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 속의 커플이 환상적인 커플이 되다

‘환상의 커플’은 웃음이 드라마에서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하는가를 보여주었다. 드라마의 완성도나 리얼리티 같은 걸 잠시 접어두고 우리는 드라마 내내 웃음을 터트리다가 어느새 종영을 맞았다. 어찌 보면 조금은 허탈할 수 있는 이 웃음폭탄은 그러나 마지막에 와서 1%의 눈물을 보여주면서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그 공감의 중심에 서 있는 것이 한예슬이라는 연기자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나상실 혹은 조안나라는 캐릭터이다.

환상적인 커플, 환상 속의 커플
드라마 종영의 시점에 와서 ‘환상의 커플’이란 드라마 제목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었다는 걸 알게된다. 그것은 만나기만 하면 서로를 못 잡아먹어 으르렁거리면서도 차츰 마음을 열게되는 나상실과 장철수(오지호 분), 이 안 어울리는 듯 잘 어울리는 커플을 ‘환상적인 커플’이라는 의미로 지칭하는 ‘환상의 커플’이다. 그런데 후반부로 가면서 이 ‘환상의 커플’은 현실이 아닌 ‘환상 속의 커플’이란 의미가 하나 더 덧붙여졌다.

조안나로 돌아온 나상실에게 빌리박은 말한다. “모든 걸 환상이라고 생각해.” 그러자 그녀는 이렇게 대꾸한다. “환상이라면 이렇게 아플 리가 없어.” 빌리박은 또 묻는다. “당신은 나상실이야? 조안나야?” 그러자 그녀가 말한다. “그 둘 다가 나야.” 이 일련의 대사들은 그녀 안에서 조안나와 나상실이 서로 공존하며 부딪치고 있다는 걸 말해준다. 그녀에게는 두 개의 현실이 있는 셈이고 빌리박은 조안나가 현실이며 나상실은 환상이라고 강변하는 것이다. 재미있는 건 이 두 인물의 공존이 웃음도 만들고 눈물도 만들었다는 점이다.

99%웃음의 주역, 조안나인 나상실
‘환상의 커플’이 그 특유의 톡톡 튀는 웃음을 시종일관 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나상실이라는 독특한 캐릭터에 있다. 어마어마한 부자에 싸가지녀였던 조안나가 기억상실과 함께 나상실이 되는 그 지점은 그 자체로 웃음의 진원지가 된다. 과거의 우아했던 영광은 사라지고 몸빼 바지에, 자장면, 막걸리를 먹으며, 소파에서 자야하는 처지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남아있는 조안나적인 도도함의 습성은 시청자들을 웃게 만들면서 묘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주었다.

자칫 동정의 대상이 될 수도 있었던 캐릭터가 도도함을 유지하면서 여전히 “꼬라지하고는”하고 툭툭 내뱉는 대사에 어찌 웃음이 터지지 않을 수 있을까. 그녀 자신의 꼬라지 역시 그다지 우아하지 않은 상황에서 말이다. 드라마의 만화적인 과장된 연출과 패러디, 그리고 교차편집은 이런 나상실의 캐릭터를 극대화시켜주었다. 막걸리에 취해 춤을 추는 장면과 연회 장면의 교차편집이 대표적인 예다. 그러면서 점점 서민들의 생활에 익숙해져가는 나상실에게서 우리는 이 도도녀의 내면 속에 숨겨진 따뜻한 정을 발견하게 된다. 처음 나상실이라는 이름과 캐릭터는 장철수에 의해 지어진 환상이었으나 점차 그녀는 자신 속에 숨겨진 나상실을 찾아내게 된 것이다.

1%눈물의 주역, 나상실인 조안나
그런데 점점 그녀가 나상실이 되면서부터 1%의 눈물이 시작된다. 나상실이란 이름을 지어준 장철수에게 그녀가 마음을 열게 되자, 문제는 복잡해진다. 사실 나상실은 환상이고 조안나라는 현실의 인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 점점 다가오기 때문이다. 조안나로 돌아온 그녀는 그렇지만 과거의 조안나가 아니다. 그녀 속에 또 한 명의 인물, 나상실이 분명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안나로 돌아오고 나서도 그녀는 여전히 막걸리를 찾고 소파에서 잠이 들며 나상실이란 캐릭터의 언저리를 배회한다.

우연히 버스정류장에서 장철수를 만나게 된 나상실이 자신의 진짜 이름을 밝히려 하자 장철수가 듣지 않으려 하는 것은 그가 그녀를 영원히 나상실로 기억하고 싶기 때문이다. 장철수는 내민 그녀의 손을 잡지 않고 떠나며 “그 손을 잡으면 다시는 놓지 못할 것 같다”고 말하고, 그런 장철수를 뒤에서 꼭 껴안은 그녀는 “내 이름은 조안나”라고 말한다. 그 장면에서 뚝 떨어지는 장철수와 조안나의 눈물에 시청자들 역시 똑같은 공감을 가졌을 것이다. 그 이름은 장철수와의 이별을 암시하기 때문이다.

뒤집어진 환상으로 공감을 만들어낸 ‘환상의 커플’
우리는 누구나 현실에서 벗어나 무언가 다른 사람이 되고 싶은 환상을 꿈꾼다. 그것은 대체로 ‘신데렐라 콤플렉스’같은 형태의 환상이다.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없고, 지위도 상승되는 그런 변신 말이다. 하지만 이 ‘환상의 커플’은 그 환상의 방향을 거꾸로 뒤집어 놓는다. 완벽하고 뭐하나 부족한 게 없는 인물 조안나가, 온통 부족한 것 투성이의 꼬라지인 나상실로 변하는 것이다.

상향되는 변신이 어떤 로맨틱한 행복감을 예감케 하는 반면, 추락된 변신은 무언가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드라마는 정반대의 유쾌한 캐릭터를 창출했다는 데서 큰 의미가 있다. 코믹으로 드라마를 전개했다는 것, 만화적인 설정들을 잘 활용했다는 점은 자칫 복잡해질 수 있는 이 나상실-조안나 캐릭터에 단순한 힘을 부여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런 하향적 변신에서도 유쾌한 캐릭터가 가능했던 것은 사실 조안나가 겉으로 보기엔 완벽해도 속으로는 부족함 투성이었다는 것이며, 그 부족함을 역시 부족해 보이기만 한 장철수와 그 주변사람들이 채워주었다는데 있다.

환상 속의 커플이 환상적인 커플이 되다
그 주변사람들 중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은 강자이다. 대부분의 드라마나 영화에서 바보들이 늘 결정적인 역할을 해주었던 것처럼 그녀 역시 무거울 수 있는 나상실 주변을 맴돌며 그 무게를 가볍게 해주었다. 나상실로서 “사랑할 수도 없고” 조안나로서 “사랑 받을 수도 없어” 옴짝달싹할 수 없는 ‘얼음’ 상태를 ‘땡’해주는 인물이 강자이다. 강자의 ‘땡’은 남해에 눈이 오는 기적(?)을 만들고, 떠나려는 조안나를 붙잡으며, 그녀 앞에 장철수를 데려다놓는다. 장철수는 이제 그녀를 조안나로도 나상실로도 받아들인다.

그녀가 조안나든 나상실이든 그 행복했고 행복한 만큼 아프기도 했던 것들은 모두 그녀에게 현실이다. 드라마를 보며 현실 속에서 환상을 꿈꾸고 다시 현실로 돌아오는 우리의 마음 속에서 일어난 행복감과 아픔이 모두 현실인 것처럼 말이다. ‘환상 속의 커플’이 ‘환상적인 커플’이 되는 이 어쩔 수 없는 유쾌함 앞에서 잠시 현실을 잊고 환상에 젖는 것은 인지상정이 아닐까.

728x90
반응형

퓨전사극 속 사제간의 인생은 반복된다

최고의 시청률을 자랑하는 퓨전사극, ‘황진이’와 ‘주몽’에서는 사제간의 반복되는 인생유전이 독특한 재미를 부여한다. 그것은 주인공에게 카리스마를 부여하고, 극의 대결구도를 만들어주며, 주인공이 성취해야할 일에 대한 목적의식을 부여하기도 한다.

황진이-백무 vs 부용-매향 : 모차르트와 살리에르의 관계
부용(왕빛나 분)은 황진이에 대해 칭찬을 하는 스승 매향(김보연 분)이 밉기만 하다. 그런 부용에게 매향은 말한다. “그렇게 명월이가 이기고 싶으냐? 내가 그 맘을 잘 안다. 천재는 늘 노력하는 준재를 가슴아프게 만드는 법이지.” 이 말에는 두 가지 의미가 들어있다. 그것은 ‘황진이는 천재며 부용은 준재’라는 것과 ‘그런 마음을 매향은 잘 안다’는 것. 매향 역시 저 백무에게 같은 감정을 가졌었다는 말이다.

백무-황진이와 매향-부용의 사제관계는 천재와 준재라는 개념으로 반복된다. 이것은 마치 저 모차르트와 살리에르의 관계를 보는 것만 같다. 매향은 스승이 백무를 총애했다고 생각하면서 살리에르가 모차르트에게 가졌던 질투심과 증오심을 키우며 그것은 바로 부용에게도 이어진다. 재미있는 건 황진이가 백무에게 복수하려 매향의 수제자로 들어오면서다.

황진이를 통해 매향은 자신의 질투심이 잘못된 것임을 깨닫게 된다. 스승은 편애를 했던 것이 아니라 자신들에게 어울리는 춤을 전수해주었던 것을 알게된 것이다. 그것을 알게 되자 매향은 부용의 질투심에 동병상련의 측은지심을 가지면서도 또한 그것이 부질없다는 걸 알게된다. 백무가 황진이를 매향에게 선뜻 보낸 것은 황진이에게 춤을 새로 추게 하려던 뜻도 있지만, 매향에게 그 사실을 알리기 위한 뜻도 있었다는 말이다.

황진이-김정한 vs 백무-익환 : 사랑이 허락되지 않는 운명
황진이가 자신에게 가진 증오심을 이용해 춤을 추게 한다는 뜻이 있다 해도 어떻게 자신의 적이라 볼 수 있는 매향에게 백무는 선뜻 애제자를 보낼 수 있었을까. 그것은 황진이가 백무 자신의 분신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백무는 시종일관 자신과 동일한 상황(기녀라는 상황)에서 기예의 길을 가는 황진이가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에 대한 확신이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황진이와 백무의 인생유전은 또한 황진이-김정한 그리고 백무-익환의 관계 속에서도 반복된다.

장악원의 부제조 영감 익환(현석 분)이 황진이를 시켜, 떠나려는 예판 김정한(김재원 분)을 잡으라고 한 사실을 알게된 백무(김영애 분)는 익환을 나무란다. 그러다 또다시 마음의 병을 앓을까 걱정되는 마음 때문이다. 그러자 익환이 백무에게 말한다. “명월이는 자네를 여러모로 닮았어. 내가 자네보고 기예의 길을 버리고 오라면 자네가 왔겠나?” 이 말에도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황진이 역시 백무처럼 기예의 길을 버리지 못할 것’이라는 점과 ‘익환 역시 정한처럼 백무를 사모했으나 그녀가 거절했다는 것’이다.

주몽과 해모수 vs 금와 : 동료와 경쟁자의 관계
드라마 ‘주몽’에서도 이러한 사제간의 인생유전이 드러나 보인다. 주몽의 스승은 다름 아닌 아버지 해모수. 해모수가 초기에 부여의 왕자, 금와와 다물군을 함께 이끌다, 후에 부득불의 함정으로 위기에 처하고 감금되는 상황은, 최근 주몽의 행적과 유사하다. 아버지의 유지를 받아들여 다물군을 이끈다는 점과, 아버지가 어머니와 떨어져 지낸 것처럼 자신도 예소야와 떨어져 지내는 점, 또한 가까웠던 금와와 적이 되어버리는 상황 등은 정확히 해모수와 주몽 그리고 금와 사이에서 벌어지는 반복이다.

이러한 반복이 되는 이유는 바로 과거부터 현재까지 계속 살아있는 금와의 존재 때문이다. 금와는 복합적인 성격의 캐릭터다. 명분상으로는 해모수와 함께 다물군을 이끌고 한나라를 치고 싶지만 부여가 처한 상황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는 겉으로 해모수 장군의 죽음을 애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저 여미을이 말한 대로 오히려 그것을 바라는 경쟁자로서의 마음도 갖고 있다. 해모수가 새로운 나라를 새우는 것은 부여에게 위험이 되기 때문이다. 그 역시 해모수에 대해 저 살리에르와 같은 질투심을 속으로 갖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고스란히 주몽에게도 연결된다. 사실 금와는 주몽을 보호하고 키웠다기보다는 그 잠재성을 부여라는 감옥 안에 가두고 있었던 셈이다. 주몽이 해모수를 따라 대업을 이루려고 나서자 상황이 반복되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전설적인 존재의 카리스마를 이어받다
이러한 퓨전 사극에서 사제간의 반복되는 인생유전이 보이는 것은 드라마 상의 주인공에게 강력한 카리스마를 부여하기 위한 장치이다. 철부지였던 ‘주몽’에게 카리스마를 부여하는 건 그의 아버지가 전설적인 존재인 해모수였다는 점이다. 그의 예사롭지 않은 탄생은 ‘지금은 저렇지만 앞으로는 대단한 일을 할 것’이란 기대감을 갖게 만든다. 또한 ‘황진이’라는 인물의 카리스마는 전설적인 무보, 학춤을 물려받은 백무가 그녀를 유일한 수제자로 지목하는데서 비롯된다. 황진이는 여기서 더 나아가 백무의 라이벌이었던 매향의 군무까지 이어받으면서 독무와 군무 양쪽의 재능을 인정받는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 주인공이 이어받는 건 재능만이 아니다. 그들의 경쟁자까지 똑같은 인생유전을 통해 주인공 앞에 나타난다. 1회전보다 2회전이 더 치열할 수밖에 없는 경쟁의 생리 상, 2회전을 치르는 주인공들의 대결구도는 강화될 수밖에 없다. 그 치열한 대결구도 속에서 그들은 또한 대업 혹은 운명을 이어받는다. 그렇기에 반복되면서도 그 반복 속에서 스승을 뛰어넘어 큰 일을 이루어내는 주인공의 길은 더 드라마틱하게 되기 마련이다.

728x90
반응형

무대를 탈피한 개그로 돌아온 웃음충전소

KBS에서 본격 코미디를 자처하며 새로 시작한 ‘웃음충전소’는 그간 개그의 대세로 자리잡은 공개무대개그의 시공간적 한계를 넘어서며 신선한 재미를 주. 무대개그의 장점은 즉석에서 관객들의 반응을 볼 수 있다는 것. 하지만 단점은 공간적 제약이 있어 연극적인 상황설정에 의한 개그가 주류가 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또한 정해진 시간 내에 개그를 해야 한다는 점 때문에 시간 흐름과 변화를 통한 개그에는 어려움이 있다. ‘웃음충전소’는 바로 그 어려움을 좀더 정교한 세트와 야외 촬영의 교차편집으로 넘어서면서 카메라가 자유로워진 지점에서 새로운 웃음을 유발한다.

화제를 모으고 있는 ‘타짱’은 긴박감 넘치는 영화 ‘타짜’의 분위기를 개그 속으로 끌어들인다. 화면은 긴박한 배경음악과 함께 마치 영화의 예고편 같은 카드판의 손동작들이 반복되다가 해설자로 나오는 김준호의 얼굴에서 멈춰 서며, 개그가 시작된다. 이러한 긴박감 넘치는 장면 후에 나오는 개그대전이 이 코너가 웃음을 주는 핵심요소이다. 대전은 자학적이라 할 만큼 자해적인 장면들을 보여주고 그걸 보고 ‘웃지 말라’는 대전의 법칙을 통해 웃음을 배가시킨다.

‘미스터 박’은 여러모로 ‘미스터 빈’을 떠올리게 하는 개그다. 무대를 벗어나 카메라는 미스터 박의 일상을 쫓아가며 벌어지는 해프닝을 담는다. 소시민적이고 약해 보이는 미스터 박이 좀더 강해 보이고 멋져 보이는 남자들과 경쟁하는 이 구도는, 미스터 빈이 같은 개그를 통해 사회의 위선들을 꼬집었던 바로 그것과 같다.

‘막무가내 중창단’은 세트와 야외 촬영을 절묘하게 교차시켜 웃음을 유발한다. 세트에서 노래를 하다가 그 중간 어느 소절에서 멈춰 서며 그 소절을 실제 행동으로 옮긴다는 설정이다. 일종의 행동개그라 볼 수 있는데 재미있는 건 그 행동이 무대라는 제한적 공간에 머물러 있지 않다는 점이다. ‘한낮의 찌는 더위는’을 행동으로 보이기 위해 진짜 찜질방에 들어가고, ‘벽에 걸린’을 연기하기 위해 실제로 담벼락에 몸을 건다. 심지어는 ‘늪에 빠진 거야’를 보여주기 위해 늪으로 들어가기도 한다. 그리고 다시 세트로 돌아온 그들의 망가진 몸은 또한 웃음을 유발한다.

‘지친다 지쳐’는 과거 유머일번지식의 세트 개그이다. 시골 풍경을 가끔 도입하지만 그것은 분위기를 나타내기 위한 도구이며 실제로는 세트에서 대부분의 개그가 이어진다. 약간은 모자란 듯 하면서도 정이 가는 촌사람들의 좌충우돌이 핵심이다.

여러모로 무대개그에서 가장 많이 탈피한 코너는 ‘정의의 따귀맨’이 될 것이다. 이 코너는 영상개그라 할만하다. 영화 ‘바람의 파이터’와 슈퍼맨과 같은 히어로, 액션이 엮어져 한 편의 개그가 완성된다. 화면연출의 즐거움을 또한 갖고 있는 이 개그는 다큐적인 요소까지 끌어들인다. 시장에서 일하는 아주머니를 괴롭히는 장면에서는 시사다큐프로그램의 모자이크처리와 흔들리는 카메라, 장중한 나레이션이 동원된다. 따귀맨이 나타나 악당들을 쫓아가는 장면에서는 들고 뛰어가며 찍는 카메라가 선보인다. 그리고 절정은 따귀맨이 악당들을 따귀로 물리치며 마치 매트릭스처럼 정지된 화면에서 흘러나오는 장중한 나레이션 장면이다. 이 개그는 전체적으로 진지함을 고수하는 영상에 단지 우스꽝스런 따귀맨이라는 캐릭터가 만나면서 놀라운 웃음의 폭발력을 보여준다.

‘대안제국’은 마치 ‘개그콘서트’에서의 ‘봉숭아학당’과 같은 분위기를 자아낸다. 차이라면 대신 세트라는 점이며, 과거라면 개그맨으로서 가장 중심으로 놓여야할 왕의 자리에 이계인이라는 연기자가 앉아 있다는 것이다. 이 이계인이라는 인물의 개그 프로그램 등장은 여러모로 의미가 있다. 그것은 개그가 무대 위에서의 순간적이고 단발적인 웃음보다 어떤 개그맨의 캐릭터 형성을 통한 웃음이 가능하다는 점을 시사하기 때문이다. ‘주몽’의 모팔모에서 얻어진 이계인의 캐릭터는 이 개그에서 왕이라는 자리에 앉혀지면서 자연스럽게 웃음을 유발한다. 또한 저 연예오락 프로그램에서 그 중심을 잡는 인물에 개그맨이 아닌 아나운서가 자리하는 것처럼, 탤런트 이계인이 주는 편안함이 개그에 대한 어떤 압박감을 줄여주는 효과가 있다.

전체적으로 보면 ‘웃음충전소’는 대사보다는 몸에 의지한 개그가 더 많다. 이것은 자학적인 개그라는 비판의 소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영상의 힘을 얻어서 더 강력해진다. ‘웃음충전소’는 좀더 자유로운 촬영을 통해 무대개그가 갖는 한계를 넘어서고 있다. 시간과 공간을 넘나드는 자유로움은 개그의 영역을 확장시킬 수 있는 좋은 무기이다. 또한 무엇보다도 ‘웃음충전소’의 미덕은 이제 저 칼바람 넘치는 무대개그에서 어느 정도 발굴된 캐릭터들을 온전히 지속시킬 수 있는 프로그램이 생겼다는 점이다. 이러한 정통 코미디 프로그램으로의 회귀는 현재적인 상황에 대한 해석을 통해서라면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728x90
반응형

김지수에서 배종옥과 박진희, 그리고 한효주까지

이윤기 감독의 카메라는 늘 여자와 그녀의 일상을 따라간다. 그것이 여자의 섬세한 감정을 포착해 켜켜이 쌓아놓는 것으로 영화적인 성취를 이루어내는 감독의 능력 때문인지, 아니면 감독이 다룬 영화의 이야기가 여자 주인공들의 감정변화를 따라갔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그렇게 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확실한 것은 이윤기 감독은 지금까지 찍은 영화 세 편에서 모두 여자 주인공들의 섬세한 감정선을 잘 잡아냈고, 그것이 성공적이었다는 점이다. 그 여자 주인공들의 계보는 ‘여자 정혜’의 김지수에서, ‘러브 토크’의 배종옥과 박진희로 이어져 이번 ‘아주 특별한 손님’에서 한효주로 이어진다.

그의 카메라에 잡히면 여성 캐릭터들은 전에 보지 못했던 혹은 숨겨져 있던 독특한 페르소나를 보여준다. ‘여자 정혜’에서 그전까지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김지수의 페르소나가 생겨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녀는 영화 속에서 ‘신비로운 식물’ 혹은 ‘깨질 듯 투명하고 아름다운 유리조각’ 같은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극중 여자 정혜가 그러했던 것처럼 그녀는 반짝거림과 동시에 외로움, 따뜻함을 숨겨놓은 차가움 같은 외면과 내면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긴장감 있는 연기를 보여주었다.

그것이 가능한 것은 이윤기의 카메라와 연출력 때문이다. 그의 카메라는 늘 주인공 옆에서 서성댄다. ‘여자 정혜’는 영화 전체를 핸드 핼드 카메라로 찍어 고정된 화면을 볼 수가 없다. 이 서성대는 시선이 관객들로 하여금 정혜라는 여자의 외면뿐만 아니라 내면까지 들여다보게 되는 계기를 만들어준다. 그 불안하지만 친근한 시선에 관객의 시선이 맞춰지는 순간이 생기는 것이다.

여기에 일상적인 소소함을 지루할 정도로 잡아내는 이윤기의 연출력은 영화 속 캐릭터인 여자 정혜의 내면은 물론이고 심지어 연기자 김지수 속에 존재하는 여자 정혜를 끄집어내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는 이윤기라는 감독이 연출한 ‘여자 정혜’라는 접신의 영화를 통해 김지수라는 연기자를 새롭게 만나게 되는 것이다.

해외영화제 수상과 국내 언론들의 호평 등, ‘여자 정혜’가 얻은 뜻밖의 성과는 이윤기 감독에게 어떤 변화를 요구했을까. 한 인물 주변에서 배회하던 카메라는 ‘러브 토크’로 와서는 굳건히 땅에 정착한다. 이것은 핸드 핼드 카메라가 갖는 단편영화 혹은 작가주의 영화적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대신 카메라는 장르영화처럼 더 세련되게 움직이며 인물들을 포착한다(특히 자동차의 움직임과 그 속의 인물을 포착하는 카메라는 발견이라고 할 정도로 세련되어 있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전작의 흐름을 그대로 타고 있는데 그것은 그 시선 속에 역시 배종옥과 박진희라는 여성 연기자들의 감정선을 태우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 영화는 이들과 이들 주변의 남자친구 혹은 연인들에 대한 ‘러브 토크’로 이루어져 있지만 감독은 이 두 여자의 심리와 감정의 부딪힘 같은 것에 카메라를 들이댄다. ‘여자 정혜’가 개인의 아픔과 상처를 좀 폐쇄적인 관점에서 다루었다면, ‘러브 토크’는 대화하는 두 여자를 통해 그 상처를 다루고 있다.

그리고 다시 이윤기 감독은 ‘아주 특별한 손님’에서 다시 예전의 서성이는 카메라로 돌아간다. 그 카메라 속으로 들어온 인물은 한효주다. 우리에게는 윤석호 PD의 ‘봄의 왈츠’라는 드라마 속에서의 박은영이란 인물로 익숙한 한효주는 이 영화를 통해 자신 속에 숨겨진 아픈 영혼과 접신한다. 한효주는 어느 날 우연히 비슷하게 생겼다는 이유만으로 하룻밤동안 죽어 가는 한 남자의 딸 역할을 하게 되는 한 여자, 보경을 연기한다. ‘여자 정혜’가 폐쇄적인 상황에 놓인 한 여자의 아픔을 그려냈다면 ‘아주 특별한 손님’의 보경은 그 아픔과 화해하는 과정을 그려낸다. 따라서 보경을 연기한 한효주의 페르소나는 좀더 적극적이고 솔직하다.

아쉽게도 이윤기 감독의 영화는 대중적으로 그다지 성공하지는 못했고 저예산 영화의 성공작 정도로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재미있는 것은 영화 속에 등장했던 여자 주인공들이 모두 성공적인 행보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자 정혜’로 데뷔한 김지수는 ‘가을로’에서 그 돋보이는 연기를 보여주었고, ‘러브 토크’에서의 박진희는 드라마 ‘돌아와요 순애씨’를 통해 섹시 발랄한 캐릭터로의 변신에 성공했다. 이번 영화의 여주인공을 맡은 한효주는 또한 어떤 모습으로 우리에게 나타날지 귀추가 주목된다.

인물 주변의 일상들을 섬세하게 잡아내는 것으로 그 인물의 감정을 통해 영화를 끌어가는 이윤기 감독의 영화는 전체적으로 화면의 움직임이 적고, 파격적인 이야기가 별로 없어 자칫 지루하게 느껴질 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기존 장르 영화적 관성에 싫증을 느끼는 관객이라면 이 영화는 독특한 여행을 제공해줄 지도 모른다. 새벽녘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차안에서 문득 자신의 아픔을 토로하며 눈물을 흘리는 이 여자의 마음에 알 수 없는 슬픔의 공감을 가질 지도 모른다. 거기서 우리는 한효주가 가진 감성의 속살을 살짝 엿볼 수도 있을 것이다.

728x90
반응형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