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글'의 정두홍, 도움 받는 김병만을 보게 될 줄이야

 

정두홍 감독의 출연은 <정글의 법칙>의 신의 한수가 된 것 같다. 사실 그간 <정글의 법칙>이 어떤 비슷한 패턴으로 흘러가는 듯한 느낌을 주었던 것은 지나치게 김병만에게만 기대는 모습들이 반복되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정글에서도 달인이 되어가는 김병만은 어느새 <정글의 법칙>의 해결사가 되었다. 힘겨워 보이는 정글 생존이 심지어 편안하게 다가오는 것도 김병만의 타고난 적응력이 만든 착시일 것이다.

 

'정글의 법칙(사진출처:SBS)'

그런데 그런 김병만이 도움을 받는 모습을 보게 될 줄이야. 정두홍 감독은 스턴트로 다져진 몸으로 김병만을 압도하는 정글 생존력을 보여주었다. 사보섬 생존캠프에서 메거포드 알을 찾는 장면 하나도 정두홍 감독이 하면 무언가 굉장한(?) 일을 하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아무래도 다부진 몸으로 상남자다운 근성을 보여주기 때문일 게다. 상대적으로 손쉽게 알을 찾아내는 이기광과 비교되며 정두홍 감독은 굴욕(?)의 웃음을 선사했다.

 

아누하섬에 도착해 코코넛 나무를 발견한 김병만이 정두홍 감독과 함께 나무를 타는 장면은 그 자체로 새로운 볼거리를 제공했다. 늘 김병만만 오르던 나무를 나란히 정두홍 감독이 올라 순식간에 코코넛을 따내는 모습을 본 이기광은 진짜 족장님이 두 분인 거 같았다고 말했다. 김병만 역시 거울 보는 그런 느낌으로 든든했다고 표현할 정도로 정두홍 감독의 존재감은 분명했다.

 

커피 마니아라는 사실은 의외의 이미지를 느끼게 해주었지만, 바로 그렇게 갖고 온 커피 주전자와 거름종이를 이용해 코코넛물을 걸러 담는 정두홍은 역시 그가 최고의 순발력과 적응력의 소유자라는 걸 보여주었다. 거기에서는 무수히 해온 스턴트 상황에서 얼마나 많은 현장의 돌발상황을 그가 겪어냈을 지 쉽게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정두홍의 진가는 사냥실력에서도 드러났다. 맨손으로 게를 척척 잡아내고 작살로 하는 바다사냥에서도 백발백중의 실력을 보인 정두홍은 심지어 김병만에게 조언을 해주는 그런 인물이었다. 스턴트 도중 선배의 사망 사고를 겪은 후 18년 간 바다를 피해왔다는 정두홍 감독이 병만족을 위해 물속에 들어가는 장면에서는 마치 가족을 챙기려는 가장의 모습까지 비춰졌다. 그는 그렇게 잡은 물고기를 살만 발라내 병만족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나눠주고 그들이 행복해하는 모습에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이른바 정글 짝패에 대한 기대감은 그간 우리가 무수히 봐왔던 김병만의 활약에 정두홍이라는 또 한 명의 정글 적응자를 더하면서 생겨난 것이다. 이들이라면 정글의 혹독한 조건에서도 심지어 그 상황을 즐길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대감. 늘 정글이라면 버텨내야 하는 어떤 곳으로 생각해왔던 게 지금까지의 <정글의 법칙>이었다면, ‘정글 짝패는 마치 익스트림 스포츠를 즐기는 듯한 인상마저 준다는 점이다.

 

어쩌면 김병만에게는 정두홍 감독 같은 인물이 절실했을 지도 모른다. 그것은 늘 족장으로서의 부담감과 책임감을 홀로 짊어지고 있는 김병만으로서도 그렇고 무언가 새로운 이야기를 보여줘야 하는 <정글의 법칙>으로서도 그렇다. 이번 솔로몬 제도 편이 특히 기대감을 갖게 만드는 것은 정두홍 감독이 투입됨으로써 그간 김병만에게만 의지했던 <정글의 법칙>이 지금까지와는 다른 전개양상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세대가 공유하는 청춘을 담아낸 <꽃보다> 시리즈

 

지나와서 생각해보면 나영석 PD의 배낭여행 프로젝트 <꽃보다> 시리즈는 놀라운 면이 많다. 그것은 결과적으로 이 시리즈가 다양한 세대와 성별을 배낭여행이라는 실험대 위에 집어넣었지만 거기서 청춘이라는 하나의 키워드를 일관되게 발견하게 했다는 점이다.

 

'꽃보다 청춘(사진출처:tvN)'

먼저 <꽃보다 할배>를 떠올려보라. 이 칠순의 어르신들이 유럽에서 배낭여행을 통해 발견한 건 청춘이라는 시절에 대한 새삼스런 찬미였다. 홀로 배낭여행을 하는 젊은이에게 존경합니다라고 신구가 말했을 때 우리는 모두 그 마음에 공감했다. 청춘은 특정 나이만에 국한된 것이 아니고 나이 들어도 누구나의 마음 속에 여전히 살아있는 것이라는 걸 <꽃보다 할배>의 어르신들은 보여주었다.

 

<꽃보다 누나>에서도 이 청춘은 어디서나 발견된다. 이승기라는 청년은 누나들의 보호를 받으며 차츰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그것은 세파에 휘둘려 잠시 잊고 있던 누나들의 젊은 날들을 되살려 놓았다. 성당에 들어가 알 수 없는 눈물을 흘리는 김희애는 거기서 세월이 주는 무게감과 그럴수록 더욱 간절해지는 젊은 날의 찬란함을 느꼈을 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게 <꽃보다 할배><꽃보다 누나>를 거쳐 나영석 PD는 이제 이 프로젝트의 귀결지인 청춘으로 돌아왔다. <꽃보다 청춘>은 그래서 먼저 윤상, 유희열, 이적을 출연시켜 중년남자들 속에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는 소년을 끄집어낸다. 현실이 발목을 죄고 있어 저 가슴 속 아래 고개 숙인 채 제 존재를 숨기고 있던 소년이라는 청춘은 그래서 돌발적인 일상 탈출을 통해 마음껏 그 얼굴을 드러냈다. 잊고 있던 청춘에 대한 복원. 중년 3인방의 <꽃보다 청춘>이 우리에게 건넨 이야기다.

 

그리고 이어진 진짜 청년들의 청춘여행, 유연석, 손호준, 바로의 <꽃보다 청춘>은 거칠 것 없는 청춘이라는 시간의 활력을 보여주고 있다. 고민할 것도 없고 갈등할 것도 없으며 다만 부딪치고 만나면서 만들어지는 그 청춘만의 특권적인 좌충우돌을 이 여행은 보여주고 있다.

 

아마도 <꽃보다> 시리즈를 처음부터 지금껏 봐온 시청자라면 이 흐름이 마치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같은 느낌을 만들어낸다는 걸 눈치 챘을 것이다. 어르신들과 중년과 청년들은 그렇게 시간의 역순으로 청춘을 찾아간다. 그것은 마치 연어가 강물을 거슬러올라가는 듯한 그 시간의 흐름에 대한 본능적인 역행을 닮아 있다.

 

과연 나영석 PD는 처음부터 이 <꽃보다> 시리즈의 전체 흐름, 즉 어르신에서부터 청년으로 내려오는 그 흐름을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일까. 만일 이것이 그가 숨겨놓았던 기획의도라면 <꽃보다> 시리즈가 가진 놀라움을 새삼 느낄 수 있다. 과연 어느 누가 배낭여행이라는 소재를 갖고 청춘이라는 키워드를 세대별로 발견해내는 실험을 감행할 수 있단 말인가.

 

세대와 성별과 상황이 모두 달라도 그것이 <꽃보다> 시리즈 하나로 묶여질 수 있었던 건 실로 거기 청춘이라는 키워드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걸 실감하면서, 나영석 PD의 기획력에 새삼 놀라게 된다. 그것이 만일 우연적인 것이었다면, 새삼 청춘이라는 키워드가 가진 힘을 거기서 느낄 수 있다. 그것이 무엇이든 <꽃보다> 시리즈는 따로인 듯 하나로 엮어지는 나영석 PD만의 통일성 있는 시리즈가 되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이병헌에 대한 정서, 억눌렸던 무언가가 터진 듯

 

이병헌에 대한 대중들의 정서는 실망감을 넘어 분노에 다다른 것 같다. ‘50억 협박으로 불거진 사안이 오히려 이병헌에게 이처럼 거센 역풍으로 돌아올 지는 아마 당사자도 잘 몰랐을 것이다. 이병헌을 광고에서 퇴출시키자는 서명운동까지 벌어지고, 심지어 같은 소속사인 한효주에게까지 불똥이 튀고 있는 상황이다.

 

사진출처:BH엔터테인먼트

아내인 이민정은 아무 죄도 없이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는 곤란을 겪고 있다. 그녀의 한 줄 글조차 사람들은 의미심장하게 받아들인다. 그녀에 대한 동정론이 점점 깊어갈수록 이병헌에 대한 질타는 더 커져간다. 음담패설 동영상을 유포하겠다는 협박을 받던 이병헌은 피해자의 이미지에서 점점 가해자의 이미지로 바뀌고 있다. 협박의 전제로서 성희롱의 혐의가 드리워졌기 때문이다.

 

이런 모습은 그를 영화나 드라마 속의 이미지로 기억하는 대중들로서는 말 그대로 충격으로 다가온다. 그는 더 이상 여성을 위해 기꺼이 목숨 하나를 걸 정도의 순애보를 보여줬던 그런 남성이 아니다. 악역에서조차 멋있게 보이던 그가 아니던가. 그런 그는 이제 사랑을 배신하는 그냥 악역으로 내려앉고 있다. 이 이미지의 전복이 가져온 충격은 고스란히 대중들의 분노로 피어나고 있다. 사랑과 신뢰가 깊으면 그 배반감도 큰 법이다.

 

이병헌이 사과문이라고 쓴 손 편지는 그 진정성을 의심받고 있다. 한 장의 손 편지가 감당해내기에 이번 사안은 겉으로 드러난 것보다 그 내상이 깊기 때문이다. 이런 사정은 업계 사람들을 통해서도 쉽게 드러난다. 매니저든 방송 관계자든 심지어 연예인들마저 이병헌의 이번 사태에 대해 동정적 시각보다는 냉담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항간에는 터질 것이 터졌다는 반응까지 나온다.

 

이병헌의 사생활에 대한 이야기들은 무수한 소문과 루머로 양산된 바 있지만 그 진위는 지금도 정확히 알 수 없다. 결국 그건 당사자들만이 알 수 있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어떤 것이든 그나마 받아들여지고 넘어갈 수 있었던 건 그래도 그가 미혼 시절에 나온 소문들이었기 때문이다. 대중들은 이처럼 멋지게 생긴 건장한 남자가 누군가를 만나 사랑하고 또 헤어지는 것에 대해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하지만 상황이 바뀌었다. 그는 결혼을 했다. 그것도 뭇 남성들이 선망하던 여배우 이민정이 아닌가. 그런 멋진 여성을 배우자로 두고도 다른 여성들과 사적으로 만나 음담패설을 나눴다는 사실은 이제 대중들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 되었다. 도대체 어쩌다 이병헌은 이렇게 미운 털이 박히게 된 것일까.

 

할리우드까지 진출한 한류스타라는 필모그라피에 취해 있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번 사안이 이처럼 큰 반향을 일으킨 것은 단지 이번 ‘50억 협박 사건하나 때문만은 아니라는 점이다. 이미 이전부터 조금씩 쌓여왔던 그에 대한 어떤 불편한 정서. 그것이 이번 사건으로 인해 한꺼번에 터져버린 듯한 느낌이다.

 

예능 트렌드의 변화, 스타 MC 모두의 문제

 

MBC <별바라기>가 조기종영을 결정하면서 강호동 위기론이 나오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다시 복귀한 후 그가 한 예능 프로그램들의 성적표는 거의 바닥이다. MBC <무릎팍도사>가 폐지됐고, KBS <달빛프린스>SBS <맨발의 친구들>도 모두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헤매다 종영됐다. 그나마 KBS <우리동네 예체능>이 그의 주특기인 운동을 살려 버텨내고 있지만 계속되는 프로그램의 종영은 그에게도 큰 부담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별바라기(사진출처:MBC)'

하지만 결론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이건 강호동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최근 벌어지고 있는 예능 트렌드의 변화는 한 때 스타로서 정상에 군림하던 MC 파워를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최정상의 스타MC인 유재석도 이 흐름에서 결코 안전한 상황이 아니다. 그가 새롭게 이끌고 있는 KBS <나는 남자다>는 겨우겨우 5%대의 시청률을 버텨낼 뿐 이렇다 할 파괴력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유재석 스스로도 이런 식으로는 시즌2가 쉽지 않다고 말할 정도다.

 

SBS <런닝맨>도 위기다. 그래도 10%대를 유지했던 <런닝맨>은 최근 6%까지 시청률이 떨어졌다. 반면 동시간대 MBC <진짜사나이> 여군특집이 20%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낸 것을 염두에 둔다면, 유재석이 이끄는 <런닝맨>의 추락은 현재 스타MC 파워가 과거에 비해 별 효과를 내지 못한다는 걸 잘 말해준다. 걸스데이 혜리의 3초 앙탈 하나가, 또 저질 체력의 여전사(?) 김소연의 악바리 정신 하나가 그 어떤 스타 MC들의 팬덤보다 더 힘이 세졌다는 것이다.

 

이런 사정은 신동엽이나 김구라 같은 진행형 MC들도 마찬가지다. 그나마 이 두 MC는 비지상파 예능 프로그램에서 새로운 트렌드에 동승함으로서 타 스타 MC들보다 상대적으로 위기감이 덜할 뿐이다. 하지만 지상파 예능프로그램에서 이들의 영향력은 확연히 줄어들었다. 김구라가 출연하지만 3%에 머물고 있는 SBS <매직아이>는 대표적이다.

 

즉 강호동의 위기는 강호동만의 문제가 아니라 스타 MC들 전체가 겪는 문제라는 점이다. 다만 그가 더 위기처럼 도드라져 보이는 건 잠정은퇴 선언을 하면서 과거 그가 했던 프로그램과 단절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계속 새로운 프로그램을 런칭했지만 마침 그 시기는 스타 MC 파워가 점점 사라지는 시점이었다. 일반인들이 점점 예능의 자리를 채우기 시작했고(외국인도 그 범주의 하나다), 연예인들도 하나의 리더를 중심으로 흘러가기 보다는 각개전투 하는 모습으로 변모했다. 이러니 하나의 꼭지점으로서 전체를 리드하던 스타 MC들의 영향력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스타 MC들의 영향력이 줄어드는 건 최근 예능의 새 트렌드로 자리한 관찰카메라가 가진 특징을 통해서도 쉽게 드러난다. 즉 관찰카메라는 그 자체로 중심이라는 것이 있을 수 없다. 전후좌우 도처에 숨겨져 각각의 인물들의 행동을 찍어내는 것이기 때문에 이런 구도에서는 도드라진 스타 MC들이 불필요해진다. 다만 각자 가진 자신들의 진짜 매력을 숨겨진 카메라를 통해 보여줄 뿐이다.

 

토크쇼 같은 스튜디오 예능이 점점 힘이 빠지는 건 이런 관찰카메라의 시선이 만들어낸 수평적인 느낌과 진정성의 강도를 이들 스튜디오 예능에서 발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스튜디오 예능은 그 구조상 카메라가 중심부를 향할 수밖에 없다. 물론 이걸 깨기 위해 JTBC <비정상회담> 같은 경우에는 아예 탁자를 부채꼴로 놓지 않고 과감하게 일렬로 세우는 파격을 선보이기도 했다. 이것은 중심을 세우기보다는 토론이 갖는 양대 구도를 세우기 위한 포진이다.

 

또한 스튜디오 예능이 태생적으로 가질 수밖에 없는 인위성(스튜디오라는 공간 자체가 일상과는 거리가 멀다)은 최근 시청자들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진정성의 강도를 떨어뜨린다. 이것은 때로는 <런닝맨> 같은 야외형 예능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런닝맨>처럼 야외로 나간다고 해도 스튜디오와 다를 바 없는 어떤 일정한 틀이 있는 것처럼 보이거나, 일상적으로 보이지 않는다면(최소한 <12>처럼 여행이라면 일상이 되겠지만 <런닝맨>은 여행이 아니라 게임이다) 그 리얼리티가 제대로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즉 강호동이 표징하는 것처럼, 지금 예능의 새로운 트렌드 변화는 스타 MC들 모두에게 새로운 숙제를 안기고 있다. 하지만 거기에 답이 없는 건 아니다. 그나마 강호동이 잘 버티고 있는 <우리동네 예체능>처럼, 자신에게 가장 자연스럽게 일상처럼 맞는 예능이면서 동시에 중심에 서기보다는 많은 출연자들(일반인 포함) 중 하나로 설 수 있는 프로그램은 이제 스타 MC들이 찾아내야할 새로운 위치가 되고 있다. 우리는 이미 스타 MC가 사라져가는 왕좌 없는 예능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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