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전 없는 '위탄2', 반전의 '보코'

'보이스 코리아'(사진출처:엠넷)

'위대한 탄생2'의 생방송무대는 꽤 기대를 갖게 만드는 멘티들을 갖고 있으면서도 어딘지 밋밋한 느낌이 있다. 마치 출연자들이 정해진 코스를 달리는 것만 같은 인상이다. 구자명에 이어 골든 티켓을 거머쥔 배수정의 무대는 공연 그 자체로는 괜찮았지만 오디션이라는 형식을 생각해보면 그다지 긴장감은 없었다. 이런 당연한 수순을 그것도 아주 급하게 쫓아가는 듯한 무대 진행은 결과적으로 최고조의 긴장을 주어야할 최종 탈락자 발표마저 그저 해야 할 것을 한 듯한 무대로 만들었다. 도대체 이 긴장 없는 오디션의 이유는 뭘까.

오디션만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반전 요소'가 없기 때문이다. 기대했는데 기대에 못 미치는 결과가 나왔거나, 기대하지 않았는데 기대 이상의 결과가 나오는 그런 반전 요소는 오디션의 핵심이다. 잘 하건 잘 못하건 멘토들은 거의 도돌이표의 심사평을 반복하고, 긴장과 이완을 통해 쇼의 묘미를 살려야할 진행자는 그저 순서 진행에 급급하며, 전문평가단들의 점수 역시 참가자들의 인기와 거의 비례한 상황에서 시청자들의 눈과 귀를 붙드는 뜻밖의 이야기는 발견되기 어렵다.

이것은 또한 전형적인 오디션 프로그램의 패턴을 읽어버린 대중들의 눈높이가 그만큼 높아져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위대한 탄생2'가 시즌1보다 확연히 주목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시청자들은 점점 새로운 걸 기대하는데, 정작 프로그램은 업그레이드된 느낌을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통상 상승구조의 시청률 흐름을 갖기 마련인 오디션 프로그램 형식에서 '위대한 탄생2'가 거꾸로 갈수록 시청률 하락을 경험하게 되는 건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반면 '위대한 탄생2'의 부진과 상반되게 주목을 끌고 있는 오디션 프로그램이 있다. 바로 엠넷에서 방영되고 있는 '보이스 코리아'다. 블라인드 오디션이라는 신개념 콘셉트를 장착한 이 프로그램은 본래 '더 보이스'라는 해외 포맷을 가져와 한국화한 것으로 첫 회부터 대중들의 시선을 단단히 사로잡았다. 그 이유는 오디션의 핵심인 '반전 요소' 덕분이다.

'보이스 코리아'는 오디션이라고 하면 으레 떠올리게 되는 심사위원의 독설이나 거친 평가에 눈물을 흘리는 풍경 따위가 없다. 이 오디션은 사실상 심사위원이란 존재가 없다. 그들은 심사위원이 아니라 '코치'로 불린다. 자신의 귀를 번쩍 뜨이게 하는 참가자의 목소리가 있다면 버튼을 눌러 회전의자를 돌림으로써 코치들은 참가자를 선택한다. 즉 가창력이 아닌 화려한 퍼포먼스나 출연자의 외모에 휘둘리던 어쩔 수 없는 오디션의 한계를 '등 돌리고 있는 코치들'로 넘어선 것이다.

게다가 이 오디션은 기존 심사위원과 참가자들 사이에 놓여진 '권력관계(?)'를 뒤집는 장면이 연출되기도 한다. 즉 한 참가자를 복수의 코치들이 선택하게 되면, 이제 선택권은 거꾸로 참가자에게 넘어가는 식이다. 이렇게 되면 코치들이 참가자에게 "자신이 무엇을 더 잘 해줄 수 있는가"를 어필하는 역 오디션이 생겨난다. 대중들의 반응은 폭발적이다. 너무나 많이 쏟아져 나온 오디션 형식들 때문에 이제 더 이상 새로운 오디션은 없다고 여겼던 시청자들에게 이 전혀 다른 콘셉트의 오디션은 그 자체로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다.

'보이스 코리아'의 반전은 오디션 프로그램에 대한 기존 선입견을 깨는데서 나온다. 오디션은 뻔할 것이다라는 생각을 뒤집은 게 첫 번째 반전이고, 또 해외 포맷이 있기 때문에 그 포맷에서 본 대로 일 것이다 했는데 거기에 플러스 알파 요소들이 있다는 걸 발견하게 된 게 두 번째 반전이다.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보이스 코리아'라는 프로그램의 참가자들에 대한 선입견도 있었던 것 같다. 즉 단적으로 말해 가창력은 좋지만 외모가 떨어질 것이다 라고 생각하는 것들이다. 사실 외모와 목소리는 관계가 없다. 따라서 훈남도 등장하고 개성있는 인물도 등장했다는 게 또 하나의 반전요소로 작용했다.

'위대한 탄생2'의 부진은 이제 기존 오디션 형식에 익숙해진 시청자들에게 특별한 반전 포인트를 주지 못하는데서 생겨난다. 반면 '보이스 코리아'에 대한 열광은 지금껏 오디션 하면 떠올렸던 일련의 흐름을 모두 뒤집는 반전에서 나온다. 이 상반된 결과는 오디션 형식이 왜 끊임없이 진화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형식인가를 말해준다. 진화를 통해 반전을 주지 못하는 오디션은 대중들에게 더 이상 감흥을 전하기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다.


'해품달', 절묘한 제목에 담긴 의미들

'해를 품은 달'(사진출처:MBC)

'해를 품은 달'이란 제목은 어떤 의미를 내포하고 있을까. 물론 음양을 통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이 해는 양, 즉 왕을 뜻하고 달은 음, 즉 여인을 뜻한다. 이 사극에서 해는 훤(김수현)이고 달은 월이라고도 불리는 연우(한가인)다. 이처럼 '해를 품은 달'은 그 제목만으로도 이 사극이 멜로를 지향하고 있다는 걸 극명하게 드러낸다. '해를 품은 달'이란 훤과 연우의 가까운 듯 먼 그 안타까운 운명적인 사랑을 그리는 사극이다.

달이란 본래 기억과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상징이기도 하다. 콘텐츠들 속에서 달이 종종 그리움과 동의어로 사용되는 건 그 때문이다. 해가 뜨면 달은 사라진다. 즉 눈 앞의 현실은 그리움이나 추억 같은 과거의 기억을 마치 없는 것처럼 저편으로 밀어낸다. 그래서 하루의 현실이 지나가고 이제 오롯이 자신으로 돌아오는 밤이 되면 그 없었던 듯 떠오르는 것, 그것이 바로 달, 그리움이다.

그래서 '해를 품은 달'은 기억의 문제를 다루는 드라마이기도 하다. 기억을 잃고 월(月)이 된 연우는 자신을 비춰주었던 해(훤)의 곁에서 액받이 무녀로 살아가며 조금씩 기억을 찾아낸다. 이것은 마치 그믐이었던 달이 초승달과 반달을 거쳐 보름달로 바뀌는 그 과정을 그려낸다. 하지만 연우는 훤과의 관계를 통해 차츰 기억을 떠올리게 되지만 그것이 자신의 기억이 아니라 남의 기억(신기로 들여다보는)이라 여기게 된다.

그리고 그 기억이 자신의 것으로 되돌아오는 시간은 바로 '일식'이다. 사실상 '해를 품은 달'이란 제목은 이 일식을 뜻하는 것이다. '해를 덮어버리는 달'은 잠시 현실을 지워버리고 과거의 기억만을 오롯이 띄우는 시간이다. 이 반전의 시간에 연우가 어린 시절 세자빈으로 있을 때 거처했던 은월각의 혼령받이로 들어가는 장면은 그래서 절묘하다. 그것은 현재의 월이 과거의 연우를 만나는 장면이다. 그래서 월이 자신이 연우임을 알고 비로소 훤을 만나는 시간이기도 하다. 이것은 해와 달이 겹쳐지는 현상, 일식으로 상징화된다.

이렇게 보면 음양 사상과 무속적인 판타지가 뒤섞인 이 사극 콘텐츠에 왜 무녀라는 낯선 인물들이 들어왔는가가 설명된다. 일식은 특히 사극에서 무녀들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대표적인 에피소드다. '선덕여왕'에서 일식이라는 현상은 미실이 민초들을 현혹시키는 방법으로 활용된다. 이 에피소드에서 무녀들은 이야기의 중심에 들어와 있었다. 이것은 과거 정통사극 시절에서도 마찬가지다. 그 때도 무녀들은 일식이라는 설정과 함께 왕의 실정을 드러내는 이야기에 단골로 등장하곤 했다.

'해를 품은 달'이 가진 판타지적인 요소들은 이처럼 해와 달, 그리고 일식이라는 자연현상을 인물들로 상징화한 스토리와 엮어냄으로써 생겨난 것들이다. 멀리 떨어져 마주보고 있지만 결코 닿을 수 없는 그 아련함은 이 압도적인 자연현상에 그리움 같은 애절함을 부여한다. 이것은 '해를 품은 달'이 가진 기존 사극과는 상반되는 정조를 만들어낸다. 기존 사극들이 수많은 에피소드들이 쏟아져 나와 숨 쉴 틈 없이 흘러가는 소설적인 흐름을 갖고 있었다면, 이 사극은 조금은 멈춰 서서 그 순간의 감정을 깊이 느껴보는 시적인 정조를 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제목에서부터 우러나는 마치 한 편의 시 같은 느낌은 그래서 대중들이 이 사극에 빠져들게 되는 가장 큰 요인이 되고 있다.


'해품달' 성공이 중견작가들에게 시사하는 것

'해를 품은 달'(사진출처:MBC)

'해를 품은 달'이 시청률 37%를 넘어섰다. 이런 기세면 40%도 손쉽게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한 때 사극이란 장르가 첫 회부터 20% 시청률로 시작해 통상 40%를 넘기는 것이 다반사였던 걸 떠올려보면 그다지 놀랄 일은 아니다. 하지만 작년 한 해 드라마들의 시청률 성적표를 들여다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지난해는 사극마저 20% 넘기기가 어려웠던 시기였다. 항간에는 대신 예능이 드라마의 권좌를 빼앗았다는 얘기마저 돌았다. 그러니 '해를 품은 달'이 첫 회에 18%의 시청률을 기록했을 때 심지어 제작진마저 깜짝 놀란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 게다.

'해를 품은 달'의 성공은 그저 한 작품의 성공으로 치부하기에는 그 의미가 남다르다. 즉 이 작품은 똑같은 패턴을 반복함으로써 침체됐던 사극의 부활을 알리는 작품이다. 이 과정에는 '역사로부터의 탈피'라는 과감한 선택이 있었다. 역사 바깥으로 나와, 완전한 허구가 된 사극은 그 장르적 특성이 가진 장점만을 취한 셈이다. 하지만 '해를 품은 달'의 의미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이 작품은 역사적 배경만 떼어놓고 보면 전형적인 청춘 멜로물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니 '해를 품은 달'의 성공은 그간 침체기를 겪은 멜로 장르가 사극이라는 틀을 접목시켜 부활한 작품으로도 평가될 수 있다. 그만큼 새로운 시도가 돋보이는 작품이라는 점이다.

작년 한 해 우리의 주목을 끈 드라마들의 면면을 보면 그 핵심에 바로 이 '참신한 시도'가 깔려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공주의 남자'가 본래 역사를 재구성하여 팩션 사극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면, '뿌리 깊은 나무'는 세종의 한글 창제라는 소재 속에서도 전혀 다른 장르적 재미를 덧붙인 팩션 사극의 새로운 실험을 완성했다고 평가된다. 작년 초 '현빈 앓이'를 만들었던 '시크릿 가든'은 영혼 체인지라는 판타지를 덧붙여 멜로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었고, '독고진 현상'을 만든 '최고의 사랑' 역시 연예계를 배경으로 한 로맨틱 코미디로 대중들의 시선을 끌어 모았다. 보기 드물게 법의학이라는 소재를 직접적으로 다룬 '싸인', 의학드라마의 틀 안에서 심지어 컬트적인 시도를 보인 '브레인'도 그 참신한 시도가 돋보이는 작품들이었다.

반면 작년 두드러진 현상은 중견작가들의 저조한 성적이다. 김정수 작가가 쓴 '내일이 오면'은 10%대 초반의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고, 문영남 작가의 '폼나게 살거야'도 시청률 10%를 못 넘기고 있다. 그나마 임성한 작가가 '신기생뎐'으로 24%의 시청률을 올렸지만, 이 작품은 시청률로는 판단하기 어려운 졸작이었다. 유령에 빙의되고 심지어 눈에서 레이저광선을 쏘는 장면들은 이 작품을 막장 중의 막장으로 평가하게 만들었다. 알츠하이머라는 기억의 문제를 덧붙여 절절한 멜로를 만들어냈던 김수현 작가의 '천일의 약속'은 20%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냈지만 그 명성에 비해 저조했던 것이 사실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시청률도 시청률이지만 중견작가들의 작품을 바라보는 대중들의 시선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중견작가들이 써내는 거의 비슷비슷한 도돌이표의 작품들에 대중들이 시선을 거두기 시작했다는 것. 가족드라마가 전체적으로 가라앉은 것은 바로 이 점에 기인한다. 중견작가들이 주로 써온 가족드라마들은 인물 구성만 달리했지 거의 비슷한 패턴으로 굳어져 있는 게 사실이다. 또한 중견작가들의 작품들이 새로운 세계를 탐구하거나 연구해서 나온 작품이라기보다는 그저 인물들 간의 관계를 통한 마인드 게임에만 치중하고 있다는 점도 대중들의 외면을 가져온 이유 중 하나다.

'해를 품은 달'의 진수완 작가, '공주의 남자'의 조정주 작가, '무사 백동수'의 권순규 작가, '싸인'의 김은희 작가, '브레인'의 윤경아 작가 등등, 사실상 신진작가들이 작년 대거 주목을 받은 반면, 중견작가들의 성적표가 그다지 좋지 않았다는 사실은 이제 제작진들의 시선도 바꾸고 있다. 그래서 벌써부터 드라마 업계에는 작가의 '세대교체론'이 고개를 들고 있는 상황이다. 신진작가들에 비해 원고료는 터무니없이 비싸면서도 그만한 결과가 나오지 않는 중견작가를 굳이 쓸 이유가 없다는 것. 게다가 시청률이 나온다 해도 매번 비슷한 패턴에 머물러 있는 드라마에 대한 대중들의 평은 그다지 좋지 않다. 시청률이 좋아도 이런 작품에 광고가 잘 붙을 리도 없다.

물론 이렇게 중견작가들의 몸값이 성적에 비해 터무니없이 높아진 데는 방송사의 책임이 있다. 시청률을 담보하기 위해 참신한 신진작가들의 실험보다는, 안정적인(?) 중견작가를 너나 할 것 없이 모시다 보니 이런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사실 극성이 높아 시청률은 잘 나오지만 드라마의 완성도는 떨어지기 마련인 막장드라마의 양산은, 바로 이런 몸값에 걸 맞는 시청률을 올리기 위한 중견작가들의 안간힘이라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상황은 바뀌었다. 시청자들이 이런 작품을 외면하기 시작했고, 당연히 방송사 입장에서도 그런 작가를 기용할 이유가 없어진 것이다.

이제 같은 패턴만 반복하는 것으로는 중견작가라고 해도 시청자들의 호응을 얻어내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만큼 작품은 쏟아져 나오고 드라마가 아니어도 점점 볼 건 많아지고 있다. 그러니 중견작가들은 이제 스스로도 연구하고 실험하는 작품을 고민해야 될 시기다. 중견작가로서 '뿌리 깊은 나무'를 쓴 김영현, 박상연 작가는 그런 점에서 모든 중견작가들에게 귀감이 될 것이다. 제 아무리 자기 스타일이 있고 글 잘 쓰는 중견작가라고 해도 이제 패턴을 벗어나 새로운 시도를 하지 않으면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게 됐다. '해를 품은 달'에 대한 대중들의 열광 속에는 그 참신함에 대한 갈증이 느껴진다.


'1박' 새 멤버, 기대감 차이 진짜 이유

'1박2일' 시즌2 새 멤버(김승우, 차태현, 성시경, 주원)가 확정됐지만 그 멤버들에 대한 기대감의 차이는 큰 편이다. 차태현에 대한 기대감이 압도적인데 반해, 성시경이나 김승우에 대한 기대감은 낮다. 주원은 예능이 첫도전인데다 막내라는 위치가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성시경이나 김승우보다는 기대감이 높은 편이다. 이런 기대감의 차이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사실 '1박2일'이라는 팀을 이들이 제대로 겪은 적은 없기 때문에(물론 성시경은 시청자 투어에 참여해 경험이 있지만 그런 이벤트적인 참여와 멤버로서의 참여는 확연히 다르다) 이런 기대감이 실제 상황이 될 지는 미지수다. 따라서 이 기대감의 차이는 그간 이 새 멤버들이 타 방송 활동을 통해 보여주었던 이미지와, 그것이 기존 '1박2일'이라는 틀과 얼마나 어울릴 것인가의 조합에서 비롯된다고 볼 수 있다.

차태현에 대한 기대감이 압도적인 것은 그가 리얼 예능에서 보여주었던 방송 이미지 덕분이다. 그는 '무한도전'이나 '패밀리가 떴다' 그리고 '런닝맨' 등에 나와서 특유의 예능감을 보여주었다. 게스트로만 출연하고도 '차희빈'이라는 캐릭터를 가질 정도였으니까. 그런데 '1박2일' 시즌2에서 차태현에 대한 기대감을 그저 '예능감'이란 한 마디로 표현하는 건 어딘지 부족하다. 어디까지나 게스트로서의 역할과 멤버로서의 역할은 다르기 때문이다. 게다가 차태현이 그런 발군의 예능감을 보인 데는 유재석의 도움이 일조했던 것도 사실이다.

차태현에 대한 기대감은 오히려 그 '가식 없는 솔직함'에서 찾는 게 더 적절할 것이다. 이것은 그가 '무한도전'이나 '패밀리가 떴다' 같은 리얼 예능에서 특유의 예능감을 선보일 수 있었던 원동력이다. 입바른 소리를 하거나, 지나치게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보다 차태현은 조금은 악동 같고 때로는 게으름을 피우면서 필요하면 이간질도 하는 밉지 않은 솔직함을 보여주었다. 이 솔직함이 주는 진정성은 리얼 예능에서 어쩌면 가장 중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따라서 차태현의 예능감이나, 그에 대한 '1박2일' 시즌2의 기대감이 큰 것은 모두 이 진정성에서 비롯된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이렇게 보면 상대적으로 김승우, 성시경이 기대감이 낮고, 주원은 그런대로 기대를 하게 하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사실 김승우와 성시경에 대한 우려는 대부분 그들이 갖고 있는 방송 이미지에서 비롯된 것들이다. 김승우는 꽤 오래도록 '승승장구'를 진행해오고 있지만, 특별한 자기 존재감을 보이진 못하고 있다. 그저 무난하게 남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역할이 그가 토크쇼에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방식이다. 어딘지 진짜 모습을 다 드러내지 않은 것 같은 이미지는 그가 과연 리얼 예능에 적합한가 하는 의문을 갖게 만든다.

한편 성시경은 그 이미지가 너무 복합적이다. 발라드 가수로서의 부드러운 이미지를 갖고 있으면서도 때론 고집스러울 정도로 자신의 소신을 드러내는 발언(서태지 발언이나 유승준 발언 같은)을 하기도 했다. 이런 이미지의 상충은 '1박2일' 시청자 투어 때 보여준 어르신들을 챙기는 모습에 대한 이중적인 시선(그것이 진심인가 아니면 가식인가에 대한)을 갖게 만들기도 했다. 물론 이것은 대중들이 생각하는 이미지일 뿐이지만, 이런 복합적인 이미지는 리얼 예능에서 특히 중요한 '진솔함'을 대중들에게 전하는 데는 분명 장애요소로 작용한다.

결국 '1박2일' 시즌 새 멤버에 대한 기대감의 차이는 기존 방송이미지가 갖고 있는 진정성의 차이에서 비롯된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이것은 실제라기보다는 대중들이 생각하는 이미지일 뿐이다. 따라서 이런 기대감은 방송이 시작되면 반전될 가능성도 높다. 김승우나 성시경이 의외의 진솔한 모습을 보여줄 수도 있고, 기대감이 컸던 차태현이 오히려 기대감만큼의 부담을 느낄 수도 있다. 주원 같은 새로운 인물은 마치 예전 '패밀리가 떴다'의 이천희처럼 의외의 엉뚱 캐릭터로 주목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어떤 반전을 가져온다고 해도 분명한 사실은 리얼 예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캐릭터의 '진정성'이라는 점이다. 과연 '1박2일'의 새 멤버들은 이 진정성을 통해 얼마나 많은 기대감을 채워줄 수 있을까.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다. 남은 건 이제 새 멤버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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