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를 부탁해>, 첫 방부터 대박 낸 까닭

 

첫 회부터 대박이다. SBS <아빠를 부탁해>는 첫 회에 13.5%(닐슨 코리아)라는 경이적인 시청률을 기록했다. 이건 금요일 밤 최강자로 군림하던 <정글의 법칙>11.8%보다도 2% 가량 앞선 기록이다. ‘아버지 예능이라는 소재적 특성이 설 명절이라는 특수한 시간대와 맞아 떨어졌기 때문에 그 힘이 배가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하더라도 이 정도면 초대박이다. 도대체 무엇이 이런 놀라운 힘을 만들었던 걸까.

 

'아빠를 부탁해(사진출처:SBS)'

가장 큰 건 역시 공감대다. 50대 아빠들의 일상을 <아빠를 부탁해>는 별다른 의도를 과잉하지 않고 그저 담담하게 보여줬다. 여느 집 그 세대의 아빠들이 그러하듯이 이들의 일상은 침묵인 경우가 더 많았다. 두 시간 동안 딸과 한 대화가 단 두 마디 정도 된다는 건 사실 이러한 관찰 카메라를 통해 바라보지 않으면 보통 사람들도 느끼기 힘든 일이다. 하지만 이런 방송 사고에 가까운 침묵을 <아빠를 부탁해>의 카메라는 무던히도 견뎌냈다.

 

이경규와 딸 예림의 일상은 개 뒤처리 하는 일이 딸과 시간을 보내는 일보다 훨씬 많은 이경규라는 아빠의 모습을 가감 없이 보여줬고, 조재현과 딸 혜정이는 일 때문에 바쁜 아빠와 어떻게든 소통하고 가까이 다가가고 싶어 하는 딸의 모습이 보는 이들을 먹먹하게 했다. 두 명의 딸 바보 아빠인 조민기와 강석우는 뭐든 살뜰히 챙겨주고픈 마음이 묻어났지만 딸들의 반응은 조금씩 달랐다.

 

아무 일 없이 지낸 듯한 그 일상을 네 아빠들이 모여서 관찰카메라를 통해 다시 보는 건 웃음을 주기도 했지만 때론 딸이 보여주는 의외의 반응에 충격을 주기도 했고 때로는 딸의 외로움이 느껴져 아빠들을 아프게도 만들었다. 즉 그 관찰카메라는 모든 아빠들이 그러할 것 같은 평범한 일상 속에서 놓치기 마련이었던 가족과의 관계를 다시 생각하게 해주었다.

 

일단 첫 선을 보인 네 아빠에게는 각각 저마다의 갈등요소들이 발견되었다. 이경규네는 서로 자유롭게 지내는 것이 일상이 되어 대화가 거의 없었고, 조민기네는 마치 애인 같던 딸이 이제는 성장해 과거보다 조금은 데면데면해져가는 관계가 느껴졌으며, 조재현네는 다가오려는 딸과 좀체 소통을 잘 하지 못하는 아빠가 보였고, 강석우네는 겉으로 보기엔 완벽하고 로맨틱한 아빠지만 그것이 관계에서는 약간의 불편함을 만들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사실 이런 관계들 중 하나쯤은 지금 현재 50대 아빠들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요소일 것이다. 그러니 <아빠를 부탁해>는 특별히 드라마틱한 사건이 벌어지지 않아도 주목하게 된다. 그들의 관계가 어떻게 나타나고 또 그것이 어떤 노력으로 어떤 변화를 가져올 지가 저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나의 이야기처럼 다가온다는 점이다.

 

특히 이 예능 프로그램은 50대라는 세대적인 위치와 아빠라는 특별한 존재의 면면을 조명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사실 지금 시대의 50대 아빠라면 무언가 밖에서는 이룬 것이 분명할지 몰라도 집안에서는 점점 주변으로 밀려나기 딱 좋은 존재들이다. 그러니 그들의 소소한 행복과 또 그 이면에 놓여진 쓸쓸함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건 당연한 일이다.

 

너무 의도적인 예능의 조미료를 치지 않은 것은 <아빠를 부탁해>라는 프로그램이 첫 방부터 대박을 친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일상을 가감 없이 보여주는 것만이 오히려 공감대를 넓힐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어쩌면 쉬운 일처럼 보이나, 요즘처럼 미션의 유혹이 도처에 있는 시대에는 오히려 가장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너무 밋밋해 보이는 일상을 그냥 내버려두고 바라보는 일. 그건 제작진에게도 고역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고역은 제작진의 개입을 배제함으로써 고스란히 그 일상의 공감을 시청자들에게 전해주는 효과를 발휘했다.

 

육아예능이 어린 아이들의 숨겨진 일상을 발견하는 재미를 줬다면, <아빠를 부탁해> 같은 어른들의 예능은 무언가 능숙할 것 같고 잘 살아낼 수 있을 것 같은 어른들의 마음 한 구석 남아있는 소중한 것들을 발견하는 짠함을 선사한다. 그들의 긴 쓸쓸함과 짧은 행복의 교차는 그래서 현재의 아빠들에게 깊은 울림을 전해준다. 다시금 집안의 아빠를 새롭게 바라보게 만든다는 것. 이 프로그램이 시작부터 놀라운 힘을 발휘한 이유일 것이다.

 

 

<아빠를 부탁해>, 딸 둔 50대 아빠들의 진심 통할까

 

SBS가 추석에 편성한 새 예능 프로그램 <아빠를 부탁해>는 방송이 시작되기 전부터 논란과 화제를 불러왔다. 그 가장 큰 진원지는 다름 아닌 이경규다. 이경규가 새로 하는 프로그램인데 거기에 딸 예림이가 출연한다는 얘기가 먼저 선입견부터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아빠를 부탁해(사진출처:SBS)'

그 선입견이 만들어낸 관점은 두 가지다. 하나는 최근 들어 주춤하고 있는 이경규가 딸을 통해 어떤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최근 육아예능 같은 가족이 나오는 프로그램들이 그 전례가 되어주고 있다. 요즘 연예인들은 예능 하려면 아이를 가져야 한다는 푸념을 내놓을 정도가 되었다. 그만큼 가족이 동반 출연하는 관찰예능이 맹위를 떨치고 있다는 증거다.

 

다른 선입견 하나는 이경규를 통해 딸 예림이가 연예계 데뷔를 하려한다는 것이다. 이미 예림이는 몇 차례 방송에서 언급된 적이 있어 대중들에게도 어느 정도 친숙한 인물이다. 그런데 이번 프로그램에 이경규와 함께 출연함으로써 연예인으로서의 본격 활동이 예측된다는 얘기다. 여기에는 이미 육아예능에서도 나오는 논란처럼 부모의 후광효과를 손쉽게 연예계에 입성한다는 모습으로 비춰질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선입견은 말 그대로 선입견이다. 방송이 시작되기도 전에 이경규가 딸과 함께 프로그램에 나온다는 얘기 하나로 추정해서 나온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이런 부정적인 선입견에는 이경규에 대한 호불호도 상당부분 들어가 있다. 이경규는 한때 날방의 이미지 때문에 리얼 버라이어티를 하면서 대중들의 곱지 않은 시선을 받았던 게 사실이다.

 

비록 선입견이라고 하더라도 제작진으로서는 억울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실제로 장혁재 PD<아빠를 부탁해>의 포인트는 50대 아빠에게 있지 딸에게 있는 건 아니라고 밝히기도 했다. 즉 딸이 있는 것은 그 나이 들어가는 아빠의 모습을 보는 하나의 관점일 뿐 그 이상은 아니라는 것이다. 장혁재 PD는 이 프로그램의 제목이 아빠에게 맞춰져 있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프로그램은 이경규만 나오는 게 아니다. 조재현, 강석우, 조민기가 딸들과 함께 출연한다. 장혁재 PD는 조재현은 아예 딸과 거의 시간을 보내지 못해 대화 자체가 데면데면한 사이라고 했고 강석우는 모든 게 완벽한 아빠의 전형처럼 보이는 면이 있지만 그것이 관계 속에서는 또다른 이야기를 담을 가능성이 있다고도 얘기했다. 즉 이 프로그램은 이 다양한 50대 아빠들을 통해서 그들이 살아내는 현재의 삶이 가진 진솔한 공감대를 추구한다는 얘기였다.

 

사실 연예인 이경규에 대한 대중들의 반응은 예전처럼 늘 좋지만은 못하다. 하지만 딸 예림이 아빠로서의 일반인 이경규가 어떤 모습일까 하는 궁금증은 분명히 있다. 만일 방송에서와는 완전히 다른 면모의 50대 아빠 이경규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면 그것은 어쩌면 <아빠를 부탁해>의 새로운 가능성이 아닐까. 많은 이들이 선입견으로 이를 육아예능의 확장판으로 바라보지만 장혁재 PD는 이 프로그램이 어른들의 예능이라고 말했다. 50대 어른이 보여줄 수 있는 삶의 행복이나 쓸쓸함 같은 걸 가감 없이 보여준다는 것이다.

 

연예인 이경규에만 과도하게 집중된 관심은 그래서 <아빠를 부탁해>의 진짜 포인트가 아니다. 이 프로그램의 진짜 방점은 50대 아빠에 찍혀있다. 지금껏 40대 중년들의 이야기들은 여러 예능에서 그려진 바 있다. 하지만 한 세대 위의 50대 아빠들은 지금 현재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실로 이 관찰카메라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킹스맨>, 타란티노식 유머와 007 스파이액션의 만남

 

쿠엔틴 타란티노식의 유혈이 낭자한 폭력 미학과 007식의 스파이액션이 만나면 이런 그림일까. 우리에게는 <킥애스>로 잘 알려진 매튜 본 감독의 <킹스맨 : 시크릿에이전트>의 액션이 서 있는 지점은 절묘하다.

 

사진출처 : 영화 <킹스맨>

첫 시퀀스부터가 그렇다. 마치 제임스 본드처럼 잘 차려입은 누가 봐도 스파이인 사내가 누가 봐도 제임스 본드 같은 영국식 절도의 권총 액션을 보여주지만 그 후에 등장하는 건 발이 칼날로 되어 있는 여 고수에 의해 반 토막 나는 사람들이다. 앞부분이 007 스파이액션을 기대케 한다면 그걸 바로 도륙하는 건 이 영화가 그렇게 젠틀맨의 겉모습만이 아닌 적나라한 타란티노식의 유혈낭자 액션 히어로를 그릴 거라는 걸 암시한다.

 

그런데 이 흐름은 또 엉뚱하게도 에그시(태런 애거튼) 같은 청년의 성장드라마로 그려진다. 영화는 흥미진진한 액션이 가장 중요한 포인트지만 그래도 하나의 메시지를 잡아내는 건 바로 이 루저로 살아가던 청년이 어떻게 젠틀맨이 되어 가는가 하는 지점이다.

 

<킥애스>에서 청소년물에 피가 철철 흐르는 액션을 시침 뚝 떼고 잘도 연결해낸 매튜 본 감독은 역시 <킹스맨>을 통해서도 몸이 반으로 나뉘는 그 살벌한 긴장감과 함께 심지어 그것을 블랙유머로 승화시키는 면모까지 보여준다. 만일 타란티노가 이 영화를 봤다면 박장대소하며 즐거워 했을 지도 모를 장면들이 <킹스맨>에는 가득하다. 특히 이 영화의 클라이맥스에 해당하는 폭죽(?)’ 장면은 영화 속 대사 그대로 놀라운 스펙타클을 보여준다.

 

당연히 영화는 청소년 관람불가다. 게다가 스파이 액션은 이미 냉전시대가 끝난 후 007 시리즈를 통해 보여진 것처럼 끝물 아니냐는 관점이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킹스맨>이 이토록 대중들의 열광을 얻어낸 것은 그 액션 자체가 독특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건 매튜 본 감독 특유의 인간관과 이질적인 것들을 엮어내는 연출 덕분이다.

 

007 시리즈가 힘이 있었던 것과 또 힘이 빠졌던 것은 모두 냉전시대가 가진 흑백논리와 선악구도 덕분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단순하게 구분되는 시대가 아니다. 적인지 아군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존재들이 때로는 자기만의 논리에 빠져 무수한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넣기도 하는 시대. <킹스맨>의 베테랑 요원 해리 하트(콜린 퍼스)가 갖고 있는 압도적인 살상 능력은 그가 어느 편에 서느냐에 따라 든든한 기사가 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악마 같은 괴물이 되기도 한다.

 

즉 매튜 본 감독이 바라보는 인간관은 성악설에 가깝다. 가만히 내버려두면 무슨 짓을 저지를 줄 모르는 존재, 때로는 그 위협이 엄청난 결과를 만들어내기도 하는 그런 존재가 매튜 본이 바라보는 인간이다. 바로 이 인간관은 이 스파이 액션에 타란티노식 유혈 미학이 곁들어지면서도 그 안에 젠틀맨이 되어가는 청년의 성장담을 담아낼 수 있는 근거가 된다.

 

<킹스맨>의 놀라운 선전은 우리가 지금껏 봐왔던 액션과는 사뭇 다른 결을 갖고 있으면서도 그것이 놀라운 균형감각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스파이 액션의 틀 위에서 폭력 미학이라고 해도 좋을 자극적인 액션을 보여주면서도 감독이 갖고 있는 인간관에 대한 이야기를 적절히 메시지로 담아내는 능력. 이것이 <킹스맨>이라는 이종 액션 영화의 매력이다.

 

군림 하는 작가와 감사 표하는 작가

 

SBS <펀치>의 종영을 앞두고 박경수 작가가 제작진과 출연진에게 진심어린 편지로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고 한다. 그는 부끄러운 대본을 부끄럽지 않은 영상으로 만들어주신 이명우 감독님, 김효언 감독님, 윤대영 촬영감독님, 그리고 모든 스태프분들,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신 한정환 EP, 정말 감사합니다라고 말문을 열었다. 그리고 출연자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지목해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펀치(사진출처:SBS)'

“<펀치>의 박정환은 래원 씨가 만들어낸 인물입니다. 전 래원 씨가 만든 박정환을 따라간 것에 불과합니다. 정말 훌륭했어요. 래원 씨.” 박경수 작가는 극중 주인공인 박정환을 자신이 만들어낸 인물이 아니라 연기자 김래원이 만든 걸 자신이 따라간 것뿐이라고 말했다. 또 이태준 역할의 조재현에게는 한 수 배웠습니다. 카리스마와 유머러스함이 공존하는 매력적인 이태준을 만들어주셔서 고마워요. 활자의 인물이 어떻게 실제의 인간이 될 수 있는지 가르쳐 주셨어요라고 했다.

 

박경수 작가는 신하경 역할을 한 김아중에 대해서도, 윤지숙 역할의 최명길에게도, 최연진 역할의 서지혜에게도, 또 조강재 역할의 박혁권에게도 또 이 드라마에 출연한 모든 출연자들을 하나하나 호명하며 고마움을 표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을 낮췄다. “<펀치> 대본 작업을 하면서, 부끄러웠던 제 자신을 잊지 않겠습니다. 훌륭했던 여러분들을 기억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라는 말로 감사의 글을 마무리했다.

 

박경수 작가의 이 편지는 많은 걸 생각하게 한다. 드라마에서 작가라고 하면 거의 신적인 존재처럼 받들어지게 마련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손의 의해서 작품 속의 인물들이 살고 죽는 것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박경수 작가는 그것이 자신이 만든 인물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거기에 살을 붙이고 숨 쉴 수 있게 해준 이들은 다름 아닌 연기자들의 몫이었다는 걸 감사의 마음으로 전해왔다.

 

요즘 예능 프로그램의 패러디로까지 등장하고 있는 임성한 월드의 데스노트 이야기가 씁쓸함을 전하는 것은 거기에서 마치 신적인 지위를 가진 듯 휘둘려지는 갑의 권력을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제 아무리 극중 인물을 잘 소화해내기 위해 안간힘을 써도 어느 날 갑자기 푹 쓰러져 죽음을 맞는 건 허무하고도 쓸쓸한 일이다. 이것은 아마도 지금의 서민들이 가진 정서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죽어라 노력하는데 대우는커녕 진짜 죽음으로 내모는 현실.

 

박경수 작가의 편지가 깊은 감동을 전하는 것은 이 천재 작가의 겸손이 죽을 듯 열심히 노력하며 살아가는 이들에게 작은 희망을 담아내기 때문이다. 수치로 표현되는 시청률이 높은 드라마라면 그 성과를 고스란히 작가와 주인공 몇몇이 가져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드라마라는 영역이 어디 그런가. 저 눈에 보이지 않는 조명 하나, 소품 하나까지도 작품을 빛나게 해준 소중한 누군가의 손길이 묻어나는 것이다.

 

갑질 하는 세상이다. 어디에서든 우리는 그 갑의 힘을 느끼며 살아간다. <펀치> 같은 좋은 드라마를 써준 것도 고마운 마당에, 이런 훈훈한 마음까지 읽게 해준 박경수 작가에게 새삼 놀라게 된다. 그 천박한 숫자의 시청률을 내세워 많은 이들이 작가라고 말하지만 과연 그게 작가라는 존재의 증명으로 완전할까. 작품과 작품의 인물 하나하나와 그 인물을 살아있게 만들어준 배우들과 또 그것을 잘 담아내준 모든 제작진들에게 깊은 애정을 표현한 박경수 작가. 그가 바로 진정한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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