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틀 드러머 걸', 영화와 드라마의 경계 허문 박찬욱의 걸작

 

이제 드라마와 영화의 경계는 애매모호해졌다. 넷플릭스나 왓차플레이 같은 OTT(Over The Top)는 이런 경계를 정서적으로 먼저 허물어버린다. 같은 화면에 영화와 드라마가 나란히 소개되고 드라마라도 전편을 몰아서 보는 경험은 영화 관람이 갖는 ‘완결성’을 드라마도 똑같이 느끼게 해준다. 이제 영화도 세 시간이 넘을 정도로 길어지고 있고, 어떤 영화는 몇 편에 걸쳐 나뉘어 방영되기도 한다. 영화는 드라마처럼 서사가 길어지고, 드라마는 영화처럼 완결성을 가지려 한다. 물론 드라마라고 해서 서사가 느슨하거나 영상연출이 허술하던 시대 역시 지났다. 이러니 그 경계 구분은 이제 점점 희미해질 수밖에 없다.

 

박찬욱 감독의 드라마 <리틀 드러머 걸>은 이러한 변화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채널A에서 방영되고 있지만 6부작 <리틀 드러머 걸>은 왓차플레이에 이미 전편이 올라와 있다. 몰아보기를 원하는 시청자라면 언제든 가입 후 한 번에 이 드라마를 시청할 수 있다. 이 작품이 영화와 드라마의 경계를 지우고 있다는 건, 드라마라고는 하지만 한 편 한 편이 박찬욱 감독 특유의 영화적인 밀도와 미장센을 갖고 있고, 이야기도 일관된 흐름 안에서 마지막까지 완결되게 흘러가고 있어 긴 영화를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특히 <리틀 드러머 걸>이 흥미로운 건 스파이 장르면서도, 영화나 드라마 같은 작품 연출과 연기의 세계에 대한 탐구가 담겨 있는데다, 나아가 그것이 총체적으로 보여주는 우리네 삶에 대한 질문이 담겨져 있어서다. 그래서 이 작품은 그저 스파이 장르를 즐기며 봐도 충분히 재미있지만 한 번 더 인물들의 복잡 미묘한 심리들을 들여다보면서 보게 되면 또 다른 지적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스파이 소설의 대가 존 르 카레의 원작을 드라마화한 이 작품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으로 세계 곳곳에서 테러가 벌어지던 1979년 유럽을 배경으로 한다. 테러리스트들의 폭탄테러에 대응하기 위해 이스라엘 모사드 고위요원인 마틴 쿠르츠(마이클 섀넌)가 투입된다. 그런데 이 마틴은 이것이 전면전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며, 좀 더 ‘예술적인’ 섬세한 작전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테러조직 깊숙이 스파이를 투입시켜 그 핵심 조직원들을 제거하려는 계획을 세운다. 팔레스타인 테러리스트의 애인을 가장한 스파이를 조직에 들어가게 하는 것.

 

흥미로운 건 이렇게 투입될 스파이가 진짜 요원이 아니라 무명 배우 찰리(플로렌스 퓨)라는 점이다. 처음에는 작품의 연기 오디션을 본 줄 알았지만, 차츰 그것이 이 작전의 캐스팅 과정이었다는 걸 알게 되고 갈등하지만 차츰 배우로서의 본능이 발동하기 시작한다. 찰리가 역할에 몰입할 수 있도록 정예 요원인 가디 베커(알렉산더 스카스가드)가 테러리스트의 대역을 해주면서 찰리와 가디의 사이는 애매해진다. 스파이 역할을 해내기 위한 연기지만, 그 연기에 몰입할수록 찰리의 마음은 진짜로 가디를 향하게 된다.

 

즉 스파이 활동을 위해 하는 연기가 실제와 마찰음을 빚어내며 벌어지는 복잡미묘한 심리변화는 이 드라마를 흥미진진하게 만들고, 그것은 마치 작품 속에서 ‘연기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찾아가는 과정처럼 그려진다. 연기는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진짜 그 사람이 되는 것이고, 어느 순간 찰리는 위기의 순간에 테러리스트의 애인이 되어있는 자신을 끄집어낸다. 가디에게 마음이 끌리는 현실의 사랑과 연기 속에서 테러리스트의 애인으로서 경험하는 일들은 그래서 부딪침을 만든다.

 

재미있는 건 이 모든 작전을 설계한 마틴이 마치 영화감독처럼 행동하는 순간들이 보인다는 점이다. 그 역시 작전 속에서 영화감독을 연기하고 있는 듯한 장면들은, 연기의 가상과 실제 현실을 왔다갔다하는 찰리와, 임무로서 연기를 하는 것이지만 그러면서 차츰 진짜로 찰리를 사랑하게 되는 가디와 중첩되면서 과연 연기란 무엇이고 진짜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만들어낸다. 어찌 보면 우리의 삶 자체가 끊임없는 새로운 연기와 몰입의 연속일 수 있다는 것.

 

사실 <리틀 드러머 걸>은 기존 국내 드라마에 익숙한 시청자들에게는 ‘반칙’ 같은 드라마가 아닐 수 없다. 이렇게 잘 짜인 스토리에 매력적인 캐릭터 그리고 긴 여운이 남는 메시지와 생각거리까지 채워 넣은 드라마라니. 보고 나면 여타의 다른 드라마들이 너무 시시하게까지 느껴지는 그런 드라마를 만들다니. 영화와 드라마 사이의 해묵은 경계가 조만간 해체될 거라는 징후를 이 반칙 같은 드라마는 예시적으로 보여주고 있다.(사진:채널A)

돌아온 ‘유퀴즈’, 시작부터 묵직했던 성북동 할머님들

 

뭐하는 프로그램이냐는 질문에 “유 퀴즈 온 더 블럭”이라 말했지만 성북동 어느 길거리에서 만난 할머니들은 “그게 뭐냐”고 물었다. 할머니들은 tvN이라는 채널이 뭔지도 모르셨다. 한 어르신은 그게 “연속극”이냐고 물어보셨다. 유재석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 “잠깐 얘기 좀 나눠도 되나”는 말에는 “지금 하고 있잖아”라고 하셨고, “앉아서”하자는 말에는 맨바닥을 가리키며 “어딜 앉냐”고 면박을 주셨다.

 

다시 시작한 tvN 예능 <유 퀴즈 온 더 블럭>은 늘 그렇듯 시끌시끌하고 왁자지껄한 분위기로 문을 열었다. “화요일 좋아-”하는 노래에 맞춰 유재석과 조세호가 길거리에서 춤을 추고, 그걸 보신 어르신들이 반가워하며, 그 어르신들을 붙잡고 이야기를 나누고 퀴즈를 내는 일련의 과정들이 물 흐르듯이 진행되었다.

 

“테레비에 나올 인물들이 아니잖아”하며 애써 자리를 떠나시려는 어르신들은 지금 방송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시고 계셨다. 여전히 그분들에게는 방송에 나간다는 것이 특별한 이들만 할 수 있는 경험이라 여기는 눈치셨다. 한묘석 할머니와 복남순 할머니. 힘겹게 자리에 앉히려는 유재석에게 복남순 할머니는 “어떤 건지는 알려줘야 하지 않냐”고 재차 물었고, 유재석은 17번에서 하는 프로그램이라 설명했지만 할머니는 “17번은 보지도 않는 채널”이라고 말했다.

 

이름을 여쭤봐도 되겠냐는 질문에도 한묘석 할머니는 이름을 말하며 꽤나 겸연쩍은 표정을 지으셨다. 어디서 이름을 묻는 일도 누군가 부르는 일도 많지 않으셨을 어르신. 유재석이 “한묘석 여사님”이라고 경칭하자, 어르신은 “여사는 무슨 여사”라며 쿨한 한 마디를 던지셨고, “형제는 어떠시냐”는 질문에 너무나 자연스럽게 “없어. 죽었어 다-”라고 말씀하셔 유재석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이제 시작도 하지 않은 토크에 “이제 가게 그만 혀”라고 말씀하시는 어르신. 이것이 <유 퀴즈 온 더 블럭>이 가진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는 토크와 이야기의 맛이었다.

 

집에 가면 뭐 하시냐는 질문에 “할 일 없다”며 “테레비 본다”고 말씀하시는 한묘석 할머니의 아무렇지도 않다는 식의 말은 어찌 보면 조금 쓸쓸한 이야기일 수 있지만 그런 말을 그렇게 대놓고 툭툭 던지는 모습은 웃음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들고 계신 봉지가 궁금한 유재석에게 수줍게 웃으시며 “조갯살”이라고 말씀하시고, “고민 같은 거 있으시냐”는 유재석의 우문에 5남내 낳아 잘 키웠다며 “고민 같은 거 없슈”라고 현답을 하신다. “건강하게 살다 그냥 가는 거지 머”라는 말씀에서는 숙연하면서도 웃음이 피어나온다. 선물로 닭다리쿠션과 생선슬리퍼를 받으신 두 어르신들의 귀여운 투덜거림은 또 어떻고.

 

우연히 길을 가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이발사’라는 문구가 적힌 이발소에서 만난 이덕훈 할머니는 스트레스가 많다는 조세호에게 “오늘만 잘 살면 되는데 무슨 스트레스를 받냐”는 명언을 남기셨고, 어려서 이발을 배우게 된 사연과 지금도 매일 생각난다는 먼저 간 남편에 대한 여전한 사랑을 말씀하셨다. 게다가 심지어 아들 둘을 먼저 보내신 사연까지. 먼저 보냈지만 여전히 함께 지내고 있는 그 아프지만 따뜻한 이별의 이야기에서 마침 첫 방송을 한 ‘4월 16일’의 의미가 새록새록 피어났다.

 

이야기를 나누다 손님이 들어오자 “이제 당신네들은 가라”며 손님 받는 일을 더 중하게 여기는 어르신은 선물을 드리겠다는 말에 숙연한 할 말씀을 남기셨다. “저 위에 집이 빈집이라 혼자 살기가 어려워서 난 여기서 잠자고 살아. 여기가 나 사는 일류 호텔이야. 그런데 한 달에 돈 100만 원 들어오면 보증금 천만 원에 월세 오십만 원 세금 이것저것 나가고, 한 80만원 나가고, 한 20만원 그저 하루에 돈 만 원씩 벌어서 나 살고 노년연금 25만원 타는 거 그거 저축하고 살아. 욕심 없이 살아. 식구를 다 가르쳐서 장가들여서 천국까지 다 보내주고 하늘나라 보내주고 그러구서 나는 그저 이렇게라도 누구한테 폐 안 끼치고 산다는 것에 감사하면서 살아. 나 같이 바보는 없을 거야 아마. 요새 사람하고는 조금 틀리지. 그러니까 하느님께서 나를 더 이 세상에서 봉사하라고 안 데려가잖아.”(사진:tvN)

 

그렇게 말씀하시며 환하게 웃는 모습에 유재석과 조세호는 겸연쩍고 숙연함을 느끼며 퀴즈와 선물을 포기하고 일어섰다. 이것은 이른바 ‘사람여행’을 추구한다는 <유 퀴즈 온 더 블럭>이 가진 특유의 정서를 잘 말해주는 장면이다. 다시 돌아온 <유 퀴즈 온 더 블럭>은 그 시작부터 묵직했다. 어느 동네에서 우연히 만난 분들의 엉뚱하면서도 때론 숙연해지는 삶의 이야기들. 그것을 유쾌하게 들어주는데서 오는 소통의 즐거움과 먹먹함. 지금까지도 그래왔지만 다시 시작하는 이 프로그램에 대한 기대가 남다른 이유다.

'자백', 잠시도 한눈팔 수 없는 압도적 몰입감의 실체

 

창현동 살인사건과 양애란 살인사건 그리고 김선희 살인사건. 게다가 최도현(이준호)의 아버지 최필수(최광일)가 살인범으로 사형수가 된 차승후 중령 살인사건은 물론이고, 기자였던 하유리(신현빈) 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과 부패방지처 검사였던 진여사(남기애)의 아들 노선후의 의문의 교통사고까지... tvN 토일드라마 <자백>은 너무나 많은 사건들이 쏟아져 나오고, 그것들이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다.

 

이러니 화장실조차 제대로 다녀오기 힘들 정도로 몰입해서 보게 된다. 잠시만 한눈을 팔아도 무언가 중요한 단서가 훅 지나가버릴 것 같은 그런 몰입감. 하지만 복잡한 것도 사실이다. 보통 형사나 검사 혹은 변호사가 등장하는 장르물의 경우, 사건들은 병렬적으로 구성되어 전개되기 마련이다. 하나의 사건이 등장하고 그걸 해결하면 또 다른 사건이 등장하는 식이다. 하지만 <자백>은 이 사건들이 하나의 거대한 보이지 않는 음모(혹은 비리)로 묶여져 있다. 마치 드라마 <비밀의 숲>에서 단 하나의 살인사건이 등장하지만 그로 인해 드러나는 검찰 내의 비리들이 다양한 에피소드로 그려졌듯이, <자백>도 16부작이고 여러 사건들이 등장하지만 그건 하나의 ‘몸통’ 사건의 가지들로 그려진다.

 

지금까지 드러난 정황들로 정리하고 유추해보면, 창현동 살인사건을 저지른 조기탁(윤경호)은 최도현의 아버지 최필수가 기무사에서 근무할 때 근무했던 인물로 당시 운전병이었던 한종구(류경수)가 보는 앞에서 사람을 때려 죽였던 잔혹한 인물. 양애란 살인사건을 저지른 한종구는 그 조기탁을 흉내냈고, 그래서 조기탁은 김선희 살인사건을 저지르면서 한종구를 용의자로 만들어버렸다. 이것이 드러나 세 개의 살인사건의 진실들이다.

 

그런데 이 조기탁이라는 인물은 아마도 차승후 중령 살인사건을 저지른 일종의 검은 세력들(비선실세)와 연관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 차승후 중령 살인사건은 차세대 헬기 도입을 둘러싸고 벌어졌던 국방비리와 연관되어 있다. 알고 보면 창현동 살인사건의 희생자인 고은주도 아무런 이유 없이 살해당한 것이 아니라, 국방비리 관련 사항이나 혹은 차승후 중령 살인사건의 진실을 알고 돈을 요구하다 살해당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런 구도로 보면 비선실세들의 거대한 국방 비리가 있고 그 비리를 파헤치던 기자, 검사와 기무사 내부의 인물들이 살해되거나 희생당했다. 그리고 그 살인사건들은 국방 비리라는 몸통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마치 연쇄살인처럼 위장되었다. 조기탁은 실제로도 잔혹한 연쇄살인범이었지만, 이런 비선실세들과 연루되어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 살인을 저지르고도 완전한 신분세탁을 해 교도관으로 살아갈 수 있지 않았을까.

 

조금씩 퍼즐이 맞춰지고 드러나는 진실의 윤곽들은 몰입해서 본 시청자들을 짜릿하게 만든다. 그만큼 깊은 몰입이 필요한 드라마지만, 의외로 이 이야기는 그리 어렵게만 다가오지는 않는다. 그것은 신기하게도 우리가 실제로 현실에서 겪었던 사건들이 드라마에 중첩되면서 이해를 도와주고 있기 때문이다.

 

국방비리 사건이 그렇고, 비선실세라는 말만 들어도 금세 떠오르는 일련의 정황들이 그렇다. 또 진실을 밝히려던 기자나 검사의 죽음이 사고로 결론 처리되어버렸지만 의구심을 남긴 사건들도 마찬가지다. 이런 우리가 뉴스를 통해 목도했던 현실의 사건들을 <자백>은 그래서 하나하나 끌어다가 거대한 그림을 만들어낸 듯한 느낌을 준다. 그건 복잡해도 우리가 이 드라마를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이유이면서, 동시에 어쩌면 이 드라마의 진짜 메시지였을, 그간 의혹을 남긴 사건들을 다시금 환기시키게 만드는 이유이기도 하다.(사진:tvN)

'저널리즘토크쇼J'의 세월호 보도 사과와 반성, 언론이라면 응당

 

KBS에서 자사 보도에 대해 이토록 신랄하게 비판하는 방송을 보게 될 줄이야. KBS <저널리즘토크쇼J>가 세월호 5주기를 맞아 당시의 보도들이 저질렀던 참혹한 잘못들을 되짚었다. ‘세월호 5년, 그리고 기레기’라는 부제에서 느껴지듯이 당시 KBS를 포함한 MBC 또 종편 채널의 보도행태는 기레기라는 말이 공감 갈 정도였다. <저널리즘토크쇼J>는 당시 보도되었던 내용들을 조목조목 끄집어내 그 잘못된 걸 넘어서 악의적인 보도들까지 비판했다.

 

그 비판에서 이 프로그램이 가장 큰 비판의 대상으로 삼은 건 다름 아닌 KBS였다. 이른바 재난주관방송사로서 보다 정확하고 신속한 보도를 해야 할 KBS는 당시 뉴스특보에서부터 ‘단원고 학생 전원 구조’라는 엄청난 오보를 냈다. 그 오보의 결과는 우리가 다 알고 있는 ‘골든타임’을 느슨하게 보내게 만든 원인이 됐다는 것. 심지어 세월호 참사 당일 KBS는 “사고현장에 200여 명에 가까운 구조 인력이 투입됐다고 보도”하기도 했지만, 실상은 단 16명만 실제 수중 수색 작업을 했다는 것이었다. 김언경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은 이런 ‘거짓방송’에 ‘분노감이 나올 수밖에 없다’고 일갈했다.

 

또 당시 학생 수십 명을 구조한 고 김홍경씨의 인터뷰 또한 상당부분 편집되어 나갔다는 걸 지적했다. <저널리즘토크쇼J>는 당시 김씨의 원본 영상을 직접 보여줌으로써 그것이 사실이라는 걸 확인시켰다. “해양 경비대가 왔어도 구조나 배에 한 사람도 안 들어오고, 맨 꼭대기에서 객실에 있는 승객들이 구조해서 올려준 애들만 옮기고 이런 게 참 안타까워서…. 구조대란 사람들이 갑판 위에 상부에 있어서 승객들이 올려주는 애들만 싣고 떠나는 그런 모습이 그 순간에도 안타까워서..”

 

김씨는 당시 해경 구조대의 안이한 대응을 비판했는데 그 부분이 삭제되고 대신 뉴스는 그를 ‘의인 프레임’에 넣어 보도했다는 것이었다. 이를 정준희 저널리즘 전문가는 “미담의 주인공”이어야 하는데 그 프레임을 깨는 이야기를 하자 그렇게 의도된 편집의 보도를 하게 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저널리즘토크쇼J>는 구조 작업 지연의 문제점이나 재난 컨트롤 타워 부재 같은 근본적인 문제를 제쳐두고 세월호 선장이나 유병언 일가에 대한 마녀사냥식 보도에 앞장선 당시 언론들에 대한 비판을 이어갔다. KBS의 경우 정부 비판 꼭지가 22건이었던 반면, 유병언 관련 보도는 34건을 했다는 것. 또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진도체육관을 방문했을 시 KBS9시뉴스와 JTBC 뉴스룸을 비교해 보여줬다. 같은 사안이었지만 KBS가 박근혜를 두둔하는 보도를 낸 반면, JTBC는 실종자 가족들의 항의를 담아냈던 것.

 

심지어 채널A의 보도는 거의 박근혜 전 대통령의 홍보 뉴스나 다름없었다. 세월호 침몰 당시의 의인들 이름을 부르다 눈물을 흘리는 장면을 내보낸 그 뉴스에 대해 이 프로그램의 고정패널인 최욱은 “거의 박근혜 전 대통령이 유가족인 것처럼 지금 다루고 있지 않습니까?”라며 보기 너무 힘들다고 말했다. 정준희는 당시 KBS보도가 “냉전시기 공산주의 언론들이나 했음직한 영상조작수준”이라고 질타했다. 이러니 ‘기레기’라는 말이 나오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당시 이런 보도를 냈던 기자들 중에는 그 ‘염치없음’에 반성의 목소리를 내는 이들도 있었다. 이 날 방송에 출연한 전 채널A 기자였지만 퇴사해 지금은 진실탐사그룹 셜록의 기자로 있는 이명선씨나, 당시 보도에 대해 반성문을 올렸던 강나루 기자 같은 이들이 그들이었다. 이명선씨는 한 포털에 게재한 ‘나는 왜 종편을 떠났나’라는 연재 글을 올려 화제가 되기도 했던 인물. 그는 그 연재가 다시 기자를 하기 위해 필요했던 ‘반성문’이라고 말했다.

 

이 날 방송에 출연한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예은 양의 아버지 유경근씨는 당시 유가족들이 집중적으로 비난하고 비판했던 방송사가 KBS와 MBC라고 했다. 그런데 그 이유는 “그만큼 기대가 컸기” 때문이었다고 했다. 앞에서는 유가족들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척 하면서 뒤로는 당시 KBS 보도국장이었던 김시곤과 정부 편향의 보도를 해달라 요청한 이정현 당시 청와대 홍보수석의 통화내역은 언론이 얼마나 중심을 잃고 있었는가를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유경근씨의 분노와 실망감이 절절히 공감되는 부분이다.

 

방송 말미에 마무리 멘트를 하던 출연자들은 저마다 치밀어 오르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이명선씨는 유경근씨에게 눈물을 흘리며 “사과를 드리고 싶다”는 말을 전했고, 강나루 기자는 반성이라는 말을 반복하기보다는 앞으로 “세월호의 진상 규명을 포함해서 이런 것들을 취재 결과물로 말씀드리겠다”고 다짐했다. 정준희 역시 말문이 막히는지 눈물을 보이며 마지막 마무리 멘트로, 사실 어려운 문제지만 기자들이 “성찰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한 염치없음을 기억하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말했다.

 

아마도 이것이 진정한 저널리즘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방송이었다. <저널리즘토크쇼J>는 언론에 대한 비판기능을 담고 있는 프로그램이다. 사실 언론은 어떤 프레임과 방향성을 드리우기 시작하면 사실을 왜곡하거나 편향되게 할 수 있는 영향력을 발휘한다. 그것은 심지어 글로서 말로서 누군가를 죽이는 일이 될 수도 있다. 따라서 그것을 제대로 바로잡는 감시의 시선은 중요할 수밖에 없다. <저널리즘토크쇼J>라는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가감 없는 저널리즘 비판이 가치를 발휘하는 이유다.

 

방송을 통해 보여진 유경근씨가 공영방송파업 지지연설 중 기자들 앞에서 했던 말이 귀에 쟁쟁하게 울린다. “진도체육관에서, 팽목항에서 나를 두 번 죽인 건 여러분들의 사장이 아니고 (현장에 있던 바로 여러분들이었습니다.) 제가 여러분의 파업을 열심히 지지하는 건, 내가 언론 때문에 또 다른 고통을 받고 싶지 않아서입니다. (여러분들의 힘으로 여러분들이 바라는 그 언론을 따내야만 여러분 속에) ‘기레기’가 단 한 마리도 숨어들 수 없기 때문입니다.”(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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