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에도 꽃이 핀다’, 인생캐 만난 장동윤 앞으로도 지금처럼

모래에도 꽃이 핀다

“20년 뒤의 내 꿈은 그 때도 지금처럼 두식이랑... 아니, 친구들이랑 맨날맨날 즐겁고 신나게 놀았으면 좋겠다. 영원히!” ENA 수목드라마 <모래에도 꽃이 핀다>는 20년 전 어린 백두가 꾸었던 꿈을 밝히며 끝을 맺었다. 그 꿈은 실로 소박해 보인다. 20년 후에도 변함없이 그저 그 때처럼 두식이랑 친구들이랑 매일 즐겁고 신나게 놀기를 바란다는 것. 하지만 우린 알고 있다. 이런 꿈이 사실은 검사가 되고 씨름 장사가 되고 손에 꼽히는 부자가 되는 일보다 더 어렵다는 걸. 

 

그 어려운 일을 <모래에도 꽃이 핀다>라는 드라마는 해낸다. 어려서 벌어졌던 승부조작 사건. 그로 인해 미란(김보라)의 아버지는 죽고 두식(이주명)의 아버지는 그를 죽게만들었다는 누명을 쓴 채 거산에서 도망치듯 떠나게 됐던 그 사건과, 마치 그 사건이 재연되듯 벌어진 연코치(허동원)의 자살과 사체로 발견된 최칠성(원현준) 사건의 주범을 찾아내고 검거했다. 그 주범은 바로 떡집을 운영하는 이경문(안창환)이었다. 

 

그리고 백두(장동윤)는 씨름대회에서 결승까지 올라 임동석(김태정)을 이기고 드디서 장사 타이틀을 땄고, 두식에게서도 고백을 듣게 된다. “아, 좋다고! 좋아한다고! 나도 니 좋아한다고!”라며 어색함을 화내듯 포장해 고백했지만, 두식은 이내 차분한 목소리로 “김백두, 내 니 많이 좋아한다”고 진지하게 말한다. 결국 두 사람은 서로의 사랑을 확인한다. 그래서 백두가 20년 전 꾸었던 꿈은 모두 이뤄진다. 씨름 장사가 되고 두식이와 사랑을 확인한데다, 친구들이 다시 다 모여 화기애애한 시간을 보내는 것. 

 

<모래에도 꽃이 핀다>가 매 회 어린 시절 백두와 두식 그리고 진수(이재준)와 미란, 석희(이주승)가 함께 놀던 광경들로 시작했던 건,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 어린 시절의 순수했던 모습들을 먼저 보여줌으로써, 20년 후 어른이 된 그들이 마주한 현실이 얼마나 다른가를 병치하기 위함이다. 그들은 승부조작 사건에 심지어 살인사건까지 벌어진 현실 속에서 그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상황을 맞이한다. 

 

그래서 드라마는 승부조작에 살인까지 벌이는 돈에 경도된 비정한 어른들과, 여전히 동심을 잊지 않은 채 그들과 맞서려는 김백두와 그 친구들의 대결구도로 그려졌다. 기성세대들이 남긴 상처들을 변치않는 우정과 사랑으로 똘똘 뭉친 친구들이 함께 싸우고 서로를 위로해주며 끝내 해결해내는 과정을 그린 것. <모래에도 꽃이 핀다>는 동화 같은 제목은 그래서 그 비현실을 현실로 만들어내는 동심의 순수함이 담겼다. 모래에서 꽃이 필리 없지만, 그걸 보여주는 드라마가 주는 판타지가 그만큼 강력했던 이유다. 

 

그 ‘꽃’은 백두가 장사가 된 것을 의미하기도 하고, 두식과의 사랑이 이뤄진 것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20년 전부터 이어져 도무지 해결되지 않을 것만 같았던 사건이 해결된 것을 의미하면서 승부조작으로 더럽혀졌던 씨름판에서 이제 정정당당한 승부가 펼쳐지는 상황을 의미하기도 한다. 백두가 끝내 장사 타이틀을 거머쥔 임동석과의 치열하지만 멋진 경기는 모래판에 피어난 꽃 같은 아름다운 승부의 세계를 재연한다. 

 

무엇보다 좋았던 건 거의 김백두 그 자체가 된 것처럼 순수하고 우직하며 때론 어리숙한 모습을 보여줬던 장동윤의 연기다. 사극부터 시대극, 장르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연기 스펙트럼을 시도해왔던 장동윤은 실로 이 작품으로 ‘인생캐’를 만난 느낌이다. 찰떡 같이 잘 붙은 사투리는 물론이고 씨름선수 역할에 맞게 만들어낸 몸에 보기만 해도 무장해제 될 것 같은 순수한 눈빛이 투박하지만 묵직한 진심으로 가득 채워진 작품과 어우러져 막강한 시너지를 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이 작품의 제목은 또 다른 의미로도 읽힐 수 있을 법하다. 수많은 작품들을 해왔고, 다양한 역할들을 연기했지만 이 작품을 통해 장동윤의 연기도 꽃이 피었다는 의미로. 좋은 작품은 인물이 메시지 그 자체인 경우가 많다. 김백두라는 인물이 우직하게 보여주는 그 순수함 자체가 메시지인 <모래에도 꽃이 핀다>도 그런 작품이다. 좋은 작품의 좋은 캐릭터는 또한 배우가 가진 진짜 매력을 끄집어내는 힘을 발휘하기도 한다. 이 작품은 그래서 훗날 돌아보면 장동윤에게 남다른 의미로 남을 것으로 보인다. 결국 꿈을 이뤄낸 백두가 20년 전 꿈을 이야기하던 어린 백두를 떠올리듯이.(사진:ENA)

‘황야’로 돌아온 ‘범죄도시’의 서민 영웅

황야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 다소 엉뚱하게 들리겠지만 한 침대 광고의 문구가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 바로 마동석이다. 그가 내놓는 영화들은 이제 업계에서는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으로 성공을 보장한다는 신뢰가 생겼다. 그건 한 특정 작품의 성공이 아니라, 마동석이라는 하나의 브랜드가 보장하는 성공이라는 점에서 흔들림 없이 편안하다. 

 

그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범죄도시> 시리즈를 떠올려보라. 시즌3까지 했던 이 영화의 주인공 이름이 잘 떠오르는가. 그 이름은 마석도다. 하지만 우리들에게 기억되는 건 마석도가 아닌 그 역할을 연기한 마동석이다. 그래서 <범죄도시>가 680만 관객을 동원하며 성공을 거둔 후, 코로나19의 터널을 통과해 초토화됐던 극장가에 엔데믹 분위기와 함께 <범죄도시2>가 무려 1천2백만 관객을 끌어모았을 때 나온 ‘신드롬’은 <범죄도시> 신드롬이 아니라 ‘마동석 신드롬’이었다. 바로 1년 후 연달아 <범죄도시3>가 나왔을 때도 ‘설마’는 ‘역시’가 됐다. 이미 이 시리즈의 스토리라인이 관객들에게 익숙해졌고 그래서 단물이 이미 쪽 빠진 껌처럼 여겨진 면이 있었지만 그래도 무려 1천만 관객이 극장을 찾았다. 그것이 말해주는 건 영화가 아니라 마동석을 보러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그만이 가진 확실한 ‘한 방’이 있다는 걸 말해준다. 

 

그 ‘한 방’의 공식은 간단하다. 너무나 악랄해 보기 불편하고 심지어 공포스럽기까지 한 빌런들이 등장해 관객들을 잔뜩 긴장하게 만들고 나면, 그 긴장에도 흔들림 없이 등장해 관객들을 편안한 사이다의 세계로 이끄는 마동석의 모습이 이어진다. 그것이 전부다. 하지만 이 간단한 ‘한 방’의 공식은 여러 방식으로 변주된다. <범죄도시>가 마약과 연결된 강력사건들이 벌어지며 갈수록 살벌해지는 살풍경한 현실 사회를 영화 속으로 끌고 들어와 공포에 떠는 소시민들을 든든하게 지켜주고 빌런들을 한 방에 날려버리는 마동석의 모습을 그렸다면, <부산행>에서는 좀비가 창궐한 부산행 KTX에서 맨주먹으로 저들을 때려잡는 마동석을 그렸고, <동네사람들>에서는 한 동네를 쥐락펴락하는 권력자를 중심으로 형성된 악의 카르텔과 상대하는 체육교사 마동석을 그렸다. 하나 같이 사회를 공포로 몰아넣는 적들이고, 거기서 마동석은 그들 앞에 벌벌 떨고 있는 소시민들을 보호하거나 구해주는 영웅으로 등장한다. 

 

이런 서사 구조가 새로울 것은 없다. 하지만 마동석은 그 서사의 경험을 공포와 편안함이라는 체감의 차원으로 전해주고 있다는 게 다르다. 꼼짝없이 죽게 생겼다는 실감에서 오는 공포가 관객들을 잔뜩 긴장하게 만들어놓았을 때, 등장과 함께 보이는 거대하고 단단해보이는 체구만으로도 어딘가 ‘안전함’이 느껴지는 그 외적 이미지가 그렇다. 그 단단해 보이는 몸은 웬만한 칼도 뚫지 못할 것 같고, 심지어 총 한 방 맞아도 그리 큰 타격이 없을 것만 같다. 그래서 약자들의 든든한 보호막 같은 느낌을 준다. 게다가 그가 날리는 한 방에 마치 펀치볼처럼 날아가는 빌런들의 모습은 카타르시스도 안기지만 동시에 도무지 이겨낼 수 없을 것만 같던 그 공포 또한 한 방에 날려버리는 효과를 준다. 이러니 마동석을 따라가며 관객들은 공포의 세계 속에서 안전한 쾌감을 느낄 수 있다. 그건 마치 롤러코스터의 작동 원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액면으로 보면 소름이 돋는 스릴이지만 안전함이 동반되어 그걸 온전히 즐길 수 있는. 

 

그런 그가 돌아왔다. 이번엔 폐허가 되어버린 디스토피아 세상이다. 이제 당연히 사람들은 상상한다. 모든 게 무너져내린 폐허 속, 무법천지가 된 세상에서의 마동석은 어떨까. 그 세계에서도 여전히 핵주먹을 날리며 빌런들 때려잡는 든든한 서민 영웅의 모습일까. 예상대로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황야>에서 마동석은 무법천지 세상에 유일하게 우뚝 선 비빌언덕 같은 인물(극중 인물의 이름조차 남산이다)로 등장해, 생체실험으로 새로운 인류를 만들겠다는 위험하고도 헛된 욕망에 사로잡힌 박사(이희준)와 대결한다. 그 결론은? 우린 이미 보지 않아도 다 알고 있다. 하지만 궁금하다. 그가 어떻게 저들과 맞서 나가고, 저들에게 시원시원한 주먹을 날릴 것인지가.

 

이미 <부산행>이 칸느영화제에서 소개됐을 때부터 “저 친구는 누구냐?”는 이야기가 외국 관객들로부터 나온 바 있고, <이터널스> 같은 마블 작품의 슈퍼히어로로도 등장한 바 있으니 그가 출연하는 <황야>라는 작품에 대한 기대감 역시 글로벌한 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 OTT 스트리밍 순위 집계 사이트 플릭스패트롤에서 <황야>는 넷플릭스 영화 글로벌 순위 1위에 올랐다(29일 현재). 한국은 물론이고 대만, 일본, 홍콩 같은 아시아국가 나아가 프랑스 같은 유럽에서도 글로벌 순위 1위를 기록했다. 

 

사실 <황야>는 평가도 낮고 평점도 낮은 편이다. 하지만 그 누구도 마동석이 나오는 작품에서 작품성을 크게 기대하지는 않는다. 대신 관객들이 기대하는 건 이미 정해진 코스를 달리는 걸 반복해도 그 때마다 확실한 쾌감을 안겨주는 롤러코스터 같은 효능감이다. <황야>의 상당 부분이 마동석표 롤러코스터에 기대고 있다는 건, 이 작품과 세계관을 같이하는 <콘크리트 유토피아>와 비교해 보면 단박에 드러난다. 이병헌의 호연이 돋보였던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대지진 속에서 유일하게 무너지지 않은 한 아파트에서 벌어지는 인간군상을 통해 이른바 ‘아파트 공화국’이라고도 일컬어지는 우리 사회의 단면을 진지하게 담은 작품이었다. 하지만 <황야>는 그 세계관만 가져왔을 뿐, 사실상 마동석이 디스토피아에서 펼치는 <범죄도시> 같은 작품에 가깝다. 그럼에도 도대체 왜 관객들은 이미 다 알고 있는 마동석의 세계에 속절없이 빠져들게 되는 걸까.

 

그건 불안하다 못해 공포스럽기까지 한 사회가 만들어낸 페르소나로서의 마동석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영화 아닌가 싶을 정도로 살벌해진 사건들을 매일 같이 접하게 된 대중들로서는 마동석 같은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을 줄 수 있는 존재를 잠시나마 곁에 두고픈 갈증이 생기기 마련이다. 심지어 세상이 무너져도 그 옆에 있으면 어떻게든 살아남을 수 있을 것만 같은 그런 든든함에 대한 희구. 편안함을 넘어서 심지어 그 공포를 스릴로 바꿔 즐길 수도 있게 해주는 그런 존재에 대한 갈망이 마동석 신드롬에는 어른거린다. (글:국방일보, 사진:넷플릭스)

‘재벌×형사’, 뻔한 형사물 뒤집는 통쾌한 갑질 수사 보여줄까

재벌×형사

재벌이 형사가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SBS 금토드라마 <재벌×형사>는 이런 상상에서 시작한 색다른 형사물이다. 로맨틱 코미디 장르에서 흔히 재벌3세가 낙하산 인사로 특정 부서에 들어와 그 남다른 재력과 배경으로 평범한 직장인들의 판타지를 자극한다면, <재벌×형사>는 재벌3세가 어쩌다 강력팀에 낙하산으로 들어와 벌어지는 좌충우돌을 다룬다고나 할까. 

 

첫 회는 한수 그룹 막내아들 진이수(안보현)가 어쩌다 경찰이 되었는가를 다루는 스토리로 채워졌다. 서바이벌 게임을 위해 백화점을 통째로 빌리는 등, ‘노는 데 목숨 건’ 진이수가 경찰이 된 건, 어느 날 우연히 살인범을 때려잡게 되면서다. 마침 그 현장을 목격한 강하경찰서 강력1팀 이강현(박지현) 팀장이 오히려 재벌이 무고한 시민을 폭행한 것으로 오해했고, 그것이 기사화되어 한수 그룹 진명철(장현성) 회장이 시장출마를 선언 발표를 망쳐버렸다. 

 

하지만 뒤늦게 사건의 진상을 알게 된 강하경찰서와 진이수의 형이자 한수 그룹 부회장인 진승주(곽시양)는 이 사태를 무마시키기 위해 진이수를 진짜 경찰로 만든다. 두 달 전 변호사 특채로 경찰이 되어 강력1팀과 일가족 살인사건 수사를 해왔고 결국 범인을 검거했다고 발표한 것. 다소 믿기 힘든 전개지만 이런 설정을 통해 진이수라는 재벌3세가 낙하산으로 강력1팀에 들어오게 되었다는 것이 첫 회의 내용들이다. 

 

이 설정과 전개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재벌×형사>는 현실성이 있는 드라마라기보다는 일종의 판타지를 그리는 드라마라고 볼 수 있다. 재벌이 서민들에게 던지는 이미지는 양면적이다. 그 하나가 갑질 같은 부정적인 이미지라면, 다른 하나는 뭐든 못할 게 없다고 여겨지는 부유함 같은 판타지다. 그래도 돈과 권력을 쥔 재벌3세의 서사는 부정부패의 원천처럼 그려지기도 하지만, 로맨틱 코미디에서 자주 등장하듯 신데렐라 스토리의 왕자님 같은 판타지로 그려지기도 한다. 

 

그렇다면 돈과 권력을 쥐고 뭐든 할 수 있는 그런 존재가, 그걸 범인 잡는 일에 쓴다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하게 된다. 드라마가 첫 회에 제시한 진이수의 캐릭터는 ‘노는 데 목숨 건’ 인물이다. 익스트림 스포츠까지 못 하는 스포츠가 없는데다, 모든 장비들까지 다 갖춘 존재다. 낙하산들이 대부분 그러하지만 원한다면 특진 같은 것도 제 마음대로 하고 그래서 경찰 임무에서도 제 뜻대로 마음껏 할 수 있는 그런 인물. 

 

판타지가 판타지로 끝나 버리면 드라마는 허황된 이야기에 머물고 만다. <재벌×형사>에는 그래서 진이수라는 인물에 교통사고로 사망한 엄마에 대한 상처를 집어 넣었고, 재벌이지만 아버지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한량’ 이미지를 더해 넣었다. 다소 상투적인 설정이긴 하지만 그 상처는 진이수가 피해자들을 남달리 바라보는 중요한 지점이 되지 않을까.

 

“교도소에 가든 벌금을 물든 네가 벌인 일 네가 책임져 봐. 넌 내가 없으면 아무 것도 아냐.” 중요한 행사를 망쳐버린 진명철 회장이 화가 나 진이수에게 하는 이 말 역시 향후 이 인물이 재벌의 힘이 아닌 스스로 무언가를 해냄으로써 자신을 증명하는 것이 이 작품에서 중요한 서사의 줄기가 될 거라는 걸 말해준다. 재벌이라는 판타지를 쓰고는 있지만 ‘자기 존재 증명’이라는 보편적 메시지를 그리려 한다는 것이다. 

 

또한 이 작품은 블랙코미디적인 요소도 기대할만한 부분이다. 보통의 형사물에서 형사들의 수사를 가로막는 건 돈과 권력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재벌인 이 형사에게는 이런 상황들이 모두 뒤집어진다. 돈과 권력에 휘둘리기보다는 돈과 권력을 오히려 휘두르며 수사를 해나간다. 그건 통쾌한 지점을 만들어주는 블랙코미디가 아닐 수 없다. 

 

물론 약점도 있다. 설정 자체가 황당해 비현실적이라 여겨질 수 있다는 점이 그렇다. 하지만 비현실을 판타지로 바꿔줄 수 있다면 <재벌×형사>는 오히려 틀에 박힌 형사물의 뻔한 지점들을 뒤집는 통쾌함을 선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과연 재벌집 막내 아들 진이수(공교롭게도 <재벌집 막내아들>처럼 그도 진씨 집안이다)는 재벌의 갑질을 통쾌함으로 뒤집는 그 반전의 쾌감을 보여줄 수 있을까. (사진:SBS)

‘LTNS’, 이솜과 안재홍의 솔직 과감 19금 블랙코미디가 통한 까닭

LTNS

티빙 오리지널 드라마 <LTNS>는 시작부터 과감하다. 지금껏 티빙에서 이런 드라마가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솔직 과감한 19금 상황들이 적나라하게 전개된다. 그래서 수위 높은 장면들과 직설적인 성적 내용들을 담은 대화들이 쏟아져 나오는데, 이상하게도 불쾌하거나 음습하지 않고 유쾌하다 못해 발칙하다. 도대체 이런 톤 앤 매너는 어떻게 가능하게 된 걸까. 

 

<LTNS>는 제목부터 직설적이다. ‘Long Time No Sex’를 뜻하는 제목처럼 우진(이솜)과 사무엘(안재홍)은 섹스리스 부부다. 서로를 사랑하지만 자극이 되지 않아 다양한 ‘노력’을 한다. 그런데 잘 들여다 보면 이들이 섹스리스가 된 이유가 특이하다. 서로에게 너무 익숙해져서도, 또 나이들어서도, 나아가 무슨 성적 문제가 있어서도 아니다. 현실에 쪼들려서다. 

 

“집이 이제는 애물단지가 돼가지고 이자를 맨날 100만원씩 내는데 여기서 일해봐야 그 돈을 갚기가 제가 너무 버겁고, 코로나는 제가 뭐 어떻게 한 게 아니지 않습니까? 그냥 저는 그냥 열심히... 지금 너무 답답하고 어디다가 얘기해도 뭐 어떻게 되는 건지...” 결혼 후 7년이 지난 이들 부부는 TV 속 한 시민의 하소연처럼 답답하기만 하다. 대출까지 무리하게 해서 집을 샀는데 집값은 뚝뚝 떨어지는데다 대출 금리는 치솟는 상황이다. 

 

우진은 김치 볶음 반찬 하나에 맨 밥을 먹고 있고, 사무엘은 아내의 옷에 떨어진 단추를 꿰매주고 있다. 그러면서 밖에서 커피를 사먹었다고 우진의 지청구를 듣는다. 택시운전을 하는 사무엘은 졸려서 사고가 날 것 같아 그랬다고 했지만 이들은 커피 한 잔도 밥 한 끼도 심지어 집에서 쓰는 물도 아껴 써야 할 정도로 쪼들려있다. 그 시민의 울먹이는 하소연을 보던 우진이 소화 안된다며 다른 거 보자고 돌린 채널에서는 웃음소리가 왁자하게 흘러나오지만 이들의 표정은 굳어있다. 뭘 해도 감흥조차 느낄 수 없게 만드는 여유 없는 현실 속에서 이들은 위로하듯 각자 자위를 한다. 

 

즉 이들의 ‘LTNS’에는 현실적이고 사회적인 맥락이 끼어 들어 있다. 그리고 이 현실의 밑그림 위에 매 회 그려지는 불륜 커플들의 이야기에도 이러한 사회적 함의가 더해진다. 물론 그 방식은 블랙코미디다. 그래서 우진과 사무엘의 짠하디 짠한 ‘불륜 추적’과 이를 통해 불륜 커플들을 협박해 돈을 뜯어내는 과정은 음습하기보다는 유쾌하면서도 페이소스가 담긴 웃음을 전해준다. 실제 현실적인 이야기라기보다는 어딘가 꽉 막힌 현실에 ‘섹스’와 ‘불륜’이라는 키워드를 갖고 던지는 일침 같은 통쾌함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평범했던 이들 섹스리스 부부가 불륜 커플들을 추적해 그 증거를 찾아내고 그걸로 협박해 돈을 버는 일을 함께 하게 되는 계기가 된 사건부터가 예사롭지 않다. 어느 날 우연히 친구 정수(이학주)의 바람 이야기를 사무엘이 듣고 아내 우진에게 이야기한 것이 계기가 됐다. 우진이 친분이 있는 정수의 아내에게 그 사실을 이야기하겠다고 말하자 정수가 찾아와 돈을 주겠다며 그걸로 해결하자고 제안하고 실제로 그게 이뤄지면서 ‘이렇게도 돈을 벌 수 있다’는 걸 알게 되면서다. 

 

여기서도 주목되는 건 정수가 바람을 피우면서 했던 사랑에 대한 얼토당토한 이야기다. “두 개까지는 사랑이지만 세 개부터는 사랑이 아니다”라는 이야기가 그것이다. 즉 두 명을 만나는 건 불륜이 아니라 사랑이라고 말하는 정수의 이야기는, 여유가 없어 섹스의 욕구조차 느끼지 못하는 사무엘과 우진의 처지를 두고보면 ‘부익부 빈익빈’의 감정을 끌어올린다. 그래서 우진과 사무엘은 그런 불륜까지 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진 이들에게 좀 뜯어내는게 뭐 어떠냐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 

 

‘예측불허 고자극 불륜 추적 활극’. 정수와의 첫 번째 불륜 에피소드에서 그려지듯이 드라마는 한 줄로 된 소개처럼 사건이 어떻게 튈지 예상할 수 없는 방향으로 튀어나간다. 매 회 벌어지는 불륜 에피소드들은 사내 불륜커플, 중년의 불륜커플, 동성커플 등등 그 소재도 자극적이고 다양한데, 그 안을 들여다보면 또 예사롭지 않은 사회적 맥락들이 담겨있다. 이를 테면 두 번째 에피소드인 사내 불륜커플의 경우는 점심시간을 이용해 20분 안에 차에서 먹으면서 섹스하는 이야기가 그려지는데 그건 ‘연애 비용’이라는 부제처럼 연애에 있어서도 시간과 돈을 아끼게 된 현실 세태에 대한 블랙코미디적 시선이 더해져 있다. 

 

세 번째 에피소드인 중년 불륜 커플의 경우에는 가부장적 사회에서 제대로 된 대우조차 받지 못한 채 살아온 여성에 대한 이야기를 키스조차 해보지 못한 중년여성의 안타까운 사연으로 그려내고, 네 번째 에피소드에서의 동성 불륜 커플 이야기에는 사랑을 ‘나쁜 짓’으로 만들어버리는 세상에 대한 일침이 숨겨져 있다. 그저 19금의 수위 높은 자극이 아니라 이러한 깊이있는 접근이 있었기 때문에 ‘고자극 19 불륜’을 담은 드라마가 유쾌한 웃음을 빵빵 터트리게 만들어줄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작품의 이런 유쾌한 지점들은 이솜과 안재홍이 이토록 과감한 수위의 작품을 선택하고 나아가 작정한 듯 과감한 연기에 도전한 것에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특히 안재홍의 경우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마스크걸>을 통해 ‘은퇴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변태적인 성적 이미지로 그려진 면이 있었는데, 이번 작품을 통해 그가 본래 갖고 있었던 코믹하고 유쾌한 이미지를 되찾을 것으로 보인다. 19금 드라마라고 해도 충분히 유쾌하고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이 가능하다는 걸 이 작품이 증명하고 있고, 안재홍 역시 거기에 화답하는 연기를 보여주고 있으니. (사진:티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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