)이라는 피플즈라는 헤드헌터 회사 대표의 비서로 스카웃되는 이유가 흥미롭다. 그건 싱글대디로 딸을 홀로 키우며 너무나 깔끔하게 육아와 가사를 하고 있는 그가 눈에 띠었기 때문이다. 완벽하게 정리정돈되어 있는 집안 구석구석과 꼼꼼하게 그 날 해야할 일들이 적혀 붙여져 있는 스케줄표를 본 강지윤의 친구이자 피플즈의 이사인 서미애(이상희)가 유은호가 비서로서 적임자라 판단하는 것. ‘살림’이라는 집안일을 잘하는 그 능력이 ‘비서’라는 직장 내의 능력이 되는 판타지를 이 작품은 건드린다. 아마도 육아 때문에 경력단절을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여성들이라면 유은호의 재취업(?)을 보며 어떤 통쾌함을 느끼지 않았을까. 이 인물이 일과 가정을 모두 쟁취하고픈 여성들에게 판타지를 주는 이유다. 

 

그런데 이준혁을 보면 일에 있어서도 또 살림에 있어서도 뭐든 척척 잘 해내는 유은호를 닮았다. 어떤 역할도 잘 살려내는 배우라는 점에서다. ‘나의 완벽한 비서’에서만 봐도 그렇다. 유은호는 회사에서 잘 나가는 능력있는 직장인이었지만 홀로지내며 마음에 빈 자리가 늘어가는 딸을 위해 육아휴직을 선택하는 인물이다. 그래서 가사일도 척척해내는 살림꾼이 된다. 능력있는 직장인과 살림 잘하는 살림꾼의 역할이 마치 분리되어 있는 것처럼 생각해온 고정관념의 틀에서는 이 두 가지가 조화를 이루는 게 어려울 것처럼 보이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준혁은 자상함과 배려심이 일터의 능력으로도 발휘될 수 있다는 걸 이 두 역할을 하나로 묶어냄으로써 보여준다. 게다가 이 인물은 이제 강지윤이라는 회사 대표와의 사적 멜로로 나아갈 것으로 보인다. 회사에서 대표와 비서라는 위계 관계로 구분되지만, 그걸 뛰어넘는 사적 관계 또한 그려낼 거라는 것이다. ‘나의 완벽한 비서’에서 그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주는 것처럼 이준혁이라는 배우는 어떤 위치에 어떤 역할로 던져 놓아도 마치 그것이 진짜 그 사람의 모습인 것처럼 연기해내는 인물이다. 이른바 ‘연기 살림꾼’이라고나 할까. 

 

이준혁의 이러한 다재다능한 면이 도드라졌던 작품은 다름 아닌 ‘비밀의 숲’이었다. 여기서 그가 맡은 서동재라는 검사는 돈 밝히는 ‘스폰 검사’로서 사실상 악역이었다. 하지만 시청자들은 욕망에 이끌리며 왔다 갔다 하는 이 서동재라는 인물에 점점 애정을 갖게 됐다. 선과 악으로 단순히 나뉠 수 없는 ‘인간적인 매력’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이처럼 악역조차 애정을 갖게 만든 것이 가능해진 건 역시 이 복합적인 인물을 설득력 있게 연기해낸 이준혁의 공이 컸다. 그래서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서동재라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하는 스핀오프 ‘좋거나 나쁜 동재’라는 작품이 제작된 것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인물은 선과 악을 오가는 매력을 드러낸다. 그러면서 궁극적으로는 사건을 해결해가는 과정을 그리지만, 동시에 지극히 현실적인 욕망을 추구하는 그 모습 또한 끝까지 유지해 나간다. 어찌 쉬운 역할이라 할 수 있을까. 

 

이준혁의 다재다능함과 선과 악을 넘나드는 입체적인 이미지는 그가 걸어온 필모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를 본격적으로 시청자들에게 알린 건 가족드라마를 통해서였다. 문영남 작가의 ‘조강지처클럽’에서 한선수 역할을 연기했고, 또 ‘수상한 삼형제’에서는 김이상이라는 인물을 연기했다. 두 작품 모두 당대의 드라마 트렌드였던 가족드라마였다. 하지만 이준혁은 이러한 가족드라마 속 평범한 인물 연기에 머무르지 않고 ‘적도의 남자’의 이장일 같은 강렬한 악역에 도전하기도 했다. 또 ‘맨몸의 소방관’ 같은 전형적인 영웅 서사의 인물을 연기하기도 했고, ‘60일, 지정생존자’ 같은 작품에서는 선인지 악인지 알 수 없는 미스테리한 위치에 서 있는 인물을 특유의 선악을 넘나드는 이미지로 소화해내기도 했다. 가족드라마 같은 생활연기로 시작했지만 ‘비밀의 숲’을 넘어 ‘비질란테’, ‘다크홀’ 같은 장르물의 다소 판타지를 자극하는 연기까지 자신의 영역을 넓혀왔다. 또 ‘범죄도시3’에서는 메인 빌런인 주성철 역할을 맡아 20킬로에 가까운 벌크업으로 완전히 다른 이미지를 그려낸 바 있다.  

 

대중들은 이준혁을 진중함과 비열함 그리고 다정함을 오가는 배우라고 일컫는다. 입을 꾹 다물고 있을 때는 특유의 그 진중함이 묻어나지만, 때론 경박하게까지 보이는 수다쟁이가 되기도 하고 때론 그 표정 뒤에 숨겨진 모습으로 비열함을 드러내기도 한다. 그러면서 눈빛을 부드럽게 만들면 금세 한없이 다정한 연인의 얼굴로 변신한다. ‘나의 완벽한 비서’는 바로 그 다정함을 무기로 보는 이들을 무장해제하게 만드는 그의 얼굴을 드러낸다. 

 

‘살림’은 본래 불교용어에서 나온 말이지만 ‘집안의 경제나 생활 등을 맡아 운영, 관리하는 일’이라는 뜻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여기에는 ‘살린다’는 의미 또한 부가되어 있다. 사실 우리의 일상은 내버려두면 망가지거나 어지럽혀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너무 일상적이어서 잘 보이지 않지만 누군가의 살림이야말로 우리의 일상을 살리는 일이 된다. 이건 연기의 세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아주 슬쩍 지나가는 역할이라도 이를 살려내기 위한 노력들이 뭉쳐질 때, 연기의 하모니가 힘을 발휘하고 이건 작품의 성공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살림’은 이제 고정된 성 역할의 의미에서 벗어나 누구나 추구해야할 가치가 아닐까 싶다. 어떤 역할이든 살려내는 연기 살림꾼 이준혁처럼. (글:국방일보,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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