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호, 고참 개그맨으로 사는 법

김준호를 '개그콘서트(이하 개콘)' 서수민 PD는 '연기파' 개그맨으로 분류한다. 제 아무리 좋은 아이템이 있어도 살리지 못하면 도로아미타불. 개그에 있어 연기력이란 그래서 어쩌면 아이디어나 개인기보다 훨씬 중요한 덕목이다. 특유의 연기력으로 후배들과 만들어낸 개그를 척척 잘도 살려내고, 또 한 번 만들어낸 코너를 오래 지속시키기로도 유명하며, 최근에는 '코코 엔터테인먼트'라는 회사를 차려 후배 개그맨들의 뒷바라지를 자처한 '개콘'의 고참 개그맨. 김준호와 기분 좋은 만남을 가졌다. 먼저 최근 뜨고 있는 '꺾기도'라는 개그를 화제로 꺼냈다.

"뭐 그간 '개콘'에서 풍자 개그가 많아지고 그러다보니 나이든 세대들에게 너무 맞춰지는 것 같다는 의견 때문에 좀 연령대를 낮출 수 있는 개그를 짜보려다가 나온 것이 '꺾기도'라고 말씀하시기도 하는데, 사실은 그냥 한 겁니다. 누구든 아무 생각 없이 편안하게 볼 수 있는 그런 개그죠. 의미부여 하지 않고. 처음에는 후배들이랑 무대에서 노래하고 춤 한번 추자는 생각으로 이런 저런 아이디어를 모았는데 다 재미가 없었어요. 그래서 "이게 뭡니까불이." 그랬는데 빵빵 터지고 난리가 난 거에요. 그렇게 생긴 코너죠. 이건 레퍼토리가 유치하기 때문에 무대 위에서 놀아서 살려야 하는 코너입니다. 그래서 쌍둥이(이상호, 이상민)랑 홍인규랑 같이 그냥 한바탕 놀자는 마음으로 무대에 오르죠."

사실 '꺾기도'는 말장난 개그로 아이들에게는 빵빵 터지지만 어른들로서는 어디서 웃어야 할지 요령부득인 경우도 많다. 서수민 PD는 최근 전체 '개콘' 코너가 너무 시사적이고 풍자적으로 고정되는 것은 좋지 않게 여긴다고 필자에게 말한 적이 있다. 좀 더 다양한 개그들이 포진될 수 있게 배분을 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 변화 속에서도 김준호는 꽤 오래도록 코너를 유지하는 개그맨으로 유명하다(서수민 PD는 그가 오래할 수 있는 개그를 잘 짜온다고 했다). 그 노하우를 물었다.

"개그에도 생체리듬이란 게 있습니다. 예전에 제가 '집으로' 같은 코너를 할 때만 해도 1년 반씩 했었는데 요즘은 6개월이면 장수하는 코너가 됐죠. 그만큼 소비 속도가 빨라졌다는 겁니다. 오래도록 코너를 유지하는 노하우로 특별할 건 없는데, 저 같은 경우에는 옛날 개그를 많이 우려먹는다(?)는 겁니다. 사실 슬랩스틱이나 콩트처럼 개그 공식은 거의 정해져 있죠. 완전히 새로운 것이란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이것을 요새 트렌드에 맞게 바꾸는 작업이 중요합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개그는 (보편성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꽤 오래 가죠. 제가 지금껏 해온 개그들을 보면 영화 '달콤한 인생'을 패러디한 '씁쓸한 인생', '이끼'의 '미끼', '평양성'의 '감수성', '집으로' 같은 패러디 형식이 많았는데요. 이게 오래 갔던 이유는 캐릭터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최효종이 하는 개그는 제가 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뭐라 얘기하긴 어렵지만, 오래 지속하기는 훨씬 어려운 개그입니다. 캐릭터보다는 아이디어로 승부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죠."

요즘 '개콘'은 확실히 몇 년 전에 비교하면 대중들의 관심을 더 많이 받고 있고 시청률도 훨씬 높아졌다. 서수민 PD가 새로운 연출자로 들어서면서 생긴 변화다. 서수민 PD체제로 들어서면서 생긴 다양한 시청층을 끌어안으려는 노력과 과감해진 수위 등등 다양한 원인을 들 수 있지만, 정작 서PD는 이것이 "자신이 개그를 잘 몰라서"라고 말했다. 즉 너무 잘 알았다면 시청자의 눈높이와 멀어졌을 것이라는 거다. 하지만 더 큰 요인으로 김준호는 선수들(?)이 많아진 것을 들었다.

"작년에 비해 '개콘'의 위상이 확실히 달라졌다고 여겨지는 건 개그맨들이 CF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공중파에서 하는 핸대폰 광고를 찍고 있죠. 작년에는 '감사합니다'가 뜨면서 정태호는 증권광고를 찍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된 건 확실히 과거에 비해 선수들이 많아졌기 때문이죠. 지금 '개콘'의 중추는 22기들인데 이제 30대 초반이 된 이들은 확실히 개그에 있어 숙성된 친구들입니다. 밑에서부터 아이디어 짜는 법, 살리는 법 같은 것을 착실히 배워왔기 때문에 지금 '개콘'의 전성기가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개콘'이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그맨들이 설 무대는 점점 좁아진 것이 사실이다. '개콘'의 고참 개그맨으로서 김준호는 무엇보다 이런 환경을 안타까워했다.

"처음 내가 시작했을 때는 지금과 많이 달랐습니다. 그 때는 개그맨들이 할 수 있는 프로가 8개나 있었죠. 그러다 하나 둘 없어지더니 두 개만 남게 되어버렸습니다. '시사터치 코미디파일'과 '개콘' 이렇게 두 개를 했는데, '시사터치 코미디파일'도 없어졌죠. 중간에 '웃음충전소' 같은 프로그램이 생겨서 '타짱' 같은 코너를 하기도 하고, 참 여러 시도를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쉽지만은 않았죠. 하지만 그래도 개그맨들이 개그를 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이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같은 생각을 갖고 계시는 서수민 PD와 함께 많은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김준호는 최근 코코엔터테인먼트를 차려 '개콘' 소속 개그맨들의 뒷바라지(?)를 하고 있다. 그 이유와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다.

"원래는 매니지먼트 안하려고 했습니다. 갈갈이 패밀리나 컬투나 모두 수익사업을 못 만들어서 어려워졌죠. 그래서 수익사업이 생기기 전에는 안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저를 따르는 20명 정도의 개그맨들이 있었고 그들을 먼저 데리고 해도 되겠다 생각하게 됐습니다. 요청도 있었고. 마침 경영하시는 좋은 분이 나타나서 동업으로 하게됐죠. 현재는 주로 스케줄 관리하는 정도입니다. 또 서수민PD님과 함께 작전 짜서 버라이어티에 넣어주기도 합니다. 수익 분배는 15%-20% 정돈데, 그걸 가져가도 코디비로 거의 쓰니까 수익사업은 아니죠. 공연이나 광고에서 조금 돈이 들어와 그걸로 재투자를 하고 있습니다. 향후에는 MD사업 쪽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실 김준호의 코코엔터테인먼트는 '개콘'의 서수민 PD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불편한 존재일 수 있다. 하지만 개그맨의 매니지먼트를 제안한 건 다름 아닌 서수민 PD였다고 한다. 물론 이렇게 많은 인원이 덜컥 김준호와 계약할 지는 몰랐지만. 하지만 내놓고 "우린 불편할 수도 있는 관계다"라고 말하는 두 사람을 볼 때, 그만큼 속내를 다 털어놓을 수 있는 편안함이 느껴졌고, 또 위치가 갖는 입장차는 있지만 대의적으로 개그맨들의 비전에 대해서는 공감하는 바가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것은 개그맨들이 개그만 하면서도 충분히 먹고 살 수 있는 터전을 만드는 것이었다.

"언젠간 개그맨들이 제대로 인정받고 설 날이 반드시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버라이어티를 하려는 것은 물론 그것이 더 맞는 친구도 있지만 생계를 위해 선택하는 측면도 있습니다. 개그만 해도 먹고 살 수 있는 다양한 무대와 기회가 만들어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굳이 '개콘' 같은 좋은 무대를 나갈 이유가 없죠."

김준호는 확실히 신망이 두터웠다. PD에서부터 후배 개그맨들 사이에서도 그는 '개콘'의 선배로서 든든한 믿음을 주는 개그맨이었다. 또 개그맨으로서도 뭐든 척척 살려내는 기량을 가진 베테랑이었다. 그래서 PD조차 콩트에 있어서는 김준호의 의견을 들을 정도로 신뢰감을 갖게 만들었다. 그것이 코너든, 개그맨으로서의 입지든 오래 버티는 그 노하우는 바로 그 신뢰에서 비롯되는 것이었다. 이것은 또한 후배들이 앞으로도 오래 버티는 그 길을 내주지 않을까. 아마도.


김준현의 연기력, '개콘'을 살린다

'개그콘서트'(사진출처:KBS)

"고뢔?!" '개그콘서트' '비상대책위원회'에서 조금은 과장되게 질러대는 김준현의 이 대사는 대본에 어떻게 적혀 있을까. 대본에는 그저 "그래?"라고만 적혀 있다. 그런데 그 평이한 되물음이 김준현의 입을 거친 후, 하나의 유행어가 되었다. 도대체 무슨 마법이 발휘된 것일까. 그것은 연기력이다.

'개그콘서트'의 개그맨들은 저마다 특성이 있다. 연기를 잘 하는 개그맨(김준호 같은)이 있는 반면, 개인기를 장기로 하는 개그맨(이승윤 같은)이 있고, 아이디어가 좋은 개그맨(최효종 같은)이 있는 반면, 얼굴이 무기(?)인 개그맨(박지선 같은)도 있다. 그런데 이 중 가장 주목받는 개그맨은 누구일까. 연기를 잘 하는 개그맨이다. 제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와 대본이 있어도 '살리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김준현은 연기를 잘 하는 개그맨이다. 그가 지금껏 들어간 코너의 면면을 보면 그의 존재감을 확실히 알 수 있다. 그는 메인을 맡기보다는 메인을 보조해주는 역할을 주로 했다. 그의 존재감이 가장 먼저 보였던 'DJ변의 별볼일 없는 밤에' 코너에서 그는 변기수를 보조해 영화광고 패러디 원맨쇼 역할로 주목을 받았다. 처음에는 보조 정도로 생각됐지만 차츰 김준현의 광고 성우 역할이 더 화제가 되는 상황이 되자 분량이 늘어나기도 했다.

'9시쯤 뉴스' 코너에서도 김준현은 개콘유치원 잎새반 김준현 어린이 역할로 주목받았다. 어린이 같은 얼굴로 어른 세계를 풍자하며 분노하는 연기는 결코 쉬운 것이 아니었지만 그는 100% 이상 그 역할을 잘 소화해냈다. '생활의 발견'에서 우연히 남녀 간의 대화에 끼어들게 되는 주로 취객 역할로 투입된 건 김병만의 추천이 있어서였다. 현재 '생활의 발견'은 어느덧 초반 송준근 신보라가 이끌던 분위기에서 이제는 김준현의 끼어들기 개그로 중심이동하고 있는 모양새다.

한편 '비상대책위원회'에 군당국자 역할로 그가 들어간 것은 이 코너의 메인인 김원효의 연기를 좀 더 채워주기 위한 것이었다. 서수민PD의 제안으로 들어간 김준현은 역시 이 코너에서도 확실한 자기 영역을 만들어냈다. "지금 뭐하는 겁니까!"하고 '비대위'의 관료주의를 꼬집지만, 정작 자신은 상황 파악 못하고 엉뚱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군 당국자의 역할은 긴장감을 만들었다고 일시에 풀어내는 김준현의 연기력이 그만큼 돋보이는 코너가 되었다.

그리고 새로 시작한 '네가지'에서 김준현은 뚱뚱한 사람 역할을 맡았다. '네 가지'는 못생긴 사람, 좀스러운 사람, 뚱뚱한 사람, 잘 생기기만 한 사람이 각각 나와 발언대에 올라 자신들에 대한 오해를 토로하는 코너다. 이 코너에서 김준현은 벌써부터 "누굴 돼지로 아나-"라는 대사가 유행어가 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뚱뚱하고 땀을 줄줄 흘리는 그 모습으로 엉뚱하게 오해받는 역할은 김준현이라는 개그맨의 이미지와 잘 어울려, 그 연기를 더욱 자연스럽게 만들어냈다.

김준현이 지금껏 해온 개그 코너에서의 역할을 보면 결코 주인공으로 나선 적이 별로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보조 역할로 시작해서 결과적으로는 주목받는 역할이 된 건 그 특유의 성실성과 연기력 때문이라고 주변 사람들은 말한다. 즉 이제 김준현은 다른 개그맨들이 코너를 짜도 거기에 '꽂아주고 싶은' 개그맨이라는 얘기다. 그가 코너를 살려주는 '개그콘서트'의 연기담당으로 불리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셈이다.


'승승장구'에서 '라스'까지, '개콘' 전성시대

'라디오스타'(사진출처:MBC)

'승승장구'에 MC가 아니라 게스트로 출연한 이수근은 그간 한 번도 꺼내놓지 않았던 불우했던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통해 좌중을 눈물바다로 만들었다. 무속인인 어머니, 투병중인 아내, 장애를 가진 아들 이야기는 늘 밝게 웃으며 우리에게 큰 웃음을 주고 있는 이수근이라는 개그맨을 다시 보게 해주었다.

한편 '라디오스타'에 출연한 유세윤와 개식스(김준호, 김대희, 장동민, 유상무, 홍인규)는 돈독한 우정과 탁월한 개그감으로 웃음과 눈물의 롤러코스터를 선사했다. 힘겨웠던 과거의 아픔과 치부는 물론이고 심지어 눈물마저 개그로 풀어내는 그들은 진정한 개그맨이었다. 유세윤이 드러낸 화려함 이면에 있는 우울은 보는 이를 먹먹하게 만들었다.

'개그콘서트(이하 개콘)'의 존재감이 갈수록 빛을 내고 있다. 단지 시청률이 전체 예능 1위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다. 더 중요한 건 '개콘'이 배출하고 있는 개그맨들의 존재감이 빛난다는 것이다. 그들은 이제 '개콘'이라는 하나의 프로그램으로 한정짓기 어려운 영향력을 방송 전체 예능 프로그램에 미치고 있다.

'1박2일'의 중추가 된 이수근, '라디오스타'는 물론이고 'UV신드롬' 등을 통해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유세윤, '정글의 법칙' 같은 극한 예능에서 빛을 발하고 있는 김병만, '무한도전'의 미친 존재감이 된 정형돈처럼 이미 '개콘' 바깥에서 확고한 자신의 위치를 구축한 개그맨들뿐만이 아니다.

현재 '개콘'의 수장 역할을 하고 있는 김준호를 비롯해, 각 코너에서 주목받고 있는 최효종, 김원효, 정범균, 허경환은 '해피투게더 시즌3'에 출연해 그간 정체된 분위기를 일소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물론 '개콘'이 배출한 신봉선은 이 토크쇼에서 때론 게스트들을 편안하게 해주기 위해 스스로 망가지기를 주저하지 않는 빼놓을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이처럼 '개콘' 출신 개그맨들이 '개콘' 안팎으로 활약할 수 있게 된 배경은 결국 '생존'에서 찾을 수 있다. 많은 개그맨들의 무대가 있었지만 내홍을 겪으며 전부 사라지는 와중에도 '개콘'은 굳건히 살아남았다. 그것도 그저 살아남은 게 아니라 예능을 대표하는 프로그램으로. 이렇게 버텨낼 수 있었기 때문에 수많은 개그맨들의 산실이 될 수 있었다. 현재 예능의 새 피를 수혈해주는 거의 유일한 프로그램이 '개콘'이 된 것이다.

'개콘'의 이런 경쟁력은 그 독특한 시스템에서 나온다. 마치 샐러리맨처럼 출퇴근제를 하고 있는 '개콘'은 매일 개그맨들이 모여 아이디어를 짜고 연습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 과정에서 선후배 간의 독특한 위계질서가 생겨난다. 무조건 선배가 주인공을 하는 그런 식이 아니라 아이디어에 걸맞는 최적의 인물을 찾아서 서로 꽂아주고 세워주는 협업시스템이 '개콘'의 진정한 힘이다. 매일 서로의 개그 스타일을 보기 때문에 아이디어를 짜면서도 상대방의 스타일을 염두에 두고 활용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개콘' 출신 개그맨들이 서로를 생각해주는 마음이다. 이수근은 '개콘'에서 봉숭아학당을 할 때만 해도 이미 그만두려는 마음을 먹었다고 한다. 하지만 서수민PD가 "후배들이 자리를 잡을 때까지만 기다려 달라"는 말 한 마디에 아무 조건 없이 6개월을 버텨주었다고 한다.

'승승장구'에서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각별한 우정을 느끼게 해준 이수근과 김병만처럼, 유세윤을 생각하는 장동민과 유상무의 마음 역시 각별하다. 누가 잘 나가든 누가 조금 못나가든 그런 것과 상관없이 서로를 생각하는 우정은 '라디오스타'에서 유세윤과 유상무가 잠깐 보인 눈물 속에 모두 들어가 있다.

한편 '개콘' 선배들이 후배를 바라보는 시선은 유세윤이 김준호, 김대희에게 "'개콘' 출신 개그맨이 타 방송 개그 프로그램('코미디 빅리그'를 말하는 것이다)에 나오는 걸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대한 김대희의 답변 속에 들어있다. 그건 방송사들의 문제이지, 개그맨들은 각자 위치에서 개그를 하면 된다는 그 말에는 선배로서 후배 개그맨을 생각하는 진심이 담겨져 있다.

'개콘'은 이제 그저 하나의 개그 프로그램을 넘어서 전체 예능에 영향을 미치는 프로그램이 되었다. '개콘'을 발판삼아 성장해 나온 개그맨들의 성공담은 그래서 현재 '개콘'에서 묵묵하게 조연 역할을 해주고 있는 젊은 개그맨들에게는 하나의 꿈이자 희망이 되고 있다. 그리고 그 꿈은 전체 예능을 꿈꾸게 만드는 동력이 된다. 이제 김병만이 없는 '정글의 법칙'을, 이수근이 없는 '1박2일'을, 유세윤이 없는 '라디오스타'나 'UV'를 떠올릴 수 없는 건 그들의 꿈이 만든 예능의 새로운 세계를 실감하게 한다. '개콘'을 통해 더 많은 개그맨들의 꿈이 예능 전체로 퍼져가길.


장수 프로그램, '개콘' 경쟁력 분석

'개그콘서트'(사진출처:KBS)

무대개그의 시작은 '개그콘서트'에서부터 비롯되었다. 이 프로그램은 그간 개그의 양대산맥으로 내려오던 '유머일번지'류의 콩트 코미디와 '일요일 일요일 밤에'류의 버라이어티쇼가 갖는 '안전함'의 틀을 깼다. 그 '안전함'이란 두 가지 측면을 말한다. 경쟁이 없다는 것과 일방향성 프로그램이라는 것. 무대개그는 개그맨들의 무한경쟁을 알리는 신호탄인 동시에, 관객과 개그맨이 호흡하는 개그의 쌍방향 시대를 예고했다. 개그는 더 이상 스튜디오에서 안전하게 짜진 형태로 존재할 수 없게 되었다. 개그맨들은 편집되지 않기 위해 계속해서 아이디어를 짜내야 했고 무대에 올려진 후 관객에게 외면 받으면 여지없이 통편집되는 '정글'을 경험하게 됐다. 물론 개그맨들에게는 힘겨운 현실이었지만, 이 시스템은 프로그램에는 엄청난 자양분이 되었다. '개그콘서트'는 끊임없이 다양한 캐릭터와 유행어와 인기 코너들 그리고 화제를 만들어냈다.

경쟁은 경쟁을 불러왔다. 개그맨의 경쟁이 '개그콘서트'라는 무대 위에서 벌어졌다면, 이후의 경쟁은 각 방송사들에 의해 벌어졌다. '웃찾사', '개그야' 같은 무대개그가 방송사들에 의해 만들어지고 경쟁을 벌이기 시작한 것이다. 개그의 춘추전국시대가 도래하는 듯 했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렇게 급조된 형태의 무대개그가 개그 코너들을 만들어낼 수는 있었어도 '개그콘서트'처럼 탄탄한 시스템을 갖추지는 못했다는 점이다. 선배들이 끌어주고 후배들이 받쳐주는 '개그콘서트' 특유의 시스템은 경쟁 속에서도 상생하는 힘을 발휘했다. 반면 타 방송사의 무대개그들은 한층 더 심해진 경쟁 속에서 차츰 시스템의 한계를 드러내며 사라져갔다. 그리고 처음처럼 오롯이 '개그콘서트'만이 살아남아 무대개그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물론 치열한 경쟁이 만들어낸 결과지만, '개그콘서트'류의 짧은 개그들이 갑자기 주목을 얻은 데는 시대적인 이유도 있다. 그 첫 번째는 시대가 요청하는 서사구조의 변화다. 사실 리모콘이 생겨난 이래,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 혹은 '서론-본론-결론' 형태로 이어지는 서사구조는 끊임없이 공격받아왔다. 이제 시청자들은 발단에서부터 뜸을 들이는 것을 기다리지 못한다. 시작이 지루하면 프로그램은 시청자의 손가락에 의해 여지없이 잘려져 나간다. 그러니 전통적인 서사구조에서 발단-전개나 서론은 점점 축약되고 있다. 그것은 이제 드라마건 방송 프로그램이건 김수현 작가 식으로 표현하면 "베토벤의 '운명'처럼 처음부터 짜자자잔 하고" 시작한다. 사실, 너무나 서사구조에 익숙해져버린 시청자들 입장에서 보면 서론은 너무 뻔한 것이다. 우리는 작가가 굳이 설명하지 않고 '척'하고 보여주면 '착'하고 알아듣는 시대에 살고 있다.

바로 이 지점이 잘 맞아떨어지는 프로그램이 바로 '개그콘서트'류의 무대개그다. 많은 개그맨들을 무대 위에 올려놓고 짧은 시간을 주고는 웃기지 못하면 가차 없이 잘라버리는 이 쿨한 시스템에서 서론은 설 자리가 없다. 1차로 PD가 가위질을 하고, 그렇게 살아남는다 해도 2차로 시청자들이 리모콘으로 가위질을 하는 상황에서 개그는 좀 더 콤팩트하고 군더더기 없는 형태로 살아남을 수밖에 없다. '개그콘서트'는 이 대중들이 선호하는 서사구조가 달라지는 시점에 징후처럼 등장한 짧은 개그를 뽑아내는 시스템으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 논리적이고 순차적인 서사에 대한 거부(?)는 상당부분 디지털 문화와 연관되어 있다. 아날로그 문화가 가진 '처음부터 중간 과정을 다 봐야 끝을 볼 수 있는' 서사의 특성은 디지털 문화로 오면서 '아무 곳에서나 중간 중간 끼어들어 볼 수 있는' 하이퍼텍스트적인 속성으로 바뀐다. 이것은 성향이 기술을 낳은 것이 아니라, 기술이 성향을 낳은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개그 프로그램으로 적용되어 '개그 콘서트'처럼 분절적인 구조의 개그 프로그램을 만들어냈다.

물론 이런 시대적인 요청에 맞는 형식의 변화만으로 '개그콘서트'가 장수할 수 있었던 건 아니다. 그것만큼 중요한 것이 그 형식을 어떤 방식으로 채워왔는가, 즉 내용의 문제다. '개그콘서트'가 '개그야'나 '웃찾사'에 비해 더 경쟁력을 가질 수 있었던 건 개그가 개그에만 매몰되지 않고 현실과 끊임없이 조우해왔다는 데 있다. 물론 '개그야'나 '웃찾사' 역시 현실과 무관한 소재들을 다뤘던 건 아니다. 하지만 '개그콘서트'에 비교해보면 그 현실공감에 있어서 현저하게 뒤쳐진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개그야'나 '웃찾사'가 보여준 주로 말장난에 의존하는 면과 의미 없는 슬랩스틱의 반복은 당장 웃음을 뽑아낼 수는 있지만 시청자들에게 여운을 남기기는 어렵다. 그런 면에서 '개그콘서트'의 성공은 현실이라는 무한정 넓은 소재의 텃밭을 잊지 않고 돌아봤다는 것이고, 거기에서 대중들의 욕구를 바라봤다는데 있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즉 '공감'할 수 있는 개그를 지향했다는 것이 그 경쟁력의 핵심이 됐다는 것이다.

따라서 현실에 텃밭을 갖고 있는 '개그콘서트'의 코너들은 당대의 사회적인 분위기에 따라 개그코너들도 성격을 달리해왔다는 특징이 있다. 이것은 거꾸로 얘기하면 '개그콘서트'를 통해 사회의 분위기를 읽어낼 수 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개그콘서트'의 초창기 코너들을 보면 이른바 '자학개그'들이 주류를 이뤘다. 슬랩스틱의 연장선으로 볼 수 있는 '자학개그'들은 바닥에 떨어진 걸 주워 먹거나, 이빨로 무를 갈거나, 못생긴 얼굴을 과장되게 보여주는 식이었다. 심지어 '마빡이'같은 코너는 특별한 내용 없이 끊임없이 자신의 이마를 때리는 것으로 웃음을 만들어냈다. 이 자학개그들은 그러나 단순한 몸 개그에 머무는 건 아니었다. 그 자체로 힘겨운 현실을, 자학함으로써 살아가는 개그맨이라는 직업을 통해 보여주었던 것이다. 이러한 자학을 포함한 단순한 몸 개그들은 꽤 오래도록 지속되었다. 이것은 IMF로 허덕이던 현실이 많이 반영된 것들이다. '개그콘서트'는 다름 아닌 바로 그 IMF로 힘겹던 1999년의 현실을 갖고 시작됐다는 것이다. 무한 경쟁해야 살아남는 개그맨들의 현실 또한 이런 경쟁적인 사회 현실과 무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몸 개그 역시 단순하고 자극적인 형태에서 머물렀던 건 아니다. 심하면 한두 주에도 사라져버리는 이 칼날 같은 무대 위에서 무려 4년 간이나 버텨낸 김병만의 '달인'은 진화해온 몸 개그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코너다. 이 코너는 초기에 달인도 아니면서 달인이라고 우겨대는 개그맨 김병만의 뻔뻔한 모습으로 웃음을 주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김병만은 놀랍게도 실제 달인의 면모를 보여주기 시작했다. 실제로 줄타기를 하고, 물구나무를 선 채 사다리를 오르내리는 등의 기예를 진짜 선보이자, 관객들은 가짜 달인에서 진짜 달인으로 변한 김병만의 반전에 매료되었다. '달인'의 사례가 보여주듯 개그의 생명력은 그것이 몸 개그든 말 개그든 역시 틀에 박히지 않고 끝없이 변화하고 진화하는 그 과정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슬랩스틱류의 몸 개그들은 최근 들어 그 경향이 바뀌었다. 즉 '개그(gag)의 본질이라 할 수 있는 말 개그가 중심이 되면서 주고받는 대화를 통한 웃음이 주류가 되었다는 것이다. 대화, 즉 이야기가 개그의 중심이 되면서 그 소재는 훨씬 더 현실적인 것들이 되었다. 즉 현실에서 우리가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개그의 소재가 되었던 것. '애매한 것을 정해주는 남자' 이른바 '애정남'은 이 달라진 트렌드를 대표하는 개그다. 함께 음식을 먹다가 마지막 하나가 남았을 때 누가 그것을 먹을 것인가, 혹은 지하철에서 할머니와 임산부가 동시에 탔을 때 누구에게 자리를 양보할 것인가 같은 너무나 일상적이어서 문제 자체가 되지 않을 상황에 대해 '애정남'은 친절하게도 답을 지정해준다. 물론 그 답은 대단한 게 아니다. "마지막 하나 남은 건 돈 내는 사람이 먹는다"는 식이다. 하지만 이러한 사소한 것들에 대한 '공감대'를 바탕으로 '애정남'은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이제 뭔가 살다가 부딪치는 애매한 상황만 만나면 '애정남'을 들먹이게 된 것이다. '애정남'의 인기는 몸 개그가 주던 처절함보다는 이제 말 개그를 통한 공감대에 대중들이 더 열광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것은 거꾸로 보면 한국의 대중들이 소통에 대한 갈망을 갖고 있었다는 얘기가 된다. "너도 그랬어? 나도 그랬어!"하고 맞장구를 쳐줄 때 갖게 되는 그 공감대 속에서 대중들은 그들만의 내밀한 소통의 즐거움을 느꼈다.

현실에 대한 공감이 말 개그의 주류로 떠오르면서 살아난 것이 바로 풍자 개그다. '개그콘서트'는 그 어느 때보다 강하고 직설적인 정치, 시사 풍자를 선보였다. 과거라면 아예 시도 자체를 하지 않았을 국회의원을 소재로 하는 정치 풍자가 등장했고, 이제는 대통령에서부터 관료들에 이르기까지 그 소재의 폭이 넓어졌다. '사마귀 유치원'과 '비상대책위원회'는 그 대표적인 코너다. '사마귀 유치원'은 유치원 선생님의 목소리로 어른들의 세계를 낱낱이 풍자하는 코너이고, '비상대책위원회'는 비상상황을 설정해 놓고 그 상황 속에서도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안되는 이유를 줄줄이 늘어놓는 관료주의를 꼬집는 코너다.

흥미로운 건 이러한 과감한 풍자가 쏟아져 나오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과거처럼 모종의 정치적 외압 같은 것이 그다지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것은 정치가 문화를 억압하던 구시대와는 분명 달라진 현실이다. 즉 문화란 가려지고 억눌려진다고 해서 사라지거나 감춰질 수 있는 것이 아니란 점을 정치권에서도 인식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제 우리 현실에서 정치는 어쩌면 문화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공생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개그콘서트'가 보여주는 풍자개그와 공감개그에 대한 대중들의 공감대는 이제 제아무리 정치권이라도 손댈 수 없는 영역이 되고 있다는 얘기다. 이렇게 되자 그동안 상대적으로 다뤄지지 않았던 정치나 시사 분야의 소재들은 이제 오히려 개그의 블루오션이 되어가고 있다. '개그콘서트'는 어쩌면 그 지대를 먼저 찾아서 열어젖힌 선구적인 역할을 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개그콘서트'의 장수비결은 위에서 열거한대로, 그 시대에 조응하는 형식과 시스템의 구축과 그 안에 현실과 공감하는 내용을 끊임없이 채워 넣었다는 데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즉 디지털 시대가 갖고 온 좀 더 분절적이고 빠른 서사에 대한 욕구를 '개그콘서트'는 일찌감치 읽고 있었으며, 그것을 구현하기 위한 보다 경쟁력 있는 시스템을 갖추었다. 그리고 이 시스템 안에서 당대의 대중들과의 공감대를 만들어나갔다. 현실은 따로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개그콘서트'와 상호작용을 했고, 그 과정에서 나온 코너들은 대중들에게 회자되며 인기를 끌 수 있었다. 결국 한 마디로 말하면 '개그콘서트'의 생명력은 하나의 형식과 내용으로 굳어진 박제가 아니라, 끊임없이 달라진 현실과 함께 변화해온 생물 같은 진화에서 비롯됐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개그가 현실과 유리되지 않는 한, 지금도 진행형이고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 글은 <신문과 방송>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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