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소문에 의해 희비 엇갈린 <킹스맨><그레이>

 

영화 <킹스맨>의 선전은 놀랍다. 19금 영화로서 400만 관객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애초에 이 영화에 대한 홍보가 그리 대단하게 이뤄지지 않았던 점을 떠올려보면 이런 기록은 이례적으로까지 여겨진다. 그저 많은 외화 중 하나일 뿐으로 여겨졌던 <킹스맨>은 관객들 사이에 입소문을 타기 시작하면서 흥행에 급물살을 탔다.

 

사진출처: 영화 <킹스맨>

반면 영화 시작 전부터 주부들의 포르노니 전 세계 영화계를 강타한 작품이라는 문구들로 화제가 되었던 19금 영화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이하 그레이)>는 애초의 기대와 달리 관객들의 발길이 뚝 끊어진 모양새다. 지난달 말에 개봉했지만 지금껏 30만 관객을 조금 넘어서는 기록을 보이고 있다. 무엇이 이런 희비쌍곡선을 만들었을까.

 

결국 입소문의 영향이 컸다고밖에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킹스맨>은 애초의 기대보다 훨씬 흥미로운 스파이 액션에 성장드라마 게다가 폭력 미학까지 덧붙여지면서 볼거리가 풍성했다는 의견들이 쏟아진 반면, <그레이>는 기대와 달리 야하지도 또 파격적이지도 그렇다고 무언가 철학적인 탐구도 없었다는 반응이다. <킹스맨>이 입소문의 순풍을 탔다면 <그레이>는 역풍을 맞으면서 점점 열기가 식어버렸다.

 

과거 같았다면 해외에서의 뜨거운 반응을 얻은 <그레이>에 우리네 관객들의 관심 또한 뜨거웠을 것이다. 하지만 국내 영화가 외화에 못지않은 장르적 성과와 흥행 성적을 가져가고 있어서인지 최근 들어 해외의 반응은 그다지 중요한 것이 못되고 있다. 대신 중요해진 건 외화라도 그것만이 보여줄 수 있는 확실한 차별점이 뭐냐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킹스맨>은 국내 영화가 도무지 다루지 못하는 성격의 영화가 아닐 수 없다. 007 시리즈 같은 스파이 액션 장르는 물량 공세도 공세지만 그 문화적 정서적 차이 때문에 국내에서 만들어지기 어려운 면이 있다. 기껏해야 <아이리스><베를린> 같은 남북이 얽힌 우리식의 스파이 액션이 가능할 뿐이다. 게다가 타란티노식의 폭력 미학 역시 국내 영화에서는 잘 다뤄지지 않는 영역이다. 우리 영화와는 차별적인 부분이 충분히 느껴지면서 동시에 나름의 장르적 재미에 충실했다는 점은 <킹스맨>의 대성공을 만든 가장 큰 요인이다.

 

하지만 <그레이>의 경우는 우리에게 있어서 그리 새로운 소재도 아니고 대단한 이야기도 아닌 것이 사실이다. 가학-피학적 섹스에 대한 건 이미 우리의 <거짓말>이 더 실감나게 다룬 바 있다. <거짓말>의 현실성에 비하면 <그레이>는 너무 비현실적인 느낌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그 성적 소재를 떼어내고 보면 <그레이>는 그저 그런 신데렐라 스토리의 반복이다. 잘 생기고 모든 걸 가진 나쁜 남자에 끌리는 여자의 이야기는 국내 멜로드라마들의 닳고 닳은 소재다. 그러니 우리네 관객들이 <그레이>를 통해 새로운 점이나 신선한 면을 발견하기란 쉽지 않다.

 

이제 우리 영화계에 있어서도 홍보마케팅 같은 포장은 그것만으로는 영화의 성패에 큰 영향을 미치기가 어렵게 되었다. 홍보마케팅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지만, 거기에 따른 작품만이 가진 고유한 콘텐츠적인 특징이 묻어나지 않는다면 관객들의 외면을 받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콘텐츠의 자생력에 따라 화제가 되지 않았어도 입소문이 그 힘을 다시 만들어내기도 하고, 제 아무리 화제가 된다 해도 입소문이 그것을 정반대로 뒤집어놓으면 오히려 역풍을 맞게 된다는 걸 저 <킹스맨>의 성공과 <그레이>의 실패가 보여주고 있다.

 

위기의 강호동, 이를 넘을 수 있는 해법은

 

지금 강호동은 위기다. 그는 복귀 후 무려 일곱 개의 프로그램(<무릎팍도사>, <스타킹>, <달빛프린스>, <우리동네 예체능>, <맨발의 친구들>, <별바라기>, <투명인간>)에 차례로 투입되었지만 여기서 네 개 프로그램(<무릎팍도사>, <달빛프린스>, <맨발의 친구들>, <별바라기>)은 페지 되었고 남아있는 세 개의 프로그램 역시 폐지설이 나오는 등 그다지 좋은 상황을 만들고 있지 못하다.

 

'우리동네 예체능(사진출처:KBS)'

KBS <투명인간>2%(닐슨 코리아)대 시청률을 내면서 폐지설이 흘러나왔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정도 시청률이라면 종편에게도 밀리는 상황이다. <투명인간>의 출연진들은 끊임없이 셀프 디스를 해가며 도와 달라 간청을 하지만 프로그램이 그런 방식으로 일어설 수 있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끊임없이 새로운 형식을 도입하고는 있지만 시청자들은 오히려 점점 더 외면하고 있는 상황이다.

 

KBS <우리동네 예체능>6%대 시청률로 그나마 선전하는 중이다. 한때는 4%대까지도 떨어졌던 것이 정형돈이 투입되고 테니스, 족구 등의 종목을 하면서 조금씩 반등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이 투입하고 있는 자원들을 생각해보면 6% 시청률로 만족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게다가 <우리동네 예체능>은 강호동보다는 다른 출연자들에 대한 주목도가 꽤 높은 프로그램이라는 점에서 이 성과를 강호동의 것으로 두기가 애매하다.

 

SBS <스타킹>9%의 시청률을 내고 있지만 이것 역시 만족할만한 수준은 아니다. 이 수치는 강호동의 진행 능력이라기보다는 출연자들의 섭외와 기획이 더 좌우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미 <스타킹>의 포맷 구성은 대중들에게는 그만큼 익숙하다. 게다가 이 프로그램의 형식은 조금은 트렌드에서 빗겨나 있는 것도 사실이다.

 

강호동의 위기는 사실 복귀한 후 그의 첫 단추부터 잘못 꿰어진 것에서 비롯됐다. 강호동이 다시 돌아온 판은 그 1년 전과는 너무나 다른 트렌드가 자리하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리얼 버라이어티나 토크쇼 시장은 점점 물러나고 리얼리티쇼가 점점 부상되던 시기였다. 그러니 이 판세를 읽었다면 강호동은 기존의 스튜디오물이나 아니면 캐릭터쇼에 가까운 리얼 버라이어티는 피하는 편이 나았을 것이다.

 

게다가 강호동이 대중들을 향한 진정성을 드러내 보이려 했다면 좀 더 강도 높은 현장 속으로 뛰어드는 그의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심지어 김병만이 <정글의 법칙>을 통해 살벌한 정글 속에서 생존하는 모습을 보여주던 시기였다. 그런 그가 제 아무리 맨발로 해외를 뛰어다닌다고 해도 그 고생의 강도가 별반 느껴지기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리얼 버라이어티가 아닌 리얼리티쇼로서의 자기 모습을 좀 더 드러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많은 사람들이 강호동의 MC 스타일이 지금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한다. 사실이다. 중심에 서서 모두를 끌고 다니는 강력한 리더십의 메인 MC는 지금의 상황에서는 불필요해졌다. 그것은 무수한 카메라가 각각의 액션들을 가장 자연스럽게 포착하기 위해 세워져 있기 때문이다. 중심을 내세우면 주변이 잘 보이지 않게 된다. 그것은 진행의 힘이 아니라 오히려 타인을 가리는 행위가 될 수도 있다.

 

이렇게 달라진 시대에 강호동이 가장 먼저 버려야 할 것은 바로 이 메인 MC가 되려는 강호동의 모습이다. <삼시세끼> 같은 프로그램에서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어색한 모습을 앉아 있기만 해도 대중들의 사랑을 받는 손호준을 떠올려보라. 물론 강호동은 자신만의 캐릭터가 있지만 그래도 진행하려는 욕심보다는 자기 자신의 진짜 모습을 드러내는 자세를 보여줄 필요가 있다.

 

이렇게 되려면 그가 출연하는 프로그램이 말 그대로 리얼한 리얼리티를 보여주는 형식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동네 예체능>이나 <스타킹>, <투명인간> 그 어느 것도 리얼리티쇼의 자연스러움을 갖고 있지 않다. 이 프로그램들은 아쉽게도 지금은 조금 지나간 트렌드의 형식을 갖고 있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강호동만이 지금 현재 그가 처한 위기를 넘을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프로그램 형식 자체가 지금과는 달라야 한다. 자신을 중심으로 세우는 프로그램을 아예 피하는 편이 낫다. 차라리 <진짜사나이> 같은 여러 출연자들이 투입되는 프로그램에 한 사람으로서 들어가거나 <나 혼자 산다>처럼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일상 그 자체를 보여주는 게 그에게는 지금 더 절실하다. MC 강호동을 버리고 인간 강호동을 보여주는 길. 해법은 그것밖에 없다.

 

어린이집 사건에 대한 <무도>식의 메시지

 

왜 갑자기 <무한도전>은 과거 망했던 아이템인 아이 돌보기를 다시 꺼내들었을까. 최근 벌어진 어린이집 폭행사건은 여러모로 이 아이템을 다시 끄집어낸 이유가 아니었을까. 실로 아이 키우는 부모들에게는 충격적인 사건으로 다가왔던 그 사건. 인천의 한 어린이집 보육교사가 김치를 먹지 않는다는 이유로 폭행을 가한 그 문제의 장면은 지금도 뉴스의 자료영상으로 무한 반복되어 나온다. 그 때마다 그걸 바라보는 부모들의 마음은 허물어진다.

 

'무한도전(사진출처:MBC)

유재석은 <무한도전> 멤버들이 어린이집 일일교사로 나가는 걸 도우러 온 오은영 박사에게 그 사건을 보고 어떠셨냐고 물었다. 그러자 오은영 교사는 울었다며 가슴이 먹먹하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털어놨다.

 

이 사건은 충격적이지만 그렇다고 모든 보육교사들이 똑같은 비난과 의심을 받는 건 온당치 않은 일이다. 그래서였을 게다. <무한도전>무도 어린이집특집에 그 어떤 비판적인 시선을 담아내는 걸 피했다. 물론 해당 교사의 이해할 수 없는 폭행 사실은 비난 받아 마땅한 일이지만, 그 비난이 열심히 노력하며 아이를 돌보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보육교사들에게까지 튀는 건 잘못된 일이기 때문이다.

 

<무한도전>의 선택은 그래서 어린이집을 찾아가 자식처럼아이를 열심히 돌보는 모습을 담아내는 일뿐이었다. 유재석은 아이들이 등원하기 전 미리 이름을 외워놓는 특유의 자상함을 보여줬고, 박명수는 조금 거친 듯 보이지만 혼자 우울해하는 아이에게 특별히 관심을 주는 따뜻한 면을 보여줬으며, 정준하는 동물복장을 하고 아이들과 놀아주는 열정적인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또 하하와 정형돈은 숲 속에서 마음껏 뛰어놀며 체험하는 아이들과 함께 어우러지는 모습을 보여줬다.

 

아이들은 역시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기쁨을 주는 존재들이었다. 유재석이 우는 어린 아이를 안고 달래주고 있자 한 아이는 휴지를 빼서 그 아이의 눈물을 닦아주어 뭉클한 감동을 선사하기도 했다. 낮잠을 자는 아이들의 모습은 그 자체로 천사처럼 아름다웠다. 하루가 끝나고 돌아가는 아이에게 문득 달려가 다시 안아준 하하의 설정 가득한 모습 속에는 그래서 진심 또한 묻어났다. 유재석은 가는 아이에게 팔을 벌려 한번 안아줄래 라고 물었고 다가와 안아주는 아이의 이마에 뽀뽀를 해주었다.

 

이번 <무도> 어린이집 특집은 큰 웃음의 요소가 그리 많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웃음만을 강조할 수는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억지로 상황극을 만들거나 현실에 대한 풍자를 섞기보다는 차라리 아이들에게 하루를 헌신하는 모습 그 자체가 가장 중요한 일이었을 테니 말이다. 웃음은 적었어도 저런 어린이집이면 믿을 수 있겠다는 바람을 전해준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았던가.

 

아이를 키워본 부모들은 모두 알 것이다.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기고 돌아설 때의 그 부채감을. 그런데 그 어린이집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는 사실은 이 땅에 사는 부모들에게 더 큰 부채감을 만들어낸다. 큰 걸 바라는 것이 아니다. 더도 말고 아이들의 마음이 다치지 않게 잘 보살펴주기를 바랄 뿐이다. <무도> 어린이집이 보여준 것처럼.

 

멜로가 된 <순수의 시대>, 왜 시대를 담지 못했나

 

신하균은 왜 이 영화에 출연했을까. 새로 개봉한 영화 <순수의 시대>는 사극이다. 조선 초기 이방원의 왕자의 난을 소재로 다뤘다. 역사적 사실이야 사극을 조금 봤다 하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이해되는 것일 게다. KBS <용의 눈물>이나 <정도전> 같은 사극이 다뤘던 그 시대.

 

사진출처:영화 <순수의 시대>

하지만 <순수의 시대>는 그 역사적 사건에 집중하지 않는다. 대신 이방원(장혁)의 왕자의 난에서 오히려 역적으로 몰린 김민재(신하균)가 기녀 가희(강한나)에게 보내는 절절한 순애보를 다루고 있다. 19금 영화이니 당연히 노출수위가 높고 정사신도 많이 나오지만 안타깝게도 그것이 그렇게 특별히 인상적으로 다가오지는 못하고 있다. 그것이 과연 그런 정사신이 이 영화에 꼭 필요한 부분이었는가에 대한 답변을 영화가 충분히 해주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물론 전장에서 수없이 죽음을 넘어서고 누군가를 죽게 한 이 강인한 김민재가 한 여인을 위해 죽음을 불사하는 사랑을 보이는 장면은 뭉클한 면이 있지만 영화는 그 이상의 울림을 담아내지는 못한다. 예를 들어 이 가희라는 여인의 삶이 좀 더 민초들의 삶으로 확장시켰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만일 그랬다면 그 핍박받는 삶에 대해 지금의 대중들이 현실적인 공감대를 가졌을 수도 있다. 그것은 또한 그런 그녀를 끝까지 보호해주는 김민재라는 캐릭터 역시 특별하게 만들어낼 수도 있었을 것이다.

 

<순수의 시대>는 그 이야기 구조 상으로 보면 지금 현재를 살아가는 서민들의 정서를 담아낼 수 있는 가능성이 충분했다는 점이다. 정치인들은 서로 권력을 잡기 위해 죽고 죽이는 일을 반복하고 그 사이에 낀 서민들은 이들 권력자들의 손에 핍박받다 아무렇게 죽음을 맞이하고 심지어는 역사적 기록에서조차 삭제된다. 이 얼마나 지금의 현실과 조응하는 면이 많은가.

 

하지만 결과적으로 <순수의 시대>는 이런 폭넓은 의미망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김민재와 가희의 지극히 사적인 사랑에만 집중함으로써 이야기를 그저 멜로에 머물게 만든다. 물론 모든 사극이 역사를 빌어와 어떤 의미를 찾아낼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사적 멜로를 그리기 위해 이 거대한 역사적 사건을 끌어왔다면, 그 사적 멜로가 공적인 사건들 속에서 어떤 의미를 차지하는가는 영화가 얘기해줘야 했던 게 아닐까.

 

이 영화에 출연하는 배우들의 연기는 모두가 나무랄 데가 없다. 신하균은 그 단단하고 신경질적인 근육의 몸만으로도 영화에 비장미와 긴장감을 만들어내고, 장혁은 이방원을 허허실실과 잔인함을 겸비한 인물로 해석해낸다. 그저 섹시 스타로만 이미지화되어 있던 강한나는 의외로 영화의 중심을 잘 잡아주고 있고, <미생>에서 장백기라는 스펙남을 연기했던 강하늘은 놀라운 악역 변신을 보여준다.

 

이들 각각의 호연은 대단히 인상적이지만, 그것이 영화에 하나로 묶여지지 않아 힘이 생기지 않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순수의 시대>라고 제목을 지었지만 영화는 그 시대적 의미를 잘 담아내지 못했다. 그나마 영화를 끝까지 볼 수 있는 힘은 신하균의 그 몸에서 나온다. 그 몸과 표정 하나가 전해주는 절절함과 긴장감이 없었더라면 영화는 지리멸렬해지고 말았을 것이다. 그 상처투성이의 몸을 쓰다듬는 가희의 손길에 좀 더 민초의 의식을 담아냈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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