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박2일', 이런 멤버 교체로 부활할 수 있을까

 

<남자의 자격> 폐지에 이어 <1박2일>도 맏형인 김승우가 빠지고 최재형 PD가 교체되는 등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사실 <1박2일>이라는 브랜드의 힘 때문에 일정한 시청률을 유지하고는 있었지만 이 프로그램 또한 위기상황에 봉착했던 것은 분명하다. 그것은 이 프로그램에 대한 화제성이 급격히 떨어지고 있었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1박2일'(사진출처:KBS)

하지만 <1박2일>의 긍정적인 변화가 최재형 PD와 김승우의 교체만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가는 의문이다. 대중들이 요구하는 건 좀 더 큰 폭의 변화이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1박2일>은 어떤 패턴화의 늪에 빠져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것은 여행지가 달라질 뿐 거의 게임에 집중하면서 생겨난 결과다. 이러한 패턴에 적응된 멤버들이 그대로 남아있는 한 <1박2일>의 변화는 PD가 바뀐다고 해도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출발하는 과정에서 게임이 벌어지거나 여행지에서 미션을 수행하고, 또 음식과 잠자리를 놓고 벌이는 복불복의 무한반복은 <1박2일>을 식상하게 만든 주범이다. 게임과 벌칙을 통해 즉각적인 재미는 줄 수 있을 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프로그램의 본래 색깔을 지워버릴 수 있는 위험성이 있다. 즉 이런 좀 더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단순한 멤버 교체는 그다지 큰 의미가 없을 수 있다는 것이다.

 

<1박2일>이 그렇다고 여행이라는 아이템을 저버린 채 게임만 해왔던 것은 아니다. 그 여행지가 드러나는 게임을 개발하려 노력한 흔적도 있다. 하지만 여행지 소개 역시도 게임을 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처럼 여겨진 면이 있다. 결국 이것은 <1박2일>의 재미가 여행 그 자체에서 생겨나지 못하고 게임 같은 인위적인 틀에 의해 머물게 된 이유가 되었다.

 

그렇다면 <1박2일>만이 가질 수 있는 재미라는 건 어떤 걸 말하는 걸까. 그것은 여행이 주는 의외성과 낯선 곳에서의 하룻밤이 만드는 설렘 그리고 한바탕의 왁자지껄한 시장통에서 느끼는 허기나 고단한 길에서 잠깐 만나게 된 휴식 같은 시골 사람들과의 대화 같은 정서적인 것들이다. 이러한 어딘지 푸근하고 따뜻한 고향 같은 <1박2일>만의 정서가 빠져버리면 그것은 그저 연예인들을 대동한 여행지 소개와 여행지에서의 게임에 머물게 된다.

 

이 정서는 예전 <1박2일>을 만들었던 이명한 PD가 명쾌한 한 마디로 정리한 적이 있다. 그것은 그가 <1박2일>을 <6시 내 고향>이나 <전국노래자랑> 같은 프로그램으로 생각한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1박2일>만이 가진 재미와 매력을 가장 정확하게 표현한 것이다. 저녁 6시만 되면 어김없이 보고 싶어지는 고향의 얘기와 그 곳에서 나는 음식으로 허기마저 느끼게 만드는 <6시 내 고향>처럼 <1박2일>도 주말 저녁이면 가족이 둘러 앉아 같은 정서를 느끼게 하고 싶다는 얘기다.

 

사실 <1박2일> 같은 아이템은 그 소재의 특성 상 <6시 내 고향>이나 <전국노래자랑>처럼 장수 프로그램이 될 가능성이 높다. 다만 그러려면 그것이 단순한 그 때 그 때의 재미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어떤 <1박2일>만의 정서를 계속 자극하고 떠올리게 하는 특별한 면이 필요하다. 그것은 결국 여행이 갖고 있는 느낌과 정서다. 그저 그 곳의 유명한 여행지나 풍광을 담는 ‘관광’이 아니라, 그 곳을 오감으로 느끼게 할 수 있는 그런 여행.

 

따라서 <1박2일>이 먼저 고민해야 할 것은 어떤 멤버를 해야할 것인가나 누가 그 메가폰을 새로 쥘 것인가가 아니라 이 본래 갖고 있는 <1박2일>만의 촌스럽지만 그래서 정감가고 늘 떠올려도 질리지 않는 고향 같은 정서를 어떻게 되살릴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다. 또 어떤 새로운 게임 개발을 통해 재미를 만들 것인가에 대한 고민보다 더 필요한 것은 어떤 이야기를 담을 것인가 하는 고민이 될 것이다.

 

지금 현재 <1박2일>이 변화랍시고 보이고 있는 제스처는 그래서 대중들에게는 그다지 공감이 되지 않는다. 일부 멤버를 교체하는 것만으로는 대중들이 느끼는 <1박2일>의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먼저 근본적인 고민에 대한 해답을 얻은 연후에 멤버 교체를 생각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필요하다면 더 많은 멤버 교체도 생각해야 한다. 결국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되는 법이다.

<야왕>, 이건 복수극이 아니라 게임이다

 

우리는 <야왕>의 시작과 끝을 이미 알고 있다. 이미 첫 회에 영부인이 된 주다해(수애)를 찾아온 하류(권상우)가 서로 안은 채 피를 흘리는 것으로 그 끝이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누가 죽음을 맞이할 지는 알 수 없지만 결국은 파국이다. 주다해의 끝을 모르는 욕망이 만들어낸 비극. 착하기만 하던 하류의 복수극. 그런데 참 희한한 일이다. 이 뻔한 복수극에 끌리는 것은.

 

'야왕'(사진출처:SBS)

더 희한한 것은 이 뻔한 복수극의 얼개 역시 대단히 느슨하다는 점이다. 아마도 하류가 애초에 복수를 하겠다 마음먹었다면 그저 과거 행적이 드러나는 사진 몇 장을 언론에 뿌려버리면 그만일 일이다. 스스로 자기도 죽을 결심까지 섰다면 같이 죽는 극단적인 선택을 해도 충분한 복수가 될 것이다. 잃을 게 없는 하류와 모든 걸 잃어야 하는 주다해가 맞는 죽음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야왕>의 하류는 그런 손쉬운 복수를 하지 않는다. 하류의 말을 빌면 “그건 너무 쉬운 복수”이기 때문이다. 하류는 주다해의 피를 바짝바짝 말려 주는 그런 복수를 하겠다고 한다. 그래서 주다해의 재단 이사장 취임식 날, 과거 딸과 자신이 그녀와 함께 찍은 사진을 기자들에게 퍼뜨리겠다고 협박을 해서 그녀를 이리 뛰고 저리 뛰게 만들고는 그녀 스스로 이사장직을 포기하겠다는 얘기를 하게 만든다. 역시 그녀의 치부가 드러나는 녹음된 말을 취임식에 틀어버리겠다는 협박을 통해서다.

 

그런 하류에게 고분고분해질 주다해가 아니라는 점은 <야왕>의 복수극을 이상한 방향으로 틀어버린다. 주다해는 심지어 하류의 아버지까지 죽음의 위기로 몰아넣으며 하류를 협박한다. 자신을 자극하면 주변사람들까지 다 다칠 수 있다는 경고다. 격분한 하류가 주다해를 끌고 외딴 창고로 가서 따귀를 올려 부치지만 주다해는 두려움에 떨기는커녕 하류의 따귀를 맞받아친다. 죽음까지 내몰리는 극단적인 상황 속에서도 하류와 주다해는 두려움이 없다. 다만 어떻게 하면 상대방의 마음을 긁어놓을 지에만 혈안이 된 사람들 같다.

 

그래서 이미 결론이 나와 있고 결정적인 한 방을 주저하고 있는 하류를 보면 마치 이 뻔한 복수극이 ‘시간 끌기’를 하고 있는 것 같은 인상을 준다. 끝까지 시청자들의 마음을 갖고 이른바 마인드 게임을 하고 있는 느낌. 그런데 이상하게도 바로 이 지점이 시청자들의 눈길을 끄는 이 드라마만의 묘한 매력을 만들어낸다.

 

현실성에 벗어난 전개, 결정적인 한 방이 있으면서도 오히려 조금씩 파국을 향해 접근하는 방식. 이건 복수극이라기보다는 한 판의 게임에 가깝다. 하류가 한 방을 때리면 주다해가 맞받아 때리는 따귀처럼 <야왕>은 이 복수와 분노와 통쾌함을 주고받으며 굴러가는 한 편의 게임이다. 결과는 알고 있지만 그 끝까지 가는 과정을 즐기는.

 

이것은 아마도 <야왕>의 원작이 만화라는 점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다. 만화란 훨씬 더 현실을 벗어나 그 자체의 게임적인 면만으로도 충분히 재미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야왕>은 초반부에 상당히 전형적인 드라마적 리얼리티를 유지하려 노력했다. 빈부의 문제와 자본 하에서 가난한 자들이 성공하기 위해 치러야 하는 대가 같은 것들을 깔아두었다. 하지만 이런 현실적인 바탕은 중반을 넘어가면서 이제 사라진 지 오래다. 오로지 관계 속에서 만들어지는 인물들 간의 치열한 마인드 게임이 지금 <야왕>을 움직이는 추동력이 되었다.

 

물론 아쉬운 점은 많다. 이러한 치고받는 마인드 게임 아래 충분한 현실적인 공감대를 유지했다면 <야왕>은 훨씬 더 폭발력 있는 드라마가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야왕>은 그 태생적인 설정의 비현실성 때문에 그런 드라마로 완성되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번 준 <야왕>에 대한 눈길을 뗄 수 없는 건 그 뻔한 복수극 속에 존재하는 게임적인 재미 때문이다. 이번엔 누가 한 방을 먹일 것인가. 또 그 반격은? <야왕>을 보는 관전 포인트는 그래서 여느 복수극과는 다른 지점이 있다.

글로벌해진 <런닝맨>, 달리지 못할 곳이 없다

 

공항을 가득 메운 팬들, 일일이 한글로 적은 응원의 글들과 광장을 가득 메운 인파, 어디든 따라다니며 사진을 찍고 때론 스스럼없이 함께 게임에 참여하는 모습, 심지어 이광수처럼 기린 캐릭터를 따라하는 코스프레와 프로그램에서 잠깐 나왔던 이지송을 따라 부르는 장면까지... 한류의 풍경으로는 낯설지 않다. 하지만 예능 프로그램에는 발견하기 힘들었던 <런닝맨>에 대한 이 해외의 팬덤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런닝맨'(사진출처:SBS)

<런닝맨>이 아시아 레이스라는 글로벌하게 마련한 특집에서 보여준 해외 팬들의 출연 멤버들에 대한 사랑은 각별해보였다. 특히 이광수의 인기는 상상 이상이었다. 공항을 나오자마자 팬들은 그의 이름을 연호하기 시작했고 이광수는 답례하듯 특유의 춤을 선사하기도 했다. 송지효와 개리의 월요커플, 능력자 김종국, 하로로 하하, “필! 촉!”을 외치면 “크로스”라고 따라하는 팬들. 무엇보다 유재석은 아시아에서도 유느님이었다. 어떻게 이런 반응이 가능했던 걸까.

 

물론 사전에 <런닝맨>이 온다는 정보를 알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을 게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이들이 보여준 <런닝맨>에 대한 깊은 관심이다. 그들은 캐릭터는 물론이고 프로그램을 속속들이 꿰고 있었고 심지어 함께 참여하는 게임에도 익숙하게 참여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것은 <런닝맨>을 빼놓지 않고 시청하기 전에는 나올 수 없는 반응이다.

 

이런 반응이 가능해진 것은 역시 유튜브 같은 SNS의 위력이다. 과거 <프리즌 브레이크> 같은 미드 열풍으로 “석호필”을 연호했던 우리들의 모습이 거기에는 그대로 들어있다. 미국에서 방영되자마자 누군가에 의해 자막이 달린 드라마가 국내에서도 볼 수 있었듯이, 지금 우리네 인기 프로그램도 해외 팬들에게 똑같이 그네들의 자막이 달린 채 회자되고 있는 셈이다. 실제로 유튜브에 올라온 <런닝맨> 영상들을 보면 그 자막이 꽤나 섬세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유독 <런닝맨>에 이런 열광이 생기는 데는 이 프로그램이 가진 특별한 이유가 있다. 먼저 게임이라는 만국 공통의 소재를 다루고 있다는 점이 그렇다. 일견 몸으로 주로 부딪치는 게임이 단순해 보일 때도 있지만(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바로 그 단순함이 해외 팬들에게도 편안하게 다가갈 수 있었다는 것이다. 거기에 <런닝맨> 특유의 캐릭터들이 얹어지자 팬덤이 생겨날 수 있었다.

 

유재석은 그 중심에 서 있는 인물이다. 이미 <X맨>에서부터 <패밀리가 떴다>을 거쳐 <런닝맨>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게임 버라이어티쇼의 계보는 그 안에 반복적으로 출연해왔던 유재석과 몇몇 인물들(이를 테면 김종국 같은)을 해외 팬들의 뇌리에 각인시키기에 충분했다. 게다가 <무한도전> 역시 해외에서 인기 있는 예능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그러니 유재석 사단이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캐릭터들과 익숙한 게임 버라이어티쇼가 하나의 맥락을 만들었던 것은 당연한 일일 게다.

 

이번 <런닝맨> 아시아 레이스 특집은 그간 동남아에서 펼쳐졌던 몇몇 미션들을 통해 조금씩 그 낌새를 보였던 예능 한류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무엇보다 마카오의 피셔맨 워프에서 팬들을 만나고, 마카오 타워 233미터에서의 번지점프 같은 미션과 마치 서울에서 부산으로 달려가듯 마카오에서 베트남으로 장소를 이동하는 일련의 움직임은 <런닝맨>의 무대가 이제 글로벌하게 열렸다는 자신감을 보여주었다.

 

영화, 드라마에 이어 K팝까지 영역이 넓혀진 한류에 예능이라고 못할 건 뭔가. 특히 우리네 예능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리얼 버라이어티(해외의 리얼리티쇼와는 다른 연예인 캐릭터쇼)는 몸으로 부딪쳐 보여준다는 점에서 예능 한류의 가능성이 가장 많은 형식이다. 유재석을 필두로 <런닝맨>은 과연 그 길을 열어줄 것인가. 적어도 이제 이 글로벌해진 예능이 달리지 못할 곳은 없어 보인다.

<무도>와 <런닝맨>, 게임 예능의 딜레마와 해법

 

<무한도전> 뱀파이어헌터 특집은 호평과 혹평을 동시에 남겼다. 새벽에 모여 뱀파이어를 잡는 미션이 부여되지만, 이미 그들 중 뱀파이어가 된 정형돈과 그에게 물려 역시 뱀파이어가 된 유재석이 있어 팽팽한 심리전이 만들어졌다. 뱀파이어인 정형돈과 유재석이 탄 차에 길이 올라타면서 그 심리전은 더 흥미진진해졌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기존에 갖고 있던 <무한도전> 멤버들의 캐릭터 때문에 상황이 작위적으로 흘러가는 단점도 드러났다.

 

'무한도전'(사진출처:MBC)

어쨌든 캐릭터 쇼이기 때문에 그런 단점조차 쇼의 일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부분에는 <무한도전>이 게임 쇼를 할 때 나타나는 일종의 딜레마가 숨어 있다. 게임이라는 것은 그 방식이 익숙해지면 지루하거나 식상해지기 마련이다. 따라서 늘 낯선 형식을 시도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낯설다는 것 역시 보는 이들을 불편하게 만들기는 마찬가지다. 어느 정도 초반부를 몰입해서 들여다봐야 후반부에서 더 강한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이 초반부의 낯설음을 견디게 해주는 것은 결국 캐릭터다. 게임의 미션은 달라져도 <무한도전> 멤버들의 캐릭터는 익숙하기 때문에 시청자들은 이 캐릭터에 집중하면서 서서히 미션을 이해해나가게 된다. 하지만 여기에는 하나의 전제도 필요하다. 그것은 시청자들이 <무한도전>을 계속 보면서 그 캐릭터들을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저 어느 날 무심코 돌려 <무한도전>을 보게 된 시청자라면 이 초반부의 낯설음이 어떤 장벽처럼 여겨질 수 있다.

 

이것은 <런닝맨>도 마찬가지다. <런닝맨> 환생 특집은 그런 면에서 이번 <무한도전> 뱀파이어헌터 특집과 유사한 면을 보인다. <런닝맨> 환생 특집은 초반부에 이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갈 것인가를 전혀 가늠할 수 없었다. 그래서 80년 전의 시청에서 벌어지는 미션은 다소 지루해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미션이 일단락되고 80년 후의 다른 모습으로 환생한 런닝맨들의 이야기는 흥미로움 그 자체였다. 누가 누구로 환생했는가를 전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과거의 인연이 현재의 환생과 미션으로 이어지는 이야기는 실로 기발한 발상이었다.

 

하지만 이 흥미롭고도 놀라운 미션을 보여주는 <런닝맨>에서도 <무한도전>과 똑같은 딜레마가 생긴다. 즉 초반부의 설정이 다소 낯설고 따라서 지루하게까지 여겨질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이번 미션의 경우 80년 전의 상황 자체가 이 이야기의 전제가 되기 때문에 도입부가 너무 길게 느껴지는 단점이 생겨날 수밖에 없었다. 어느 정도 익숙해져야 묘미를 느낄 수 있는 게임 예능이 TV라는 조금만 느슨해져도 순식간에 채널이 돌아가 버리는 매체와 부딪쳐 생겨나는 간극이다.

 

<무한도전>은 물론 늘 게임쇼를 하지는 않기 때문에 이런 면에서 <런닝맨>보다는 자유로운 편이다. 하지만 <런닝맨>은 다르다. 아예 게임 버라이어티를 기치로 내세우고 있기 때문에, 매번 새롭고 낯선 게임을 할 것인가 아니면 이미 익숙해진 게임을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생길 수밖에 없다. 지금껏 한 번도 시도된 적이 없었던 초능력자 미션이나 추리형식을 넣은 셜록 홈즈 미션 같은 독특한 서사의 게임은 <런닝맨>의 팬들을 열광시킨다. 하지만 새롭게 유입된 시청자들에게는 그 형식이 낯설다 못해 어렵게 여겨질 수 있는 단점도 있다.

 

최근 <런닝맨>은 한동안 그다지 복잡하지 않은 단순한 게임 미션을 반복해왔다. 배경을 달리하지만 그저 일대일 혹은 팀 대결을 통해 승자를 가르는 단순한 게임들이었다. 그간 그토록 많이 나왔던 스파이 미션이나 배신 이야기는 한 동안 잘 보이지 않았다. 거기에는 위에서 언급한 게임 예능이 가진 딜레마에 대한 제작진의 고민이 깔려 있다. 마치 영화 같은 <런닝맨> 특유의 게임 미션이 한동안 나오지 않았던 것은 그것을 고민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보편적인 시청층을 배려하려는 제작진의 고민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런닝맨> 환생 특집은 최근 한 동안 시도되지 않았던 새로운 게임 형식에 대한 갈증을 풀어주기에 충분했다. 1938년의 시청과 2013년의 시청이라는 시공간을 뛰어넘는 서사는 거기에 환생이라는 장치를 넣어(이름표만으로 이 장치가 가능하다는 것이 놀랍다) 훨씬 풍부한 이야기를 가능하게 만들었다. 예능이 아니라 마치 영화 같은 <런닝맨>의 진면목이 이번 특집으로 다시 드러난 셈이다.

 

물론 이런 시도는 시청률에는 불리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시청률을 고민하는 방송사의 중역들에게는 난감한 일이다. 엄청난 화제성에도 불구하고 <무한도전>과 <런닝맨>의 시청률이 15%에 머물러 있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언젠가 <무한도전>의 김태호 PD나 <런닝맨>의 조효진 PD는 이 답보상태의 시청률에 만족한다는 얘기를 한 적이 있다. 이 말은 그저 반복적인 미션에 자극을 붙여 시청률을 높이기보다는 그래도 새로운 도전을 하는데 소홀하지 않겠다는 자기 다짐처럼 들린다. 그리고 그런 다짐은 두 예능 프로에 대해 대중들이 보내는 절대적인 지지의 이유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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