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그리맘' 김희선 무리수 설정이지만 판타지 강한 까닭

 

잔혹한 학교 폭력을 당한 딸을 가진 엄마들의 마음은 어떨까. 온몸에 멍투성이 피투성이가 된 딸을 보는 그 마음도 똑같이 멍투성이 피투성이일 게다. 폭력이 벌어져도 쉬쉬하기 바쁜 학교와 피해자보다 가진 자들의 눈치를 더 보는 교육당국, 그래서 오히려 피해자들의 침묵을 강요하는 현실과 처벌을 받아도 피해자가 또다시 보복을 당하게 되는 상황 속에서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하는 엄마들은 무너져버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앵그리맘(사진출처:MBC)'

<앵그리맘>은 그 피해 학생 엄마의 이야기를 다룬다. 딸 오아란(김유정)이 심각한 학교 폭력에 내몰려 있다는 걸 알게 된 엄마 조강자(김희선)는 법의 도움을 청하기 위해 박진호(전국환) 소년부 판사를 찾아가지만 거기서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한다. 학교 폭력과 대항해 끝까지 싸웠던 한 엄마의 오열. 결국 아이가 자살을 했다는 것이다. 조강자는 법 또한 딸을 보호해줄 수 없다는 현실에 발길을 돌린다.

 

그런데 이 조강자의 다음 행보는 엉뚱하다. 딸의 문제를 해결하고 복수하기 위해 여고생으로 위장해 학교에 들어가는 것. 그녀는 한 때 잘 나가던 전설의 주먹이다. 여고생들의 성희롱을 일삼는 선생님을 혼내주기도 하고, 학교 짱을 단 한 방에 쓰러뜨린 인물. 학교에 잠입한 조강자는 딸의 책상에 새겨진 저주의 말들에 오열하고 딸을 괴롭히던 여고생들을 한방에 제압해버린다.

 

딸의 복수를 위해 여고생으로 잠입하는 <앵그리맘>이라는 설정은 무리한 점이 많다. 먼저 여고생을 딸로 둔 애엄마가 제 아무리 동안이라도 여고생으로 학교에 전입해 들어온다는 게 현실적일 수는 없다. 그나마 최강 동안인 김희선이 그 역할을 맡았으니 어느 정도는 보게 되는 것이지만 이 무리수는 <앵그리맘>이 제아무리 드라마라고 해도 거의 만화 같은 상황을 만들어낸다.

 

게다가 조강자가 폭력에 맞서는 건 또 다른 폭력이다. 그녀 역시 학창시절의 주먹이 아니었던가. 물론 정의의 주먹이라고 말하겠지만 그래도 폭력은 똑같은 폭력일 수밖에 없다. 드라마적이고 판타지적인 설정이지만 학교의 폭력 문제는 냉엄한 현실이다. 그 현실의 고통은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것이다. 그런 교육 시스템 전체의 문제를 단순히 폭력의 문제로 다루고 그 해법 또한 단순한 폭력으로 보여주는 건 드라마라도 너무 지나치다고 여겨질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건 이 많은 무리수들에도 불구하고 <앵그리맘>에 대한 판타지는 꽤 크다는 점이다. 현실성 없는 이야기이고, 올바른 해법이라고도 말할 수 없지만 이처럼 판타지가 큰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 드라마가 제시하고 있는 것처럼 현실이 이렇게 부조리한 교육 시스템에 어떤 조처나 대안을 전혀 내놓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앵그리맘>은 벽처럼 느껴지는 현실 앞에서 잠시지만 강력한 판타지가 된다.

 

거기에는 이런 현실에 무력하기만 한 엄마들의 자식들에 대한 부채감이 들어가 있다. ‘보호자가 보호해줄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아이들은 저 스스로 싸울 수밖에 없다는 조강자의 자각은 그래서 엄마들의 부채감을 잘 드러내는 대목이다. 조강자라는 판타지는 이 부채감을 먹고 탄생한 것이다. 시스템이 해결 못하는 걸 직접 뛰어들어 해결하는 엄마라는 판타지.

 

물론 <앵그리맘>은 전혀 현실적이지 않다. 심지어 만화적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현실을 건드리는 면이 존재한다. <앵그리맘>의 판타지가 강하면 강할수록 그것은 절대로 변하지 않는 공고한 현실을 그것이 에둘러 말해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것이 심지어 엄마가 여고생이 되는 무리수마저 허용하게 하는 이유일 것이다.

 

이경희 작가 드라마에는 왜 사회적 약자가 나올까

 

다시 돌아온 김지호라는 배우가 반가운 걸까. 아니면 그녀가 연기하는 <참 좋은 시절>의 강동옥이라는 캐릭터가 좋은 걸까. 아마도 둘 다일 것이다. 한 때 최고의 인기를 끌던 여배우였지만 한동안 활동을 하지 않다 다시 돌아온 김지호는 분명 훨씬 원숙해진 연기를 선보였다. 7세 지능을 가진 인물을 연기한다는 것이 어찌 쉬운 일이겠나.

 

'참 좋은 시절(사진출처:KBS)'

숱한 상처를 갖고 있는 강동옥은 마치 유리처럼 투명하지만 또한 깨지기 쉬운 멘탈의 소유자다. 어린 시절 엄마가 식모살이하던 집 주인이었던 차해원(김희선)의 엄마 이명순(노경주)에게 다이아몬드를 훔쳤다는 누명을 쓴 데 이어, 옷가게에서 차해원의 언니인 차해주(진경)에게 또다시 자기 옷을 훔쳤다는 누명을 쓰게 된 강동옥은 두려움에 딸국질을 해대며 맨발로 거리로 뛰쳐나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자 온 가족은 물론이고 동네 사람들 그리고 심지어는 차해원까지 강동옥을 찾기 위해 나서는 모습이 그려진다. 결국 차해원은 과거에도 그녀가 벽장에 숨었었다는 것을 알고는 동네 가구점의 가구 속에 누워 잠들어 있는 강동옥을 찾아낸다. 이 드라마의 시퀀스는 강동옥이라는 사회적 약자가 굳이 가족의 구성원으로 들어와 있는 이유와 그것이 왜 중요한가를 잘 말해주는 대목이다.

 

이경희 작가의 작품에는 유독 사회적 약자가 등장한다. 과거 <고맙습니다>는 대표적인 사례다. 거기에는 에이즈에 걸린 딸과 치매를 앓는 할아버지 그리고 미혼모인 여주인공이 등장했다. 결국 사회적 약자들이 모두 주인공이었던 셈이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남자>에서는 주인공 강마루(송중기)의 동생 강초코(이유비)가 그런 인물이다. 기흉과 혈구 탐식성 림프 조직구 증식이라는 희귀병을 앓고 있는 그녀는 늘 강마루의 눈에 밟히는 인물이다.

 

왜 이런 사회적 약자가 등장할까. <참 좋은 시절>의 강동옥이라는 인물의 설정을 보면 그 이유가 드러난다. 그녀는 주인공 강동석의 쌍둥이 누나로 어린 시절에는 머리가 영특했지만 9살 되던 해 동석과 함께 사고가 났고 강노인(오현경)은 아들이라는 이유로 동석만 업고 백리 길을 뛰었다는 것. 그 결과 머리를 다친 동옥은 목숨을 구했지만 그 후유증으로 7살 지능에 멈췄고 동석은 날개를 단 듯 뻗어나갔다는 것이다.

 

즉 동옥은 이제 검사가 되어 금의환향한 동석에게는 지울 수 없는 아픔이자 어떤 상황에서도 일순위가 될 수밖에 없는 인물이라는 점이다. 동옥은 늘 동석으로 하여금 자기 자신을 돌아보게 만드는 인물이다. 어쩌면 자신의 성공이 동옥의 희생을 담보로 하고 있다고 여기고 있는 것. 바로 이 부채의식은 사회적 약자를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을 그대로 담아내고 있다. 누군가의 성공 뒤에는 보이지 않는 이들의 희생이 있다는 걸 말해준다.

 

동옥이라는 인물이 <참 좋은 시절>에서 중요한 건 그래서다. 드라마 속에는 악역의 역할을 하는 해주의 엄마나 언니 같은 인물도 있고, 또 같은 가족 내에서도 배다른 동희(택연)와 동석이 늘 날을 세우며 갈등하며, 또 동석과 그 가족들 사이의 기류 역시 데면데면한 상황이다. 하지만 이 모든 갈등과 대립이 일시에 무너지는 순간이 있다. 바로 동옥에게 어떤 일이 터지는 순간이다. 그녀가 사라져버리자 온 가족과 동네 사람들이 그녀를 찾아다니는 장면은 대립과 갈등 속에서도 이 드라마의 밑바탕에 깔린 훈훈한 온기를 그려낸다.

 

강풀이 그린 <바보> 같은 작품에서도 보이듯이 사회적 약자는 그래서 때로는 그 존재 자체로 타인들의 삶을 지탱해주는 힘으로서 존재한다. 그들의 존재가 우리와 연결되어 있고 때로는 그들의 희생이 있어 우리네 삶이 살아진다는 것. <참 좋은 시절>의 동옥이라는 사회적 약자를 연기하는 김지호의 역할이 돋보이는 건 바로 이런 드라마의 선한 의미와 따뜻한 정서를 그녀가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래서 동옥은 이 때론 처절한 삶 속에서도 그 시절을 참 좋다고 표현할 수 있는 이 드라마의 주제의식인지도 모르겠다.

<참 좋은 시절>, 그래도 김희선을 기대하는 까닭

 

연기력 논란이라는 단어가 먼저 튀어나왔다. KBS 주말극 <참 좋은 시절>에 출연하고 있는 김희선 얘기다. 경주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경주가 아닌 부산 사투리를 쓰고 있다는 얘기다. 아마도 경주 쪽에 사시는 시청자들이라면 어색한 사투리가 드라마 몰입을 방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 이 드라마에서 특히 사투리가 갖는 정서가 중요하다고 여겼다면 좀 더 신중했어야 하는 건 당연한 얘기다.

 

'참 좋은 시절(사진출처:KBS)'

하지만 사투리가 어색하다고 그녀의 이번 <참 좋은 시절>을 대하는 태도 자체를 평가 절하하기는 어려울 듯싶다. 어차피 현지인이 아닌 이상 완벽한 사투리를 구사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적어도 첫 회부터 돈을 받아내기 위해 길거리에서 뒹굴며 드잡이까지 하는 모습은 분명 김희선이라는 배우의 달라진 면을 보여준다. 그녀가 극 중에서 맡은 차해원이라는 인물처럼, 한때는 공주 역할이 어울렸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쫄딱 망해 길거리를 전전하는 생계형 대부업자 역할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사실 나오기만 하면 우선 연기력 논란부터 불거지는 여배우들을 보면 물론 본인들의 미숙함도 원인이 되기도 하겠지만 그 외적인 요소들도 작용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장옥정, 사랑에 살다>에서 김태희는 꽤 괜찮은 연기를 보여주었지만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연기력 논란이 불거져 나왔고 세간의 질타를 받기도 했다. 작품에 어떤 문제가 생기게 되면 우선 여배우의 연기력으로 책임을 지우는 일이 종종 생겨난다. 그것도 늘상 연기력 논란이 나오던 여배우라면 더더욱 그렇다.

 

전지현은 <별에서 온 그대>라는 좋은 작품을 만나 훨훨 날았지만 <엽기적인 그녀> 이후에 꽤 오랫동안 연기보다는 CF로만 대중들을 접하면서 연기력에 대한 문제를 지적받기도 했다. 늘 비슷비슷한 엽기적인 그녀캐릭터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이번 <별에서 온 그대> 역시 그 틀에서 그다지 다르지 않았지만 그래도 워낙 화제가 된 작품에 그녀 스스로도 팔색조라 할 만큼 다채로운 매력을 천송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보여줬던 터라 만족스런 결과를 보여주었다.

 

<미스코리아>의 이연희 역시 늘 따라다니던 연기력 논란을 이번 작품을 통해 보기 좋게 날려 버렸다. 엘리베이터걸의 애환을 그녀는 엘리베이터에서 몰래 삶은 계란을 먹는 장면 하나로도 표현해냈다. 그녀가 미스코리아 진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신데렐라류의 예쁜 척 하는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과감할 정도로 망가짐을 두려워하지 않는 모습은 연기자로서의 진짜 아름다움이 무엇인가를 그녀는 보여주었다.

 

고아라 또한 <응답하라 1994>를 통해 늘 덧씌워지던 연기력 논란을 벗어버렸다. 거의 일상에 가까운 모습들을 포착해내는 이 드라마는 그저 외모로만 부각되던 고아라의 의외로 털털한 모습과 때로는 엽기발랄한 모습까지를 잡아내면서 그녀의 새로운 이미지를 끄집어냈다. 그녀로서는 아마도 이 작품이 여배우로서의 길을 살짝 들여다보게 해준 잊지 못할 기회였을 게다.

 

연기력 논란에 휘말리는 여배우들을 보면 비슷한 특징들이 있다. 일단 외모가 눈에 띄게 미인이라는 점이다. 아마도 이 점은 질시의 시선을 만들기도 할 것이지만 사실상 눈에 띄는 외모는 연기에는 오히려 장애물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 연기가 아니라 외모가 자꾸 보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CF 등에서 먼저 소비되기 시작하면 이미지가 고착되고 그것은 새로운 연기변신을 막는 이유로 작용하기도 한다.

 

연기력 논란이 벌어지는 여배우들의 또 다른 특징은 목소리. 연기의 50% 이상은 목소리가 좌우한다는 말이 있다. 신뢰감을 주는 목소리는 그 자체로 연기자에 대한 믿음을 주기 때문이다. 김태희, 전지현, 이연희, 고아라, 김희선까지 목소리를 들어보면 외모와는 달리 너무 가늘게 느껴지는 경향이 있다. 이런 경우 로맨틱 코미디류의 가벼운 역할은 잘 어울릴지 몰라도 무거운 정극에는 어색한 면이 생길 수 있다. 물론 목소리는 타고나는 것이지만 발성연습을 통해 일정 부분 극복할 수 있다.

 

그래도 전지현이나 김희선을 보면서 느껴지는 건 역시 배우는 경험을 통해 연기도 깊어지기 마련이라는 믿음이다. 결혼을 하고 나더니 이 두 여배우는 확실히 자신을 내던질 줄 아는 면모가 생겼다. 예쁘다는 이유로 발성이 어색하다는 이유로 또 기존 이미지와 상충한다는 이유로 이들 연기력 논란에 휩싸이는 여배우들은 특히 더 엄격한 대중들의 도마 위에 오르곤 한다. 다른 배우들이라면 그냥 지나갔을만한 일도 그냥 넘어가지 못하는 것이다.

 

<참 좋은 시절>의 김희선에게 불거져 나온 사투리 논란은 그래서 안타까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어쨌든 연기의 세계로 본격적으로 뛰어든 그녀에게는 약이 될 것으로 여겨진다. 적어도 연기를 대하는 그녀의 눈빛과 태도가 다르게 느껴지는 만큼 김희선의 이번 작품이 그녀에게도 참 좋은 시절을 겪게 하기를.

2회 만에 30% <참 좋은 시절>이 말해주는 것

 

달라도 너무 다르다. 새로 시작한 KBS 주말드라마 <참 좋은 시절>과 종영한 <왕가네 식구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왕가네 식구들>이 짜증 가득한 불쾌함을 종영까지 보여주었던 반면, <참 좋은 시절>은 이제 단 2회 밖에 안했지만 벌써부터 가슴 가득 따뜻함을 선사하고 있다.

 

'참 좋은 시절(사진출처:KBS)'

경주의 작은 마을로 15년 만에 금의환향하는 검사 강동석(이서진). 그가 15년 만에 귀향하게 된 것은 경주로 발령이 나면서다. 어린 시절 식모살이하던 엄마와, 사고로 머리를 다쳐 7세 지능에 멈춰버린 쌍둥이 누나 강동옥(김지호), 강동석의 배다른 동생으로 엇나가버린 남동생 강동희(택연)... 강동석에게 고향이란 잊고 싶은 아픈 과거로 남은 곳이다.

 

<참 좋은 시절>은 고향으로 돌아온 대쪽 같은 성격의 검사 강동석이 그간 없는 듯 치부하며 살아왔던 가족을 찾아와 그 온기와 정을 다시 찾아가는 드라마다. 아직까지 본격적인 이야기는 시작되지도 않았지만 강동석이 집을 찾아와 마음에 앙금과 죄송함이 함께 남아있는 어머니 장소심(윤여정)을 만나는 장면이나, 손자를 보고 어린아이처럼 눈물을 흘리는 할아버지 강기수(오현경)를 만나는 장면만으로도 훈훈함을 전해주고 있다.

 

결국 이 드라마는 강동석 앞에 놓여진 가족들의 수많은 문제들이 하나씩 풀어 헤쳐지고 갈등과 화해를 이루는 과정을 담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고교 시절 서로 좋아했지만 집주인과 식모의 자식이라는 다른 배경 때문에 힘겨움을 겪었던 해원(김희선)과의 재회를 통해 다시 사랑을 일궈가는 이야기를 담아낼 것이다.

 

흥미로운 건 이 드라마가 전형적인 가족드라마의 공식과는 약간 다른 구성과 전개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가족드라마의 시작이란 문제를 가진 가족 구성원들을 나열식으로 소개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참 좋은 시절>은 미니시리즈의 구성처럼 강동석이 경주로 내려가는 과정을 통해 그를 중심으로 과거와 현재의 이야기를 교차시키면서 주변 인물들을 자연스럽게 드러내고 있다. 특히 강동석과 해원의 사랑이야기는 차라리 멜로드라마의 밀도가 느껴진다.

 

이런 구성이나 이야기는 같은 시간대의 전작이었던 <왕가네 식구들>과는 너무나 다르다. 따라서 <왕가네 식구들>처럼 단순히 자극을 위한 자극을 반복하는 클리쉐 구조에 익숙한 시청자들에게는 낯설게 다가왔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놀라운 건 단 2회 만에 시청률 30%를 넘어섰다는 점이다. 이것은 무엇을 말해주는 걸까.

 

<참 좋은 시절>은 완성도 면에서나 인물을 다루는 작가의 따뜻한 시선에서나 여러 모로 완성도 높은 착한 드라마를 기대하게 만든다. 하지만 착한 드라마라는 것이 밋밋하고 심심한 드라마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드라마의 극성은 그대로 있지만 그것을 어떻게 잘 녹여내고 개연성 있는 인물에 공감시켜 풀어내느냐가 그 차이인 셈이다.

 

심지어 막장 소리를 들으면서도 <왕가네 식구들>이 줄곧 내세웠던 것은 시청률이다. 시청률이 좋으니 좋은 드라마라고 했던 것. 하지만 어디 그럴까. 시청률은 막장을 거둬낼 수 있는 지표가 아니다. 2회 만에 참 좋은느낌을 선사하면서도 30% 시청률을 가져갈 수 있는 <참 좋은 시절>은 그래서 이 주말드라마 시간대의 시청률이 가진 허상을 거꾸로 말해준다.

 

많은 막장드라마들이 시청률을 잣대로 내세워 자신들의 정당성을 주장한다. 하지만 공감을 통해 얻어내는 30%의 시청률과 온갖 짜증과 분노를 자극해 얻어내는 30% 시청률이 같을 수 없다.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느껴지는 <참 좋은 시절>이 거둬가는 30% 시청률은 그래서 <왕가네 식구들>이 그토록 내세웠던 시청률과는 질적으로 다르게 다가온다. 완성도 높고 좋은 드라마도 얼마든지 소위 국민드라마가 될 수 있다. 단지 시청률이 높다고 해서 국민드라마가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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