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는 개그맨 이수근과 김병만이 '승승장구'에 출연해 눈물을 흘렸다. '개그콘서트'에 출연하고 있으면서도 공채시험에서 번번이 떨어지자, 개그를 포기하고 레크리에이션 강사로 돌아간 이수근. 그와 콤비를 이뤄 뭐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던 김병만. 하지만 개그맨의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할 수 있는 것이 웃기는 일밖에 없었던 그들이지만, 세상은 웃음을 주는 그들의 현실을 바라봐주지 않았다. 웃음을 주기 위해 사실은 남모르게 울고 있는 그들을.

"아마 전세가 다섯 명 정도 밖에 안될 걸요." 이수근이 프로그램에서 밝힌 듯이 개그맨들은 대부분 사글세를 전전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이들이 많다. 그런 그들에게 '개그콘서트' 같은 개그 프로그램은 생계나 다름없다. 하지만 이 생계는 취약하기 이를 데 없다. 천안함 사태가 벌어졌을 때, 거의 한 달 여 동안 '금지된 웃음'은 이 사글세를 전전하는 개그맨들에게는 치명타가 아닐 수 없었다.

상황이 이렇지만 개그맨들의 설 자리는 점점 좁아지고 있는 형편이다. '개그야'에 이어 '하땅사'도 폐지되었고, '웃찾사'는 시청률에 고전하며 결국 토요일 심야시간대로 편성되었다. 예능의 대세가 되어버린 버라이어티쇼는 더 이상 개그맨의 설 자리가 되지 못하고 있다. 대부분 몇몇 유명한 MC들이 독식하고 있는 상황이고, 신예들은 가수들이나 연기자들인 경우가 다반사다. 이렇게 된 것은 버라이어티쇼가 그 웃음을 주는 방식이 근본적으로 무대개그와는 다르기 때문이다. 개그맨들이 무대에서 해왔던 방식은 버라이어티쇼에서는 오히려 장애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1년 여간 거의 주목을 받지 못했던 이수근이 그 대표적인 예다.

상황이 이렇지만 개그 프로그램에 대한 이들의 애정은 각별하다. '승승장구'에 함께 출연한 박성호는 "'개그콘서트' 같은 무대가 있어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것을 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수근은 "연기자들은 쉬면 충전이지만 개그맨들은 방전"이라며 쉬는 것조차 위기상황이 되는 개그맨의 현실을 토로했다. 김병만은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해 마음이 몹시 힘들 때조차 무대에 올라 웃겨야 하는 상황이 개그맨이라는 숙명임을 에둘러 말해주었다.

대부분의 개그맨들이 그렇겠지만 이수근과 김병만은 웃음을 주기 위해서는 뭐든 하는 개그맨으로 정평이 나있다. '1박2일'에서 웃기기 위해 옷을 벗는 이수근은 "그것이 사람들을 웃기게 한다"는 것 때문에 창피하지 않다고 말했고, 김병만은 '달인'을 하기 위해 진짜 달인 수준의 연습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소품도 거의 직접 제작한다고 한다.

깜짝 출연한 김석현 '개그콘서트' PD의 말대로 개그맨들은 위대하지만 지나치게 평가절하 되어 있다. 웃음 없는 세상, 우리의 입가에 피어하는 한 순간의 웃음을 위해 뒤에서 눈물을 흘리는 그들은 진정 위대하다. 예능의 대세는 리얼 버라이어티쇼라지만, 그 기초는 실험적인 개그맨들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그들이 제대로 설 수 있는 무대나 공간이 좀 더 만들어지고, 합당한 가치로 평가되는 날이 어서 왔으면 한다.

서점에 나가보면 썰렁한 분위기에도 유독 활활 타는 코너가 있다. 이른바 '자기 계발 서적' 코너다. 성공에 관한 저마다의 방법들이 실용적으로 담겨진 그 책들은 언제 갑자기 도태될 지 모르는 경쟁 부추기는 사회 속에서 불안한 현대인들을 유혹한다. 성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한다는 그 '자기 계발을 해준다'는 책들의 주장들은 정말 달콤하다. 아침에 누구보다 일찍 일어나고, 사회생활 속에서 상대방의 심리를 파악하며 전술적으로 행동하는 그런 것이 성공을 보장해줄 것이란 믿음을 주기 때문이다.

'자기 계발'이라는 말은 그 뉘앙스만 보면 우리 속에 있는 가능성을 성장시켜주는 어떤 것으로 여겨진다. 아마도 그 책 코너 속에 몇몇 책들은 실제로 이런 기능을 할 것이다. 하지만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대부분의 '자기 계발서'들은 사회를 상정하고 그 사회 속에서 개인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지침처럼 내세운다. 즉 사회 속에 있는 개인을 통제하는 것으로 그 사회의 기존 질서에 부합하는 성공을 열매로 제시하는 것이다. 따라서 '자기 계발'이란 이제는 직접적으로 통제하지 않아도 스스로 통제하게 만드는 보다 견고해진 사회의 통제 시스템으로 보이기도 한다.

불안하기는 방송사 같은 조직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아도 스스로 자신을 채찍질하고 어떤 변화에 민감하게 대응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방송사도 새로운 사장을 뽑고, 조직을 새로 짜고, 매번 방송 개편을 하면서 자기계발을 한다. 사실 개인이야 누군가의 통제를 받는다는 것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심각한 자유의 침해로 여겨지지만, 방송사 같은 거대 권력 조직이 어떤 통제를 받는다는 것은 그다지 이상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통제 없이 달려 나가는 방송사는 언제 터질 지 모르는 지뢰처럼 사회를 불안하게 만들 것이다.

중요한 건 그 통제가 누구에게서 나오느냐는 것이다. 방송사가 누구의 눈치를 보면서 자기계발을 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당연하게도 그것은 방송사가 존립하는 이유인 대중들에게서 나와야 한다. 대중들의 눈높이, 사회 윤리적 잣대, 볼 권리, 알 권리... 굳이 공익이라고 거창하게 말하지 않더라도, 늘 대중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것. 만일 이 통제가 대중들을 통해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정부에 의해 나온다면 그것은 심각한 문제를 야기한다. 이것은 단순히 과거 군사정권 하의 우리네 방송을 돌이켜보면 쉽게 알 수 있는 일이다.

물론 지금은 군사정권처럼 시시콜콜 이거 해라 저거 하지 마라 하면서 방송을 통제하는 시대도 아니고, 또 그렇게 하는 것을 그대로 내버려둘 국민들도 아니다. 문제는 누가 지시하거나 압력을 행사하지 않더라도 알아서 자기 통제를 하는 방송사다. 늘 자기 계발을 위해 좀 더 나은 방송을 위해 했다고는 하지만, 대중들에 의해 논란이 야기되는 건 그것이 혹 자기검열은 아닌가 하는 의심을 받기 때문이다. 좀 더 나은 방송을 위한다는 명분의 자기 계발은 그 통제가 대중들로부터 나오는 것이지만, 자기검열은 권력으로부터 통제되는 것이기에 이 부분에 대한 논란은 뜨거울 수밖에 없다.

최근 들어 방송 프로그램에 대한 외압설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윤도현의 '러브레터' 하차와 정관용씨의 시사 프로그램 하차, 그리고 계속해서 외압의혹을 낳고 있는 김제동씨의 결국 불발된 '김제동쇼'. 그 밖에도 '개그콘서트'의 몇몇 코너들에 대한 외압설 등등 논란은 끊이지 않는다. 아마도 직접적인 외압은 가능성이 희박한 이야기일 것이다. 그럼에도 방송사가 스스로 단행하는 자기 통제 방식의 압력은, 그것이 대중들의 논란을 야기시키는 것으로 볼 때, 분명히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 만일 대중들을 위한 자기 통제라면 논란이 나올 까닭이 없지 않은가. 자기 계발 시대의 통제 시스템은 이처럼 더 견고해졌고 그 실체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아졌다.

예능 장기 결방이 남긴 후유증들

천안함 사태로 인해 예능 프로그램이 거의 한 달째 결방되었다. 26일부터 29일까지 장례식이 치러질 예정이어서, 파업 중인 MBC를 제외하고 KBS나 SBS는 이번 주말부터 예능 프로그램을 정상적으로 방영할 것으로 보인다. 사실 꽃다운 나이에 산화한 우리네 젊은이들의 죽음을 애도하지 않는 이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애도하는 마음을 예능 프로그램의 결방과 연결시키는 것에는 문제가 존재한다.

먼저 예능 프로그램의 웃음이 애도하는 마음 자체를 해칠 만큼 무의미하고 몰가치한 것인가에 대한 것이다. 힘겨운 현실에 예능 프로그램이 제공하는 웃음은 그 자체로 공익적이라고 할 수 있다. 사회가 만들어내는 다양한 억압을 웃음이라는 긍정적인 방식으로 풀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웃음 속에 들어가는 풍자정신이나 사회비판적인 요소들은 갑갑한 세상에 작은 숨통을 트이게 해준다는 점에서 건강하다.

게다가 작금의 예능 프로그램들은 웃음뿐만 아니라, 사회적 책무까지도 함께 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과거 태안 기름유출 사고가 났을 때만 해도, 저마다의 예능 프로그램들은 현지로 내려가 태안 살리기에 동참하는 내용을 방영해, 보는 이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했다. KBS의 간판 예능 프로그램인 '1박2일'은 국내의 숨겨진 여행지를 발굴하고, 또 상대적으로 소외되어 있는 오지를 조명해준다는 좋은 취지를 갖고 있다. '개그 콘서트'는 개그 프로그램으로서 웃음에 충실하면서도, 특유의 풍자정신으로 사회적인 맥락을 잊지 않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

MBC의 간판 예능 프로그램이라고 할 수 있는 '무한도전'은 비인기 스포츠 종목이나 불경기에 힘겨워하는 서민들 같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저버리지 않고 있고, 때론 우리 음식을 알리기 위해 뉴욕까지 날아가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일요일 일요일 밤에'는 아예 공익을 내걸고 예능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단비'는 국내외를 넘나드는 기부 프로그램이고, '우리 아버지'는 힘겨워도 웃으며 살아가는 우리네 아버지들을 조명해주는 착한 프로그램이다.

사실상 이런 '의미 있는' 웃음을 전하는 예능 프로그램들을 그저 겉으로 드러나는 '웃음'이라는 그 잣대 하나로 모조로 결방시키는 것은, 웃음이 가진 사회적인 의미를 너무 낮게 바라본 처사라고 볼 수 있다. 혹자들은 이런 비극적인 사태 앞에서 예능 프로그램이 웬 말이냐고 말하지만, 예능 프로그램의 방영이 TV의 애도 분위기를 해치는 일은 아니다. 예능 프로그램을 방영하면서, 한편으로는 국민적인 애도를 반영하는 프로그램을 방영할 수 있다. 웃음도 눈물만큼 의미가 있는 것이다.

또 다른 문제는 형평성 문제다. 단적으로 말해 '개그 콘서트' 같은 프로그램이 거의 5주째 결방된 반면, '승승장구'나 '강심장' 같은 토크쇼나 '우리 결혼했어요2' 같은 프로그램이 방영된 것에 대한 형평성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또 예능은 안 된다고 하면서 코미디 영화로 대체한다거나, 로맨틱 코미디를 담은 드라마가 방영되고 있는 상황도 쉽게 납득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개그 콘서트'는 안 되고 '7급 공무원'은 되는 상황, '동이'에서 심지어 왕이 깨방정을 떨며 웃음을 주고, '개인의 취향'에서는 동성애 코드를 활용한 로맨틱 코미디가 말 그대로 빵빵 터지게 만드는 이 상황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이처럼 드라마나 (예능을 닮아있는) 교양프로그램은 되면서, 예능 프로그램은 방송 자체를 원천봉쇄하는 상황은 그 해당 프로그램의 출연진들에게만 희생을 요구한다는 점에서도 역시 형평성 문제를 낳는다. 특히 '개그 콘서트' 같은 경우 몇 주 동안 결방되는 상황 속에서 개그맨들의 힘겨움은 현실 그 자체다. 또한 가수들 역시 음악 프로그램 자체가 방영되지 않는 상황에서 활동할 무대가 사라져버렸다.

오랜 결방은 또한 프로그램 자체에도 영향을 미친다. 무엇보다 예능으로 분류되어 있는 시트콤의 경우, 매일 방영되던 것이 몇 주 동안 계속 결방되면서 대중들의 뇌리에서 거의 잊혀져버렸다. 이것은 점점 더 스토리텔링화 되어가는 리얼 버라이어티쇼에도 마찬가지다. 과거처럼 예능 프로그램은 단발적인 상황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이제 연속적인 스토리로 이어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1박2일'은 봄을 맞아 전국투어를 시작했지만, 잦은 결방으로 그 시의성을 놓쳐가고 있다. 몇 주 결방된 후 방영된 '우리 결혼했어요2'에서는 2월에 찍은 영상이 방영되었다.

이런 기준 없는 예능 프로그램의 결방은 심지어 다양한 음모론까지 등장하게 만들었다. 유독 오랫동안 결방되어 온 '개그 콘서트'의 경우, 그간 해왔던 풍자개그가 눈엣가시였기 때문이라고도 말하고, 심지어 MBC의 파업으로 인한 방송 프로그램의 결방을, 타 방송사들의 천안함 사태로 인한 결방으로 덮어버리려는 의도라고도 말한다. 나아가 장차 있을 선거에 맞춰 남북 관계의 긴장관계를 높이려는 의도라고까지 말한다. 물론 그것이 사실인지 그저 음모론에 불과한 것이지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이런 추측들을 양산한 것 역시 바로 그 형평성 없는 기준 때문이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물론 이런 국민적인 애도가 필요한 시점에 예능 프로그램을 방영할 것인가 아닌가의 문제는 전적으로 국민적인 여론과 그 여론을 읽는 제작자에 달려있다. 이 말은 해외의 사례들, 예를 들어 미국의 911 테러사건이 벌어졌을 때 예능 프로그램들이 결방되었는가, 하는 그런 예시들은 우리의 상황에는 그다지 설득력이 없다는 이야기다. 전적으로 우리네 정서가 어느 쪽으로 가느냐의 문제이고, 그것을 제작자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의 문제이다. 따라서 만일 이렇게 제작자들이 여론을 읽은 결과로서 예능이 결방을 결정했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아쉬움은 남는다. 예능 제작자들은 자신들이 만들어내는 웃음이 그다지도 의미 없는 것이라 판단하는 것인가. 좀 더 자신감을 가지면 안되는 것인가.

'개콘'의 풍자개그, 그 현실공감의 세계

"대학등록금이 무슨 우리 아빠 혈압이야?" 이 한 마디면 충분했다. 마치 마당놀이에서 광대들이 세상사를 그 도마 위에 올려놓고 이리저리 요리를 할 때 십년 묵은 체증이 쑥 내려가는 그 경험. 장동혁은 그렇게 '동혁이형'으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지자체의 호화청사에 대해 "거기가 무슨 베르사이유 궁전이야?"라고 비판하고, 고층 시청사에 대해 "수익을 낼 거라는데 시청이 무슨 복덕방이야?"하고 꼬집었을 때는 국민의 세금 받아 정작 국민을 위한 일은 좀체 하지 않는 그 답답한 행태에 대한 신랄함에 속이 다 후련해졌다.

물론 이것은 개그다. 우리는 '동혁이형'의 샤우팅을 보면서 억울함에 부들부들 떨거나, 그 말에 선동 당하지는 않는다. 대신 우리는 말 그대로 빵 터진다. 그것은 이 개그가 웃음의 장치를 충분히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 기본은 촌철살인의 적절한 비유에서 나온다. '대학등록금'이 '아빠 혈압'과 만날 때, '호화청사'가 '베르사이유 궁전'이 될 때, '고층 시청사'가 '복덕방'이 될 때, 명절 고속도로 정체 속에서 하루 종일 운전해야 하는 귀향객이 "하루 종일 운전하는 이수근"이 될 때, 웃음은 빵 터진다.

게다가 이렇게 세상에 쓴 소리를 던지는 존재가 깔깔이에 교련복을 차려 입은 후줄근한 모습의 낮은 인생이기 때문에, 웃음이 터진다. 즉 정치인들이나 경제인들 같은 엘리트들이 하지 않는 이야기를 전혀 그런 얘기하고는 상관없을 것만 같은 불만투성이 청년이 '저 나름대로' 논리를 갖고 마구 쏟아내기 때문에 웃음이 나온다. 게다가 이 쓴 소리는 '동혁이형'이 스스로 말하듯, "애정이 있어서 하는 말"이다. 반대를 위한 반대, 그저 분노를 폭발시키기 위한 헐뜯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억눌렸던 감정이 터지며 그 분노가 웃음으로 전화된다는 점에서 '동혁이형'은 그 말을 입증하는 셈이다.

'동혁이형'이 부조리한 세상을 직설어법으로 풍자해낸다면, '남성인권보장위원회(이하 남보원)'와 '나를 술푸게 하는 세상'은 그 형식이 갖는 간접어법을 사용한다. '남보원'은 남성들이 자신들의 인권을 주장하는 내용을 갖지만 이것만으로 이 개그는 웃음을 주지 못한다. 여기에 시위처럼 붙여진 과장된 형식이 붙으면서 웃음을 만들어낸다. 문제제기-구호-사연설명-상황반전. 이것이 '남보원'의 간단한 형식이지만 이 형식은 많은 현실의 부분들을 공감으로 끌어안는다. 즉 남성들의 공감대는 물론이고 시위조차 하나의 통상적인 것이 되어버린 정치권에 대한 풍자까지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한편 "일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으로 잘 알려진 '나를 술푸게 하는 세상'은 취객의 목소리라는 희극의 단골소재를 통해 알 수 없는 그 더러운 세상을 풍자해낸다.

방송개혁시민연대(방개혁)는 '동혁이형'이나 '남보원' 같은 풍자개그가 선동을 함으로써 '개그를 개그로 볼 수 없게 만든다'고 하지만, 바로 그 풍자 속에 담겨진 현실 공감이 있기 때문에 이 풍자개그는 개그가 된다. 이러한 현실에 대한 공감을 이끌어내는 풍자개그는 '개그콘서트'의 오랜 전통이기도 하다. 특유의 어눌한 말투로 세상에 대한 하소연을 담아낸 안상태 기자가 그렇고, 잘못된 상흔에 대해 꼬집는 황현희 PD가 그렇다. 또 '분장실의 강 선생님' 같은 코너에서 늘 당하면서도 "행복한 줄 알아야 하는" 신참들은 88만원 세대들의 고충을 고스란히 담아냈다. 이 현실공감은 '개그콘서트'가 꾸준히 대중들과 호흡할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방개혁은 심지어 이 개그를 보고 있으면 "국민이 천민(賤民) 혹은 폭민(暴民)화"된다고까지 주장한다. 하지만 이것은 풍자개그를 개그로 보지 못하고 선동으로 보는 그 과잉된 시선 때문이다. 개그가 선동으로 매도되는 세상. 아마도 '동혁이형'이 불만을 개그에 담아 풍자한 것은 우리를 슬프게 하는 바로 이런 세상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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