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담 뺑덕>, 제 아무리 정우성이 벗어도 안 되는 까닭

 

<마담 뺑덕>심청전을 현대적인 치정멜로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심학규(정우성)는 성추행 루머 때문에 지방으로 내려왔다가 거기서 덕이(이솜)를 만나 위험한 사랑에 빠진다. ‘욕망에 눈 멀다, 집착에 눈 뜨다라는 포스터 문구가 보여주듯이 심학규는 점점 욕망에 빠져들어 시력을 잃어가는 남자이고, 덕이는 집착에 눈을 떠 파괴적인 사랑을 하게 되는 여자다.

 

사진출처: 영화 <마담 뺑덕>

심학규의 설정이 소설가인데다 영화가 그의 내레이션으로 이야기를 전개해나가고 있어 영화는 다분히 문학적인 느낌을 준다. 하지만 그러한 문학적 표현이 너무 지나치게 인물의 심리 변화를 설명하고 있다는 것은 이 작품의 치명적인 오류다. 만남에서부터 갑자기 눈이 맞아 버리는 심학규와 덕이의 이야기에는 치밀한 심리 묘사가 빠져 있다. 그래서일까. 인물들은 살아서 움직인다기보다는 마치 감독이 정해놓은 길 위에서 역할 연기를 하는 것처럼 관객에게 몰입감을 주지 못한다.

 

그저 내레이션이 욕망에 빠졌다고 말하는 것으로 인물은 욕망에 빠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만, 그것이 관객으로 하여금 심학규나 덕이의 심정에 똑같이 동화되게 하지는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다 보니 영화는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마치 심청전이라는 고전이 정해놓은 길을 억지로 따라가는 듯한 느낌을 만든다. 갑자기 심학규의 아내가 죽고, 갑자기 그가 눈을 멀어가고, 갑자기 그의 딸이 팔려가는 상황들은 만일 심청전이라는 텍스트를 우리가 모른다면 지극히 인위적이라고 여겨질 수밖에 없다.

 

<마담 뺑덕>심청전이라는 텍스트를 가져오긴 했지만 완전한 재해석이라기보다는 마치 텍스트를 이용하는 듯한 결과물을 만들었다. 이것은 굳이 <마담 뺑덕>이라는 제목을 내세워 현대적인 재해석을 하고는 있지만 그 새로운 주제의식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는 것도 한 몫을 차지한다. ‘춘향전을 방자의 시선으로 재해석해낸 <방자전>을 떠올려보라. 거기에는 방자의 시선이 갖는 서민적인 시각이 현재의 관객들로 하여금 그 재해석에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반면 <마담 뺑덕>은 그저 치정극에 머물렀을 뿐, 현대적 의미를 되살리지는 못하고 있다.

 

게다가 이 영화는 전반부의 정조와 후반부의 정조가 너무나 다르다. 전반부의 학규와 덕이의 빗나간 사랑은 무언가 벌어질 듯한 기대감을 한껏 만들어내지만 후반부는 급격히 이야기를 전개시키고 미진하게 마무리한 느낌마저 준다. 그러니 영화를 보고 나온 관객들의 잔상에 남는 것은 어떤 정조나 정서가 아니라 정우성과 이솜의 벗은 몸뿐이다. 그것이 어떤 아련함이나 아픔, 강렬함으로 여운을 주지 못했다는 것이다.

 

한동안 <색계> 같은 작품이 성공하면서 중년 관객들을 대상으로 한 노출 수위가 높은 작품들이 자주 상영되곤 했다. 송승헌이 노출연기를 선보인 <인간중독>은 물론 그 하려는 이야기는 달라도 <색계>를 다분히 염두에 둔 작품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이들 작품이 노출 수위가 높다고 하더라도 관객들이 바로 그것 하나 때문에 영화관을 찾았던 것은 아니다. 거기에는 노출만 있는 것이 아니라, 중년들에게 걸맞는 사랑과 사회에 대한 작가의 수준 높은 시각이 들어 있었다.

 

하지만 <마담 뺑덕>심청전이라는 텍스트를 끌고 와 그저 노출을 위해 활용하고 있는 듯한 한계를 보여주고 있다. 물론 노출만이 이 작품의 목적이라고 말하긴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그 노출 이외에 그다지 남지 않는 메시지나 여운은 이 작품의 목적이 결국 그런 자극에 있었던 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어디 관객들이 그리 단순할까. 영화가 무언가를 전해주지 못한다면 제 아무리 정우성이 벗어도 안 된다는 걸 <마담 뺑덕>은 보여주고 있다.

 

이병헌에 이어 김C까지 이미지의 역린

 

인스타그램에 살짝 올라온 김C의 사진 한 장과 거기에 덧붙여진 ‘I'm fine. And you?’라는 글 한 줄에 대중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늘 피곤한 듯한 얼굴에 약간은 흐트러진 모습의 김C지만 그 모습이 호감으로 전해지던 과거와는 사뭇 달라진 반응이다. 전혀 괜찮아 보이지 않는 그 모습에 거지꼴이라는 감정 섞인 반응도 나온다. 도대체 그 이미지 좋던 김C는 어쩌다 이 지경에 이르렀을까.

 

사진출처:김C인스타그램

문제는 지난 8월에 발표됐던 김C의 이혼 소식 때문이다. <12> 당시에도 살뜰히 가정을 챙기는 남편으로서의 자상한 모습을 봐왔던 대중들로서는 난데없는 소식이었다. 그런데 더 큰 충격은 바로 그 다음날 그가 재혼을 전제로 스타일리스트 박모씨와 열애를 한다는 소식이었다. 하루 터울로 나온 이혼과 재혼 소식. 말이 안 나올래야 안 나올 수가 없다.

 

마치 본처 버리고 새로운 여자를 만난 듯한 뉘앙스에 해명이 이어졌다. C와 전 부인이 이혼에 합의해 법적 절차를 마무리한 것이 2013년이었지만 그들의 파경이 시작된 건 2010년부터였다는 것. 그래서 그가 독일유학을 다녀온 2011년부터는 별거를 했었다는 것이다. 즉 스타일리스트 박모씨와의 열애는 전 부인의 이혼과는 무관한 일이라는 해명이다.

 

하지만 이 해명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여전히 남는 불편함은 있다. 그 내용은 우리가 2010년도 <12>을 통해 봐왔던 김C의 이미지와 상충하는 면이 있기 때문이다.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던 시절에 파경을 맞기 시작했다는 사실도 힘겨운 시절을 버텨낸 조강지처를 버렸다는 불편한 뉘앙스를 만들어낸다. 물론 부부간의 일은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그들만의 사정이 있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연예인들에게는 사실과 무관하게 어떻게 그것이 대중들에게 비춰지는가도 중요하다.

 

방송을 통해 얻게 된 좋은 이미지는 어떤 사건으로 인해 그것이 깨지게 될 때 그 좋았던 만큼의 역풍을 만들어낸다. MC몽이 고의 발치 군 기피 의혹으로 그토록 오랜 기간 동안 칩거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비난이 여전한 건 그가 <12>을 통해 그간 쌓아온 좋은 이미지에 대한 배신감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음담패설을 했다며 50억 협박을 받은 이병헌에 대한 비난 여론이 더 큰 것 역시 그가 그동안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보여 왔던 순애보의 이미지가 순식간에 깨져버렸기 때문이다.

 

이미지의 역린이다. 과거에 이미지란 단단한 껍질은 좀체 깨지지 않을 수 있었지만 이제는 어떤 방식으로든 이미지로 실체를 숨길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그렇게 감춰졌던 실체는 결국 드러나기 마련이다. 그것을 자발적으로 드러낸다면 적어도 이미지의 역린은 막을 수 있다. 하지만 김C나 이병헌처럼 어떤 사건을 통해 실체가 폭로되면 걷잡을 수 없는 후폭풍에 휘말리게 된다.

 

이병헌처럼 김C도 이제 좀체 과거 같은 이미지로의 회복은 불가능한 상황에 이르렀다. 그것은 그의 음악활동에도 고스란히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C의 음악은 대중들에게는 여전히 낯설다. 다만 그의 <12>을 통해 보여줬던 친근하고 자상한 이미지가 있어 음악도 독특하게받아들여졌을 뿐이다. 하지만 이제 그 이미지가 사라져버렸고 박수치던 대중들은 손가락질을 하기 시작했다. 어쩌다 이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 것일까. 안타까운 일이다.

 

추성훈 가족이 보여준 <슈퍼맨>이 강한 이유

 

링 위에서 죽을 힘을 다해 싸우는 추성훈. 그 광경을 보며 눈물을 뚝뚝 흘리는 아내 야노 시호. 그리고 그 시간에 꿈나라로 간 귀여운 딸 추사랑. 이 세 사람이 보여준 단 몇 분의 장면들은 KBS <슈퍼맨이 돌아왔다>가 왜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슈퍼맨이 돌아왔다(사진출처:KBS)'

아마도 지금껏 이 프로그램에 나왔던 장면들 중 가장 <슈퍼맨이 돌아왔다>라는 제목에 걸맞는 장면이 아니었을까. 그렇게 힘겹게 싸우고 집으로 돌아온 추성훈에게 존경사랑을 표하는 아내와 딸. 딸을 꼬옥 껴안는 추성훈에게서, 또 부끄러운 듯 살짝 아내를 안아주는 추성훈에게서 전해지는 뭉클함은 모든 이 땅의 아빠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지지 않았을까.

 

입안이 다 헐어서 조금 신 과일을 먹어도 쓰라려 하면서도 딸이 준 것이라 받아먹고 허허 웃는 추성훈의 마음은 모든 아빠들의 마음 그대로였을 것이다. 묵묵히 남편을 지지해준 야노 시호에게 고맙다고 말하자 자신은 한 게 없다며 손사래를 치는 그녀의 모습에 한없이 따뜻해지는 건 그것이 가족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때문이다.

 

<슈퍼맨이 돌아왔다>는 지금껏 아이들에게 초점을 맞춰 보여줬던 육아예능의 틀을 살짝 벗어나 아빠들의 이야기를 다뤘다. 아빠들이 어떻게 슈퍼맨이 되고 그 슈퍼맨이 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가를 보여줬다. 추성훈의 귀환은 바로 이 이야기를 완벽하게 상징하고 있었다. 편안하게 잠든 딸을 위해 링 위에 오르는 아빠와 그 아빠를 껴안아주는 딸의 모습, 이 얼마나 이 프로그램의 정곡을 찌르고 있는 모습인가.

 

이것은 육아예능의 후발주자인 <슈퍼맨이 돌아왔다>가 여타의 프로그램보다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더 어린 아이들은 거의 무의식에 가까운 솔직함과 순수함으로 보여주고, 그 놀라운 성장으로 보는 이들을 흐뭇하게 만든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은 여기서 머물지 않고 아이들과 함께 하는 부모들의 진정성 또한 진솔하게 보여준다.

 

<아빠 어디가>의 아빠들이 여행이라는 상황 속에서 현실과는 동떨어진 설렘과 흥분을 보여준다면, <슈퍼맨이 돌아왔다>의 아빠들은 일상 속에서 가족들을 위한 실제 고민과 고통과 행복을 보여주고 있다. ‘어떤 것이 더 리얼한가가 최근 관찰 예능의 새로운 화두라면 단연 <슈퍼맨이 돌아왔다>의 리얼함을 여타의 육아예능들이 따라잡기 힘들 수밖에 없다.

 

삼둥이를 앞으로 뒤로 옆으로 둘러매고 성화봉송을 하는 송일국의 얼굴에서는 땀방울이 저절로 뚝뚝 떨어진다. 혼자 걷기도 힘든 푹푹 빠져드는 뻘밭에서 타블로는 하루를 등에 업은 채 뻘을 빠져나온다. 퉁퉁 부은 얼굴로 집으로 돌아와 반기는 가족들의 품에 안기는 추성훈의 얼굴에서는 하루를 살아낸 가장의 행복이 깃든다. 그들의 얼굴에서는 아이들을 위해서라면 뭐든 할 수 있는 슈퍼맨들의 진심이 느껴진다.

 

이것은 <슈퍼맨이 돌아왔다>가 강한 이유다. 거기에는 아빠와 아이와 가족의 특별할 것 없어 보이지만 사실은 특별한 노력과 진심이 들어 있다. 우리가 일상을 통해 그저 지나쳐버렸던 것들을 유심히 관찰해 봄으로써 가능한 발견이다. 추성훈의 귀환은 밤마다 녹초가 되어도 가족들 앞에서 허허 웃는 우리 시대 가장들의 진심을 다시금 발견하게 만들었다.

 

능력 잃은 <런닝맨>, 게스트 없으니 펄펄 나네

 

간만에 느껴보는 <런닝맨>만의 묘미. 아마도 SBS <런닝맨> 히어로 특집을 접한 시청자라면 이런 생각을 가지게 되지 않았을까. 마치 슈퍼히어로 만화에 들어간 듯한 설정은 <런닝맨>이 반짝반짝 빛나던 전성기 시절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런닝맨>이 그저 단순한 게임 버라이어티가 되지 않았던 것은 적극적으로 영화나 드라마 같은 기존 콘텐츠들을 끌어와 게임으로 패러디하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런닝맨(사진출처:SBS)'

그 과정에서 <런닝맨>유임스본드같은 캐릭터를 얻을 수 있었고, ‘배신자 클럽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초능력자 특집에서는 예능 사상 초능력을 아이템으로 사용하는 획기적인 기획을 보여주었고, ‘셜록 홈즈 특집에서는 추리 형식의 스토리텔링을 차용해 흥미진진한 추리극을 선보이기도 했다. 이게 게임이야 아니면 한편의 영화야 하고 묻는 그 지점(물론 패러디의 웃음으로 만들어진)에서 <런닝맨>만의 독특한 재미가 만들어졌다.

 

히어로 특집은 정말 오랜만에 이러한 캐릭터 플레이와 콘텐츠 패러디가 어우러져 스토리도 미션도 흥미로울 수 있었다. 100년 간 냉동상태로 있다가 깨어나 능력을 잃어버린 히어로들이라는 설정 자체가 기발했다. 유퍼맨(슈퍼맨 유재석), 지트맨(배트맨 지석진), 꾹버린(울버린 김종국), 원더우멍(원더우먼 송지효), 하길동(홍길동 하하), 개오공(손오공 개리), 광바타(아바타 광수). 이 능력을 잃어버린 캐릭터는 그래서 슈퍼히어로에 걸맞지 않은 미션을 수행하는 것만으로도 큰 웃음을 만들었다.

 

자판기 밑에 굴러 들어간 기념주화를 꺼내달라는 시민의 요청을 받고 동전을 꺼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광바타나, 마치 주차 게임처럼 복잡하게 얽혀있는 차들 속에서 신혼여행을 떠나야 하는 이들의 차를 꺼내주는 미션을 수행하는 꾹버린, 지나는 행인의 근육을 풀어주는 유퍼맨, 60층짜리 호텔을 지으려 하는데 밭에 숨겨둔 땅문서를 찾아달라는 미션을 부여받고 삽질을 하는 워더우멍, 어린이집에서 동화 읽어주고 화장실 가고 싶다는 아이 챙겨주는 지트맨, 생크림 케이크 만드는 개오공 등등.

 

슈퍼히어로 설정이지만 현실은 능력 없어 이상한 복장이나 하고 다니는 이들은 마치 벌칙 수행을 하는 듯한 우스운 상황을 만들어냈다. 이 미션 상황을 통해 <런닝맨>은 자연스럽게 일반인들과 어우러지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함께 참여한 시민들은 의외로 열심히 이 어딘지 어수룩한 히어로들을 도와주기도 했고, 돌발적인 웃음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두 번째 미션인 담력 테스트는 제작진의 영민함이 돋보인 미션이었다. 하늘을 날던 슈퍼히어로들이 눈에 안대를 하고 건물 옥상에 연결된 사다리 하나를 건너지 못해 벌벌 떠는 모습은 반전 웃음을 주었고, 그들이 건넌 사다리가 건물과 건물 사이가 아니라 그냥 옥상에 있는 것이란 사실은 또 한 번의 반전웃음을 만들었다. 게다가 당한 만큼 다른 히어로들에게 돌려주겠다는 듯 속이기 위해 열연을 펼치는 모습은 마치 몰래카메라의 또 다른 버전을 보는 듯한 느낌마저 주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어진 버스와 벌인 이어달리기 대결은 이제는 향수로 느껴지는 <무모한 도전>의 한 대목을 보는 듯 했다. 도심을 달리는 이상한 분장의 히어로들은 이름표 떼기라는 늘 해오던 게임이 아니라도 충분히 긴박감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 무엇보다 게스트 없이 이런 충분한 재미가 가능하다는 것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새로운 드라마나 영화를 홍보하기 위해 출연한 게스트들과의 마치 야외에서 벌이는 <명랑운동회> 같은 단순한 게임으로는 이런 <런닝맨>만의 묘미가 가능하지 않다는 것.

 

이번 히어로 특집은 <런닝맨>이 처한 상황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 했고, 또 그 상황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지 그 가능성도 보여준 한 회였다. <런닝맨>이 그동안 대중들을 열광하게 했던 그 좋은 능력들은 왜 점점 사라지게 되었을까. ‘100년 간의 냉동상태란 그래서 특별한 아이디어 없이 무감하게 기획되어 방영된 그간의 게스트 초청 단순 게임을 해온 <런닝맨>의 상황을 떠올리게 만든다. 도대체 왜 이 좋은 웃음의 능력들을 그들은 봉인한 채 보여주지 않았던 걸까.

 

히어로 특집은 그런 점에서 그간 봉인되어 왔던 <런닝맨> 본연의 묘미를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되어주었다. 보다 적극적인 스토리텔링과 지금껏 시도하지 않았던 기획. 이것이 아니라면 <런닝맨>은 다시 ‘100년 간의 냉동상태로 돌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간만에 부활한 <런닝맨>이 누워있지 말고 앞으로도 이렇게 달려 나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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