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함에 기뻐할 줄 아는 칠해빙, 이유 있었네

 

어쩌면 이렇게 짠하고 착할 수 있을까. 갑자기 폭우가 쏟아져 하루를 더 머물게 된 라오스 방비엥의 밤, <꽃보다 청춘> 삼인방 칠해빙이 인터뷰를 통해 건넨 말들 속에는 그들이 왜 그렇게 자신을 낮추고, 소소함에도 한없이 기뻐하며, 자신보다는 타인을 배려하는가가 들어 있었다.

 

'꽃보다 청춘(사진출처:tvN)'

해외여행 자체가 처음이고 심지어 비행기도 처음 타봤다는 손호준이 여행의 목표로 폐나 끼치지 말자고 마음먹고 친구와 동생의 속옷을 빨아주는 모습이 자연스러운 것은 그것이 그의 진짜 성향이기 때문이다. 유연석은 그런 그의 겸손한 성품 자체가 너무 좋다며 그가 항상 자기를 낮추는 성향이라고 말했다.

 

야심을 묻는 이우정 작가의 질문에 그는 엉뚱하게도 유노윤호에 대한 고마움이 담긴 일화를 꺼냈다. 자기가 너무 가난해서 굶으며 살아가던 시절, 유노윤호가 일본을 3개월 정도 가게 됐을 때 라면 몇 박스, 즉석밥 몇 박스를 다 사주고 갔다는 것.

 

유노윤호에 대한 고마움도 고마움이지만 유노윤호 없었으면 굶어죽었다고 말하며 그걸 잊지 않고 있는 손호준의 그 마음이 더 짠하게 느껴졌다. 그는 항상 받으면 돌려줘야 된다너무 많이 받았기 때문에 그걸 다 돌려주려면 지금보다는 조금 더 성공해야 된다는 것으로 성공해야 하는 이유를 대신했다. 한류 같은 건 애초에 욕심이 없다는 것이다.

 

손호준이 왜 <꽃보다 청춘>에서 연예인인 척 하는 모습이 아니라 진정으로 친구인 유연석을 좋아하고 따르며 친동생처럼 바로를 귀여워하는 모습을 보여주는가를 잘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가 자신을 낮추고 타인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하는 것은 자신이 겪어온 청춘의 삶을 통해 내면화되어 있는 것이 아니었을까.

 

바로는 인생의 첫 번째 목표가 가족의 집을 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젊은 가장은 자신이 번 돈을 전부 부모님께 드렸을 때 부모님이 우시는 걸 보고굉장히 감동을 했다고 했다. 왜 청춘의 나이에 하고 싶은 것 갖고 싶은 것이 없겠는가. 하지만 그는 청춘 이전에 한 집안의 가장이었다. “부모님이 고생 하시는 거 알고 하니까 무조건 내가 지켜드려야겠다고 말하는 그의 모습에서 나이답지 않은 어른스러움이 묻어났다.

 

유연석은 처음으로 어머니에게 건넸던 신용카드 이야기로 눈시울을 붉혔다. “어디 같이 밥 먹으러 가서 칠천 원짜리 밥집이 찍혔어요. 그런데 자기가 처음으로 먹고 싶은 걸 연석이 니가 준 카드로 시켜먹어 봤다. 항상 주부고 엄마고 하다 보니까. 그 천원 이천 원이 아까워서 칠천 원짜리가 먹고 싶은데 항상 오천 원짜리를 드신 거죠. 그러다가 처음으로 돈 생각을 안 하고 아들내미가 준 카드로 칠천 원 짜리를 시켜 먹어봤다고 하는 거예요. 아 엄마가 어떻게 살아왔는지가 느껴지니까 참 미안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고..”

 

그들이 방비엥의 블루라군에서 자전거를 제작진의 오토바이로 바꿔 타고 돌아온 후, 그게 뭐 그리 큰 일이라고 그토록 제작진들을 걱정하는 모습을 보여줬던 것이 새삼 이해되는 부분이다. 얼마나 이 청춘들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폐가 되지 않으려 조심스럽게 하루하루를 살아왔을까.

 

손호준과 바로, 그리고 유연석의 이야기 속에는 한없이 즐거운 일만 있을 것 같은청춘에 대한 막연한 우리의 편견을 깨는 구석이 있다. 밝게 웃는 그들의 이면에 놓여진 남다른 청춘의 신산함과 고단함. 어쩌면 이건 지금 현재 우리 사회의 청춘들이 겪고 있는 각박한 현실을 대변해주고 있는 건 아닐까. 청춘들의 또 다른 면. 그것을 <꽃보다 청춘>은 보여주었다.

 

허지웅의 <진짜사나이> 폐지 촉구가 공정하려면

 

허지웅이 JTBC <썰전>을 통해 군대 이미지 세탁을 하고 있는 <진짜 사나이>는 폐지해야 마땅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진짜사나이> 여군특집을 진짜 재밌게 봤다그래서 더 확고하게 생각한 게 <진짜사나이>는 폐지를 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소신을 밝혔다.

 

'썰전(사진출처:JTBC)'

그가 이렇게까지 강력하게 한 프로그램의 폐지까지 거론한 것은 그만큼 우리네 군대의 문제가 심각하다는 걸 에둘러 드러내는 일이다. 그는 우리 군대가 정말 엉망진창이라며 그런 실체를 희석시키고 대한민국 군대를 예능화시킨 프로그램을 보면서 웃고 있는 내 자신을 보는 게 못 마땅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 프로그램이 가진 이미지 세탁의 방식에 문제제기를 했다. 군 장병들은 엄격한 피해자임에 분명한데, “이 사람들이 멀쩡하게 잘 살고 있다는 식으로 예능이 보여주는 건 잘못됐다는 것이다.

 

이런 의견은 기자로서 충분히 제기할만한 것이다. 실제로 최근 벌어진 일련의 군 사태는 우리 군대가 거의 막장에 이르렀다는 인식을 가져올만한 사안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짜사나이> 여군특집이 굉장한 화제를 이끌면서 이런 사안들마저 삼켜버리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우려가 나온 것도 사실이다. 그러니 허지웅의 문제제기는 충분한 근거가 있는 셈이다.

 

하지만 이런 문제제기가 다른 프로그램도 아닌 <썰전>을 통해서 나왔다는 건 아이러니한 일이다. ‘이미지 세탁이라는 단어를 가장 많이 떠올리게 했던 프로그램 중 하나가 <썰전>이기 때문이다. 강용석 변호사의 아나운서 비하 발언은 법적인 문제가 끝났다고 하지만, ‘이미지 세탁의 문제에 있어서는 여전히 자유로울 수 없는 사안이다. <썰전>이라는 프로그램이 강용석 변호사의 이미지를 바꿔놓은 건 분명한 사실이니 말이다.

 

물론 강용석 변호사는 거듭 사과의 말을 하고 있지만 그 말에 대해서 대중들은 여전히 진정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잘못에 대해 말을 할뿐, 자숙의 시간을 보여준 적이 없기 때문이다. 결국 강용석 변호사를 계속 출연시키고 있는 <썰전>이 보여주고 있는 건, 잘못된 일을 해도 방송이 재미를 통해 그 이미지를 덮어버리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걸 자인하는 일이다. 현재 <진짜사나이>가 갖고 있는 이미지 세탁의 문제와 다를 바가 없다는 점이다.

 

이미지 세탁은 허지웅 같은 긍정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는 출연자에 의해서도 일어난다. 그가 강용석 변호사와 함께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장면은 그의 의도가 전혀 아니라도 그 자체로 강용석 변호사의 잘못을 상쇄시키는 역할로 작용한다.

 

<썰전>의 한계는 바로 이런 점에서 비롯된다. 즉 무언가를 공정하고 엄정하게 비판하려고 해도 스스로의 정통성이 문제가 된다는 점이다. 허지웅은 바른 소리를 했지만 그런 소리를 하는 와중에도 <썰전>이 그 이야기마저 누군가의 이미지 세탁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것은 지독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한석규의 왕 연기, 어떤 점이 달랐을까

 

확실히 믿고 보는 배우 한석규는 달랐다. <뿌리 깊은 나무>에서 욕하는 모습조차 인간미로 소화해낸 한석규 덕분에 우리는 지금까지 사극을 통해 봐왔던 왕의 또 다른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한글을 창제하고 배포한 세종의 그 격의 없는 왕의 모습에서는 저잣거리 백성들을 향하는 그 낮은 자세가 느껴졌다. 교과서 속에 박제되어 있던 세종은 그렇게 한석규를 통해 재해석됐고 비로소 살아있는 인물로 되살아났다.

 

'비밀의 문(사진출처:SBS)'

그리고 돌아온 <비밀의 문>은 한석규의 영조에 대한 또 다른 해석이다. 아들을 죽음에 이르게 한 왕의 면면이 평이할 리가 없다. 따라서 한석규가 해석해낸 영조는 자상한 면과 광기어린 면이 뒤섞여 있는 왕이다. 그 광기를 <비밀의 문>은 맹의라는 비밀문서를 통해 보여준다. 노론과의 결탁을 뜻하는 그 맹의에 수결함으로써 왕이 됐다는 그 사실은 영조에게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걸림돌이자 두려움이다.

 

<비밀의 문>은 일반적인 사극의 시작과는 사뭇 다르게 그 문을 열었다. 짧게 맹의에 수결하는 영조의 두려움에 떠는 모습을 보여주고 그 맹의를 없애기 위해 심지어 승정원에 불을 지르는 영조를 통해 맹의가 가진 존재감을 부각시켰다. 살인사건이 벌어지고 또 그것을 덮으려는 자와 밝히려는 자의 대결구도로 흘러간다는 점에서 바로 이 맹의의 존재감은 이 사극에서 어쩌면 가장 중요한 힘이 된다. 바로 그 힘을 드라마 초반 시작 단 몇 분만에 실어주는 것이 다름 아닌 한석규의 연기다. 그는 광기와 두려움이 교차되는 모습을 통해 맹의라는 비밀문서가 가진 무게를 만들어냈다.

 

사실 <비밀의 문><뿌리 깊은 나무>의 장르적 특성과 유사한 점이 많다. 왕을 다뤘다는 점이 그렇고, 그 안에 미스테리한 추리극 요소를 집어넣었다는 점이 그렇다. 하지만 무엇보다 유사하게 여겨지는 건 한석규가 지금껏 우리가 봐왔던 것과는 다르게 왕을 재해석해낸다는 그 지점이다. 실제로 <비밀의 문>은 아직까지 <뿌리 깊은 나무> 만큼의 흥미진진한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지는 못하고 있지만 그래도 팽팽한 긴장감과 보는 재미를 만들어내는 건 바로 이 한석규가 해석하는 영조 덕분이다.

 

<비밀의 문>이라는 사극이 가진 근본적인 힘은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는 조선왕조 500년의 가장 불행한 가족사에서 나온다. 뒤주에 가둬 사도세자를 죽게 만든 왕, 영조. 제 아무리 광기를 보였다고는 하나 아비가 자식을 죽인다는 건 결코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터다. 역사는 자식을 죽인 왕의 입장에서 쓰여지기 마련이다. 따라서 자식을 죽인 왕을 정당화하기 위해서는 자식의 광기를 좀 더 극대화해야 했을 것이다.

 

<비밀의 문>은 이 부분을 재해석한다. 역사의 내용과는 다른 이유가 있었을 거라는 것. 맹의는 그래서 영조가 이런 극단적인 일을 선택하게 만드는 중요한 원인이 된다. 여기서 흥미로워지는 것은 사도세자의 광기가 아니라 영조의 광기가 이 사건이 벌어지는 이유로 작용한다는 점이다. 이것은 역사 왜곡의 문제일 수 있다. 하지만 드라마로서 <비밀의 문>이 이 새로운 해석을 통해 현재적인 문제의식을 드러낼 수 있게 된다면 용인될 수 있는 일이다.

 

과연 영조는 어떻게 변화해갈까. 그리고 그 변화의 과정은 지금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던져줄까. 이 드라마에서 이 모든 궁금증을 쥐고 있는 게 바로 영조라는 인물이다. 한석규의 입체적인 왕에 대한 해석은 그 영조를 깨워내고 있다. 다른 모든 것을 차치하고라도 <비밀의 문>이 흥미로운 이유는 이 변화무쌍한 영조를 재창조하고 있는 한석규의 연기 덕분이다.

 

<히든싱어> 제작진이 저지른 몇 가지 실수

 

JTBC <히든싱어>에서 소녀시대 태연이 2회전에서 탈락한 사실로 인터넷이 뜨겁다. 탈락한 곡이 태연의 솔로곡이 아니라 소녀시대의 (Gee)’였다는 것은 논란의 빌미가 되고 있다. 즉 자기 파트도 아닌 부분을 태연이 부르게 해놓고 진짜와 가짜를 찾으라는 건 복불복에 가깝다는 것.

 

'히든싱어(사진출처:JTBC)'

사실이 그렇다. 노래의 정체성은 단지 목소리의 정체성만을 얘기하지 않는다. 즉 비슷한 목소리라도 어떤 노래를 어떤 방식으로 발성해 부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느낌을 줄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러니 소녀시대의 (Gee)’에서 태연이 제 목소리를 내는 건 사실상 자기 파트뿐이다. 혹여나 행사 같은 데서 다른 파트를 부를 수도 있겠지만, 일반 대중들에게 다른 파트를 부르는 태연은 낯선 느낌을 줄 수밖에 없다.

 

즉 소녀시대가 아닌 태연을 <히든싱어>의 무대에 세웠다면 그녀만의 정체성을 드러낼 수 있는 곡이 선별됐어야 했다. 이런 잘못된 선택을 갖고 태연의 경우 소녀시대 보컬로서의 의미가 가장 크다며 그래서 소녀시대의 노래 1을 넣었다는 건 대중들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무려 9명의 목소리가 들어있는 곡이다. 그것 자체도 일반인들은 구별하기 애매모호한데 그런 곡을 갖고 태연의 목소리를 구별해낸다는 건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물론 조승욱 PD가 왜 이런 논란을 억울해하는지는 이해되지 않는 바가 아니다. 그는 <히든싱어>가 누가 노래를 잘 하느냐를 가리는 경연이 아니며, 또 진짜와 가짜만 가리는 프로그램도 아니고, 싱크로율만 따져 기계적인 판정을 내리는 곳이 아니라고 한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밝힌 바 있다. 그는 <히든싱어>가수의 음악세계와 발자취를 음미하는 시간이라고 했다.

 

좋은 의미다. 하지만 그것은 의미일 뿐, 이 프로그램의 핵심적인 재미 부분을 설명해주지 못한다. <히든싱어>가 그가 말하듯 가수의 음악세계와 발자취를 음미하는 시간이라면 그냥 팬 미팅을 하거나 몇 주년 기념 쇼를 하면 된다. 굳이 <히든싱어>라는 형식을 빌어서 무대를 꾸밀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히든싱어>의 핵심적인 재미는 그가 부정하는 부분에 다 들어가 있다. 가수와 일반인이 함께 무대에 오르지만 실제 이름과 얼굴이 가려져 있고 오로지 목소리로만 들리는 무대에서 누가 노래를 더 잘할까가 대중들은 궁금하다. 또 자신이 뽑은 인물이 진짜인지 아니면 가짜인지가 궁금하고, ‘싱크로율이 높으면 높을수록놀라움을 느끼게 된다. <히든싱어>라는 프로그램에서 이런 재미 부분을 떼어놓으면 남는 건 그저 밋밋한 팬 미팅이라는 점이다.

 

바로 이 재미 부분을 부각시켰기 때문에 이 프로그램은 승승장구한 것이다. 그런데 태연 탈락의 논란이 불거지면서 이 재미 부분이 핵심이 아니고 오히려 다른 의미가 핵심이라고 말하는 건 궁색한 변명이다. 태연 탈락 논란에는 <히든싱어> 제작진의 명백한 잘못과 실수가 들어 있다.

 

사실 아이돌 그룹을 <히든싱어> 같은 프로그램에 세운다는 건 여러 모로 무리가 따르는 일이다. 아이돌 그룹은 리드 보컬이라고 해도 전체 곡 속에 일부로서 기능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제작진이 태연의 곡 선정을 통해서 거론한 것처럼 그 리드 보컬은 아이돌 그룹을 배제하고는 온전한 정체성을 보여주기 어렵다. 여기에 자가당착이 있다. 그런 이유로 아이돌 그룹이 단체로 부르는 곡을 선정해 놓으면 이번 태연 탈락 논란 같은 사태는 언제든 벌어질 수 있다. 그래서 뒤늦게 제작진은 앞으로 아이돌 그룹 출연은 없을 것이라고 못을 박았다.

 

조승욱 PD 말대로 중도 탈락이 불명예가 되지 않는 곳이 바로 <히든싱어>. 조성모의 탈락은 어떤 면에서는 그 옛 목소리를 여전히 기억하고 똑같이 재현해내는 놀라운 팬심으로 읽혀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이건 탈락했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라 합당한 룰에 의해 탈락했냐 아니냐의 문제다.

 

새로운 시도들을 하는 과정에서 누구나 실수와 시행착오는 겪을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그 실수와 시행착오가 훗날의 거름이 되기 위해서는 이를 스스로 인정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물론 본인은 전혀 의도한 바가 아닐 것이다. 따라서 억울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의도하지 않아도 벌어진 명백한 실수와 잘못을 다른 이유를 들어 자꾸 부정하는 건 대중들과 함께 호흡하는 제작진이 취할 자세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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