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현주와 김명민의 죽음보다 더한 대결 만든 이것(‘유어 아너’)

유어 아너

“죽는 것보다 못한 고통. 그걸 저에게 주셨어요.” 지니TV 오리지널 월화드라마 ‘유어 아너’에서 송판호(손현주) 판사의 아들 송호영(김도훈)은 속으로 꾹꾹 눌러왔던 그 감정을 드디어 드러낸다. 판사인 아버지가 엄마를 성폭행한 김상혁(허남준)을 증거 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리해버린 건 송호영에게는 지워지지 않는 상처로 남았다. 그 충격으로 끝내 엄마가 자살하자 송호영은 ‘죽는 것보다 못한 고통’을 겪었다. 

 

송호영에게 송판호는 그것이 살기 위한 선택이었다고 말한다. 물론 자신이 아니라 아들을 살리기 위한 선택이다. 직접적으로 얘기하지 않았지만 송판호의 이야기는 아마도 당시 재판 역시 김강헌(김명민) 회장이 감옥에 있는 와중에도 막강했을 우원그룹의 외압이 있었다는 걸 암시한다. 하지만 송판호의 그 선택은 아들에게는 살아도 사는 게 아닌, 고통 뿐인 삶으로 돌아갔다. 

 

송호영은 그래서 자신이 겪은 그 ‘죽는 것보다 못한 고통’을 김강헌에게도 고스란히 되돌려 주려고 복수를 계획한다. 그의 아들을 차로 치어 죽게 하는 것. 송호영이 저지른 뺑소니는 우연이 아니라 계획된 범죄였다. 이로써 김강헌 또한 죽는 것보다 못한 그 고통을 느끼게 됐다. 자신의 죽음보다 더 고통스러운 가족의 죽음. 이 지점은 ‘유어 아너’라는 작품이 여타의 작품들보다 극성이 높은 가장 중요한 이유다. 

 

어찌 보면 드라마에 있어서 극적 갈등의 최고조는 죽음을 염두에 둘 때 생겨난다. 하지만 ‘유어 아너’는 죽음 그 이상의 고통을 극적 갈등으로 가져왔다. 그건 자신이 아닌 가족의 죽음이다. 송판호는 이미 아내를 잃었고 자칫 잘못하면 아들까지 잃게 될 위기에 처했다. 이미 한번 가족이 죽어 ‘죽는 것보다 못한 고통’을 겪어본 그는 아들을 살리기 위해 더더욱 결사적인 입장이 될 수밖에 없다. 

 

이건 김강헌 회장도 마찬가지였다. 그 역시 아들을 잃었다. 무소불위의 힘을 가진 자지만 그 고통은 똑같이 클 수밖에 없다. 그가 처절한 복수에 나서는 이유다. 그런데 그에게 딜레마가 생겼다. 송호영이 의도적으로 김강헌 회장의 막내 딸 김은(박세현)에게 접근했기 때문이다. 지능장애를 갖고 있어 우울증을 겪으면 위험할 수 있는 김은은 송호영에 의지하기 시작한다. 김강헌 회장은 그럼에도 아들의 죽음에 대한 처절한 복수를 해야할까. 그 복수로 송호영이 죽게 된다면 자칫 딸이 위험하게 될 수도 있는데? 

 

결국 김강헌 회장도 송판호 판사도 모두 자식을 잃게 되는 파국을 맞는다. 김상혁(허남준)에게 총을 쏜 송호영은 김상혁의 엄마 마지영(정애연)의 총에 맞아 사망하고, 죽은 송호영에 슬퍼하던 김은은 약물 과다 복용으로 식물인간이 된다. 살아남은 김상혁은 미국으로 도주하고 마지영의 살인은 충복인 박창혁(하수호)이 뒤집어쓴다. 자식을 잃지 않기 위해 넘지 말아야 할 선까지 넘어가며 안간힘을 썼지만 모든 게 수포로 돌아가 버린 것이다. 

 

‘유어 아너’는 이처럼 송판호와 김강헌 당사자들이 복수하고 반격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들의 가족들이 당하거나 위협받는 상황 앞에서 더 절박해진 두 사람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자신들이 죽는 것보다 더 두려운 건 가족의 죽음이고 그걸 봐야 하는 고통이다. 송판호와 송호영, 김강헌과 김상혁, 김은이 짝을 이뤄 얽히고 설키는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기 때문에 이 드라마의 갈등 양상은 죽음보다 더 큰 극성을 띠게 된다. ENA 채널로서는 이례적으로 최고시청률이 4.6%(닐슨 코리아)까지 치솟은 건 이 극적 구도에 시청자들이 빨려들어갈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나의 안위가 아닌 가족의 안위가 달린 문제를 짚어낸 이 드라마는, 정의로운 판사가 가족을 지키기 위해 살인까지 하게 되는 극적 상황들조차 공감하게 만든다. 또한 사람 목숨을 아무렇지도 않게 죽이는 비정한 인물인 김강헌 같은 조직 보스조차 가족 안에서는 그다지 보통 사람들과 별다를 바 없는 아버지라는 걸 드러내게 해준다. 

 

가족과 연결된 대결구도로서 시청자들의 시선을 빼앗은 드라마는 그 위에 정의와 생존 사이에 놓여진 딜레마라는 깊이있는 메시지를 던진다. 그래도 죽는 것보다는 나은 게 삶인가. 그래서 정의를 부정하고라도 생존을 선택해야 옳은 일일까. 아니면 그렇게 살아남는 건 차라리 죽는 게 더 나은 고통 속의 삶일 뿐인 것인가. 그러니 죽음의 위협 앞에서도 정의를 놓치지 않아야 하는 것일까. 강력한 몰입감과 더불어 누구나 한번쯤 생각해봐야할 깊이있는 문제의식까지. ‘유어 아너’의 파죽지세는 당연할 수밖에 없었다.(사진:ENA)

파친코2

“왜 한국인 이야기를 쓰나요?” 한국판으로 번역되어 나온 소설 ‘파친코’에 한국독자들을 위한 서문에서 이민진 작가는 그런 질문을 자주 받는다는 이야기를 꺼내놓는다. 그도 그럴 것이 이민진 작가는 10년 넘게 집필해 ‘파친코’를 낸 후에도 ‘아메리칸 학원(American Hagwon)’을 쓰고 있는데 이 역시 한국인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질문에 이민진 작가가 내놓은 답변이 인상적이다. “우리가 매력적이기 때문에 한국인 이야기를 씁니다.” 

 

애플TV+ 오리지널 드라마 ‘파친코’가 시즌2로 돌아왔다. 2년만에 돌아왔지만 선자(김민하)의 얼굴을 보는 순간 시즌1에서의 그 매력이 다시 상기된다. 그 매력은 핍박받고 차별받는 상황에서도 당당한 이 인물의 태도에서 나온다. 어쩌면 저렇게 가난하고 힘겨운 상황 속에서도 꼿꼿할 수 있을까. 이민진 작가가 말하는 한국인의 매력이란 바로 선자가 보여주는 바로 이 모습 그대로일 게다. 

 

‘파친코’ 시즌1에서 선자는 한수(이민호)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아이까지 갖게 됐지만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를 듣게 된다. 한수가 이미 일본에 아내와 딸들이 있고 곧 일본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마침 하숙집을 찾아와 죽을 위기를 넘긴 이삭(노상현)이 홀로 아이를 키우려는 선자의 사정을 알게 된 후 함께 오사카로 가자고 제안한다. 그렇게 선자는 고향을 떠나 오사카로 오지만 그 곳의 삶 또한 팍팍하기 이를 데 없다. 어려운 노동자들의 편에 서서 싸우다 이삭마저 감옥에 끌려가자 홀로 두 아이(한수의 아들과 이삭 사이에서 낳은 아들)를 키워야 하는 선자는 길거리에 나와 김치 장사를 시작한다. 시즌2는 바로 그 오사카에서 그 힘겨운 삶을 버텨내는 선자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7년이 넘었지만 이삭은 돌아오지 않고, 궁핍한 삶에 밀주를 담가 밀거래까지 하다 체포된 선자는 감옥살이를 해야할 처지에 놓이지만 한수의 도움으로 풀려난다. 오사카에 선자와 이삭이 왔을 때부터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한수는 들여다보고 있었다. 자신의 아들 노아(김강훈)가 어떻게 자라나고 있는지 역시 살피고 있었던 것. 마침 미군의 대규모 공습이 있을 거라는 정보를 알게 된 한수는 선자에게 그 곳을 떠나라고 말하지만 선자는 단호히 이를 거부한다. “옥살이 중인 남편 두고 내 어디 못갑니더. 그 사람 두고 내 어디 안갑니더. 못가예.” 여기서 한수와 선자의 대비되는 모습이 드러난다. 한수가 저 살 궁리만 하는 사람이라면, 선자는 자신과 아들을 거둬준 이삭을 끝까지 기다리는 사람의 도리를 지키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파친코’는 일제강점기 고국을 떠나 일본에 정착해 살아가는 재일 한인들의 이야기를 통해 핍박받는 한인들과 그들을 핍박하는 자들 사이의 대비를 드러낸다. 그것은 크게 보면 총칼에 의한 무력과 돈에 의한 금력이다. 즉 제국주의와 더불어 자본화되어가는 세상의 폭력이 이들 재일 한인들의 삶을 고통스럽게 만든다. 그런데 ‘파친코’는 제국주의와 자본의 폭력에 대한 저항을 그 앞에서도 무너지지 않고 당당한 한인들의 태도를 통해서 보여준다. 그 당당함은 가난하고 배운 것 없어도 인간으로서의 도리를 외면하지 않는 삶에서 나온다. 

 

언청이에 다리를 저는 장애를 가졌지만 누구보다 강인하게 선자를 키워낸 아버지, 그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하숙집을 홀로 운영하며 억척스럽게 살아낸 선자의 엄마 양진(정인지), 자신을 밀고해 감옥살이를 하게 만든 이를 용서하고 죽는 순간에도 아내와 아이 걱정을 하는 이삭, 그렇게 죽어가는 남편을 똑바로 바라보며 “내는 내 남편한테 사랑받고 존중받았으예. 전부 다 받은 거라예.”라 말하는 선자... ‘파친코’에는 저 이민진 작가가 말했던 매력적인 한국인들이 넘쳐난다. 대지진으로 도시가 무너지고 전쟁으로 쑥대밭이 되어버린 세상 속에서도 지켜야 할 것은 지키며 살아가는 한인들이 보여주는 당당함은 그래서 자본과 무력이 권력이 된 세상을 숙연하게 만드는 카타르시스를 준다. 

 

‘역사는 우리를 저버렸지만 그래도 상관없다.(History failed us, but no matter)’ 인상적인 이 ‘파친코’ 원작 소설의 첫 문장이 담고 있는 의미도 바로 그것이다. 역사가 되기도 하는 세상의 폭력 앞에서도 당당하게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 대한 헌사. ‘파친코2’가 우리는 물론이고 전 세계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매력이 바로 거기에 있다.(글:일간스포츠, 사진:애플TV+)

“엄마 보고 싶어. 엄마... 엄마, 엄마 보고싶어.” - 이준익 ‘라디오 스타’

라디오스타

“엄마 나 선옥이, 엄마, 잘 있나? 이거 들리나? 어.. 엄마 비오네?” 이준익 감독의 영화 ‘라디오 스타’에서 영월의 MBS 방송국에 라디오 DJ로 가게 된 최곤(박중훈)은 한때 스타였던 자신이 이런 곳에 있다는 게 너무나 싫다. 그래서 대충대충 방송을 하고 급기야 라디오부스에 다방 커피까지 시키는데, 김양(한여운)에게도 한 마디 해보라고 한다. “기억나? 나 집 나올 때도 비 왔는데 엄마 그거 알아? 나 엄마 미워서 집 나온 거 아니거든. 그때는 내가 엄마 미워하는지 알고 있었는데, 지금 나와서 생각해보니까 세상 사람들은 다 밉고 엄마만 안 밉더라? 그래서 내가 미웠어.” 갑작스런 엄마 이야기에 방송국 사람들은 물론이고 방송을 듣던 영월 주민들도 숙연해진다. 비에 촉촉이 젖어가는 영월의 풍경들 위로 김양의 목소리도 점점 젖어든다. “엄마 나 비오는 날이면 항상 엄마가 해주던 부침개 해보거든? 근데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봐도 그 때 그 맛이 안나더라. 엄마.. 보고 싶어, 엄마... 엄마, 엄마 보고싶어.”

 

한때 잘 나갔던 스타 최곤과 매니저 박민수(안성기)의 이야기를 담은 ‘라디오 스타’의 명대사는 “자기 혼자 빛나는 별은 거의 없어”로 주로 기억된다. 그 대사는 최곤과 박민수의 관계를 압축적으로 설명하는 것이면서 동시에 세상으로부터 소외된 이들이 빛날 수 있게 하는 것도 그 이야기에 귀기울여주는 누군가가 있기 때문이라는 메시지도 담고 있어서다. 그런데 ‘라디오 스타’에서 가장 감동적인 장면을 꼽으라면 바로 이 김양의 에피소드다. 타지생활의 설움에서야 비로소 알게 된 든든한 내편. 명절이 좋은 건 그래서가 아닐까. 세상이 아무리 각박해도 내 편 하나는 누구나 있다는 것. 함께 모여 부침개라도 부쳐 먹으며 마음을 나누길.(글:동아일보, 사진:영화'라디오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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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어 아너’로 명배우 재입증한 김명민

유어아너

“나는 화가 안나. 너무 아파서, 너무 슬퍼서 화가 날 겨를이 없어. 어떻게 화를 내는 건지도 기억이 안나.” 지니TV 오리지널 드라마 ‘유어 아너’에서 김강헌(김명민)은 아들이 죽었는데도 왜 화조차 내지 않느냐며 나무라는 아내에게 그렇게 말한다. 이 말은 김강헌이라는 인물이 어떤 사람이며 앞으로 어떤 일들을 해나갈 것인가를 잘 드러낸다. 조직 보스에서 우원그룹의 대표로 우뚝 선 이 인물은 우원시(시의 이름조차 회사 이름에서 따올 정도다)를 좌지우지하는 권력자다. 손 하나 까닥 하는 것으로 누군가를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이는 건 너무나 쉬운 일인 그런 인물. 그런데 막상 자신의 아들이 죽자 그는 화조차 내지 않는다. 그것은 화를 내는 것이 자신의 상처와 고통을 너무나 축소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가 가진 분노와 고통은 그래서 보통 사람들의 상상을 초월한다. 이 말 한 마디에 ‘유어 아너’라는 작품이 가진 극적 긴장감은 최고조로 올라간다. 보통 사람들이 느끼는 고통 그 이상을 가진 무소불위의 존재가 앞으로 어떤 복수를 해나갈 것인가가 그 긴장감을 무한대로 끌어올리기 때문이다. 

 

‘유어 아너’는 이처럼 아들의 살인범을 추적하는 무자비한 권력자 김강헌이 만들어내는 강력한 힘이 그 중요한 추진력의 한 축을 차지하는 드라마다. 다른 한 축은 그 살인을 저지른 아들의 아버지인 송판호(손현주)가 쥐었다. 세상의 존경을 받는 정의로운 판사인 송판호는 김강헌과는 정반대의 위치에 서서 어떻게든 아들을 살리기 위해 넘지 말아야 할 선까지 넘는다. 심지어 살인까지 저지른다. ‘유어 아너’는 그래서 김강헌과 송판호의 부성애가 격돌하는 대치상황을 그려나간다. 하지만 그 열쇠는 주로 모든 걸 꿰고 있고 심지어 송판호가 꾸미는 일들조차 쉽게 알아차리는 김강헌의 손에 쥐어진다. 

 

김명민은 이번 김강헌 역할을 하기 위해 영화 ‘대부’를 참고했다고 한다. 낮은 목소리로 읊조리듯 말하지만 누구나 긴장하며 들어야 할 것 같은 위압감이 느껴지는 ‘대부’의 돈 꼴레오네(말론 브란도)가 떠오르는 대목이다. ‘대부’를 참고했다고 하지만 ‘유어 아너’의 극적 긴장감이 폭발력을 갖게 만든 건 김명민이 김강헌 역할을 소화하는데 있어서 ‘발산’이 아닌 ‘억압’하는 연기를 선보였기 때문이다. 김명민은 이 뭐든 할 수 있는 권력자가 그걸 억누를 때 극적 긴장감이 생긴다는 걸 잘 이해하고 연기를 했다. “그렇겠지. 쉬운 싸움이 아니겠지. 존경을 받던 사람이 나쁜 짓을 해야 하니까 어렵겠지. 근데, 내가 너를 죽이는 일은 쉬운 일이야. 너는 무척 어려운 일을 해야 하고 나는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을 참아야 해.” 김강헌이 송판호에게 으름장을 놓는 이 장면에서 그 역할의 특징이 잘 드러난다.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을 억눌러야 하는 최고의 권력자. 바로 여기에 김강헌이라는 인물이 ‘유어 아너’에서 소화해냐 하는 역할이 있다는 걸 김명민은 간파했다. 

 

사실 이런 연기 스타일은 기존의 김명민이 해왔던 ‘메소드 연기’와는 조금 다른 면이다. 김명민은 자타가 공인하는 메소드 연기의 대가다. 영화 ‘내 사랑 내곁에’에서는 루게릭병을 앓고 있는 종우 역할을 연기하기 위해 50킬로에 가깝게 살을 급격히 빼고(저혈당 증세가 올 정도였다고 한다), 관련 서적을 수십 권씩 독파했으며, 그 고독을 느끼기 위해 몇 달 간 사람도 만나지 않았다고 한다. 촬영 중 휠체어에서 쓰러지는 장면 하나를 제대로 하기 위해 몇 차례씩 다시 찍는 비하인드 영상이 공개되기도 했는데, 보는 것만으로도 힘겹게 느껴질 정도였다. ‘불멸의 이순신’에서는 누구나 알고 있는 성웅 이순신의 인간적인 고뇌까지 담아내는 연기를 선보였는데 그것 역시 상상을 초월하는 노력에 의한 것이었다. 소설가 김훈의 ‘칼의 노래’를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읽고 또 읽었고, 이순신의 연령에 맞는 목소리 톤을 미리 준비하고 연습을 반복했다고 한다. ‘베토벤 바이러스’의 강마에에서는 “똥덩어리”라는 명대사가 완벽하게 입에 착 달라붙을 정도로 그 캐릭터에 몰입했으며, ‘하얀거탑’의 장준혁에서는 성공을 향해 질주하며 거의 신경쇠약 직전에 이르는 이 인물 그 자체가 됐다. 그의 메소드 연기는 이처럼 완벽하게 그 인물 자체가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번 ‘유어 아너’에서 그는 인물 자체가 되어 빠져들기보다는 그 인물이 특정 상황에서 주는 효과를 적절히 맞춰나갔다. 김명민은 인터뷰를 통해 자신이 왜 이런 연기의 변화를 시도했는지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너무 메소드, 메소드하니 힘들어 보이고 주변 사람들이 멀리하는 것 같다, 요새는 쉽게 쉽게 연기하는 걸 좋아하는데 강압적으로 연기하는 게 힘들어 보일 수도 있다는 충고를 들었거든요.” 물론 그렇다고 그의 연기가 메소드에서 벗어나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다만 그의 이런 이야기는 너무 역할에 과도하게 빠져들기보다는 적절한 선과 여유가 생겼다고 봐야 할 게다. 이런 여유는 당연히 연기에 있어서 개인적 기량보다 중요한 앙상블에는 오히려 더 좋은 상황을 만들어낸다. ‘유어 아너’에서 대립각을 세워야 하는 손현주와의 연기 앙상블이 기막히게 맞아 떨어진 건 아마도 이런 한 걸음 빠져나온 김명민의 여유에서 가능해진 게 아닐까 싶다. 

 

“제 이름이 아니라 캐릭터만 쭉 올라오는 배우가 됐으면 좋겠어요. 저 작품을 했던 사람이 이 작품을 했다는 게 의심 갈 정도로 캐릭터의 차별화가 확실했으면... 사람들이 제 이름을 제대로 모르고 못 알아봐도 제가 배우의 길을 제대로 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뿌듯하죠.” 과거 한 인물 다큐에서 김명민이 했던 연기에 대한 자세에 대한 말은 여전히 달라진 게 없다. 다만 김강헌이라는 인물을 감정을 폭발시키는 게 아니게 안으로 억누르는 연기로 더 강렬한 존재감을 만든 것처럼, 이제 그는 어떤 연기가 극에 효과를 극대화해주는가를 정확히 간파해 가며 연기를 하는 여유가 생겼다. 자신의 이름이 아닌 역할로 남는 배우가 무엇인가를 이 작품을 통해 보여준 것이다. 또한 하나의 작품이 잘 되기 위해서는 도드라진 한 인물이 아닌 저마다의 역할이 조화를 이룰 때라는 것 또한 그는 보여줬다. 그리고 이건 함께 무언가를 해나가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고민해봐야 할 지점이 아닐 수 없다. (글:국방일보, 사진:E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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