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 장벽과 김밥지옥에도 어쩌다 사장3’을 계속 보게 만드는 건

어쩌다 사장3

 

“근데 사장님이 와야 되요. 이거 줘야 돼요.” tvN <어쩌다 사장3>에서 엄마와 함께 와서 식사를 하는 한 꼬마가 그렇게 이야기하며 무언가를 꺼내든다. 자신이 직접 그려 만든 태극기다. 아이가 그걸 굳이 그려 사장님(차태현)에게 주려 하는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차태현이 선물이라며 볼펜을 줘서다. 그 볼펜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아이는 그걸 그려 선물로 가져온 것. 

 

그걸 받은 차태현은 태극기에 아이의 이름인 ‘민’을 적어 굳이 그 아이가 그린 거라는 표시를 한 후 식당 벽 잘 보이는 곳에 테이프로 붙여준다. 또 함께 온 언니 서현이 꾹꾹 눌러 한글로 쓴 메모도 그 밑에 붙여 놓는다. 거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우리에게 친절하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 서현과 민’ 

 

사실 별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이 한인 마트가 미국 캘리포니아의 마리나라는 바닷가 마을에 있는 곳이라는 점은 그 소소함에 깃든 따듯한 마음들을 새삼스럽게 한다. <어쩌다 사장3>가 굳이 언어도 잘 소통하기 어려운 이역만리까지 날아오게 된 건 바로 이런 ‘거리감’ 때문에 더더욱 반가울 수 있는 마음들을 만나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실제 현실은 쉽지만은 않았다. 역시 영어가 능숙하지 않은 차태현과 조인성은 손님 응대 자체가 쉽지 않았고, 꽤 큰 규모의 마트와 바코드도 사용하지 않는 계산만으로도 정신을 차리기 어려울 정도였다. 게다가 이 마트의 가장 큰 특징이자 난관으로 ‘김밥’이 있었다. 단돈 2불에 한 줄이라 너무 싸면서도 맛있는 김밥은 만들면 바로 동이 나버리는 밑빠진 독 같은 상품이었다. 

 

김밥 마는 것 자체도 익숙하지 않은 이들은 그래서 시작부터 마트 영업을 하는 것인지 김밥집을 하는 것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김밥을 만드는 일에 몰두할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영어 소통이 원활했던 한효주가 응대에 나서고, 그 뒤로 합류했던 박경림이 영어면 영어, 손님 응대면 응대 못하는 것 없는 슈퍼 알바 역할을 함으로써 난관들을 극복해나갔지만, 그래도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차태현, 조인성의 활약이 초반 잘 보이지 않은 건 아쉬운 지점이었다. 그들의 불편함이 시청자들도 편안하게 보기 어렵게 만든 이유였다.

 

그렇지만 한 5일차 정도가 지나면서 그 낯선 환경들이 점차 친숙해져가며 영어가 능숙하지 않아도 자신감있게 소통하려 하는 변화들이 생겨났다. 차태현은 짧게나마 다가가 소통하려는 모습을 보였고, 조인성 역시 촬영 스케줄 때문에 안좋았던 몸 컨디션이 조금씩 회복되며 음식을 내주는 모습에 활기가 더해졌다. 여기에 윤경호, 박병은처럼 낙천적이고 유쾌한 인물들이 가세해 분위기가 밝아졌고, 묵묵히 열심히 하면서도 엉뚱한 매력을 가진 김아중까지 더해져 초반과는 다른 느낌이 만들어졌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 보면 이런 변화를 진짜 만든 건 서현과 민이같은 마트를 찾아준 손님들의 환대였다. 딸과 함께 온 엄마가 한국인이고 아빠가 미국인이라는 한 손님은 어려서 10년 동안 대구에서 살았다며 차태현은 물론이고 조인성, 박병은과 한국말로 화기애애한 대화를 나눴다. 세나라는 한국이름도 가진 딸에게 한국음식들을 소개해준 이 손님은 다른 테이블에 앉은 미국손님에게 영어가 능숙하지 않은 사장들 대신 콩국수 먹는 법에 대해 알려주는 등의 도움을 주기도 했다. 알고 보니 그 미국손님은 지역 신문 리포터였고 그래서 이 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신문에 소개하기도 했다. 

 

그러고보면 이들이 왔다는 소식에 먼 길을 굳이 달려와 집에서 만든 음식이라며 갖다 준 손님들이 있었고, 영업이 끝나고 나서 간식을 챙겨오는 손님들도 있었다. 물론 연예인들과 <어쩌다 사장>이라는 프로그램의 팬이라고 밝히기도 했지만, 그건 어쩌면 타지 생활을 해온 그들인지라 누군가의 ‘환대’가 얼마나 큰 힘이 되는가를 체화하고 있어서가 아닐까. 

 

이들의 환대가 그들의 삶에서도 고스란히 느껴지는 순간들도 <어쩌다 사장3>에서는 발견된다. 우체국에서 일한다는 친구이자 동료로 마트를 찾은 손님들은 각각 74년, 75년 그리고 80년에 여기 왔다고 자신들을 소개했는데, 뭉클해졌던 건 그 중 한 분의 아버지가 마트에 온 걸 발견하고는 모두가 마치 자신의 아버지라도 되는 듯 벌떡 일어나는 장면이었다. 

 

91세의 연세에 눈도 안좋아 아들도 잘 알아보지 못하는 그 아버지를 보며 친구들도 마음이 좀 그렇다고 말했다. 한때는 그 분하고 낚시를 많이 다녔다는 친구는 낚시이야기를 하며 신이 나신 아버지에게 “찌 움직이는 게 보여요? 아버지?”라고 물었고 그러자 아버지는 자기 집에 낚시 도구들이며 다 있다며 오면 다 주겠다고 말했다. 

 

아버지는 아내가 안동 간고등어가 먹고 싶다고 해서 마트에 온 거라고 했다. 눈도 안 좋은데 이역만리에서 안동 간고등어를 찾기 위해 이 한인 마트까지 찾아오신 아버지의 마음이 느껴졌다. “8년째 병수발 하는데 내 나이 지금 90이여. 어떤 땐 좀 내가 너무 오래 살았나 싶기도 하고...” 그 긴 세월을 타지에서도 버텨낼 수 있었던 건 아마도 마음을 열어준 누군가의 환대가 있어서가 아니었을까. 그 환대가 김밥지옥에 영어지옥에 빠져 얼어붙었던 <어쩌다 사장3>를 조금씩 녹여주고 있었다. (사진:tvN)

‘사랑한다고 말해줘’, 이 멜로에 담긴 만만찮은 문제의식

사랑한다고 말해줘

“입시 미술도 지겹고 말 많은 애들도 질색인데 여긴 뭔가 좀 다를 거 같아서...” 지니TV 오리지널 드라마 <사랑한다고 말해줘>에서 태호(한현준)는 차진우(정우성)가 아트센터에서 농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그림수업을 하려는 이유에 대해 수업을 함께 하는 친구들에게 그렇게 말한다. 말로 소통이 되지 않아 불편할 수 있는 수업을 굳이 태호가 선택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말 많은 애들도 질색’이라는 이야기 속에는 그를 둘러싼 폭력적인 세상이 담겨 있어서다. 

 

태호는 학교폭력을 저지르는 일진들에게 당하는 피해학생을 보다못해 선생님에게 그들과 분리해달라는 이야기를 했다가 오히려 폭력의 대상이 됐다. 불의를 그냥 넘기지 못해 나선 것이지만 그것이 자신에게 불똥이 되어 돌아온 거였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힘든 건 이런 현실을 알면서도 외면하는 어른들이었다. 버스 안에서 자신이 일진들에게 갖은 폭언과 폭력을 당하는데도 앞자리에 앉아 있던 차진우는 이를 만류하려 하지 않았다. 들리지 않아 사실 자체를 몰랐기 때문이다. 

 

그런 그에게 가해학생들은 마치 들으라는 듯 비아냥 댔다. “역시 어른이셔. 봤냐? 실실 쪼개면서 쌩까는 성숙한 태도. 건들면 좆된다는 걸 아니까 어른인거야. 알겠냐? 남일에 나대다가 현생 좆망한 새끼야. 아우 우리 태호 언제 저런 훌륭한 어른 될래?” 그런 이야기에도 그냥 내리는 차진우를 그래서 태호는 오해했고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오해가 풀린 건 정모은(신현빈) 덕분이었다. 정모은이 태호에게 차진우의 인터뷰가 실린 아트센터 잡지를 보낸 것. 그걸 보고 태호는 차진우의 수업을 들으러 오게 된 거였다. 

 

그런데 태호가 농인 친구들과 함께 그림을 그리며 점점 회복되어가고 얼굴이 밝아지는 모습은 이 드라마가 가진 만만찮은 문제의식을 드러낸다. 시끄럽고 폭력적인 말들이 오가는 세상. 그걸 듣고도 못들은 척 하는 세상에 대한 문제의식이다. 오히려 농인들과 침묵의 대화를 나눌 때 더 잘 소통하고 진정한 마음을 주고받을 수 있다는 건 그래서 아이러니를 통해 현실을 꼬집는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사랑한다고 말해줘>는 듣지 못하는 화가 차진우와 마음으로 듣고 연기하는 정모은의 ‘언어의 벽’을 뛰어넘는 사랑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거기에는 또한 시끄럽고 폭력적인 세상 앞에 그것과 대비되는 ‘침묵’과 ‘고요’의 세계가 마치 대결을 벌이는 듯한 치열한 문제의식 또한 담고 있다. 차진우의 벽화는 그런 세상에 대한 소리없는 대결이나 마찬가지다. 철거를 앞둔 지역에서 남몰래 거기 살았던 사람들의 흔적을 애써 기억하려는 듯 그는 벽화를 그려넣는다. 그 그림은 세상에 침묵하는(혹은 침묵을 강요당하는) 작고 가녀리며 소외된 존재들의 소리없는 외침인 셈이다.

 

시끄러운 세상에 묻혀진 작은 소리들을 들어주는 것. 그래서 그 소리에 담긴 작지만 큰 외침들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알아주고 또 알려주는 것. 그것을 이 드라마는 차진우와 정모은이 서로의 진가를 알아가고 그래서 사랑하게 되는 그 과정을 통해 담는다. 그러면서 동시에 이들이 하고 있는 그림, 연기 그리고 음악(정모은의 친구 윤조한(이재균)이 하는)이 큰 소리 내지 않아도 그 무엇보다 크게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것 또한 그려내려 한다.  

 

무엇보다 놀라운 건 장애라는 이름으로 치부하며 때론 편견과 선입견으로 대하는 저들이 오히려 우리를 위로하고 살아갈 수 있게 해준다는 메시지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야 말로 진짜 장애를 가진 사람들일 수 있다는 것. “실례인지 모르겠지만 솔직히 좀 부럽기도 해요. 귀가 늘 열려 있다는게 괴로울 때도 많거든요. 들리는 모든 순간이 다 감사하진 않아요.” 태호의 그 말에 차진우도 공감한다. “그래 가끔은 못 듣는 것도 나쁘지 않아. 어떤 말은 듣지 못해서 새긴 상처보다 더 깊은 흉터를 남기니까.” 그러면서 태호의 등을 차진우가 조심스럽게 토닥인다. 이 드라마가 우리의 등을 토닥이는 듯한 느낌을 주는 이유다. (사진 : 지니TV)

마음껏 사랑하세요... 로운과 조이현이 선사한 크리스마스 선물 같은 엔딩

혼례대첩

‘마음껏 사랑하세요.’ KBS 월화드라마 <혼례대첩>은 엔딩과 함께 그런 자막을 덧붙였다. 멋드러진 성곽 위에서 서로의 생사와 사랑을 확인한 정우(로운)와 순덕(조이현)이 서로를 꿀 떨어지는 눈으로 바라볼 때 카메라가 뒤로 쭉 빠지며 해지는 그 아름다운 전경을 담는다. 슬슬 날아다니는 눈발. 엔딩크레딧이 오르며 그간 16회를 달려오며 시청자들을 눈호강시켰던 달달하고 코믹하기도 한 명장면들이 스틸컷으로 보여진다. 

 

그런데 거기에 흐르는 엔딩음악이 어딘가 크리스마스에 어울릴 법한 곡이다. 종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고 창밖으로는 눈발이 날릴 것 같은 느낌의 노래. 마치 현대물의 로맨틱 코미디 엔딩에서 종종 등장하는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퓨전사극인데 크리스마스 분위기라니. 마침 종영일이 크리스마스라 그렇게 선물처럼 맞춘 엔딩일 테지만, 어딘가 이 독특한 퓨전사극에 이 음악이 잘 어울리게 느껴진다. 조선판 로맨틱 코미디의 가능성을 충분히 느끼게 해준 작품이 아닌가. 

 

결국 엇갈렸던 인연의 실타래가 풀리고 저마다 연모했던 이들과 이뤄져 달달한 신혼의 단꿈을 꾸는 모습은 크리스마스 시즌이면 찾아오곤 했던 <러브 액추얼리> 풍의 로맨틱 코미디를 떠올리게 한다. 좌상집 딸 조예진(오예주)은 어머니 박씨부인(박지영)이 가문을 위해 결혼시키려던 병판집 자제 이시열(손상연) 대신 자신이 연모하는 윤부겸(최경훈)과 이뤄져 순덕의 아들 근석(김시우)에게 글공부를 해주는 광경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정순구(허남준)와 혼례를 치른 맹삼순(정보민)은 그가 너무 잘 해줘 글이 안써진다며 귀여운 투정을 부린다. 

 

입만 열면 막말이 튀어나오던 맹두리(박지원)는 마음이 갔던 병판댁 자제 이시열과 혼인해 여전히 걸쭉한 입에도 달달해진 신혼의 한가로운 나날을 보여주고, 목숨을 건 가슴 절절한 사랑을 해왔던 여주댁(박환희) 역시 딸이 흐뭇하게 보는 가운데 안동건(김동호)과 조촐한 혼례를 치른다. 그리고 왕의 사약을 받고 죽은 줄 알았던 정우는 깨어나 역시 자진한 줄 알았던 순덕을 다시 만나 왕이 허락한 광부 원녀 소탕(?)을 위한 암행길에 나선다. 이보다 완벽한 로맨틱 코미디의 엔딩이 있을까.  

 

그런데 잘 들여다보면 <혼례대첩>이 담은 로맨틱 코미디 서사는 현대물의 그것들을 조선판으로 그려낸 것들이 적지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좌상집 딸 조예진(오예주)이 혼롓날 예복을 입은 채 도주하는 장면은 결혼식날 웨딩드레스를 입은 채 진짜 사랑하는 연인을 향해 달려가는 신부가 떠오른다. 연애소설을 쓰던 맹삼순과 아픈 상처 때문에 연애에는 담을 쌓고 살던 정순구가 서로의 연모하는 마음을 확인하는 과정도 마찬가지다. 사실 잘 들여다보면 돌싱인 정우와 순덕이 남을 연결해주는 중매를 하다 저들끼리 연모하게 되는 것도 현대물 로맨틱 코미디에서 익숙한 설정이다. 

 

하지만 이 익숙함이 조선사회라는 시공간에서 펼쳐지고, 그 시공간이 갖는 풍속과 문화들을 극적인 서사로 그려내면서 동시에 아름다운 연출로 그려낸 것이 <혼례대첩>의 차별점이었다. 물론 꽤 많은 퓨전사극들이 이런 시도들을 해왔지만, <혼례대첩>이 달랐던 건 그 완성도였다. 따라서 이 작품이 보여준 건 완성도만 높다면 조선판 로맨틱 코미디가 갖는 남다른 묘미와 아름다움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연등들이 곳곳에 빛을 드리우는 조선의 밤거리에서 아름다운 한복과 정취 가득한 갓을 쓴 청춘 남녀들이 만남을 갖는 광경이나, 마치 신윤복의 그림 ‘월하정인’의 한 장면을 보는 것만 같은 담벼락을 배경으로 수줍게 만나는 조선의 청춘들을 담은 연출들, 또 마치 김홍도의 풍속화 속 한 장면처럼 단오 풍속의 정경 속조선 특유의 축제 분위기가 만들어내는 흥에 조선 청춘들의 설레는 마음이 느껴지는 장면들이 그렇다. 이런 그림들은 조선이라는 배경이 아니면 만들어질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마음껏 사랑하세요’라는 자막과 함께 크리스마스 선물 같은 엔딩으로 마무리된 <혼례대첩>은 조선판 로맨틱 코미디의 가능성을 분명히 보여준 면이 있다. 물론 그 그림의 완성은 로운과 조이현 같은 아름답고 귀여운 배우들의 호연이 가능하게 한 것이지만, 이런 과감하면서도 정성이 느껴지는 섬세한 연출 또한 칭찬 받아 마땅하다. 역사의 무게감을 훌훌 털고 상상력을 마음껏 펼쳐낸 조선판 로맨틱 코미디 <혼례대첩>은, 마지막 자막처럼 시청자들 역시 마음껏 사랑하게 만든 작품으로 기억될 것으로 보인다. (사진:KBS)

KBS 월화드라마 ‘혼례대첩’, 웰메이드 사극의 저력

혼례대첩

[엔터미디어=정덕현] “가슴이란 본디 무서워도 뛰고 한낱 북소리에도 뛰는 것 아닙니까?” 순덕(조이현)을 연모하는 마음 때문에 혹여나 그녀가 시어머니인 박씨부인(박지영)에게 해를 당할까 두려운 정우(로운)는 일부러 거짓말을 한다. 그의 가슴이 뛴 건 순덕에 대한 설레는 마음 때문이다. 두려움이 있다면 그건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녀를 위해서일 뿐이다. 

 

KBS 월화드라마 <혼례대첩>을 보는 시청자들의 마음이 어느새 이와 같아졌다. 이제 마지막 회를 남기고 있는 지금, 시청자들의 가슴은 두근두근한다. 그건 여러 가지 이유 때문이다. 정우와 순덕의 애틋한 사랑을 마치 내 일인 듯 빠져들어 보는 마음이 그렇고, 이들에게 닥칠 위기의 순간을 바라보는 아슬아슬한 마음이 그렇다. 

 

세자(홍동영)가 참관하는 맹박사댁 딸들과 좌상댁 딸 조예진(오예주)의 혼례는 혼돈 그 자체였다. 맹두리(박지원)의 신랑감 광부 16호 한종복(고덕원)은 나타나지 않았다. 이 혼례를 준비한 정우를 시기하는 판윤 김문건(김다흰)의 간계로 다른 여인과 혼례를 치러버린 것. 또 병판댁 이시열(손상연)의 신부감이었던 조예진은 끝내 도망쳐 자신이 연모하던 윤부겸(최경훈)을 찾아갔다. 그리고 거기서 두 사람은 서로의 마음을 확인했다. 

 

결국 맹두리의 신랑감과 이시열의 신부감이 사라진 상황. 합동 혼례는 깨질 위기에 처했지만 세자까지 참관하는 혼례식을 박씨부인은 어떻게든 강행하려 한다. 마침 맹두리와 이시열이 서로를 연모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순덕이 방법을 찾아낸다. 두 사람을 대신 엮어주고, 빈 자리는 다른 사람이 대행하기로 한 것. 첫날 밤에는 맹두리와 이시열을 한 방에 그리고 도망친 조예진과 윤부겸을 찾아와 함께 하게 함으로써 혼례를 되돌릴 수 없게 만들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조예진과 윤부겸을 찾지 못하게 되자 대신 혼례에 서게 된 정우와 순덕은 결국 합방까지 하게 되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런 사실을 간파한 판윤 김문건이 방마다 문을 열어 확인하려 하고 정우와 순덕이 대신 혼례를 치른 사실 또한 발각될 위기에 처했다. 과연 정우와 순덕은 이 위기를 넘기고, 끝내 사랑을 이룰 수 있을까. 

 

시청자들의 가슴을 뛰게 만드는 건 위기감을 고조시키는 예고편이다. 거기에는 임금의 사약을 받는 정우와 박씨부인이 주는 은장도를 받아드는 순덕의 모습이 비춰졌다. 두 사람의 비극적인 죽음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하지만 시청자들 그 누구도 이런 결말이 나올 거라 기대하는 이는 없다. 아마도 죽음을 가장해 두 사람의 새 삶이 이어질 거라는 기대가 더 크다. 조선사회에서 정우와 순덕의 사랑이 이뤄질 수 있는 길이란 그 방법 밖에 없지 않은가. 

 

어느 정도는 예상되는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고 있지만 <혼례대첩>이 거둔 성과는 분명해 보인다. 현재까지 5%(닐슨 코리아)의 높은 최고시청률을 기록했고, 화제성도 남달랐으며 무엇보다 호평이 이어졌다. 퓨전사극이라고 하면 어딘가 가볍게 보이던 선입견을 이 작품은 완성도 높은 웰메이드 작품으로 뛰어넘었다. 미학이라고 해도 좋을 법한 우리 사극의 아름다움을 예술적으로 그려냈다고나 할까. 

 

이런 완성도 속에서 로운과 조이현의 존재감은 더더욱 빛났다. 시청자들은 드라마를 보며 느끼는 가슴 두근거림이 드라마가 그리고 있는 예쁜 사랑이야기만이 아니라 이를 연기한 로운과 조이현 덕분이라는 이야기도 내놓는다. 그만큼 이 작품의 설렘에 있어서 이들의 지분이 분명했다는 반증이다. 

 

문득 궁금해진다. 올해 KBS 연기대상의 무대에 로운과 조이현이 서게 될지. 애초 KBS 연기대상은 최근 화제가 된 <고려거란전쟁>의 독무대가 되지 않을까 하는 예상들이 나왔지만, 연말 복병처럼 <혼례대첩>이 막강한 존재감으로 떠오르고 있다. 시청자들에게 설렘을 선사한 로운과 조이현이 어떤 모습으로 연기대상에 서게 될지 자못 궁금하다. (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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