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리거

가짜뉴스가 판치는 세상이다. 일단 정보가 너무 많아졌고, 비슷한 정보들을 똑같이 복제해 쏟아내는 매체들도 많아졌다. 그러니 뭐가 실체적 진실인지 알 수가 없다. 슬쩍 가짜뉴스를 띄워 자신들의 배를 채우려는 이들이 많아질 수 있는 환경이다. 대중들은 혼란스럽다. 명백한 진실조차도 믿어지지 않고, 그럴듯한 거짓에 휘둘리는 현실. 뉴스의 공신력은 갈수록 떨어진다. 믿고 싶은 것만 믿고, 듣던 것만 듣다 보니 이를 이용하는 이들도 많아진다. 답답한 속을 뻥 뚫어주는 ‘진실 보도’에 대한 갈증은 그만큼 더 커질 수밖에 없다. 

 

디즈니+ 드라마 <트리거>는 바로 그 갈증을 정곡으로 찌르는 작품이다. 탐사보도팀 ‘트리거’를 이끄는 오소룡(김혜수) 팀장이 바로 그 시원한 사이다 역할이다. 진실 추적을 위해서는 패러글라이드를 타고 잠입할 정도로 열정적이고, 보도하면 죽인다며 총구를 들이 밀어도 물러서지 않는 패기를 가진 PD. 심지어 사장이라고 해도 진실보도를 가로막으려 하며 맞서 싸운다. 다소 과장되게 그려지긴 했지만, 실제로 이런 인물이나 탐사보도 프로그램이 현실에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과거 MBC <PD수첩>이 이런 역할을 했던 적이 있었고, SBS <그것이 알고 싶다>도 마찬가지였다. 탐사보도가 가진 뾰족함에 방송사가 곤혹스러워지기도 하고, 그래서 아예 대표를 갈아치워 보도국 사람들을 좌천시키는 드라마 같은 일이 실제로 벌어지기도 했다. 과잉 취재로 몰려 세상의 지탄을 받게 된 오소룡이, 팀에서 좌천되어 아이스링크 관리하게 되는 장면이 그저 웃고 넘길 농담 같은 느낌을 주지 않는 건 그래서다. 한때 방송장악을 하기 위해 교양 PD들을 아이스링크 관리로 보냈던 MBC 사태가 떠올라서다. 트리거팀이 창고 같은 곳에서 일하는 광경 또한 그 시절에는 실제 현실이 아니었던가. 이런 장면들은 결코 우리네 언론에 있어서는 드라마 속 이야기만이 아니다. 

 

오소룡 같은 돈키호테에 대한 갈증은 바로 이런 현실에서 생겨난다. 하지만 진실을 가리려는 권력자들과 돈키호테 한 명만으로는 대적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트리거>는 여기에 조직과 스스로 선을 그어 왕따를 당하는 한도(정성일)와, 계약직이라 더 절실하게 취재에 임하며 그런 그를 챙겨주는 오소룡을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 강기호(주종혁)를 팀으로 꾸려 놓는다. 자발적 왕따거나 타의적 왕따이기 때문에 오히려 조직의 논리와는 다른 언론으로서의 소신을 다할 수 있다는 건 의미심장한 이야기다. 방송사가 가진 경영적 선택과 공영적 선택 사이에서 언론이 가진 딜레마가 그 안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팀원으로서 베테랑 작가 홍나희(장혜진)는 프리랜서 작가라는 점에서 한도나 강기호와 비슷한 위치에 서있다. 

 

하지만 이들이 모두 조직에서 밀려난 위치에 서 있다는 점은 이들의 인간적 한계이자 약점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계약직을 정규직으로 바꿔주겠다는 윗선의 청탁 앞에 중요한 인터뷰 내용을 고의로 누락시키는 강기호의 모습은 PD로서는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인간적으로는 이해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또 탐사보도 베테랑 작가가 드라마 작가가 되기 위해 대본을 쓰는 일은 실제로도 자주 있는 일이 아닌가. 프리랜서인 작가들은 아마도 이런 선택을 통해 실제 탐사보도에서는 채워지지 않았던 갈망들을 드라마를 통해 풀어냈을게다. <트리거>는 이같은 개개인의 약점들이 존재하지만 그럼에도 팀이기 때문에 가능한 소신과 자존심이 진실 보도라는 대의를 향해 나갈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돈키호테처럼 혼자 돌진하는 오소룡을 붙잡아주는 것도 바로 이 팀이 가진 힘이다. 

 

<트리거>는 극 초반까지만 해도 ‘활극’적인 요소들이 많았다. 오소룡과 트리거팀의 활약을 극적으로 보여주면서 시청자들에게 시원한 사이다를 안겨주는 이 캐릭터들을 매력적으로 그려내기 위함이다. 그래서 사건들은 무거웠지만 이를 풀어가는 과정은 경쾌했다. 하지만 뒤로 갈수록 드라마는 점점 무거워진다. 활극적인 판타지 보다 현실적인 어려움들을 채워넣는다. 트리거팀의 맹활약은 이를 저지하려는 세력에 의해 ‘무리한 취재 방식’이라는 빌미가 되기도 한다. 활극에서 현실로 돌아오는 이러한 극 구성은 아무래도 가짜뉴스가 판치는 세상에서 진실 보도라는 언론의 문제가 그저 가벼운 판타지로만 다룰 수는 없다는 걸 말해주는 것일게다. 현실의 갈증이 빚어낸 드라마지만, 드라마는 이를 통해 현실의 변화를 촉구하고 있다. (글:일간스포츠, 사진:디즈니+)

‘트리거’의 열혈 탐사보도 팀장, 사이다 캐릭터의 귀환

트리거

“야 임마! 넌 사내새끼가 기집X 밑에서 일하냐, 쪽팔리게!” 다짜고짜 총부터 들이대는 사이비 종교 교주가 탐사보도 프로그램 ‘트리거’의 팀장 오소룡(김혜수)이 여자인 걸 알고는 남자 팀원에게 영 감수성 떨어지는 시대착오적 발언을 던진다. 그러자 오소룡이 여유있게 웃으며 말한다. “제가 또 보통 기집X은 아니거든요.” 디즈니+ 드라마 ‘트리거’의 시작과 함께 등장하는 이 장면은 오소룡이라는 이름부터 예사롭지 않은 인물에 대한 기대감을 세워 놓는다. 그건 바로 이 진실을 알리는 탐사보도를 위해서는 물불 가리지 않는 캐릭터의 매력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 역할을 연기하는 김혜수에 대한 기대감도 빼놓을 수 없다. 똑같은 역할을 해도 김혜수가 하면 어딘가 다르다. 대체불가의 호방함이 캐릭터에 묻어난다. 그 인물이 시원시원한 사이다 캐릭터라면 그 청량감과 폭발력은 그래서 더 강력해진다. 

 

실제로 ‘트리거’의 첫 번째 에피소드로 등장하는 사이비 종교 단체와의 일전이 그렇다. 보도를 위해 패러글라이딩을 타고 높은 사이비 종교 집단의 벽을 넘어들어가는 장면은 현실성이 없지만, 김혜수가 연기하니 어딘가 그럴 듯해 보인다. 장전된 총구 앞에서도 “쏴봐”라고 외치며 눈 하나 까닥하지 않는 모습에서부터 시청자들은 이미 설득 당했다. 그러니 사실상 진실 보도에 대한 판타지적 욕망을 담은 ‘트리거’에서 시청자들의 마음은 오소룡이라는 인물을 입은 김혜수를 보자마자 마음을 정하게 된다. 하고 싶은 거 다 하라고. 

 

김혜수 특유의 이 호방한 느낌은 처음부터 생겨난 게 아니다. 물론 어려서부터 태권도 유단자로 사범님 앞에 “태권!”하고 거수경례를 했던 시절부터 그 호방함은 내면에 장전되어 있었던 게 분명하다. 열여섯의 어린 나이에 광고모델로 주목받아 영화 ‘깜보’로 연기자를 시작했을 때부터 그 어린 나이에 성인연기까지 맡는 대범함이 그냥 생겼을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혜수가 처음 대중적인 배우로서 자리매김한 건 이런 호방함과는 사뭇 거리가 있는 청순 가련한 역할을 통해서였다. 바로 이명세 감독의 영화 ‘첫사랑’에서의 박영신이라는 인물이다. 이 역할로 김혜수는 최연소 청룡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면서 ‘첫사랑’의 아이콘으로 급부상했다. 물론 그런 이미지가 김혜수는 부담스러웠다고 한다. 그래서 드라마 ‘한지붕 세가족’에서 젊은 미시족 연기로 변신을 시도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때부터 김혜수는 ‘섹시 이미지’로 주로 소비되는 성장통을 겪었다. 백상연기대상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았던 영화 ‘얼굴 없는 미녀(2004)’가 대표적인 그 사례다.

 

하지만 김혜수 본연의 호방함의 본색은 ‘타짜(2006)’를 통해 드디어 대중들을 매료시키기 시작한다. “나 이대 나온 여자야”라는 유행어까지 만든 김혜수는 이 때부터 맡는 역할마다 자신만이 가진 스타일을 더함으로써 대체불가의 배우로 서게 된다. 드라마 ‘직장의 신(2013)’은 김혜수가 가진 시원시원한 여걸의 면모와 더불어, 코믹함과 카리스마를 넘나드는 다채로운 모습들을 미스김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보여줬다. 영화 ‘차이나타운(2015)’에서는 사채업자 대모로서 조직 보스 역할을 김혜수만의 느와르적 카리스마를 더해 꺼내 놓았고, 드라마 ‘시그널’에서는 차수현이라는 인물의 과거 젊은 시절의 신출내기 형사와 현재의 베테랑 형사팀장을 오가는 연기를 선보여 백상예술대상 여자 부문 최우수연기상을 수상했다. 이처럼 김혜수는 청순함에서부터 코믹함과 더불어 관능미, 카리스마까지 소화해내면서도 어느 하나의 이미지에 고착되지 않는 연기자가 됐다. 무엇보다 김혜수에게서 주목되는 건 10대 시절부터 현재의 50대까지 하이틴부터 시작해 청년과 중년을 넘어오는 그 모든 과정들 속에서 대중들과 그 성장사를 함께 했고 그 속에서 자신만이 가진 색깔을 분명히 찾아냈다는 점이다. 똑같은 역할을 해도 그만의 매력이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건 그래서다. 

 

성공을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 변호사(하이에나)나 근엄하고 냉철하면서도 속으로는 따뜻한 진심이 숨겨진 소년부 엘리트 판사(소년심판)도, 또 심지어 조선시대에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았을 자식들을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중전(슈룹)이나, 돈되는 거라면 뭐든 하는 팜므파탈의 밀수꾼(밀수)까지 김혜수여서 보다 매력적으로 그려진 인물들이 대중들을 사로잡았다. 그리고 ‘트리거’ 역시 이 흐름 그대로 김혜수표 열혈 탐사보도 팀장이 보여주는 매력이 강력한 기대감을 만들어낸다. 

 

본래 드라마나 영화가 대중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건, 당대의 갈증을 판타지로 채워주기 때문이다. 당연히 그 작품 속 인물들은 시대의 다양한 갈증들을 대변하기 마련이다. 김혜수가 시대의 아이콘처럼 보이는 건, 바로 그 갈증을 대변하는 인물들을 자기만의 색깔로 일관되게 보여줬기 때문이다. ‘직장의 신’의 미스 김이라는 인물을 통해 비정규직 여성들의 억눌린 마음을 시원하게 풀어줬고, ‘차이나타운’ 같은 작품에서는 남성 전유물로 여겨져온 느와르가 여성을 통해서도 충분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 ‘시그널’이 포기하지 않는 베테랑 형사를 통해 미제사건의 피해자들의 마음을 어루만졌다면, ‘하이에나’ 같은 작품에서는 성공을 향해 질주하며 사랑도 쟁취하고픈 현대여성들의 마음을 대변했다. 그러면서 이 역할 하나하나에 본인이 갖고 있는 호방한 면모들을 더함으로써 더 톡 쏘고 시원한 사이다 캐릭터를 구현해냈다. 

 

많은 역할들 속에서 김혜수가 해온 연기의 면면을 보면 작은 것들에 연연하기보다는 보다 굵직한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모습이 눈에 띤다. 물론 그렇다고 세세한 디테일을 중요시 여기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그 세심함들이 하나의 목표를 향해 시원하게 뻗어 나간다는 뜻이다. 흔히들 ‘호방함’이란 작은 것들을 신경쓰지 않는 것처럼 생각하곤 하는데 김혜수를 보면 그것이 오해라는 걸 알게 된다. 디테일들을 갖고 있으면서도 목표를 향해 주저하지 않는 마음. 김혜수라는 대체불가 호방본색의 페르소나가 새해에 우리에게도 제안하는 매력이 아닐까.(글:국방일보, 사진:디즈니+)

‘소년심판’, 분노하다 아파하다 먹먹해지는 웰메이드의 탄생

소년심판

“소년 사건은 해도 해도 적응이 안돼. 늘 찝찝하지.”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소년심판>에서 심은석 판사(김혜수)는 차태주 판사(김무열)에게 그렇게 말한다. 이건 아마도 <소년심판>이라는 제목만으로도 이 드라마가 다룰 ‘소년 범죄’에 대한 이야기에 대해 시청자들이 가진 양가감정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게다. 

 

이제 겨우 13세의 나이에 8세의 초등생을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 유기했다고 경찰서 앞에 나타나 흉기로 썼다는 피 묻은 도끼를 꺼내 보이며 자수를 하는 <소년심판>의 첫 번째 사건의 도입 부분에서부터 이런 불편한 감정이 피어오른다. 이걸 소년 사건이라고 치부해 소년법에 따라 솜방망이 처벌을 해도 될 일일까. 그렇다고 어린 소년을 교화가 아닌 처벌의 대상으로 삼아 어른들과 똑같은 살인죄에 해당하는 처벌을 내리는 건 괜찮은 일일까. 

 

사실 <소년심판>은 이러한 양가적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소년 사건들을 우리 앞에 꺼내놓는다는 점에서 어딘가 불편하고 자극적인 이야기만 가득한 건 아닌가 하는 선입견을 주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이건 선입견일 뿐이다. <소년심판>은 불편한 사건들을 다뤄 어떤 분노의 감정들을 느끼게 하지만, 그걸 단지 심판하고 단죄하는 단순한 방식의 사이다를 추구하는 드라마도, 또 그렇다고 답답한 고구마 현실만을 꺼내놓는 드라마도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조금 멀리 놔두고 있어서 막연히 불편하게만 느꼈던 이 문제를 좀 더 가깝게 보게 해주고 거기서 이 심은석이라는 판사의 행보를 통해 어떤 대안들까지 생각하게 해주는 드라마다. 게다가 이 심은석 판사는 “저는 소년들을 혐오합니다”라고 말할 정도로 냉정한 인물이다. 판결의 대상이 소년이라고 해서 감정적으로 휘둘리는 판결을 내리거나 하지 않는다. 물론 그 이면에는 어딘가 상처가 존재하고, 그래서 그것을 가리기 위해 결코 웃지 않는 냉정한 얼굴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따뜻한 판사. 그가 바로 심은석이다. 

 

최근 법정을 다루는 드라마들이나 혹은 범죄 스릴러에서 자주 등장하는 소재가 ‘촉법소년’이다. 하지만 그런 드라마들이 ‘촉법소년’이라는 법을 오히려 이용하는 잔인한 소년범죄를 자극적으로 끄집어내는 정도로 다뤄지는 경우가 많았다면, <소년심판>은 그보다 더 깊숙이 문제의 본질을 파고 들어간다. 현실에서 마주하는 해당 판사들의 고민이 숙고되어 있고, 이를 촘촘히 취재해 드라마적 재미와 함께 잘 녹여내려는 작가의 고민도 느껴진다. 

 

소재가 주는 불편한 선입견을 잠시 접어두고 일단 한 번 보기 시작하면 눈을 뗄 수 없는 몰입감이 있는 드라마다. 그 몰입감은 작가가 이 진지한 문제를 가져오면서도, 매력적 캐릭터들을 창조하고 드라마틱한 구성을 더해 가능해진 일이다. 심은석 판사라는 캐릭터와 이를 연기하는 김혜수는 그래서 이 작품의 기둥이라고 해도 될 법한 존재로 시청자들로 하여금 그 캐릭터에 몰입해 분노하고 속 시원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슬퍼하다가 때론 먹먹해지는 그 감정들을 가이드해주는 장본인이다. 

 

엄청난 카리스마로 부장 앞에서도 결코 굽히는 일이 없는 이 심은석 판사의 냉정하고 대쪽같은 모습은, 그와 함께 사건에 뛰어드는 너무나 따뜻하고 아이들의 입장에서 바라보려 애쓰는 차태주 판사와 극명한 대비를 이루면서 이 논쟁적인 이야기에 균형감각을 만들어낸다. 게다가 에피소드도 시작에는 강력한 살인사건으로 먼저 시선을 잡아 끌지만, 그 이후에는 그런 소년 범죄가 벌어지게 되는 이유로서의 가정폭력 에피소드가 전개되고, 그 다음에는 이런 소년들을 보호하고 보살피는 사회의 안전망으로서의 보호센터가 가진 현실적 문제를 다룬 에피소드로 나아간다. 

 

즉 단순한 에피소드 나열이 아니라, 소년범죄에 대해 보다 입체적이며 심층적인 사안들로 에피소드들이 전개됨으로써 이 문제를 깊이 들여다보게 만든다는 것이다. 4회와 5회에 걸쳐 청소년 회복센터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와 거기서 센터장이 하는 대사는 이 드라마의 이런 깊이 있는 접근을 잘 보여준 사례다. “집에서 상처받으면 아이들은 자신을 학대해요. 평소에는 안했을 범죄를 저지른다거나 나쁜 아이들과 어울리는 식으로. 본인들도 알아요. 하면 안 된다는 거. 알면서 하는 거죠. 나를 학대하는 게 내 고통이 가정에도 상처가 되길 바라면서. 나 좀 봐 달라고, 나 힘들다고, 왜 몰라보냐고. 사실 대부분 비행의 시작점은 가정이거든요.” 

 

겉으로 드러난 것만 보면 소년들이 하는 행동들이나 말은 분노할 수밖에 없는 폭력에 가까운 것들이지만, 그 이면을 파고 들여다보면 거기 드리워져 있는 부모들의 무관심과 심지어 폭력의 그림자가 존재한다. 그리고 이건 부모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국가와 사회가 나서서 보듬어야할 문제들도 존재한다. 심은석 판사는 사실상 국가의 지원에 의해 된다고는 해도 결국 어떤 개인의 희생이 담보된 청소년 회복 센터 같은 시설들에 소년들이 맡겨지는 것의 실체를 날카롭게 꼬집는다. “그걸 바꿔 말하면 국가가 해야 될 일을 오직 개인의 희생에 기대고 있다는 뜻이 되는 거고. 그런 의미에서는 법원도 유죄야.”

 

한 번 보면 밤 새워 몰아볼 수밖에 없는 몰입감을 주는 독보적인 캐릭터와 깊은 취재에서 나오는 에피소드 그리고 작가의 만만찮은 필력이 더해진 극적 구성. <소년심판>은 보면서 참 다양한 감정들이 파도처럼 몰아닥치는 경험을 통해 ‘소년범죄’의 문제를 심층적으로 보게 해주는 웰메이드 드라마다. 작품도 좋지만 김혜수의 연기는 역시 넘사벽이다. 그의 대사 하나 행동 하나에 긴장하며 빠져들게 만드는 힘이 느껴지니 말이다. (사진:넷플릭스)

요즘 대박드라마에는 대박 여성캐릭터가 있다

 

여성 캐릭터들이 달라지니 시청률도 화제성도 펄펄 난다. SBS 월화드라마 <아무도 모른다>의 차영진(김서형), 종영한 SBS <하이에나>의 정금자(김혜수) 그리고 최근 신드롬의 조짐을 보이고 있는 JTBC 금토드라마 <부부의 세계>의 지선우(김희애)가 그들이다.

 

기존 드라마 속 여성 캐릭터들과는 다른 면모를 드러내는 이들 작품들은 시청률에서도 승승장구하고 있다. <아무도 모른다>는 최고시청률 10.5%(닐슨 코리아)를 찍었고, <하이에나>는 14.6%로 종영했으며, <부부의 세계>는 6회 만에 18.8%를 기록하며 향후 JTBC 최고시청률을 기록했던 <스카이 캐슬>을 넘어설 것인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이들 작품들에 등장하는 여성 캐릭터들이 확실히 다르다 여겨지는 건, 이들의 새로운 캐릭터가 사실상 드라마의 주제의식과 색깔까지 연결되어 있다는 점 때문이다. <아무도 모른다>는 연쇄살인범을 추격하는 스릴러지만 동시에 나쁜 어른들로부터 한 학생을 지켜내려는 어른들의 고군분투를 다루는 작품이다. 여기서 차영진 형사는 범죄를 추적하는 불꽃 형사의 면면을 보여주면서도 동시에 은호(안지호)라는 아이를 지켜내려는 따뜻함을 동시에 드러내는 인물로 그려진다.

 

이러한 카리스마와 따뜻함을 동시에 가진 캐릭터의 특징은 드라마를 긴장감 넘치는 수사물이면서 동시에 가슴이 먹먹해지는 휴먼드라마적 느낌까지 더해준다. 차영진이라는 색다른 여성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세우면서 만들어진 독특한 이 드라마만의 색깔이다.

 

종영한 드라마 <하이에나>는 이른바 ‘정금자의 방식’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이 독보적인 여성 캐릭터의 힘이 중심이 됐던 드라마였다. 가진 건 없지만 그래서 물불 가리지 않고 승소하기 위해 갖가지 방법들을 동원하는 정금자는, 일에 있어서도 사랑에 있어서도 주도권을 잃지 않는 유쾌한 캐릭터로 시청자들에게 통쾌함을 선사했다.

 

거대 로펌과 중소 로펌, 갑과 을,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대결구도를 역전시키는 이 정금자라는 여성 캐릭터의 통쾌한 반전극은, 남녀관계에 있어서도 윤희재(주지훈)와 기존의 성 역할 구분을 무화시키는 반전을 보여준 바 있다. 흔한 신데렐라 이야기는 이제 통하지 않는 시대가 됐지만, 이처럼 여성 캐릭터가 남성 캐릭터를 오히려 도와주고 이끌어주는 설정은 성 역할 구분이 이제 구시대의 산물이 됐다는 걸 보여주는 대목이다.

 

<부부의 세계>는 폭력적인 남성들의 세계와 그로 인해 피해를 입은 여성들이 이를 감수하기보다는 대적하는 이야기 구도를 갖고 있다. 남편의 불륜을 알고는 그를 철저히 무너뜨리고 이혼하는 지선우(김희애)라는 여성 캐릭터는 그래서 이 이야기 구도의 중심에 서 있다. 그간 무수히 많은 불륜 소재 드라마들이 나왔지만 <부부의 세계>가 그것들과 다른 느낌을 주는 건 바로 이 지선우라는 색다른 여성 캐릭터가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는 이혼을 하면서 남편에게는 하나도 남기지 않고 모든 걸 빼앗으려는 계획을 세우고 실제로 그것을 실천에 옮긴다. 그래서 결국 남편과 내연녀 그리고 그 내연녀의 부모가 있는 자리에서 이 사실을 폭로함으로써 저들에게 치명타를 입히고, 남편의 폭력을 유도하는 고육지책까지 써서 이혼과 동시에 아들의 양육권까지 얻는다. 당하지만은 않겠다는 이 여성 캐릭터의 반격에 시청자들이 열광하는 이유다.

 

스릴러에 따뜻함을 더해주고, 일과 사랑 모두에서 성 역할 구분을 뛰어넘는 모습을 보여주며, 피해자로 감수하기보다는 가해자에게 그만한 대가를 치르게 해주는 여성 캐릭터의 변화. 시청자들은 그 반가운 변화에 호응하고 있다. 요즘의 대박드라마에는 대박 여성 캐릭터들이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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