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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체적인 캐릭터로 겉껍질을 깨버린 주상욱

악인의 아들은 어떤 모습일까. "그냥 지겨워서. 그냥 다 털어버리고 아무도 없는 곳으로 가고 싶어서." 미주(황정음)의 무릎을 베고 누운 조민우(주상욱)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이렇게 말한다. '자이언트'에서 미주가 나타나기 전까지 조필연(정보석)이라는 절대악의 아들인 조민우 역시 그 아버지의 그 아들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조민우가 미주를 만나면서 그의 사적이고 내밀한 모습이 보여졌고, 그제야 조민우가 가진 진짜 캐릭터가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최근 조민우를 연기하는 주상욱이 주목받는 것은 드디어 본 매력을 드러낸 캐릭터의 변화와 무관하지 않다.

잘 생긴 얼굴에 분위기 있는 눈빛을 가졌지만, 주상욱이 지금껏 연기한 캐릭터들은 그의 매력을 한껏 끄집어내지 못했다. '그저 바라보다가'에서 그가 연기한 김강모는 지나치게 전형적인 부잣집 아들 역할이었다. 돈이면 뭐든 된다 생각하고 사랑하는 여자를 그렇게 얻으려 하지만 결국에는 좌절하고 마는. 그래서 조금은 비열한 짓들을 하게 되는. '선덕여왕'에서의 월야 역할은 물론 '그저 바라보다가'보다는 나았지만 그 존재감이 적었다. 덕만(이요원)을 도와 그녀를 여왕의 자리까지 올리는 역할이었지만, 유신(엄태웅)이나 비담(김남길) 같은 굵직한 캐릭터들 속에서 월야는 또 하나의 전형적인 캐릭터로 남았다.

'자이언트'의 초반부에서도 그 전형성은 또 반복되는 것처럼 여겨졌다. 조민우는 마치 '그저 바라보다가'의 부잣집 아들 김강모를 반복하는 캐릭터로 그려졌다. 하지만 그 캐릭터는 입체적으로 변했다. 드라마 속 부잣집 아들 혹은 악인의 아들 역시 악인일 수밖에 없다는 그 전형성을 깨면서 조민우가 살아나기 시작했다. 주상욱은 조민우를 통해 대중들에게 한 걸음 더 다가올 수 있었다. 부잣집 아들이라고 왜 고충이 없을까. 아니 야망을 위해 가족들 앞에서도 서슴없이 악행을 저지르는 아버지 조필연을 보면서 자란 아들 조민우는 어쩌면 이 드라마의 또 다른 피해자가 아닐까. 이런 이해의 시각을 갖게 된 것이다.

"귀 막아줄 테니까 눈 감고 가만히 있어봐요. 그럼 마음이 한결 편안해질 거예요." 조민우의 발견은 이렇게 그의 위로가 되어주는 미주의 시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 어떤 것에도 휘둘리지 않고 편견 없이 바라봐주는 그 시선 속에서 조민우의 힘겨움이 보였다. 첫 만남에서는 부잣집 아들의 돈 자랑에 재수 없어 하다가, 차츰 그의 가시 돋친 겉모습 뒤에 숨겨진 부드러움을 발견해가는 과정은 미주의 시선을 빌어 이 캐릭터의 속내를 대중들에게 전해주었다. 따라서 미주의 민우를 바라보는 시선의 변화는 대중들의 시선 변화를 유도하고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미주가 민우의 귀를 막아주는 그 행동이 사랑스러운 것은 이미 우리가 민우라는 캐릭터의 힘겨움을 미주만큼 이해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주상욱이 조민우라는 입체적인 캐릭터를 통해 깨어날 수 있었던 것은 '자이언트'라는 드라마가 가진 독특한 캐릭터 운용의 결과이기도 하다. 이 드라마는 '한번 선은 영원한 선'이라는 캐릭터의 전형성을 용납하지 않는다. 캐릭터들은 상황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들을 다채롭게 보여주는데, 조민우는 그 대표적인 사례다. 그는 주인공 강모(이범수)를 사지로 몰아넣은 장본인이면서 아버지 조필연을 돕는 악역이지만, 미주를 만나면 멜로의 주인공이 된다.

게다가 이 멜로는 이제 '자이언트'에서 유일한 것이 되었다. 강모와 정연(박진희)의 멜로는 후에 다시 등장할 것이지만 지금은 복수를 향해 달려가면서 두 사람의 꼬여버린 대결구도로 그려지고 있다. 그러니 '자이언트'라는 긴박감 넘치는 드라마 속에서 민우와 미주의 멜로는 한 줄기 숨통이 되어준다. 민우가 미주의 무릎을 베고 누워 잠시 깊은 한 숨을 통해내는 것처럼, 시청자들도 이 장면들을 바라보며 쉴 새 없이 달리는 '자이언트'라는 욕망의 전차에서 잠시 동안의 편안함을 갖게 된다. 그러니 이 둘의 멜로는 주목될 수밖에 없다. 그 중 조민우라는 캐릭터는 더더욱.

주상욱이라는 연기자가 제 가치를 드러내며 주목받게 된 것은 물론 이 '자이언트'라는 드라마가 기회로 제공한 조민우라는 캐릭터의 힘이 크다. 하지만 모든 기회가 그 자체로 성공을 이뤄주지 않듯이, 이 조민우라는 입체적인 캐릭터를 소화해낸 주상욱의 노력을 간과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주상욱에게 조민우라는 캐릭터는 어쩌면 이제 본격적인 연기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 속에 얼마나 많은 다른 얼굴들이 있을 지 자못 기대되는 대목이다.

Posted by 더키앙

절망적인 미래, '그바보'가 전하는 현재의 긍정

"전 지금 벼랑 끝에 서 있어요." 톱스타 한지수(김아중)의 말대로 그녀는 벼랑 끝에 서 있다. 톱스타와 정치인의 스캔들을 피하기 위해 진짜 연인인 김강모(주상욱) 대신 구동백(황정민)과 가짜 결혼을 해야 하는 그녀. 그녀가 현재를 버틸 수 있게 해주는 유일한 것은 김강모가 해준 미래에 대한 약속뿐이다. 하지만 이것은 그녀의 착각이다. 미래는 늘 오지 않는 거리에서 보여질 뿐이고, 사실 우리는 늘 현재에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를 벼랑 끝에 세운 것은 김강모가 아니라, 그렇게 늘 미래를 위해 현재를 포기하는 그녀 자신이다.

그런 그녀 앞에 현재로 서 있는 인물은 구동백이다. 그는 오지 않은 미래 때문에 현재를 절망적으로 살아가는 그녀에게 불쑥 배가 고프다며 밥을 먹으러 가자고 한다. 현재를 버텨내야 미래도 온다는 구동백의 전언이다. 그는 그녀가 들어주겠다는 세 가지 소원(이 동화적인 설정은 구동백이란 캐릭터와 너무나 잘 어울린다) 중 하나를 '그녀와 먹는 한 끼 밥'으로 쓴다. 이것은 구동백의 사랑법이 김강모의 그것과는 전혀 다른 시제에 위치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김강모가 늘 '미래 그 언젠가'라면, 구동백은 늘 '지금 현재'에 서 있다.

그리고 그는 그 현재를 긍정한다. 한 때 '있으나 마나'였던 자신의 별명을 얘기하며 한지수 덕분에 '사람들 관심 속에서 살아가는 것' 또한 즐거움이라 긍정한다. '사람들 관심 속에서 살아가는 것'은 한지수에게는 고통스런 현재 그 자체이지만 구동백은 "진짜 슬픈 인생은 살면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이라고 말한다. 바람에 날아가 바닷물에 빠진 한지수의 모자를 건져내며 정작 자신의 바지가 온통 젖었어도 "모자가 젖었네요"라고 말하는 구동백에게 한지수라는 존재는 그의 아무 것도 일어나지 않는 인생에 가장 큰 선물이 된다.

실로 우리네 삶은 미래의 불안 때문에 아무리 절망 속에 있어도 또 그 정반대의 상황에 있어도, 우연히 해파리에 다리를 쏘이면 아프고, 몇 끼를 굶으면 배가 고픈 현재에 붙박여 있다. 이것이 엉거주춤 걸어가는 구동백의 뒷모습을 보며 웃음이 터지는 한지수가 "이런 상황에도 웃음이 나오네요. 어떻게 이렇게 힘든데. 죽을 것처럼 힘든데 어떻게 웃음이 나올 수 있지?"라고 말하며 또 한편으로는 눈물을 흘리는 이유다.

'그저 바라보다가'가 구동백이라는 바보 같은 캐릭터를 통해 전하는 메시지는, 오지 않은 미래의 불안에 잠식되어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현재적 삶을 긍정하며 살아가는 법이다. 쉽게 미래를 예단하는 자들의 특징이란 그 예측 가능성을 통해 어떤 이득을 취하려는 삶의 태도다. 하지만 그 예단하는 습성은 결국 거꾸로 그 자신을 바보로 만들 뿐이다. 한지수가 "구동백씨는 명쾌해서 좋겠어요. 나 어떻게 해야되죠?"하고 묻는 건 그 때문이다. 이 드라마는 그 부제처럼 불리는 '그바보'라는 제목처럼 시종일관 구동백을 바보로 만들려는 세상을 보여주고 있지만, 그 바보는 거꾸로 그런 세상을 바보로 드러내주는 거울 역할을 해준다.

따라서 막장과 자극과는 정반대의 위치에 서 있는 이 바보스런 드라마는 그대로 구동백을 닮아있다. 그저 거기 바보처럼 서서 오히려 세상이 바보임을 증명하듯 말이다.

Posted by 더키앙
영화에서 자주 보았던 배우들이 수목 드라마에서 한 자리에 모였다. '그저 바라보다가'의 황정민, '신데렐라맨'의 권상우, '시티홀'의 차승원이 그들이다. 영화에서 각각 자신들만의 영역을 확보하고 있는 이들에게는 수목극의 경쟁이 자존심 대결이나 다름없다. 그래서인지 이들의 연기대결은 말 그대로 불꽃튀는 양상을 보인다.

황정민은 팔색조 같은 연기자. 때론 비열한 악역(달콤한 인생)을 보여주다가 때론 바람둥이 같은 자유로운 남자로(행복), 또 부패한 형사(사생결단)로 껄렁껄렁한 모습을 보여주다가, 아주 순박한 시골청년(너는 내 운명)으로 변신하며 그 연기 영역을 넓혀왔다. 그런 그가 '그저 바라보다가'에서 보여주는 모습은 바보처럼 순수한 우체국 영업사원이다.

톱스타 앞에서 어쩔 줄 몰라 어색하다가도 어떤 진지한 상황이 오면 고지식하고 고집불통일 것 같은 완고한 얼굴을 들이미는 구동백이라는 캐릭터는 사실 이 드라마의 주제나 마찬가지. 모든 것이 거래로 환산되는 세상에 관계를 희망하는 구동백은 현실적으로는 약자의 위치에 서면서도 오히려 잘못 돌아가고 있는 세상을 꾸짖는 강력한 힘을 가진 존재다.

그 순수한 모습은 자못 '너는 내 운명'의 석중을 떠올리게 하지만 그 캐릭터와는 차별화되는 점이 많다. '너는 내 운명'의 석중은 사랑에 순애보적인(심지어는 신파적인) 캐릭터에 불과하지만, '그저 바라보다가'의 구동백은 그 사랑의 차원이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서 있다. 인간에 대한 어떤 예의 같은 것을 감지하게 하는 그 캐릭터를 황정민은 어눌하면서도 촌스럽고 때론 듬직한 모습으로 그려내고 있다.

'신데렐라맨'의 권상우는 이 작품을 통해 연기논란에 대한 종지부를 찍으려 작정한 듯 하다. 그간 일련의 흥행실패(드라마  '못된 사랑'과 영화 '슬픔보다 더 슬픈 이야기')로 절치부심한 듯 이 1인2역의 도전적인 작품을 꽤 능수능란하게 소화해내고 있다. 동대문 시장에서 장삿군으로 뼈가 굵은 오대산은 늘 꿈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낙천적인 인물인데 반해, 소피아 어패럴의 차남인 이준희는 모든 걸 다 갖고 있지만 가족사로 인해 어두운 인물이다.

'신데렐라맨'이라는 제목이 암시하듯 이 드라마는 신데렐라(남자 신데렐라)를 다루면서도 동시에 왕자와 거지 모티브를 첨부했다. 신데렐라, 왕자와 거지, 어느 쪽이든간에 그 근간을 이루고 있는 것은 변신욕구다. 그 변신한 인물들이 거기서 체험(새로운 삶을)해보고 자신의 행복을 찾아가는 것이 이 고전적인 모티브를 가진 이야기들의 핵심이다. 권상우는 극과 극의 상황에 있는 두 인물을 연기하면서 동시에 그 인물들이 반대 편 역할을 연기하는 것 또한 연기하고 있다. 그간 보여주지 못했던 그의 연기세계가 아닐 수 없다.

한편 차승원은 일련의 코미디 장르 영화에서 보여주었던 안정된 코믹 연기를 선보이고 있다. 그의 코믹 이미지는 '차선수'라고 불리는 닉네임에서 알 수 있듯, 프로의 위치에 서서 무너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는 선생이라는 역할(선생 김봉두)을 맡아도 어딘지 "아마추어처럼 왜 이래?"하고 말할 것 같은 때묻은 모습을 먼저 보여준다. 그 선수이미지의 캐릭터는 엉뚱하게도 순수한 인물들을 만나(선생 김봉두에서는 시골사람들과 어린 학생) 무너지며 웃음을 준다. 그 웃음의 끝에는 선수가 순수한 마음을 찾아가는 변신의 흐뭇함이 덧붙여지기 마련이다.

'시티홀'은 초반부 신미래(김선아)라는 인물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조국(차승원)보다 큰 편이지만, 결국 조국의 변신과정이 멜로와 코믹으로 버무려진다는 점에서 차선수의 역할은 실로 중요하다 할 수 있다. 드라마 초반 내내 지속된 밴댕이 아가씨 선발대회 이야기는 그 '밴댕이'가 주는 우스꽝스런 뉘앙스를 미인선발대회라는 지방행사의 엄숙함과 대비시켜 웃음을 주었다. 그리고  이것은 차승원이 가진 캐릭터 그대로라고 할 수 있다. 어이없는 상황 속에서의 진지함은 차승원의 장기다.

물론 드라마는 대본과 연출 연기가 삼박자를 이루어야 빛을 발하는 것이지만 이번 수목드라마에서는 유독 그 비중은 연기자들에게 쏠리는 경향이 있다. 그만큼 황정민과 권상우와 차승원이 보여주는 연기의 세계는 어느 한 분야에서 자리매김한 연기자만이 가질 수 있는 능수능란함이 돋보인다. 불황으로 영화 제작편수가 줄어들어 드라마로 외유하는 것인지도 모르지만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들로서는 이런 명연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일이 아닐 수 없다.
Posted by 더키앙

바보가 헛똑똑이들에게 전하는 이야기, '그바보'

불황이어서인지 세상은 더 무례해졌다. 그 세상을 담는 드라마 역시 마찬가지. 어떤 마음을 담기보다는 당장의 자극을 담아 시청률이라는 수치 올리기에 바쁘기 일쑤다. 그런 점에서 보면 '그저 바라보다가(이하 그바보)'는 요즘 세상에 어울리지 않게 예의를 아는 드라마다. 그저 키득대며 보다보면 어느 순간, 이 바보 같이 웃고만 있는 드라마가 전하는 뭉클한 메시지에 마음까지 먹먹해지는 때가 있다. 구동백(황정민)이라는 이름의 그 바보는 좀 안다는 헛똑똑이들의 무례에도 오히려 그들을 가슴으로 끌어안는다. 그리고 그 헛똑똑이들은 어쩌면 우리들의 또 다른 얼굴인지도 모른다.

구동백은 가진 것 없고 여자 친구도 없으며 영업실적도 제로인 평범한 우체국 영업과 말단직원. 그런 그가 톱스타 한지수(김아중)와 시장후보 아들 김강모(주상욱)보다 돋보이는 건 왜일까. 우연한 사건으로 터진 연애스캔들이자 정치스캔들을 무마하기 위해 김강모 대신 연인 역할을 하게 된 구동백에게 한지수는 사례금을 챙겨주려 한다. 하지만 평소 한지수의 팬이었던 구동백은 도와주고픈 순수한 마음으로 그 일을 하는 것이라며 한사코 그 돈을 받지 않는다. 이것은 어찌 보면 단순한 행동처럼 보이지만, 구동백의 캐릭터를 설명하는 가장 중요한 행동이자 그가 그들보다 돋보이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지수와 김강모가 사는 세계는 거래의 세계다. 모든 것이 돈과 권력을 통해 이루어지는 그 곳에서는 심지어 연인 관계까지 돈으로 만들어낼 수 있다. 그러니 거래를 거부하고 관계를 희망하는 구동백은 이들에게는 당혹스런 존재가 아닐 수 없다. 한지수가 억지로라도 사례를 해 관계를 거래로 바꾸려 구동백에게 차를 선물하려 했을 때, 구동백이 대신 요구한 것은 회사 단합대회에 와달라는 것이었다. 한지수와 그녀의 매니저 차연경(전미선)은 그렇게 돈을 건네려는 자신의 손이 점차 부끄러워진다. 한지수가 점점 구동백에게 무례하게 행동하는 것은 그 당혹감의 표현이다.

마치 돈만을 가진 자와 마음만을 가진 자의 대결구도처럼 한지수와 구동백 사이에 벌어지는 미묘한 감정의 변화가 그저 연애담 이상을 전하는 건 그 때문이다. 이것은 돈과 명예를 통해 모든 것을 다 가진 줄 아는 헛똑똑이들에게 아무 것도 가지지 못한 것처럼 보이나 사실은 그 누구도 갖지 못한 것을 갖고 있는 바보가 전하는 경고다. 따라서 이 드라마는 저 '스타의 연인' 같은 남성 신데렐라 이야기와는 거리가 있다. 오히려 구동백이라는 바보의 순수한 세계가, 한 때는 자신도 그런 세계에 있었으나 어느새 그 세계를 떠나버린 한지수를 일깨워주는 이야기가 그 진짜다.

구동백과 한지수의 결혼발표(일은 점점 커져 결국 위장결혼까지 하게 된다)로 귀국한 한지수의 동생, 상철(백성현)은 그녀가 떠나버린 세계에 아직까지 발을 디디고 있는 인물로 구동백과 결을 같이 한다. 그는 한지수가 자신 때문에 외국에 보내졌다는 자책감에 부쳐준 돈보다는, 어린 시절 자전거를 사주기 위해 몇 달을 걸어 다녔던 누나를 더 그리는 인물이다. 그 돈으로 구동백이 수십 대의 자전거를 구입해 아이들에게 자선행사를 하는 장면은 돈이 때로는 거래가 아닌 마음으로 전화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한지수의 눈물은 거래의 세계 속에서 잊었던 그 마음을 되찾게 해준데 대한 고마움의 발로이다.

'그바보'는 돈이면 뭐든 다 된다는 이 무례한 세상에 예의를 전하는 드라마다. 그리고 이것은 작금의 불황을 맞아 자극적으로만 치닫는 드라마 세상에도 해당되는 이야기다. 불황에 시청률 같은 수치적 집착은 더욱 심해졌고, 드라마들은 그 와중에 감정 또한 거래할 수 있는 그 무엇으로 여기는 것만 같다. 이야기의 맥락과는 상관없이 막장으로 치달으면서 공분을 일으켰다가 또 어느 순간 적당히 풀어내는 것을 반복하며 시청자들의 마음을 쥐락펴락하려는 드라마들이 그렇다. 하지만 어디 시청자의 마음이 그리 호락호락할까. 한지수 같은 자본의 세계 속에서 살고 있어도 구동백 같은 변치 않는 순수한 마음은 언제나 남아있게 마련이다. 이것이 '그바보'의 구동백을 보면서 느껴지는 감동과 부끄러움의 이유다.

Posted by 더키앙

‘그바보’, ‘시티홀’, 그들에게서 보이는 전작의 흔적

새로 시작한 두 편의 수목극, ‘그저 바라보다가(이하 그바보)’와 ‘시티홀’은 비슷한 구석이 많은 드라마다. 모두 코믹극인데다가 공교롭게도 둘 다 영화배우들이 출연한 드라마. ‘그바보’에는 황정민과 김아중이 등장하고, ‘시티홀’에는 차승원이 나온다. 영화배우로서 이미 자신들만의 색채를 확실히 갖고 있는 이들이기에 드라마는 첫 회부터 흥미진진하다.

‘그바보’는 한지수(김아중)라는 톱스타와 구동백(황정민)이라는 우체국 직원의 어울릴 것 같지 않지만 로맨틱한 사랑을 그리고 있다. 너무나 순수해 심지어 바보 같은 남자 구동백 역할을 연기하는 황정민은 이 드라마에 확실한 힘을 실어주고 있다. ‘시티홀’은 시청 공무원인 신미래(김선아)와 부시장으로 새로 부임한 조국(차승원)이 엮어 가는 지금까지 드라마로서는 좀체 접하기 힘들었던 정치라는 소재를 로맨틱 코미디로 풀어낸 드라마다. 코믹 연기로 정평이 나 있는 두 사람의 호흡이 드라마를 톡톡 튀게 만든다.

눈에 띄는 것은 이들 작품들에 출연하는 배우들에게서 전작의 향기가 묻어난다는 점이다. ‘그바보’의 황정민은 영화 ‘너는 내 운명’의 석중을 닮았고, 김아중은 ‘미녀는 괴로워’의 한나를 닮았다. 그래서인지 이 드라마는 어찌 보면 ‘너는 내 운명’과 ‘미녀는 괴로워’가 하나로 엮어진 듯한 느낌을 준다. 하지만 분명 다른 점도 있다. 황정민은 ‘너는 내 운명’에서 자신보다 낮은 곳을 바라보며 한 여자를 죽어라 사랑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어쩌면 내게 이런 일이!”라는 감탄사가 나올 정도의 톱스타를 사랑한다. 반면 김아중은 ‘미녀는 괴로워’에서 신데렐라를 꿈꾸는 여자지만, 이 드라마에서는 오히려 한 남성을 신데렐라로 만드는 존재가 된다. 이 역전된 캐릭터의 상황이 한 드라마에서 엮어지고 있다는 점만으로도 ‘그바보’는 충분히 흥미를 끄는 작품이다.

한편 ‘시티홀’에서 김선아는 ‘내 이름은 김삼순’의 삼순이를 떠올리고 하고, 차승원은 그가 해왔던 많은 코미디 영화의 캐릭터들을 떠올리게 한다(차승원은 코믹 작품 속에서 어떤 일관된 캐릭터를 갖고 있다). ‘시티홀’에서 이들의 캐릭터는 ‘그바보’와 달리 전작의 캐릭터들이 가졌던 위치를 고수한다. 즉 김선아는 여전히 신데렐라를 꿈꾸고, 차승원은 폼생폼사를 지켜려다 망가진다. 이 부분은 이 드라마를 꽤 안정적인 느낌으로 바라보게 한다. 기대했던 부분을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채워주는 것이다.

아마도 영화 속에 등장하던 이들이 공교롭게도 같은 시간대에 드라마에 나오게 된 것은 영화계에 떨어진 불황의 그늘 때문일 것이다. 그만큼 영화 제작 편수는 줄어들었고, 톱스타들마저도 무언가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야 하는 상황. 하지만 이들의 드라마 출연은 시청자로서는 반갑기 그지없는 일이다. 이들의 등장이 막장으로 치닫거나, 혹은 늘 안전한 틀에 머물고 있는 드라마에도 어떤 자극을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Posted by 더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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