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감독 브랜드 시대

당신은 어떤 브랜드의 영화감독을 좋아하나요? 어쩌면 앞으로 영화를 골라보는데 이런 질문들이 기준이 될 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영화감독이 가진 브랜드 이미지가 영화의 성패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시대다. 올 한해 우리 영화의 성적표를 보면 작품성이나 상업성 이외에 영화감독의 이미지 또한 흥행에 관건이 되었던 징후들을 읽을 수 있다. 그렇다면 올해에는 어떤 브랜드 이미지를 가진 감독들이 어떤 영화를 들고나와 어떤 결과를 낳았을까.

휴머니스트, 이준익
올 한 해 가장 주목받은 감독은 이준익이다. 작년 말에 개봉한 ‘왕의 남자’가 1230만 명이란 대기록을 세우면서 브랜드 가치를 최대로 높인 이준익 감독. 그 정도면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갈 만 했다. 좀 쉬어가면서 대작을 준비할 만도 했던 이준익 감독은 올 9월 예상을 깨고 조금은 평범한 ‘라디오 스타’를 들고 돌아왔다. 1천만 관객 동원 감독의 작품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어깨에 힘을 쭉 뺀 이 작품은 1백만 관객을 동원하는데 그쳤다. 하지만 이준익의 휴머니스트 브랜드 이미지를 만드는데는 충분했다. 늘 소외되고 주목받지 못하는 마이너리티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담아내는 감독으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괴물, 봉준호
봉준호 감독은 대중성과 작품성 양쪽의 줄을 놓지 않는 감독. 그간 영화계와 관객 모두에게 주목받아온 감독이다. 전작 ‘살인의 추억’에서 대중적인 형사물을 바탕으로 시대적 비의를 담아내는 작품성을 보이며 그 가능성을 예감케 한 바 있다. 영화 ‘괴물’은 역시 그 연장선상에 서서, 괴수영화의 재미에 독특한 풍자의 세계를 그려 넣으면서 올 최다관객을 집어삼켰다. 봉준호는 장르의 변용을 통해 그로테스크하면서도 독특한 재미를 주는 감독으로 괴물의 이미지를 고스란히 갖고 있다. 

타짜, 최동훈
영화 ‘타짜’로 하반기 영화관을 달구었던 최동훈 감독은 스타일리스트다. 작가주의 감독이라기보다는 주어진 작품을 최대한 멋지게 만들어내는 장인이라 할 수 있다. 전작 ‘범죄의 재구성’이 스타일에 비해 내러티브가 떨어지던 단점을, ‘타짜’에서는 허영만의 원작이 커버해주면서 영화는 폭발력을 얻었다. 그 역시 봉준호 감독의 괴물 이미지처럼, 저 현란한 손 기술로 상대를 정신 없게 만드는 타짜를 닮았다.

마케터, 강우석
강우석 감독의 이미지는 마케터이다. 그의 작품의 성공 요인은 종종 영화 자체보다는 마케팅에서 찾아진다. ‘실미도’가 그렇고 ‘한반도’가 그렇다. 이 민족주의를 자극하는 소재들은 적당한 영화적 설정들로 포장되어 영화 시장에 나온다. 억지스런 느낌이 강하지만 어쩔 수 없이 보게되는 그런 영화들이다. 문제는 시간이 지나면 기억에서 사라진다는 것.

지능적인 파이터, 류승완
류승완은 이제 저 주먹과 발길질이 오가는 액션 영화에서 자신만의 무공을 완성해가고 있는 듯 하다. 누구나 그 이름을 떠올리면 액션을 떠올리는 감독이 된 것이다. ‘짝패’에서 보여준 그의 액션이 여타의 것들과 다른 점은 한국적이라는 것. 중국식의 뻥도 없고 일본식의 비장함도 없는 약간은 개싸움 같지만 리얼한 그것이 류승완표의 액션이다. 또한 그 액션이라는 재미의 결에 이제 차차 사회적 내러티브를 넣으려는 의도가 보이는 지능적인 파이터다.

빅 마우스, 김기덕
아마도 브랜드 이미지를 가장 잘못 구축한 감독이 김기덕일 것이다. 영화감독의 브랜드 이미지가 영화에 어떤 악영향을 미치는가를 생각하게 만드는 감독이다. 물론 자신을 그렇게 만든 것은 우리네 영화환경이라고 뒤집어 말하지만, 그것조차 관객들로부터 외면되는 감독이다. 그렇게 된 데에는 영화 전편에 흐르는 불쾌한 이미지들이 한 몫을 하고 있는 것 같다. 후기 작품에서는 그런 경향이 많이 줄고 전작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세련되어진 것이 사실이지만 그 강력하게 남은 이미지는 사라지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영화로가 아닌 말로 더 주목을 끄는 불행한 감독이 되었다.

천재적인 백수, 홍상수
홍상수 감독이 위치한 이미지는 천재와 백수 사이의 그 어떤 것이다. 그의 영화가 가진 이미지는 무언가 나른하고 일상적이며 지루하지만 그 속을 뚫어지게, 집요하게 쳐다보면 무언가를 발견해내는 그런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일상의 발견’이 가진 룸펜의 느낌이 관객들에게 그다지 어필하지 못하는 것 같다. ‘해변의 여인’ 역시 일상을 다루는 영화. 전작과 달리 홍상수식 유머로 대중성이 확보된 영화이기고 했다. 그러나 아직까지 대부분의 관객들은 홍상수 감독의 이미지가 부담스러운 모양이다.

박찬욱표, 박찬욱
박찬욱 감독이 새롭게 들고 나온 ‘싸이보그지만 괜찮아’는 이견이 많지만 대체적으로는 긍정적으로 보는 것 같다. 복수시리즈의 끝에 새로운 작품 ‘박쥐들기 전 간주곡 정도로 만들었다는 이 작품은 그러나 그 완성도에 있어서 박찬욱표라고 붙이기에 충분한 영화다. 애매모호한 화법과 낯선 영상을 만들어내는 그만의 스타일은 이제 그의 영화에 ‘박찬욱표’라는 이니셜을 붙이게 만든다.

더 많은 관객유발자들이 나오길
이밖에도 주목할만한 감독으로는 ‘비열한 거리’의 유하가 있다. 그는 시인이라는 출신성분에서도 드러나듯 톡톡한 내러티브의 맛을 잘 살려내는 감독이다. 올 들어 새롭게 주목받는 감독으로 ‘사생결단’의 최호, ‘구타유발자들’의 원신연이 있다. 최호 감독은 이소룡 영화를 떠올리게 하는 ‘사생결단’의 그 독특한 스타일이 눈에 띄는 감독이고, 원신연은 아직은 매니아적이지만 독특한 작품세계를 예감케 하는 감독이다.

스크린쿼터의 위기감 때문이었을까. 유달리 우리 영화가 많았고, 성공작도 많은 반면, 주목받지 못하고 사라진 작품들도 많았던 한 해였다. 자기만의 색깔을 가진 감독들이 많아진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 영화의 폭이 다양하고 넓어진다는 뜻도 된다. 그 많은 감독들의 브랜드 중에서 여러분들은 어떤 색깔의 감독을 선택할 것인가. 영화감독도 브랜드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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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사극들이 동시에 각 방송사에서 터져 나오다보니 묘한 일들도 벌어진다. 세 편의 고구려 사극 중, MBC 드라마 ‘주몽’이야 그 역사적 시기가 동떨어진 데다 방영요일도 달라 그다지 큰 영향은 없다. 하지만, 주말 저녁 시간대의 KBS ‘대조영’과 SBS ‘연개소문’은 다르다. 이 두 드라마는 역사적으로 겹치는 부분이 있는 데다 같은 요일, 비슷한 시간대에 방영되기 때문이다. 두 드라마가 영향을 주고받는 그 중심에는 바로 연개소문이란 인물이 있다.

‘연개소문’엔 없고, ‘대조영’엔 있는 것은?
이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고 있는 ‘연개소문’과 ‘대조영’은 초기 이야기 설정 부분에서 엉뚱한 인물들에 초점이 맞춰졌다. SBS 사극 ‘연개소문’은 청년기로 들어서면서 연개소문보다는 수양제쪽으로 무게중심이 이동했다. 한 회분에서 연개소문이 등장하는 시간은 고작해야 10분을 넘지 않는데, 훨씬 많은 시간이 수양제에게 할애되었다. 그것은 사극을 끌어가는 구심점으로 젊은 연개소문의 힘보다 수양제의 그것이 더 강력했기 때문이다. 최근의 상황을 보면 ‘연개소문’이란 제목이 무색할 지경이다.

반면 KBS 사극 ‘대조영’은 정통사극을 표방하며 대조영이란 인물이 차곡차곡 극의 힘을 쌓아가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중간에 대조영만큼 강력한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대중상, 양만춘, 연개소문이 그들이다. 그들 중 최근 최후를 맞이한 연개소문의 힘은 ‘대조영’이란 드라마를 이끌어 가는 구심점이 되었다. 실제 아버지인 대중상보다 연개소문이 더 대조영의 아버지 같이 그려지는 것은 그 힘을 어느 정도 주인공에게 분산해 가지려는 드라마의 의도일 것이다. 그것은 또한 ‘그의 최후로 인해 고구려가 무너진다’는 극 본연의 설정에도 부합하기 때문에 연개소문의 드라마 장악력은 당연히 요구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연개소문이란 역사적 인물은 SBS 사극 ‘연개소문’엔 없고 KBS 사극 ‘대조영’엔 있는 인물이 되었다. 이렇게 된 데에는 그 역할을 맡은 연기자들의 공력 또한 중요한 요인이 됐다. ‘연개소문’에서 수양제 역할을 맡은 김갑수는 광기 어린 황제의 모습을 그려내며 사극의 또 다른 재미인 ‘강한 적’의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한편 ‘대조영’에서 연개소문 역할을 맡은 김진태는 카리스마 연기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명확히 보여주고 인상적인 최후를 맞았다.

‘대조영’의 연개소문 사망 그 후
이렇게 해서 두 사극에서 동시에 존재하던 한 연개소문은 사라졌다. 그런데 ‘대조영’에서 죽은 연개소문의 유령이 SBS 사극 ‘연개소문’ 주변을 어슬렁거린다. 뒤늦게 생각해보면 그것은 ‘대조영’의 연개소문이 살아있을 때부터 그랬던 건 아니었을까. 만일 ‘대조영’ 없이 단독으로 ‘연개소문’이 방영되었더라면 어찌 되었을까. 연개소문이란 역사적 인물이 어디서도 각인되지 않는 상황에서 지금처럼 주인공 없는 '연개소문'이란 드라마를 시청자들이 얼마나 참을성을 갖고 봐줄 수 있었을까.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연개소문’에는 없는 연개소문이 같은 시간대 ‘대조영’에는 있었다. ‘대조영’을 통해 역사적 인물인 연개소문에 대한 강한 호기심을 유지할 수 있었고, 그것은 역할을 다하고 사망한 뒤에도 여전히 남았다. 그리고 이제 몇 회분이 지나면 사람들이 기대하는 유동근의 연개소문을 보게 될 터이니, 사실 이 연개소문 없는 ‘연개소문’의 시기를 메워준 것은 ‘대조영’의 공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대조영’의 카리스마들, ‘연개소문’에서 기대된다
비슷한 소재를 같은 시간대에 양 방송사에서 방영하는 것은 때론 혼동을 낳게 만들며 이것은 비판의 소지가 충분하다. ‘대조영’의 양만춘을 보다가 ‘연개소문’의 양만춘을 보면서 헷갈리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혼동에 의해 ‘연개소문’은 톡톡한 이점을 얻게 되었다. ‘대조영’에서 우리는 이미 대조영만이 아닌 양만춘, 대중상 같은 여러 장수들의 매력적인 카리스마를 목격했다. 그러니 지금 저 ‘연개소문’에서 나오는 젊은 양만춘에게 어찌 관심이 가지 않을까.

이것은 저 드라마 ‘주몽’의 시청자들이 RPG 게임처럼 한 단계씩 업그레이드되는 주몽에 매료되었던 것과 맥을 같이 한다. ‘대조영’에서 등장한 카리스마들이 하나의 예고편 역할을 해주었다면 우리는 ‘연개소문’에서 그들의 성장과정, 혹은 성장한 모습을 기대할 것이다. 반면 ‘대조영’은 이제 이 카리스마들을 떨구고 자신만의 외로운 길을 새로 개척해나가야 되는 불리한 상황이 됐다. 하지만 결과를 속단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연개소문’에 새롭게 생긴 이 기대감을 제대로 살리지 못한다면 오히려 그것은 더 깊은 실망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늘 새롭게 시작해야 하는 ‘대조영’은 오히려 홀가분하게 맘껏 이야기를 펼쳐나갈 수도 있지 않을까. 두 사극의 향방이 자못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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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한해도 주로 남자들이 울었다. ‘왕의 남자’의 이준기, 감우성이 그랬고, ‘라디오 스타’의 박중훈이 그랬다. ‘도마뱀’의 조승우’, ‘가을로’의 유지태, ‘그 해 여름’의 이병헌이 그랬으며 ‘비열한 거리’의 조인성,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의 강동원, ‘해바라기’의 김래원이 그랬다. 이제 멜로 드라마 속 눈물의 주체는 여성에서 남성으로 자리 잡아가는 중이다.

이러한 징후는 이미 예고되었던 일이다. 과거 여성 잔혹사적 관점의 내러티브를 갖고 주로 여성 관객의 눈물을 쏙 빼게 만들었던 신파는 이제 달라진 환경에서는 더 이상 카타르시스를 주지 못한다. 신파에 반발해 나왔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남성 중심적 권위주의로 늘 회귀했던 로맨틱 코미디(예를 들면 결혼이야기나 미스터 맘마 같은) 역시 마찬가지다. 이것은 멜로드라마의 주 소비계층인 여성 관객들의 사회적 위치와 의식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이로써 90년대 후반부터 등장한 ‘남성 주인공의 눈물(접속, 약속, 편지, 8월의 크리스마스 등등)’은 여전히 그 힘을 발휘하고 있다. 심지어 여성에서 남성으로 순치된 이 내러티브는 이제 과거적인 신파로 돌아간 듯한 느낌을 주는데, 그 신호탄은 ‘파이란’과 ‘너는 내 운명’일 것이다.

올해 누가 누가 더 잘 울었을까
먼저 ‘왕의 남자’. 제목에서부터 느껴지지만 이 영화는 남자들에 의해 그 눈물의 카타르시스가 만들어진다. 여성으로 등장하는 강성연(장녹수 역)이 있지만 영화 속에서 그녀는 그다지 비중 있게 다루어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이준기, 감우성, 정진영의 남성 삼각관계에 더 집중되어 있다. 이런 경향은 이준익 감독의 다음 작품이었던 ‘라디오 스타’에도 이어진다. 물론 여기서는 남성들의 우정을 그리고 있지만 여전히 두 남성의 드라마가 눈물의 진원지이다.

‘도마뱀’의 조승우는 20년 동안 제 자리에서 그녀(강혜정, 아리역)를 기다린다. 그녀를 붙잡으려는 순간, 그녀는 영원히 그를 떠난다. ‘가을로’의 유지태는 한 순간의 사고로 사랑하는 연인(김지수, 민주역)을 잃고 10년 째 그 고통 속에서 살아간다. 그는 10년 후 뜻하지 않은 여행 속에서 이미 떠나버린 연인의 사랑을 느끼며 눈물을 흘리게 된다. ‘그 해 여름’의 이병헌은 시대가 허락하지 않은 사랑을 가슴으로만 묻고 살아왔다. 그러던 어느 날 기적처럼 자작나무가지를 타고 날아온 그녀의 사랑에 그는 오열한다. 재미있는 건 이들 남성들이 모두 제 자리에서 떠난 여인을 기다리거나 그리워한다는 사실. 과거의 능동적 남성 - 수동적 여성의 틀은 이제 거꾸로 뒤집어졌다.

한편 남자들은 그 고단한 삶 속에서 눈물을 터뜨렸다. ‘비열한 거리’의 조인성은 영화 속에서 조폭으로 그려지지만 사실 평범한 샐러리맨의 모습을 그대로 닮았다. 그는 결국 샐러리맨이 소모되는 그 시스템 속에서 눈물의 최후를 맞이한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의 강동원은 가난 속에서 우발적인 살인을 저지르게 된다. 사는 게 지옥 같았던 그가 한 여인을 만나 살고 싶어졌을 때 그는 사회의 단죄를 받는다. ‘해바라기’의 김래원은 가족 하나 없이 자란 인물로 살인을 저지르고 감옥에 들어간다. 감옥에서 나와 드디어 자신도 가족을 갖게 되었을 때, 그것은 폭력으로 파괴되고 그는 울부짖는다.

여자들은 웃고, 남자들은 울다
멜로 드라마 속에서 남자들은 저들끼리 사랑하고 우정을 나누며, 떠나간 연인을 기다리고 그리워하거나, 고단한 현실 속에서 무너져 내렸다. 그들은 울었다. 반면 로맨틱 코미디 속에서 여자들은 달콤 살벌하게 남자를 괴롭히거나(달콤 살벌한 연인), 작업의 정석을 보여주거나(작업의 정석, 2005년 12월작), 로빈을 꼬신다(미스터 로빈 꼬시기). 이제 로맨틱 코미디는 여자들의 웃음을, 멜로 드라마는 남자들의 눈물을 먹고 자라나고 있다.

스크린 속 이야기지만 이것은 또한 현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IMF 이후부터 위축되기 시작한 우리네 남성들의 어깨와, 동시에 여성들의 사회진출이 활발해진 것은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를 대변한다. 재미있는 건 남자들이 울거나 여자들이 웃거나 그 주 관객층이 여성이라는 점이다. 여성들은 이제 구질구질하게 눈물 흘리는 여성들보다는 상큼 발랄한 여성을 원하며, 만일 눈물을 흘리는 여성들이라 하더라도 그 옆에 더 펑펑 울어주는 남성을 원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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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시리즈 3부작 이후, 박찬욱 감독이 들고 나온 영화,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박찬욱표 로맨틱 코미디’라는 상표가 붙은 이 영화에 대해 “괜찮다”, “괜찮지 않다”는 말들이 분분하다. 그 이유인즉슨 정지훈, 임수정 같은 이름만 들어도 기분좋은 상큼발랄한 연기자들이 캐스팅된 데다, 누가 봐도 이목을 잡아끄는 포스터와 제목, 게다가 로맨틱 코미디라는 장르의 적시 등으로 톡톡 튀는 영화의 이미지를 소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잘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박찬욱이라는 이름이 떡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지만 괜찮아
이 영화는 제목에서부터 드러나듯 ‘∼지만 괜찮아’라는 의미에 걸맞게 두 가지 어울리지 않는 이미지들을 뒤집어놓는다. 영군(임수정 분)은 스스로를 싸이보그라고 생각하지만 따뜻한 관심과 애정을 희구하는 인간이며, 그녀와 일순(정지훈 분)이 생활하는 신세계 정신병원은 우리가 관습적으로 생각하는 폐쇄적인 공간이 아니라 보다 재미있는 일이 벌어질 것 같은 환타지의 세계다. 그 곳에서 생활하는 싸이코들 역시 히치코크의 영화 ‘싸이코’에 나오는 그런 인물들이 아니고, 어린이의 세계 속에 살아가는 인물들이다. 영화의 시작부터 예사롭지 않은 복잡하고 낯선 영상들 역시 어떤 중압감으로 관객들을 억누르는 게 사실이지만 거기에 익숙해지다 보면 어느새 좀더 자유로운 상상을 가능하게 해준다.








박찬욱표 복수는 어떻게 변용되었나
그렇다면 박찬욱표라면 빠질 수 없는 복수의 내러티브는 어떨까. 아무리 로맨틱 코미디라고 우겨도 그 모티브는 바뀌지 않는 법. 타란티노식의 사고방식에서 자주 보이는 인체와 무기의 만남은 영군의 손가락이 총구로 바뀌는 것으로 나타나며, 그녀가 흰옷 입은 사람(의사, 간호사)에 대해 갖는 복수심 역시 저 복수3부작과 궤를 같이 한다. 막연히 흰옷 입은 사람이라 나오지만 사실 그들은 소중한 사람(할머니)을 데려간 사람으로 어떤 공권력처럼 읽히며, 영군이 스스로를 싸이보그라 생각하며 단식을 하는 장면 역시 박찬욱 특유의 사회에 대한 풍자처럼 읽힌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이러한 복수를 생각하는 인물의 사고수준이 동화적 세계에 놓여있다는 것. 프로이트식의 해석을 굳이 늘어놓지 않더라도 영군은 어린이가 갖는 적개심과 분노, 복수심을 가진 존재이다. 그러니 복수를 해도 영화는 경쾌해진다. 도망치는 의사들을 쫓아 다니며 무차별 난사하는 장면들은 마치 즐거운 오락게임처럼 느껴진다. 게다가 이 위악적으로까지 보이는 영상들 속으로 영군과 일순의 박찬욱식 사랑이야기(사이보그의 사랑?)가 들어가면서 영화는 깜찍해진다.

박찬욱 감독은 정지훈과 임수정이 갖고 있는 본연의 이미지를 영화적으로 잘 활용했다. 저 드라마 ‘풀하우스’에 나왔던 정지훈의 이미지와 임수정 본연의 소녀 같은 이미지는 감독에 의해 창조적으로 파괴되었다. 이로써 무언가 차가우면서도 귀엽고, 섬뜩하면서도 앙징맞은 박찬욱 냄새가 물씬 나는 영군과 일순의 캐릭터로 만들어졌다. 결과적으로 보면 이 영화는 전적으로 두 연기자의 이미지가 없었다면 박찬욱 단독으로는 만들어내지 못했을 캐릭터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즉 박찬욱이지만 그의 로맨틱 코미디가 괜찮은 것은 이들 연기자들의 몫이 크다는 것이다.

하지만 순수한 사람들에게만 보인다는 거
이러한 이질적인 이미지들의 결합으로 탄생한 이 영화는 그래서 또한 위험성도 존재한다. 어차피 결합을 통한 탄생이란 성공했을 때는 독특하고 새로운 작품이 되지만, 성공하지 못했을 경우엔 이도 저도 아닌 것이 되기 때문이다. 과거 박찬욱의 이미지를 갖고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은 아마도 어떤 아쉬움 같은 걸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또 전혀 그런 이미지와 상관없이 ‘열린 마음으로’ 본 사람이라면 그 안에서 무언가 새로운 미덕을 발견해낼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박찬욱 감독은 인터뷰를 했다. 그 요지는 “논리를 들이대면 사랑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저 편안하게 아이들처럼 순수한 마음으로 영군과 일순이 하는 행동들과 말을 따라가다 보면 거기 사랑이 보일 거라는 말이다. 이로써 이 영화는 순수한 사람들에게만 보이는 영화가 되었다. 그게 안 보인다고 말하면 순수하지 않다는 걸 스스로 인정하는 셈이 되니 서둘러 말해야겠다. “사랑이 보여요!”라고. 그런데 그런 얘기하지 않아도 충분히 괜찮은 이 영화에 왜 그런 사족을 붙여놓았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기자들의 궁금증이 너무나 증폭되어 생긴 결과겠지만, 영화라는 게 꼭 감독의 의도대로 볼 필요는 없는 것 아닌가. 싸이보그지만, 박찬욱이지만 괜찮은지 아닌지는 관객들 각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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