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에 나가보면 썰렁한 분위기에도 유독 활활 타는 코너가 있다. 이른바 '자기 계발 서적' 코너다. 성공에 관한 저마다의 방법들이 실용적으로 담겨진 그 책들은 언제 갑자기 도태될 지 모르는 경쟁 부추기는 사회 속에서 불안한 현대인들을 유혹한다. 성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한다는 그 '자기 계발을 해준다'는 책들의 주장들은 정말 달콤하다. 아침에 누구보다 일찍 일어나고, 사회생활 속에서 상대방의 심리를 파악하며 전술적으로 행동하는 그런 것이 성공을 보장해줄 것이란 믿음을 주기 때문이다.

'자기 계발'이라는 말은 그 뉘앙스만 보면 우리 속에 있는 가능성을 성장시켜주는 어떤 것으로 여겨진다. 아마도 그 책 코너 속에 몇몇 책들은 실제로 이런 기능을 할 것이다. 하지만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대부분의 '자기 계발서'들은 사회를 상정하고 그 사회 속에서 개인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지침처럼 내세운다. 즉 사회 속에 있는 개인을 통제하는 것으로 그 사회의 기존 질서에 부합하는 성공을 열매로 제시하는 것이다. 따라서 '자기 계발'이란 이제는 직접적으로 통제하지 않아도 스스로 통제하게 만드는 보다 견고해진 사회의 통제 시스템으로 보이기도 한다.

불안하기는 방송사 같은 조직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아도 스스로 자신을 채찍질하고 어떤 변화에 민감하게 대응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방송사도 새로운 사장을 뽑고, 조직을 새로 짜고, 매번 방송 개편을 하면서 자기계발을 한다. 사실 개인이야 누군가의 통제를 받는다는 것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심각한 자유의 침해로 여겨지지만, 방송사 같은 거대 권력 조직이 어떤 통제를 받는다는 것은 그다지 이상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통제 없이 달려 나가는 방송사는 언제 터질 지 모르는 지뢰처럼 사회를 불안하게 만들 것이다.

중요한 건 그 통제가 누구에게서 나오느냐는 것이다. 방송사가 누구의 눈치를 보면서 자기계발을 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당연하게도 그것은 방송사가 존립하는 이유인 대중들에게서 나와야 한다. 대중들의 눈높이, 사회 윤리적 잣대, 볼 권리, 알 권리... 굳이 공익이라고 거창하게 말하지 않더라도, 늘 대중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것. 만일 이 통제가 대중들을 통해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정부에 의해 나온다면 그것은 심각한 문제를 야기한다. 이것은 단순히 과거 군사정권 하의 우리네 방송을 돌이켜보면 쉽게 알 수 있는 일이다.

물론 지금은 군사정권처럼 시시콜콜 이거 해라 저거 하지 마라 하면서 방송을 통제하는 시대도 아니고, 또 그렇게 하는 것을 그대로 내버려둘 국민들도 아니다. 문제는 누가 지시하거나 압력을 행사하지 않더라도 알아서 자기 통제를 하는 방송사다. 늘 자기 계발을 위해 좀 더 나은 방송을 위해 했다고는 하지만, 대중들에 의해 논란이 야기되는 건 그것이 혹 자기검열은 아닌가 하는 의심을 받기 때문이다. 좀 더 나은 방송을 위한다는 명분의 자기 계발은 그 통제가 대중들로부터 나오는 것이지만, 자기검열은 권력으로부터 통제되는 것이기에 이 부분에 대한 논란은 뜨거울 수밖에 없다.

최근 들어 방송 프로그램에 대한 외압설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윤도현의 '러브레터' 하차와 정관용씨의 시사 프로그램 하차, 그리고 계속해서 외압의혹을 낳고 있는 김제동씨의 결국 불발된 '김제동쇼'. 그 밖에도 '개그콘서트'의 몇몇 코너들에 대한 외압설 등등 논란은 끊이지 않는다. 아마도 직접적인 외압은 가능성이 희박한 이야기일 것이다. 그럼에도 방송사가 스스로 단행하는 자기 통제 방식의 압력은, 그것이 대중들의 논란을 야기시키는 것으로 볼 때, 분명히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 만일 대중들을 위한 자기 통제라면 논란이 나올 까닭이 없지 않은가. 자기 계발 시대의 통제 시스템은 이처럼 더 견고해졌고 그 실체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아졌다.

'일밤'의 기대주, '뜨거운 형제들'의 가능성

'일밤'이 새 카드로 꺼내든 '뜨거운 형제들'은 독특하다. 일단 그 제목이 특정한 아이템을 지칭하지 않고 포괄적이라는 점에서 기존 '일밤'의 코너들과는 차이가 있다. 사실 '단비'나 '우리 아버지' 같은 코너는 제목이 한정적이다. 따라서 그 코너가 다루는 이야기의 소재는 제목에 국한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뜨거운 형제들'은 다르다. 이 제목은 코너의 이야기 소재를 한정짓는 것이 아니라, 거기 등장하는 인물에 집중한다. 따라서 나이 차가 많이 나는 형제들이 등장한다는 것만 정해져 있을 뿐, 그들이 어떤 소재로 어떤 미션을 할 것인지는 정해져 있지 않다. 이 차이는 '뜨거운 형제들'이 무수히 생겨났다 사라져버린 '일밤'의 여타 프로그램과는 달리 자유롭게 진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갖게 만든다.

처음 미션으로 시작하고 있는 '아바타 소개팅'도 지금껏 보지 못했던 새로운 시도라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겉으로 보기엔 가상현실이 일반화된 시대에 새롭게 버전업된 짝짓기 프로그램 같지만 그건 지극히 겉만 본 것에 불과하다. 누군가 소개팅에 나가는 아바타가 되고 누군가는 그 아바타를 조종하는 상황은 그 어느 짝짓기 프로그램에서도 볼 수 없었던 독특한 지점의 재미를 끌어낸다.

소개팅이라고 하면 자신의 진면목을 드러내고 그것을 상대방에게 어필해야 하는 것이 정상적이지만, 아바타 소개팅이라는 틀 속으로 들어가면 그 이야기가 달라진다. 아바타를 조종하는 이는 상대방과 직접 대면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그리고 아바타가 되는 이는 그것이 자신의 진심이 아니라 조종하는 자에 의한 것이라는 점에서 자기 행동에 대한 책임을 회피한다. 즉 부담이 그만큼 적어진다는 얘기다. 이것은 마치 일상적으로 가상에 접속하면서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정서와 맞닿는 부분이 있다. 재미는 있으면서도 부담은 적은.

그 속에서 박휘순은 시키는 대로 폭탄짓을 하고, 이기광은 잘 생긴 외모와는 다르게 망가지는 모습을 자유롭게 펼쳐 보인다. 사이먼D는 느끼한 목소리로 랩을 구사하고, 노유민은 아직도 자신이 전성기인 양 착각하며 민망하게도 옛 아이돌 때의 춤을 춘다. 그걸 시키는 형들, 탁재훈, 김구라, 박명수, 한상진은 아우들의 소개팅 자리를 통해 자신들의 속내를 감정이입시킨다. 이 과정에서 아우들인 아바타와 그걸 조종하는 형들 사이에 마음이 충돌한다. 세대 간의 차이는 이 직접적인 접속의 시간을 통해 자연스럽게 해소된다.

보통의 쇼들이 보여주는 자와 그걸 보는 자로 나뉘어져 감정이입되는 대신, 이 코너는 조정하는 자, 보여주는 자, 보는 자로 삼분되어 시청자들의 감정이입을 다채롭게 만든다. 우리는 나이든 탁재훈이 박휘순을 조종하는 그 마음 속에 들어갔다가, 그걸 행동으로 옮겨야 하는 박휘순의 입장으로 옮겨가고 또 그걸 바라보는 소개팅 상대방의 입장으로 시점이 이동된다. 이렇게 시점이 다양하게 이동하면서 그 재미 역시 다채로워진다. 즉 '아바타 소개팅'의 재미는 소개팅이 성공하느냐 못하느냐보다 그 여러 시점이 주는 재미가 더 크다.

하지만 이 '아바타 소개팅'은 '뜨거운 형제들'이 가진 진면목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이 코너는 이 '형제들'이라는 캐릭터와 부딪치지 않는 선에서 다양한 미션들이 모두 가능하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에는 '아바타'적인 성격, 즉 '형제가 서로를 분신처럼 도우면서 서로를 이해하고 알아간다'는 기본 전제가 필요하지만, 이 단서조항은 부담이 되기보다는 오히려 코너의 특징을 만들어낼 가능성이 크다.

무엇보다 '뜨거운 형제들'이 가능성을 갖는 것은 '일밤'이 부활을 주창하며 시도했던 이른바 '공익 버라이어티'의 과도함에 어떤 균형점을 만들어준다는 점이다. 공익적인 소재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예능의 본분은 웃음을 주는 것이다. 어쩌면 그 웃음이 예능의 가장 큰 공익이기 때문이다. '헌터스'는 프로그램화하기에는 너무 뜨거운 소재였고, '에코하우스'는 지나치게 교과서적이었다. '우리 아버지'는 코너 자체는 좋았지만 다채로운 스토리를 발굴해내기에는 한계가 있는 코너였다. '단비'는 그 취지나 시도 자체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 '일밤'의 좋은 예능 이미지를 만들고 있지만 역시 웃음에는 취약했다.

결국 '뜨거운 형제들'은 뜻은 좋지만 웃음은 약했던 '일밤'의 기대주가 되기에 충분한 프로그램이다. 예능답게 웃음에 집중하면서, 그 형식이 담은 다채로운 스토리를 통해 어느 순간에는 세대를 넘는 형제애를 담아내는 공익적인 가능성까지 충분히 갖고 있기 때문이다. '뜨거운 형제들'이 얼마나 뜨거워질 지 아직까지 성급하게 뭐라 확언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코너의 뜨거움에, 추락했던 '일밤'의 회생 가능성이 달려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우리에게 개그맨이자 틴틴파이브의 멤버로 기억되어 있는 이동우. 그는 망막색소변성증이란 희귀병으로 이제 5%의 시력만이 남았다. 사랑하는 아내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다섯 살 박이 딸 지우의 얼굴도 잘 확인 안 되는 시력. 특히 어린 딸에게는 혹 상처가 될까봐 잘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들키지 않으려 애쓴다. 혹 식탁에 부딪치거나 할 때면 짐짓 웃기려 그랬다는 듯, 딸 앞에서 개그맨 행세를 하는 그. 다시 돌아온 '휴먼다큐 사랑-내게 남은 5%' 편은 점점 시력을 잃어 이제 5%의 시력만이 남은 개그맨 이동우와 그 가족의 남다른 사랑을 전했다.

어찌 잃은 게 시력뿐일까. 한 때는 잘 나가던 톱스타였던 그는 "눈이 안보이자 점점 자신도 사라져갔다"고 말한다. 하지만 출연료에 급급해하고 개편 시기를 두려워하는 생계형 연예인으로 6,7년간으로 살아오면서도 그를 늘 일으켜 세운 건 가족이었다. 연예인의 아내로서 결혼했으나 달콤한 신혼도 잠시, 장애인의 아내로서의 삶을 받아들여야 했던 아내 김은숙씨. 모든 걸 포기하고 헤어지려했던 마음을 다잡아준 것도 그녀였다. 두피관리사로 늦게까지 일하며 가정의 생계를 꾸리면서 늘 옆에서 묵묵히 바라봐주는 그녀가 있었기에, 그는 점점 암흑처럼 어두워져가는 세상으로 당당하게 걸어갈 수 있었을 것이다.

이제 겨우 다섯 살인 지우의 환한 웃음. 그를 일으켜 세우고 살아가는 이유를 주는 것으로 그것만큼 큰 것은 없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한참동안 보이지 않지만, 그래서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못내 두려운 그지만, 그렇게 두려운 시간을 지나고 나면 거기 있을 지우의 환한 웃음은 아마도 그에게는 어떤 희망이었을 것이다.

종양수술을 하면서 한쪽 청각을 잃은 아내는 그 두려운 내색 한 번 없이 오히려 그를 걱정한다. 어느 날 집에서 발견한 하모니카를 보고, 정말 시력을 다 잃고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되면 길거리라도 나가려는 남편의 마음을 발견하고는 몹시 화를 냈던 그녀. 가족의 생계를 위해 하루를 보내지만 "눈이 안 보이는 스트레스보다 돈을 못 버는 스트레스가 더 심할 것"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그녀다. 그래서 다시 틴틴파이브로 모여 음반을 내고 화려하진 않아도 세상으로 걸어 나가는 그에게 가장 크게 박수를 쳐주는 이 역시 그녀다.

이제 그는 편의점에서 콜라 하나 찾는 것도 버겁고, 딸 지우에게 동화책 읽어주는 것도 어렵다. 봄날 환하게 피어있는 아름다운 벚꽃도, 지우에게 선물한 예쁜 드레스도 잘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다시 무대에 올라 노래를 부르는 그의 모습을, 잘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저 거기 서 있기 때문에 뿌듯해 하며 "훌륭했다"고 말하는 아내와, "노래 끝나면 뛰어가 아빠 안아줄 거예요"하고 말하는 딸 지우가 바라보고 있고, 그들이 지금 그의 모습을 두고두고 기억해줄 것을 알기 때문에 그는 앞으로도 계속 무대 위의 이동우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이제 평화방송 DJ로 또 뮤지컬 준비로 바쁜 그. 그는 5%의 시력을 잃었지만 가족이 전하는 95%의 사랑을 얻었다.

'무한도전'은 TV를 어떻게 바꿔놓았나

'웃으면 복이 와요'가 무대와 세트에 세워진 카메라가 포착하던 정통 코미디 시대를 상징한다면, '무한도전'은 일상 속으로 들어온 카메라가 잡아내는 리얼 버라이어티쇼라는 새로운 시대를 상징한다 할 것이다. 따라서 2005년 3월 부활을 꿈꾸며 새롭게 편제되었다가 6개 월여만에 조용히 사라져간 '웃으면 복이 와요'와, 그 즈음인 2005년 4월에 불쑥 등장한 '무모한 도전'이란 외계인의 등장은 이 변화해가는 시대를 징후적으로 보여준 사건이라고 말할 수 있다.

사실 포크레인과 인간의 삽이 대결을 벌이고, 정준하가 '뜨거운 가락국수 빨리 먹기'로 달인의 경지에 오르는 이런 형식 자체가 완전히 새로운 것은 아니다. 이것은 일찍이 정보를 얻기 위해 각종 실험을 감행하는 다큐멘터리에서 시도되던 것들이다. 이른바 리얼리티쇼라는 형식은 사실상 다큐멘터리의 산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 다큐적인 아이템이 '도전'이라는 주제를 갖고 예능 프로그램으로 시도됐다는 것이다.

'무한도전'이 '무모한 도전'과 '무리한 도전'을 거쳐 성장하며 리얼 버라이어티쇼라는 우리 식의 독특한 형식을 만들어가는 그 사이에, 많은 것들이 변화했다. 그 중 가장 주목할 것은 카메라가 외출(?)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과거 ENG카메라로 상징되던 방송카메라가 점점 소형화되고 고화질화되는 진화의 산물이기도 하지만, 그 기술의 발달만으로 어떤 문화가 창출되는 것은 아니다. '무한도전'은 그 변화해가는 영상기술이 문화로 나아갈 수 있는 콘텐츠를 제공했다. 그것도 웃음이라는 강력한 파괴력을 장전시킨 채.

무대만 바라보던 예능의 카메라들은 점점 무대 바깥으로 나오기 시작했고, 아예 전국을 떠돌거나 오지를 찾아다니는 '1박2일'이나 '패밀리가 떴다' 같은 프로그램도 만들어졌다. 카메라가 바깥으로 나오자 프로그램의 스토리텔링은 근본적으로 바뀌었다. 무대 안에서 대본을 축으로 주거니 받거니 합을 이루던 예능의 스토리텔링은, 이 야외라는 돌발사건의 지뢰밭에서 대본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무대 위에서 만들어지던 예능의 스토리텔링은 이제 현장에서 발견되었다.

'무한도전'의 카메라가 일상 속으로 들어오고, 한쪽 방향이 아닌 어느 방향이든 비추기 시작하면서 대중들은 이제 카메라 뒤편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은 리얼리티TV의 신호탄이었다. TV의 한쪽에 세트로 세워진 말끔한 면은 이제 그 초라한 진면목을 드러냈다. 세트는 가상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면 별 의미 없는 것이 되어버렸다. 늘 카메라 바깥에서 카메라 안의 스토리를 조정하던 작가나 PD가 카메라 속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이제 TV 속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대중들은 막연한 상상이 아니라 실제 눈으로 확인하고 있다.

이 리얼리티TV는 형식과 장르 같은 프로그램의 겉면을 해체시키면서 그 경계를 지워내기 시작한다. 예능은 다큐와 만나고, 다큐는 예능의 형식을 끌어와 독특한 재미의 세계를 구축한다. 교양 프로그램은 리얼 버라이어티쇼가 허물어 놓은 형식들을 끌어다가 인포테인먼트의 세계를 만들어낸다. '무한도전'의 끝없는 형식 실험이 없었던들, '스폰지'나 '자체발광' 같은 정보의 재미를 추구하는 교양 프로그램이나, '괜찮아U' 같은 재미와 교양을 엮은 프로그램이 탄생할 수 있었을까.

이렇게 무대에서 일상으로, 가상에서 현실로 카메라가 빠져나오면서 가져온 가장 큰 변화는 프로그램이 프로그램 바깥에 실제로 변화를 만들어냈다는 점이다. '무한도전'은 점점 성장하면서 실제 현실을 바꿔나가는 도전을 시도해왔다. '최고는 아니지만 최선을 다한다'는 프로그램의 취지에 걸맞게 사회에 소외되어 있는 인물들을 조명하고 격려해주었다. 우리 음식을 알리기 위해 뉴욕까지 날아가기도 하고, 서민경제를 살린다는 취지로 박명수는 음식점을 '기습공격(?)'하기도 했다. 매년 만드는 달력의 수익금은 전액 불우이웃돕기에 사용해오고 있고, 벼농사 특집으로 수확한 쌀도 불우이웃돕기에 사용하는 등 그 높아진 위상만큼 사회적 책무도 잊지 않고 있다. 물론 이런 공익적인 활동보다 더 큰 공익은 아마도 '무한도전'이 200회 내내 끝없는 노력을 통해 시청자들에게 제공한 포복절도의 웃음일 것이지만.

작년에 했던 '무한도전TV' 특집 편에서 '무한도전'은 하루 종일 방영하는 거의 모든 형식의 프로그램의 패러디를 시도했다. 거기에는 뉴스에서부터 영화, 쇼, 교양 프로그램, 심지어 드라마까지 다양한 형식들이 '무한도전'식의 패러디로 바뀌어져 큰 웃음을 주었다. 물론 그것은 패러디였지만, 실제 '무한도전'이 TV프로그램에 준 변화는 패러디에 머물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나아가 '무한도전'이 TV 바깥세상에 미친 영향 또한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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