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아인의 무엇이 그의 해를 만들었을까

 

2013<장옥정, 사랑에 살다>에 유아인이 이순 역할을 연기할 때까지만 해도 솔직히 이 배우가 이토록 급성장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물론 <완득이><깡철이> 같은 영화을 통해 괜찮은 연기의 결을 가진 배우라는 건 충분히 증명되었다. 하지만 유아인은 어딘가 청춘이라는 틀이 만들어내는 그림자에 갇혀 있는 듯한 인상이 강했다.

 


'육룡이 나르샤(사진출처:SBS)'

<성균관 스캔들>의 문재신 역할에서는 드라마의 중심으로 들어오지 못했고, <패션왕>의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는 청춘의 반항기는 어딘지 시청자들이 보편적으로 공감하기 힘든 캐릭터였다. 그랬던 유아인이 달라지기 시작한 건 <밀회>를 통해서였다. 그간 청춘의 반항과 방황이라는 일관된 이미지를 갖고 있던 유아인은 <밀회>를 통해 순수한 영혼의 청춘 이선재가 되었다.

 

영화 <베테랑>은 유아인으로서는 도전이었을 것이다. 사실 연기자가 자신의 이미지를 변신하거나 연기의 폭을 넓히기 위해 가장 많이 선택하는 것이 악역이다. 그는 공분을 불러일으킬 만큼 뻔뻔하고 안하무인의 재벌3세 역할을 <베테랑>을 통해 제대로 소화해냈다. 사실상 이 캐릭터가 만들어낸 공분이 이 영화의 흥행 도화선이 되었다는 점에서 천만 관객을 돌파하는데 유아인의 지분은 확실했다고 평가된다.

 

한 번 물이 오른 연기는 <사도>를 통해서 한층 깊어졌다. 사실 <사도>의 사도세자는 그가 처한 입장을 설득시켜야 한다는 점에서 결코 쉽지 않은 역할이다. 그저 광인으로만 기록되고 알려져 있던 사도세자가 아닌가. 그런데 유아인은 이 사도세자에서 아버지 영조와 노론 세력이 이미 구축해놓은 시스템 속에서 결코 떳떳하게뻗어나갈 수 없어 스스로를 파괴하는 청춘의 슬픈 자화상을 담아냈다.

 

그리고 이제 그는 하반기 최대의 기대작이라고 일컬어지는 <육룡이 나르샤>에서 육룡 중 한 명인 이방원의 역할로 돌아온다. <육룡이 나르샤><뿌리 깊은 나무>를 쓴 김영현, 박상연 극본에, 역시 같은 작품을 연출한 신경수 PD가 메가폰을 잡고, 김명민이 정도전 역할로 출연하는 작품이다. 만일 이 작품이 성공하고 거기서도 유아인이 확실한 자기만의 지분을 보여준다면 그는 올해를 자신의 해로 만들어낼 가능성이 높다. 영화에서부터 드라마까지.

 

그렇다면 유아인의 이런 승승장구를 가능하게 한 그만의 힘은 무엇일까. 가장 큰 건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꽤 깊이 있는 연기력을 선보인다는 점이다. <밀회>에서의 어딘지 어눌하지만 그 순수함 때문에 마음을 잡아끄는 섬세한 연기는 물론이고, <베테랑>에서의 때려주고 싶을 정도로 얄미운 악역이나, <사도>에서의 깊은 슬픔과 광기를 꾹꾹 눌러 보여주는 연기까지 그는 청춘의 역할에서 할 수 있는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준 바 있다.

 

즉 젊은 세대부터 중년까지를 아우를 수 있는 폭넓은 멜로 연기도 되고, 악역도 되며, 때로는 정극의 틀에서도 결코 밀리지 않는 팽팽함을 보여주는 연기력이 가장 큰 그의 바탕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면서도 청춘의 아이콘으로 자리하고 있다는 건 유아인이란 연기자를 좋은 작품들이 찾는 이유가 되고 있다.

 

사실 우리 시대에 가장 많은 질곡과 스펙트럼을 갖고 있는 존재들이 바로 청춘이 아닐까 싶다. 그 청춘의 군상들은 순수하기도 하고, 반항기가 가득하기도 하며, 때로는 엇나가고 때로는 스스로를 파괴하기도 하며 때로는 혁명을 꿈꾼다. 그 많은 청춘들의 얼굴들이 유아인이라는 한 얼굴 속으로 겹쳐진다는 건 흥미로운 일이다. 그리고 그것이 유아인이라는 연기자의 초상을 만들어내고 있다



패턴화된 <개콘>, 쇄신이 필요한 시점

 

오랜 시청률 1위라는 타이틀에 취해 있었던 탓일까. <개그콘서트>의 부진이 심상찮다. 시청률도 등락을 거듭하고 있지만 전반적인 추세는 하락세다. 이렇게 된 데는 몇 가지 외부적 요인이 작용한다.

 


'개그콘서트(사진출처:KBS)'

그 첫 번째는 MBC가 이 시간대에 밀어붙이고 있는 주말드라마들이 여러 차례 막장 논란이 있었지만 어쨌든 동시간대 헤게모니를 가지게 됐다는 점이다. <엄마><내 딸 금사월>은 각각 16.7%, 17.9%(닐슨 코리아)로 동시간대 최고 시청률을 가져가고 있다. 이것은 <왔다 장보리> 같은 화제를 남긴 이 시간대의 MBC 드라마들이 고정적인 시청층을 확보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여기에 두 번째 요인으로 이 시간대 과감히 편성되어 맞대결을 선언한 SBS <웃찾사>의 힘 역시 무시할 수 없다. <웃찾사>는 시간대를 옮긴 후 6% 시청률을 기록하며 점점 추락하고 있는 <개그콘서트>의 아성을 위협하고 있다. 하지만 <개그콘서트>의 이런 부진은 단지 외부적 요인 때문이 아니다. 지금껏 구축되어 있던 주말 시간대의 최강자가 이렇게 몇 년 사이에 소소해진 건 내부적 요인이 더 크기 때문이다.

 

<개그콘서트>민상토론이나 우주라이크’, ‘니글니글’, ‘아름다운 구속’, ‘재백아’, ‘핵존심등등 물론 다양한 신설 코너들을 내놓았고 그럴 때마다 화제가 됐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렇게 화제가 된 코너가 그 이후에 다양한 변주를 하지 못하고 패턴 속에 대사만 갈아 끼운 듯한 식상함을 보여주면서 그저 그런코너들이 되어버린데 있다.

 

새 코너가 들어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건 이미 자리를 잡은 코너가 더 오래 지속될 수 있게 이야기에 새로움을 부가하는 일이다. 이것이 이뤄지지 않으면 기획적으로 괜찮은 코너가 만들어졌다고 해도 그 소비가 급속도로 빨라지고 몇 번만 반복되면 그 패턴이 전부 시청자들에게 읽히는 상황이 발생한다. 물론 이렇게 하면 유행어 몇 개는 살아남겠지만 <개그콘서트>라는 프로그램이 매너리즘에 빠지는 지름길이 된다.

 

이를테면 아름다운 구속같은 코너는 그 기획과 발상이 독특하고 웃음의 포인트도 확실하다. 하지만 그것도 반복되다보니 어떤 상황에서 어떤 이야기가 나올 것인지가 뻔하게 된다. 관객들이 그 상황이 되면 으레 유행어를 따라하는 건 개그맨의 존재감을 위해서는 좋은 일일 수 있지만 코너에는 결코 좋은 일이 아니다. ‘나는 킬러다같은 코너 역시 마찬가지다. 살인을 시도하다가 늘 실패하는 이야기만을 반복하고 있다는 건 이 코너가 얼마나 변주를 하지 않고 있는가를 잘 말해준다. 때론 시도가 성공하기도 하고 때론 그 시도가 엉뚱한 방향으로 틀어지기도 하는 이야기의 변주는 그리도 어려운 일인가.

 

이것은 개그맨들의 문제도 문제지만 늘어난 시간에 과거처럼 치열하지 않은 경쟁의 문제일 수도 있다. 하지만 가장 이 상황을 각성해야 하는 이들은 작가들이다. 좋은 기획도 작가들이 개입해 이야기를 풍성하게 하고 때로는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게 하는 건 코너를 더 지속가능하게 만드는 일이다. 그리고 이것은 <개그콘서트>가 어딘지 예전처럼 팽팽한 느낌이 없고 매너리즘에 빠진 듯한 인상을 바꿔줄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 현재 <개그콘서트>는 쇄신이 필요한 시점이다.



<런닝맨>이 배워야할 <12> 게스트의 정석

 

게스트의 정석이 있다면 아마도 이번 <12>에 출연한 추성훈과 김동현이 아닐까. 부산국제코미디페스티벌에 간 김준호의 빈 자리를 채우러 온 추성훈과 다리를 다친 김주혁의 대타로 온 김동현은 게스트라는 느낌 없이 <12>에 자연스럽게 들어올 수 있었다. 그랬기 때문일까. 아니면 두 사람의 타고난 예능감 때문일까. 두 사람의 출연은 잠시 자리를 비운 김준호를 긴장시킬 만큼 빈 구석이 전혀 없었다.

 


'1박2일(사진출처:KBS)'

추성훈의 장점은 그저 표정 하나, 근육 하나를 통해서도 느껴지는 위압감에서부터 나온다. 본래 숟가락으로 병뚜껑을 따는 건 손기술(?)을 활용하는 것이지만 추성훈이 하면 그건 거의 힘으로 해내는 일이 된다. 실제로 숟가락을 휘어버리는 괴력을 보여주고, 뚜껑을 따다가 잘 안되자 그냥 힘으로 뜯어내는 듯한 그 장면은 그 단순한 병뚜껑 따기를 대단한 볼거리로 만들어버렸다.

 

그런데 유호진 PD가 복불복 미션의 룰을 설명하면 그러려니 하는 게 아니라 ?”하고 반문함으로서 제작진을 후덜덜하게 만드는 이 남자. 의외로 섬세하고 감수성이 예민하다. 부엌에서 오믈렛을 만드는 모습에서 그게 여지없이 느껴진다. 그러니 그 터질 듯한 근육으로 짐승 한 마리쯤은 때려잡을 것 같은 손이 프라이팬을 돌릴 때는 여지없는 미소가 나올 수밖에 없다.

 

추성훈과 함께 후배 격투기 선수인 스턴건 김동현이 자리한 것 역시 신의 한수가 아닐 수 없다. 추성훈의 명령이면 뭐든 다 할 것 같은 김동현은 역시 격투기 선수답게 날랜 순발력과 힘을 갖고 있지만 하는 행동은 어딘지 어리버리한 김종민과 동격이다. 역시 여러 차례 예능 프로그램에서 활동한 경험이 있어서인지 김동현은 웬만한 예능인들 이상의 감을 보여준다. 김종민과 함께 가마솥에 쌀도 넣지 않고 열심히 불을 때는 모습은 의외로 빈 구석 많은 이 예능 파이터의 확실한 존재감을 보여준다.

 

사실 게스트는 잘 쓰면 득이지만 잘 못쓰면 독이다. 득이 되는 게스트란 늘 고정적인 멤버들 사이에 들어가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는 인물을 말한다. 하지만 제 아무리 득이 되는 게스트도 반복적으로 투입되다보면 그것 역시 하나의 상투적인 일이 되어버린다. 최근 <런닝맨>이 빠진 늪이 이것이다. <런닝맨>의 게스트 투입은 게스트들이 제아무리 잘 해도 이제 그들의 홍보성 출연 같은 상투적인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추성훈과 김동현의 출연은 그런 점에서 보면 전혀 게스트 같지 않았고, 또한 김준호의 빈 자리를 채우고 김주혁의 깍두기 역할을 해준다는 명분도 확실했다. 그러니 사실상 게스트라고 해도 시청자들에게는 이물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게 되었다. 게다가 오지로 들어간 <12>의 선택은 이 두 격투기 선수들이 갖고 있는 야생적인 이미지(게다가 허당의 웃음까지)와도 너무나 잘 어울렸다.

 

뭐든 상투성을 갖게 되거나 혹은 매너리즘을 보이게 되는 건 예능에서는 결코 좋은 일이 아니다. 게스트 활용은 프로그램의 이야기에 변수를 준다는 점에서 좋은 자극제지만 그것이 너무 반복적으로 비슷비슷한 패턴을 갖게 되면 전혀 의미를 갖지 못하게 된다. 그런 점에서 지금 현재 게스트 출연에 대한 비판에 직면한 <런닝맨>은 여러모로 <12>의 게스트 활용법을 한번쯤 참조할 필요가 있다. 고정이자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김준호를 위협하는 게스트라니. 흥미로운 일이 아닌가.



<마리텔>, 백종원과는 사뭇 다른 오세득의 매력

 

<마이 리틀 텔레비전>을 제 궤도에 올려놓은 일등공신은 역시 백종원이다. 그는 쿡방을 통해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요리 꿀팁을 알려주면서 특유의 적극적인 소통방식으로 주목받았다. 초반 <마이 리틀 텔레비전>이 백종원 천하가 된 건 우연이 아니었다. 따라서 그가 잠시 <마이 리틀 텔레비전>을 떠난 그 빈자리에 자리한 오세득 셰프에게는 기대와 함께 우려도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마이 리틀 텔레비전(사진출처:MBC)'

하지만 그가 <마이 리틀 텔레비전>의 쿡방을 시작한 지 한 달여가 지난 지금 그런 우려는 사라졌다. 대신 독특한 오세득만의 아재개그가 의외로 힘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비슷한 말을 갖다 붙여 툭툭 던지는 말장난에 어이없어 하던 시청자들도 차츰 그 아재개그가 중독성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사실 방송물좀 마신다며 물을 마시고, 새우를 건네며 여기 있새우라고 말하는 식의 개그는 처음 들으면 오글거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반복적으로 쉴 틈 없이 쏟아져 나오는 아재개그의 융단폭격 속에서 시청자와 오세득 사이에 기묘한 밀당이 생겨난다. 아재개그라고 하면 어딘지 상사 밑에서 억지로 웃어주는 부하직원의 그림이 떠올라 웃지 말아야할 것 같은데 의외로 이 개그가 웃길 때가 생기더라는 것이다. 그러니 시청자들은 웃지 말아야 하는데 웃기다는 그 포인트 때문에 점점 그 개그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오세득의 아재개그에 크롱셰프 이찬오는 과할 정도의 리액션으로 힘을 실어주었다. 아무도 안 웃을 것 같은 그 개그에 빵빵 터지고 심지어 숨을 못 쉴 정도로 웃는 이찬오의 리액션은 마치 상사 앞에서 웃어주는 부하직원의 캐릭터를 완벽하게 보여주는 듯 했다. 하지만 그것이 억지로가 아니라 진심으로 터지는 웃음이라는 것이 조금씩 발견되면서 시청자들 역시 그에게 동화되어 간다.

 

이찬오의 아내인 김새롬이 방송을 함께 하면서 이 오세득의 아재개그에 빵빵 터지는 이 방에 적응하지 못하는 모습은 또 다른 재미를 만든다. 그것은 일종의 그들만의 동료의식같은 재미다. 타인은 이해하지 못하는 웃음의 코드 속에 저희들끼리 키득키득대는 그 웃음은 그 자체로 그들만의 끈끈한 유대관계를 만들어낸다는 점이다.

 

놀라운 건 오세득의 쿡방에서 요리는 별로 기억에 남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는 쿡방을 하고는 있지만 그 레시피를 백종원 만큼 맛깔나게 전해줄 수는 없다. 대신 그가 가진 장기는 요리 만담이다. 그는 요리하면서 끝없이 개그를 던지고 그걸로 시청자들과 독특한 친밀감을 형성한다. ‘알고 보면 먹방이라는 누군가의 댓글은 그러고 보면 적확한 표현이다. 개그의 끝에 어느새 만들어진 요리를 맛나게 먹는 모습. 그것이 오세득의 쿡방의 특징이다.

 

결국 이렇게 자기만의 색깔로 백종원의 빈자리를 채운 오세득의 쿡방이 말해주는 건 역시 가장 중요한 것이 시청자들과의 유대관계라는 점이다. 마치 나와 직접 얘기하고 있는 듯한 친밀감과 그들 사이에만 통하는 아재개그 같은 코드의 공유. 타인은 이해 못하는 웃음 속에서 더 끈끈해지는 관계는 오세득이라는 인물이 단 한 달여만에 확실한 자기 위치를 갖게 만들었다. 백종원과는 사뭇 다른 소통의 성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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