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집 사건에 대한 <무도>식의 메시지

 

왜 갑자기 <무한도전>은 과거 망했던 아이템인 아이 돌보기를 다시 꺼내들었을까. 최근 벌어진 어린이집 폭행사건은 여러모로 이 아이템을 다시 끄집어낸 이유가 아니었을까. 실로 아이 키우는 부모들에게는 충격적인 사건으로 다가왔던 그 사건. 인천의 한 어린이집 보육교사가 김치를 먹지 않는다는 이유로 폭행을 가한 그 문제의 장면은 지금도 뉴스의 자료영상으로 무한 반복되어 나온다. 그 때마다 그걸 바라보는 부모들의 마음은 허물어진다.

 

'무한도전(사진출처:MBC)

유재석은 <무한도전> 멤버들이 어린이집 일일교사로 나가는 걸 도우러 온 오은영 박사에게 그 사건을 보고 어떠셨냐고 물었다. 그러자 오은영 교사는 울었다며 가슴이 먹먹하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털어놨다.

 

이 사건은 충격적이지만 그렇다고 모든 보육교사들이 똑같은 비난과 의심을 받는 건 온당치 않은 일이다. 그래서였을 게다. <무한도전>무도 어린이집특집에 그 어떤 비판적인 시선을 담아내는 걸 피했다. 물론 해당 교사의 이해할 수 없는 폭행 사실은 비난 받아 마땅한 일이지만, 그 비난이 열심히 노력하며 아이를 돌보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보육교사들에게까지 튀는 건 잘못된 일이기 때문이다.

 

<무한도전>의 선택은 그래서 어린이집을 찾아가 자식처럼아이를 열심히 돌보는 모습을 담아내는 일뿐이었다. 유재석은 아이들이 등원하기 전 미리 이름을 외워놓는 특유의 자상함을 보여줬고, 박명수는 조금 거친 듯 보이지만 혼자 우울해하는 아이에게 특별히 관심을 주는 따뜻한 면을 보여줬으며, 정준하는 동물복장을 하고 아이들과 놀아주는 열정적인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또 하하와 정형돈은 숲 속에서 마음껏 뛰어놀며 체험하는 아이들과 함께 어우러지는 모습을 보여줬다.

 

아이들은 역시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기쁨을 주는 존재들이었다. 유재석이 우는 어린 아이를 안고 달래주고 있자 한 아이는 휴지를 빼서 그 아이의 눈물을 닦아주어 뭉클한 감동을 선사하기도 했다. 낮잠을 자는 아이들의 모습은 그 자체로 천사처럼 아름다웠다. 하루가 끝나고 돌아가는 아이에게 문득 달려가 다시 안아준 하하의 설정 가득한 모습 속에는 그래서 진심 또한 묻어났다. 유재석은 가는 아이에게 팔을 벌려 한번 안아줄래 라고 물었고 다가와 안아주는 아이의 이마에 뽀뽀를 해주었다.

 

이번 <무도> 어린이집 특집은 큰 웃음의 요소가 그리 많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웃음만을 강조할 수는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억지로 상황극을 만들거나 현실에 대한 풍자를 섞기보다는 차라리 아이들에게 하루를 헌신하는 모습 그 자체가 가장 중요한 일이었을 테니 말이다. 웃음은 적었어도 저런 어린이집이면 믿을 수 있겠다는 바람을 전해준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았던가.

 

아이를 키워본 부모들은 모두 알 것이다.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기고 돌아설 때의 그 부채감을. 그런데 그 어린이집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는 사실은 이 땅에 사는 부모들에게 더 큰 부채감을 만들어낸다. 큰 걸 바라는 것이 아니다. 더도 말고 아이들의 마음이 다치지 않게 잘 보살펴주기를 바랄 뿐이다. <무도> 어린이집이 보여준 것처럼.

 

멜로가 된 <순수의 시대>, 왜 시대를 담지 못했나

 

신하균은 왜 이 영화에 출연했을까. 새로 개봉한 영화 <순수의 시대>는 사극이다. 조선 초기 이방원의 왕자의 난을 소재로 다뤘다. 역사적 사실이야 사극을 조금 봤다 하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이해되는 것일 게다. KBS <용의 눈물>이나 <정도전> 같은 사극이 다뤘던 그 시대.

 

사진출처:영화 <순수의 시대>

하지만 <순수의 시대>는 그 역사적 사건에 집중하지 않는다. 대신 이방원(장혁)의 왕자의 난에서 오히려 역적으로 몰린 김민재(신하균)가 기녀 가희(강한나)에게 보내는 절절한 순애보를 다루고 있다. 19금 영화이니 당연히 노출수위가 높고 정사신도 많이 나오지만 안타깝게도 그것이 그렇게 특별히 인상적으로 다가오지는 못하고 있다. 그것이 과연 그런 정사신이 이 영화에 꼭 필요한 부분이었는가에 대한 답변을 영화가 충분히 해주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물론 전장에서 수없이 죽음을 넘어서고 누군가를 죽게 한 이 강인한 김민재가 한 여인을 위해 죽음을 불사하는 사랑을 보이는 장면은 뭉클한 면이 있지만 영화는 그 이상의 울림을 담아내지는 못한다. 예를 들어 이 가희라는 여인의 삶이 좀 더 민초들의 삶으로 확장시켰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만일 그랬다면 그 핍박받는 삶에 대해 지금의 대중들이 현실적인 공감대를 가졌을 수도 있다. 그것은 또한 그런 그녀를 끝까지 보호해주는 김민재라는 캐릭터 역시 특별하게 만들어낼 수도 있었을 것이다.

 

<순수의 시대>는 그 이야기 구조 상으로 보면 지금 현재를 살아가는 서민들의 정서를 담아낼 수 있는 가능성이 충분했다는 점이다. 정치인들은 서로 권력을 잡기 위해 죽고 죽이는 일을 반복하고 그 사이에 낀 서민들은 이들 권력자들의 손에 핍박받다 아무렇게 죽음을 맞이하고 심지어는 역사적 기록에서조차 삭제된다. 이 얼마나 지금의 현실과 조응하는 면이 많은가.

 

하지만 결과적으로 <순수의 시대>는 이런 폭넓은 의미망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김민재와 가희의 지극히 사적인 사랑에만 집중함으로써 이야기를 그저 멜로에 머물게 만든다. 물론 모든 사극이 역사를 빌어와 어떤 의미를 찾아낼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사적 멜로를 그리기 위해 이 거대한 역사적 사건을 끌어왔다면, 그 사적 멜로가 공적인 사건들 속에서 어떤 의미를 차지하는가는 영화가 얘기해줘야 했던 게 아닐까.

 

이 영화에 출연하는 배우들의 연기는 모두가 나무랄 데가 없다. 신하균은 그 단단하고 신경질적인 근육의 몸만으로도 영화에 비장미와 긴장감을 만들어내고, 장혁은 이방원을 허허실실과 잔인함을 겸비한 인물로 해석해낸다. 그저 섹시 스타로만 이미지화되어 있던 강한나는 의외로 영화의 중심을 잘 잡아주고 있고, <미생>에서 장백기라는 스펙남을 연기했던 강하늘은 놀라운 악역 변신을 보여준다.

 

이들 각각의 호연은 대단히 인상적이지만, 그것이 영화에 하나로 묶여지지 않아 힘이 생기지 않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순수의 시대>라고 제목을 지었지만 영화는 그 시대적 의미를 잘 담아내지 못했다. 그나마 영화를 끝까지 볼 수 있는 힘은 신하균의 그 몸에서 나온다. 그 몸과 표정 하나가 전해주는 절절함과 긴장감이 없었더라면 영화는 지리멸렬해지고 말았을 것이다. 그 상처투성이의 몸을 쓰다듬는 가희의 손길에 좀 더 민초의 의식을 담아냈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착하지>, KBS가 발견한 새로운 성공 방정식

 

결국 KBS <착하지 않은 여자들>이 수목극을 평정했다. 다중인격의 캐릭터들이 현빈과 지성이라는 연기자의 몸을 빌어 수목극 경쟁을 주도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슬며시 들어온 <착하지 않은 여자들>의 힘은 결코 약하지 않았다.

 

'착하지 않은 여자들(사진출처:KBS)'

이 드라마의 시작은 아주 조용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드라마는 마치 하나의 가족드라마 구조를 가져왔기 때문에 그저 그런 드라마가 아닐까 하는 선입견이 앞섰기 때문이다. 하지만 특이한 점이 있었다. 그것은 왜 이런 가족드라마 구조를 가진 드라마가 주말이나 일일이 아닌 주중에 포진했는가 하는 점이다. 거기에는 이 드라마가 가진 독특하고도 신선한 실험을 예감케 했다.

 

또 놀라운 점은 이 평이해 보이는 드라마의 대단한 캐스팅이다. 김혜자, 이순재, 장미희, 채시라, 이하나도 모자라 손창민, 박혁권, 서이숙 같은 쟁쟁한 중견들이 포진하고 여기에 김지석이나 송재림 같은 최근 젊은 세대들에게 주목받는 배우까지 들어가 있다. 이 정도면 거의 전세대를 다 커버하는 캐스팅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캐스팅이 가능한 건 여러모로 김인영이라는 결코 녹록치 않은 작가에 대한 배우들의 믿음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태양의 여자>, <적도의 남자>로 김인영 작가는 자기만의 독특한 세계를 구축해내고 있는 국내 몇 안 되는 작가 중 하나다.

 

실제로 이 작품은 그저 그런 가족드라마가 아닌 대담한 실험들이 들어 있었다. 그것은 기존의 가족드라마 틀을 가져오긴 했지만 이야기는 그 평범해 보이는 일상의 특별함들을 극적으로 포착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 드라마의 제목이 왜 그저 나쁜 여자들이 아니고 <착하지 않은 여자들>인가에서도 드러난다.

 

나쁜 여자착하지 않은 여자는 같은 말 같지만 그 뉘앙스가 다르다. ‘착하지 않은 여자착하다라는 표현이 반어적으로 활용될 수 있는 여지가 생기기 때문이다. 사실은 착하지만 여러 사정과 환경에 의해 착하지 않게 된의 의미도 내포되어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 드라마가 이 많은 캐릭터들에 주목시키는 방식은 이 제목이 주는 선입견을 깨는 방식과 유사하다. 드라마 초반 김현숙(채시라)은 엄마 강순옥(김혜자)이 평생 번 돈을 사업에 투자했다가 모두 날려먹고 도박판을 전전하다가 수배되는 입장에까지 처한다. 이 때만 해도 김현숙은 가족드라마가 흔히 그려내는 민폐 캐릭터처럼 보였다. 하지만 차츰 이 착하지 않은 여자의 학창시절 선생님 때문에 당했던 왕따와 퇴학 이야기가 나오고, 때론 대책 없이 정의로운 정 많은 심성이 드러나면서 이런 선입견은 깨져버린다.

 

강순옥은 절망한 김현숙이 죽은 아빠의 무덤 앞에서 자살기도를 하다가 우연히 만나게 된 장모란(장미희)이 과거 남편의 내연녀였다는 사실에 분노한다. 그래서 그녀를 찾아가 만난 자리에서 발로 가슴을 차 기절시킨다. 이때만 하더라도 강순옥은 꽤 모진 인물처럼 그려지지만 어찌된 일인지 깨어난 장모란을 강순옥은 자기 집으로 데리고 가 함께 지내려고 한다. 겉으로는 모진 척 하지만 그녀 역시 남다른 정을 은근히 드러내고 있는 것.

 

흥미로운 건 이 드라마가 가족드라마 같은 외피를 갖고 있어 연령대가 높은 세대들을 보다 쉽게 끌어들이면서도 그 안에 미니시리즈의 극적 스토리가 다양한 캐릭터들을 통해 보여지고 있어 젊은 세대들까지 포괄해내고 있다는 점이다. 이 드라마의 조용하지만 당연해 보이는 수목극 평정은 KBS라는 플랫폼에 어울리는 틀을 가져오면서도 거기에 세련된 어법을 구사하는 작품의 완성도에서 나온다.

 

사실 KBS의 주중 드라마들은 성공보다는 실패가 더 많았다. 그것은 타 지상파 방송사들의 장르 드라마 실험을 그저 비슷하게 따라하다 보니 채널의 특성과 부딪치는 면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착하지 않은 여자들>은 어쩌면 KBS가 찾아낸 주중드라마의 새로운 성공방정식은 아닐까 싶다. 꼭 장르를 해야 세련된 것이 아니고 가족드라마라고 해도 구태의연한 것도 아니다. 그걸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것이 나올 수 있다. 마치 착하지 않아 보이던 인물들이 다시 보이는 이 드라마처럼.

 

<풍문>, 상류사회의 전근대성, 그 시대착오의 쓴 웃음

 

이건 왜 사극을 보는 느낌일까. SBS <풍문으로 들었소>는 알다시피 지금 현재가 시대적 배경이다. 그런데 그 이야기는 어딘지 사극을 닮았다. 한인상(이준)이 사는 집은 마치 조선시대의 거대한 권문세가를 연상시킨다. 한정호(유준상)와 최연희(유호정)는 이 권문세가의 주인들이고 그들의 비서들인 양재화(길해연)나 이선숙(서정연)은 사극으로 말하면 하인들 중에서도 집안의 대소사를 꾸리는 수노(首奴)에 가깝다. 물론 이 집에는 운전기사부터 유모까지 하인들(?)이 수두룩하다.

 

'풍문으로 들었소(사진출처:SBS)'

신분제가 사라진 지 백년이 넘게 흘렀지만 어찌된 일인지 <풍문으로 들었소>의 풍경은 여전히 전근대적인 신분제의 틀에 멈춰져 있다. 물론 그 신분제는 태생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고 하지만 태생으로 이미 빈부가 결정되는 자본주의의 시스템 안에서 태생적으로 결정되는 것과 그다지 다르다고 말할 수 없다.

 

오히려 과거의 신분제보다 더 나빠진 건 이들 상류사회의 일원들인 현대판 양반들에게는 거기에 걸맞는 소양이나 예의 또한 별로 기대할 게 없다는 점이다. 겉으로 보기엔 번지르르하게 보이고, 교양 있어 보이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이토록 속물이 없다. 이성을 강조하는 이 집안에서 최연희가 용하다는 점쟁이를 불러 부적을 붙이는 건 그 속물근성을 여지없이 폭로하는 장면이다. 체신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이들은 뒤로는 돈이면 뭐든 다 해결해줄 것처럼 행동하지만 앞에서는 교양인인 척 하느라 속내를 숨기고 어색하게 웃기 바쁘다.

 

이런 집에 간판 집 딸 서봄(고아성)이 배가 남산만한 체 들어와 그 날 안방마님(?)의 침대에서 아기를 낳는 이야기는 그래서 대단히 흥미롭고 우스꽝스럽게 다가온다. 거기에는 <풍문으로 들었소>라는 작품이 가진 상류사회의 위선에 대한 신랄한 폭로가 들어있다. 아기를 낳은 서봄에게 흥분한 최연희가 교양 없이 쌍소리를 해대고 그러면 안 된다는 비서의 이야기를 듣고는 얼굴을 바꿔 교양인인 척 다시 찾아와 사과하는 모습은 그래서 섬뜩하면서도 우습다.

 

게다가 서봄으로부터 한인상을 떼어놓으려고 거의 감금에 가까운 일을 벌이는 한정호나, 거기서 탈출해 마치 도둑놈처럼 자기 집에 몰래 들어오는 한인상은 그 비정상적인 상황 때문에 웃음을 준다. 한인상과 서봄 본인들은 실로 절절한 비극의 주인공들이지만 그 상황은 희극이 될 수밖에 없다. 자기 집에 자기가 못 들어가고, 시댁에서 아이를 낳은 후 거의 갇혀 있으며 혼인신고를 마치 007 작전 치르듯 하는 이런 상황이 어디 정상적인가.

 

유배 갈 처지에 몰린 애 아빠가 몰래 집에 들어와 애 엄마에게 마치 감옥이나 되는 듯이 집안 구조를 가르쳐주며 그 감옥살이의 노하우를 알려주는 장면은 또 얼마나 황당한가. 이런 장면들이 우습게 다가오는 건 그것이 조선시대에나 가능할 법한 일들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지금 현재 상류사회의 전근대성을 드러내는 일이다. 이 얼마나 기발한 착상이란 말인가.

 

중요한 건 이 드라마의 제목이 <풍문으로 들었소>라는 점이다. 이것은 이렇게 교양 있는(?) 상류사회의 집안에서 벌어져서는 도저히 안 되는 일들을 주인들이 감추려고 안간힘을 쓰지만 결코 그것이 감춰지기 어렵다는 걸 말해준다. 우선 그들 자신이 이 상황을 견뎌내지 못하는 것이 첫 번째지만 그 많은 현대판 하인들의 시선과 입소문은 이 풍문들을 집 바깥으로 퍼져나가게 만들 것이다.

 

우리네 서민들이 가끔씩 보게 되는 상류사회에서 벌어진다는 전근대적인 일들(이를 테면 왕처럼 살아간다는 재벌가 이야기 같은)의 부조리가 풍문으로 떠돌 듯이 이 드라마는 그 풍문의 실체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이 점은 이 사극처럼 느껴지기까지 하는 전근대적 상황을 보여주는 이 드라마가 현실에 던지는 도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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