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사막 같은 시간에도 꽃을 피우고 정원을 만드는 건

 

“사막 같던 그 시절에 네가 나타나면서 나는 정원이 되었거든.” 살인자의 딸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전학 온 해원(박민영)의 학창시절은 사막이었다. 수군대는 목소리들과 냉소적인 시선들 속에서 시들어가던 사막 같던 그 시절에 갑자기 나타난 오영우(김영대)가 내민 손짓 하나는 그에게 단비가 되어주었다. 학교 최고의 킹카였던 오영우가 던진 작은 관심은 해원에 대한 다른 이들의 시선 또한 조금씩 걷어 내줬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총동창회 모임에서 다시 만난 오영우에게 해원은 선 긋는다. 그건 열여덟 살 때의 일이고, 고마운 일이지만 자신에게는 지금 은섭(서강준)이 있기 때문이다. 해원은 오영우를 만나 학창시절 그 사막 같은 시간을 바꿔준 존재가 있었다는 걸 새삼 알게 되었고, 지금 그런 존재가 바로 은섭이라는 걸 깨닫는다. 좋아하는 사람이 있느냐는 영우의 물음에 해원은 답한다.

 

“따뜻한 사람은 있어. 옆에 있으면 난로 위 주전자처럼 따뜻한. 사실 나는 내가 추운 줄도 몰랐었는데 집에 돌아와 보니까 알겠더라구. 내가 참 많이 추웠었구나.” JTBC 월화드라마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는 해원의 은섭에 대한 마음을 날씨와 온도에 비유해 전한다. 이것은 이 드라마가 평이할 수 있는 남녀 간의 멜로에서 좀 더 보편적인 사랑에 대한 이야기로 나갈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

 

카페를 나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 가만히 손전등을 들고 나와 해원의 앞길을 비춰주며 “어둡다”라고 한 마디 해주는 은섭의 행동은, 사사로운 남녀 간의 감정을 담아낸 것이면서 우리네 삶과 사랑에 대한 은유적 행동처럼 그려진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 홀로 걸어가는 것 같은 우리네 삶이 아닌가. 그런 외로운 길 위에 누군가 손전등을 비춰주고 함께 걸어가 주는 것 그것이 있어 우리는 살아갈 수 있다.

 

혹여나 울퉁불퉁한 시골길에 넘어질까 걱정되어 튼튼한 신발을 내주고는 별거 아니라는 듯 신고 다니라 말하고, 해원이 가는 길에 꺼진 가로등에 남몰래 전구를 갈아 끼워 불을 켜주고, 손에 새겨넣은 작은 나무 그림을 예쁘다고 해주고, 우울해하는 이를 위해 기분이 나아지는 일을 마련해주고, 하다못해 따뜻한 차 한 잔을 내놓는 일처럼 은섭이 해원에게 해온 행동들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따뜻한 온기를 전하는 것들이었다.

 

인적이 드문 시골, 그래서 더욱 춥게만 느껴지는 겨울이지만 그 곳에 옛 추억을 찾아 총동창회에 사람들이 모여들고, 깜깜한 어둠 속이어서 더더욱 빛나는 불빛들이 켜지는 그런 풍경들은 우리를 보는 것만으로도 따뜻하게 만들어준다. 그건 우리네 삶도 마찬가지다. 요즘처럼 봄이 왔어도 마음이 겨울일 수밖에 없는 시절에 우리를 사막이 아닌 정원으로 만드는 건 바로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온기일 테니 말이다.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는 여러모로 코로나19로 겨울을 버티고 있는 우리들의 마음을 촉촉하고 따뜻하게 해주는 드라마다. 차갑고 어두운 시간들일수록 그래서 주변을 둘러보고 손전등을 들고 나설 일이다. 우리가 봄을 기억하고 그 기억을 나눌 수 있을 때 봄은 어김없이 올 것이니. 우리 마음의 날씨가 좋아지면 언제든 반드시.(사진:JTBC)

‘개훌륭’, 어째서 더 공격적이고 대형견일수록 강형욱 존재감도 커질까

 

지금까지 이런 상황은 없었다. 매번 KBS 예능 <개는 훌륭하다>는 그렇게 말하고 있는 듯하다. 매회 등장하는 개들의 덩치는 커지고 상황은 갈수록 험악해진다. 이번에 소개된 맹견패밀리는 그래서 갈수록 세지는 이야기의 끝판왕처럼 소개되었다. 원수지간처럼 만나기만 하면 물고 뜯는 핏불테리아 블리와 로트와일러 쉐리의 이야기에, 공격적인 성향으로 사람을 물기까지 했던 코카시안 오브차카 머루의 이야기까지.

 

늘 ‘역대급’이라는 소개와 함께 점점 강해진 이야기 속에서 강형욱조차 이번 편에 자신이 이런 곳에 오게 될 지는 몰랐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들의 보이는 공격성은 자칫 촬영 도중에 큰 사고로까지 이어질 것 같은 불안함을 만들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럴수록 시청자들은 확실히 이 프로그램에 집중하고 있다는 걸 시청률이 말해줬다. 이번 맹견패밀리 중 머루에 대한 이야기로 <개는 훌륭하다>는 9%(닐슨 코리아)라는 최고 시청률을 찍었다.

 

사실 이 프로그램이 지난 11월 첫 방송을 시작하며 1.9% 시청률을 냈었다는 사실은 지금 생각해보면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단 4개월여 만에 10%에 근접하는 시청률을 내고 있으니 말이다. 이러한 시청률과 화제성의 중심은 역시 강형욱이었다. 그는 이 프로그램을 통해 반려동물 가족이 그토록 급증하고는 있지만 우리가 그들의 이야기를 제대로 듣지 못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려줬다. 반려견과 견주 사이에 소통의 다리를 놨다고나 할까.

 

실제로 문제 반려견으로 지목된 집을 찾아가보면 그 문제는 거의 대부분 견주로 인해 생긴 것이었다. 외부인에게 극도로 공격적인 개들이나, 주인까지 무는 개들이나, 아니면 그들끼리 집단적으로 한 개를 괴롭히는 개들 등등. 그 문제의 원인은 주인들의 잘못된 보살핌에서 비롯된 것들이었다. 강형욱은 이를 교정해주고 그래서 반려견과 견주 사이의 올바른 관계를 재정립해주는 역할을 했다.

 

이번 맹견패밀리의 사정도 다르지 않았다. 덩치가 거대한데다 외부인에 대한 공격성을 보여 접근조차 어려운 오브차카 머루가 그렇게 된 건 견주가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런 대형견들을 집도 아닌 외부공간에 두고 키우면서 생겨난 일이었다. 하루 종일 철창에 갇힌 상태로 주인만을 기다리는 개들은 하루 한두 번 들르는 주인에게 한없는 애정을 보였지만, 바로 그런 환경이 개들끼리 그리고 외부인에게는 극도의 공격성을 키우게 된 이유가 되었다.

 

강형욱조차 긴장하게 만든 머루는 안전을 위해 입에 채운 마스크마저 더 험악한 느낌을 자아냈다. 하지만 강형욱은 역시 베테랑 조련사답게 아주 조금씩 머루에게 다가갔고 계속 밀쳐대고 공격하려는 머루와 친해지는데 성공했다. 몇 시간 후 강형욱은 머루와 함께 산책하며 다른 출연자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데도 아무런 일이 벌어지지 않는 마법을 연출했다.

 

사실 마법처럼 보이지만 그건 이 개들의 덩치와 행동들을 우리가 오해한데서 비롯된 착시현상이었다. 강형욱의 설명처럼 오브차카나 핏불테리아, 로트와이어는 모두 주인을 위해 불구덩이에도 뛰어들 정도로 충성과 애정을 다하는 견종이었다. 다만 이들이 한 장소에서 같이 지내며 오매불망 견주를 기다려야 하는 환경 때문에 그런 공격성을 드러낸 것뿐이었다.

 

덩치가 커질수록 강형욱의 마법은 더 놀랍게 느껴지고, 그래서 그의 존재감도 점점 커지며 시청률도 따라 급상승한다. 하지만 그 마법의 실체는 알고 보면 우리가 그만큼 반려견을 잘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고, 그 외견과 행동에 대한 오해와 선입견도 더 컸다는 걸 말해준다. 이것은 <개는 훌륭하다>라는 프로그램과 강형욱의 반려견들과의 소통이 왜 가치를 갖는가를 잘 보여준다. 단지 센 이야기라서가 아니라, 세 보이지만 알고 보면 그것조차 우리의 선입견이고 오해라는 걸 드러내준다는 의미에서 그렇다.(사진:KBS)

주지훈과 전석호, '킹덤'을 보면 '하이에나'가 달리 보이는 두 배우

 

주지훈과 전석호는 언제부터 이런 찰진 콤비가 됐을까. 최근 방영되고 있는 SBS 금토드라마 <하이에나>에서 두 사람은 법무법인 송&김에서 각각 윤희재(주지훈)와 가기혁(전석호)이라는 역할을 연기하고 있다. 그런데 흥미로운 건 최근 넷플릭스에서 시즌2로 돌아온 <킹덤>에서도 두 사람은 이창(주지훈)과 동래부사 조범팔(전석호)로 콤비 연기를 보여준다는 점이다.

 

두 사람은 마치 돈키호테와 산초 같은 서로가 없어서는 안될 캐릭터로 등장한다. <하이에나>에서는 극을 이끌어가는 건 윤희재지만, 그의 친구이지만 어딘지 그가 잘 되는 것만을 바라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 가기혁의 역할도 눈에 띈다. 윤희재가 정금자(김혜수)와 일과 사랑 모두에 있어서 서로 으르렁대면서도 조금씩 가까워지는 관계의 진전을 통해 드라마의 힘을 만들어내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이 긴장감 넘치는 드라마 속에 가기혁과 심유미(황보라) 같은 감초들의 웃음과 두 사람 사이에도 벌어지는 엉뚱한 멜로는 깨알 같은 재미를 준다. 이런 사정은 <킹덤>에서도 마찬가지다. 조선에 창궐한 좀비떼들과 대결하며 숨 쉴 틈 없는 긴장을 유발하는 이창의 액션이 전면에 펼쳐진다면 그 속에서 숨 쉴 틈을 열어주며 웃음을 유발하는 조범팔의 활약은 이 드라마의 윤활유 역할을 톡톡히 해준다.

 

주지훈과 전석호는 각각의 필모그라피만 봐도 이제 연기의 전성시대를 맞이하고 있다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 주지훈의 경우 영화 <신과 함께>나 <암수살인>으로 그 연기 스펙트럼을 활짝 열어놓은 후 <킹덤>에 이은 <하이에나>로도 배우로서의 주가를 올리고 있다. 물론 주지훈은 과거 KBS드라마 <마왕>에서부터 잠재력을 보였지만, 최근의 연기를 보면 카리스마는 물론이고 적당히 유연해진 연기와 독한 악역까지 다채로워진 면모를 드러내고 있다.

 

전석호도 2014년 <미생>의 하대리 역할로 등장해 강렬한 존재감을 남긴 이후 <굿와이프>, <힘쎈여자 도봉순>, <우리가 만난 기적>, <라이프 온 마스> 등등 다양한 드라마에서 자기 영역을 넓혀왔다. 전석호의 연기 스펙트럼 역시 까칠한 악역에서부터 허술한 감초 역할까지 그 폭이 넓다. 이 짧은 기간 안에 자기만의 독보적 영역을 세울 수 있었다는 건 이 배우가 꽤 준비되어 있다는 걸 에둘러 말해준다.

 

결국 드라마든 영화든 주조연의 균형 잡힌 캐릭터가 보다 대중적인 완성도를 만들어낼 수 있다. 주인공이 만들어내는 긴장감이 극의 힘을 부여한다면, 이를 적절히 누그러뜨리는 조역이 있어야 관객이나 시청자들도 숨 쉴 여유가 생기기 때문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주지훈과 전석호의 <킹덤>과 <하이에나>에서의 콤비는 주목되는 면이 있다.

 

주인공 역할로 서온 주지훈의 배우로서의 성장은 두말할 나위 없지만, 특히 주목되는 건 전석호의 미친 존재감이다. 그는 적당히 웃음을 유발하면서도 때론 그걸 뒤집어 소름 돋는 반전까지 보여줄 수 있는 캐릭터를 주조해 보여주곤 하기 때문이다. 충무로와 드라마판에 정평이 나 있는 미친 존재감 연기자들의 계보를 잇기에 충분한 배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사진:SBS)

‘하이바이 마마’가 그리는 유족의 눈물, 떠난 자의 눈물

 

사람이 저 세상으로 떠나도 그 흔적은 여전히 남는다. 그래서 살아있었다면 함께 갔을 수 있는 여름캠프의 무정한 예약 알림이 더 허전하게 다가오고, 생일만 오면 여전히 남아있는 떠난 자의 SNS에 그리움의 마음을 꾹꾹 눌러 적는다. ‘내 친구, 내 마음의 언덕, 나의 차유리, 유리야... 유리야... 보고 싶어.’

 

그러면서도 살아가기 위해서 그 아픔을 애써 외면하려 한다. 괜스레 거울을 닦고 욕조를 청소하며 안하던 고스톱 게임을 한다. 주방 구석구석을 청소한다. 마치 기억을 지워내기라도 하겠다는 듯이. 하지만 그 슬픔은 지워지지 않는다. 아마도 tvN 토일드라마 <하이바이 마마>는 바로 이 부분에서 기획된 드라마일 게다. 그 슬픔을 조금이나마 위로해 보겠다는 것.

 

그 위로의 방식이 독특하다. <하이바이 마마>에는 겹쳐질 수 없는 두 세계가 겹쳐져 있다. 마치 애니메이션 <코코>에서 산자와 죽은 자들이 겹쳐져 있는 것처럼, 이 드라마에는 산 자들 주변을 떠나지 못하는 죽은 자들이 함께 등장한다. 그들이 떠나지 못하는 건 남은 이들에 대한 걱정과 회한 때문이다.

 

오래도록 회장님 운전기사로 일하다 죽게 된 한 아버지는 딸이 결혼하는 모습을 보기 위해 떠나지 못했다. 오랜 병환으로 사망한 한 어머니는 딸 또한 투병으로 고통스러워하는 모습 앞에서 죽어서도 발을 동동 굴린다. 차유리(김태희)도 마찬가지다. 그는 딸 서우(서우진)를 안아보지도 못한 채 사고로 사망했다. 졸지에 죽음을 맞이한 유리는 남은 가족과 친구들의 슬픔을 본다. 그 아픔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하지만 남은 자들은 떠난 자들을 잊지 못한다. 그래서 행복한 결혼식이 다가와도 평생을 힘겹게만 살다 간 아빠에 대한 그리움으로 슬픔이 더 커진다. 투병하는 딸은 통증에도 진통제 없이 잘도 버틴다. 그것은 자신의 욕심으로 어머니가 힘들게 버티다 돌아가신 것에 대한 스스로 내리는 벌 같다. 그는 통증이 올 때마다 엄마는 더 한 것도 버텼을 것이라며 버텨낸다. 유리가 떠나고 아무렇지 않은 듯 덤덤하려 애썼던 남편 강화(이규형)는 차 안에서 통곡하며 눈물을 흘린다. 유리의 엄마 은숙(김미경)은 남모르게 눈물을 훔치고 가족들에게는 내색하지 않으려 한다. 유리의 아빠 무풍(박수영)은 장례식장에서 한 밤 중 애끓는 슬픔에 통곡한다.

 

그런데 그냥 봐도 슬픈 이 장면들을 이 드라마에서는 떠난 자들이 지켜본다. 그건 마치 누군가의 숨겨진 내밀한 아픔을 뒤에서 우연히 듣게 될 때 느끼게 되는 슬픔이다. 아마도 산 자와 죽은 자가 공존하는 색다른 이 드라마만의 설정이 아니었다면 이런 장면은 마치 눈물 뽑아내려는 신파처럼 여겨졌을 수 있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눈물을 뽑아내려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산자의 눈물과 죽은 자의 눈물을 교차해 그 소통의 과정을 통해 남은 이들에게 위로를 주려는 것일 뿐.

 

결혼식을 앞두고 점점 슬퍼하는 딸을 보며 먼저 떠나간 아빠는 마음이 아파진다. 그래서 차유리에게 부탁해 딸에게 보내는 편지를 쓴다. 그 편지 속에서 아빠는 평소 하던 대로 “괜찮아, 괜찮아... 어쩔 수 없지 뭐.”라고 말한다. 자신의 삶이 고생스러웠지만 그 삶 속에서도 아빠는 열심히 살았다고 한다. 그러니 안쓰러운 아빠가 아닌 파이팅 넘치는 아빠로 기억해달라며, 딸이 해줬던 임플란트를 잘 지니고 떠난다고 말한다.

 

그 소통의 지점에 <하이바이 마마>가 굳이 산 자와 죽은 자를 공존시키는 판타지의 목적이 담겨진다. 외면하려 해도 아무렇지 않은 듯 버텨보려 해도 결코 극복할 수 없는 ‘이별’ 앞에서 우리는 누구나 무력할 수밖에 없다. 다만 떠난 자도 저 하늘에서 우리를 지켜보며 계실 거라는 믿음으로 위로하며 우리는 그저 살아갈 뿐이다.

 

<하이바미 마마>가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드라마가 된 건 유족의 눈물만이 아닌 떠난 자의 눈물까지 같이 보여주고 있어서다. 그 서로의 눈물이 연결해주는 소통의 지점을 판타지를 통해서나마 담아내고 있어서다. 그리고 그건 무력한 이별 앞에 서 있는 이들에게 자그마한 위로로 다가갈 것이다. 어쩌면 우리 모두가 경험할 수밖에 없는 이별에 대한 위로로.(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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