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유로 선 공개된 서태지 소격동’, 그 반응은?

 

서태지의 소격동프로젝트가 아이유의 목소리로 선 공개됐다. 노래가 아니라 다른 것들로 계속 이슈가 됐던 서태지인지라, 음악에 대한 관심은 더 뜨거울 수밖에 없다. ‘어디 노래는 얼마나 괜찮은지 들어보자는 조금은 뒤틀린 심사에, 그래도 서태지니 기대된다는 기대감이 얹어져 반응도 양 갈래로 나뉜다.

 

'소격동 프로젝트(사진출처:서태지 컴퍼니)'

그렇다면 아이유가 부른 소격동은 어떨까. 먼저 늘 새로운 장르로 신선한 충격을 안겨줘 왔던 서태지라는 존재감만큼의 특별한 새로움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는 점이다. 일렉트로닉 사운드에 조용히 읊조리듯 부르는 발라드는 우리에게 다소 생소하게 느껴질지 모르지만 팝에서는 이미 여러 가수들에 의해 시도됐던 것들이다.

 

하지만 그런 장르적인 것을 떠나서 음악 자체로만 들어보면 소격동이라는 노래가 담고 있는 독특한 정서 같은 것이 느껴진다. 거기에는 서태지가 예전에 불렀던 발라드들의 목소리가 떠오르는 향수와 추억이 만져진다. 그러면서도 과거에 묻혀진다기보다는 지금 현재의 트렌디하고 세련된 날카로움이 묻어난다.

 

무엇보다 아이유가 먼저 소격동프로젝트의 문을 연 것은 탁월한 선택이라 여겨진다. 7,80년대의 음악을 불러도 전혀 이물감이 없을 정도로 아날로그 감성을 자기 식으로 잘 풀어내는 아이유가 아닌가. 아이유가 부르는 소격동은 그래서 마치 이미 예전에 서태지가 불렀던 노래를 다시 부르는 듯한 편안함마저 느껴진다.

 

아이유 특유의 따뜻한 목소리는 심지어 일렉트로닉이 가진 차가움마저 부드럽고 따스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이 부조화는 그래서 소격동이라는 곡이 가진 이중적인 특징을 균형 있게 잡아준다. 그 이중적인 특징이란 가벼운 발라드 감성처럼 느껴지면서도 소격동이라는 공간이 주는 시대적 정조가 주는 무거운 비감이 뒤섞여 있는 데서 나온다.

 

벌써부터 인터넷에는 이 곡의 가사를 거꾸로 들어보면 전혀 다른 느낌을 가질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즉 앞에서부터 들으면 마치 연인이 옛 추억을 되밟는 듯한 아련한 그리움이 느껴지지만, 뒤에서부터 가사를 되짚어보면 과거 소격동에서 벌어진 어떤 사건(?)에 대한 시대적 정조를 느낄 수 있다는 점이다.

 

결국 음악적 감성이라는 것은 어느 정도의 향수와 추억을 담아내기 마련이다. 그래서 현재에 되돌아보는 과거란 심지어 시대적 아픔마저도 하나의 그리움처럼 아련하게 느껴질 수 있다. 마치 영화 <써니>에서 시위대가 광장에서 전경들과 부딪치는 80년대의 최루탄 뽀얀 풍경 위에 조이(Joy)터치 바이 터치(Touch by Touch)’가 흐를 수 있는 것처럼.

 

소격동이라는 결과물을 두고 보면 그것이 과거 서태지가 해왔던 파격적인 혁신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지 몰라도, 듣기 좋으면서도 정서를 건드리는 꽤 괜찮은 성취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즉 잘못된 홍보 마케팅으로 신곡에 대한 괜한 호들갑이 만들어낸 논란 같은 것이 없었다면, 노래의 발표만으로도 충분히 역시 서태지라는 소리를 들을 법한 곡이라는 점이다.

 

하지만 괜한 예능 단독 출연 사실로 만들어진 서태지에 대한 논란들은 여전히 남아 있다. 게다가 아직 서태지가 부르는 소격동은 발표되지도 않았다. 과연 반전은 일어날 수 있을까. 영화 <명량>두려움을 용기로 바꿀 수 있다면이라는 말처럼, 서태지는 과연 시끄러운 논란마저 긍정적인 화제로 바꿔낼 수 있을까. 시선은 이제 서태지가 부르는 소격동에 집중되고 있다.

 

제시카의 소녀시대 탈퇴가 말해주는 것

 

다가오는 공식 스케줄을 기대하며 준비하고 있었으나, 회사와 8명으로부터 오늘 부로 저는 더 이상 소녀시대의 멤버가 아니다라는 통보를 받았다. 저는 소녀시대 활동을 우선시하며 적극적으로 전념하고 있는데, 정당치 않은 이유로 이런 통보를 받아서 매우 당혹스럽다.”

 

'소녀시대(사진출처:SM엔터테인먼트)'

소녀시대 제시카가 SNS에 남긴 짤막한 글은 대중들에게는 너무나 갑작스런 일로 다가왔다. 그만큼 의혹도 클 수밖에 없었다. 탈퇴냐 방출이냐에 대한 궁금증이 증폭되었고, 그녀의 연인으로 알려진 타일러 권이라는 이름이 인터넷 검색어 순위에 하루 종일 랭크되었다.

 

이유에 대한 분석이 쏟아져 나왔다. 제시카가 타일러 권과 사업적으로도 얽혀 있어 소녀시대의 단체 스케줄과 마찰을 일으켰다는 얘기도 나왔고, 그런 사업이 소녀시대 전체의 이미지를 도용하는 듯한 뉘앙스에 대한 불편함도 제기되었다. 제시카의 글에는 일방적인 통보의 뉘앙스가 들어 있지만, 이전부터 제시카의 단독 행보에 쌓인 문제가 터진 것이라고 SM측은 밝혔다.

 

탈퇴인지 방출인지, 그게 어느 것이든 그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한 이야기는 앞으로도 당분간 계속 나올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런 것보다 더 중요한 건 제시카 탈퇴 혹은 방출 같은 사안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소녀시대는 그 이름에 걸맞게 우리네 걸 그룹의 대명사처럼 된 존재들이다. ‘소녀들이 가진 그 풋풋함과 활력 하나만으로도 이미 대중들의 마음에 들어왔던 그녀들이다. 하지만 이러한 소녀라는 아이콘은 결국 시간이 지남에 따라 소녀시대라는 걸 그룹의 발목을 잡는 족쇄가 된 것도 사실이다. 그녀들은 어느새 성장했고 누군가를 만나 연애를 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나이가 됐다.

 

윤아, 수영, 티파니에 이어 태연 그리고 이제는 제시카까지. 소녀시대가 연애시대가 됐다는 건 이제 부정적인 의미보다는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게 됐다. 그 나이에 누군가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건 그 자체가 오히려 이상한 일일 것이다.

 

게다가 이번 제시카의 일로 또 하나 상기되는 건 이제 이 소녀들이 사업을 꿈꿀 만큼 훌쩍 자라나 있다는 점이다. 걸 그룹으로서 음악 활동에만 집중하던 소녀시대가 이제는 제각각 자신의 미래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그녀들이 이제 더 이상 우리가 그간 생각해왔던 그 어린 소녀가 아니라는 걸 의미한다.

 

물론 8인의 소녀시대는 앞으로도 계속 활동할 것이다. 제시카 역시 단독으로 충분히 음악활동을 할 수 있는 가수다. 팬들 역시 변함없는 애정을 보여줄 것이다. 그들의 말대로 소녀시대는 영원한 소녀시대니까.

 

하지만 시간의 흐름에 따라 소녀들이 점점 여인으로 성장해가고 그 성장한 만큼의 새로운 면모를 보여줄 것이란 점에서 소녀시대는 이미 한 시대를 떠나보내고 있다고 여겨진다. 제시카의 탈퇴 혹은 방출은 이제 이 소녀시대라는 한 틀로서만 보이던 멤버들이 각각 한 사람씩의 존재로 분리되어가는 현 과정을 드러낸다. 성장과 독립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물론 팬들로서는 아픈 일이기도 하지만.

 

<비밀의 문>의 도발, 성역 없는 수사는 불가한가

 

진실이나 정의 따윈 관심조차 없는 이 험한 세상이 문제지.” SBS 드라마 <비밀의 문>에서 서균(권해효)은 의미심장한 말을 던진다. 딸 서지담(김유정)이 정치적인 희생양이 된 신흥복(서준영) 죽음의 진실을 파헤치고 다니는 것에 대한 은근한 지지발언이다.

 

'비밀의 문(사진출처:SBS)'

서균은 당대에는 법으로 금했던 사설 출판으로 춘향전이나 사씨남정기같은 소설을 필사해 파는 이른바 책쾌(오늘날의 서적상)’. 소설을 필사해 판다니 낭만적으로 느껴지지만, 당대의 이 일은 마치 언론과 출판의 자유를 뜻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영조가 정권을 잡기 위해 노론과 결탁했다는 증거인 맹의를 둘러싸고 벌어진 살인사건. 영조와 노론은 이 진실을 덮기 위해 살인도 불사한다. 반면 사도세자 이선(이제훈)은 억울한 한 백성의 죽음을 둘러싼 진실을 파헤치려 한다. 그 진실을 알고 있는 서지담은 고민에 빠진다. 진실을 드러내려면 자신들이 하고 있는 세책방의 존재를 드러내는 대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진실을 알려는 자와 그걸 덮으려는 자. 성역 없는 수사를 위해 특검이 세워지지만, 그 이면에는 이를 덮으려는 자들의 갖은 협박과 거짓이 난무한다. 과연 성역 없는 수사는 불가한 것인가.

 

<비밀의 문>이라는 드라마를 영조와 사도세자의 이야기로 접근하면 도대체 왜 저렇게 이야기를 풀어나가는지 맥락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비밀의 문>은 역사가 기록한 영조와 사도세자의 이야기를 뒤집어 놓고 있기 때문이다. 영조는 성군이고 사도세자는 광인이었다는 역사의 기록은 드라마에서는 거꾸로 영조가 광기를 보이고 사도세자는 멀쩡하다 못해 정의롭기까지 한 인물로 그려진다. 왜 이런 재해석을 시도했던 것일까.

 

우리는 특검이니 성역 없는 수사진실과 정의니 하는 단어에서 수백 년을 뛰어넘어 지금 현재 우리가 처한 현실을 떠올릴 수 있다. 드라마 속 영조는 정통성의 문제를 안고 있는 왕이다. 노론과의 결탁을 뜻하는 맹의. 그 정통성의 부재는 영조를 불안하게 만들고 심지어 광기까지 드러내게 만드는 원인이다.

 

그저 드라마 속 하나의 이야기, 그것도 수백 년 전의 이야기라고 치부할 수 있겠지만 안타깝게도 맹의는 지금 우리네 정치사에서도 무수히 발견됐던 것들이다. 정권을 잡는 과정에서 야합과 거짓이 횡행했고, 그 진실을 파헤치려 했던 이들은 심지어 죽음을 맞이하기도 했다. 그러니 이 맹의의 이야기를 그저 수백 년 전의 허구로만 치부할 수 있을까.

 

그리고 이것은 지금 현재도 진행형인 일들이다. 너무나 많은 의혹들이 쏟아져 나오고, 그럴 때마다 그것이 풀리기보다는 무언가에 의해 덮여지고 지워지는 일들이 반복된다. <비밀의 문>이 영조와 사도세자의 역사마저 뒤집는 파격적인 도발을 통해서 하려는 이야기가 그것이다. ‘진실이나 정의 따윈 관심조차 없는 이 험한 세상’.

 

이것은 <비밀의 문>이 건드리는 역사적 사실의 재해석을 단지 역사왜곡이라 치부하기 어려운 이유다. 이 사극은 그 목적이 과거의 재현에 있지 않고 현재의 환기에 있기 때문이다. 과거를 소재로 끌어와 지금 현재 어떤 이야기를 건네줄 것인가에 대한 고민. 우리 앞에 지금 놓여있는 수많은 비밀의 문. 그것이 가진 진실의 무게를 우리는 버텨낼 수 있을 것인가. 또 그 진실은 어떤 희생을 요구하게 될까.

 

심지어 아버지가 아들을 죽이는 조선왕조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사건을 <비밀의 문>진실이 가진 무게로 해석하고 있다. 이 얼마나 놀라운 도발인가. 이를 두고 역사적 사실에만 몰두한다면 달을 보지 못하고 손가락만 보는 우를 범하는 일일 것이다. 죽은 자들의 역사보다 중요한 건 산 자들이 만들어갈 역사가 아닌가. 지금 우리 앞에 놓여있는.

 

<개콘>, 남성들의 위상이 달라지고 있다

 

KBS <개그콘서트>나 혼자 남자다라는 코너는 그 제목에 중의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그냥 제목만 보면 요즘 부쩍 여성화된 남성들을 풍자하면서 마치 나만 남자다라는 자신감을 드러내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코너에서 레이디 컴퍼니라는 회사에 다니는 박성광을 통해 우리는 이 제목의 또 다른 의미를 발견하게 된다. ‘나 혼자 남자다는 그 회사에서 거의 남자는 자기 혼자가 된 박성광의 처지를 말해주는 것이다.

 

'개그콘서트(사진출처:KBS)'

회사적응을 걱정하는 엄마에게 걱정 말라고 전화통화를 하는 박성광이지만. 그는 키 크고 당당하게 등장하는 허안나와 성현주, 김니나 앞에서 잔뜩 주눅 든 모습을 보여준다. 그를 내려다보며 허안나는 이렇게 말한다. “뭘 그렇게 긴장하고 그래. 여자 부장이라고 불편해하지 말고 그냥 편한 형이라고 생각해.”

 

업무 시작 전 함께하는 스트레칭에서 여자와 엉덩이가 부딪치게 되자 거기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건 여자가 아니라 박성광이다. 메추리알을 껍질을 까서 먹느냐 아니면 통째로 먹느냐에 대해 후배 직원으로서 갈등하는 이도 박성광이다. 여자들을 상사로 두고 있는 남자직원의 고충. 아마도 이것은 최근 우리 사회에 새롭게 보여지는 현상일 것이다. 교육관련 회사들이나 출판사처럼 여성들이 많은 회사에서는 남자직원들은 심지어 여성화된다고까지 말한다.

 

같은 회사에서 박성광이 안일권과 정승환 같은 남자직원을 발견하고 즐거워하지만 곧 이들이 여성화된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 웃음을 주는 나 혼자 남자다는 그래서 웃음 끝에 최근 여성화되어가는 남성들을 떠올리게 만든다. 옷을 피팅해주고 잘 내려가지 않는 지퍼를 내려주겠다고 나서는 여자 부장의 모습에 화들짝 놀라는 박성광의 모습은 만약 그 남녀의 성별이 바뀌었다면 도무지 개그 소재로도 나오기 힘들었을 장면이다.

 

취해서 온 그대에서 취해서 온 이희경에게 거꾸로 성희롱을 당하는 건 늘 서태훈이다. 그녀는 남자 팬티를 선물하겠다고 서태훈에게 주다가 갑자기 돌변해 왜 이런 선물을 자기에게 주냐고 묻는 여자다. 술잔에 빠지려는 머리칼을 잡아주자 뭐예요?”하며 스킨십까지 해대는 착각녀’. 물론 술에 취해서 하는 행동이지만 여성에게 당하는 남성의 이미지가 그려지고 있는 건 흥미로운 대목이다.

 

은밀하게 연애하게는 겉으로 드러난 서열체계와 달리 연애관계에서는 정반대가 되는 관계의 역전을 웃음의 포인트로 잡아내고 있다. 즉 김기열은 타인이 보는 데서는 신입인 박보미를 호통치는 척 하지만 사람들이 없는 데서는 그녀에게 절절 기는 모습을 보여준다. ‘가장자리는 가장인 남자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그들 위에 서 있는 여성들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이것은 쉰 밀회에서의 남녀 서열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물론 남녀 관계를 꼭 서열의 관점으로 볼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개그콘서트>의 콩트 코미디가 여성들을 코너의 중심으로 세우고 그 대상화하는 남성을 희화화하거나 공감하게 만드는 이야기가 대거 많아졌다는 건 주목할 만한 사실이다. 이것은 어쩌면 그간 지나치게 남성 중심으로 흘러왔기 때문에 그 변화가 더 도드라져 보이는 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건 여성들에게 당하는 남자들의 이미지가 전체적으로 드리워져 있고 그것이 개그의 공감 포인트로 제시되고 있다는 건 지금 현재 사회의 변화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 <개그콘서트>의 남성들의 위상은 달라지고 있다. 우리네 현실이 그런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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