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쇼>가 보여준 <나는 가수다>, 그 의미

 

'지금만 참고 나면 될 것이다.' <고쇼>에 출연한 김범수가 밝힌 데뷔 전 아버지와 얽힌 이야기는 가수의 탄생이 그냥 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었다. 아버지가 보는 앞에서 프로듀서에게 인간적인 모멸감까지 당하면서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을 때, 문득 보게 된 아버지의 평온한 얼굴에서 무언의 목소리를 듣게 됐다는 것. 김범수는 이 경험을 통해 가수로서의 길을 계속 갈 수 있었다고 말했다. 고현정을 비롯한 출연 가수들은 이 사연에 눈시울을 붉혔다.

 

 

'고쇼'(사진출처:SBS)

백지영, 김범수, 박정현, 아이비를 게스트로 초대해 '기적의 보이스'라는 타이틀로 꾸려진 <고쇼>는 지금까지와는 달리, 게스트에 대한 집중이 돋보였다. 그간 고현정에 지나치게 주목됐던 시선이 게스트로 옮겨간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이런 시선 변화를 통해 <고쇼>는 출연한 가수들이 여타의 프로그램에서 보여주지 않았던 가수로서의 새로운 면모들을 끄집어냈다.

 

아이비가 트레이닝의 한 방법으로 보여준 이른바 스프링 창법(점프를 하면서 노래를 부르는)은 가수들이 그 가창력을 갖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는가를 잘 보여주었다. 점프를 하며 앨리샤 키스의 'if i ain't got you'를 소화해내는 아이비에게 윤종신은 그 노력이 배어난 이 모습이 "지금까지 그 어떤 모습보다 아름다웠다"고 말했다. 고현정은 댄스가수로 생각해 이처럼 노래를 잘 할 줄 몰랐다며 자신의 오해를 미안해했다.

 

김범수가 겪은 힘겨웠던 데뷔시절의 이야기는 박정현의 어려웠던 시절로 이어졌다. 좁은 방에서 생활하며 작은 창에 낀 성에로 불투명하게 보이던 창밖을 자신의 미래처럼 암담하게 생각했던 시절, 창에 끊임없이 사각형을 그리며 작곡에 열중했던 그 때의 이야기를 그녀는 먹먹하게 들려주었다. <고쇼>는 우리가 무대에서 봐왔던 그 작은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카리스마와는 또 다른 그녀의 지극히 인간적이고 솔직한 면모들을 끄집어냈다.

 

김범수와 박정현의 이야기를 들으며 눈물을 터트린 아이비는 자신의 힘겨웠던 우울증을 고백했다. 힘겨운 일을 많이 겪었지만 특유의 긍정적인 마인드로 대수롭지 않게 넘기며 살아가던 어느 날, 무대에서 노래를 하며 딴 생각을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는 것. 심지어 수없이 불렀던 노래의 가사가 떠오르지 않는 경험은 조금씩 곪아 안으로 터져버린 우울증의 징후를 발견하게 되었다고 했다. 아이비의 이야기에 눈물을 흘리는 백지영은 특별히 다른 이야기를 굳이 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깊은 공감을 느끼게 해주었다.

 

<고쇼>는 '기적의 보이스'라는 콘셉트를 통해 가수들이란 존재를 새롭게 보여주었다. <나는 가수다>가 노래를 통해 그 존재증명을 했다면, <고쇼>의 이번 무대는 가수가 되기 위해 겪었던 수많은 노력과 가수생활을 하며 힘겨웠던 사연 같은 그간 잘 드러나지 않았던 그 뒤안길의 이야기들을 풀어놓음으로써 가수라는 존재를 새롭게 보게 만들었다.

 

게스트들에 주목한 결과였을까. <고쇼>는 그 오디션이라는 형식에 지나치게 매몰되지도 않았고, 또 고현정에게도 MC로서 필요한 질문과 경청할 시간을 만들어주었다. 이것은 지금껏 출연한 게스트들이 오디션 형식 속에서 어딘지 연기하는 톤을 보여주면서 가려졌던 실체와는 사뭇 다른 풍경을 만들었다. 토크쇼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게스트들과의 진솔한 대화가 가능했던 것. 가수라는 존재의 진면목을 보여준 <고쇼> '기적의 보이스'편은 그런 점에서 이 토크쇼가 가져야할 가장 중요한 조건 하나를 보여준 가능성의 시간이었다.

경쟁보다 공존의 의미를 더한 수펄스

 

우리에게 수펄스는 어떤 의미였을까. 'K팝스타'라는 서바이벌 오디션 현장에서 갑자기 나타난 이 네 명의 존재는 우리를 뭉클하게 만들었다. 그들은 사실 경쟁자들이 아닌가. 누군가 올라가면 누군가는 떨어지는. 하지만 경쟁이 무색하게도 네 명의 목소리가 만들어낸 하모니는 그 어느 각각의 소리보다 더 아름다웠다. 'K팝스타'라는 최후의 1인을 뽑는 오디션에서 대중들이 수펄스의 무대를 그토록 원했던 것은 그것이 우리네 현실을 그대로 상기시키면서 하나의 염원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경쟁사회라고 하더라도 그 위에 피어나는 공존의 하모니를.

 

 

'수펄스'(사진출처:SBS)

공식적으로 이승주와 이정미의 YG행이 결정되었을 때, 수펄스는 <서울디지털포럼 2012>라는 조금은 어울리지 않는(?) 무대에 오를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 이유는 이 행사의 올해 주제가 '공존'이라는 것과 관계가 있다. 공존(coexistence). 기술의 발전과 그럼으로써 커진 산업에 대한 관심을 이제는 이런 기술을 어떻게 활용해 함께 공존할 수 있을 지를 고민해보는 시간. 수펄스는 그 자체로 충분히 공존의 의미를 더해주는 그런 존재들이었다.

 

수펄스의 맏언니인 이미셸은 인터뷰를 통해 "수펄스는 가족이다. 'K팝스타'에서 가장 감사한 것이 수펄스를 만난 것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녀는 'K팝스타'의 경험에 대해서 "경쟁 구도 속에서 내가 살아남아야겠다는 의식만 가지고 오디션을 준비하면서 나가는 것이 아니라, 많이 배울 수 있고 공존하는 모습이 많이 있었던 거 같았다."고 말했다. 상대적으로 일찍 떨어진 이승주와 이정미에게 오디션 최종전까지 올라간 박지민이나 이미셸을 보며 어떤 마음이 들었냐고 묻자, 그녀들은 이구동성으로 "응원하는 마음"이었다고 말했다.

 

행사 말미에 그들은 'Fame'을 불렀다. 네 목소리가 하나로 어우러지는 그 절정의 하모니는 세계 각지에서 모인 연사들과 청중들을 매료시켰다. 오디션은 끝났지만 수펄스는 여전히 존재했다. 대중들이 그들을 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YG의 공식적인 발표는 수펄스의 부활을 공식화한 것이었다. 이미셸과 이승주, 이정미는 한껏 들뜬 마음을 숨기지 못한 얼굴이었다. 이미 JYP행이 결정된 박지민 역시 아쉬운 한편 진심으로 그들의 YG행과 수펄스의 부활을 축하해주었다.

 

최근 각종 리얼리티 프로그램들, 즉 오디션 프로그램이나 리얼리티쇼 같은 서바이벌 콘텐츠들이 봇물을 이루면서 서바이벌과 경쟁은 하나의 트렌드가 된 양상이다. 하지만 지금 되돌아보면 그 서바이벌과 경쟁적인 요소가 이들 프로그램에 대한 대중들의 열광을 낳은 것은 아니었다는 게 분명하다. 우리가 발견한 것은 경쟁적인 현실 그 자체가 아니라 그 현실 속에서도 드러나는 공존의 감동적인 광경이었을 것이다. 서바이벌의 자극이 아니라 그것을 뛰어넘는 공감의 감동이었던 것.

 

서바이벌의 현실 문제를 환기시키며 신드롬까지 일으켰던 허각도 잘 들여다보면 그 안에 존박과의 우정이 있었고, 합숙생활에서의 맏형 같은 모습이 있었다. '나는 가수다1'에서 논란이 되었던 김건모의 재도전은 그만큼 선후배 사이의 관계가 끈끈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나는 가수다2'가 살풍경한 생방송을 선택하면서 경쟁적인 분위기를 얻었지만 결국 잃은 것은 어쩌면 이러한 관계의 끈끈함을 포착할 여유가 아니었을까. '정글의 법칙' 같은 극단의 공간에 가서도 우리가 찾는 것은 결국 가족적인 분위기다. 서바이벌? 그것은 성공요인의 필요충분조건이 되지 못한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 지긋지긋한 경쟁사회에서 그것을 재현하는 듯한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보면서, 거기서마저 경쟁만을 보고 싶은 시청자는 없을 것이다. 경쟁 속에서도 피어나는 하모니와 공존의 모습. 어쩌면 이것이 음악을 소재로 하는 오디션 프로그램들이나 극한의 리얼리티의 공간을 찾아가는 프로그램들의 진짜 성공 요인이 아니었을까.

 

우리에게 수펄스는 절정의 가창력을 가진 누군가의 독주가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음을 맞춰나가려는 그 하모니로 다가온다. 특유의 고음이 매력적인 박지민은 "독창으로 가창력을 뽐내는 것보다 전체가 하나의 하모니를 만들어내는 것이 더 재밌다"고 말했다. 그것이 자신의 가창력을 스스로 낮춰야 할지라도.

<1박2일>의 배우들, KBS 드라마 견인

 

<각시탈>의 주원은 <적도의 남자>로 확고한 입지를 다진 엄태웅의 뒤를 이을 수 있을까. 엄태웅은 <1박2일>에 출연하면서 새롭게 주목되었다. 어딘지 무거웠던 이미지를 벗고 순둥이 이미지에 서글서글한 면모가 부가되었고, 최근에는 이른바 '나노 개그'로 주목받고 있는 중이다.

 

 

'각시탈'(사진출처:KBS)

그런 그가 <적도의 남자>에서는 또 완전히 다른 카리스마 연기를 보여주면서 연기자로서의 입지도 확고히 다질 수 있었다. 예능을 통해 발견하게 된 본래의 선한 이미지가 있었기 때문에, <적도의 남자>에서의 강한 인상은 본래 이미지가 아니라 고스란히 그의 연기력으로 대중들에게 각인될 수 있었다. 시각장애라는 연기는 그 연기력을 더 극대화해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제는 <1박2일>의 막내로 자리하고 있는 주원의 차례. 그는 과연 엄태웅이 보여준 예능과 드라마 동시 출연의 시너지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각시탈> 첫 회에서의 주원의 모습은 그 가능성을 발견하게 한다. <1박2일>에서 착하고 뭐든 열심히 솔선수범하는 막내의 이미지를 보여주었던 주원은 <각시탈>에서는 이와는 상반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아직 밝혀진 것은 아니지만 원작으로 유추해보면 주원이 연기하는 이강토 역할은 극에서 극으로 바뀌는 반전 인물이다. 독립운동으로 가족을 돌보지 못했던 아버지, 오로지 가족의 희망으로 믿고 뒷바라지 해왔지만 모진 고문 끝에 바보가 되어 돌아온 형 이강산(신현준). 그들 때문에 절망적으로 친일에 앞장서게 된 이강토는 그러나 각시탈이 형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스스로 각시탈이 되는 인물이다.

 

일본 순사가 되어 항일운동을 하는 애국지사들을 가차 없이 잡아들이면서 얻은 명성으로 밤이면 경성 최고의 사교계 황태자로 행세하는 이강토라는 캐릭터는 그 안에 또한 깊은 아픔과 정(형제애)을 숨기고 있는 인물. <적도의 남자>에서 엄태웅이 시각장애라는 연기를 통해 연기자로서의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면, <각시탈>에서 주원은 이 얄미울 정도로 친일에 앞장서는 모습을 보여주면서도 속으로는 아픔을 숨기고 있는 이중적 캐릭터로 강한 인상을 남길 가능성이 크다.

 

이 주원이 보여주는 이중적 캐릭터는 <각시탈>이 상징하는 탈의 이미지이기도 하다. 송골매의 노래가사에도 나오듯, 탈이란 '얼굴을 가리고 마음을 숨기는' 오브제가 아닌가. 한바탕 덩실덩실 춤을 춘다는 그 의미는 아마도 일본의 압제 속에서 억눌렸던 분노를 행동(춤)으로 풀어낸다는 뜻으로 읽힐 수도 있을 게다.

 

예능과 드라마를 동시에 소화해낸다는 것은 과거만 해도 상상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 때는 드라마 캐릭터와 실제 연기자를 혼동하던 시대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대중들은 캐릭터와 연기자를 혼동하지 않는다. 그만큼 연기에 대한 인식이 과거와는 달라졌다. 따라서 예능에서 보여주던 실제 모습과 드라마에서의 상반된 연기는 오히려 연기자에게는 상호 시너지를 만들어주기도 한다. '적도의 남자'를 보며 우리가 '이 엄태웅이 저 순둥이가 맞아' 하고 놀라워했던 것처럼.

 

<1박2일>에 출연하고 있는 배우들이 나란히 KBS 드라마의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지점이다. 이것은 어찌 보면 한 방송사에서의 예능과 드라마의 새로운 시너지를 보여주는 것처럼 보인다. 예능에서의 활약이 빛날수록, 드라마에서의 캐릭터 변신도 그만큼 주목되는 상황이다. 엄태웅과 주원의 드라마와 예능에서의 활약은 이 새로운 변화의 지점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적도>에 이어 직진하는 사회 복수극, <추적자>

 

"힘 있는 자와 타협하지 않고 힘없는 사람들한테 고개를 숙이겠습니다. 위를 바라보지 않고 아래를 살피겠습니다. 가난이 자식들한테 대물림되지 않는 세상을 만들겠습니다. 서민들의 친구가 되겠습니다. 힘없는 사람들의 희망이 되겠습니다.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대한민국을 저 강동윤이 여러분과 함께 만들겠습니다." 대선 출마 선언을 하는 강동윤(김상중)의 이 연설 내용은 지겨울 정도로 전형적이다. 누구나 한번쯤 TV를 통해 봤을 법한 장면.

 

 

'추적자'(사진출처:SBS)

하지만 그 장면이 흘러나오는 TV 옆으로 억울하게 딸을 잃은 백홍석(손현주)이 스스로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걸어 나오는 모습은 이 지극히 전형적이어서 이제는 따분하기까지 한 연설 내용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 강동윤은 연설 내용과는 정반대로 아내 서지수(김성령)가 저지른 살인사건을 이용해 힘 있는 자인 장인 서회장(박근형)에게 압력을 가하고, 백홍석의 친구인 의사 윤창민(최준용)을 사주해 살아난 친구의 딸을 다시 죽게 만든다.

 

딸의 죽음 앞에서 백홍석의 아내 송미연(김도연)은 살아생전, 돈이 없어 딸에게 못해준 스마트폰이며 생일잔치, 학원 등록을 못해준 일들을 후회한다. 강력계 형사의 박봉에 힘없고 가난한 이들에게 돌아온 것은 억울한 딸의 죽음이다. 그것도 한 정치인의 야망에 의해 가차 없이 유린당한. 이런 세상에 희망이 있을 리 없다. 강동윤이 말하듯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나라는 애초부터 요령부득인 셈이다.

 

<추적자>는 첫 회에 이 모든 사회적인 분노의 지점을 찾아 그 도화선에 불을 붙인다. 장르적 관점에서 보면 이 드라마는 전형적인 추격전의 코스를 향해 달려갈 것이다. 이런 장르의 드라마는 굳이 새로움을 위해 장르 실험이나 뜻밖의 반전 포인트에 주저하지 않는 것이 관건이다. 오로지 대중들이 기대했던 코스를 제대로 달려 나가기만 하면 된다. 그 박진감과 속도감이 긴장감과 통쾌함으로 이어진다면 성공적인 작품이 될 수 있다.

 

물론 여기에는 한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그 반복적일 수 있는 장르의 흐름에 대중들이 공분하고 공감할 수 있는 작금의 현실을 제대로 얹어 놓아야 한다는 점이다. 백홍석이 당한 그 고통과 억울함이 대중들에게 공감되고, 백홍석의 딸을 죽음에 이르게 한 PK준(이용우)이나 그것을 정치적으로 이용한 강동윤, 그리고 그의 사주를 받은 친구 윤창민의 행각에 공분을 갖게 되는 건, 그것이 안타깝게도 작금의 현실을 그대로 재연하고 있기 때문이다.

 

<추적자>를 통해, 외면되는 정의와 진실에 대해 질깃질깃한 복수극의 끝장을 보여주었던 <적도의 남자>가 떠오르는 건 자연스러운 일일 게다. 이 두 드라마는 모두 돈과 권력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현실을 복수극의 형태로 보여주었다. 무엇보다 <적도의 남자>는 좌우의 우회길을 살피지 않고 '직진하는 드라마'로서의 저력을 보여주었다. 이미 첫 회부터 거두절미하고 부조리한 현실을 툭 던져놓고는 그 안에 백홍석을 달리게 하는 <추적자>는 그런 점에서 <적도의 남자>의 직구 승부를 닮은 점이 있다.

 

과연 <추적자>는 <적도의 남자>가 그랬던 것처럼 차츰 시동을 걸어 점점 깊은 긴장감과 속도감을 만들어낼 것인가. <추적자> 첫 회의 마지막 장면, 즉 백홍석이 복수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 나오고, TV 화면으로 버젓이 누군가의 삶을 짓밟고 그 위에 올라선 강동윤의 연설 장면이 오버랩 되는 그 장면은 그래서 이 작품의 제대로 된 착화점이 되는 셈이다. <추격자>는 <적도의 남자>가 보여준 그 통쾌하면서도 아픈 사회극이자 복수극의 또 다른 그림을 그려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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