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로무비

전라북도 무주는 반딧불이 축제로 유명한 곳이다. 그런데 이 곳은 언젠가부터 영화제도 유명해졌다. 이름하여 무주산골영화제. 올해로 벌써 13회를 맞는 영화제다. 이 곳이 반딧불이와 더불어 영화제로 유명해진 건, 상대적으로 다른 지역에 비해 밤에 불빛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곳 ‘산골’에서는 영화제에 야외에서 영화를 본다. 영화 ‘시네마 천국’의 한 장면같은 로맨틱한 광경이 펼쳐진다. 밤이 낮처럼 밝은 도시라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어둡기 때문에 오히려 빛이 더 잘 보이고, 그래서 삼삼오오 모여 영화를 보는 이들의 마음은 더더욱 따뜻해진다. 어둡기 때문에 더 빛나는 별과 달을 볼 수 있다는 역설. 어찌 보면 우리네 삶이 그렇지 않은가. 

 

넷플릭스 드라마 ‘멜로무비’는 바로 이 무주산골영화제를 떠올리게 하는 작품이다. 단역배우인 고겸(최우식)은 세상 걱정 하나 없어 보이는 청춘이다. 영화 촬영현장에서 ‘똥강아지’처럼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지친 사람들마저 웃게 만든다. 그런 그의 눈에 현장에서 일하는 스텝 김무비(박보영)가 들어온다. 이름 때문에 관심을 갖게 됐지만, 어딘가 사람들과 거리를 두는 듯한 그녀의 그늘이 자꾸만 고겸의 눈에 들어온다. 김무비의 그늘은 아빠에 대한 상처 때문이다.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었지만 늘 가족을 떠나 영화판을 전전했던 아빠의 꿈은 영화감독이었다. 하지만 이렇다할 영화 한 편 내놓지 못하고 먼저 세상을 떠난 아빠에 대한 애증은 그 누구에게도 쉽게 정을 주지 못하는 그녀를 만들었다. 그런데 고겸은 그런 깊은 어둠 속에 있는 김무비에게 다가와 한없는 해맑음으로 그녀의 마음을 여는데 그건 마치 한 편의 영화 같다. 김무비 같은 깜깜한 어둠 속에 비춰진 고겸 같은 빛이라 더 따뜻하고 선명한 한 편의 멜로영화 같달까.

 

그런데 한꺼풀 더 인물 속으로 들어가 보면 고겸의 그 해맑음의 이면에는 어두운 과거의 그늘이 숨겨져 있다.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셨고 형과 단둘이 세상을 살아내야 했던 어린 고겸이었다. 자신을 부양하기 위해 일하러 나가는 형은 그를 비디오가게에 맡겼고, 어린 동생은 혼자 있는 시간들을 영화를 보며 보냈다. 영화는 고겸에겐 그래서 단순히 재미있는 어떤 것이 아니라, 그 혼자 있는 외로움을 애써 잊게 해주는 것이었다. 고겸은 어두운 삶의 터널 속에서 그 어둠을 바라보기보다는 빛을 애써 찾으려 하는 사람이 됐다. 김무비가 유독 그에게 신경쓰였던 건 그 그늘에서 자신의 어둠을 봤기 때문이었다. 

 

‘멜로무비’는 단역배우였지만 평론가가 된 고겸과 스텝으로 일하다 영화감독이 된 김무비가 사랑하고 예기치 않은 일로 이별하게 되지만 다시 만나 사랑을 엮어가는 과정을 통해 과거의 아픔들을 조금씩 치유해가며 성장하는 이야기를 그린다. 여기에 고겸의 절친인 홍시준(이준영)과 손주아(전소니)의 또 다른 사랑과 성장 스토리가 더해진다. 음악을 꿈꾸던 홍시준과 그의 뮤즈였던 손주아가 각자의 꿈을 위해 헤어질 수밖에 없었지만, 한 편의 영화를 통해 음악감독과 시나리오 작가로 다시 만나 과거의 상처를 회복해가는 이야기다. 그래서 ‘멜로무비’는 고겸과 김무비 그리고 홍시준과 손주아의 사랑이야기를 그리지만 동시에 한 편의 영화를 중심으로 평론가, 영화감독, 음악감독, 시나리오 작가가 어우러지는 작업 과정 또한 담고 있다. 

 

‘그 해 우리는’으로 잘 알려진 이나은 작가는 이번 작품에서도 최우식을 자신의 페르소나로 세웠다. 워낙 최우식을 잘 알아 이를 고겸이라는 인물에 녹여낸 덕분에, 최우식의 매력은 도드라진다. 지금껏 밝은 모습으로만 대중들에게 각인되어 왔던 박보영의 그늘을 느낄 수 있는 연기변신도 주목할만하고, 까칠하지만 그 뒤에 어린아이가 숨겨진 듯한 홍시준을 연기한 이준영과, 사랑하지만 과거에 머물러 있는 홍시준이 현재로 나올 수 있게 아픈 이별을 선택하는 손주아 역할의 전소니의 연기도 인상적이다. 

 

사랑을 담은 청춘멜로지만 사람과 삶이 보이는 드라마다. 어찌 보면 삶이란 어둠 속을 홀로 걸어가는 것일 수 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누군가의 온기를 찾고 어둠 저 편의 달을 찾는다. 무겁디 무거운 삶의 무게 앞에서 시시콜콜한 멜로영화 한 편이 주는 위로는 그래서 더더욱 크고 따뜻하다. (글:일간스포츠, 사진:넷플릭스)

‘그 해 우리는’, 말하기 전 백 번은 생각하는 듯한 세심함

그 해 우리는

이처럼 순하디 순한 남자 주인공이 오히려 더 강력하게 시청자들을 빨아들이는 이유는 뭘까. SBS 월화드라마 <그 해 우리는>의 최웅(최우식)은 특이한 캐릭터다. 그간 멜로드라마의 남성 캐릭터들과 비교해보면 차이가 분명하다. 어딘가 미숙하지만 그것이 귀엽게 느껴지고, 적극적으로 나서기보다는 일어나는 일들을 받아들이지만 그것이 소심한 귀여움과 더해져 세심하게 느껴지는 면이 있다. 

 

고등학교 시절 학교 전체 꼴등이었지만 그다지 성적에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인물이었고 따라서 성적을 올리기 위해 기를 쓰고 노력하지도 않는 인물이었다. 그저 조용히 반에서 없는 듯 좋아하는 그림을 그리는 일에만 빠져 있던 소년. 그렇지만 그에게 파문을 일으키며 다가온 국연수(김다미)로 인해 그와 함께 하기 위해 공부를 하고 대학에 갔던 이력의 소유자다. 

 

한 동네가 ‘웅이네’ 가게들로 채워질 정도로 잘 사는 집안의 아들이지만, 그렇다고 금수저라는 생각도 또 그런 삶도 선택하지 않았다. 친구인 김지웅(김성철)과 집안 차이는 분명했지만 그런 것과 상관없이 마치 형제처럼 지냈고, 그의 성공 또한 집안의 후광이 아니라 저 스스로 좋아하던 일러스트로 승부해 얻은 결과였다. 

 

최웅은 국연수에 대한 애정을 빼놓고는 그다지 집착하는 것이 없다. 어쩌다 국연수가 진행하는 프로젝트에 연루되어 자신의 라이벌이었던 누아(곽동현)와 함께 이벤트를 하게 됐지만, 그런 것에 그다지 개의치 않을 정도다. 또 자신이 평소 좋아했던 엔제이(노정의)가 그에 대한 호감을 대놓고 드러내도 그는 스타와 팬의 관계 그 이상을 욕망하는 법이 없다. 

 

최웅이라는 캐릭터는 그가 항상 일러스트의 대상으로 삼는 ‘움직이지 않는 건물과 나무’를 닮았다. 늘 그 자리에 서 있고 한 번 뻗은 가지는 그 방향으로만 나아가는 그런 인물. 그래서 국연수가 그 오랜 헤어짐의 시간을 거쳐 다시 그의 집 문 앞에 서게 된 그 광경은 마치 오래 전 최웅이 기대하고 예감했던 것처럼 여겨진다. 움직이지 않고 그 자리에 서 있으면 언젠가 그가 돌아와 서로의 마음에 선을 그어갈 것이라고. 

 

그가 선 하나 하나를 세심하게 그어 일러스트를 그리는 그 과정은 최웅이라는 인물이 삶을 살아가는 방식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국연수와 헤어지고 나서 그를 본격적인 일러스트레이터로 만든 건 그래서 어쩌면 그 슬픔과 그리움을 버텨내기 위해 밤새도록 선을 긋는 일에 몰입해서가 아닐까 싶을 정도다. 그러한 시간의 인내는 최웅이 무언가 한 마디를 하기 위해 꽤 오래도록 숙고하는 과정 속에서도 그의 삶의 태도로서 드러난다. 

 

겉으로만 보면 극강의 순한 맛처럼 보이는 남성 캐릭터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요동치는 감정들을 애써 꾹꾹 눌러 앉혀 놓은 극강의 강인함이 느껴진다. 최웅이라는 캐릭터가 지금의 청춘 세대들에게 주는 매력이 바로 이것이다. 외부의 조건과 상관없이 또 외부와의 경쟁이 아니라 자신만의 노력과 자신과의 싸움 속에서 단단해진 내면을 가진 존재. 물론 사랑 앞에서는 아직도 질투하고 갈등하며 흔들리지만 그래도 제 길을 찾아갈 것만 같은 인물. 시끄러운 바깥세상에서 한 발작 뒤로 물러나 자신만의 삶을 선택하고 살아가는 청춘에 대한 판타지가 바로 이 인물 속에 담겨 있다. (사진:SBS)

‘그 해 우리는’, 뭐 이토록 멍할 정도로 편안한 멜로가 있나

그 해 우리는

이 청춘 멜로는 불멍, 물멍을 하는 것만 같다. 그저 멍하니 바라보고 있으면 잔잔히 미소가 지어지기도 하고 때론 안타깝기도 하며 때때론 가슴 두근거리는 설렘이 전해진다. 그래서 이런 조어가 가능할 듯싶다. ‘멜로멍’. 뭔가 대단한 사건들이 드라마틱하게 펼쳐지지는 않지만 멍하게 바라보며 편안하게 빠져드는 멜로. 바로 SBS 월화드라마 <그 해 우리는>의 세계다. 

 

‘캐치 미 이프 유 캔’이라는 부제를 가진 <그 해 우리는> 7회는 어떤 난감한 상황에서의 최고의 방어는 ‘도망’이라는 최웅(최우식)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그는 도망이 비겁한 선택이라 보지 않는다. 그것이 순간 이성을 잃어 상당히 감정적이게 되는 상대를 피하는 것이라며, 상대를 위한 선택이기도 하다고 말한다. 그는 부딪치기보다는 피한다. 그리고 시간을 번다. 그 갈등의 감정들이 조금은 차분해질 시간을. 

 

인물들 간의 감정이 부딪치고 갈등하는 과정은 멜로드라마의 중요한 서사 구조다. 서로 오해하고 헤어지고 다시 만나고 미워하다가도 다시 사랑하는 그 일련의 과정들. <그 해 우리는>도 그런 과정들을 담는다. 하지만 최웅이라는 독특한 캐릭터는 그 과정들조차 잔잔하게 담아낸다. 직설적으로 부딪쳐 싸우거나 목소리를 드높이기보다는 먼저 ‘도망치고’ 조용히 그 시간들을 감내하며 감정들을 추스르려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가 아주 가끔씩 어떤 계기에 의해 도망치지 않고 드러내는 감정은 이 드라마에서는 더 강렬한 느낌을 준다. “그럼 내일은 네가 기억 안 나는 척 해. 꿈 아니잖아. 왜 꿈인 척 해? 왜 거짓말 해? 연수야. 연수야.. 우리 이거 맞아? 우리 지금 이러고 있는 거 맞냐고? 다른 사람 아니고 우리잖아. 그저 그런 사랑한 거 아니고 그저 그런 이별한 거 아니잖아 우리. 다시 만났으면 잘 지냈냐고 그동안 어떻게 지냈냐고 힘들지는 않았냐고 그동안 너무 힘들었다고 말할 수 있잖아 우리. 어떻게 지냈어? 말해봐. 어떻게 지냈어 너.”

 

어느 날 갑자기 불쑥 이별을 얘기한 연수(김다미)로 인해 너무나 힘들었던 최웅이었다. 어쩌면 그가 꼬박 며칠간을 밤을 새워 선 하나하나 그어 그림을 완성할 수 있었던 건, 그 힘들었던 시간들을 잠시라도 잊기 위함은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다. 하지만 다시 그의 앞에 연수가 나타났을 때 최웅은 늘 그러하듯 직접 부딪치고 따지기보다는 도망치고 있었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속으로 꾹꾹 누르며. 그랬던 것이 어떤 비등점을 넘으면서 불쑥 터져 나왔을 때 연수도 자신의 마음을 알았다. 그렇게 떠난 것이 그 없이 살 수 있을 거라는 자신의 오만이었다는 걸. 

 

<그 해 우리는>에서 연수가 최웅에게 갑작스런 이별을 통보한 건, 현실적인 문제들 때문이었다. 사는 환경이 너무나 달랐던 것. 이 청춘서사에도 그래서 보이지 않는 저 편에 금수저 흙수저의 현실이 드리워져 있다. 하지만 이 청춘서사는 그것이 근본적인 장애라 얘기하지 않는다. 그 현실 때문에 이들의 사랑을 방해하는 어른들도 없다. 아니 최웅의 부모들은 김지웅(김성철)을 친 아들처럼 대하고 연수를 애틋한 마음으로 바라볼 정도로 그런 현실적 조건들과 상관없이 모든 걸 품어주는 어른들이다. 

 

대신 <그 해 우리는>은 마치 일단 도망치고 잠시 그 감정을 추스를 시간을 갖는 최웅이라는 인물처럼, 드러내놓고 부딪치고 싸우며 바로바로 풀어가기보다는 찬찬히 시간과 관계의 반복 속에서 갈등이 풀어지는 과정을 담는다. 그래서 갈등의 파고는 분명히 존재하지만, 어딘가 편안하다. 굉장히 드라마틱한 멜로가 아니지만, 그저 편안하게 다큐를 찍는 뷰파인더 창을 통해 담기는 저들의 귀엽고도 알콩달콩하며 애틋하기도 한 멜로가 아닐 수 없다. 피곤하고 힘겨운 현실 속에서 불멍, 물멍하듯 그저 멍하니 바라보고픈 마음이 드는.(사진:SBS)

‘그 해 우리는’, 최우식, 김다미만 모르는 미숙한 사랑이어서 더 설레는

그 해 우리는

“너 때문에 망친 게 한두 번이 아니지. 내 인생도 망쳤지. 엉망으로.(아 이게 아닌데..)” 최웅(최우식)은 과거 학창시절 국연수(김다미)가 툭 쳐서 망친 그림 이야기를 하다 저도 모르게 ‘인생 운운’하는 이야기까지 뱉어버린다. 버렸다고 했던 그 그림을 최웅은 여전히 갖고 있었다. 당시 미안해서 국연수가 화이트로 지워뒀던 그 흔적이 여전히 그림에는 남아있다. 

 

SBS 월화드라마 <그 해 우리는>의 이 장면은 최웅과 국연수의 관계를 잘 보여준다. 다큐를 함께 찍게 되어 인연이 됐던 그 해 그들의 관계는, 마치 최웅이 그리는 그림 속에 갑자기 툭 하고 들어온 국연수의 존재감처럼 분명한 선을 남겼고 그 선 같은 과거 관계의 잔상은 10년이 지나 다시 만난 그들에게도 여전히 남아있다. 

 

대부분의 청춘드라마들이 미숙하지만 풋풋해서 오히려 더 가슴을 설레게 하는 것처럼, <그 해 우리는> 역시 아직까지 누군가를 사랑해본 적 없어 그것을 마치 자기만의 세계를 누군가 침입한 것처럼 느끼며 툭탁대는 국연수와 최웅의 이야기로 시청자들을 설레게 한다. 두 사람만 모르고 시청자들은 다 아는 그 툭탁댐과 침입은 다름 아닌 사랑의 감정이 아닌가. 

 

“망쳤다”는 말은 그래서 이 드라마에서는 남다른 의미의 울림을 갖는다. “너 때문에 망쳤어”라고 말할 때, 사실 최웅이 방점을 찍는 건 “망쳤다”만큼 “너 때문에”라는 말이 아닐까. 게다가 “내 인생”까지 나올 때는 국연수에 대한 최웅의 마음이 얼마나 컸었는가를 오히려 에둘러 드러내는 대목이다. 

 

의뢰인인 장도율(이준혁)이 요구하는 라이브 드로잉쇼에 섭외하기 위해 찾아온 국연수에게 물과 소금을 뿌려 내쫓았던 최웅이, 국연수가 하기 싫다는 다큐멘터리를 다시 찍는 조건으로 섭외를 허락하는 것도 어찌 보면 미숙한 청춘의 또 다른 사랑 표현처럼 보인다. 국연수가 힘들어하는 걸 애써 하며 즐거워하는 최웅의 모습은 마치 자신이 그간 힘들었다는 떼쓰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니 말이다. 

 

하지만 자신이 단독으로 하는 것으로 알고 있던 라이브 드로잉쇼에 장도율이, 마침 최웅의 표절 의혹을 언론 플레이로 만들어낸 누아(곽동연)까지 섭외했다는 사실에 최웅은 분노한다. 그건 장도율이 홍보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무례한 선택이었지만, 최웅은 국연수가 그 일을 알고 있었느냐고 추궁하며 이렇게 말한다. “거봐. 날 망치는 건 늘 너야.”

 

하지만 최웅이 자꾸만 국연수에게 자신을 “망친다”고 추궁하는 그 말의 진위는 ‘에필로그’ 영상을 통해 그 속내가 드러난다. 고교시절 다큐멘터리를 마지막으로 찍는 날 비를 피해 있던 공원 벤치에서 이상한 기분에 사로잡혀 최웅은 국연수에게 자신의 마음을 저도 모르게 드러낸다. “망했어. 나 너 좋아하나봐.”

 

그들은 자신들의 마음이 사랑이라는 걸 알아채지 못한다. 그건 아마도 그들만의 이야기는 아닐 게다. 첫사랑이거나, 여전히 사랑이 서툰 이들에게도 모두 해당되는 이야기일 테니. 한참 지난 후에야 어느 날 지나간 사진을 우연히 보고는 그 때 그것이 남다른 감정이었을 것이라는 걸 깨닫기도 한다. <그 해 우리는>이 포착하고 있는 사랑의 정경이다. 

 

이 청춘멜로가 소재로 가져온 다큐멘터리는, 우리가 그저 “망했어” 혹은 “너 때문에 망쳤어”라고 말하며 지나쳤던 어떤 일들을, 심지어 그것이 상처로 남았던 일들을 다시금 들여다보게 해주는 장치로 활용된다. 김지웅(김성철)은 바로 그 최웅과 국연수 당사자들은 몰랐던 그 관계들을 다시 꺼내 보게 된 옛 다큐멘터리 영상을 관찰함으로써 발견해내는 인물이다. 그 역시 오래도록 국연수를 옆에서 관찰만 하며 살았던 친구지만, 정작 자신처럼 그를 관찰하고 있는 후배PD 정채란(전혜원)의 존재를 알아채지 못한다. 

 

타인의 일은 잘 관찰하면서 정작 내 일은 잘 모르는 건 어쩌면 인간관계에서의 인지상정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최웅이 “망했다”, “망쳤다”고 국연수에게 하는 그 말을 관찰하는 시청자들은 안다. 그 말에 국연수를 여전히 애틋하게 가슴에 담아놓고 있는 최웅의 마음이 담겨 있다는 것을. <그 해 우리는>이 담는 사랑의 정경이 더할 나위 없이 설레게 다가오는 건 사랑에 미숙해 그걸 잘 모르거나, 그 마음을 애써 쿨한 척 숨기거나 혹은 잘 표현하지 못하는 청춘들의 풋풋함이 그 어떤 운명적인 사랑보다 더 현실적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사진:tvN)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