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드라마들 사투리에 푹 빠진 이유

소년시대

“아오, 환장하겄네. 진짜..” 쿠팡플레이 오리지널 드라마 <소년시대>에는 찰진 충청도 사투리가 드라마 전체의 정서를 만들어낸다. 온양에서 늘 맞고만 지내던 장병태(임시완)가 부여농고로 전학오면서, 전설의 싸움꾼 ‘아산 백호’로 오인받는 기막힌 상황이 벌어지는데, 마치 호랑이 없는 굴에 토끼가 왕이라도 된 듯 어색하게 허세를 부리는 이 인물이 페이소스 가득한 웃음을 준다. 그런데 여기서 도드라지는 건 특유의 해학 가득한 충청도 사투리다. 학원 액션물로서 학교폭력이 일상이었던 1989년 어두운 시절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드라마를 밝게 만들어주고 나아가 코미디의 웃음이 피어나게 하는 건 다름 아닌 충청도 사투리다. 두드려 맞으면서도 어딘가 여유가 느껴지고, 센 척 하면서도 허술함이 느껴지는 충청도 사투리의 맛이 드라마의 독특한 정서를 만들어낸 것이다. 

 

한 때 정확한 언어 전달이 최우선이었던 시절에 사투리는 방송에서는 피해야할 것으로 여겨졌다. 그래서 정확한 발음을 요구하는 아나운서 같은 직업에 사투리는 진입장벽이 되기도 했다. 물론 간간히 전원드라마에서 사투리가 등장하곤 했지만 그것도 너무 심해 알아듣기 어려운 수준의 사투리는 피하는 게 다반사였다. 하지만 최근 들어 사정이 달라졌다. 사투리를 보다 적극적으로 내세우는 드라마들이 늘고 있는 것. 최근 방영된 드라마만 해도 <소년시대>를 비롯해 <웰컴투 삼달리>, <모래에도 꽃이 핀다>, <무인도의 디바>가 모두 유창한 지역 사투리들로 채워졌다. 지역도 다채로워서 <소년시대>가 충청도 사투리를 썼다면, <웰컴투 삼달리>는 제주 사투리를, <모래에도 꽃이 핀다>는 경상도 사투리를 또 <무인도의 디바>는 전라도 사투리를 썼다. 최근 드라마들만 해도 강원도 빼고 거의 전 지역의 사투리가 TV를 통해 흘러나온 셈이다. 

 

그런데 지역 사투리는 그냥 쓰인 게 아니고 그 작품의 색깔과 어우러져 특유의 색깔을 만들어내는 힘을 발휘한다. <소년시대>의 충청도 사투리는 특유의 해학적 어감으로 최양락이나 김학래 같은 개그맨들이 개그 소재로 자주 사용했을 정도로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그만큼 코미디에 착착 붙는다는 뜻이다. <웰컴투 삼달리>의 제주 사투리는 해녀들의 풍진 삶을 대변하듯 지역 특유의 정감과 더불어 억센 삶과 비감이 뒤섞인 정서를 만들어낸다. 이 드라마의 주인공인 조삼달(신혜선)의 엄마가 해녀로 등장하고 그 세대의 비극적인 이야기가 억센 제주 사투리와 잘 어우러진 이유다. <모래에도 꽃이 핀다>에 등장하는 경상도 사투리는 이미 <응답하라 1997>에서부터 쿨한 멜로의 정서를 잘 드러내는 사투리로 자리잡았다. 경상도 특유의 퉁명스러운 사투리의 어조는 이른바 ‘츤데레’라고 불리는 무심한 듯 다정한 사랑표현에 적합하게 활용되곤 했다. 또 <무인도의 디바>에 쓰인 전라도 사투리 역시 투박하지만 시골 정서를 가득 품은 서목하(박은빈)라는 캐릭터의 도시와는 다른 정감을 표현하는데 효과적이었다. 

 

이처럼 사투리를 써야만 하는 지역 기반의 드라마들이 많아지면서 이를 구사해야 하는 배우들의 자세도 달라졌다. 그저 흉내내는 정도가 아니라 드라마의 정서를 대변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배우들은 사투리를 익히는데 공을 들인다. 박은빈은 그래서 캐스팅 이후 사투리 선생님과 함께 하며 말을 익혔다고 했고, 임시완은 부산 출신이지만 정서까지 담아내는 사투리를 준비해와 감독을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고 한다. 물론 <모래에도 꽃이 핀다>의 주연배우인 장동윤은 대구 출신이고 상대역인 이주명 역시 부산 출신이라 아예 드라마와 맞춤인 경우도 적지 않다. 아예 해당 지역 출신 배우를 캐스팅하는 일도 심심찮게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지역 사투리가 이렇게 드라마에 많아지는 건, 역으로 보면 지역을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들이 많아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대부분 청춘들이 주인공인 드라마들이고, 이들 드라마에는 도시의 경쟁적인 삶에서 밀려나 지역으로 내려온 청춘들이 적지 않다. 소외되고 상처받은 청춘들에게 지역은 이제 그들의 상처를 보듬어주고 때론 소진된 기력을 회복시켜주는 곳으로 그려지곤 한다. 물론 실제 현실에도 도시를 떠나 지역으로 향하는 청년들이 생겨나곤 있지만 그게 하나의 흐름이라고 보긴 어렵다. 따라서 드라마가 그리는 건 현실 그 자체라기보다는 일종의 판타지로서의 지역이고, 그랬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들어간 지역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다양한 지역들이 드라마의 배경으로 등장하고, 거기에 서울 중심의 표준어를 벗어나 지역 정감을 살리는 사투리가 전면에 배치되는 건 문화 다양성 차원에서만 봐도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결국 서울을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들이 그만큼 많이 쏟아져 나왔다는 이야기고, 그것이 도시적인 삶의 이야기들을 반복하면서 드라마 자체의 다양성도 사라지게 됐다는 것이다. 그러니 지역으로 가는 드라마들의 등장은 더 다채로운 이야기와 소재를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것은 한 국가 안에서는 도시와 지역 간의 문제지만, 글로벌 콘텐츠 시장 안에서는 미국 할리우드 중심의 콘텐츠들과 변방으로 여겨진 아시아권이나 유럽, 남미의 콘텐츠들 간의 문제이기도 하다. 최근 글로벌 OTT가 콘텐츠 소비의 새로운 플랫폼으로 떠오르면서, 콘텐츠 시장 역시 영어권 중심만으로는 그 다양성을 확보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래서 K콘텐츠를 포함한 다양한 언어와 문화를 담은 콘텐츠들이 생산되어 시장 안에 들어서게 됐다. 애플이 1천억원을 들여 제작한 <파친코> 같은 작품은 단적인 사례다. 재일한인들의 삶을 다룬 이 작품은 애플이 투자한 드라마지만, 한국인의 문화와 더불어 경상도, 제주도 사투리는 물론이고 당대의 재일한인 특유의 어투까지 고증을 통해 재현해내는 노력을 선보였다. 이런 노력이 결국 한국 고유의 진한 정서를 가능하게 했고, 그것이 세계적인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원동력이 됐던 것이다. 사투리는 이제 더 이상 변방의 언어가 아니다. 콘텐츠를 통해 그 다양한 목소리들이 되살아나고 있으니 말이다. (글:이데일리, 사진:쿠팡플레이)

‘모래에도 꽃이 핀다’, 드디어 꺼내놓은 이 드라마의 찐한 매력

모래에도 꽃이 핀다

“그래 내 니한테 물어볼 거 있다. 내가 그 날 경기 끝나고 나서 바로 니한테 물어볼라 캤거든?” 지니TV 오리지널 드라마 <모래에도 꽃이 핀다>에서 김백두(장동윤)는 오유경(이주명)과 함께 임동석(김태정)을 찾아온다. 거산군청에서 형 동생 하며 김백두와 지냈던 임동석은 씨름 유망주로 다른 팀에 스카웃됐다. 그런데 거산군청에 있을 때 마지막으로 했던 김백두와의 시합으로 갖가지 의혹에 휩싸이게 됐다. 

 

그 때 임동석을 지도했던 코치가 사망한 채 발견되고, 그 코치가 죽은 것이 불법 도박에 손을 댔기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나오면서다. 즉 김백두와 한 그 경기에서 코치는 임동석에게 일부러 져 달라는 승부조작 요구를 했고 그것으로 도박을 했는데, 결국 임동석이 이기면서 다 날리고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밖에 없게 됐다는 소문이 여기저기서 터져나왔던 거였다. 그래서 이 사건을 비밀수사하는 오유경과 함께 임동석에게 따지러 온 줄 알았는데, 김백두는 엉뚱한 소리를 꺼내놓는다. 

 

“니 어금니 괘안나? 와! 아니 단오전 시합 때 니 진짜로 이 갈면서 하데? 니 이 가는 소리가 내한테 들렸다, 임마! 와, 니 평소에는 뭐 내한테 형, 형 거리면서 따르는 척 하더만은 야, 니 어금니 나가는 소리에 내가 억수로 배신감을 느꼈어, 임마! 뭐 그리 진지하게 하냐, 마!” 모두가 승부조작이라 생각하는 걸 당시 경기를 같이 했던 김백두는 아니라고 그런 식으로 강변하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해준다. “내는 니 믿는다. 샅바를 잡아 본 놈이 제일 잘 알지 않겠나, 어? 니 헛짓거리 안 한 거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내는 잘 알지.”

 

그 말을 들은 임동석의 눈은 금방이라도 울 것처럼 출렁인다. 왜 그렇지 않을까. 그 누구도 믿어주지 않고, 섣불리 자신이 승부조작에 가담했을 거라 떠들어대는 상황이 아닌가. 그는 코치가 자신에게 승부조작 제안을 한 건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하지만 그건 도저히 아니라고 생각해 제안을 수락하지 않았는데, 그럼에도 코치가 그렇게 진짜 죽게 될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며 괴로워했다. 그 때 차라리 그 제안을 수락하는 게 낫지 않았을까 자책한다. 그러자 김백두의 일침이 또 날아든다. 

 

“야, 임동석이! 내 딱 한 번만 말한다이? 니 잘 들어. 니는! 아무! 잘못이! 없다! 잘못이 있다커면은 아끼는 제자 끌어안고 불구덩이 뛰어든 그 코치 잘못이지, 안 그러나!” 잘못 한 게 없지만 그 결과로 누군가 죽음을 맞이한 사실에 어찌 자책감이 들지 않을까. 하지만 김백두는 그런 임동석에게 분명한 어조로 넌 잘못이 없다는 말로 정신이 번쩍 들게 만들어준다. 

 

김백두에게 고마움을 느끼는 임동석은 돌아서는 길에 굳이 김백두에게 그 날 막판 애매했던 경기결과에 대해 털어놓는다. “형! 형도 알지? 형이 사실 그 날 이겼다는 거. 막판에 내가 먼저 닿었잖아. 형 알고 있었지?” 하지만 정작 김백두는 판정까지가 경기라며 그가 이긴 게 맞다고 선을 긋는다. “아 이 됐다 마. 야, 그날 니랑 내랑 온 힘을 다해서 경기 치렀고, 심판 판정이 그래 난 거는 니가 이긴 거 맞지. 원래 판정까지가 경기다, 인마.”

 

<모래에도 꽃이 핀다>의 이 장면은 이 드라마가 하려는 이야기와 이 드라마가 가진 매력이 무엇인가를 극적으로 드러낸다. 이 드라마는 제목처럼 모래 같은 척박한 상황에서도 꽃을 피우는 청춘들의 이야기를 그리려한다. 불법 도박에 승부조작까지 벌어지기도 하는 씨름판은, 그 위에서 승패를 떠나 공정한 승부를 통해 꿈을 향해 나가기를 원하는 청춘들 앞에 놓이기도 하는 불공정하고 부패한 현실의 축소판이나 마찬가지다. 

 

승자는 기회를 잡고 패자는 쓸쓸하게 모래판을 떠나기도 해야 하는 이 현실의 축소판에서 김백두와 임동석이 보여주는 모습은 심지어 비현실적으로까지 보여지는 순수함이다. 경기에서 진 김백두가 오히려 승자인 임동석을 위로해주는 이 역전된 상황은 그래서 거꾸로 저 비정하고 부정한 현실을 에둘러 꼬집는다. 김백두의 진면목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어딘가 밍밍한 듯 보였던 드라마 역시 진가를 드러낸다. 

 

“니 맹탕이지. 남 생각한다고 자기 실속 못챙기고 허허실실 니가 좋으면 내도 좋다 주의에 만사가 천하 태평인 덜덜이 아이가.” 어려서부터 절친이자 김백두의 첫사랑이었던 오유경(실은 오두식)은 김백두에 대해 그렇게 말한다. 그건 핀잔처럼 들리지만 사실은 에둘러 하는 칭찬에 가깝다. 비정한 현실의 관점으로 보면 ‘맹탕’으로 여겨질지 모르는 김백두의 이런 말과 행동들은 따뜻한 휴머니티의 관점으로 보면 ‘진국’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점점 맹탕으로 보였던 김백두의 변함없는 따뜻함에 빠져드는 오유경이다. 마치 밍밍해보였던 드라마에 점점 빠져드는 시청자들처럼.(사진:지니TV)

<무인도의 디바>로 우영우를 잇는 응원을 선사한 박은빈

무인도의 디바

“그렇지만 어쩌겠습니까? 해내야죠.”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에서 늦깎이 바이올리니스트 역할을 연기하게 되면서 유튜브에 올린 ‘바이올린 연습일지’에서 박은빈은 전공생 수준의 바이올린 연주를 연기해내야 하는 고충을 이야기하며 그렇게 말한 바 있다. 몇 개월 동안의 짧은 기간 동안 쉬지 않고 바이올린 연습을 해 놀라울 정도의 연주를 보여준 그 영상에서 툭 튀어나온 이 말은 배우 박은빈의 명대사가 되었다. 그건 매번 도전적인 연기에 임하는 박은빈의 마음가짐을 그대로 대변하는 말이나 다름 없었다. 

 

최근 종영한 드라마 <무인도의 디바>에서도 박은빈은 극중 가수로 성장해나가는 서목하를 연기하며 등장하는 노래들을 직접 모두 불렀다. 그 노래들(모두 11곡)은 OST에 담겨져 음반으로 출시됐는데(1월5일 발매), 이를 위해 박은빈은 6개월 간 3시간씩 43번의 레슨을 받았다고 한다.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는 역할에 맞게 기타도 배우고, 노래 발성 연습도 했다. 또 녹음실에서 적게는 4시간에서 많게는 10시간까지 녹음을 하며 음반 작업을 했다고 한다. 배우지만 거의 가수 데뷔 같은 도전적인 노력을 했던 거였다. 아마도 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박은빈은 역시 이렇게 말했을 것 같다. 그렇지만 어쩌겠습니까? 해내야죠.

 

그런데 이 말에는 지금 현실을 살아가는 청춘들에 대한 공감과 응원이 담겨있다. 즉 너무나 버거운 현실이지만 그렇다고 피할 수도 없는 청춘들에게 그 힘겨움에 대한 공감을 전하면서도, 동시에 포기하지 않으면 해낼 수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 5살 때 아동복 모델로 시작해 연기를 하게 된 후 지금껏 쉬지 않고 그 길을 걸어온 박은빈이 그 실제 사례가 되는 셈이다. 그녀는 매번 도전 아닌 연기가 없었을 정도로 쉽지 않은 역할을 하나하나 해내면서 결국 백상예술대상 대상에 빛나는 최고의 위치까지 오르게 되지 않았던가. 

 

<청춘시대>에서는 차분하고 단단한 자신의 모습과는 완전히 상반된 음주가무, 음담패설에 능수능란한 역할에 도전했고, <스토브리그>에서는 속이 뻥 뚫리는 걸크러시를 보여주는 주도적인 프로야구 프런트 오피스 유일의 여성 운영팀장 역할을 소화했다. 그러더니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에서는 이 두 캐릭터와는 또 완전히 다른 청순하고 내셩적이며 수줍음 많은 늦깎이 대학생 역할로 변신했다. 하지만 그건 끝이 아니고 이제 활짝 피어난 박은빈의 시작이었다. <연모>에서는 역사적 사실 때문에 남자배우가 연기할 수밖에 없는 사극의 왕 역할을 연기했는데, 그건 액션부터 정치, 로맨스까지 넘나들어야 하는 난관을 넘는 일이었다. 그리고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박은빈은 이제 자폐스펙트럼을 가진 변호사라는 또 다른 산을 넘는다.

 

그런데 이들 작품 속 캐릭터들을 관통하는 것이 있다. 바로 위로와 응원이다. <청춘시대>에서 어디로 튀어도 청춘은 아름답다고 캐릭터 자체로 말해준 송지원이 그렇고, <스토브리그>에서 위태로운 야구단을 지켜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백승수(남궁민) 단장을 든든하게 받쳐주는 이세영이 그러했으며,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에서 평범하지만 열심히 살아가는 청춘들을 지지한다고 온몸으로 말해주는 듯한 채송아가 그랬다. 또 박은빈은 <연모>에서 여성이라는 정체를 숨긴 채 피 튀기는 궁중 생존기를 겪는 이휘를 통해 차별적인 삶을 살아가는 현대여성들을 응원했고,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장애를 갖고 있지만 변호사로서 어려움에 처한 이들을 돕는 우영우를 통해 편견 없는 세상을 지지했다.

 

그래서였을까. <무인도의 디바>의 서목하는 극중 캐릭터이면서 동시에 ‘위로와 응원의 아이콘’으로서 박은빈 자체로 보이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였다. 한 때는 디바로 불렸지만 지금은 한물 간 기성가수가 되어 자포자기의 삶을 살아가는 윤란주(김효진)에게 서목하가 던지는 무한 응원이 그렇다. “시상에 언니 팬이 딱 하나 남았다고 하믄, 언니, 응? 그것은 서목하고요. 언니 팬이 없다고 하믄 그것은 이 서목하가 세상에 없어져 붓다 치면 돼요, 언니. 언니, 지는요 언니. 언니를 위한 것은 뭣이든 해요, 언니. 어 풍선 그깠거 불라믄 천 개, 만 개도 불어요, 언니. 일도 아니어요, 언니. 그니까요 언니 응? 힘내 불어요잉.” 그 말은 마치 저마다 힘겨운 현실을 마주하고 있는 서민들에 대한 응원처럼 들렸다. 박은빈은 그렇게 서목하의 목소리를 빌어 우리를 위로하고 응원하고 있었다. 

 

실로 박은빈은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로 2020 SBS 연기대상 최우수상을 받았을 때 자신이 연기를 하는 이유를 이렇게 밝힌 바 있다. “극중 송아가 ‘음악을 하기로 선택했으니까 음악이 우리에게 위로가 될 수 있다고 믿어야 하지 않을까요?’라는 대사는 했는데요. 저도 배우가 되기를 선택했으니까 제가 선택한 작품이 그리고 제가 하고 있는 일이 누군가에 위안이 되고, 위로가 될 수 있기를 바라면서 연기하도록 하겠습니다.” 또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로 백상 예술 대상 대상을 받았을 때도 그의 수상소감에는 세상의 많은 다양하고 다른 존재들에 대한 응원의 목소리가 실렸다. “가장 좋아하는 대사는 제 삶은 이상하고 별나지만 가치있고 아름답습니다. 라는 대사였는데요. 영우를 통해 이 이야기를 전할 수 있어서 너무 기뻤습니다. 나는 알아도 남들은 모르는, 또 남들은 알지만 나는 알지 못하는 그런 이상하고 별난 구석들을 영우가 가치있고 아름답게 생각하라고 얘기해주는 것 같아서 많이 배웠습니다.”  

 

도전적이고 경쟁적인 세상이다. 최후의 1인이 모든 걸 독식하는 현실 속에서 무수히 많은 소외되는 이들이 생겨난다. 그래서 누군가의 응원이 절실해진다. 당신은 여전히 잘 살아가고 있고, 힘겹지만 결국은 해낼 거라는 응원. 박은빈은 자신 또한 결코 쉽지 않았지만 결국은 해냈던 여러 역할들의 목소리를 빌어 우리를 응원한다. 그만큼 진정성이 담겨 있기에 그 역할의 대사들은 더더욱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게다가 그녀는 이것이 배우로서 해야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대단하다고 생각하게 되는데 그건 마치 <무인도의 디바>에서 변함없는 응원을 받았던 윤란주가 서목하에게 갖는 마음과 다르지 않다. “나 아닌 누군가를 온전히 응원하는 건 정말 어려워. 아무 대가 없이 질투 없이 남의 행복을 진심으로 기뻐해주는 건 더 어렵고. 그게 목하 니가 대단한 이유야.” 우리 또한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박은빈처럼. (글:국방일보, 사진:tvN)

티빙 오리지널 드라마 ‘이재, 곧 죽습니다’, 12번의 다른 삶이 꺼낸 재미와 의미

이재 곧 죽습니다

한 작품 안에 이토록 다양한 장르가 겹쳐진 드라마가 있었을까. 멜로와 스릴러가 결합하고 사극과 멜로가 더해지는 식의 멀티 장르는 있었지만, 장르의 종합선물세트 같은 작품은 처음이 아닐까 싶다. 티빙 오리지널 드라마 <이재, 곧 죽습니다>의 신박한 세계다. 

 

뻔한 취준생의 회귀물인 줄 알았다면 오산

그 어렵다는 태강그룹 최종면접까지 갔지만, 면접날 눈앞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한 한 남자를 마주한 후 그 충격에 망쳐버린 면접에서 떨어진 이재(서인국)는 그 후로 절망적인 취준생의 삶을 살아간다. 알바를 전전하며 여자친구 지수(고윤정)에게 변변한 밥 한 끼 사지 못하는 처지에, 알바로 번 돈 전부를 투자 사기를 친 친구 때문에 다 날려버린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여자친구가 웬 남자랑 차에서 내리는 걸 보고는 남자친구라 생각해 이별을 통보하고, 집세를 내지 못해 쫓겨날 처지가 된다. 그리고 기대했던 태강그룹 최종면접의 결과는 또 불합격. 절망의 끝에서 이재는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사는 게 두렵지 죽음 따윈 전혀 두렵지 않다.”

 

티빙 오리지널 드라마 <이재, 곧 죽습니다>는 이처럼 첫 회 시작한 지 15분 정도가 지난 후 주인공인 취준생이 절망의 끝에서 죽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러니 이 죽음이 끝일 리 없다. 죽었다 생각한 그는 곧 태강그룹의 둘째아들 재벌3세 박진태(최지원)로 깨어난다. 그것도 개인 전용 비행기 안에서. 그런데 그 옆에는 미스테리한 여인 죽음(박소담)이 그를 쳐다보고 있다. 죽음은 지옥으로 가는 이재를 붙잡아 그가 저지른 죄에 대한 벌을 주겠다고 한다. ‘죽음 따윈 전혀 두렵지 않다’고 말한 이재에게 죽음이 얼마나 두려운 것인가를 알려주겠다고 한다. 그건 12번의 죽음(혹은 삶)을 경험하게 해주겠다는 것. 그래서 첫 번째로 다시 깨어난 게 바로 박진태의 몸이다. 이재는 개인 전용 비행기까지 타고 있는 이 인물의 다른 삶으로 깨어난 데 대해 쾌재를 부르지만 그것도 잠시 비행기는 엔진에 불이 붙으면서 추락하기 시작한다. 살려고 발악하지만 그는 온 몸에 불이 붙은 채 사망한다. 그리고 깨어난 곳은 지옥으로 가는 길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는 죽음이다. 죽음은 그에게 죽을 위기에 처한 또 다른 새로운 삶 속으로 그를 보낼 것이라 하고, 거기서 죽지 않고 살아남으면 그 삶을 살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다짜고짜 이재의 머리에 권총을 쏜다. 

 

두 번째로 깨어난 몸은 익스트림 스포츠 선수 송재섭(성훈)이다. 그는 낙하산 없이 추락해 안전그물이 쳐진 곳으로 무사히 떨어지면 30억의 후원을 받게 되는 미친 미션을 위해 하늘에서 낙하하는 중이다. 잠시 희망을 가졌지만 허무하게 맨땅에 쳐박고 사망하게 된 이재는 그런 식으로 제3, 제4의 삶을 계속 맞이하게 된다. 죽는 순간 새로운 삶을 살게 된다는 ‘회귀물’의 공식을 따르고 있지만, 자신이 아닌 다양한 타인의 삶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는 점에서 그 서사는 인물들마다 색달라진다. 게다가 그가 들어간 타인은 곧 죽을 위기에 처한 이들이다. 그러니 그 서사의 긴박감도 높아진다. 뻔한 취준생의 아픔을 되돌리는 회귀물처럼 보였던 이 작품은 그 첫회만에 색다른 세계관을 꺼내놓으며 신박하게 다가오기 시작한다. 

 

재난, 액션, 학원물, 조폭누아르, 멜로까지... 장르 종합선물세트

흥미로운 건 이재가 회귀하게 된 인물에 따라 다른 서사와 더불어 장르도 변주된다는 점이다. 박진태가 짧은 재난물의 스펙터클을 보여준다면, 송재섭은 익스트림 스포츠가 등장하는 액션 코믹물의 볼거리를 제공한다. 세 번째 몸으로 회귀한 권혁수(김강훈)는 열일곱살 고등학생으로 일진들의 상습적인 학교폭력을 겪고 있는 피해자다. 그런데 그 몸에 들어간 이재는 취준생의 어른이었다는 점에서 이 폭력을 그냥 당하고만 있지 않는다. 그는 머리를 써 학교폭력 가해자에게 당한 만큼 돌려주는 사이다 전개를 보여주는데, 그건 다름 아닌 학원액션물의 장르적 재미를 선사한다. 네 번째 몸으로 회귀한 이주훈(장승조)은 조폭 해결사로 위기에 처한 보스의 여자를 구해 달아나는 중이다. 당연하 조폭 느와르의 논스톱 추격 액션이 펼쳐진다. 그러더니 다섯 번째 몸으로는 격투기 선수 지망생으로 음주운전 사고를 내고 뺑소니친 재벌3세를 대신해 감옥에 가게 된 조태상(이재욱)으로 깨어난다. 이제 감옥을 배경으로 하는 장르물이 펼쳐진다. 

 

한 마디로 장르 종합선물세트라고 다양한 새로운 인물들의 삶을 살지만, 흥미롭게도 그 삶들의 겹쳐지는 부분들이 생긴다. 즉 세 번째 삶에서 권혁수를 그토록 괴롭히던 이진상(유인수)이 다섯 번째 삶에서 감옥에 가게 된 조태상의 같은 감방으로 들어오게 되는 식이다. 이러니 세 번째 삶과 다섯 번 째 삶에서 두 사람의 입장은 뒤집어진다. 권혁수로서는 피해자였지만 감방의 짱인 조태상으로서는 이진상에게 복수를 할 수 있는 가해자 입장이 되는 것이다. 

 

여기에 이재가 죽기 전 헤어졌던 여자친구 지수의 진심을 알게 되는 멜로적 순간들도 등장한다. 모델 장건우(이도현)로 새 삶을 살게 되면서 카페를 찾아오는 지수를 만나게 되면서다. 이재지만 장건우라는 몸으로 깨어난 입장이라 눈앞에 너무나 사랑하는 지수를 두고도 다가갈 수 없는 그 절절한 멜로가 그려진다. 다시 새로운 삶으로 깨어나고 죽기를 반복한다는 세계관을 통해 다채로운 장르물의 묘미가 펼쳐지는 것. 요즘처럼 여러 장르들에 익숙한 시청자들로서는 그 다양한 맛을 이 작품 하나로 즐길 수 있게 된 것이다. 

 

한 자리에 모인 배우 유망주들

12번의 다른 삶을 산다는 세계관은 또한 12명의 배우 유망주들을 한 자리에 끌어 모았다. 서인국과 박소담을 중심으로, 최시원, 성훈, 김강훈, 장승조, 이재욱, 이도현, 김재욱, 오정세 같은 배우들이 이재가 깨어난 새로운 몸의 주인공들로 열연했고, 여기에 고윤정, 김지훈, 김성철, 유인수, 려운 같은 배우들도 가세했다. 이들은 물론 이미 대세배우로 자리매김한 인물들도 있지만 그보다 앞으로의 발전 가능성이 더욱 큰 배우들이라는 점에서 ‘유망주’라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어쩌면 향후 몇 년이 지난 후, 각각 저마다의 작품을 통해 톱배우가 된 이들이 한 자리에 모인 작품으로서 <이재, 곧 죽습니다>가 거론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만큼 이 드라마는 다양한 개성과 매력을 가진 배우들을 한꺼번에 볼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12번의 죽음 혹은 삶을 회귀하는 것으로 <이재, 곧 죽습니다>가 하려는 이야기는 뭘까. 그건 애초 이재가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며 던졌던 “나는 사는 게 두렵지 죽음 따윈 전혀 두렵지 않다”는 그 말이 이 과정을 통해 어떻게 뒤집혀가는가에 담겨 있다. 즉 이재는 계속되는 죽음을 맞이하며 어느 순간 점점 살고 싶은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죽음이라는 존재가 나타나 나를 우습게 본 죄에 대한 벌을 내리겠다고 한 것처럼, 절망 속에서도 죽음이 결코 쉽게 할 선택은 아니라는 걸 이 작품은 매 번 새로운 삶 속에서 보여준다. “처음에는 엄청 억을했는데 스스로 인생 망쳐버리고 죽음이란 감옥에 갇히게 된 걸 후회해. 너무 늦게 알았는데.. 지옥을 보고 나니까 살아있는 거 자체가 기회였더라.“ 조태상의 몸으로 회귀한 이재가 툭 던지는 이 말 속에 그 의미가 담겨있다. 다채로운 장르물의 스펙터클과 치고받는 서사의 묘미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드는 몰입을 선사하면서도, 일관된 메시지의 의미를 놓치지 않는 작품이다. 많은 회귀물들이 드라마로 리메이크되어 이미 흔해진 상황이지만, 익숙한 틀도 계속 진화할 수 있다는 걸 이 작품은 색다른 세계관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사진:티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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