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피 광희 신고식, 나이든 <무도> 멤버들에게는

 

쫄쫄이를 입고 나온다는 건 작정했다는 뜻이다. 웃기기 위해 뭐든 하겠다는 예능인으로서의 결연한 의지가, 그 몸매(?)가 여지없이 드러나는 옷에서는 묻어난다. 그들은 쫄쫄이를 입고 100킬로로 달려 나가는 롤러코스터 위에서 화장을 하고, 짜장면을 먹는다. 거대한 여객기를 맨손으로 끌겠다며 차가운 진흙탕에 빠지고 발 위에 균형을 잡은 채 기내식이라고 제공되는 음식을 입으로 받아먹는 연습과정을 거친다. 잔뜩 더러워진 얼굴에 온몸이 흙투성이가 되도록 구르고 또 구른다.

 

'무한도전(사진출처:MBC)'

이것은 <무한도전> 클래식이라고도 불리고, 한편으로는 <무모한 도전>이라고도 불린다. 벌써 10년 전부터 이들이 시도했던 것들이다. 그 때만 해도 그들은 훨씬 젊었다. 모두가 30대의 미혼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40대에 저마다 아이를 가진 아빠들이다. 이들 아빠들의 작정한 듯 망가지기로 한 웃음 속에는 깊은 페이소스가 묻어난다. 도대체 무엇이 이들을 이렇게 열심히 뛰고 넘어지고 망가지게 만드는가.

 

클래식이라고도 부르는 데서는 추억이 방울방울 피어난다. <무한도전>과 함께 나이 들어온 시청자라면 정준하가 과거 롤러코스터 위에서 날려 보낸 짜장1의 심지어 충격적이기까지 했던 명장면의 회고에 빠질 것이다. 그리고 그는 이제 새내기 광희의 신고식을 겸해 다시 짜장 2호에 이어 짜장3호를 날렸다. 입 안 가득 면발을 물고 얼굴 가득 짜장 범벅이 된 채.

 

하지만 <무모한 도전>이라는 표현에 걸 맞는 힘겨운 미션들은 이 40대 아빠들의 도전에 짠함을 느끼게 만든다. 아버님 박명수가 롤러코스터 위에서 새로운 화장품을 어떻게든 꺼내려고 안간힘을 쓰는 모습은 뭉클하기까지 하다. 어떻게든 그걸 꺼내 얼굴에 바르려는 모습 속에는 웃음을 주기 위해서 뭐든 하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엿보인다. 물웅덩이를 가운데 놓고 서로 잡아당겨 그 진창에 빠뜨리는 미션에서 보여준 박명수의 놀라운 선전은 그래서 아버님이라는 수식과 만나면서 먹먹한 느낌마저 준다.

 

젊은 피 광희의 신고식으로 시도하게 된 <무한도전> 클래식이자 <무모한 도전>이지만 광희보다 오히려 더 빛나는 건 40대 아빠들의 여전히 빛나는 투혼이다. 광희가 허수아비젊은 배영만종이인형그리고 졸라맨이라고 불리는 반면, 이들 10년 간 도전에 도전을 거듭해오며 나이 들어간 아빠들은 여전히 너무도 익숙하게 망가지는 웃음을 만들어낸다.

 

이러니 이들의 웃음을 주기 위해 사력을 다하는 모습에 감복하지 않을 수가 없다. 거기에는 이제 뭐든 할 수 있었을 것만 같은 젊은 날의 치기보다는 여전히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가장의 무게 같은 것도 느껴진다. 그 힘겨운 미션들을 반복하며 이동하는 차안에서 그들끼리 바보처럼 과장되게 아닌데요?”를 반복하며 웃는 모습 속에는 10년 간 함께 몸을 부대끼며 살아온 동료애 같은 것이 느껴진다. 힘겨운 상황일 수 있지만 그럴수록 웃어야 한다는 걸 그들은 잘 알고 있다.

 

젊은 피 광희는 이들이 웃음을 위해 온 몸을 던지는 모습을 보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결코 <무한도전>이라는 자리가 호락호락한 자리가 아니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그 자리는 인기에 군림하는 왕좌가 아니라 진창 위에 몸을 굴리는 가장 낮은 자리라는 걸 깨닫지 않았을까. 아마도 웃음을 주기 위해서는 앞으로 10년 후에도 여전히 쫄쫄이를 입는 걸 서슴지 않을 모습들. 추억에 젖다가 또 웃다가 짠해지는 순간이었다.

 

<프로듀사>, 별이 아닌 직업인 택한 김수현

 

이 사람이 <별에서 온 그대>의 그 도민준이 맞나? KBS의 새로운 예능 드라마’ <프로듀사>의 백승찬으로 돌아온 김수현에게서 초능력자 도민준은 없었다. 대신 멋지고 폼 날 것 같지만 실상은 잘 나가는 연예인의 갑질에 밀리고, 시청률표에 의해 목줄이 간당간당한 생활인에 가깝게 살아가는 예능국에 갓 들어온 어리버리한 신입PD만 있었다.

 

'프로듀사(사진출처:KBS)'

죄송합니다라고 말하면 PD로서의 자존감이 없다고 뭐라 하고, 그래서 가만히 있으면 뭐라도 얘길 해보라고 다그치는 선배 앞에서 백승찬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쩔쩔 매는 모습이었다. 그냥 학교 동아리 여선배 가까이 있고 싶다는 사심으로 들어온 방송사 예능국이니 특별한 포부가 있을 리 없다.

 

게다가 선배들이라고 다르지 않다. <12> 시즌4를 만들고 있는 라준모 PD(차태현)는 시청률이 떨어지자 출연자들을 모두 교체하라는 통보를 받았다. 회식을 하기로 한 자리가 쫑파티가 될 상황. 심각해질 수밖에 없는 라준모 PD 앞에서 그러나 이를 지시한 윗선의 고민은 회식할 음식점의 코스 요리 단가나 그 집에 맛있다는 잣죽 이야기가 고작이다.

 

신입 PD들의 교육을 맡게 되어 그들 앞에 위신을 세우려 하지만 신디(아이유)라는 잘 나가는 아이돌 앞에서 사실은 사정 사정을 해야 하는 처지가 탁예진(공효진)이라는 예능 PD의 실제 삶이다. PD가 갑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기획사들이 더 힘을 가진 갑인 게 현실. 이런 현실 속에서 예능 PD들은 아침에 차문을 열다 긁은 옆 차에 하루 종일 신경을 쓸 정도로 소심한 삶을 살아간다.

 

백승찬이라는 신입 예능 PD의 어리버리한 모습은 그래서 그의 집안에서 그를 바라보는 시선과 대비를 이룸으로써 웃음을 만든다. 아버지가 예능 PD가 된 백승찬을 검사, 의사처럼 자 직업이라며 프로듀사라 부르는 장면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PD라는 직업에 대한 편견을 깨준다. 폼생폼사 같지만 사실은 한없이 투명에 가까워지는 존재감이라니.

 

<프로듀사>는 사람들에게 웃음과 행복을 주기 위해 일하는 예능 PD라는 존재들이 실상은 얼마나 현실적인 삶을 살아가는 직업인들인가를 보여준다. 거기에 마치 도민준처럼 뭐든 다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능력자는 없다. 김수현의 완벽한 변신이 주는 기대감은 그래서 이 <프로듀사>의 많은 이야기들을 담아내고 있다. 그들의 치열한 삶과 사랑의 이야기.

 

예능 드라마라는 기치에 걸맞게 <프로듀사>는 어깨에 힘을 많이 뺀 드라마다. 어찌 보면 예능적인 시트콤을 닮은 구석도 있다. 드라마 초반분에 <다큐3>의 카메라를 통해 예능국 전반의 일들을 하나하나 설명하는 장면들은 이 드라마에 꼭 필요한 밑그림이지만 어찌 보면 드라마 같지 않은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첫 회 후반부에서 느껴지는 관계의 서곡들은 박지은 작가표 로맨틱 코미디가 이 직업적 특성 위에 녹아날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한다.

 

그 중심에는 역시 김수현이 있다. 그가 도민준이라는 캐릭터를 내려놓고 한없이 가벼워지려 작정한 듯한 모습은 이 드라마가 가진 어깨에 힘을 뺀모습과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그는 어쩌면 도민준이라는 조금은 무거워진 옷을 벗어내고픈 듯 보인다. 그런데 이 가벼워 보이는 접근방식 속에서도 진중한 메시지를 담아내는 방식이 바로 예능이라는 형식이 가진 특징이다. 예능 PD라는 겉보기엔 멋있어 보이지만 실상은 찌질하게 여겨지는 그 모습이 주는 가벼운 웃음의 잔 펀치들을 조금씩 맞다보면 어느 순간 진중한 울림 같은 것을 주지 않을까.

 

김수현은 더 이상 별에서 온 그대가 아니라 여기 이 땅에서 지지고 볶으며 살아가는 보통 사람이 되기를 원했다. 그런 작품으로서 <프로듀사>는 그에게는 맞춤이다. 예능 PD라는 직업에 대해 갖기 마련인 화려함이, 실상은 생활인의 땀이었다는 걸 보여주는 이 작품은 그래서 마치 모든 걸 갖고 태어난 듯 보이는 김수현이라는 별이 사실은 직업인의 한 사람으로서 치열한 노력을 하는 배우라는 걸 드러내주는 것처럼 보인다.

 

<삼시세끼>의 숨은 출연자, 봄이라는 계절

 

어느 새 겨울이 지나고 완연한 봄도 언제 가는지 모르게 사라져 간다. 이러다 보면 금세 땀이 송글송글 피어나는 여름이 올 것이다. 도시인들에게 계절은 이렇게 지나간다. 쳐다 볼 여력도 없이 어느 순간 봄이고 어느 순간 여름이며 그렇게 뭐 한 것도 없이 또 한 해가 반이 지났다 싶으면 서늘한 가을을 훅 지나 겨울이 온다. 사계절이 지나도록 한 해 동안 아무 것도 일어나지 않은 것 같은 그 헛헛함이란.

 

'삼시세끼(사진출처:tvN)'

새롭게 시작한 <삼시세끼>는 그렇게 아무 일도 없이 우리를 지나쳤던 계절들을 다시 소환한다. 겨우내 심어놨던 야채며 채소들이 싹을 틔우고, 앙상하기만 했던 나무에 순이 올라와 터질 듯한 꽃봉오리를 피우는 그 봄의 시간들을 카메라에 담는다. 그 곳으로 다시 이서진과 옥택연 그리고 새롭게 가족이 된 김광규가 찾아와 온기를 채운다. 봄이 오는 그 시간 동안 염소 잭슨은 두 아기염소의 엄마가 됐고, 밍키는 못 알아볼 정도로 훌쩍 자랐다.

 

시간의 흐름을 담는다는 건 그 무의미하게 흘러가기만 하던 반짝이는 순간들을 완전히 새롭게 본다는 뜻이다. 겨울 그들을 수수지옥으로 끌어들였던 텅 빈 수수밭에 가득 자라난 풀들을 트랙터로 갈아엎으며 그들은 그 곳에 다시 시간의 흐름을 담아낼 씨앗들을 심어놓을 것이다. 작물들은 그저 식재료가 아니라 그 시간을 머금고 자라는 존재들이다. 그 과정을 들여다보면 그 작물들을 키워 나온 재료들로 만든 음식 또한 새롭게 보일 수밖에 없다.

 

나영석 PD가 읍내로 나가는 걸 최소화하겠다고 마음먹은 건 물론 이서진과 옥택연 그리고 김광규가 해나가는 세끼 라이프의 미션을 강화하겠다는 뜻도 있지만, 이처럼 시간을 머금은 작물들이 식재료로 사용된 음식으로 만들어질 때의 그 순간들을 더 많이 기록하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게 하면 사 먹는 음식과는 달리, 파김치 하나에도 이야기가 담긴다. 너무 양념을 묽게 만들어 실패한 파김치를 되살리려 안간힘을 쓰는 옥택연의 이야기가 그 음식에는 기록된다. 스크램블은 그냥 스크램블이 아니다. 그것은 닭그룹의 마틸다가 닭장을 빠져나와 어느 담장 밑에 낳아놓은 달걀로 만든 스크램블이다.

 

만재도 차승원에 밀리고 <꽃보다 할배> 최지우에 밀렸다며 절치부심(?)한 이서진이 끓여주는 감자 고추장찌개가 더 맛있게 보이는 건 단지 맛만이 아니라 거기 담겨진 시간들이 보여지기 때문이다. 감자 하나하나를 썰어내고 솥단지에 고추장을 풀어 양념 간을 한데다 사정하듯 얻어낸 꽁치 통조림을 통째로 투입해 만든 찌개. 감자전이 더 입맛을 돋우는 것도 마치 묘기라도 부리듯 전을 뒤집던 옥택연의 시간들이 거기에는 녹아있기 때문이다.

 

같은 장소에서 그들이 하는 일이란 시즌1과 별다를 바 없다. 농사를 짓고 밥을 해먹고 가축들을 돌보며 필요한 작은 공사들을 하는 것. 하지만 그 같은 일들이 매번 다르게 느껴지는 건 우리가 그냥 지나쳤으면 잘 보이지 않았을 시간의 기록들을 담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도대체 봄이라는 계절을 또 하나의 출연자로 초대하고 있는 예능이라니. 이러니 당해낼 재간이 있나. 봄을 담은 <삼시세끼>가 돌아왔다.

 

오랜만에 최강 라인업 세운 KBS

 

최근 KBS의 행보가 심상찮다. 한때 베끼기가 늘상 해오던 관행처럼 여겨지기도 했던 KBS이지 않았던가. 하지만 이번 금요일 밤의 라인업은 한 마디로 승부수라고 해도 될 만큼 공격적이다. <프로듀사><오렌지 마말레이드> 1,2회를 잇따라 연속 편성한 것이 그것이다.

 

'프로듀사(사진출처:KBS)'

이 두 프로그램은 과연 KBS의 프로그램이 맞는가가 의심될 정도로 새롭고 파격적이다. <프로듀사>는 예능 드라마라는 새로운 콘셉트로 접근해 만들어진 드라마다. 서수민 CP<별에서 온 그대>의 박지은 작가 그리고 표민수 PD가 힘을 합쳤고, 그 위에 김수현, 공효진, 차태현, 아이유라는 어벤져스급 캐스팅이 이뤄졌다.

 

예능 드라마라는 기치를 내세운 만큼 예능적인 웃음이 중심이 되면서도 예능 PD들의 리얼한 이야기들이 드라마틱하게 전개될 것이라고 한다. 최근 방송의 중심으로 점점 서고 있는 예능 PD들의 이야기는 다른 한편으로 보면 지금 현재 우리가 사는 세상의 변화를 에둘러 담아내는 것이기도 하다. 예능과 드라마, 그리고 재미와 의미가 결합하는 괜찮은 퓨전의 예감이 벌써부터 물씬 풍겨난다.

 

<오렌지 마말레이드>는 이미 웹툰 팬들에게는 그 제목만으로도 기대감을 만드는 드라마다. 워낙 큰 인기를 끈 원작 웹툰이 가진 존재감을 드라마로 풀어낸다는 것이 부담이 되기는 하지만, 여진구 같은 든든한 연기자가 서 있어 어떤 면에서는 <미생>처럼 웹툰 그 이상의 반응을 만들어낼 드라마가 될 것이라는 조심스런 예상도 나오고 있다.

 

뱀파이어와 사람이 공존하는 세상에서의 차별에 대한 이야기를 담아낼 것이라는 이 드라마 역시 다양한 이질적 요소들을 결합해낸 퓨전 콘텐츠다. 당연히 판타지가 들어갈 수밖에 없고 그 위에 애절하면서도 달달한 사랑이야기가 얹어질 것으로 보인다. 시대적 배경도 조선에서부터 현재까지를 아우르고 있어 사극과 현대극을 넘나드는 다이내믹한 전개를 보일 것이라고 한다.

 

무엇보다 이 시간대에 이런 파격적인 승부수를 던질 수 있게 된 것은 KBS가 편성을 새롭게 꾸미면서 금요일 밤에 마련해 놓은 이른바 돌연변이존이 있었기 때문이다. 드라마든 예능이든 교양이든 그 때 그 때 맞춰 자유롭게 들어가게 만들어놓은 이 시간대가 있어 <오렌지 마말레이드> 같은 드라마가 금요일 밤에 연달아 세워질 수 있었던 것. 여기에 <프로듀사>는 예능과 드라마를 넘나드는 장르적 혼용을 갖고 있어 자연스럽게 그 앞 시간에 배치될 수 있었다.

 

이것은 최근 몇 년 동안 보기 힘든 KBS의 승부수가 아닐 수 없다. 금요일 밤 타 지상파와 케이블에 치이며 존재감을 좀체 보이지 못했던 KBS의 이런 행보는 지금까지와의 흐름과는 사뭇 이례적이라 주목된다. 과연 이 승부수는 좋은 결과를 맺을 수 있을까. 만일 이것이 괜찮은 성과로 이어진다면 그것은 KBS의 앞으로 전개될 행보에 꽤 괜찮은 영향을 미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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