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미로운 '풍문'의 화학실험, 신데렐라 아닌 갇힌 소녀

 

요즘 같은 시대에 귀족이 어디 있습니까.” 한정호(유준상)은 그렇게 말하면서 시민사회의 자유와 평등을 운운한다. 하지만 그렇게 평등한 시민사회의 한 일원인 척 하는 한정호의 실상은 뼛속까지 귀족인 양 특권의식으로 가득 차 있다. 실제로 그는 엄청난 대기업들의 대리를 해주는 로펌의 대표로서 권력을 행사한다. 비상한 머리로 타인의 치부를 들춰서라도 얻을 건 얻어내는 그런 인물이다.

 

'풍문으로 들었소(사진출처:SBS)'

SBS 월화드라마 <풍문으로 들었소>는 그 대부분의 공간적 배경이 바로 이 한정호의 집이다. 벌써 7회를 넘기고 있지만 이 집의 구조는 시청자들의 머릿속에 잘 그려지지 않는다. 그 집을 무작정 쳐들어온 서봄(고아성)의 엄마 김진애(윤복인)너무 커서어지럼증을 느낄 정도다. 공간과 조명을 잘 활용하는 안판석 감독 특유의 연출은 한정호의 집을 거대한 미로처럼 만들어놓는다. 어두침침한 그 곳은 늘 문이 닫혀 있고 그 문 안쪽에서는 누군가의 수군거림이 들려온다. ‘풍문이라는 어감이 가장 잘 시현된 공간구성이다.

 

집이 갖고 있는 이 겉모습의 고요함과 그 안에서의 소란은 한정호라는 인물의 이율배반적인 삶과 일치한다. 교양인으로서 모든 걸 이성과 대화로 차분하게 풀어나가는 모습을 보이려 하지만 그들의 내부에서는 무언가 뜨거운 것들이 울컥 울컥 밖으로 빠져 나온다. 인간이 아닌 완벽한 존재처럼 보이고 싶어 하지만 한정호는 탈모 때문에 고민하고 그의 아내 최연희(유호정)는 허한 마음을 부적으로 달래는 인사다.

 

이런 집에 그의 아들 한인상(이준)이 임신한 서봄을 데리고 오고 바로 그 날 최연희의 침대에서 아기를 낳는다는 건 이 드라마가 가진 흥미로운 실험의 첫 단계다. 너무나 이질적인 환경에서 자라온 서봄이라는 서민이 이 이성과 교양을 가장하고 있지만 어찌 보면 시대착오적이고 때로는 기괴한 느낌마저 주는 이 집에 들어옴으로써 어떤 파장과 변화가 벌어지는가 하는 점이 이 드라마의 관전 포인트다.

 

이 화학실험은 우리가 흔히 보던 신데렐라 이야기와는 정반대의 구조를 갖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즉 서봄이라는 똑똑하고 현명하며 생명력이 넘치는 서민이 마치 죽은 관 속의 삶을 살아가는 듯한 한정호의 집에 들어와 신데렐라로서의 부유한 삶을 누리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 이해할 수 없는 세계 속에서 답답해하고 괴로워하는 이야기다. 그녀는 신데렐라가 아니라 마치 괴물의 성에 갇힌 소녀처럼 보인다.

 

안판석 감독과 정성주 작가의 <밀회>가 상류층이 가진 허위의식을 시종일관 진지한 시선으로 비판하는 작품이었다면 <풍문으로 들었소>는 다소 블랙코미디적인 여유가 느껴진다. 한정호의 갑질은 분노를 일으키기보다는 실소를 터트리게 한다. 그토록 외치는 평정심은 사실 자주 깨지는 모습을 통해 웃음으로 전화된다. 양갓집이 함께 만난 자리의 그 의전이 깨질 때 그 진짜 속내가 드러나는 것처럼, 한정호와 최연희의 그 데드마스크가 어떤 감정을 드러낼 때 <풍문으로 들었소>의 통쾌한 풍자가 시작된다.

 

<풍문으로 들었소>는 그래서 그 상황을 조금만 생각해보면 피식피식 웃음이 비어져 나오는 걸 참을 수가 없게 만든다. 서봄과 한인상의 복잡한 생각을 정리하라며 과외선생에게 한정호가 요청하자 그가 해주는 명료한 세계관강의는 그것이 섬뜩한 현실이면서도 실소를 짓게 만든다. 한정호는 사람은 괴물이라고 말하면서 결국 그래서 필요한 것이 훈육임을 강조하지만 그 훈육이란 다름 아닌 모든 것을 누르는 힘의 세계를 받아들이라는 것일 뿐이다. 괴물은 결국 한정호인 셈이다.

 

하지만 힘과 윤리라는 명료한 세계관’ 2탄 강의에서 서봄은 그런 비윤리적인 사람을 변호해주는 것이 맞는 일인가 하는 문제를 제기한다. 한정호의 집이라는 괴물의 성에 갇혀 있는 서봄이라는 소녀는 그녀의 엄마인 김진애의 증언처럼 결코 호락호락하게 잡혀먹힐 위인이 아니다. 그녀는 그래서 처음에는 구속된 존재처럼 보이다가 차츰 이 성을 변화시키는 인물처럼 보인다. 아니 이미 한인상이라는 인물을 변화시켰을 때 그래서 둘 사이에 아이가 생겨났을 때부터 그녀가 일으킨 변화는 시작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한정호의 세계와 서봄의 세계의 부딪침. 그 화학작용을 웃음으로써 그려내는 이 작품은 그래서 우리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과연 어떤 세계의 삶을 진정으로 원하는가. 서봄의 가족들은 가난하고 사업에 실패해 부채도 많다. 또 첫째 딸은 아나운서가 되고 싶어 시험을 치르고 있지만 배경이 없어 1차에서 번번이 떨어진다. 그들의 이런 약점을 이용해 한정호는 거래를 하려 하지만 그 때마다 이 서봄의 가족들은 흔들리기는 해도 결코 꺾어지는 않는다. ‘돈으로 빤스 벗게 만드는세상에 대해 항변할 줄 아는 사람들이다.

 

그것이 가능한 건 서봄이라는 사랑하는 가족의 존재와 그 서봄이 낳은 아기라는 축복받아야 하는 생명이 거기 있기 때문이다. 부유한 데드마스크의 삶을 살아가는 한정호와 최연희보다 때로는 툭탁거리며 지지고 볶는 서형식(장현성)과 김진애의 삶이 더 건강하게 느껴지는 건 그 때문이다. 겉으로 보여지는 화려함만이 전부는 아니지 않은가. 서봄은 그 이름처럼 이렇게 자본에 의해 화려해졌지만 그만큼 메말라버린 차가운 현실 속에서 봄 같은 생명력을 돋보이는 존재다. 과연 서봄은 이 괴물의 집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 아니면 그 괴물에게 먹혀버릴까. 이 드라마가 흥미진진해지는 대목이다.

 

<징비록>, 임진왜란을 통해 보는 국가의 위기

 

국가의 위기는 어떻게 생겨날까. KBS 주말사극 <징비록>이 던지는 굵직한 질문이다. 임진왜란을 전후해서 벌어진 여러 국가적 사안들과 전쟁의 전조들, 피폐해진 나라 살림에 더해 붕당을 이뤄 권력에만 몰두하는 정치세력과 국제정세를 읽어내지 못하는 왕의 리더십 등 <징비록> 안에는 국가가 위기에 처할 때 드러나는 다양한 증상들이 보여진다.

 

'징비록(사진출처:KBS)'

하필 지금 현재 <징비록>이 사극으로 만들어진다는 건 그래서 의미심장한 일이다. 물론 당장 왜란과 같은 전쟁의 위기가 닥칠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경제적으로는 이보다 더 심각한 사안이 터질 위험성이 다분한 현재가 아닌가. <징비록>에 등장하는 몇몇 사례들이 그저 옛이야기로만 보이지 않는 건 그래서다.

 

선조(김태우)는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는 사실 자체를 부정한다. 물론 그것이 흩어진 민심을 다잡기 위한 방편이라고 할지라도 왜란을 방비조차 제대로 하지 않는다는 건 국가 지도자로서의 명백한 직무유기다. 선조는 군역을 통해 축성을 멈추면 안 된다고 주장하는 류성룡(김상중)에게 당장 먹고 살 것도 없는 백성의 고통만 가중된다는 논리를 내세운다. 거기에 대해 류성룡은 지주들에게 제대로 된 세금을 받아 군역을 하는 백성들에게 나눠줘야 한다고 말하지만 선조는 지주들 또한 백성이라며 갑작스런 세금을 부과할 수 없다고 말한다.

 

세금문제는 지금 현재 우리가 처한 상황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 연말정산 문제만 두고 봐도 가진 자들이 더 많이 내는 것이 아니라 중산층들의 세 부담만 더 커졌다는 게 그 현실이 아닌가. 사실 국고가 여의치 않다고 말하지만 그것이 서민들이 세금을 내지 않아 생긴 일은 아닐 것이다. 4대강 사업 같은 나라 망치는 엄청난 사업에 엉뚱하게도 재원이 투입되는 것이 반복되었기 때문이다.

 

군량미를 빼돌려 치부하는 양반들의 이야기는 최근 벌어진 방산비리로 구속된 일광그룹 이규태 회장을 떠올리게 한다. 클라라와의 개인 메시지 공방을 벌였던 일로 존재가 알려진 이규태 회장의 이 비리 규모는 무려 500억대에 달한다고 한다. 국가의 방위를 위해 사용되어야 할 국민의 혈세가 사적인 치부로 이어지는 상황. <징비록>이 그리고 있는 왜란 직전의 분위기와 무에 다를 게 있을까.

 

당장 먹고 살기도 힘든 백성들에게 군역과 축성이 힘들다고 모두를 집으로 돌려보낸 선조의 조치는 마치 대선 때마다 흘러나오던 선심성 공약을 그대로 닮았다. 기초노령연금 공약을 뒤집고, 무상급식을 하겠다고 공약을 내걸고는 결국 흐지부지 중단하는 상황들에 나오는 이야기는 당장의 현실이 그렇지 못하다는 변명이다. 애초에 할 수 없는 공약을 왜 내건단 말인가.

 

이미 왜국에서는 전쟁준비에 돌입했는데도 불구하고 조선은 동인 서인으로 나뉘고 또 그것도 모자라 남인 북인으로 나뉘어 각자 이권에만 몰두하는 상황 또한 지금의 정당 정치와 그다지 다를 바 없어 보인다. 늘 국민을 호명하지만 거기에 늘 국민들은 소외되는 아이러니한 현실. 양극화는 더 심해지지만 돈이 있어야 선거를 치르는 현실 속에서 지주의 눈치를 보는 정치인들에게서 진정 서민들이 보이기는 하는 걸까.

 

<징비록>400여 년 전에 벌어진 임진왜란 전후의 역사를 다루지만 그 준엄한 경고의 메시지는 지금 현재에 닿아 있다. 국가의 위기는 어떻게 반복되어 비슷한 양상으로 생겨나고, 그 결과는 또 얼마나 참혹한 것인가를 이 사극은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아마도 류성룡이 <징비록>을 써내려간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징비록>의 선조, 미화 아닌 입체적 접근이다

 

KBS <징비록>은 류성룡이 쓴 임진왜란 7년의 기록을 바탕으로 만든 사극이다. 정통사극으로서 <징비록>은 역사적 사실들을 기초로 하고 있다. 중간 중간 내레이션을 통해 역사적 사료의 설명을 넣어주는 건 그래서다.

 

'징비록(사진출처:KBS)'

하지만 이 <징비록>은 최근 선조실록이라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선조라고 하면 대중들에게는 임진왜란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무능한 왕으로 각인되어 있다. 이순신이라는 당대의 영웅과 비교되면서 선조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는 더 크게 자리하게 되었다. 결국 당대에 왕은 임진왜란에 대해 아무런 대책을 내놓지 못했다. 그 빈 자리를 채워 나라를 구한 건 백의종군을 한 이순신과 민초들이 아니었던가.

 

하지만 사극으로 재현된 <징비록>은 초반부에 선조라는 인물에 대해 지금껏 많은 사극들이 다뤄온 것과는 사뭇 다른 접근방식을 보여주었다. 선조에 대해서 이해하고자 하는 관점이 들어 있는 것. “왜란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며 벌어진다면 그 본토를 친히 정벌하겠다고 한 호언장담은 후세들에 의해 비판받는 지점이지만, 드라마에서는 그가 그럴 수밖에 없었던 사정이 들어 있다.

 

즉 왜란이 터진다는 그 흉흉한 소문 하나만으로 하삼도를 떠나는 민초들의 움직임은 나라의 근간을 뒤흔드는 일일 수 있었다는 것. 따라서 보다 강력한 선조의 대응만이 이런 불안감을 해소시킬 수 있었다는 얘기다. 그렇게 하삼도를 떠나는 민초들을 잡아두고 나서야 군역을 통해 외세에 방비할 수 있다는 논리다.

 

선조 시절 붕당정치가 임진왜란에 대처하지 못하게 된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되지만, 이 붕당정치 또한 선조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그럴 수밖에 없는 차선책처럼 드라마에서는 그려진다. 즉 어린 나이에 즉위한 선조는 결국 신하들에 의해 휘둘리며 그 자리를 보전하게 된다. 그러니 그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당을 나눠 서로를 견제하게 하는 것은 어쩌면 선조로서는 당연한 정치술일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징비록>에는 그간 다른 사극에서는 좀체 등장하지 않는 선조의 눈물이 자주 등장한다. 그는 류성룡이나 정철을 사적으로 만난 자리에서 눈물을 쏟아내며 자신의 속내를 드러낸다. 당파를 견제하기 위해 차도살인지계를 했다는 류성룡의 의심에 대해 그는 오히려 자신의 못남을 자책하며 눈물을 흘림으로써 충성을 받아낸다. 또 정철을 귀향 보내며 그 아픈 마음을 눈물 섞인 술 한 잔으로 그에게 전해주기도 한다.

 

이런 인간적인 면모들은 지금껏 무능함의 상징처럼만 여겨져 온 선조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다. 그것이 파격적인 느낌으로 다가오는 건 그래서다. 선조에 대한 과한 미화가 아니냐는 것이다. 물론 역사적 평가에 있어서 선조를 좋게 평가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사극이라는 극적 전개 속에서는 역사 바깥의 선조의 인간적인 면모를 빼놓을 수도 없다. 그 인간적인 면모가 어쩌면 왜란에 대처하지 못한 무능을 만들어낼 수도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징비록>은 선조를 미화했다기보다는 입체적으로 그리고 있다는 평가가 더 맞을 것이다. 단선적인 선악과 호불호가 아니라 장단을 모두 함께 다루고 공적인 왕과 사적인 한 인간의 모습을 동시에 다루고 있다는 것. 그래서 선조 미화라는 비판은 이렇게 다른 식으로 읽힐 수 있을 것이다. <징비록>을 통해 단선적으로만 그려지던 선조가 드디어 입체적으로 생생해졌다고.

 

<무도> 식스맨, 흥미롭지만 남는 아쉬움

 

이미 방송 시작 전부터 화제부터 논란까지 벌어졌던 MBC <무한도전>식스맨’. 그 첫 방송에는 기대만큼 남는 아쉬움도 많았다. 첫 회에 식스맨 물망에 오른 이들은 장동민, 김영철, 전현무, 데프콘, 광희, 주상욱이었다. 이밖에도 예고편에 등장한 인물들은 이서진, 유병재, 강균성, 홍진경, 홍진호 같은 인물들이었다.

 

'무한도전(사진출처:MBC)'

여기 등장한 후보들은 이미 예능 프로그램에서 어느 정도 인지도를 쌓은 인물들이다. 장동민이나 전현무, 데프콘 같은 인물은 이미 대세라고 표현될 정도로 갖가지 예능 프로그램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고, 유병재나 강균성 같은 인물은 새롭게 등장했지만 역시 타 프로그램에서 발군의 활약을 통해 자신만의 캐릭터를 만든 존재들이다.

 

사실 식스맨은 <무한도전>의 필요에 의해 진행되는 기획이다. 길에 이어서 노홍철이 음주운전으로 하차하게 되면서 남은 다섯 명으로는 여러 미션들을 수행하는데 있어서 한계를 만들기 때문이다. 여섯 명은 되어야 팀을 나눌 수도 있고, 두 명씩 짝을 지어 미션을 수행할 수도 있다. 하지만 다섯 명은 어딘지 애매하다.

 

노홍철을 복귀시키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논란이 나왔지만, <무한도전>이 그런 무리수를 쓸 이유는 전혀 없어 보인다. 유재석은 이런 논란을 의식한 듯 절대 그런 의도가 아니라는 것을 밝히며 선을 그었다. 필요에 의해 진행되는 기획이고, 기존 멤버를 복귀시키려는 의도가 아예 없다면 이제 남은 건 어떤 인물이 식스맨이 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다.

 

하지만 먼저 첫 방송에 나온 인물군들을 보면 각각 자기만의 영역을 가진 후보들이 분명하지만, 그것이 <무한도전>과 잘 어울릴까 하는 의구심을 남기기에 충분하다. 사실 자기만의 영역을 갖고 있다는 것은 <무한도전> 고유의 분위기와 부딪칠 가능성이 있다. 자기 색깔을 내다보면 <무한도전>과 마찰이 생기고, 그렇다고 <무한도전>에 맞춰주다 보면 자기 색깔이 흐려질 수 있다는 점이다.

 

물론 이미 바깥에서 만들어져 들어온 새로운 캐릭터가 <무한도전>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해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무한도전>의 팬들이 원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무한도전>이 독특한 것은 거기 출연자들이 거의 무명에서부터 시작해 성장해오는 과정들을 팬들과 함께 공유했다는 점이다. 그런 멤버들 속에 새로운 인물이 들어와 분위기를 바꿔 나간다면 그건 자칫 논란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또한 잘 나가는 예능인들 중에서 한 명을 뽑아 식스맨으로 넣는 건 <무한도전>의 색깔과도 맞지 않는 일이다. 잘 나가는 이들이 저희들끼리 이리저리 모여 잘 나가는 건 <무한도전>이 그리는 세상이 아니다. 그들 역시 잘 못나갈 때 평균 이하로 시작해 지난한 노력을 통해 지금 현재의 최고 위치에 올라왔던 것이 아닌가. 그러니 식스맨은 여러 모로 잘 나가는 예능인을 뽑기보다는 오히려 예능에서는 존재감이 없거나 신인에 해당하는 인물을 들이는 것이 합당하지 않을까.

 

<무한도전> 식스맨이 패러디하고 있는 영화 <킹스맨>에서 애거시라는 청춘은 멋진 스파이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인물로 시작했다. 다만 스파이로서의 자질과 가능성을 갖고 있었을 뿐이다. 마찬가지로 <무한도전> 식스맨은 그런 자질과 가능성이 있으되 대중들에게는 아직까지 예능인으로서 자리하지 못한 인물군에서 나오는 편이 훨씬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렇게 막내로 들어와 조금씩 성장해가는 과정을 보여줄 때, 그 인물은 실제로 <무한도전>의 멤버가 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무한도전>의 기존 멤버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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