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이 추락하는 <개콘>, <웃찾사>의 경쟁은 기회다

 

KBS <개그콘서트>의 시청률은 지속적인 하락세를 보여왔다. 작년 2월에 18%(닐슨 코리아)까지 나왔던 시청률은 갈수록 추락하더니 올 3월에 이르러서는 11.5%(31일자)까지 떨어졌다. 이러한 <개그콘서트>의 위기는 이미 KBS 예능국 내부에서도 어느 정도 관측된 분위기다.

 

'개그콘서트(사진출처:KBS)'

지난 2013년부터 지금까지 2년여 간 연출을 맡아온 김상미 PD가 교체되고 조준희 PD가 그 자리를 이어 받는다. 애초 4월에 예정된 일이었지만 <뮤직뱅크-베트남>편 때문에 일찍 프로그램을 떠나게 됐다고 KBS측은 밝혔다. 하지만 PD의 교체란 프로그램의 부침과 무관할 수는 없는 일이다.

 

물론 이러한 시청률의 추락에는 MBC 주말극이 강세를 보이면서 생겨난 외부적인 영향이 분명히 존재한다. <왔다 장보리> 이후 <전설의 마녀> 역시 주말 밤 최고 시청률을 기록하며 승승장구하는 중이다. 하지만 <개그콘서트>의 추락을 단지 이런 외부적인 영향으로만 돌릴 수 없는 건 최근 이 프로그램이 보여준 행보들이 너무나 실망스럽게 여겨지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개그콘서트>는 확실한 킬러콘텐츠를 생산해내지 못하고 있다. 대표코너가 뭐냐고 물어보면 뭐라 확실히 말하기 어려운 고만고만함이 존재한다. 이러니 당연히 새로운 개그맨 스타의 탄생은 요원해진다.

 

벌써 수차례 <개그콘서트>에 쏟아진 비판들 중에는 최근 외모 비하를 통해 웃기거나 성적 차별을 개그 코드로 끌어들여 웃기는 것, 또 남녀 간의 심리를 소재로 하는 코너들이 너무 많아졌다는 것이다. 이 얘기 속에는 또한 반대급부로서 현실적인 소재나 시사, 정치 풍자가 사라져버린 <개그콘서트>의 현재 모습이 들어가 있다. 한 때 속 시원한 정치 시사 풍자와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공감 개그들이 포진해 있던 <개그콘셔트>를 떠올려 보면 지금은 너무나 소소해진 느낌이다.

 

이렇게 별다른 현실 공감과 임팩트 있는 재기발랄함이 사라지면서 개그 코너들은 별 재미도 없으면서 유행어만 반복하는 것들로 채워지게 되었다. 물론 유행어가 개그맨들의 밥벌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건 주지의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코너들이 새로움을 잃어버린 채 식상한 유행어의 반복으로만 일관된다는 건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무엇이 이런 문제를 만든 걸까. 가장 큰 것은 한때 주말 밤 무적의 강자로 군림하면서 슬금 슬금 늘린 시간이 무려 100분이 훌쩍 넘는다는 점이다. 일요일 밤 915분에 시작하는 <개그콘서트>11시까지 이어진다. 물론 이런 시간의 확장은 당시 <개그콘서트>의 코너들이 저마다 경쟁력을 보였을 때만 해도 그리 큰 문제가 될 것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이런 양적 팽창이 질적 하락을 만드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냉엄한 현실이지만 <개그콘서트>의 힘은 결국 무대 편집에서 나오는 것이다. 좋은 코너가 아니면 방송으로 나가지 못하는 그 경쟁적 현실 속에서 코너들은 더 절실해진다. 하지만 지금은 이런 헝그리한 면들이 코너에서 잘 보이지 않고 있다. 프로그램이 힘이 없다면 시간을 단축시켜 좀 더 압축적인 형태로 보여주는 게 정석이다.

 

또한 최고의 위치에 올라서면서 개그의 소재 또한 그 폭이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는 점도 이런 추락에 한 몫을 차지한다. 개그는 결국 낮은 위치에서 할 때 그 폭발력이 생기기 마련이다. 하지만 <개그콘서트>는 한때 현실 풍자 개그를 하면 정치권에서조차 반응을 할 정도로 뜨거워지기도 했다. 이렇게 위치 만큼 커진 사회적 책임은 새로운 개그의 시도를 하는데는 오히려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다.

 

<개그콘서트>가 휘청하면서 이때를 기회로 <웃찾사>가 동시간대 경쟁작으로 편성된다는 것은 여러모로 <개그콘서트>에는 위기이면서 동시에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사실 <개그콘서트>가 특히 힘들었던 건 타방송사의 경쟁작이 없었기 때문이다. 경쟁 속에서라면 그 시간대를 차라리 코미디 시간으로 대중들에게 인식시킬 수 있고 상생적인 경쟁을 만들어낼 수도 있을 것이다.

 

최근 <웃찾사><개그콘서트>가 하지 못하는 현실 풍자를 들고 나와 점점 대중들의 관심을 끌어 모으고 있다. 물론 아직도 코미디의 최강자는 <개그콘서트>이지만, <웃찾사>에 대한 관심은 이런 흐름이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가를 가늠하지 못하게 한다. 결국 이런 경쟁체제는 양 프로그램에 모두 괜찮은 이득을 만들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정체된 <개그콘서트><웃찾사>만한 신선한 자극제는 없다. 물론 이것은 보다 많은 관심이 절실한 <웃찾사>에도 해당되는 이야기다.

 

만재도라는 놀이터, <삼시세끼>라는 로망

 

이 땅에 사는 남자들은 어떻게 놀고 있을까. 아니 놀기는 노는 것일까. 늘 일과 책무에 휩싸여 하루하루를 피곤에 쩔은 채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 <삼시세끼> 어촌편이 끝났다. 케이블 시청률이라고는 믿기지 않는(지상파 시청률이라고 해도 그렇다) 13%를 훌쩍 뛰어넘은 <삼시세끼> 어촌편의 기록은 여러모로 신드롬의 성격이 짙다. 도무지 프로그램의 내적인 요인만으로 그 놀라운 성과를 해석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도대체 이 괴물 같은 프로그램은 우리네 대중들의 무엇을 건드린 걸까.

 

'삼시세끼(사진출처:tvN)'

<삼시세끼> 어촌편의 실험적인 카메라는 이 프로그램의 놀이적 취향을 잘 말해준다. 투망에 카메라를 설치해 물고기가 들어오는 장면을 고스란히 찍어 보여주는 데는 단지 그것이 조작이 아닌 진짜라는 것을 보여주려는 의도만은 아니다. 그것은 물고기의 시선으로 이 세계를 바라보는 것이다. 투망이라는 덫에 걸려드는 놀래미들의 모습은 이 만재도라는 공간을 좀더 입체적으로 보게 해준다.

 

<삼시세끼> 어촌편의 카메라의 실험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동네 이장님의 개에 카메라를 묶어 달리는 개의 시선으로 만재도의 여러 곳을 보여주기도 하고, 때로는 새의 시선처럼 부감으로 내려다 본 만재도에 유해진이 낚시를 했던 포인트들을 일일이 찍어주며 보여줘 마치 게임의 공간 속에 들어와 있는 듯한 느낌도 선사한다. 만재도를 떠나며 짐을 싸는 손호준 옆에서 놀고 있는 산체에게 카메라를 놔두자 그 산체의 시선을 느끼게 해주는 것도 이 프로그램의 독특한 접근방식이다.

 

카메라가 이처럼 육해공을 넘나들며 동물의 시선까지를 느끼게 해줄 만큼 다양하게 활용되는 건 자칫 이 만재도라는 고립된 공간이 너무 갇힌 느낌을 주지 않게 하기 위함일 것이다. 또 그냥 보면 몰랐던 것들이 이렇게 자세히 카메라의 시선으로 들여다보면 새롭게 발견된다는 것도 큰 이유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이 카메라의 놀이적인 접근이다. 나영석 PD의 성향이기도 하겠지만 <삼시세끼>는 거창하진 않아도 소소한 놀이에 대한 대단한 몰입을 보여준다.

 

이 과정에서 만재도는 남자들의 거대한 놀이터가 된다. 참바다 유해진은 매일 아침 낚시를 떠나고 차줌마 차승원은 매 끼니 새로운 음식을 만들어 먹는 놀이에 심취한다. 섬 소년 손호준은 이들을 졸졸 따라다니며 섬 마을 소꿉놀이에 조금씩 빠져든다. 불 피우는 장면이나 프라이팬을 돌리은 장면을 슬로우 모션으로 잡아내면 대단한 액션처럼 보이지만 그건 하나의 놀이에 된다.

 

회전초밥을 먹기 위해 동네의 쓰레기(?)를 뒤지고 다닌 유해진이 회전판을 비슷하게 만들고, 차승원이 그 위에 초밥을 얹어 돌려가며 먹는 이 덩치들은 이 쓰잘 데 없어 보이는 놀이가 그토록 재미있을 수가 없다는 표정들이다. 가끔씩 도대체 이게 뭐하는 짓이야하는 생각을 하게 하지만 그래도 빠져들지 않을 수 없는 놀이. 그들의 며칠 간 지속된 소꿉놀이는 왜 그다지도 우리네 대중들의 마음을 뒤흔들었던 걸까.

 

그것은 아마도 일 바깥으로 도주하여 그 멀고 먼 만재도라는 놀이터로 들어간 까닭과 무관하지 않다. 일의 세계가 아닌 놀이의 세계로의 탐닉. 온전히 삼시세끼 챙겨먹는 이 생존 게임은 건장한 사내들의 소꿉놀이 욕망을 끄집어낸다. 그토록 현실에 치이며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이 놀이는 그래서 마치 힐링처럼 다가온다. 그러고 보면 힐링이라는 게 별게 없다. 마치 아이적 그랬던 것처럼 아무 걱정 없이 하루를 노는 일. 이 땅의 어른들은 그런 걸 해본 지가 얼마나 됐던가.

 

<삼시세끼>는 일과 노동 중심으로 살아가는 대중들에게 잠시 그 일로부터의 탈주를 대리해주는 프로그램이다. 거기에는 삼시세끼 챙겨먹는 일 빼고는 걱정할 일이 없다. 낚시로는 한 마리도 못잡아도 투망으로 잡은 물고기를 저축해놓은 참바다씨의 피쉬 뱅크가 있고, 그 어떤 재료로도 음식을 뚝딱 만들어내는 차줌마가 있으니 뭐가 걱정일까. <삼시세끼>의 만재도는 그렇게 도시인들의 로망이 되었다. 거대한 소꿉놀이의 판에 들어온 듯 느껴지는 카메라의 시선은 그래서 대중들을 유혹한다. 잠시 모든 걸 뒤로 한 채 그런 놀이 속으로 뛰어드는 건 어떻냐고.

 

 

입소문에 의해 희비 엇갈린 <킹스맨><그레이>

 

영화 <킹스맨>의 선전은 놀랍다. 19금 영화로서 400만 관객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애초에 이 영화에 대한 홍보가 그리 대단하게 이뤄지지 않았던 점을 떠올려보면 이런 기록은 이례적으로까지 여겨진다. 그저 많은 외화 중 하나일 뿐으로 여겨졌던 <킹스맨>은 관객들 사이에 입소문을 타기 시작하면서 흥행에 급물살을 탔다.

 

사진출처: 영화 <킹스맨>

반면 영화 시작 전부터 주부들의 포르노니 전 세계 영화계를 강타한 작품이라는 문구들로 화제가 되었던 19금 영화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이하 그레이)>는 애초의 기대와 달리 관객들의 발길이 뚝 끊어진 모양새다. 지난달 말에 개봉했지만 지금껏 30만 관객을 조금 넘어서는 기록을 보이고 있다. 무엇이 이런 희비쌍곡선을 만들었을까.

 

결국 입소문의 영향이 컸다고밖에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킹스맨>은 애초의 기대보다 훨씬 흥미로운 스파이 액션에 성장드라마 게다가 폭력 미학까지 덧붙여지면서 볼거리가 풍성했다는 의견들이 쏟아진 반면, <그레이>는 기대와 달리 야하지도 또 파격적이지도 그렇다고 무언가 철학적인 탐구도 없었다는 반응이다. <킹스맨>이 입소문의 순풍을 탔다면 <그레이>는 역풍을 맞으면서 점점 열기가 식어버렸다.

 

과거 같았다면 해외에서의 뜨거운 반응을 얻은 <그레이>에 우리네 관객들의 관심 또한 뜨거웠을 것이다. 하지만 국내 영화가 외화에 못지않은 장르적 성과와 흥행 성적을 가져가고 있어서인지 최근 들어 해외의 반응은 그다지 중요한 것이 못되고 있다. 대신 중요해진 건 외화라도 그것만이 보여줄 수 있는 확실한 차별점이 뭐냐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킹스맨>은 국내 영화가 도무지 다루지 못하는 성격의 영화가 아닐 수 없다. 007 시리즈 같은 스파이 액션 장르는 물량 공세도 공세지만 그 문화적 정서적 차이 때문에 국내에서 만들어지기 어려운 면이 있다. 기껏해야 <아이리스><베를린> 같은 남북이 얽힌 우리식의 스파이 액션이 가능할 뿐이다. 게다가 타란티노식의 폭력 미학 역시 국내 영화에서는 잘 다뤄지지 않는 영역이다. 우리 영화와는 차별적인 부분이 충분히 느껴지면서 동시에 나름의 장르적 재미에 충실했다는 점은 <킹스맨>의 대성공을 만든 가장 큰 요인이다.

 

하지만 <그레이>의 경우는 우리에게 있어서 그리 새로운 소재도 아니고 대단한 이야기도 아닌 것이 사실이다. 가학-피학적 섹스에 대한 건 이미 우리의 <거짓말>이 더 실감나게 다룬 바 있다. <거짓말>의 현실성에 비하면 <그레이>는 너무 비현실적인 느낌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그 성적 소재를 떼어내고 보면 <그레이>는 그저 그런 신데렐라 스토리의 반복이다. 잘 생기고 모든 걸 가진 나쁜 남자에 끌리는 여자의 이야기는 국내 멜로드라마들의 닳고 닳은 소재다. 그러니 우리네 관객들이 <그레이>를 통해 새로운 점이나 신선한 면을 발견하기란 쉽지 않다.

 

이제 우리 영화계에 있어서도 홍보마케팅 같은 포장은 그것만으로는 영화의 성패에 큰 영향을 미치기가 어렵게 되었다. 홍보마케팅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지만, 거기에 따른 작품만이 가진 고유한 콘텐츠적인 특징이 묻어나지 않는다면 관객들의 외면을 받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콘텐츠의 자생력에 따라 화제가 되지 않았어도 입소문이 그 힘을 다시 만들어내기도 하고, 제 아무리 화제가 된다 해도 입소문이 그것을 정반대로 뒤집어놓으면 오히려 역풍을 맞게 된다는 걸 저 <킹스맨>의 성공과 <그레이>의 실패가 보여주고 있다.

 

위기의 강호동, 이를 넘을 수 있는 해법은

 

지금 강호동은 위기다. 그는 복귀 후 무려 일곱 개의 프로그램(<무릎팍도사>, <스타킹>, <달빛프린스>, <우리동네 예체능>, <맨발의 친구들>, <별바라기>, <투명인간>)에 차례로 투입되었지만 여기서 네 개 프로그램(<무릎팍도사>, <달빛프린스>, <맨발의 친구들>, <별바라기>)은 페지 되었고 남아있는 세 개의 프로그램 역시 폐지설이 나오는 등 그다지 좋은 상황을 만들고 있지 못하다.

 

'우리동네 예체능(사진출처:KBS)'

KBS <투명인간>2%(닐슨 코리아)대 시청률을 내면서 폐지설이 흘러나왔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정도 시청률이라면 종편에게도 밀리는 상황이다. <투명인간>의 출연진들은 끊임없이 셀프 디스를 해가며 도와 달라 간청을 하지만 프로그램이 그런 방식으로 일어설 수 있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끊임없이 새로운 형식을 도입하고는 있지만 시청자들은 오히려 점점 더 외면하고 있는 상황이다.

 

KBS <우리동네 예체능>6%대 시청률로 그나마 선전하는 중이다. 한때는 4%대까지도 떨어졌던 것이 정형돈이 투입되고 테니스, 족구 등의 종목을 하면서 조금씩 반등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이 투입하고 있는 자원들을 생각해보면 6% 시청률로 만족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게다가 <우리동네 예체능>은 강호동보다는 다른 출연자들에 대한 주목도가 꽤 높은 프로그램이라는 점에서 이 성과를 강호동의 것으로 두기가 애매하다.

 

SBS <스타킹>9%의 시청률을 내고 있지만 이것 역시 만족할만한 수준은 아니다. 이 수치는 강호동의 진행 능력이라기보다는 출연자들의 섭외와 기획이 더 좌우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미 <스타킹>의 포맷 구성은 대중들에게는 그만큼 익숙하다. 게다가 이 프로그램의 형식은 조금은 트렌드에서 빗겨나 있는 것도 사실이다.

 

강호동의 위기는 사실 복귀한 후 그의 첫 단추부터 잘못 꿰어진 것에서 비롯됐다. 강호동이 다시 돌아온 판은 그 1년 전과는 너무나 다른 트렌드가 자리하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리얼 버라이어티나 토크쇼 시장은 점점 물러나고 리얼리티쇼가 점점 부상되던 시기였다. 그러니 이 판세를 읽었다면 강호동은 기존의 스튜디오물이나 아니면 캐릭터쇼에 가까운 리얼 버라이어티는 피하는 편이 나았을 것이다.

 

게다가 강호동이 대중들을 향한 진정성을 드러내 보이려 했다면 좀 더 강도 높은 현장 속으로 뛰어드는 그의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심지어 김병만이 <정글의 법칙>을 통해 살벌한 정글 속에서 생존하는 모습을 보여주던 시기였다. 그런 그가 제 아무리 맨발로 해외를 뛰어다닌다고 해도 그 고생의 강도가 별반 느껴지기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리얼 버라이어티가 아닌 리얼리티쇼로서의 자기 모습을 좀 더 드러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많은 사람들이 강호동의 MC 스타일이 지금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한다. 사실이다. 중심에 서서 모두를 끌고 다니는 강력한 리더십의 메인 MC는 지금의 상황에서는 불필요해졌다. 그것은 무수한 카메라가 각각의 액션들을 가장 자연스럽게 포착하기 위해 세워져 있기 때문이다. 중심을 내세우면 주변이 잘 보이지 않게 된다. 그것은 진행의 힘이 아니라 오히려 타인을 가리는 행위가 될 수도 있다.

 

이렇게 달라진 시대에 강호동이 가장 먼저 버려야 할 것은 바로 이 메인 MC가 되려는 강호동의 모습이다. <삼시세끼> 같은 프로그램에서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어색한 모습을 앉아 있기만 해도 대중들의 사랑을 받는 손호준을 떠올려보라. 물론 강호동은 자신만의 캐릭터가 있지만 그래도 진행하려는 욕심보다는 자기 자신의 진짜 모습을 드러내는 자세를 보여줄 필요가 있다.

 

이렇게 되려면 그가 출연하는 프로그램이 말 그대로 리얼한 리얼리티를 보여주는 형식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동네 예체능>이나 <스타킹>, <투명인간> 그 어느 것도 리얼리티쇼의 자연스러움을 갖고 있지 않다. 이 프로그램들은 아쉽게도 지금은 조금 지나간 트렌드의 형식을 갖고 있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강호동만이 지금 현재 그가 처한 위기를 넘을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프로그램 형식 자체가 지금과는 달라야 한다. 자신을 중심으로 세우는 프로그램을 아예 피하는 편이 낫다. 차라리 <진짜사나이> 같은 여러 출연자들이 투입되는 프로그램에 한 사람으로서 들어가거나 <나 혼자 산다>처럼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일상 그 자체를 보여주는 게 그에게는 지금 더 절실하다. MC 강호동을 버리고 인간 강호동을 보여주는 길. 해법은 그것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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