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껏 사랑하세요... 로운과 조이현이 선사한 크리스마스 선물 같은 엔딩

혼례대첩

‘마음껏 사랑하세요.’ KBS 월화드라마 <혼례대첩>은 엔딩과 함께 그런 자막을 덧붙였다. 멋드러진 성곽 위에서 서로의 생사와 사랑을 확인한 정우(로운)와 순덕(조이현)이 서로를 꿀 떨어지는 눈으로 바라볼 때 카메라가 뒤로 쭉 빠지며 해지는 그 아름다운 전경을 담는다. 슬슬 날아다니는 눈발. 엔딩크레딧이 오르며 그간 16회를 달려오며 시청자들을 눈호강시켰던 달달하고 코믹하기도 한 명장면들이 스틸컷으로 보여진다. 

 

그런데 거기에 흐르는 엔딩음악이 어딘가 크리스마스에 어울릴 법한 곡이다. 종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고 창밖으로는 눈발이 날릴 것 같은 느낌의 노래. 마치 현대물의 로맨틱 코미디 엔딩에서 종종 등장하는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퓨전사극인데 크리스마스 분위기라니. 마침 종영일이 크리스마스라 그렇게 선물처럼 맞춘 엔딩일 테지만, 어딘가 이 독특한 퓨전사극에 이 음악이 잘 어울리게 느껴진다. 조선판 로맨틱 코미디의 가능성을 충분히 느끼게 해준 작품이 아닌가. 

 

결국 엇갈렸던 인연의 실타래가 풀리고 저마다 연모했던 이들과 이뤄져 달달한 신혼의 단꿈을 꾸는 모습은 크리스마스 시즌이면 찾아오곤 했던 <러브 액추얼리> 풍의 로맨틱 코미디를 떠올리게 한다. 좌상집 딸 조예진(오예주)은 어머니 박씨부인(박지영)이 가문을 위해 결혼시키려던 병판집 자제 이시열(손상연) 대신 자신이 연모하는 윤부겸(최경훈)과 이뤄져 순덕의 아들 근석(김시우)에게 글공부를 해주는 광경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정순구(허남준)와 혼례를 치른 맹삼순(정보민)은 그가 너무 잘 해줘 글이 안써진다며 귀여운 투정을 부린다. 

 

입만 열면 막말이 튀어나오던 맹두리(박지원)는 마음이 갔던 병판댁 자제 이시열과 혼인해 여전히 걸쭉한 입에도 달달해진 신혼의 한가로운 나날을 보여주고, 목숨을 건 가슴 절절한 사랑을 해왔던 여주댁(박환희) 역시 딸이 흐뭇하게 보는 가운데 안동건(김동호)과 조촐한 혼례를 치른다. 그리고 왕의 사약을 받고 죽은 줄 알았던 정우는 깨어나 역시 자진한 줄 알았던 순덕을 다시 만나 왕이 허락한 광부 원녀 소탕(?)을 위한 암행길에 나선다. 이보다 완벽한 로맨틱 코미디의 엔딩이 있을까.  

 

그런데 잘 들여다보면 <혼례대첩>이 담은 로맨틱 코미디 서사는 현대물의 그것들을 조선판으로 그려낸 것들이 적지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좌상집 딸 조예진(오예주)이 혼롓날 예복을 입은 채 도주하는 장면은 결혼식날 웨딩드레스를 입은 채 진짜 사랑하는 연인을 향해 달려가는 신부가 떠오른다. 연애소설을 쓰던 맹삼순과 아픈 상처 때문에 연애에는 담을 쌓고 살던 정순구가 서로의 연모하는 마음을 확인하는 과정도 마찬가지다. 사실 잘 들여다보면 돌싱인 정우와 순덕이 남을 연결해주는 중매를 하다 저들끼리 연모하게 되는 것도 현대물 로맨틱 코미디에서 익숙한 설정이다. 

 

하지만 이 익숙함이 조선사회라는 시공간에서 펼쳐지고, 그 시공간이 갖는 풍속과 문화들을 극적인 서사로 그려내면서 동시에 아름다운 연출로 그려낸 것이 <혼례대첩>의 차별점이었다. 물론 꽤 많은 퓨전사극들이 이런 시도들을 해왔지만, <혼례대첩>이 달랐던 건 그 완성도였다. 따라서 이 작품이 보여준 건 완성도만 높다면 조선판 로맨틱 코미디가 갖는 남다른 묘미와 아름다움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연등들이 곳곳에 빛을 드리우는 조선의 밤거리에서 아름다운 한복과 정취 가득한 갓을 쓴 청춘 남녀들이 만남을 갖는 광경이나, 마치 신윤복의 그림 ‘월하정인’의 한 장면을 보는 것만 같은 담벼락을 배경으로 수줍게 만나는 조선의 청춘들을 담은 연출들, 또 마치 김홍도의 풍속화 속 한 장면처럼 단오 풍속의 정경 속조선 특유의 축제 분위기가 만들어내는 흥에 조선 청춘들의 설레는 마음이 느껴지는 장면들이 그렇다. 이런 그림들은 조선이라는 배경이 아니면 만들어질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마음껏 사랑하세요’라는 자막과 함께 크리스마스 선물 같은 엔딩으로 마무리된 <혼례대첩>은 조선판 로맨틱 코미디의 가능성을 분명히 보여준 면이 있다. 물론 그 그림의 완성은 로운과 조이현 같은 아름답고 귀여운 배우들의 호연이 가능하게 한 것이지만, 이런 과감하면서도 정성이 느껴지는 섬세한 연출 또한 칭찬 받아 마땅하다. 역사의 무게감을 훌훌 털고 상상력을 마음껏 펼쳐낸 조선판 로맨틱 코미디 <혼례대첩>은, 마지막 자막처럼 시청자들 역시 마음껏 사랑하게 만든 작품으로 기억될 것으로 보인다. (사진:KBS)

KBS 월화드라마 ‘혼례대첩’, 웰메이드 사극의 저력

혼례대첩

[엔터미디어=정덕현] “가슴이란 본디 무서워도 뛰고 한낱 북소리에도 뛰는 것 아닙니까?” 순덕(조이현)을 연모하는 마음 때문에 혹여나 그녀가 시어머니인 박씨부인(박지영)에게 해를 당할까 두려운 정우(로운)는 일부러 거짓말을 한다. 그의 가슴이 뛴 건 순덕에 대한 설레는 마음 때문이다. 두려움이 있다면 그건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녀를 위해서일 뿐이다. 

 

KBS 월화드라마 <혼례대첩>을 보는 시청자들의 마음이 어느새 이와 같아졌다. 이제 마지막 회를 남기고 있는 지금, 시청자들의 가슴은 두근두근한다. 그건 여러 가지 이유 때문이다. 정우와 순덕의 애틋한 사랑을 마치 내 일인 듯 빠져들어 보는 마음이 그렇고, 이들에게 닥칠 위기의 순간을 바라보는 아슬아슬한 마음이 그렇다. 

 

세자(홍동영)가 참관하는 맹박사댁 딸들과 좌상댁 딸 조예진(오예주)의 혼례는 혼돈 그 자체였다. 맹두리(박지원)의 신랑감 광부 16호 한종복(고덕원)은 나타나지 않았다. 이 혼례를 준비한 정우를 시기하는 판윤 김문건(김다흰)의 간계로 다른 여인과 혼례를 치러버린 것. 또 병판댁 이시열(손상연)의 신부감이었던 조예진은 끝내 도망쳐 자신이 연모하던 윤부겸(최경훈)을 찾아갔다. 그리고 거기서 두 사람은 서로의 마음을 확인했다. 

 

결국 맹두리의 신랑감과 이시열의 신부감이 사라진 상황. 합동 혼례는 깨질 위기에 처했지만 세자까지 참관하는 혼례식을 박씨부인은 어떻게든 강행하려 한다. 마침 맹두리와 이시열이 서로를 연모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순덕이 방법을 찾아낸다. 두 사람을 대신 엮어주고, 빈 자리는 다른 사람이 대행하기로 한 것. 첫날 밤에는 맹두리와 이시열을 한 방에 그리고 도망친 조예진과 윤부겸을 찾아와 함께 하게 함으로써 혼례를 되돌릴 수 없게 만들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조예진과 윤부겸을 찾지 못하게 되자 대신 혼례에 서게 된 정우와 순덕은 결국 합방까지 하게 되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런 사실을 간파한 판윤 김문건이 방마다 문을 열어 확인하려 하고 정우와 순덕이 대신 혼례를 치른 사실 또한 발각될 위기에 처했다. 과연 정우와 순덕은 이 위기를 넘기고, 끝내 사랑을 이룰 수 있을까. 

 

시청자들의 가슴을 뛰게 만드는 건 위기감을 고조시키는 예고편이다. 거기에는 임금의 사약을 받는 정우와 박씨부인이 주는 은장도를 받아드는 순덕의 모습이 비춰졌다. 두 사람의 비극적인 죽음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하지만 시청자들 그 누구도 이런 결말이 나올 거라 기대하는 이는 없다. 아마도 죽음을 가장해 두 사람의 새 삶이 이어질 거라는 기대가 더 크다. 조선사회에서 정우와 순덕의 사랑이 이뤄질 수 있는 길이란 그 방법 밖에 없지 않은가. 

 

어느 정도는 예상되는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고 있지만 <혼례대첩>이 거둔 성과는 분명해 보인다. 현재까지 5%(닐슨 코리아)의 높은 최고시청률을 기록했고, 화제성도 남달랐으며 무엇보다 호평이 이어졌다. 퓨전사극이라고 하면 어딘가 가볍게 보이던 선입견을 이 작품은 완성도 높은 웰메이드 작품으로 뛰어넘었다. 미학이라고 해도 좋을 법한 우리 사극의 아름다움을 예술적으로 그려냈다고나 할까. 

 

이런 완성도 속에서 로운과 조이현의 존재감은 더더욱 빛났다. 시청자들은 드라마를 보며 느끼는 가슴 두근거림이 드라마가 그리고 있는 예쁜 사랑이야기만이 아니라 이를 연기한 로운과 조이현 덕분이라는 이야기도 내놓는다. 그만큼 이 작품의 설렘에 있어서 이들의 지분이 분명했다는 반증이다. 

 

문득 궁금해진다. 올해 KBS 연기대상의 무대에 로운과 조이현이 서게 될지. 애초 KBS 연기대상은 최근 화제가 된 <고려거란전쟁>의 독무대가 되지 않을까 하는 예상들이 나왔지만, 연말 복병처럼 <혼례대첩>이 막강한 존재감으로 떠오르고 있다. 시청자들에게 설렘을 선사한 로운과 조이현이 어떤 모습으로 연기대상에 서게 될지 자못 궁금하다. (사진:KBS)

‘유퀴즈’, 페이커의 말이 이 프로그램의 가야할 길처럼 들린 이유

유 퀴즈 온 더 블럭

“우승컵을 따겠다는 목표보다는 최선을 다하겠다는 목표가 있었고 결승 끝나고 인터뷰에서도 3대0으로 졌어도 웃는 모습으로 그만큼 경기를 즐기자는 생각으로 임했다 말씀 드렸는데 그런 목표가 있었기 때문에 우승은 사실 뭐 팬분들이 원하는 거니까... 그런 면에서 저는 좀 기뻤죠.” 

 

페이커(이상혁)가 tvN <유퀴즈 온 더 블럭>에 나왔다. 3년 전에도 출연한 적이 있었지만 그 때와 지금은 상황이 또 달라졌다. 2023 리그 오브 레전드 월드챔피언십 우승. 누적 시청자가 4억명이고 마지막 결승에는 전 세계 1억명 시청자가 동시 접속을 했을 정도로 세상이 집중했던 그 경기에서 그가 이끈 T1이 우승을 차지했다. 롤을 잘 모르는 이들조차 응원전에 참여했고, 광화문광장에는 월드컵도 아닌데 1만5천명이 모여 야외에서 응원전을 펼치기도 했다. 그러니 이 엄청난 관심이 집중됐던 경기에서 우승을 차지하고 돌아온 페이커의 3년 만의 재출연이 각별할 수밖에. 

 

페이커는 그러나 게임에서만 빛나는 존재가 아니었다. 그가 그렇게 게임을 잘하게 된 데는 단단한 마인드와 생각들이 존재한다는 걸 <유퀴즈>에서의 이야기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경기 후 카메라 감독님이 패배한 상대팀을 향해 엄지를 내리는 포즈를 해달라고 요청한 일이 있었는데 페이커가 정반대로 ‘엄지척’을 했던 상황에 대해 유재석이 묻자 내놓은 답변에서부터 그가 얼마나 타인을 배려하고 생각하는가가 묻어났다.  

 

아마도 자신이 엄지척했던 이유만 얘기했다면, 자칫 엄지를 내리는 주문을 했던 카메라 감독님이 오해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페이커는 “사실 엄지 내리는 포즈는 스포츠에서 자주 쓰는 포즈”라며 그래서 해도 괜찮았다고 먼저 전제함으로써 카메라 감독님의 의도를 오해받지 않게 한 후, “경기 자체가 재밌어서” 굿 게임의 의미로 엄지척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려줬다. 

 

게이머 하면 떠올리는 이미지가 하루종일 게임만 하는 모습이지만 그것이 편견이라는 것도 그는 알려줬다. ‘평정심’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하는 그는 게임을 마인드 스포츠라 불렀다. 그래서 롤을 잘 할 수 있는 방법이 뭐냐는 질문에 자신은 책이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책을 통해 어떤 마음 자세를 가져야 하는가 태도를 가져야 하는가 하는 것들을 생각한다는 거였다. 

 

그 말이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는 건, 이번에 손목 부상으로 한 달 간 쉬게 됐던 상황에 대해 물어봤을 때 했던 답변을 통해 알 수 있었다. “팀의 문제점이나 개선점을 제 부상으로 인해서 많이 볼 수 있어서 그런 것들은 오히려 긍정적으로 많이 된 것 같아요.” 어찌 보면 자신은 물론이고 팀의 위기일 수 있는 그 상황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는 관점. 그것은 아마도 책을 통해 얻어진 것이라 여겨져서다. 

 

이 날 페이커의 <유퀴즈> 출연이 특별하게 느껴진 건 ‘최고의 위치’에 선 이가 보여주는 삶의 태도가 어떤 품격을 만드는가를 그가 보여줬기 때문이다. 그는 솔직하게 어렸을 때는 돈을 많이 벌고 싶어서 게임을 했다고 했다. 하지만 그 목표를 달성하고 나서는 명예가 목표가 됐다고 했다. 그렇지만 커리어도 쌓이자 동기부여를 위해 새로운 목표가 필요해졌는데 그래서 세운 목표가 ‘팀을 위한 우승’이었다고 했다. “저 스스로보다는 다른 사람을 위한 목표가 있으면 계속해서 내가 그 목표를 따라갈 수 있겠구나 생각했습니다.”

 

이 말은 <유퀴즈>나 이 프로그램을 이끌어가는 유재석에게도 인사이트를 주는 이야기가 아닐 수 없었다. 어찌 보면 <유퀴즈>라는 프로그램도 이 프로그램을 이끄는 유재석도 예능에 있어서 가장 높은 위치에 서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게다. 일반인도 유명해질 정도로 영향력이 있는 프로그램이고, 유재석이야 두말 할 필요가 없는 자타공인 유느님이니 말이다. 스스로가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한 목표를 세운다는 페이커의 말은 그래서 하나의 삶의 지혜처럼 들렸다. 

 

또 책을 보는 것만큼 사람을 만나는 것도 좋더라며 “사람도 책과 비슷하다”고 한 페이커의 말 역시 <유퀴즈>와 너무나 어울리는 말이다. 사람을 만나는 프로그램이 아닌가. 하나의 책을 들려주듯, 어떤 책을 들려줄 것인가를 심사숙고하고 그 책을 어떤 자세로 읽을 것인가를 고민해온 것이 이 프로그램이 걸어왔던 길이다. 물론 초창기의 모습에서 조금은 빗겨나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보다 유명인이나 연예인들의 이야기가 많아진 아쉬움이 있지만. 

 

무엇보다 <유퀴즈>가 가야할 방향에 대한 덕담처럼 들린 페이커의 말은 ‘겸손’에 대한 이야기였다. “겸손이 가장 중요하다고 느끼는 게 겸손한 자세로 저 사람이 어떤 의도로 말을 하는 구나를 거름없이 들을 수 있어야지 더 많이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예를 들면 물병이 있는데 이렇게 반 정도가 차 있으면 반 밖에 못 담잖아요. 근데 내가 비어있는 물병이고 그거를 다 받아들일 수 있다라고 생각을 하면 더 많이 배울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렇게 느껴서 겸손이 제일 중요한 것 같습니다.” 이미 가득 채워진 잔은 더 이상 채워질 수 없다. 화려하게 채우려 하기보다 오히려 비워내고 맞아들이려 하는 자세가 더 많은 걸 담아낼 수 있다는 페이커의 말을 <유퀴즈>는 경청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사진:tvN)

‘이재, 곧 죽습니다’, 재난부터 학원물, 조폭누아르, 멜로까지 없는 게 없네

이재, 곧 죽습니다

이 작품 신박하다. 시작은 끝내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 취준생 이재(서인국)의 아픔을 다루는 사회극처럼 보이더니, 금세 저 세상이 등장하고 다짜고짜 나타난 죽음(박소담)이 그에게 12번 죽을 기회(혹은 살 기회)를 제공하고, 그래서 다른 이의 삶으로 회귀해 벌어지는 다양한 사건들이 펼쳐진다. 추락하는 비행기에서 살아남으려 안간힘을 쓰는 삶 속으로 들어가기도 하고, 끝없는 학교폭력 앞에 죽고 싶어하는 학생의 몸에 들어가기도 하며, 보스의 돈과 여자를 훔쳐 추격을 당하는 조폭에, 돈 때문에 뺑소니범 대신 감옥에 들어간 격투기의 꿈을 가진 사내의 몸에 들어가기도 한다. 

 

티빙 오리지널 드라마 <이재, 곧 죽습니다>는 이처럼 회귀물을 죽음과 환생이라는 틀로 변주했다. 사는 게 더 무섭고, 죽는 건 무섭지 않다며 스스로 극단적인 선택을 한 취준생 이재에게 죽음이 얼마나 무서운 건가를 새삼 알려주겠다며 나타난 죽음이라는 존재가 그를 죽을 위기에 처한 이들의 몸으로 12번 환생시킨다는 설정이다. 그러니 이 작품은 적어도 12가지의 ‘위급한 상황’이 펼쳐지게 되는 셈이다. 그 위급한 상황은 하나하나가 새로운 장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다채롭다. 

 

추락하는 비행기의 긴박한 상황이 펼쳐지는 첫 번째 환생이 ‘재난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면, 낙하산도 없이 하늘에서 떨어져 목표지점에 도달하면 거액의 돈을 벌 수 있는 상황이 전개되는 두 번째 환생은 ‘모험극’과 ‘코미디’가 엮였다. 지독한 학교폭력을 당해 죽을 결심까지 했던 학생으로 환생해 보기좋게 자신을 괴롭히던 가해자에게 시원한 한 방을 먹이는 세 번째 환생이 ‘학원 액션물’의 묘미를 살렸다면, 보스의 돈과 여자를 훔쳐 추격당하는 네 번째 환생은 숨돌릴 틈 없이 전개되는 오토바이 추격 액션이 돋보이는 ‘조폭 누아르’다. 

 

이처럼 매번 새로운 삶 속으로 들어와 죽음의 위기에 처한 그 삶을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서사는 다채로운 장르들을 한 작품으로 즐길 수 있게 해준다. 이재가 환생한 몸은 저마다 다르다는 점에서 연기자들도 계속 변주된다. 서인국이 이재라는 인물로 그 중심에서 연기를 펼친다면, 여기에 최시원, 성훈, 김강훈, 장승조, 이재욱, 이도현 등등 다양한 배우들이 이재가 환생한 몸 역할을 연기한다. 

 

여러 배우들, 그것도 호화 캐스팅이 총동원되었다는 점은 여러 장르를 가진 독자적인 여러 작품들을 보는 맛을 제공한다. 하지만 결국 지옥 앞에 선 이재라는 인물로 수렴되는 서사구조는 이러한 다채로운 재미를 흩어지지 않고 하나의 일관된 서사로 묶어주는 힘을 만들어준다. 게다가 각각의 환생한 인물들이 저마다 다른 삶을 살아가는 그 삶 속에 이전 삶에 이미 인연을 맺은 인물이 들어오기도 하는 점은 흥미롭다. 

 

예를 들어 세 번째 환생에서 등장했던 학교폭력 가해자는 다섯 번째 환생에 또 등장하는데, 감방에서 싸움짱인 이재 앞에 그 가해자는 오히려 거꾸로 당하는 입장이 된다. 회귀물이 갖는 사이다 카타르시스 복수 서사가 극대화되는 설정이 아닐 수 없다. 이처럼 <이재, 곧 죽습니다>는 죽음과 환생을 12번 반복하는 회귀물의 틀을 가져와 그 다양한 변주의 재미를 극대화하면서,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어째서 삶이 더 중요한가를 이야기한다. 

 

다섯 번째 환생에서 태상(이재욱)의 몸으로 환생한 이재에게 감방동료가 감옥에 들어온 걸 후회하냐고 묻는 질문에 그가 하는 답변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처음에는 엄청 억을했는데 스스로 인생 망쳐버리고 죽음이란 감옥에 갇히게 된 걸 후회해. 너무 늦게 알았는데.. 지옥을 보고 나니까 살아있는 거 자체가 기회였더라.“ 

 

결국 <이재, 곧 죽습니다>는 절망적인 상황에 죽음까지 생각하는 현실 앞에 진짜 지옥이 무엇인가를 12번의 죽음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그건 허망한 죽음도 있지만 못내 안타까운 죽음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이든 사는 것이 죽는 것보다는 낫고, 사는 것 자체가 하나의 기회라는 걸 드라마는 에둘러 말하고 있다. 눈이 핑핑 돌아가는 다채로운 장르의 화려함 속에서도 밑그림에 깔린 단호한 메시지가 느껴지는 이유다. (사진:티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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