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봄>이 불러온 봄날의 훈풍이 계속 불려면

서울의 봄

영화 <서울의 봄>이 1천만 관객을 넘겼다. 혹자들은 ‘영화의 봄’이 다시 오는 게 아니냐는 기대의 목소리를 내놓는다. 그리고 은근히 이 봄기운이 <노량:죽음의 바다>로 이어지길 기대하는 눈치다. <명량>이 무려 1천7백만 관객을 넘겼고, <한산> 역시 7백20만 관객을 동원했으니, 김한민 감독의 이순신 3부작의 대미를 장식할 <노량>에 대한 기대감이 생기는 건 당연한 일일 게다. 여기에 <서울의 봄>이 불러온 모처럼만의 관객들이 만들어내는 봄날의 훈풍까지 불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서울의 봄>이 개봉하기 전까지만 해도 극장가는 침통한 분위기였다. 엔데믹에 비대면이 풀렸지만 올 여름 블록버스터 시장의 성적은 초라하기 이를 데 없었다. 류승완 감독의 <밀수>가 5백만 관객을 넘기며 그나마 체면을 차렸을 뿐, 하정우, 주지훈 주연의 <비공식작전>도 또 설경구 도경수 주연에 김용화 감독이 연출한 <더 문>은 재앙에 가까운 참패를 경험했다. 특히 대한민국 최초로 달을 배경으로 한 우주 소재의 SF를 시도했던 <더 문>은 그 창대한 시도와는 너무나 초라한 50만 관객이라는 성적표를 받으며 무너져 내렸다. 

 

추석 시즌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강동원 주연의 <천박사 퇴마 연구소>가 190만 관객으로 그나마 선전했고, 강제규 감독의 <1947 보스톤>이 1백만을 그리고 김지운 감독의 <거미집>은 겨우 31만 관객을 동원했다. <1947 보스톤>이야 2020년 제작됐지만 코로나19로 인해 묵혀졌다 나온 이른바 ‘창고영화’라 그 시의성 차이 때문에 그랬을 수 있다고 여겨지지만, 송강호, 임수정, 오정세, 전여빈 등 호화캐스팅을 했고 평단의 반응도 좋았던 <거미집>의 흥행 참패는 아쉬운 지점이 아닐 수 없었다. 

 

극장가는 ‘겨울이 왔다’고 말할 정도로 얼어붙었다. 그건 코로나19를 겪으며 비대면 상황이 지속되면서 OTT가 대안적인 영화 소비 플랫폼으로 떠오르는 환경 변화가 만들어낸 위기였다. 그러다 갑자기 엔데믹으로 극장가가 열리게 되면서 이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영화들이 픽픽 쓰러져 나간 것이었다. 그 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에 가야할 이유는 무엇인가. 이제 관객들은 영화에 묻기 시작했다. 그 질문에 정확한 답을 내놓지 못하는 영화는 초라해질 수밖에 없었다. 

 

코로나 이전 호황기 시절의 영화는 멀티플렉스와 공조하며 천만영화를 심지어 만들어냈다. 적당한 블록버스터의 재미를 적당한 타이밍(여름방학 시즌이나 추석 대목 같은)에 멀티플렉스를 통한 스크린수 융단폭격을 하면 충분히 천만영화가 가능해진 것이다. 관객들이 극장에 가는 것이 중요한 여가로 자리잡혔을 시절의 이야기다. 하지만 비대면 시절을 겪으며 관객들은 알게 되었다. 집에서 OTT에 가입해 영화 한 편 정도의 비용으로 한달 구독료를 내면 한달 내내 다양한 영화들과 드라마들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을. 

 

이런 분위기니 개봉 전부터 ‘잘 빠졌다’는 이야기가 나오던 <서울의 봄> 역시 흥행을 자신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애초 목표는 천만이 아닌(누가 감히 천만을 운운할 수 있는 시절인가!) 4백만을 목표로 했다. 손익분기점을 넘기는 걸 성공으로 세워뒀다는 것이다. 4백만도 어렵다는 업계 이야기들은 영화의 홍보 마케팅에 전력투구를 하게 만들었다. 영화 시작 몇 달 전부터 <서울의 봄> 관련 기사들이 쏟아졌고, 그래서 심지어 이미 개봉한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이렇게 이미 영화의 홍보가 충분히 이뤄진 상태에서 기자시사회가 열렸다. 호평이 쏟아졌다. 영화에 대한 기대감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드디어 영화가 개봉됐고, 기다렸다는 듯이 극장에 몰려간 관객들은 입소문을 내기 시작했다. 영화는 4백만을 넘기더니 신드롬처럼 성적에 속도가 붙었다.  

 

<서울의 봄>이 성공한 건 먼저 당연하게도 영화가 좋았기 때문이다. 12.12 군사쿠데타라는 이미 어느 정도는 알고 있는 역사적 사실을 가져왔지만, 그 날 벌어진 사건들을 여러 인물들의 끝없는 선택과 갈등의 상황으로 그려냈다. 그래서 굉장한 액션 신은 많지 않았지만, 두 시간이 넘는 상영시간을 순삭하게 만들었다. 게다가 그 선택이 훗날 신군부를 등장시키고 그래서 80년 광주의 비극과 그 후로 꽤 오래 지속되는 암울한 시대를 야기했다는 메시지에 당대를 살았던 기성세대들은 물론이고 현재의 젊은 세대들까지 공감했다. 역사가 결국 여러 사람의 선택들의 총합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걸 그 하루를 담은 사건을 통해 실감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탄탄한 완성도를 가진 데다, 코로나 이후 달라진 영화 소비 방식 속에서도 굳이 극장에 가야할 이유를 주는 몰입감과 긴박감, 여기에 공격적인 홍보마케팅이 힘을 실어 준 ‘누구나 꼭 봐야할 것 같은’ 분위기가 더해지면서 <서울의 봄>은 ‘영화의 봄’을 기대하게 만드는 작품으로 등극했다. 

 

물론 <서울의 봄>이 영화계에 만들어낸 기대감은 좋은 일이고 또 바람직한 일이다. 하지만 이 영화가 지금의 달라진 영화 소비 방식에 걸맞는 작품이었고, 그걸 효과적으로 알리는 노력들을 했다는 걸 잊어서는 안된다. 여전히 이 영화가 천만관객을 돌파할 것인가를 두고 섣부른 기대들을 여기저기 내놓고 있지만, 그렇다고 다시 천만관객의 시대로 회귀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닐게다. 이제 새로운 시대에는 천만이 아닌 중소규모지만 완성도 높은 작품을 지향하는 가성비 있는 기획들이 더 많이 나와야 한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말처럼, 콘텐츠의 새로운 시대는 거기에 맞는 새로운 소재와 형식을 요구하기 마련이다. 그러니 이 변화된 환경을 깊이있게 들여다보고 과거의 관성들을 버리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게 아니라면 무언가 봄이 올 것만 같았던 기대가 냉혹한 겨울로 돌아설 수 있으니 말이다. 장기 군부독재가 사라지고 봄이 도래할 것 같은 기대를 가졌지만 신군부라는 더 혹독한 겨울을 맞이하게 됐던 것처럼. (사진:영화'서울의 봄', 이 글은 이데일리 칼럼에 기고된 글입니다.)

‘열녀박씨 계약결혼뎐’, 조선도 현대도 일하는 이세영이 빛나는 이유

열녀박씨 계약결혼뎐

“박연우란 이름은 늘 내 것이 아니었소. 그래서 부러웠어요. 새 조선 사람들이 누구든 제 이름으로 사는 것이.” MBC 금토드라마 <열녀박씨 계약결혼뎐>에서 박연우(이세영)가 그렇게 말할 때 불쑥 이세영이 인상적인 연기를 펼쳤던 <옷소매 붉은 끝동>의 성덕임이 겹쳐진다. “여기선, 내가 나로서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어. 설령 사소한 거라도 좋아. 선택이란 걸 하며 살고 싶어.” 어린 성덕임은 자신의 이름으로 서는 주체적 삶에 대한 갈망을 그렇게 표현한 바 있다. 

 

<옷소매 붉은 끝동>에서 성덕임이 이산 정조(이준호)의 구애를 받으면서도 세 번이나 거절의 의사를 표한 이유는 ‘자신을 잃지 않으려’ 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자신의 주체성을 드러내며 자신을 거부하는 성덕임에 오히려 이산은 더 애틋해지고 마음을 빼앗기게 된다. <열녀박씨 계약결혼뎐>에서도 마찬가지다. 조선에서 현대로 훌쩍 넘어온 박연우가 자수에 남다른 능력을 보이고, 그것으로 계약결혼을 하게 된 강태하(배인혁)를 오히려 돕는 존재가 되면서 이 인물은 점점 빛나기 시작한다. 

 

사실 <열녀박씨 계약결혼뎐>의 초반부는 다소 밋밋하게 느껴졌던 게 사실이다. 조선에서 혼례를 치르지만 첫날밤 남편을 잃은 박연우가 누군가에게 보쌈을 당해 우물에 내던져지는 그 상황 속에서 이 인물의 능동적인 이야기는 별로 등장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우물을 통해 마치 시간의 터널을 빠져나오듯이 현대로 들어오게 된 박연우 역시 이 낯선 세계 앞에 자기 존재의 가치를 드러내기 어려웠다. 

 

그래서 현대에 오게 되어 모든 게 낯선 상황에서 벌어지는 해프닝들이 코미디로 주로 엮어졌다. 초코파이에 매료당하고, 문도 차문도 제대로 못여는 모습이나, 조선 사회와는 너무나 다른 일상 앞에 놀라고 무너지는 모습들이 그것이다. 게다가 돈이 없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이 곳에서 집도 가족도 하나 없는 이 인물이 어찌 자신의 존재를 매력적으로 드러낼 수 있을까 싶었다. SH서울의 부대표인 강태하(조선에서의 죽은 남편과 얼굴도 이름도 같은)의 천거를 받는 조선에서 온 신데렐라 정도랄까. 

 

하지만 조선에서의 어머니와 똑같은 얼굴을 한 한복 브랜드 미담의 이미담(김여진) 대표를 만나고, 그로부터 자신의 재능을 드러내기 시작하면서 박연우의 매력과 존재감은 빛나기 시작한다. 조선에서 다름 아닌 어머니에게 배웠던 자수 실력과 남다른 안목으로 한복 디자이너로서의 능력을 발휘하기 시작한 것. 이미담은 그 능력을 알아보고 박연우의 든든한 지지자가 되고, 박연우는 이 능력으로 호시탐탐 강태하를 밀어내려는 민혜숙(진경) SH서울 대표의 공격을 막아낸다. 

 

<옷소매 붉은 끝동>에서도 그러했지만, <열녀박씨 계약결혼뎐>에서도 이세영은 일할 때 가장 빛나는 캐릭터를 연기한다. 그가 연기한 성덕임이나 박연우 모두 일할 때 더 빛나는 건 이 남녀 간의 사랑을 담는 멜로 속에 그저 매몰되는 캐릭터를 더 이상 우리가 매력적으로 느끼지 않기 때문일 게다. 사랑에 목매는 게 아니라, 자기만의 영역이 존재하고 거기서 자신의 이름으로 당당히 설 수 있는 존재여야 지금의 대중들에게 사랑받는다는 이야기다. 

 

<열녀박씨 계약결혼뎐>은 그래서 이세영이 전면에서 끌고 가는 드라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의 매력이 폭발하는 순간에 시청자들도 이 드라마에 반색하는 중이기 때문이다. 5.6%(닐슨 코리아)로 시작해 박연우가 드디어 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6회에 9.6%로 시청률이 급등한 게 우연이 아니다. 웃음을 주면서도 사랑스럽고 그러면서도 당당하게 자신을 드러내기 시작한 이세영의 매력에 <열녀박씨 계약결혼뎐>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사진:MBC)

‘혼례대첩’, 이 퓨전사극은 무엇이 달라 정주행을 부르나

혼례대첩

퓨전사극은 뻔하다? 글쎄 적어도 KBS 월화드라마 <혼례대첩>은 예외다. 아니 예외 정도가 아니라 이 퓨전사극은 과거의 것들과 확연히 선을 긋는 진화의 면면들을 갖췄다. 거기에는 몇 가지 근거들이 있다. 

 

그 첫 번째는 ‘옛이야기 사극’을 흥미롭게도 복원해냈다는 점이다. 사극하면 언제부턴가 옛이야기가 아니라, 역사와 관련된 어떤 것이라는 경향이 생겼다. 역사를 제대로 다루는 정통사극, 역사와 상상력을 적절히 섞은 퓨전사극, 현대적 장르를 옛 역사적 시공간에서 재해석하는 장르사극 등등. 그래서 역사에 무게를 주면 무거워지고 상상력에 무게를 주면 가벼워지는 방식의 사극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과거에 사극 중에는 <전설의 고향>처럼 옛이야기나 설화 등을 마치 할머니가 들려주는 것처럼 풀어내는 사극도 있었다. <혼례대첩>은 바로 그 “옛날 옛적에...” 하며 전개되는 옛이야기 같은 면모들이 있다. 등장하는 임금(조한철)이 그저 ‘임금’으로 불리는 것도 그렇고, 특히 ‘맹박사댁 늙은 아씨들’ 결혼시키기 서사 같은 게 그렇다. 또 혼례 첫날 공주가 사망하는 사건을 겪어 재가도 못하고 출사도 못하게 되어 ‘울분남’이 된 심정우(로운)의 이야기도 그런 푸근하면서도 흥미진진한 옛이야기의 느낌을 준다. 

 

이 옛이야기 같은 사극은 그래서 편안하게 볼 수 있으면서도, 마치 심정우에게 갑자기 닥친 저주를 정순덕(조이현)이라는 인물과 만나 인연을 엮어가며 풀어내는 수수께끼 같은 재미가 있다. 겁도 많고 무술 실력은 아예 없지만 뭐든 글로 쉽게 배우고 익히는 심정우는 그래서 천재과에 속하는 주인공으로 복잡미묘한 사건들을 풀어나간다. 

 

결국 정순덕이 좌상 조영배(이혜영)의 며느리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래서 좌상이 역모를 한 사실을 알면서도 그저 살인죄로 처벌하기 위해 임금을 설득시키고 또 묘안을 제시하는 심정우는 풀어야할 난관들을 재치와 슬기로 풀어내는 옛이야기 주인공을 닮았다. 그는 조선사회의 완강한 유교적 문화 속에서 울분남이 된 자신이 양반집(그것도 좌상댁의) 과부 며느리인 정순덕과의 사랑을 이룰 수 있는 묘안을 찾아내야 하고, 또 공주의 죽음과 관련된 미스테리를 풀어냄으로써 임금의 정적들을 몰아내야 한다. 그 과정 하나하나가 몰입감을 줄 수밖에 없다. 

 

두 번째는 이 이야기를 구현해내는 데 있어서 미학적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아름다운 미장센을 사극에 부여했다는 점이다. 이 작품은 모든 시청자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하듯 ‘눈이 즐거운’ 사극이다. 연등회나 단오날 풍경은 그 아름다운 등불들과 그네 타고 씨름하는 풍속들이 마치 한 폭의 동양화를 보는 것처럼 드라마에 담겨졌다. 색감이 뛰어난데다, 조명이 더해지고 게다가 색색의 한복들이 멋을 살린 이 드라마의 미적인 연출은 아마도 해외에서 보면 반색할만한 것일 게다. 당장 한국에 와서 한복을 입어보고 고궁을 걸어보고 싶을 만큼. 

 

이러한 미적인 완성도를 더해 넣자, 퓨전사극이라고 하면 어딘지 가볍게 느껴졌던 것들이 무게감을 갖게 됐다. <혼례대첩>은 물론 보는 이들을 계속 미소짓게 만드는 코미디적 요소들이 곳곳에 등장하지만, 심정우와 정순덕이 때론 진지해지고 애틋해지는 순간에는 아름다운 한옥 정경과 어우러져 기막힌 심도를 만들어낸다. 고즈넉한 한옥 대청마루에 앉아 고개를 한껏 숙인 소나무를 바라보는 두 사람의 모습은 그래서 그 정조까지 담아낸 한 폭의 풍속화 같은 느낌을 준다. 

 

세 번째는 현대적인 연출과 균형감 있는 연기자들의 연기다. 이 드라마는 특이하게도 매회 도입 부분에 현대적인 로맨틱 코미디에서나 자주 쓰던 ‘인터뷰 형식’의 연출이 등장한다. 카메라를 바라보며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는 이 연출방식은, 그 회차에 벌어질 사건 속에서 이 인물들이 어떤 역할을 할 거라는 걸 암시하면서, 동시에 이 작품이 사극이긴 하지만 현대적인 장르적 해석이 들어간 작품이라는 걸 분명하게 해준다. 또 연등회에서 ‘광부1호’ ‘광부2호’ 같은 지칭이 등장하는 대목은, <짝> 같은 연애 리얼리티에 대한 패러디로서 이 작품이 가진 연출의 발랄함을 드러내기도 한다. 

 

이러한 자유자재로 풀어내는 연출의 묘미 위에서 배우들의 연기도 균형감 있는 앙상블을 만들어낸다. 박씨부인 역할의 박지영이 드라마의 긴장감을 계속 이어가는 강력한 카리스마 연기를 보여준다면, 임금 역할의 조한철은 준엄한 권위를 내보이다가도 순식간에 긴장을 풀어냄으로써 웃음을 터트리게 만드는 양면을 쥐락펴락 연기해낸다. 맹박사댁 조씨부인(최희진)이 엄격한 자애로움을 드러낸다면, 그 딸들인 맹하나(정신혜), 맹두리(박지원), 맹삼순(정보민)은 저마다 톡톡 튀는 개성으로 시청자들을 기분좋게 만든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 칭찬받아 마땅한 연기자들은 주인공들이 로운과 조이현이 아닐 수 없다. ‘안구 정화’의 배우로 ‘얼굴 공격’만으로도 팬들을 반색하게 만드는 로운은 이 작품에서 진지함과 장난끼 가득한 양면을 보여주면서 연기의 폭을 넓혔다. ‘능청스러움’을 더한 연기는 앞으로 이 연기자의 연기에 보다 다채로운 면들을 만들어줄 것으로 기대된다. 또 <지금 우리 학교는>에서 주목받았던 조이현은 이 작품을 통해 한없이 귀여우면서도 주체적인 면과 동시에 양반가 며느리로서의 기품까지 역할에 부여하는 연기를 보여줬다. 

 

그래서일까. <혼례대첩>을 애초 그저 그런 퓨전사극이라 여겼다 막상 보고 난 이들이 정주행을 하게되는 건 당연해보인다. 이건 그저 그런 퓨전사극이 아니라, 퓨전사극의 진화를 보여주고 있어서다. 무엇보다 역사의 진지함에 지나치게 매몰되지 않고, 또 그렇다고 상상력의 가벼움으로 한없이 휘발되지 않는 ‘옛이야기’ 같은 매력을 복원한 건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차근 차근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한 그 맛이 오랜만에 떠올랐으니. (사진:KBS)

‘사랑한다고 말해줘’, 신현빈의 연기와 정우성의 그림이 말해주는 것

사랑한다고 말해줘

“공연하면서 알았어요. 대화가 잘 통하지 않는데 왜 위로받는 느낌이 드는지. 이렇게 내가 별거 아닌 말을 해도 한 단어, 한 단어 놓치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들어주는 사람이니까.” 지니TV 오리지널 드라마 <사랑한다고 말해줘>에서 정모은(신현빈)은 연극을 보러와준 차진우(정우성)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다친 배우 대신 갑작스레 오르게 된 무대. 정모은은 그 낯설음에 불편함을 느낀다. 그 순간 객석에 있는 차진우가 정모은에게 수어로 말한다. ‘잘 해낼 거라고 믿어요’라고. 정모은은 한결 편안해진 모습으로 연기를 하게 된다. 

 

이 장면은 <사랑한다고 말해줘>가 그리고 있는 사랑과 소통의 이야기의 특별한 결을 보여준다. 소리 내어 말하는 것이 당연한 사람인 정모은과 들리지 않는 것이 당연한 사람인 차진우의 사랑. 그들은 너무나 다른 세계에 살고 있다. 그러니 그 일상적 관계조차 편할 수가 없다. 정모은이 애써 배운 어설픈 수어로 소통하려 해도 엇나가기 일쑤고, 보다 정확한 표현을 전하기 위해 핸드폰에 글자를 찍어가며 소통해야 한다. 

 

하지만 사람이 사람을 만나 사랑하고 소통하는 것이 반드시 말을 통한 표현일 필요는 없다고 이 장면은 말해준다. 정모은의 말처럼, 듣지 못하는 차진우는 그렇기 때문에 더 열심히 정모은이 말할 때 그 입모양을 읽으려 집중한다. 한 단어 한 단어를 읽어내려 한다. 말이 너무나 익숙해 아무렇게나 내뱉고 아무렇게나 지나치곤 하는 우리에게 차진우의 ‘애쓰는 집중’은 그 마음을 읽게 만든다. 한 단어도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을. 

 

<사랑한다 말해줘>가 정모은이라는 인물을 굳이 스튜어디스 일을 포기하고 대신 연기의 꿈을 시작하려는 배우로 세운 것도 그런 의미가 있다. 그는 배우라고는 하지만 단역, 엑스트라로 불린다. 그래서 배역의 이름도 없고 심지어 대사도 거의 없다. 그러니 그 세계에서는 마치 차진우처럼 침묵 속에 있는 사람 같다. 대사가 없어도 배역의 이름도 없어도 열심히 자기 역할을 해내려는 마음이 있고, 그렇게 꿈을 향해 가는 진심이 있지만 그걸 알아주는 이는 많지 않다. 

 

하지만 듣지 못하는 침묵의 세상에 사는 차진우는 정모은의 연기를 말이 아닌 몸의 언어로 그 마음을 들을 줄 아는 사람이다. 그가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은 그래서 말이 아니다. 누군가의 몸이 하는 말을 애써 들어준다. 제주도 어느 바닷가 마을에서 하염없이 바다를 보다가 끝내 생을 마감한 어느 사내가 온 몸으로 전하는 말을 들을 줄 알고, 몸이 아파 친구와 함께 학교 가는 게 소원이었지만 끝내 먼저 세상을 떠나버린 아이가 생전에 전한 말을 들을 줄 안다.

 

그는 부재한 것이 없는 게 아니라는 걸 알고 있다. 침묵한다고 말이 없는 것이 아니고, 하지 못한다고 하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게 아니라는 걸 안다. 또 사라졌다고 사라진 게 아니라는 것도. 그래서 이제는 부재한 그들을, 그들이 평소 마음이 머물던 그 곳에 벽화로 되살려 놓는다. 그 마음들이 영원히 존재한다는 걸 새겨 넣는다. 한 단어 한 단어 애써 들으려하듯, 붓 한 획 한 획에 애를 쓰며.

 

하지만 세속적인 세상은 눈에 보이는 것들로만 함부로 재단하고 평가하고 차별한다. 오랜만에 스튜어디스 제복을 입고 공항에서 그 역할을 연기하는 정모은을 본 옛 회사 동료 스튜어디스는 단역에 대사 하나 없는 그 모습을 보고 실망한다. 그 모습 이면에 존재하는 정모은의 연기에 대한 꿈이나 노력 같은 걸 보지 못한다. 볼 수 있지만 보지 못하고 들을 수 있지만 듣지 못하는 세상이다. 

 

반면 진정한 예술의 세계는 이런 속물적 관점을 벗어나 보지 못해도 볼 수 있고 듣지 못해도 들을 수 있다. 소리 내어 말하는 것이 당연한 사람과 들리지 않는 것이 당연한 사람이 만나 그 불편할 수 있는 장벽을 넘어설 수 있는 건 그래서 이들이 세속적인 세상 바깥으로 나와 있기 때문이다. 굳이 드라마가 정모은을 연기의 세계에 꿈을 가진 인물로 세우고, 차진우를 그림 그리는 사람으로 세운 이유다. 

 

예술은 속물적 세상에 무뎌진 우리의 감각들을 다시금 깨워주는 힘이 있다. 그래서 정모은과 차진우가 하는 사랑과 소통의 과정은 바로 그 예술이 가진 힘을 보여준다. 두 사람이 서로 만나고 마음을 나누고 사랑하는 과정을 통해, 속물적 세상에 무뎌졌던 우리의 눈과 귀를 다시 열어주고 단지 눈에 보이는 것과 귀에 들리는 것이 아니라, 그 뒤에 놓여진 마음들을 읽게 해준다. 사랑스런 것들 앞에서조차 그걸 보지 못하고 사랑한다 제대로 말하지 못하는 우리에게 새로운 눈과 귀를 열어준다. (사진:지니TV)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