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연기대상은 왜 무리수를 썼을까

정말 탈도 많고 말도 많은 드라마가 아닐 수 없다. '대물' 말이다. 시작 초기부터 작가가 교체되고 PD까지 교체되고는 갈팡질팡하더니, SBS 연기대상에서까지 물의를 일으키고 있다. 고현정의 수상소감이 너무나 지나치게 훈계조인데다 심지어 건방져 보이기까지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어떤 말이 갖는 뉘앙스는 상황에 따라 완전히 달라 보일 수 있다. 고현정은 정말 건방진 태도로 시청자들을 훈계하려 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고현정이 한 말들은 지나치게 자신감이 넘쳤다는 것 이외에 그 자체로 문제될 것은 없다고 보인다. 고현정은 이번 '대물' 작업을 하면서 특히 많았던 마음고생을 당당하게 밝힌 것이고, 이런 내부적인 문제들에 대한 외부의 왜곡된 시선들에 안타까운 마음을 표한 것이다. 작가와의 불화, 전적으로 의지하던 PD의 교체. 하지만 그래도 촬영은 계속되어야 하는 상황. 아무리 제작진의 지시를 받는 배우라고 해도 마음고생이 없었을까.

또 한 편으로는 나름대로 제작진 교체에 따라 영향을 받은 작품에 대한 비판도 했다고 보여진다. "그게 좋은 대본이든, 누가 어떻든 뭐하든, 그런 거랑 상관없이 그 순간 저희는 최선을 다하거든요."라는 말에는 대본에 대한 불만이 간접적으로 녹아있다. 나중에 참여하게된 김철규 감독에게는 "팔 벌려 환영해 드리지 못해 너무 죄송"했다고 밝혔고, 작가에게는 "저희가 일하면서 욕 많이 했던 우리 작가님, 진짜 당신이 미워서 욕을 했겠습니까."라는 말로 에둘러 비판하고는 "새해에는 당신에게도 행운이 꼭 갈 겁니다."라는 덕담으로 마무리했다.

사적인 이들에 대한 그녀의 고마움 표시 중에 등장한 반말은 친근감의 표현이라고 보여진다. "미안하지만 제 개인적인 얘길 잠깐 하면,"이라는 단서를 미리 붙였고, 일일이 그네들의 이름을 지목하며 하는 말에는 가까운 사람에게 던질 수 있는 진정성도 느껴졌다. 호의적인 눈으로 바라보면 고현정의 수상소감은 첫째, 마음고생이 많았다는 걸 표현했고, 둘째, 제작진과 작품에 대한 비판도 에둘러 했으며, 셋째, 가까운 사람들에 대한 감사의 표현을 한 것이다. 그런데 왜일까. 이런 고현정의 수상소감이 공감이 아닌 반감으로 돌아온 것은.

그것은 그녀가 한 말의 내용이나 태도 때문이라기보다는, 그녀가 받은 연기대상이라는 상 때문이다. 과연 '대물'의 서혜림을 연기한 고현정에게 연기대상이 합당한 것일까 하는 의문. '대물'은 시청률에서도 선전하지 못한 작품이고, 그렇다고 작품성에 있어서도 완성도가 높았던 것은 아니었다. 특히 고현정이 연기한 서혜림이라는 캐릭터는 그다지 강렬한 인상을 남기지도 못했다. 이것은 물론 고현정의 연기력 문제는 아니지만, 연말 연기대상에서 보는 것은 연기자의 연기력만이 아니다. 캐릭터와 연기자 사이에 만들어지는 그 조합이 더 중요한 것이다.

고현정의 연기대상 수상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면서 거론되는 연기자로 정보석이나 이범수는 그런 면에서 보면 거의 모든 것을 갖추고 있었다고 생각된다. '자이언트'는 시청률도 높았던 작품이었고, 정보석과 이범수가 연기한 조필연과 이강모라는 캐릭터의 존재감은 그 어느 것보다 강렬했다. 물론 연기력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러니 고현정의 수상소감이 빚은 구설수들은 어찌 보면 걸맞지 않은 시상이 만들어낸 것으로 볼 수 있다. 만일 고현정이 대상이 아닌 최우수상 정도를 받으며 이런 수상소감을 말했다면 과연 이런 구설이 나왔을까.

어떤 상은 수상자에게 아무런 영광을 주지 못하고 오히려 독이 되기도 한다. 고현정은 할 말을 한 것이지만, 중요한 것은 그 자리가 문제였다. 고현정 스스로도 문제가 많았던 작품이라 술회하고 있는 '대물'에 대한 시상은 왜 그토록 무리하게 이루어진 걸까. 결과를 보라. SBS연기대상에 대한 신뢰도도 바닥에 떨어졌고, 제작진의 잇단 교체라는 악재 속에서 마음고생하며 열심히 연기해온 고현정 자신에게도 불똥이 튀고 있지 않은가.

'대물', 정치 바깥에서 정치를 할 수는 없다

'대물'이 다루는 세계는 정치다. 물론 실제 정치와 정치드라마는 다르고 또 달라야 한다. 현실에서 신물이 나게 봐서 이제는 혐오증까지 생겨버린 그 놈의 현실정치를 그대로 반복해서 보여준다면 그 누가 드라마를 볼 것인가. 따라서 드라마에는 현실정치가 결여한 부분들을 채워줄 필요가 생긴다.

'대물'의 서혜림(고현정)과 하도야(권상우)가 마치 국민들의 대변인인 것처럼, 그간 침묵하고 있던 바람들을 대사를 통해 언급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서혜림이 유세장에서 "내 아이에게 이 나라를 어떻게 설명해야 합니까!"하고 외치고 잘못하는 국회의원들을 향해 "회초리를 들어 달라"거나, 하도야가 검찰청 로비에서 검사윤리강령을 소리 높여 외치는 장면은 그래서 속절없게도 보는 이의 가슴을 울린다. 실제 현실에서는 그런 돈키호테 같은 대변인들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단순하게 서혜림과 하도야를 정의의 편에 세우고 그 반대편에 조배호(박근형)를 위시한 정치꾼들을 마치 협잡꾼처럼 세워놓자 실제 정치는 지나치게 단순해진다. 기왕에 정치판에 뛰어든 마당에 서혜림이 하는 행동은 정치를 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 자체와 싸우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즉 서혜림은 정치판에 들어서지도 않았다. 그저 "제가 잘은 모르지만"하면서 여전히 정치 바깥에서 그 너머를 그저 끔찍한 얼굴로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정치가 권력의 대결이라는 점에서 한참 벗어나 있는 이 드라마의 순진한 선악구도는 지나치게 판타지로만 보인다. 드라마가 현실일 필요는 없지만 또 너무 현실성을 결여하게 되면 시청자들은 눈을 돌릴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을 만들어낸 장본인은 이 서혜림과 하도야라는 얼룩 하나 존재하지 않는 순수 무결점 캐릭터들이다. 정치가 문제가 되는 것은 인간의 정의로운 행동이 단지 뜻만으로는 움직일 수 없고 그 안에 다양한 욕망들이 장치로서 작동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치의 진짜 모습은 이 욕망과 정의와의 팽팽한 긴장감에서 생겨난다. '대물'이 진정 대중들에게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지만 그래도 존재할 법한 어떤 것을 다뤄 진정성을 보여주려면 이런 개인적 욕망 자체가 거세된 캐릭터로는 공허해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대물'은 지금 현실 어디에선가 봤던 것 같은 민감한 사안들을 끌어들여 관심을 끌고는 있지만, 그 상황 속에서 서혜림과 하도야는 말 그대로 '공자님 말씀'만 하고 있다. 이 두 가지가 합쳐지면 마치 모든 일이 해결된 듯한 인상을 지우지만 그것은 착각일 뿐이다. 사실은 문제 자체에 들어가지도 않은 것이다. 그래서 차라리 '대물'의 주인공은 어차피 진창인 정치권 싸움에서 진흙 한 점 묻히지 않고 싸우려는 서혜림이나 하도야 보다는, 그래도 그 진창 속에 발을 딛고 있는 강태산(차인표)이 리얼하게 보일 때가 있다.

어떤 좌절된 희망 앞에서 폭발하는 강태산의 분노는 그래서 서혜림과 하도야의 눈물보다 더 설득력이 있다. 그 속에는 정치인으로서의 야망과 개인적인 욕망이 현실적으로 얽혀 있으면서도, 또 한 편으로는 여전히 이상에 대한 희망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강태산은 마치 '하얀거탑'의 장준혁(김명민)처럼 그 끝이 어떻게 될 지는 모르겠지만, 그 끝까지 달려보려 한다. 드라마가 굳이 해피엔딩을 향해 달려가는 착한 주인공을 내세워 주제를 일일이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 잘못된 길이라도 달리는 주인공을 그저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메시지는 더 분명하게 전달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냉철한 카리스마에서 인간미 넘치는 카리스마로

'대물'이 시작되기 전부터 여자 대통령을 연기할 고현정에 대한 관심은 그 어느 때보다 높았다. 그 이유는 전작이었던 '선덕여왕'에서 그녀가 미실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보여준 지도자적인 카리스마가 이번 작품에는 어떻게 이어질 것인가 하는 궁금증 때문이었다.

뚜렷한 변화로 보이는 건 '대물'의 고현정이 연기하는 서혜림이라는 캐릭터의 표정이 확실히 많아졌다는 것이다. '선덕여왕'의 미실은 정치지도자로서 마음의 변화를 상대방에서 노출시키지 않았다. 따라서 표정변화 없이 늘 꼿꼿한 그녀의 모습은 그 속내를 파악하기가 어려웠다. 그 무표정함에서 잠깐씩 보이는 입술 꼬리의 미세한 움직임이 그 마음의 동요를 언뜻 비춰주었을 뿐이다.

미실이 무표정으로 일관한 것은 '선덕여왕'의 추동력이 그 변화 없는 미실의 얼굴이 만들어내는 팽팽한 긴장감 위에서 생겨나기 때문이다. '선덕여왕'은 무표정했던 미실이 차츰 무너지면서 고통스런 속내를 드러내는 과정을 보여준 사극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즉 이미 신비화될 정도로 정점에 선 그녀가 서서히 권력을 내려놓고 인간으로 내려서는 과정을 보여준다.

반면 '대물'의 서혜림은 정반대의 길을 걸어 올라간다. 보통의 평범한 주부이자 한 방송사의 아나운서였던 인물이 남편의 죽음을 겪고는 차츰 정계에 들어서게 되고 결국에는 그 정점인 여성 대통령이 되는 성장의 과정을 그린다.

따라서 서혜림의 표정은 다채롭다고 할 만큼 끝없이 변화한다. '대물'에서 고현정의 연기가 남다른 것은 한 표정에서 다른 표정으로 순식간에 변화하는 모습을 통해 그 속에 숨겨진 강렬한 고통을 극대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싸늘한 주검이 되어 돌아온 남편의 장례식장에 화환을 보내온 대통령의 비서를 맞는 장면에서 "최선을 다했다"는 말에 그녀는 평범한 얼굴에서 시작해 화환을 모두 부숴버리며 오열하는 얼굴로 돌변한다.

라디오 방송에서 갑자기 남편의 억울한 죽음을 토로하는 방송을 하는 그녀의 얼굴 역시 마찬가지의 변화를 보여주었다. 이 급작스런 변화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가는 것 같지만 마음 속에 여전히 깊은 상처로 남아있는 남편의 죽음을 한 평범한 여자의 입장에서 강렬하게 표현해낸다.

"놀아 달라"는 아이 앞에서 억지로 웃으며 장난을 치는 그녀의 모습이 눈물겨운 것은 이 깊은 상처를 그녀의 웃는 얼굴에서조차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녀를 돕는 하도야(권상우) 검사 앞에서 마치 남 얘기하듯 짐짓 밝게 남편의 얘기를 하며 "얼마나 외롭고 무서웠을까"하고 말하다가 결국 오열하는 장면 역시 마찬가지다. 그런 그녀의 절절한 연기는 위로하는 하도야마저 더더욱 따뜻한 존재로 부각시킨다.

하지만 이것은 고현정이 '대물'에서 보여준 연기의 시작일 뿐이다. 이제 그녀는 차츰 정치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고, 그 성장과정과 함께 속내를 숨기는 방법을 터득해갈 것이기 때문이다. 같은 여성 정치 지도자를 그리고 있지만, 냉철한 카리스마를 보여주던 미실은 이제 따뜻하고 인간미 넘치는 카리스마의 '대물'로 돌아왔다.

'신데렐라 언니' 문근영 어디까지 변신할까

신데렐라 집에 들어간 신데렐라 언니의 마음은 어땠을까. 문근영이 연기하는 신데렐라 언니 은조는 그다지 행복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녀는 자신을 가족으로 살갑게 대하려는 새 가족들을 계속해서 밀쳐내는 중이다. 끝없이 재잘거리며 언니를 따르는 동생 효선(서우)에게 "너 원래 그렇게 말이 많니?" 하며 금을 긋고, 키다리 아저씨마냥 사람 좋은 웃음을 지어보이는 기훈(천정명)에게 "나한테 뜯어먹을 거 있어? 왜 웃어?"하고 쏘아댄다. 기훈의 말처럼 웃을 이유가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하필이면 뜯어먹을 게 있어야 웃는다"는 아이. 그만큼 은조는 행복이라고 여겼던 것들에 지독히도 배신을 당해왔다. 그러니 아예 행복의 접근을 막는 중이다.

이런 신데렐라 언니 옆에서 자신이 문자를 보내면 절대로 씹히지 않을 거라는 행복에 대한 신념을 가진 신데렐라 효선의 늘 방글방글 웃는 얼굴은 오히려 그녀에겐 상처가 된다. 그것은 상대방에 대한 이해에서 비롯된 호의가 아니라, 오히려 상대방에 대한 완벽한 몰이해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신데렐라 언니 은조에게 차분히 다가와 "나도 너 같았다"며 "너 같았는데 여기서 지내다가 나 같아졌다"고 말하는 기훈은 어쩌면 또 빼앗길 지도 모르는 이 행복을 조금은 믿고 싶게 만드는 인물일 것이다.

이처럼 신데렐라 언니의 관점에서 풀어내는 신데렐라 이야기 속의 은조는 전혀 악역이 아니다. 오히려 이 불행한 상황 속에 던져진 은조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효선의 행동이 악역처럼 느껴지는 것은 그만큼 이 드라마가 뒤집어놓은 신데렐라 이야기가 흥미로워지는 지점이다. 늘 날카로운 가시를 세우고 있는 은조가 측은해지고, 늘 아무 생각 없이 웃고 재잘대는 효선이 오히려 미워지는 이 캐릭터 설정. 그리고 그 상반된 캐릭터의 축성을 통해 만들어낸 악역의 역전은 이 드라마가 가진 가장 빛나는 부분이다.

따라서 악역으로 시작하지만 차츰 이해가 되고 오히려 그 악역의 상황에 몰입되게 만드는 은조를 연기하는 일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미워할 수 없는 악역'에서 이것은 한 차원 더 나아가 '악역이 아닌 악역'을 연기한다는 것. 문근영은 이를 위해 몇 가지 얼굴표정에 말투를 이어 붙였다. 절대로 웃지 않는 얼굴, 말하거나 들을 때면 약간 삐뚤어진 반항적인 입 매무새, 불만이 가득하지만 왠지 허무한 눈, 마치 가리려는 듯 길게 늘어뜨린 생머리에 반쯤 가려진 눈, 무심한 듯 하지만 사실은 상처받지 않기 위해 몸을 반쯤 빼고 있는 자세로 틀어진 몸... 한 마디로 말하면 상처받은 짐승의 몸짓에 "아니요" 혹은 "싫어요"를 반복하는 대사를 연결시켰다.

쓸쓸하지만 때론 독한 기운이 느껴지는 그 눈빛은 '선덕여왕'에서 악역이지만 미워할 수 없었던 미실을 연기한 고현정을 닮았다. 그러고 보면 문근영의 연기자로서의 행보는 여러 모로 고현정의 그것을 닮은 구석이 있다. 청춘스타로서 맑고 순수한 이미지의 대명사였던 고현정은 세월이 흐른 뒤, 복귀하면서 '여우야 뭐하니'로 털털한 노처녀의 이미지로 변신했고, 몇몇 영화들('해변의 여인', '잘 알지도 못하면서' 같은)을 통해 스타의 이미지를 털어버렸다. 그리고 '선덕여왕'의 미실은 그녀를 온전한 연기자로 세워주었다.

문근영은 '어린신부', '댄서의 순정'을 통해 국민여동생으로 이미지가 굳어진 후, 성인 연기자로 변신하려 했지만 난항을 겪었다. 그러다 '바람의 화원'의 남장여자 신윤복 역을 통해 더 이상 국민여동생에만 머물지 않는 그녀의 연기력을 보여주었다. 미실이 고현정에게 완전한 연기자로서의 자리를 확고히 해준 것처럼 '신데렐라 언니'의 은조는 문근영에게 또 한 번 연기자로서의 그녀의 입지를 탄탄하게 해줄까. 살짝 돌려 내리 깔아보는 문근영의 눈에서 고현정의 기운을 느끼는 것은 섣부른 생각일까. 기대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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