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먼다큐 사랑>, 코피노 민재가 보여준 사랑의 힘

 

굳게 닫힌 문 앞에서 아이는 발길을 돌리지 못했다. 문을 두드려보기도 하고 문짝에 귀를 대고 안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나 들어보려 하기도 했다. 소리 내어 아빠라고 부르면 문 저편에서 아빠가 나타날 것만 같았을 것이다. 그러니 어찌 발길을 돌릴 수 있겠는가. 태어나서 한 번도 본적 없는 아빠를 찾아오는 길은 멀고도 멀었다. 그 먼 길 끝에 아이가 맞닥뜨린 게 굳게 닫힌 문이라니.

 

'휴먼다큐 사랑(사진출처:MBC)'

민재는 고사리 같은 손으로 아빠를 만나면 건네주려 썼던 편지를 꺼내 그 닫힌 문틈 사이로 끼워 넣었다. 그렇게라도 자신의 마음을 전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돌아온 이야기는 아빠가 이사를 갔다는 것이었다. 그 집에는 다른 사람이 산다고 했다. 아이는 억지로 끼워 넣은 편지를 다시 애써 끄집어냈다. 그 편지만은 아빠에게 전해줘야 했기 때문이었다.

 

MBC <휴먼다큐 사랑>은 필리핀 엄마와 한국인 아빠 사이에서 태어난 코피노 민재의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이제 아홉 살. 세부의 빈민촌에서 살아가는 민재는 단 한 번도 아빠를 보지 못했다. 그가 태어나기 전 아빠는 한국으로 떠난 뒤 연락이 끊겼다. 아빠 몫의 사랑까지 채워주는 엄마 크리스틴이 있었지만 그녀마저 2년 전 구치소에 수감되면서 민재의 곁을 떠났다.

 

민재 부모의 빈자리를 채워준 건 이모와 이모부. 가난하게 사는 형편이지만 이모는 민재를 살뜰히도 챙겨주었다. 하지만 민재에게 아빠의 빈자리는 결코 채워질 수 없는 것이었다. 떠나버린 아빠에게 뭐라고 할 때마다 민재는 아빠 편이었다. 민재가 영어와 한국어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도 오로지 아빠를 만나 이야기를 건네고픈 마음에서였다.

 

떠난 아빠가 민재에게 해준 건 이름을 지어준 것 이외에 아무 것도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재의 아빠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은 변하지 않는 것이었다. 어찌 보면 그 가난하고 힘겨운 삶 속에서 민재가 살아갈 수 있는 힘은 한 번도 본적 없는 아빠에 대한 사랑 때문인 것처럼 보였다. 그 사랑이 아니었다면 민재는 아무런 희망도 꿈도 가질 수 없었을 테니까.

 

9년의 세월을 그렇게 그리워하다 찾은 아빠의 집. 민재를 맞아준 건 그러나 아빠가 아니라 할아버지였다. 할아버지는 필리핀에서 보내줬던 민재의 사진을 고이 간직하고 계셨다. 할아버지는 잘 자라준 민재를 보며 고마움을 표했고 민재에게 아빠의 방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민재는 결국 아빠를 만나지는 못했다. 대신 할아버지에게 그토록 하고 싶었던 아빠 사랑해요라는 말을 대신 전해주면서도 아이는 기쁜 얼굴이었다.

 

<휴먼다큐 사랑>이 코피노 민재를 통해 하려던 이야기는 무엇이었을까. 그 먼 길을 돌아온 민재가 아빠를 만나는 그런 감동적인 이야기는 없었다. 하지만 아빠를 못 만났다고 해도 민재의 사랑은 변치 않았다. 그 대가를 바라지 않는 순수한 사랑이 있어 살아갈 수 있다는 것. <휴먼다큐 사랑>이 민재를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는 그게 아니었을까.

 

나한테 뭘 원하니?” 아빠를 만나는 연습을 하는 민재에게 그를 키워주고 있는 이모는 그렇게 물었다. 그러자 민재는 서슴없이 말했다. “사랑.” 아빠를 찾아 그 먼 길을 온 민재가 원한 건 그것뿐이었다.

 

<장영실쇼>, 과학과 상상력을 연결한 흥미로운 과학토크쇼

 

이제 3회를 했을 뿐이지만 KBS <장영실쇼>가 보여준 비전은 우리 시대 전체를 아우르는 것이었다. 비록 몇 평 남짓 되는 스튜디오에서 찍혀지는 토크쇼 형식의 프로그램이지만 이 토크쇼에서 나오는 이야기와 상상력은 전 세계를 아우르는 글로벌한 것이었다. 장영실이라는 명명이 지칭하는 것처럼 이 프로그램은 과학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지만 그것은 과학을 뛰어넘어 예술과 종교, 철학 등을 아우르는 통합적인 학문의 폭을 보여주었다.

 

'장영실쇼(사진출처:KBS)'

사실 3D프린터 하면 또 다른 프린터의 하나 정도로 여기고, 드론이라고 하면 가끔 예능 프로그램에서 방송카메라로 등장하던 그것을 떠올리고, 사물인터넷이라고 하면 광고에서 봤던 저 스스로 켜지는 가로등 정도를 떠올리는 게 우리네 보통 사람들의 생각일 수 있다. 하지만 <장영실쇼>는 이러한 발명 혹은 발견이 가져올 거대한 세상의 변화를 다양한 시각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우리의 시야를 넓혀준다.

 

3D프린터는 우리가 프린터하면 무언가를 출력하는 정도의 프린터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모니터로 상상했던 이미지들을 물질의 차원으로 직접 만들어내는 세상을 뜻하는 것이고, 드론은 그저 하늘에 띄우는 아이들 장난감 같은 것이 아니라, 하늘이라는 공간에 열려진 무한한 가능성의 세계를 뜻하는 것이다. 사물인터넷 역시 마찬가지다. 사물인터넷은 그저 하나의 편의성을 얘기하는 개념이 아니라 사물과 사물이 이어지는 초연결사회가 가져올 대변혁을 뜻하는 것이다.

 

마샬 맥루한이 미디어는 메시지라고 하면서 그 미디어의 개념을 TV나 라디오 같은 것에 국한시키지 않고 전신주나 도로, 자동차 같은 거의 모든 사물로 확장시켜 바라봤던 것처럼, <장영실쇼>가 바라보는 새로운 과학적 발견은 거기에 머물지 않고 사회 전체를 변화시킬 하나의 단초로서 바라본다. 이것은 기존의 과학프로그램들이 과학의 발견 그 자체에 더 집중하는 것과는 사뭇 다른 접근방식이다. 과학에 상상력을 덧붙이고 미래 사회를 예측하는 일은 과학의 편의성의 차원을 넘어 세상을 바꾸는데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방송 프로그램이 점점 예능화 되어가는 요즘, 그럴 듯한 과학프로그램 하나를 찾기가 힘든 게 현실이다. 연예인들이 나와 저들끼리의 신변잡기를 늘어놓는 토크쇼들은 대중들에게 식상하다는 평가를 받으면서도 계속 쏟아져 나온다. 이 와중에 우리의 재미란 표피적인 것으로만 길들여진다. 하지만 재미에 어찌 감각적인 재미만 있을까. 거기에는 지적인 재미도 있고 상상력이 주는 재미도 있기 마련이다.

 

<장영실쇼>는 그 지적 상상력의 재미를 선사하는 프로그램이다. 조금 어렵게 생각했던 과학 지식이나 너무 단순하게 바라봤던 과학적 발견들을 한번쯤 더 들여다봄으로써 그것을 통해 우리의 미래를 가늠해보는 일은 흥미로운 일이 아닌가. 게다가 이것은 어쩌면 국가경제의 미래와도 밀접한 일이 될 것이다. 과학적, 지적 호기심과 상상력이 없는 이들에게 어찌 미래가 있을 수 있을까.

 

어찌 보면 <장영실쇼> 같은 프로그램이야말로 KBS라는 공영방송의 정체성을 가장 잘 드러내주는 프로그램일 것이다. 모두가 당장의 상업적 이익을 위해 달려가는 와중에 정작 필요한 정보를 주는 교양 프로그램들은 점점 사라지고 있는 형국이다. 의미 없는 연예인들의 신변잡기만 늘어놓는 토크쇼를 하느니 진지하면서도 흥미로운 지적 토크쇼 하나쯤 있어야 하지 않을까.

 

<12>, 참신했던 서울대 김종민들의 만남

 

<12>은 왜 서울대에 갔을까. 언뜻 여행이란 소재와 서울대는 잘 맞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12>의 유호진 PD는 세계의 유명 대학들은 관광명소이기도 하다고 밝힌 바 있다. 틀린 얘기가 아니다. 대학은 때로는 도시의 녹지와 공원 역할을 해주기도 한다. 서울대는 학교지만 그 안에 들어가 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그 곳이 하나의 작은 도시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1박2일(사진출처:KBS)'

하지만 <12>이 서울대에 간 이유가 어디 여행지로서의 그 곳을 소개하기 위함만일까. 더 큰 기획 포인트는 서울대가 주는 막연한 호기심과 궁금증이 있기 때문이었을 게다. 수능만점자 만나는 것이 발길에 채이는 돌멩이처럼 흔한 곳. 남다른 뇌섹남, 뇌섹녀들이 있는 그 곳에 대한 막연한 궁금증과 동경.

 

그렇지만 <12>이 보여주려 한 것은 서울대생이라는 그들만의 특별함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들 역시 보통의 청춘들과 다를 바 없는 존재들이라는 걸 <12>은 보여주었다. 휴강이 되면 마치 축제라도 하듯 즐거워하며 삼삼오오 캠퍼스 잔디밭에 둘러 앉아 시간을 보내고 애니메이션 동아리 같은 활동에서는 그 누구보다 오타쿠들 같은 모습을 보여주는 그들.

 

그런 점에서 서울대에서 찾은 여럿의 동명이인 김종민들과 <12> 팀이 대결을 벌이는 장면은 특히 흥미로웠다. <12> 멤버들은 읽지도 못하는 수학문제를 척척 풀어내는 서울대생들이지만 제기차기 대결을 하거나 콜라 빨리 마시기 대결을 하는 모습은 영락없는 또래의 청춘들과 다름없었다.

 

이른바 신바(신나는 바보)’라는 캐릭터로 불려온 김종민이 똑똑한 서울대 김종민들과 팀을 이룬다는 발상은 그래서 그 자체로 우습기도 했지만 서울대라는 막연한 선입견을 깨주는 설정이기도 했다. 서울대는 그렇게 <12>의 놀이를 통해 조금씩 친근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공부에는 서울대생들을 당해낼 수 없는 <12> 팀이지만 재치에 있어서는 역시 <12>팀이 한 수 위였다. 2 빼기 2라는 공식의 답을 김준호는 이를 다 뺐으니 잇몸이라고 말해 주변 사람들을 포복절도시켰고, 10억 단위의 숫자 연산문제를 실패하자 데프콘이 문제를 로또 상금으로 얼마를 받았는데 누나 명품 백 사주려 얼마를 쓰고하는 생활밀착형 문제로 바꿔 냈으면 맞췄을 거라고 해 큰 웃음을 주었다.

 

서울대생이라고 취업 문제에 있어서는 걱정이 없을까. 휴강을 맞아 잔디밭에 앉아 학생들과 얘기를 나누던 데프콘은 불쑥 공부를 잘하니 취업 걱정이 없겠다고 물었다. 그러자 의외의 답변이 돌아왔다. “요즘 암울하다다들 고시 준비를 한다고 말했던 것. 청년 실업 문제는 서울대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12>이 만난 것은 단지 우리네 최고의 명문대생들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그들 역시 똑같은 고민을 갖고 살아가는 보통의 청춘들이었다. <12>의 서울대 여행은 그래서 우리가 막연히 생각해온 서울대는 다를 것이라는 생각을 깨주기에 충분했다.

 

휴가는 무슨.. 역시 <무한도전>다운 극한 선택 

 

<무한도전> 10주년. 출연자와 스텝들에게 내려진 휴가는 믿기지 않는 일로 다가왔다. 출연자들은 공항에 와서도 주변을 살피며 휴가를 떠난다는 사실을 의심하는 모습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어디 한두 번이던가. 휴가처럼 떠난 해외여행이 사실은 생고생의 서막이 됐던 것이.

 

'무한도전(사진출처:MBC)'

지난 방콕 특집에서 그들은 방콕에 가지 못했다. 공항까지 가서 티켓팅까지 했지만 다시 되돌아온 그들은 작은 옥탑방에 콕 박혀 마치 방콕에 온 것 마냥 휴가를 즐기는(?) 모습을 보여줘야 했다. 휴가라기보다는 몸 개그를 위한 게임 같은 상황들이 벌어지면서 이 방콕 특집은 시청자들에게 의외의 큰 호응을 얻기도 했다. 굳이 해외에 나가지 않아도 방 한 칸에서도 충분히 웃길 수 있다는 <무한도전>의 저력을 보여준 셈이었다.

 

그러니 휴가랍시고 공항까지 와서도 의심할 수밖에. 그런데 이번에는 진짜 짐을 부치고 비행기에 탄 그들이 방콕 공항에 내리는 모습까지 보여주었다. 그러니 출연자들로서는 이 휴가가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믿을밖에. 하지만 반전은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 갑자기 제작진이 지난 극한알바특집에서의 약속을 꺼내들었던 것. 지인에게 자신들이 했던 알바를 추천해서 성공하지 못하면 또 다른 극한알바를 할 것이라는 약속이었다.

 

방콕은 이번에는 휴가지가 되지 못하고 경유지가 되었다. 전 세계로 가는 허브로서 방콕 공항에 내란 그들은 거기서 각각 팀을 이뤄 세계로 가는 극한알바를 떠나게 되었다. 출연자들은 이번에도 속은 걸 알고는 분통을 터트렸다. 하하는 이럴 거면 처음부터 극한 알바라고 하던가라며 분노했다. 이 휴가를 오려고 몇주 간 했던 생고생이 못내 억울했을 것이다. 유재석도 김태호 PD를 거론하며 걔 인터폴에 수배해야 한다고 했고 박명수는 콩밥 먹여야 한다고 말했다.

 

사실 10주년 정도 됐으면 휴가를 보내줘도 뭐라 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간 <무한도전> 출연자들이 시청자들을 위해 얼마나 생고생을 해왔는가를 모르는 바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태호 PD는 독한 선택을 했다. 왜 그랬을까. 그것이 <무한도전>이라는 프로그램의 본분이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무한도전>의 존재 근거는 시청자들의 즐거움에서 비롯되는 일이다. 그러니 출연자들의 노고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것.

 

극한 알바<무한도전>이 다시금 초심을 다지는 계기를 보여줬던 아이템이다. 고층빌딩의 창문을 닦으며, 지하 갱도에서 탄가루를 뒤집어쓰며, 밤새도록 굴을 까고 택배상자들을 차에 싣고 또 텔레마케터로서 감정노동의 피로를 겪으며 그들은 치열한 노동의 현장을 보여주었다. <무한도전>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 노동의 강도로 세워진 프로그램이 바로 <무한도전>이 아닌가.

 

그들은 결국 이번에도 방콕에 가진 못했다. 설사 방콕 공항에 내리긴 했어도 그건 진정한 의미에서의 휴가지 방콕이 아니었다. 모두가 휴가를 생각할 때 <무한도전>은 노동의 현장을 선택했다. 이것은 <무한도전> 10주년이 그냥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그들이 흘린 땀으로 이뤄진 거라는 걸 잘 보여준다. 우리가 모두 TV 앞에서 웃으며 잠시 간의 여유를 보낼 때, 그들은 노동의 현장 속에 늘 자신들을 세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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