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수2>, 일주일동안 무슨 일이

 

일주일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나는 가수다2(이하 나가수2)>의 두 번째 생방송은 첫 번째 그것과는 너무나 달라져 있었다. 첫 번째 생방송이 너무나 어수선하고 생방송이라는 부담감이 지나치게 프로그램을 짓눌렀었다면, 두 번째 생방송은 어느 정도 여유를 찾은 느낌이었다. 전체적인 프로그램의 진행은 매끄러웠고, 출연자들은 훨씬 담담해졌다. 당연히 무대도 안정감이 있었다. 과도한 부담감이 음악 자체를 질식시킨 듯했던 첫 번째 생방송과는 달리, 두 번째 생방송은 그래서 음악이 들리기 시작했다. <나가수>가 가진 본 모습을 비로소 찾은 느낌.

 

 

'나는 가수다2'(사진출처:MBC)

파격적으로 인피니트의 '내꺼 하자'를 선곡한 박상민은 특유의 걸쭉한 창법으로 아이돌과는 또 다른 흥겨운 무대를 선보였고, 조덕배의 '꿈에'를 부른 정엽은 섬세하고 부드러운 가성 창법으로 노래가 담은 감성을 제대로 전해주었다. 박완규는 박인수의 '봄비'를 절규하듯 토해내 그 울부짖는 듯한 목소리가 전하는 진한 울림을 느끼게 해주었고, 발라드의 신 김연우는 이문세의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을 담담하지만 단단하고 감미로운 목소리로 들려주었다. 고 유재하의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을 부른 김건모는 특유의 편안함으로 노래 자체가 주는 감동을 잘 전달해주었고, '우리의 밤은 당신의 낮보다 아름답다'를 부른 정인 역시 호소력 있는 목소리로 개성 있는 무대를 연출해주었다.

 

선곡에 있어서 록에서 발라드까지 장르도 다양했고, 그것이 단지 고음 지르기 같은 천편일률적인 방식으로 표현되지 않은 점도 좋았다. 다소 잔잔하게 부른 김건모가 상위권에 들어간 것은 <나가수2>의 무대가 좀 더 다양한 음악에 집중할 수 있는 여지를 보여준 것이나 다름없다. 사실 <나가수>에서 가장 불편한 지점은 바로 '가창력 뽐내기'식의 경연으로 치닫는 상황일 것이다. 노래를 잘 한다고 뽐내는 식으로 흘러가게 되면, 자칫 노래를 들어주는 관객이 소외될 때가 생긴다. 관객들과 노래를 통해 소통하고 소소하지만 그 작은 소통이 주는 감동을 전할 때 <나가수>는 비로소 제목에 걸맞게 가수라는 정체성을 찾을 수 있는 셈이다.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나가수2>의 두 번째 생방송은 첫 번째 생방송이 보여준 불안감을 상당부분 떨쳐 내주는 무대를 보여주었다. 이것은 결국 경연이라는 서바이벌의 지점을 상당 부분 지워낸 데서 온 결과이다. 역시 경연은 MC들의 진행에 따라 분위기가 좌우될 수 있다. 이은미는 그런 점에서 <나가수2>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해내고 있다고 생각된다. 진행은 첫 생방송보다 더 안정적이었고, 가수들의 노래 한 곡 한 곡에 저마다의 의미를 더해주는 여유까지 보여주었다.

 

또 노홍철도 특유의 긍정적인 분위기로 프로그램에 활력을 더해주었다. 다만 박명수의 조금은 과도해 보이는 질문들은 무대를 준비하는(오르기 전부터 감정몰입을 하는) 가수들과는 조금 어색한 지점이 있다. 특히 "긴장했냐?"고 자꾸 부추기는 듯한 질문은 가수들을 진짜 긴장하게 만들 가능성도 있다. <나가수2>는 결국 좋은 음악을 들려주는 것이 중심이라는 점에서 MC들의 역할도 그것을 어떻게 하면 최대치로 만들어줄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시청률은 첫 번째 생방송보다 조금 떨어졌지만, 그것이 두 번째 생방송이 첫 번째 것보다 못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두 번째 생방송은 <나가수2>의 가능성을 보게 해준 무대였다. 결국 이 프로그램이 내세우는 가수의 정체성이란 다양한 노래들이 갖고 있는 감동적인 요소들을 대중들에게 최대치로 전해주는 것이 아닐까. 경연과 생방송의 부담감이 그것을 해주지 못한다면, 이런 장치들은 본래 목적과는 달리 음악 자체를 질식하게 하는 요인이 된다. 가수의 정체성은 그저 '노래 잘 한다'는 것이 아니라(그래서 1등을 했다는 둥), 듣는 이들과 음악적인 소통을 제대로 해낸다는 것에 있을 것이다. 결국은 음악이다. <나가수2> 두 번째 생방송이 보여준 가능성은 그것을 다시 확인해주는 것이었다.

도전과 성장, <정글2>의 진면목

 

<정글의 법칙>에서 김병만과 그 동료들은 정글 한 가운데서 최소한의 생존 장비만 주어진 채 살아남아야 한다. 특정한 상황 속에 출연진들이 놓여지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가감 없이 포착해내는 이런 형식은 물론 낯선 것이 아니다. 이미 우리는 <무한도전>에서 무인도에 던져진 출연진들이 생존하기 위해 몸에 상처를 입으면서까지 야자수를 따는 장면을 기억한다. 또 알래스카에 김상덕씨를 찾기 위해 갔다가 그 혹한의 얼음 밭 위에서 말도 안되는 간이 올림픽 경기를 상처를 입어가며(?) 했던 장면들을 기억한다.

 

 

'정글의 법칙2'(사진출처:SBS)

우리네 리얼 예능의 계보에서 <무한도전>이 차지하는 비중은 이토록 크다. <무한도전>은 이미 그 야생의 낯선 지대로 뛰어 들어가 생존하기 위해 갖은 날것의 도전을 하는 그 예능의 형식적 틀을 이미 실험해 보여주었다. 물론 이것은 또한 서구의 리얼리티쇼들이 이미 선취했던 것들이기도 하다. 다만 <무한도전>이 의미 있는 것은 이러한 서구의 리얼리티쇼들의 형식을 지극히 한국적인 방식으로 해석하고 풀어냈다는 점일 게다.

 

어쨌든 <정글의 법칙>에는 그 근간에 도전이라는 코드가 들어가 있다. 그들은 정글 깊숙이 들어가 문명과 다른 삶을 살아가는 원주민들을 만나고 그들의 생존법칙을 하나하나 체득해간다. <무한도전>의 초창기가 그러했듯이, <정글의 법칙>의 초반부는 역시 이 정글에 놓여진다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도 도전이 되었다. 사실상 첫 번째 미션 장소였던 아프리카 나미비아의 악어 섬은 지금 생각해보면 아늑할 정도로 야생 가운데 안전이 어느 정도 확보된 공간이었다고 여겨진다.

 

하지만 파푸아에서 진행된 두 번째 정글 미션은 말 그대로 진짜 정글이었다. 이광규는 벌레들의 습격(?)에 알레르기를 일으키고 결국은 중도에 귀국했고, 코로와이족을 찾아가는 길은 극도의 한계를 시험하는 진정한 정글로드로서 출연자들을 기진맥진하게 만들었다. 마지막에는 정글을 탈출하다 제작진이 실종되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의 이 진짜 정글 경험은 또 다른 도전의 자양분이 되었다.

 

남태평양 바누아투에서 찍은 <정글의 법칙2>는 그런 점에서 또 한 번의 업그레이드된 도전이다. 이번엔 그들을 위협하는 물이 있고 화산이 있고 정글이 있다. 이렇게 보면 <정글의 법칙2>는 <무한도전>이 그런 것처럼 정글의 무한 도전이 되는 셈이다. 계속해서 새로운 도전 목표를 세우고 그 안에 인물들이 투입된다. 그리고 도전을 겪어가면서 인물들의 생존능력 또한 성장한다. 이 프로그램이 계속 방영된다면 아마도 몇 년 후의 김병만과 그 동료들은 지금과는 달라져 있을 지도 모른다. 어쩌면 타잔 비슷하게 되어 있을지도.

 

진짜 리얼 프로그램의 특징은 그 안의 캐릭터들이 점점 실체가 되어간다는 점이다. <무한도전>의 유재석과 그 멤버들은 초창기에는 '대한민국 평균 이하'라는 캐릭터로 시작했지만, 차츰 도전과 성장을 거듭하면서 지금의 최고 위치에 오르게 되었다. 이렇게 실제로 성장한 출연진들 때문에 미션과 프로그램의 방향조차 바꿔야 했을 정도. 특히 유재석은 도전의 아이콘이 되었다. 방송가의 이야기에 따르면 그는 그저 방송을 위해 보여주는 도전의 제스처가 아니라 실제로 대단한 도전정신의 소유자가 되었다고 한다. 프로그램이 출연자와 만나 허구가 현실이 되어버린 것이다. 김병만 역시 그런 야생과 정글의 달인이 되지 않을까.

 

흥미로운 건 <무한도전>이 저 해외의 리얼리티쇼를 한국화해서 이른바 '리얼 버라이어티쇼라는 형식을 만들었듯이, <정글의 법칙> 또한 해외의 서바이벌 리얼리티쇼를 상당 부분 한국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날 것의 정글이라는 상황 속에서도 팀원들이 하나의 유사가족을 형성하는 점이 그렇다. 자칫 힘겨운 자극에만 매몰될 수 있는 정글의 경험이 때론 웃음이 피어나고 때론 감동적인 눈물이 연출되는 건 바로 이 지극히 한국적인 가족이라는 틀이 있기 때문이다.

 

<정글의 법칙>은 시즌을 거듭하면서 과연 <무한도전> 같은 성장을 이룰 수 있을까. 김병만의 무뚝뚝해 보이면서도 어딘지 장난기 가득하며 때론 놀라운 달인의 면모를 보여주는 캐릭터가 앞에서 끌어주는 한, 이러한 성취가 꿈만은 아닐 것이다. 김병만의 성실과 도전정신을 보며, 정글판 <무한도전>처럼 보이는 <정글의 법칙>에서 제2의 유재석을 예감하는 건 섣부른 일일까.

남측대표 하지원 vs 북측대표 하지원

 

하지원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녀는 현재 남북이 등장하는 드라마와 영화에서 각각 북측 대표와 남측 대표를 맡아 연기하고 있다. 모두 남북의 화합과 평화를 다루는 이 두 콘텐츠에서 그녀는 또 공교롭게도 남북단일팀을 이끄는 존재다. <더킹 투하츠>에서는 북측대표 장교들의 팀장이고, 영화 <코리아>에서는 남측 탁구팀 대표선수 현정화다. 도대체 하지원의 어떤 매력이 그녀를 통해 남북을 이어보게 하는 걸까.

 

 

'더킹 투하츠'(사진출처:MBC)

<더킹 투하츠>에서 하지원이 연기하는 북한특수부대 여자1호 교관 김항아라는 캐릭터에는 독특한 지점이 있다. 북한특수부대 출신답게 군인으로서 풍겨 나오는 절도와 때론 살벌할 정도로 팽팽해지는 긴장을 보여주면서도, 드라마 설정 상 왕인 이재하(이승기) 앞에서는 한 여성으로서의 사랑스러움을 동시에 보여줘야 한다. 게다가 힘겨움을 감추고 살아가야 하는 재하를 다독여주는 모성으로서도 자리해야 한다.

 

장르적으로 액션과 멜로가 섞여있기 때문에, 그 두 지점을 오고가야 하는데 이런 역할에 하지원 만큼 잘 어울리는 배우는 없을 게다. 인질로 잡혀있는 재하를 구하기 위해 마치 무협지의 한 장면처럼 붕붕 날아서 적들을 제압하는 장면은 아마도 액션이 어색한 다른 여배우가 했다면 실소를 자아내게 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일단 하지원의 뭐든 해낼 것 같은 앙다문 입과 때론 이글이글 타는 눈빛만으로 우리는 설득되고 만다. 북한 장교로서(북한사투리마저 귀엽게 사용하는) 이만한 매력을 보여주는 캐릭터가 있었을까 싶다.

 

한편 영화 <코리아>에서 하지원은 현정화 역할을 맡아 <더킹 투하츠>와는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남측 탁구 대표 선수의 시선으로 함께 복식에 나갈 리분희(배두나)와 만들어가는 각과 정은 바로 우리네 대중들의 공감을 자아내게 만들었다. 현정화 선수가 적극 하지원을 추천한 이유가 그 강인함을 꼽았던 것처럼, 그녀는 이 영화 속에서 "파이팅!"하고 짧게 외치는 소리 하나만으로도 그 강한 정신력을 드러냈다.

 

그 탁구대 앞에서 강한 모습이 다시 헤어지는 와중에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감정의 폭풍으로 이어지게 해준 것도 하지원만이 가진 강점이다. 그녀는 지금껏 그녀가 해온 작품들을 통해서 그러했듯이, 강한 인상을 보여주고는 그 안에 담겨진 한 없이 따뜻하고 가녀린 여성성을 드러내줌으로써 보는 이들을 뭉클하게 만든다.

 

왜 이 남북의 새로운 관계를 희구하는 콘텐츠에 하필 하지원이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면, 그것이 단지 액션이 가능한 여배우라는 그녀만의 장점 때문만은 아니라는 걸 알아차릴 수 있다. 그것은 그 팽팽한 대립의 긴장감을 가장 강렬하게 보여줄 수 있는 배우이면서 동시에 그 안에 숨겨진 따뜻한 속살을 가진 배우가 하지원이기 때문일 게다. 우리가 남북의 화합을 꿈꾸는 콘텐츠에서 바라는 지점이 바로 그 겉모습의 오해가 풀어지는 것이니 말이다.

 

공교롭게도 남과 북을 모두 제 몸에 담아낸 하지원은 그래서 그 이질적인 인상조차 한 몸으로 동질화시켜준 역할을 한 셈이다. 적어도 이 두 콘텐츠 속의 하지원을 두루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이 두 콘텐츠가 드러내는 남북 평화의 메시지를 발견하게 되는 건 그 때문일 것이다. 하지원은 확실히 이질적인 요소들(남성성과 여성성, 강렬함과 부드러움, 부유함과 가난함 등등)을 하나로 묶어내는 기묘한 매력을 가진 배우다.

<적도>, 오이디푸스와 근현대사가 만날 때

 

<적도>는 남자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아버지에 대한 드라마다. 이 드라마에는 그 흔한 모성이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아버지들은 넘쳐난다. 주요 대결구도를 이루고 있는 선우(엄태웅)와 장일(이준혁)은 둘 다 여러 의미의 아버지들을 갖고 있다.

 

 

'적도의 남자'(사진출처:KBS)

선우는 진짜 아버지(그게 누군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키워준 아버지 김경필(이대연), 그리고 그를 절망의 늪에서 구원해준 아버지 같은 존재 문태주(정호빈)가 있다. 한편 장일은 진짜 아버지지만 대면하고 싶어 하지 않는 이용배(이원종)가 있고, 그가 검사가 될 때까지 후원을 해준 마치 대부 같은 진노식 회장이 있다.

 

선우와 장일은 어린 시절 둘도 없는 친구로서 그 본질은 선한 존재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아버지들에 의해 선과 악으로 갈라지게 된다. 진노식 회장과의 거래로 이용배는 김경필을 죽이게 되고, 그 사실을 알게 된 장일은 그 죽음이 자살이 아니라는 걸 밝히려던 친구 선우의 뒤통수를 치게 된다.

 

선우와 장일의 대결은 결국 선우를 키우고 성장시킨 선한 아버지들(김경필, 문태주)과 장일을 키운 악한 아버지들(이용배, 진노식)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그들은 모두 고통 받는다. 그리고 그 고통의 근원은 자신들의 잘못이라기보다는 아버지대의 잘못이 유전된 것이다. 이것은 다분히 역사적인 의미를 부여한다. 남자로 표상되는 우리들의 아버지 세대가 가진 문제와 그로 인해 현재까지 이어지는 부조리의 고리를 보여주겠다는 의도.

 

선우에 의해 현재의 시점에서 과거의 잘못을(공소시효가 얼마 남지 않은) 캐묻는 이 드라마는 시대의 욕망과 권력에 의해 은폐되었던 정의와 진실을 역사의 심판대 위에 올리려 한다. <적도의 남자>가 그토록 시각이라는 이미지에 집착하는 것은 이 감추어진 진실을 다시 끄집어내 제대로 보여주려는 이 드라마의 욕망을 잘 말해준다.

 

선우가 시각장애를 갖게 되는 설정은 그런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것은 진실을 보려는 자와 그것을 보지 못하게 하려는 자 사이에 생겨난 갈등에서 비롯된다. 또 최수미(임정은)와 그 아버지인 최광춘(이재용)이 모두 '진실을 본 자'라는 점도 흥미롭다. 박수무당인 최광춘은 선우의 아버지의 죽음을 목격한 자이고, 그 딸인 최수미는 선우의 뒤통수를 장우가 내려치고 바닷물에 집어 던지는 장면을 목격한 자이다.

 

화가로 돌아온 최수미가 극사실주의의 그림을 그린다는 설정도 그래서 이해가 된다. 사진 같은 증거는 없지만, 최수미의 기억 속에 남겨진 사건의 기록은 그대로 있는 셈이다. 그녀는 그것을 그림으로 그려낸다. 거의 사진 같은 사실적인 그림으로. 이처럼 드라마는 진실을 억압하려는 자들에게 자꾸만 과거의 그 불편한 진실을 들이댄다. 보지 못하던 선우가 문태주를 만나 눈을 뜨게 되고, 장일에게 버려진 수미가 화가가 되어 과거를 시각적으로 재현해내는 과정은, 그래서 묻는다고 묻힐 수 없는 것이 진실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적도의 남자>는 진실의 법정에 아버지들을 세우는 드라마다. 그들의 욕망으로 인해 만들어진 부조리한 현실을 짊어진 아들들이 서로 피 흘리며 싸우면서 그 아버지 대의 잘못을 폭로하는 이야기. 아버지에 대항한 아들의 이야기와 그 불편한 진실을 파헤쳐 들어가는 스토리 구조는 고전인 '오이디푸스'의 이야기를 떠올리게 한다. 결국 제 아버지를 제 손에 죽게 했다는 사실을 안 오이디푸스가 제 눈을 스스로 찌르는 것은 진실이라는 것이 얼마나 대면하기 힘겨운 불편한 것인가를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아직까지 선우의 친 아버지가 누구인가에 대한 것은 밝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추정할 수 있는 건 그 아버지가 바로 선우가 그토록 복수하려 했던 진노식 회장이 될 거라는 예감이다. 심한 충격이 선우의 시력을 다시 잃게 만들 수도 있다는 복선은 <적도의 남자>와 오이디푸스의 이야기가 정확히 겹쳐지는 부분이다. <적도의 남자>가 최근 보기 드문 수작인 이유는 바로 이런 점들 때문이다. 이 이야기는 대단히 근원적인 스토리를 보여주면서도(오이디푸스 콤플렉스 같은) 동시에 그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네 근현대사를 압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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