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두꽃' 윤시윤이 든 성냥, 그리고 조정석이 들 횃불

 

시작부터 뜨겁다. SBS 금토드라마 <녹두꽃>이 첫 회부터 활활 타올랐다. 탐관오리들에 의해 착취당하고 굶주리며 길바닥에 나뒹굴던 민초들은 그 손에 농기구 대신 횃불과 죽창을 들었다. 녹두장군 전봉준(최무성)이 이끄는 민초들은 조선의 봉건적 틀을 벗어나 ‘사람이 곧 하늘(인내천)’인 후천개벽의 세상의 기치 아래 모여들었다. <녹두꽃>에는 근대가 열리는 그 시점의 뜨거움이 시작부터 전개되었다.

 

사실 사극에서 혁명 같은 엄청난 사건이 벌어지기까지는 꽤 많은 전조를 깔기 마련이다. 굶주리고 피폐한 민초들의 삶이 조명되고 그와 반대로 호의호식에 주연을 일삼는 탐관오리 조병갑(장광) 같은 인물과, 그 권력에 덧대 백성을 수탈하는데 앞장서며 자신의 치부만을 위해 살아가는 백가(박혁권) 같은 아전의 이야기들이 그것이다.

 

하지만 <녹두꽃>은 이런 이야기의 서두를 길게 잡지 않았다. 첫 등장에 말을 타고 유학에서 돌아오는 백이현(윤시윤)이 길바닥에 주저앉아 굶어 죽어가는 민초에게 밥 한 덩이를 던져주는 장면만으로 그 많은 이야기들은 충분히 설명되고도 남았다. 그리고 “누군가에게는 지옥이 누군가에게는 극락”이라는 전봉준의 말 한 마디와 더불어, 저잣거리의 피폐된 민초들의 모습과 관아에서 주연에 빠져있는 조병갑과 호의호식하는 백가의 모습을 대비해 보여줬다.

 

이 양극단의 풍경은 탐관오리의 수탈이 민초들의 피폐한 삶의 원인이라는 걸 말해주는 것이고, 전봉준이 횃불을 들고 봉기하게 되는 이유를 그대로 설명해준다. 물 흐르듯 빠른 전개로 이어진 드라마는 그 안에 백이강(조정석)과 백이현이라는 배다른 형제의 상반된 캐릭터를 부각시켰다. 한 아버지인 백가로부터 나온 두 인물이지만 백이강은 노비의 소생으로서 백가를 대신해 갖은 악행을 저질러온 인물이다. 반면 백이현은 정실의 아들로 일본에 건너가 신문물을 배우고 돌아온 인물로 자신의 형인 백이강이 그런 삶을 살아온 것에 대해 미안함을 느끼는 인물.

 

백가라는 도저히 상종하기 어려운 아버지를 두고 있는 형제로서 둘 다 그 삶에 분노하고 있지만 두 사람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그 상황을 받아들인다. 백이강이 어머니를 위해 그저 자신을 학대하듯 민초들을 괴롭히며 백가의 앞잡이로 살아가는 반면, 백이현은 백가 앞에서는 웃지만 사실은 어떻게든 그로부터 벗어나 조선을 ‘개화된 세상’으로 바꾸고 싶어 한다. 결국 백이강 역시 그런 삶에서 벗어나 동학군의 별동대장이 될 거라는 점은 이 형제가 모두 저마다의 방식으로 아버지에 항거하는 삶을 선택한다는 걸 말해준다.

 

<녹두꽃>은 이처럼 백가라는 아버지 밑에서 이를 깨치고 나오려는 백이강과 백이현의 이야기로 당대 조선의 상황을 그대로 담아낸다. 왕을 어버이라 여기던 봉건사회. 그래서 그 어버이가 잘못된 길을 가도 받아들여야만 했던 그 사회로부터 벗어나, 잘못된 걸 바꾸고 평등한 세상을 꿈꾸며 근대를 열어가려던 동학혁명의 그 과정이 이 집안의 이야기로 그려져 있다.

 

흥미로운 건 백이현이 유학에서 가져온 성냥과 백이강이 눈앞에서 목도했고 앞으로 자신도 들게 될 그 횃불이 가진 상징성이다. 백이현은 불씨 하나를 꺼뜨려도 소박을 맞는 조선의 상황을 이야기하며 성냥 하나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개화’를 꿈꾼다. 반면 백이강과 동학농민들은 수탈에 당하고만 살아왔던 민초들이 이제 그 잘못된 세상을 뒤집고 새로운 세상을 열겠다는 ‘혁명’을 꿈꾼다.

 

지금껏 사극들이 무수히 많은 조선시대의 역사들을 가져왔지만 동학농민혁명을 소재로 가져오지 못했던 건 왜였을까. 그것은 사극이 과거의 역사를 그저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요구에 의해 재현되는 장르라는 걸 말해준다. 무수한 촛불을 경험하고, 그 힘들이 모여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가고 있는 현재가 동학농민혁명을 다시금 소환해 그 의미를 되묻고 있다는 것. 촛불 이전에 횃불이 있었다는 걸 <녹두꽃>은 성냥을 가져온 백이현과 횃불을 들게 되는 백이강을 통해 그려내려 하고 있다. 그 면면만으로도 가슴이 뜨거워지는 이유다.(사진:SBS)

‘유퀴즈’,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한 보통 사람 이야기들

 

봄비가 촉촉하게 내리는 어느 날, 용산으로 나선 tvN 예능 <유 퀴즈 온 더 블럭>. 그 곳에서 유재석과 조세호는 누굴 만나고 무엇을 이야기했을까. ‘라 비 앙 로즈(장밋빛 인생)’가 배경음악으로 깔리며 슬쩍 스케치해서 보여주는 이 날 이 곳에서 유재석과 조세호가 만난 사람들의 면면은 훈훈함 기대감을 갖게 만든다. 거기에는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치거나 지나쳤을 식당 아주머니도 있고 건강원 아주머니, 철도원, 방앗간 사장님 등의 모습들이 마치 주마등처럼 담겨 스쳐간다. 아마도 매일 출퇴근하며 마주쳤을 그 분들은 저마다 그 곳에서 자신들만의 ‘역사’를 쌓아가고 있었을 게다. 가까이 다가가 이야기를 나눠보면 어떤 드라마보다도 더 드라마틱한.

 

용산이라는 특유의 공간이 주는 느낌 때문일까. 용산에 있는 한글박물관에서 유재석과 조세호가 만난 정기훈씨부터 이 날의 만남에 대한 기대감은 예사롭지 않게 느껴진다. 역사전공자로서 이 곳에서 청년 멘토로 일한다는 정기훈씨는 “역사란 뭐라 생각하시냐”는 질문에 “역사는 한 공간 안에서의 시간의 축적”이라는 의미심장한 답을 남긴다. 그런데 그 답변은 마치 이 날 이 프로그램이 찾아간 용산의 오래된 골목길에서 만날 분들에 대한 복선 같았다. 한 공간에서 오랜 시간을 축적하며 살아오신 그 분들.

 

용산은 재건축이 이뤄지며 거대한 랜드마크가 들어섰지만, 그 뒤편에는 마치 시간을 뒤로 되돌린 듯한 개발이 되지 않은 옛 거리가 남아있다. 유재석과 조세호는 고층 건물들 아래 여전히 자리한 그 골목을 걸어 나간다. 랜드마크는 시간을 밀어내고 미래를 쌓아올렸지만, 그 골목에는 여전히 시간과 거기 축적된 역사들이 옛 모습 그대로 반가운 얼굴을 내민다.

 

오랜 세월을 함께하다보면 닮아가기 마련이라던가. 비 오는 날이라 손님이 뜸한 감자탕집 사장님 부부는 얼굴부터가 닮았다. 집안일에는 도움이 안되지만 집 바깥 일 봉사 같은 데는 도움이 되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아내 앞에서 반은 겸연쩍고 반은 미안한 남편은 시종일관 사람 좋은 웃음을 지어보였다. 웃으며 연중무휴 가게를 지키느라 해외여행 한 번 못 가봤다는 아내는 남편이 자신은 몇 번 갔었다는 말을 금시초문이라는 듯 들으면서도 연실 웃음을 지어 보이신다. 어차피 자신은 식당을 비울 수 없다며 웃는 그 모습에서 그간 이 분이 살아오신 삶의 무게 같은 게 느껴진다. 그런 아내가 못내 안 쓰러운지 퀴즈 대결에서 돈을 벌면 아내 여행자금으로 주겠다 말씀하시는 남편에게서는 잘 드러내지 않았을 아내 사랑이 느껴진다.

 

한쪽에 거대한 건물들이 지어지고 있어 개발이 되지 않는 곳은 그 그림자에 가려지고 있는 이 골목은 감자탕집 사장님 말씀대로 “장사를 안 하는 것처럼” 보인다. 사장님은 동네가 활성화되어 다 같이 잘 살았으면 좋겠다며 “더불어 사는 것”이라고 말했다. “개발이 좋은 것만은 아닌 것 같다”는 사장님은 “사람도 정서가 없어지고 옛날 그런 게 없어지니까 어딘가 한 군데는 예스러운 게 있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야기 배경으로 슬쩍 깔린 영상은 지금도 이런 곳이 남아있을까 싶을 철길과 건널목 풍경이다. 워낙 예스러운 거리라 드라마에서 자주 등장했던 용산 백빈 건널목의 광경. tvN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서 이선균과 아이유가 퇴근길에 건너다녔던 그 건널목이다. 지친 하루의 발걸음이 집으로 향하는 시간, 땡땡 소리를 내며 기차가 지날 동안 내려져 있는 건널목 차단기가 잠시 동안이나마 모두를 멈춰 세우며 쉬어가라 말하는 듯 했던 그 공간이다.

 

길을 가다 우연히 들르게 된 자전거 가게 사장님은 속도에 대해 이야기한다. 사장님은 자동차여행은 빠른 속도로 지나치는 게 많고 도보여행은 진행 속도가 너무 느려서 세계일주를 하려면 10년에서 15년이 걸릴 거라고 했다. 반면 자전거로 하면 3년이면 세계일주를 할 수 있다고 했다. “느리지만 그렇다고 아주 느리지도 않은” 그 자전거의 속도가 좋다고 했다. 그 이야기에서 문득 삶의 속도를 떠올려본다. 우리는 어떤 속도로 달려가고 있을까. “개발이 좋은 것만은 아닌 것 같다”는 감자탕집 사장님의 말씀이 다시금 들려오는 듯 하다.

 

슬쩍 보여줬던 백빈 건널목을 찾아온 두 사람은 드라마에 나왔던 장면을 떠올리며 그 ‘땡땡거리’라 불리는 곳에서 상근하시는 철도원 아저씨에게 인사한다. 2~3분마다 기차가 지나간다는 그 곳은 아마도 살기 그리 좋은 곳만은 아니었을 게다. 하지만 유재석이 말한 것처럼 이런 곳이 이제는 “점점 귀한 곳”이 되어간다. 맛난 닭갈비에 막국수 그리고 밥까지 볶아 든든히 배를 치운 유재석과 조세호는 다시 길을 나서고 그 곳에서 39년째 방앗간을 한다는 아저씨와 드라마 같은 그 삶을 듣는다.

 

10남매가 사는 시골집에서 농사짓는 게 힘들어 어린 나이에 무작정 집을 나와 상경했다는 아저씨는 어느 식당에 갔던 게 인연이 되어 50년 넘게 방앗간 일을 하게 됐다고 했다. 홀로 상경해 느꼈을 두려움이 얼마나 컸을까. 그 어린 소년을 식당 주인이 방앗간에 소개했고, 그곳에서 13년 동안 든든히 밥을 먹을 수 있는 게 행복해서 일을 배우게 됐다는 사장님은 그 후 독립해서는 부러울 게 하나도 없었다고 했다. 새벽 3시 반이면 나와 일을 한다는 사장님이 그 50년 넘게 부대끼며 살아왔을 방앗간에서의 삶이 드라마틱하게 느껴진다.

 

<유 퀴즈 온 더 블럭>은 어느 길거리라는 공간을 찾아가는 프로그램이지만, 거기서 만난 사람들은 자신들의 시간을 보여준다. 그 시간은 작아보여도 위대한 저마다의 역사들이다. 때론 공간들이 밀려나고 사라져도 그 사람들이 기억에 담고 있는 시간들은 여전히 남는다. 유재석과 조세호라는 유쾌한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예능 프로그램이지만 <유 퀴즈 온 더 블럭>에서 느껴지는 어떤 훈훈한 정서는 바로 그 곳에 사는 분들이 그 삶의 이야기로 전하는 온기 때문이다. 퀴즈가 전면에 세워져 있고 유재석과 조세호 같은 베테랑 예능인들이 나서고 있지만 진짜 주인공은 바로 그 분들이다. 그 보통 사람들의 위대한 삶의 역사만큼 생생하고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있을까.(사진:tvN)

‘해치’가 다루는 환란·변란, 어째 옛 이야기 같지 않은 이유

 

우리에게 재난은 이제 무수한 콘텐츠들의 단골소재가 됐다. 이를테면 봉준호 감독의 <괴물>은 한강에 출몰한 괴생명체의 습격을 다루는 것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재난에 대처하는 국가 시스템’에 대한 이야기이고, 이런 기조는 <감기>나 <연가시> 같은 작품에서도 계속 이어졌다. 심지어 <부산행>이나 넷플릭스 드라마 <킹덤> 같은 좀비 장르에서조차 우리는 ‘재난’의 그림자를 읽어낸다. 전국적인 재난이 벌어지고, 국민 혹은 백성들은 죽어나가는 상황에서 이를 대처하는 국가의 무능력은 보는 이들을 뒷목 잡게 만들곤 한다. 그리고 그 재난에 실제로 대처하는 이들은 무고한 국민 혹은 백성들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SBS 월화드라마 <해치>는 조선시대 영조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사극이지만, 역시 우리네 콘텐츠의 단골소재가 된 재난의 코드를 그대로 가져온다. 역사 속 실존인물인 이인좌의 난을 다루면서 그것을 ‘환란’과 ‘변란’으로 담아낸 부분이 그렇다. ‘환란’은 이인좌가 지방과 도성 곳곳의 우물에 독을 타 마치 역병이 번지고 있는 듯한 상황을 만들어내고, 도처에 이 모든 책임이 ‘자격 없는 왕’ 때문이라는 괘서를 뿌려 민심을 흔드는 이야기로 다뤄지고, 변란은 이인좌가 결국 청주성을 함락시키고 도성을 향해 진격하는 그 과정을 통해 다뤄진다.

 

여기서 중요한 관전 포인트는 이 환란과 변란에 대처하는 왕과 신하의 자세다. 영조(정일우)는 역병이 번지는 듯 보여 흔들리는 민심을 잡기 위해 스스로 도성 밖으로 나가 민심을 다독인다. 신하들조차 다가가길 꺼려하는 괴질 환자들을 직접 찾아와 위로하면서 반드시 이 역병을 다스릴 거라는 믿음을 갖게 만든다. 그리고 그것이 역병이 아니라 누군가 탄 독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우물을 폐쇄하고 처방을 내려 결국 환란을 잡는다.

 

이인좌가 결국 밀풍군(정문성)을 앞세워 군사를 일으키는 변란에 대해서 영조는 노론의 수장인 민진헌(이경영)과 소론의 수장인 조태구(손병호)와 함께 당략을 뛰어넘는 대처를 시도한다. 전장에 나가는 백성들 앞에 민진헌 또한 참담함을 느끼는 상황, 영조는 이런 지속된 피의 정치와 변란의 근본적인 문제가 당파에 있다는 걸 절감한다. 그리고 변란의 중요한 원인이 된 소외된 남인들을 되돌리기 위해 ‘탕평책’을 제안한다. 물론 민진헌은 권력은 나눌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며 이에 극렬히 반대하지만 그 역시 희망조차 없는 민초의 모습을 보며 마음이 흔들린다. 결국 탕평책은 이인좌의 근거가 되는 남인들을 붕괴시킬 수 있는 묘안이면서 동시에 오랜 파당정치에 종지부를 찍을 기회이기도 했던 것.

 

<해치>는 어째서 이인좌의 난이라는 역사적 소재를 가져와 환란과 변란에 대처하는 왕과 신하의 모습으로 그려내려 했을까. 그것은 여러모로 최근 우리네 국정과 정치의 현실을 그 사극의 틀로서 담아내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세월호 참사가 벌어졌을 때 대통령은 과연 무엇을 했던가. 그 참사가 벌어진 후 진상규명조차 제대로 되지 않고 심지어 지금까지도 입에 담기조차 힘든 발언을 하며 이를 정치적으로만 활용하려는 정치인들조차 있지 않았던가. <해치>가 영조와 신하들을 통해 다루는 환란과 변란에 대처하는 모습들은 그래서 지금의 우리네 정치 현실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결국 이들 왕이나 신하들은 막상 변란이 터져도 전쟁에 나가지는 않는다. 그 전쟁에 나가 무고한 죽음을 맞는 이들은 결국 백성이다. 국정과 정치가 권력을 두고 싸우고 있을 때, 심지어 그 싸움이 변란으로까지 번져갈 때, 그로 인해 죽어나가는 건 민초들이다. 과연 <해치>의 이 이야기가 그저 옛 이야기라고 말할 수 있을까. 최근 들어 그토록 많은 재난 콘텐츠가 비슷한 코드들로 등장하고 있는 건 그만한 이유가 있어서다.(사진:SBS)

'슈퍼밴드', 천재 참가자들만으로도 이미 협연이 기대되는 건

 

아마도 대부분의 시청자들은 이제 오디션 프로그램이 지겹고 식상하다 여길 것이다. 그래서 이미 <슈퍼스타K>나 <K팝스타> 같은 오디션 프로그램들은 더 이상 새로운 시즌이 만들어지지 않고 있다. 물론 <프로듀스101>이나 <쇼미더머니> 같은 Mnet형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힘을 발휘하고 있지만, 그것도 이제는 어느 정도 그 구성과 흐름을 짐작할 수 있을 만큼 정형화된 면이 있다는 걸 부정할 순 없다.

 

사실 이런 시기에 시청자들에게 ‘귀호강 오디션’의 새로운 세계를 연 것이 JTBC <팬텀싱어>다. 시즌2까지 나온 <팬텀싱어>는 지금껏 대중적인 조명을 받지 못했으나, 음악적으로는 그 깊이를 따라가기 어려운 성악, 뮤지컬 같은 장르들을 소개하고 이들이 중창단을 꾸려 이른바 ‘크로스오버’ 무대를 만들어내는 그 마법 같은 과정을 보여줬다. 상대적으로 대중적 조명을 받지 못했던 이들은, 이 오디션 무대에 올라 자신의 기량을 맘껏 보여주면서도, 프로그램의 정체성인 ‘하모니’에 집중함으로써 경쟁의 자극보다는 조화의 감동을 선사했다.

 

새롭게 금요일 밤에 포진한 JTBC <슈퍼밴드>는 그 <팬텀싱어>의 밴드 버전 같은 느낌을 주는 프로그램이다. 일단 제작진이 <팬텀싱어>를 만든 이들이고, 심사위원으로 앉은 윤종신이나 윤상은 <팬텀싱어>에서 성악에서부터 재즈, 팝, 뮤지컬까지 두루두루 갖춘 식견으로 이들을 어떻게 조합해내 더 아름다운 크로스오버 중창을 만들 것인가를 고민했던 이들이다. 물론 밴드 오디션에 맞춰 넬의 김종완이나 린킨파크를 프로듀싱한 조한이 참여했지만.

 

구성도 비슷하다. 여타의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개인전의 성격을 띠고 있어 일단 살아남아야 하는 ‘서바이벌’에 맞춰져 있는 반면, <팬텀싱어>나 <슈퍼밴드>는 모두 중창단과 밴드를 만드는 이른바 ‘단체전’의 성격을 띠고 있어 ‘팀 구성’에 더 맞춰져 있다. 그래서 이들은 놀라운 연주자가 등장해 퍼포먼스를 보이면 자신이 떨어질까봐 긴장하기 보다는 그 인물과 함께 음악을 하면 좋을 것 같다는 바람을 가지며 바라보게 된다. 이 점은 <슈퍼밴드>가 가진 여타의 오디션들과의 확연한 차별성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출연자들이다. 실력의 편차가 너무 많이 나거나 하게 되면 ‘팀 구성’은 우호적 분위기에서 자칫 ‘배제’의 분위기로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우려는 애초에 가질 필요가 없을 듯하다. 그간 이런 다양한 장르의 악기 연주자들과 보컬들을 위한 오디션이 없어서인지 <슈퍼밴드>에는 놀라운 기량과 실력을 가진 이들로 꽉꽉 채워져 있다.

 

첫 회에 기타 천재로 소개된 이강호와 김영소의 무대는 <슈퍼밴드>의 참가자들의 기량이 얼마나 놀라운가를 잘 보여줬다. 핑거스타일로 마치 마이클 헤지스의 기타 연주를 듣는 듯한 테크닉을 보여준 이강호가 그렇고, 훨씬 감성적인 기타 연주로 모두를 귀 기울이게 만든 김영소가 그렇다. 김영소는 연주 중간에 카포를 바꿔 전조하며 연주하는 모습을 보여줘 윤상을 놀라게 만들었다. 이들의 연주가 자작곡이라는 건 이들의 수준이 이미 스스로 음악을 만들어낼 수 있는 아티스트의 위치에 올라있다는 걸 말해주었다.

 

두드리는 것이라면 뭐든 연주해낼 것 같은 타악의 맛을 제대로 보여준 정솔의 무대나, 영화 <인터스텔라> OST 연주에 노래 실력까지 들려줘 모두를 집중시킨 독일에서 온 천재 피아니스트 이나우, 애드 시런의 ‘Shape of you’를 바이올린 연주로 편곡한 곡을 들려주고 랩실력까지 보여줘 심사위원들을 놀라게 한 벤지, 컴퓨터로 음원을 채집하고 믹싱해 심지어 조이스틱으로도 게임하듯 음악을 들려준 방구석 아티스트 디폴, 10대지만 놀라운 기량의 속주를 보여준 또 한 명의 천재 기타리스트 임형빈.... 한 명 한 명 다 거론하기 어려울 정도로 <슈퍼밴드>에는 천재들이 넘쳐난다.

 

무엇보다 이 프로그램이 흥미로운 건 다양한 악기들이 주는 매력을 천재 아티스트들을 통해 드러내주고 있다는 점이다. 이를 테면 유튜브에서 이미 완소 드러머로 이름난 강경윤을 통해 알게 되는 드럼의 맛이나, 백반증을 갖고 있어 눈썹까지 하얀 이종훈이 보여준 이보다 멋일 수 없는 베이스의 맛이 그렇다. 여기에 독특한 색깔을 가진 레트로 소울킹 김지범이나 자연을 느끼게 만드는 노래와 음색의 홍이삭, 목소리만으로도 빠져들게 만드는 기프트 같은 보컬들이 어우러지니 앞으로 이들이 꾸려낼 상상불가의 연주와 노래가 기대되지 않을 수 없다.

 

최근 <보헤미안 랩소디> 열풍 등을 통해 밴드에 대한 관심도 꽤 높아져 있는 상황에 <슈퍼밴드> 같은 음악 프로그램은 반갑고 그 기대 또한 높다. 오디션 프로그램은 이제 더 이상 나올 게 없다는 편견을 과감히 깨버릴 수 있었던 건 첫째, 악기 연주 같은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고 둘째, 이들의 경쟁이 아니라 조화를 보여줌으로써 오디션의 피로감을 힐링으로 바꿔주며 셋째, 어떤 무대가 나올지 전혀 예측할 수 없게 만듦으로써 기대감을 높여주었기 때문이다. 보는 내내 지친 귀가 정화되는 느낌을 주는 <슈퍼밴드>로 금요일 밤이 기다려진다.(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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