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트의 귀환, 젊은 세대와 소통하는 트로트

 

이번엔 헬멧 대신 보자기, 체육복 대신 밭일이라도 나갈 것 같은 모시적삼이다. ‘빠빠빠라는 곡 하나로 단박에 스타덤에 오른 크레용팝이 새로 들고 나온 어이(Uh-ee)’라는 곡의 의상 콘셉트. 이런 의상을 입게 된 것은 아마도 이들이 들고 나온 장르가 트로트이기 때문일 게다. 일렉트로닉 사운드로 재해석된 트로트는 크레용팝의 발랄한 댄스와 기묘하게 어우러진다. 물론 크레용팝이 부르는 트로트풍의 노래 역시 마치 시골장터의 품바를 보는 듯 정겹고 구수하다.

 

'크레용팝(사진출처:크롬엔터테인먼트)'

트로트 하면 어딘지 올드하다고 여겼던 분들이라면 이 뮤직비디오를 보고 새로운 느낌을 가지게 될 것이다. 거기에는 올드하다기보다는 어딘지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마음 한 구석이 훈훈해지는 정감이 느껴진다. 그 정감은 일렉트로닉 사운드 같은 차가운 기계음 속에서도 사라지지 않는다. 이것은 아마도 트로트가 가진 힘일 것이다. 제 아무리 세련된 팝에 우리의 귀가 유혹되면서도 트로트가 가진 그 의 힘에 순간 무력해지는 것은.

 

Mnet <트로트 엑스>라는 프로그램을 들여다보면 이 트로트가 가진 힘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아리가또 고자이마스라는 인터넷에서는 이미 유명한 뮤직비디오의 주인공인 힙합 듀오 디오지가 무조건을 일렉트로닉과 접목시켜 보여준 무대는 대표적인 사례다. 트로트는 랩과 힙합을 섞어도 잘 어울릴 수 있는 그런 장르였다. 여기에 좌중을 휘어잡는 무대매너와 코믹댄스까지. 트로트의 세계는 무한히 열린 가능성이라는 걸 디오지는 보여주었다.

 

단 한 번의 출연으로 화제가 된 목회자 구자억은 트로트를 통한 찬양사역이라는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 그가 부른 참말이여는 트로트가 찬양의 무대에서도 어색하지 않다는 걸 보여주었다. 특히 이 곡의 구성진 사투리가 섞인 가사는 듣는 이들을 흥겹게 만들었고, 무겁지 않게 지친 대중들에게 웃음과 즐거움으로 힘을 주기에 충분했다. 또 성악 전공자 유채훈이 부른 트로트는 또한 클래식과도 잘 어울렸다. 시원스런 성악 창법으로 부른 노래는 트로트 특유의 감성과 어우러져 마치 사연을 담은 뮤지컬 한 편을 보는 듯한 느낌을 선사했다.

 

한때 (feel)은 가요 히트의 중요한 요소로 제시되곤 했었다. 트로트가 아니라도 그 트로트적인 감성이 묻어나는 곡이라야 대중적인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것. 오랜 세월 조용필을 전설로 세웠던 것은 그 밑바탕에 깔린 국악적인 감성까지를 느끼게 해주는 필이라는 건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물론 조용필은 최근 트렌드에 맞게 그 색채를 지워내고 새로운 창법을 구사하기 위해 노력해왔지만 그 감성은 여전히 남아있다.

 

신세대 걸 그룹인 오렌지 캬라멜의 노래 속에도 트로트적인 감성은 묻어난다. ‘까탈레나같은 곡은 그 트로트적 감성에 인도 전통음악이 어우러지면서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낸 곡이다. 이처럼 트로트는 젊은 세대와 멀리 떨어져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트로트를 올드하게 만드는 것은 결국 그런 선입견이다. 현재적인 재해석은 트로트가 가진 지극히 한국적인 감성의 가능성을 열리게 해준다.

 

올드하다는 표현은 아마도 세련되지 못했다는 얘기일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만듦새의 문제이지 장르 그 자체의 문제는 되지 못한다. 결국 트로트라도 어떻게 만들어내느냐에 따라 충분히 세련되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젊은 세대와 유리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어우러질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것만이 젊은 감성을 트로트에 수혈할 수 있는 방법일 테니 말이다. 그런 점에서 크레용팝의 트로트 도전이나 <트로트엑스> 같은 프로그램의 시도는 대단히 의미 있는 일이라 할 수 있다.

KBS 드라마의 총체적 부실 무엇이 문제일까

 

KBS 월화드라마 <태양은 가득히>는 시청률이 2.2%. 물론 시청률이 모든 걸 말해주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KBS라는 이름에 2.2%라는 시청률은 너무하다. 4% 시청률을 내고 있는 JTBC <밀회>에도 밀린다는 건 KBS로서는 심각한 문제다.

 

'감격시대(사진출처:KBS)'

문제는 이것이 <태양은 가득히>라는 작품 하나에만 해당되는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미 전작이었던 <총리와 나>5% 시청률에 머물렀고, <미래의 선택> 역시 4%, <예쁜 남자>2.9%라는 부진한 시청률을 냈던 경험이 있다.

 

보편적 시청층을 확보하고 있는 KBS에서 2%대의 시청률이 나온다는 건 사실상 안 본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반복적으로 벌어지는 이른바 애국가 시청률 드라마들은 KBS 드라마의 총체적인 문제를 드러낸다. 그것은 단지 각각의 사안의 문제라기보다는 시스템적이고 구조적인 문제다.

 

최근 논란이 끊이질 않고 있는 <감격시대>의 출연료 제작비 미지급 문제도 마찬가지다. 출연자들이 소송 준비를 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제작사인 레이앤모는 지급할 것이란 얘기와 지급 중이란 얘기만을 반복하고 있다. 이제 종영에 가까워오면서 출연자들과 관련 업체들은 불안한 상황이다. 이것이 또 다른 KBS 드라마 먹튀의 한 사례가 되지 않을까 걱정되기 때문이다.

 

이미 KBS 드라마 7편이 출연료 미지급 사태를 겪었다. 지난 2월 한국연예매니지먼트협회에 따르면 <그들이 사는 세상>67천여만 원, <도망자 플랜비>46천여만 원, <국가가 부른다>26천여만 원 등의 출연료가 미지급됐다. 드라마가 끝난 후 제작사가 파산을 선언하면 출연자나 관련업체들은 노동의 대가를 받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도대체 무엇이 이런 KBS 드라마의 고질적인 문제를 만들어내는 걸까.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방송3사 중 KBS의 방송사가 외주제작사에게 지급하는 드라마 제작비가 가장 낮다는 점이다. 이것은 제대로 된 외주제작사가 KBS와 드라마를 제작할 가능성이 현저히 낮은 이유다. 이번 <감격시대>의 제작사 레이앤모는 지금껏 드라마를 제작한 적이 없는 신생제작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첫 작품으로 150억 규모의 블록버스터 드라마 제작을 하고 KBS가 편성을 줬다는 것은 상식적으로는 이해하기 어렵다.

 

하지만 KBS의 드라마 제작비 지원이 상대적으로 일천한 상황을 염두에 두고 바라보면 이해할 수 없는 것도 아니다. 결국 제작자체를 충당할만한 수준의 제작비 지원을 받지 못하면서도 일단 편성을 받아 한방을 노리는 영세한 제작사나 신생제작사들이 KBS 드라마를 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 결국 이 제작비 지원과 관련된 시스템의 문제가 KBS 드라마의 이른바 끊이지 않는 먹튀 논란의 근본적인 원인이 되는 셈이다.

 

당연하게도 이런 구조 안에서 제대로 된 기획이 이뤄지기는 쉽지 않다. <예쁜 남자><태양은 가득히> 같은 어딘지 지금 시대와는 잘 맞지 않는 작품이 애국가 시청률을 내고 있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요즘처럼 트렌드에 민감한 시대에 대중들의 취향과 정서와 기호를 들여다보고 작품과 연결시키는 기획 부분은 거의 드라마의 성패를 가름하는 일이기도 하다.

 

혹자는 KBS의 재정상황이 어려워 드라마에도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은 재정문제가 아니라 잘못된 재정운용의 문제다. 최근 감사원의 감사결과에 따르면 억대 연봉을 받는 최상위직의 무려 60%가 무보직이라고 한다. 즉 하는 일 없이 억대 연봉을 받아가는 이들이 최상위직의 60%나 된다는 얘기다. 이렇게 돈이 콘텐츠에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상황에 수신료 인상운운하는 것에 대해 공감할 수 있는 이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KBS 드라마의 고질적인 문제는 재정 운용이 콘텐츠에 투자되지 않고 방만하게 운영되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되지 않는 작품에 편성을 주거나, 검증되지 않은 제작사에 외주제작을 주고는 문제가 터지면 그건 외주제작사의 문제라고 발뺌하는 식은 KBS라는 공영방송이 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그것은 국내의 드라마 제작 환경 자체를 취약하게 만드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럴 바에는 차라리 KBS에서 유일하게 되는 일일극이나 주말극 혹은 사극만을 제작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또 공영방송으로서 단막극에 오히려 투자한다면 대중들의 공감대도 커질 것이다. 무리한 수익사업으로 접근하는 것도 문제지만 그것을 수익으로 만들지 못하고 오히려 민폐로 만드는 시스템의 문제는 결코 그냥 넘어갈 수는 없는 사안이다. KBS 드라마의 총체적인 문제와 부실을 점검해봐야 할 시점이다.

<밀회> 유아인, 순수함과 안타까움 사이

 

선생님께서는 내가 제일 힘들었을 때, 내 자신이 죽고 싶다고 했을 때 피아노를 다시 치라고 권하셨고 내 마음이 흔들리는 걸 읽어주셨어요.” <밀회>의 이선재(유아인)가 오혜원(김희애)에게 키스를 하게 됐던 이유에 대해 말하는 장면에서는 청춘의 순수함과 안타까움이 묻어난다. 그의 사랑은 단지 육체적인 이끌림도 아니고, 그저 남녀 간의 사랑 그 자체도 아니다. 거기에는 그 누구도 들여다보지 않았던 이 청춘의 아픔을 알아봐준 오혜원이란 존재에 대한 고마움이 들어 있다.

 

'밀회(사진출처:JTBC)'

얼마나 힘겨웠으면 그랬을까. 갖고 있는 재능을 그 누구도 알아봐주지 않는 세상에서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낸다는 것. 피아노 건반을 두드려야 할 손이 퀵서비스 오토바이 핸들을 붙잡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 무엇보다 그런 그를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는 세상의 무심함. 그리고 이 돈과 태생과 권력으로 구획되어 스펙 없는 이들은 절대로 들여보내주지 않는 그 현실의 벽 앞에서 느껴질 막막한 절망감.

 

<밀회>가 그리는 이선재라는 청춘은 그래서 한 개인이라기보다는 현재 우리 사회의 청춘들을 대변하는 듯하다. 공고하게 굳어져버린 저들만의 세상에 툭 던져져 출구도 입구도 없는 그 세상의 언저리에서 근근히 삶을 버텨내는 청춘. 그래서일까. 이선재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오는 오혜원과 그의 남편 강준형(박혁권)은 그 청춘들을 현 기성세대들이 소비하는 두 가지 방식처럼 보이기도 한다.

 

오혜원에게 이선재는 자신의 지나가버린 청춘의 꿈을 되새겨주는 존재. 이것은 현재 중년들이 청춘들을 소비하는 방식과 다르지 않다. 흔히 청춘의 풋풋함을 가진 아이돌들 앞에서 열광하는 중년들은 거기서 자신들의 삶을 청춘으로 되돌리고픈 욕망을 갖기 마련이다. 오혜원에게 피아노는 자신의 잃어버린 청춘의 꿈이다. 그러니 이선재와 함께 피아노를 치는 오혜원은 그 순간 청춘과 소통하는 아찔한 경험을 하는 셈이다. 최근 복고라는 이름으로 떠오르는 수많은 문화현상들의 중심에는 바로 이 청춘에 대한 회귀와 갈망이 들어있다.

 

한편 강준형은 청춘을 하나의 발판으로 삼으려는 현 기성세대들을 표상하는 인물이다. 이선재는 그의 신분상승을 공고하게 해줄 존재다. 그래서 그는 이선재를 자신의 집에 가둬두고 자신만을 위해 키워내려 한다. 학교 재단의 입시 비리를 숨기기 위해 이선재를 방패막이로 사용하려는 것처럼 강준형 같은 이들은 진심으로 이선재의 성공을 바라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관심은 오로지 자신들의 욕망뿐이다.

 

이 막막한 현실 앞에서 청춘들의 삶이란 비참하게까지 느껴진다. 자신을 알아봐주는(사실은 이것 또한 착각일 가능성이 높지만) 오혜원에 대한 이선재의 집착은 그 소통의 출구가 막혀버린 청춘을 점점 강하게 그려낸다. 청춘들은 어떻게든 이 기성사회의 한 귀퉁이를 붙잡아 살아가려 안간힘을 쓴다. 이선재가 그렇고, 그의 여자친구인 박다미(경수진)가 그러하며 그의 절친인 손장호(최태원)가 그렇다.

 

박다미는 오혜원을 비롯한 상류층 자제들이 오는 샵에서 수모를 당하면서도 그들의 머리를 만져주는 아르바이트로 근근이 살아간다. 그녀가 버틸 수 있는 유일한 힘은 이선재라는 남자친구 하나지만 그가 점점 오혜원의 집을 드나드는 것만으로도 그녀는 불안해진다. 자신의 세계에서 점점 그가 멀어지는 것만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혜원의 집에서 지내는 이선재에 대한 박다미의 과도한 반응 속에는 그녀의 전부가 사라져가는 듯한 극도의 불안감이 묻어난다.

 

손장호는 서한그룹 회장의 딸이자 서한예술재단 산하 아트센터 대표, 그리고 오혜원의 직장상사이자 친구인 서영우가 들락거리는 호스트바에서 일한다. 공허한 삶을 위로받고자 돈을 주고 청춘을 사는 서영우 같은 부류에게 돈을 받고 팔려지는 가진 건 몸뚱어리 하나밖에 없는 청춘. 돈의 논리로 철저히 구축된 시스템 속에서 청춘의 몸은 가진 자의 쾌락과 위안을 위해 소비된다.

 

<밀회>의 이선재라는 청춘은 그래서 아프고 안타깝다. 이 시대의 청춘들이 기성사회에 소비되는 방식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선재를 연기하는 유아인이 새롭게 보이는 것은 그간 엇나간 청춘의 욕망을 주로 연기해오던 그가 <밀회>에서는 대책 없는 사랑을 연기하기 때문이다. <패션왕>에서 가진 자들과 전쟁하듯 살아가던 강영걸이라는 청춘을 연기한 유아인은, 이제 <밀회>의 이선재를 통해 청춘의 순수함을 그려내고 있다. 그리고 그 순수함은 그 어떤 기성세대에 대한 반항보다 더 강렬하게 다가온다. 순수해서 더 절망적으로 느껴지는 피아노 건반 하나하나의 선율처럼.

<참 좋은 시절>의 갈등, 막장의 정반대로 간다

 

미안타 에미야. 맨날 드러누워가 새끼들 골병만 들게 하는 이 산송장이 그냥 디비 자지 뭐 다 저녁때 사과를 먹고 싶다고 해가. 요놈의 주둥이가 요물이다.” 사과를 깎다 손을 벤 며느리 장소심(윤여정) 보고 시아버지 강기수(오현경)가 어쩔 줄 몰라 한다. 그러자 장소심은 오히려 펄쩍 뛰며 이렇게 말한다. “아녀요. 아버님. 아버님 요렇게 맛있게 드셔주니까 제가 숨을 쉬고 살겄어요. 아버님 그냥 노상 아무 것도 못 잡숩고 계시면 제가 어떻게 밥을 지대로 넘기고 잠을 지대로 자며 숨을 쉬고 살겄슈.”

 

'참 좋은 시절(사진출처:KBS)'

KBS 주말드라마 <참 좋은 시절>의 한 장면. 시아버지와 며느리 사이의 대화 속에는 서로를 챙기려는 애틋한 마음이 묻어난다. “새끼들 골병만 들게 한다는 시아버지의 자책은 장소심의 마음에도 가시처럼 박힌다. 젊어서 식모살이하던 이명순(노경주)이 장소심에게 했던 말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지가 검사면 근본도 달라지는 줄 알아? 식모 아들이 감히 누굴 넘보고..” 장소심의 아들 강동석(이서진)이 이명순의 딸 차해원(김희선)을 만나는 걸 반대하는 이명순의 이야기. 장소심은 자기가 못나서 자식들 앞길에 폐만 끼치는 것 같다며 눈물을 흘린다.

 

흥미로운 건 이 때 들어온 하영춘(최화정)의 반응이다. “우리 형님 왜 울어요? 아버님. 아버님 때리셨어요? 아버님 진짜. 우리 부처님 반 토막 같은 형님께 그러시면 안돼죠. 그런 개망나니 바람둥이 남편 만나서 평생 그냥 가슴앓이 하면서 사는 세월도 억장이 무너지는데 남편도 없는 시집에서 시아버지 병수발에 마흔이 넘도록 장가 안간 쌍둥이 시동생들 뒷바라지에...” 하영춘과 장소심이 첩과 조강지처의 관계라는 것이 무색한 장면이다.

 

이 짧은 장면은 <참 좋은 시절>의 특별한 점이 묻어난다. 조강지처와 첩이 남편을 잃고 한 집에서 산다는 설정 자체도 특이하지만 두 사람이 앙숙이기는커녕 서로를 끔찍하게도 챙기는 모습은 낯설게까지 느껴진다. 특히 막장드라마의 관습적인 설정에 익숙한 이들에게는 이런 장면이 주는 낯설음이 더욱 클 것이다. 서로를 못 잡아먹어 안달이 나고 하다못해 머리채라도 잡아 드잡이를 하는 장면이 나올 법한 관계에, 오히려 서로의 역성을 들고 챙겨주는 모습이라니.

 

시아버지와 며느리의 관계 역시 거의 부모 자식 같은 관계 그 이상을 보여주고, 한때 식모살이를 했지만 지금은 망해버린 이명순에게 여전히 주인 대하듯 깍듯한 장소심의 모습도 보통의 드라마 속 설정과는 사뭇 다르다. 장소심은 그래도 자기네 가족이 그만큼 살 수 있게 된 것이 이명순네 집에서 자신을 거둬줬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혹자는 이것이 노예근성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장소심의 경우는 그런 세속적인 잣대를 넘어선다. 그녀는 뭐든 끌어안는 인간애와 모성애의 결정판이다.

 

하영춘을 벌레 보듯 하는 강동희(택연)에게 늘 한 걸음 뒤편에 서서 그를 애틋한 눈길로 바라보는 하영춘의 관계 또한 특이하다. 보통의 계모와 자식 설정과는 달리, 하영춘은 강동희를 친자식처럼 아끼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물론 여기에는 출생의 비밀이 숨겨져 있지만(사실은 강동희의 친엄마가 하영춘) 이 역시 통상적인 막장드라마가 사용하는 코드와는 달리 사용된다. ‘출생의 비밀이 신분상승의 기제로 활용되곤 하던 것과는 달리, 이 드라마에서는 끈끈한 가족애를 드러내는 코드로 활용된다.

 

또 어린 시절의 사고로 어린 아이의 지능에 멈춰버린 강동옥(김지호)과 우진(최웅)의 멜로 역시 여타의 드라마들과는 사뭇 다르다. 하긴 연애에 있어 잘 나고 못나고가 무슨 상관이겠냐마는 그래도 우진이 먼저 강동옥에게 호감을 드러내고 다가간다는 설정은 특이하다. 게다가 강동옥은 이 멀쩡하게 잘 생기고 능력도 있어 보이는 사내를 거부한다. 중요한 건 강동옥이 우진을 밀어내는 이유다.

 

에미 말 잊어먹으면 안댜. 니를 보고 자꾸 이쁘다 켜고 자꾸 말시키고 밥 먹자고 그러고 손 잡을라구 그러고 그런 놈들하고는 절대로 같이 놀면 안댜. 그런 놈들은 말짱 다 나쁘고 숭악한 놈들여. 알았쟈?” 장소심이 강동옥을 걱정해서 한 말이 그녀의 마음을 닫게 만들었던 것. 통상적인 멜로 관계가 부모의 반대로 인해 벌어지는 것이지만, 강동옥의 경우에는 장소심의 그녀에 대한 지극한 걱정과 배려가 들어가 있다.

 

<참 좋은 시절>이 갈등구조를 만들어내는 방식은 일반적으로 우리가 드라마를 통해 봐왔던 구도와는 확연히 다르다. 흔히 막장드라마에서 첨예한 갈등 구조를 만들어내기 위해 조강지처와 첩의 서로를 물어뜯는 관계로 집어넣곤 하지만 <참 좋은 시절>은 정반대다. 또한 한때 식모살이하며 구박을 받던 관계가 이제 역전이 되었다면 그것 역시 막장드라마에서는 자극적인 복수극의 이야기로 흐르기 마련이지만 이 드라마는 그렇지 않다. 오히려 변함없는 장소심의 마음이 또 다른 갈등의 단초로 제공된다.

 

이것은 이 드라마가 가진 특별한 면모를 드러낸다. 통상적인 갈등관계를 뒤집어 막장드라마들이 하던 방식이 아니라도 충분히 극적 상황이 가능하다는 것. 막장드라마가 관습적인 대립구도로 갈등을 만들어낸다면 <참 좋은 시절>은 오히려 타인에 대한 배려가 오해를 부르고 그것이 갈등으로 드러난다. 물론 이 오해가 풀려나가는 과정은 이 특별한 드라마의 갈등 해결과정이 될 것이다. 어떻게 이게 가능할까.

 

이것이 가능해진 것은 이 드라마가 사람을 보는 따뜻한 시선이 있기 때문이다. 이 드라마는 혹여나 악역이라고 하더라도 그 인물을 타고난 악인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 것 같다. 오히려 부족함이 있을 뿐이고 그 부족함이 서로에 대한 이해로 채워질 때 갈등이 봉합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려는 것만 같다. 늘 봐와서 이제는 식상하기까지 한 막장드라마들의 관습적인 관계와 설정의 정반대를 보여준다는 것. 이것은 참 좋은 드라마, <참 좋은 시절>이 막장드라마에 던지는 결코 작지 않은 메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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