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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나라'의 동력 절반은 안내상의 지분

 

안내상의 연기 스펙트럼이 이렇게 넓었던가. 실로 JTBC 금토드라마 <나의 나라>가 가진 강력한 동력에 있어 그 절반은 안내상의 지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남전(안내상)이라는 가상의 캐릭터지만, 이 인물은 이성계(김영철)와 함께 조선 건국을 하는 공신으로 등장해 왕자의 난을 일으키는 이방원(장혁)과 팽팽한 대결을 만들어낸 캐릭터다. 결국 주인공인 서휘(양세종)의 칼에 죽음을 맞이하지만, 사실상 이 드라마가 지금껏 흘러온 동력의 중심에 서 있던 인물.

 

남전이란 인물은, 서휘의 누이동생인 서연(조이현)을 볼모로 잡아 서휘는 물론이고 서자 아들인 남선호(우도환)까지 쥐고 흔들었고, ‘신하의 나라’를 주창하며 이성계마저 밀어내고 어린 왕세자를 세운 후 자신이 실질적인 ‘갓 쓴 왕’이 되려던 자다. 그러니 이 드라마가 움직여온 서휘와 남선호의 동력이 바로 이 인물에 대한 감정으로부터 나온다.

 

안내상은 누구 앞에서도 좀체 무너지지 않을 것 같은 단단한 카리스마를 연기했다. 자신의 욕망을 위해서라면 아들 남선호까지 사지로 몰아넣는 비정함을 연기했고, 이성계를 시해하려다 동료들을 배신하고 그의 충신처럼 행세하는 치밀함을 연기했다. 그러다 욕망이 비등점을 넘어서며 왕자의 난이 벌어졌을 때는 왕의 부재를 틈타 짧게나마 왕명을 참칭하기도 했다. 드라마의 힘이 사실상 악역으로부터 나온다고 봤을 때 남전을 연기한 안내상은 200% 그 역할을 제대로 수행했다고 보인다.

 

사실 안내상이라는 배우의 이미지가 어딘가 가볍고 찌질하거나 코믹한 느낌을 주는 건 그의 초창기 존재감을 만들었던 문영남 작가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면서 만들어진 것이다. <소문난 칠공주>, <조강지처 클럽>, <수상한 삼형제> 같은 작품에서 그는 찌질한 역할을 잘 소화해낸 바 있다. 하지만 그것이 안내상의 전부는 아니었다. 그는 그 후로도 다양한 작품들을 통해 연기 스펙트럼이 훨씬 폭넓다는 걸 증명해왔다.

 

<성균관 스캔들>에서의 정약용이나, <하녀들>에서의 이방원 또 <화정>에서의 허균 같은 사극에서 진지한 역할은 물론이고 <송곳> 같은 작품에서 노동상담소 소장으로 독특한 리더십을 보여주는 인물도 연기했었다. 그렇게 다양한 작품에 출연하며 스펙트럼을 넓혀 온 안내상이 최근 몇 년 동안 보여준 연기의 성취는 놀라운 것이었다. 대표적인 게 JTBC <눈이 부시게>에서 치매를 앓는 혜자(김혜자)의 아들 역할을 연기한 부분이다. 아들이지만 혜자가 아빠로 알고 있는 그 역할을 안내상은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보는 그런 인물을 연기한 바 있다.

 

그런 진지하고 절절한 역할에서부터 <60일, 지정생존자> 같은 작품에서 닳고 닳은 정치인 강상구 같은 조금은 허허실실한 역할까지 소화해내고, 또 <나의 나라>에서는 카리스마 넘치는 악역으로 변신하는 그 연기의 과정들을 들여다보면 안내상이라는 배우의 잠재력을 실감하게 한다. 아주 조금씩 다양한 작품들을 통해 자기만의 색깔을 입혀왔고 이제는 어떤 역할에서도 거기에 맞는 얼굴을 드러낼 수 있는 연기자로 선 느낌이다. 특히 <나의 나라>는 그의 이렇게 쌓아올린 만만찮은 내공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작품이 아닐 수 없다.(사진:JTBC)

Posted by 더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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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꽃’처럼, 보다보면 살고 싶어지는 드라마가 있다

 

까불이라는 연쇄살인범의 위협 때문에 결국 옹산을 떠나려는 동백(공효진)이는 이삿짐을 싸기 위한 박스가 있냐고 조심스레 떡집 아주머니 김재영(김미화)에게 묻는다. 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아주머니는 얼굴이 어둡다. 돌아가려 하는데 아주머니가 동백을 부르고 무언가 한 가득 채워진 박스를 건넨다. “언니 여기 뭐가 많이 들었는데...” 아주머니는 퉁명스럽게 말한다. “여기 뭐가 들었다고 그랴. 그냥 아무 소리 말고 그냥 가져가. 그 홍화씨는 관절에 좋아.”

 

박스를 들고 가는 동백에게 준기네 엄마인 박찬숙(김선영)도 슬쩍 박스에 담은 마음을 전한다. “동백아 우리집서도 어 박스 가져가.” 야채가게 아줌마 오지현(백현주)도 박스를 잔뜩 들고 오더니 말한다. “동백아! 박스는 배추박스가 제일 커.” 저마다 박스를 챙겨들고 나타나는 옹산 동네사람들을 보며 동백의 눈가가 촉촉해진다. 그간 자신을 편견어린 시선을 바라봐 힘겹게 만들기도 했지만, 대놓고 욕을 하면서도 “김치는 가져가라”고 말하는 옹산 사람들에게서 동백은 따뜻한 정을 느낀다. 문짝에 떡하니 붙여놓은 ‘옹산 이웃 여러분 지난 6년간 진심으로 감사했습니다.’라는 글귀에 동백의 진심이 담기는 이유다.

 

KBS 수목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을 보다보면 까불이라는 희대의 연쇄살인범이 있어 불안감을 느낄 수밖에 없지만, 어쩐지 옹산 같은 곳에서라면 살고 싶은 마음까지 든다. 어딘지 시골마을이 갖는 편견과 선입견 게다가 금세 구설수에 오르게 만드는 소문들이 살기에 불편하게 느껴지긴 하지만, 그래도 뒤끝 없고 무엇보다 없는 삶을 너무나 잘 알아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이해하려는 순박하고 따뜻한 사람들이 있어 특히 그렇다.

 

이 부분은 <동백꽃 필 무렵>이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중요한 요인이 아닐까 싶다. 주인공들에게만 집중된 이야기가 아니라, 거기 함께 살아가는 단역들의 삶들 또한 주인공처럼 따뜻하게 그려내는 시선. 그래서 결국은 그 동네가 가진 훈훈함이 전해지고, 드라마를 보는 일이 마치 그런 동네에서의 한 시간을 보내며 힐링하는 것만 같은 그런 느낌이 이 드라마가 가진 강력한 매력의 원천이 아닐까.

 

그러고 보면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남는 드라마들의 대부분은 이상하게도 그 동네가 떠오른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된다. 많은 시청자들을 웃고 울게 만들었던 JTBC <눈이 부시게>의 동네 사람들이 모여들어 수다를 떨던 혜자네 행복미용실이 있던 동네가 그렇고, tvN <나의 아저씨>의 퇴근 후 술 한 잔에 하루의 피로와 스트레스를 날리고 무엇보다 약자를 위해 모두가 출동하는 따뜻한 정을 느끼게 했던 후계동이란 가상의 동네가 그렇다.

 

이렇게 동네 자체가 먼저 떠오르는 드라마란 결국 거기 사는 여러 사람들의 훈훈한 온기들이 소외되지 않고 전해졌다는 뜻이다. <동백꽃 필 무렵>은 그래서 이 훈훈함과 더불어 다양한 인간 군상들의 이야기가 어우러져 훨씬 더 입체적인 드라마가 되고 있다. 주인공 한두 명의 존재감만을 집중하는 드라마가 아니라, 거기 등장하는 한 사람 한 사람을 모두 집중하게 만드는 그런 드라마.(사진:KBS)

Posted by 더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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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부시게', 오래도록 연기자 김혜자를 기억하게 할 드라마

“눈 쓸어요. 눈이 오잖아요. 우리 아들이 다리가 불편해서 학교 가야 될 텐데 눈이 오면 미끄러워서.” 혜자(김혜자)는 눈을 쓸고 있었다. 혹여나 다리가 불편한 아들이 미끄러져 넘어질까봐. 아마도 그건 세상 모든 어머니들의 마음일 게다. “아들은 몰라요. 그거.” 그 사실을 아들(안내상)은 평생 모르고 있었다. 그것 역시 세상 모든 자식의 모습이 아닐까. 하지만 이 어머니는 괜찮다고 했다. “몰라도 돼요. 우리 아들만 안 미끄러지면 돼요.”

알츠하이머를 가진 어머니 혜자. 어릴 적 사고를 당해 다리 한 쪽을 의족에 의지하며 살아온 아들. 뭐 하나 빛날 것 없는 삶의 무게를 온전히 지고 살아온 두 인생이 서로 포개진다. 아들은 그토록 자신을 엄하게 내몰았던 엄마의 진심을 그제야 알아채고 주체할 수 없는 감정에 휩싸인다. “이제 그만 쓰셔도 되요.” “아니에요. 눈이 계속 오잖아요.” 아들은 평생 눈을 쓸어 오신 어머니를 기쁘게 해드리고 싶어진다. “아드님 한 번도 안 넘어졌대요. 눈 오는 날 내내 한 번도 넘어진 적 없대요.” 그러자 어머니의 환하게 펴진 주름진 얼굴에 기쁨이 번져간다. “정말이에요? 다행이네요.” 아들은 뒤늦은 깨달음에 눈물을 참지 못한다. “엄마였어. 평생 내 앞의 눈을 쓸어준 게 엄마였어.”

JTBC 월화드라마 <눈이 부시게>가 종영했다. 12부작의 짧은 드라마로 순식간에 끝나버렸지만, 우리는 이 드라마를 쉽게 잊지 못할 것 같다. 그 짧은 순간처럼 지나간 드라마 한 편이 마치 한 사람의 삶 전체를 들여다본 것 같은 먹먹함을 안겨주기 때문이고, 그것이 또한 우리네 삶을 압축해 보여줬기 때문이며, 그렇게 순식간에 지나가는 보통의 평범한 삶이라도 얼마나 그 삶이 눈이 부신가를 이 드라마가 그려주었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혜자가 ‘시간을 되돌리는 시계’라는 장치를 알츠하이머의 기억 속에서 고안해낸 건, 자신에게 가장 소중했던 사람들을 위해서였다. 그건 사랑했고 결혼해 행복했던 순간을 함께 했지만 폭력적인 시대를 맞아 한 줌의 재로 돌아왔던 남편 준하(남주혁)를 되살려 다시금 청춘의 나날에 만나 사랑하고픈 그 마음이 담겨있었다. 폭력적인 아버지 때문에 자신이 아버지가 되었다는 것조차 실감하지 못할 정도로 어두웠던 사람. 하지만 혜자를 만나 아들을 낳고 그 평생의 어둠을 비로소 떨쳐낼 수 있었던 사람. 그는 시대의 아픔 속에 사라졌지만, 혜자의 기억 속에는 눈이 부신 날의 아름다운 청춘으로 평생 남아 있었다.

혜자가 시간을 되돌리고 싶었던 또 한 이유는 바로 사고로 장애를 갖게 된 아들이었다. 알츠하이머의 기억 속에서 그 아들은 혜자의 아빠가 되었다. 사고를 당한 아빠를 되살리기 위해 시계를 돌리고 또 돌렸던 혜자. 아마도 그건 사고로 장애를 가진 아들을 평생 지울 수 없는 아픔으로 안고 살아온 혜자의 마음이 만들어낸 간절함이었을 게다. 그래서 한 순간에 늙어버렸다는 설정은 그래서 보기만 해도 아픈 아들 앞의 눈을 평생 쓸어온 어머니들의 삶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인다.

생각해보면 <눈이 부시게>의 혜자나 준하의 삶이나, 혜자의 아들과 그 며느리(이정은)의 삶 어느 것 하나 대단한 삶은 없었다. 아니 그들의 삶은 고단했다. 집으로 돌아오면 의족을 떼어놓고 잠시 쉬는 아들과, 독한 염색약에 손이 다 갈라져버린 며느리. 눈이 부시기보다는 빛조차 느껴지지 않는 어둠의 터널을 살아온 것만 같았다. 과연 이런 고단한 삶에도 행복이라는 것이 있었을까.

“어머님은 살면서 언제가 제일 행복하셨어요?” 평생 아들 앞의 눈을 쓸어 오신 어머니에게 아들이 묻는다. “대단한 날은 아니구. 나는 그냥 그런 날이 행복했어요. 온 동네에 다 밥 짓는 냄새가 나면 나도 솥에 밥을 안쳐놓고 그 때 막 아장아장 걷기 시작했던 우리 아들 손을 잡고 마당으로 나가요. 그럼 그 때 저 멀리서부터 노을이 져요. 그 때가 제일 행복했어요. 그 때가.”

아주 평범한 어느 하루가 평생의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는 말은 그만큼 삶이 고단했다는 걸 말해주면서 동시에 그 고단한 삶에도 남다른 행복의 기억이 존재한다는 희망을 담아낸다. 알츠하이머라는 기억의 조작은 그래서 불행이면서도 동시에 행복이 된다. “어머니는 알츠하이머를 앓고 계십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어쩌면 당신의 가장 행복한 시간 속에 살고 계신 지도 모릅니다.” 지금까지 알츠하이머를 소재로 담은 그 어떤 드라마가 이런 통찰을 보여줬던가.

<눈이 부시게>가 한 사람의 인생을, 그 한 평생의 기억을 온전히 들여다보게 함으로써 우리를 먹먹하게 만들었다면, 그 한 사람의 인생을 주름 하나까지 감동하게 만든 장본인은 다름 아닌 연기자 김혜자다. 한지민이 이 드라마는 “김혜자 선생님을 위한 헌사”라고 한 이야기는 결코 과언이 아니다. 안내상이나 이정은의 깊이 있는 연기와, 한지민, 남주혁은 물론이고 손호준, 김가은, 송상은 같은 젊은 배우들의 호연, 여기에 김희원이나 우현 그리고 요양원 어르신 역할을 했던 모든 중견배우들의 연기가 눈부실 수 있었던 건 그 중심에 김혜자가 있어서다. 아마도 오래도록 우리는 연기자 김혜자를 이 드라마로 기억하게 될 지도 모르겠다. 드라마 마지막에 깔린 내레이션은 그래서 드라마 속 인물인 혜자이자 인생 선배인 김혜자가 동시에 이 시대의 가난한 이들에게 던지는 묵직한 위로가 되었다.

“내 삶은 때론 불행했고 때론 행복했습니다. 삶이 한낱 꿈에 불과하다지만 그럼에도 살아서 좋았습니다. 새벽에 쨍한 차가운 공기. 꽃이 피기 전 부는 달큰한 바람. 해질 무렵 우러나는 노을의 냄새. 어느 하루 눈부시지 않은 날이 없었습니다. 지금 삶이 힘든 당신.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당신은 이 모든 걸 매일 누릴 자격이 있습니다. 대단하지 않은 하루가 지나고 또 별거 아닌 하루가 온다 해도 인생은 살 가치가 있습니다. 후회만 가득한 과거와 불안하기만 한 미래 때문에 지금을 망치지 마세요. 오늘은 살아가세요. 눈이 부시게 당신은 그럴 자격이 있습니다. 누군가의 엄마였고 누이였고 딸이었고 그리고 나였을 그대들에게.”(사진:JTBC)

Posted by 더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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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 가족드라마들이 배워야할 ‘눈이 부시게’

KBS 주말드라마 <하나뿐인 내편>이 종영했다. 이 드라마는 최고 시청률 49.4%(닐슨 코리아)를 거둔 드라마지만 이 드라마는 전형적인 ‘욕하면서 보는 드라마’였다. 뻔한 신파와 신데렐라 이야기에, 시대착오적인 효녀, 착한 여자 콤플렉스에 ‘핏줄 의식’까지 철철 흐르는 드라마였으니 어찌 보면 ‘욕하면서 보기’ 때문에 생겨난 그만한 시청률도 이해될만 했다. 이런 정도의 자극적이고 퇴행적인 이야기들을 개연성도 별로 없이 마구잡이로 붙여놓는다면(그것도 주말극의 자리에) 그 어떤 드라마가 주목받지 못 넘길까.

이미 종영한 드라마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토를 다는 일이 어딘지 쓸데없는 일처럼 보이지만, 그래도 이 시점에서 생각해봐야 하는 건 과연 이런 식의 가족드라마를 시청률이 나온다는 이유로 계속 제작해도 될까 싶어서다. 이 드라마가 퇴행적이라는 걸 드러내는 증거들은 넘쳐난다. 대표적으로 도란(유이)이라는 여성 캐릭터가 가진 수동성과 만나는 남자는 모두 재벌3세에다 오로지 아버지를 위해 뭐든 희생하는 현대판 ‘심청’ 같은 면이 그렇다. 종영에 즈음해서까지 태풍(송원석)을 재벌3세로 굳이 그려 도란과 대륙(이장우)의 삼각관계로 잇는 건 이 드라마가 얼마나 철저히 과거의 틀에 박힌 드라마방식에 충실하고 있는가를 잘 보여준다.

어차피 가족이 해체된 시대에 가족드라마이고, 어르신들을 위한 가족판타지이니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니냐고 말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같은 노년과 질환을 다뤄도 완전히 새롭고 지금의 감각과 정서에 맞게 다룰 수 있다. 그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 현재 방영되고 있는 JTBC 월화드라마 <눈이 부시게>다.

<눈이 부시게>는 어르신들이 여럿 등장해 저마다의 노년의 삶을 담고 있지만 <하나뿐인 내편>과는 너무나 다른 격을 보여준다. 단적으로 <하나뿐인 내편>에서 박금병(정재순)이 앓는 기억장애 코드는 거의 매주 “첩년”을 외치며 며느리의 머리를 쥐어뜯는 방식으로 활용됐다. 그리고 도란과 대륙의 관계를 억지로 이어붙이는 코드이기도 했다. 기억장애로 도란을 찾는 박금병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다시 두 사람의 관계가 이어지는 그런 방식의 무한 반복. 이것은 어르신들이 가질 수도 있는 ‘기억장애’라는 질환을 너무 가볍게 다루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반면 <눈이 부시게>는 알츠하이머를 타임리프라는 장르적 코드로 재해석하는 시도를 보여줬다. 시간을 되돌리는 시계를 사용해 갑자기 늙어버렸다 생각했던 혜자(김혜자, 한지민)였지만 알고 보면 그가 알츠하이머를 앓으면서 가진 기억의 변조였던 것. 중요한 건 이 혜자가 가졌던 변조된 기억 속에서의 어르신들과 청춘들의 모습이다. 그 속에서 어르신들은 나이 들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존재들이 아니라, 여전히 빛나는 능력을 가진 존재들이었고, 몸은 늙었어도 마음은 여전히 청춘과 소통하는 그런 존재였다. 같은 노년과 질환을 다뤄도 이처럼 다를 수 있다는 걸 <눈이 부시게>는 증명해 보여준다.

게다가 가족과 사랑을 다루는 방식 또한 <눈이 부시게>는 <하나뿐인 내편>과 달랐다. 혜자의 기억장애 속 이야기였지만, 갑자기 노화된 혜자를 딸로서 끌어안는 엄마와 아빠 그리고 오빠의 툭탁대고 무뚝뚝하면서도 그 어느 관계보다 끈끈한 가족애가 그려졌고, 혜자와 젊은 준하(남주혁)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야기도 먹먹한 감동을 주었다. 그 흔한 재벌, 신데렐라 없이, 평범한 서민들의 이야기만으로도 충분히 새로운 이 시대의 가족드라마와 멜로가 가능했다는 것이다. 

<하나뿐인 내편> 종영에 즈음해 KBS 주말극에 요구하고 싶은 건, 이 같은 구태의연한 방식 말고도 어르신들은 물론이고 지금 세대까지 공감할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가족드라마, 멜로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무려 50회가 넘는 시간동안 방영되는 KBS 주말극이 좀 더 새로운 방식을 고민하고, 나아가 과거적 핏줄에 절은 가족으로 퇴행하기보다는 지금 현재에도 공감 받을 수 있는 새로운 가족의 이야기를 전하길 바란다. 그저 시청률만 얻고는 성공했다 자축할 일이 아니라.(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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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운 드라마 ‘눈이 부시게’가 약자들을 바라보는 시각

JTBC 월화드라마 <눈이 부시게>의 알츠하이머 설정은 놀라운 반전이다. 그리고 그 반전이 가진 의미도 새롭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시계라는 타임리프 설정이 혜자(김혜자)라는 한 어르신의 알츠하이머라는 반전은 이 판타지와 코미디가 어떻게 현실로 이어지는가를 잘 설명해준다. 기억의 조작이라고도 할 수 있는 알츠하이머라는 질환은 그렇게 어르신들이 가진 ‘시간을 되돌리고픈 욕망’을 투영시켜 혜자로 하여금 타임리프할 수 있는 시계를 갖게 만들었다.

물론 그건 환상이다. 하지만 그것이 그저 아무 의미 없는 신기루라고 그 누가 말할 수 있을까. 알츠하이머를 가진 어르신에게 그 기억의 조작은 환상이 아니라 현실 그 자체일 수 있으니 말이다. 시청자들이 본 것은 그래서 그 현실로서 다가오는 환상을 경험하는 어르신의 모험담일 수 있었다. 지금껏 그 어떤 드라마가 알츠하이머를 소재로 환상 경험을 하는 어르신의 속내를 들여다 본 적이 있을까. 

그러고 보면 효도원이라는 공간도 또 더 나이 든 몸이 되어 아빠(안내상)와 엄마(이정은)를 대하던 혜자가 이해가 된다. 나이 들면 아이가 된다는 그런 이야기는 알츠하이머를 가진 혜자로 하여금 자식을 부모로 인지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효도원은 그렇다면 요양원 같은 공간일 것이고 준하라는 인물은 그 곳에서 자신을 잘 대해준 의사였을 게다. 

이 드라마가 놀라운 건 알츠하이머를 가진 혜자가 겪는 환상체험을 코미디와 활극 같은 경쾌함으로 담아내고 있다는 점이다. 효도원에 감금된 준하(남주혁)를 구해내기 위해 혜자가 리더가 되어 모인 이른바 ‘할벤져스’는 이 드라마가 약자가 되어 소외된 어르신들을 바라보는 따뜻하고 유쾌한 시각을 잘 드러낸다. 

효도원에서 음식이든 뭐든 옷 속에 집어넣고 또 뭔가 필요할 때면 그 속에서 뭐든 꺼내줘 이른바 ‘도라에몽 할머니’라 불리는 어르신은 준하 구출작전에서 필요한 연장을 뭐든 꺼내주는 역할을 맡는다. 눈이 잘 보이지 않는 어르신은 어둠 속에서 지팡이로 바닥을 치기만 하면 어느 방에 누가 있는가를 찾아내는 능력자가 되고, 쌍둥이 어르신은 길을 거울로 착각하게 만들어 다른 어르신들이 그 길로 탈출하게 해준다. 할벤져스에서 가장 빵 터지는 대목은 몸이 불편해 보조기를 끌고 천천히 걸을 수밖에 없는 어르신이 좁은 길을 막고 천천히 걷는 통에 뒤쫓아 오던 조폭들이 길을 뚫지 못하는 장면이다. 이 장면에 <엑스맨>에 퀵실버가 등장할 때 흐르던 짐 크로스의 ‘Time in a Bottle’을 깔아놓은 대목에서 빵 터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다소 과장된 할벤져스의 코믹한 구출작전에 깔려 있는 건 이 소외되어 뭐 하나 제대로 할 수 없을 것처럼 여기던 어르신들이 사실은 저마다의 능력을 가진 인물이라 바라보는 시각이다. 몸이 늙어 할 수 없는 많은 것들을 오히려 능력으로 바꿔 보여주는 그 과장된 코미디의 웃음 끝에 어떤 감동이 담겨지게 되는 건 바로 이런 시각이 주는 따뜻함 때문이다.

그리고 그 과장된 활극이 한 알츠하이머를 앓는 어르신의 상상이었다는 게 드러나는 반전은 그 놀라움과 더불어 요양원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어르신들의 현실을 떠올리게 만든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몸과 그럼에도 무언가를 하고픈 젊은 마인드의 공존은 어쩌면 우리의 기억을 왜곡시켜서라도 그 힘겨운 삶을 버텨내게 하는 게 아닐까. 

“긴 꿈을 꾼 것 같습니다. 그런데 모르겠습니다. 젊은 내가 늙은 꿈을 꾸는 건지, 늙은 내가 젊은 꿈을 꾸는 건지.” 장자의 호접몽을 떠올리게 하는 이 혜자의 읊조림 속에서 이 코믹했던 한 바탕 소란의 이야기는 우리네 삶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누구에게나 삶은 한 바탕 꿈같은 웃음과 눈물과 반전일 수 있다는 걸 알츠하이머를 앓는 한 어르신의 내면 깊숙이 따뜻한 시선으로 들여다본 이 드라마의 성취가 아닐 수 없다.(사진:JTBC)

Posted by 더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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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인생이 애틋했으면”...‘눈이 부시게’가 노년과 청춘을 담는 방식

저 스스로 목숨을 저버린 샤넬 할머니(정영숙)는 절망적이었을 그 때 기다리고 있는 준하(남주혁)를 보고는 애써 환하게 웃음 지었다. 그리고 거짓말을 했다. 손주가 많이 컸고 그래서 자기 이름을 스스로 얘기했다며 대견해했고, 집까지 팔아 미국에 갔던 아들이 사업 실패에 돌아와 한국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는 걸 죄송해하고 있다고 했다. 늘 무표정이었던 샤넬 할머니가 그토록 웃으며 준하 앞에서 거짓말을 했던 건 왜였을까. 


JTBC 월화드라마 <눈이 부시게>가 담아낸 샤넬 할머니의 마지막 순간은 제목처럼 ‘눈이 부셨다’. 할머니는 끝까지 자신을 버린 것이나 다름없는 아들과 손자를 챙겼고, 무엇보다 그 빈자리를 채워줬던 준하를 아들처럼 아꼈다. 그래서 여행을 떠난다는 준하를 굳이 공항까지 배웅해주겠다고 했던 것. 어쩌면 샤넬 할머니와 준하는 그렇게 아무도 지지할 데 없어 절망적으로 서로를 끌어안았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미국에 있다고 여긴 아들에게 편지를 부쳐달라고 부탁했던 샤넬 할머니의 그 마음을 준하는 아들 대신 답장을 써주는 것으로 채워주려 했다. 아무도 없이 버려진다는 그 막막함을 누구보다 잘 아는 준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일하게 의지하고 있던 두 사람인데, 샤넬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그 말은 준하에게는 얼마나 큰 상실감으로 다가왔을까. 마지막 순간에 환하게 웃고 밝게 얘기했던 할머니의 모습이 아프게도 그의 눈을 찌르는 이유다. 

보험수령인이 준하로 되어 있었다는 건 샤넬 할머니가 그를 진짜 아들처럼 여겼다는 걸 잘 말해주는 대목이다. 그러니 그 마지막 순간 아프지 말라며 공항에서 손을 흔들어주던 모습은 어머니가 아들을 마지막으로 보내는 모습이나 다름없었다. 이런 두 사람의 관계를 전혀 알 수 없는 이들이 보험수령인이 된 준하를 오히려 용의자로 몰았지만 그것까지도 배려해 편지를 남긴 샤넬 할머니에 준하는 더 멍해질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또 만난다면 그때는 내가 꼭 이준하씨 엄마로 태어날게요.’

<눈이 부시게>는 어쩌면 뉴스의 한 대목으로 사라져버릴 어느 한 어르신의 안타까운 마지막을 온전한 한 회로 채워 넣으며 거기 담겨진 삶의 쓸쓸함을 얘기했다. 샤넬 할머니를 통해 “칠십 해가 넘게 살면서 온갖 일을 다 겪었을 텐데 결국 사진으로만 남았어”고 말하는 혜자(김혜자)는 삶의 ‘애틋함’을 깨달았다. 

“난 말야 내가 애틋해. 남들은 다 늙은 몸뚱아리 뭐 기대할 것도 후회도 의미 없는 인생이다 뭐가 안쓰럽냐 하겠지만은, 난 내가 안쓰러워 미치겠어. 너도 네가 네 인생이 애틋했으면 좋겠다.” 혜자가 자신을 빗대 위로하는 그 말에 준하는 오열하며 무너져 내린다. 너무 힘겨운 현실에 부닥쳐 갑자기 100년은 늙어버린 듯 아무런 희망도 꿈도 의욕도 없이 살아가는 준하에게 스스로를 애틋하게 여겼으면 좋겠다는 위로를 해준 것이니 말이다. 

혜자에 대해 준하는 “내 인생을 끌어안고 울어준 사람은 처음”이었다고 말했다. 자신을 괴롭게 했던 건 바로 자기 자신이었는데, 그런 자신을 끌어안고 함께 울어주었다는 것. 이것은 <눈이 부시게>가 이 애틋한 노년과 청춘을 담는 방식이다. 그 인생들을 끌어안고 함께 울어주는 것. 오랜만에 가슴 뜨거워지는 드라마를 만났다.(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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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부시게'가 말하는 등가교환과 아름다운 에러

놀라운 드라마다. 한참 깔깔대며 웃는 코미디였다가 어느 순간 가슴 먹먹해지는 감동을 경험하고, 드라마가 끝나고 나서는 그 순간순간 나왔던 대사들의 의미들을 곱씹으며 우리네 삶을 반추하게 된다. 우리네 삶의 가벼움과 무거움을 오가며 툭툭 던져놓는 이야기들은 그래서 우리가 사는 삶의 진면목을 마주하게 만든다. 이것이 JTBC 월화드라마 <눈이 부시게>가 우리를 인도하는 그 먹먹하고 아름다운 세계의 실체다.

“등가교환의 법칙이라는 게 있어. 뭔가를 갖고 싶으면 그 가치만큼의 뭔가를 희생해야 된다고. 이 세상은 이 등가교환의 법칙에 의해서 돌아가.” 김혜자(김혜자)가 오빠의 1인 방송에서 한 이 이야기는 이 드라마의 타임리프가 어째서 여타의 타임리프 장르들과는 다른가를 잘 말해준다.

여타의 타임리프 장르들이 시간을 오가는 것에 특별한 ‘대가’를 요구하지 않았던 반면, <눈이 부시게>는 그만큼 급노화하게 된다는 ‘대가’를 설정했다. 아빠를 살리기 위해 시간을 되돌리고 또 되돌렸던 20대의 혜자는 그래서 그 대가로서 70대의 할머니가 됐다. 한 순간에 청춘의 시간들을 모두 날려버린 참혹한 상황. 혜자는 그 가혹한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어 죽음까지도 생각한다.

하지만 그럭저럭 그 삶을 받아들이며 혜자가 깨닫게 된 건 무언가를 선택한다는 것이 진정으로 어떤 의미인가 하는 점이다. 그는 아빠를 살리겠다는 그 생각 하나로 시계를 돌리고 또 돌렸던 그 선택이 너무나 철부지 같은 선택이었다는 걸 알게 된다.

‘세상의 덧셈 뺄셈은 내 생각과 달랐다. 아빠의 죽음과 내 젊음, 꿈, 사랑이 등가라고 생각했던 나는 슈퍼에서 100원짜리 동전 하나로 비싼 과자 선물세트를 사겠다고 떼쓰는 철부지 아이였던 거다. 나는 안다. 내가 시계를 돌려 다시 젊어진다면 그래서 뺄셈으로 세상의 무언가가 희생되어야 한다면 나는 그걸 견딜 수 없다는 걸.’

혜자가 생각하듯 무언가를 선택한다는 의미는 그런 것이었다. 거기에는 반드시 대가가 따르고 그만한 희생이 따르게 된다는 것. 유한한 삶의 시간 속에서 우리는 무수한 선택들을 하며 살게 되지만, 거기에는 또한 모두 그만한 대가가 따른다. 하나의 덧셈이 있다면 또 하나의 뺄셈이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준하(남주혁)는 스스로 선택한 삶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린 시절 폭력적인 남편을 떠나 도망친 엄마가 그렇고, 자신을 돌봐주신 할머니를 끝까지 찾아와 돈을 뜯어가곤 했던 ‘없는 편이 나은 아빠’가 그렇다. 그건 자신이 선택한 삶이 아니라 태생적으로 주어진 비참한 삶이다. 결국 마지막 끈이었던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그는 삶의 의미 따위를 잃어버린다. 기자가 되려는 꿈같은 걸 지워버리고 효도원에서 적당히 사기 치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이준하의 삶은 극단화되어 있는 청춘의 단상이지만, 어쩌면 현재 우리네 사회 속에서 숨막혀하는 청춘들의 모습을 닮았다. 무언가 열심히 살려하지만 태생적으로 모든 게 결정되어버리는 그 거대한 장벽 앞에서 꿈을 선택할 수 없는 청춘들. 그래서 혜자의 오빠 김영수(손호준)처럼 현실을 들여다보기보다는 컴퓨터 화면을 들여다보며 그럭저럭 살아가는 삶.

그 앞에서 혜자는 ‘등가교환의 법칙’을 얘기하며, 갑자기 늙어버려 직업을 가질 필요도 그다지 없는 자신의 삶과 현실에 허덕이는 청춘들의 삶을 바꿀 의사가 있냐고 묻는다. 청춘이 갖는 더 많은 선택 가능성을 가진 그 시간의 가치와 의미를 되묻는 것.

준하는 문득 20대의 혜자(한지민)가 했던 오로라 이야기를 떠올린다. “내 생각엔 오로라는 에러야. 에러 에러라구 작동오류. 내가 옛날에 어디선가 읽어봤는데, 오로라는 원래 지구 밖에 있는 자기장인데 어쩌다 보니 북극으로 흘러 들어왔다는 거야. 그 말인즉슨, 오로라는 조물주가 의도한대로 만들어진 게 아니라 어쩌다 보니 만들어진 에러다 이거지.”

혜자의 그 말에 준하는 오로라가 “나 같은 거네”라고 답한다. 그것은 아마도 지금의 청춘들이 갖는 생각과도 맞닿는 지점이 있을 게다. 마치 이 사회의 에러처럼 되어버린 처지가 그렇지 않은가. 하지만 혜자는 그 에러의 아름다움을 얘기한다. “근데 너무 아름다운거야. 그 에러가. 에러인데도, 에러도 아름다울 수 있어. 눈물 나게. 나는 오로라를 막 만나는 순간에 딱 울 것 같아. 아 오로라다. 너무 사랑스러울 것 같아.” 잘못된 선택이라도 아름다울 수 있는 청춘의 지점. 그래서 심지어 갑자기 할머니가 되어버린다고 해도 거기서 어떤 삶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그건 굉장히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걸 김혜자(김혜자, 한지민)는 말해주고 있다.(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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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부시게’가 담는 소외된 노년과 청춘의 자화상

JTBC 드라마 <눈이 부시게>에서 김혜자(한지민)는 아나운서를 꿈꿨지만 현실은 에로영화 더빙 아르바이트였다. 그는 그 아르바이트를 해서 번 돈으로 엄마 이정은(이정은)에게 집수리하는 비용에 보태라고 줬지만 아나운서의 꿈은 접어버린다. 그는 문득 그것이 자신이 원했던 일이었던가 하고 되묻는다. 사실 좋아하는 선배가 방송반에 있어 찾아간 것이 아나운서를 꿈꾸게 된 이유는 아니었나 싶은 것. 그 선배는 다른 사람과 결혼해 외국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그렇게 꿈을 포기해버린 김혜자는 문득 하루 종일 손에 염색약 마를 날 없이 미용실에서 일하는 엄마가 눈에 밟힌다. 뭐라도 해야겠다 생각하지만 할 수 있는 일은 없고, 그래서 미용실 일이라도 돕고 싶지만 이번엔 엄마가 반대한다. 적어도 딸에게만큼은 자신의 이 고생스런 일을 대물림하고 싶지 않은 부모 마음이다. 

그러던 김혜자는 문득 같은 동네에 사는 청년 준하(남주혁)을 만나고, 선술집에서 술 한 잔을 하며 ‘불행 배틀’을 하다 가까워진다. 없는 게 차라리 낫다 여겨지는 아빠 때문에 죽어라 고생만 하신 할머니가 너무나 안타까운 준하는 시간을 되돌려 다시 돌아간다면 할머니에게 오지 않을 거라고 혜자에게 말한다. 준하 역시 기자가 꿈이지만 현실은 멀기만 하다. 때때로 집을 찾아와 돈을 뜯어가는 아빠는 여전하고, 그래도 든든히 자신의 버팀목이 되어주었던 할머니마저 돌아가시자 마치 끈 떨어진 연처럼 그는 멍해진다. 

아버지의 사고를 막기 위해 시간을 계속 되돌리다 하루아침에 할머니가 되어버린 김혜자(김혜자)는 번듯한 양복을 챙겨 입고 출퇴근 하는 준하가 결국 꿈꾸던 기자가 된 거라 착각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었다. 어느 날 할머니 할아버지를 모셔가 이벤트를 하는 이른바 노치원이라 불리는 홍보관을 따라갔던 혜자는 거기서 쇼를 하는 준하를 보고 충격에 빠진다. 

<눈이 부시게>에는 이처럼 가난한 이들의 출구 없는 삶들이 교차된다. 한창 왕성히 일하고 사랑하며 눈부시게 빛나야할 청춘들은 일자리가 없어 부모 눈치를 보며 살아가기 일쑤다. 혜자의 오빠 영수(손호준)는 대표적인 백수다. 고기 먹는 게 마치 자신의 유일한 꿈이라도 되는 양 “삼겹살”을 외치고 심지어 개밥을 먹고는 너무 맛있다 눈물 흘리는 이 인물은 엉뚱하게도 유튜버로 성공하려 하지만 그게 결코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보여준다. 혜자의 친구 현주(김가은)는 중국집 외동딸로 배달일을 하며 살아가고, 상은(송상은)은 7년째 아이돌지망생으로 지내며 뜨기는커녕 그 흔한 연애 한 번 못해본 인물이다. 

노년의 라이프를 보여주는 혜자의 아빠 상운(안내상)은 택시운전을 하다 다쳐 이제 그만두고 경비일을 하며 살아간다. 그런데 그 일이 그리 호락호락한 일이 아니다. 한 끼 점심값을 아끼려 애쓰는 아빠를 위해 혜자는 새벽부터 일어나 도시락을 싸주지만 늘 먹으라는 멸치를 남겨온다. 그걸 먹게 하기 위해 아빠의 일터를 찾은 혜자는 알게 된다. 새파랗게 젊은 사람들의 모멸까지 받아가며 일하는 아빠의 모습. 뭘 먹기는커녕 먹을 시간조차 없어 보이는 팍팍한 일의 현실을.

<눈이 부시게>를 보며 마음 한 구석이 먹먹해지는 건 여기 우리 시대의 청춘과 노년의 쓸쓸한 자화상이 시리도록 공감가게 담겨져 있어서다. 청춘들은 세상으로 나가지도 못한 채 갑갑해하고, 노년들은 세상 바깥으로 밀려나 소외받는다. 그러니 이 드라마가 굳이 70대 노인이 된 김혜자와 청춘의 마음을 가진 김혜자를 판타지를 통해 겹쳐놓은 이유를 알게 된다. 

당장 눈앞에 놓인 일조차 힘겨운 청춘들이 저 노인의 삶을 들여다볼 겨를이 있을까. 이제 소외되어 사회에서 점점 없는 존재처럼 취급받게 되는 노년의 삶이 청춘의 어려움을 들여다볼 수 있을까. 하지만 김혜자라는 한 인물에 깃든 청춘과 노년의 삶은 이 양자를 만나게 하는 일종의 가교역할을 해준다. 노년의 몸이 되어서야 비로소 이해하게 된 엄마 아빠의 삶과, 비로소 알게 된 청춘의 뭐 하나 쥔 것 없어도 눈부실 수 있는 시간들. 나이든 김혜자가 젊은 김혜자와 화해하고, 나아가 그 달라진 시선으로 주변사람들을 따뜻하게 바라보고 껴안는 이야기. 그 연대에 우리는 빠져들 수밖에 없다.(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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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부시게’, 웃다 울다 희비극에 안정감 주는 연기자들 호연

JTBC 월화드라마 <눈이 부시게> 첫 회는 빵빵 터지는 코미디에 상큼 달달해지는 멜로였다. 삼겹살 먹는 게 꿈이라며 청테이프로 문틈을 모두 막아놓고 혼자 방에서 삼겹살을 구워먹다 질식해 쓰러지는 김영수(손호준)가 실려 가기 전 고기를 뒤집어 달라고 하는 대목은 이 작품이 얼마나 코미디에 충실한가를 보여준다. 그가 계속 놀려대고 장난치는 동생 김혜자(한지민)에 술기운에 좋아하던 선배에게 고백하러 갔다가 분수처럼 토를 해버리는 장면도 그렇다. 

여기에 김혜자와 이준하(남주혁)가 여러 차례 우연적인 만남을 가지면서 가까워지는 과정은 상큼 달달하기 그지없었다. 특히 동네주민들(주로 할머니들)과 요양원 시설 반대 시위에 나섰다가 거기서 우연히 만난 할머니가 마치 그 곳에 온 준하의 할머니라는 걸 알게 되는 에피소드는 참신했다. 동네 시위 현장에서 남녀가 만나는 설정은 어느 멜로에서도 보지 못했던 진풍경이다. 그렇게 가까워진 두 사람이 우동집에서 술에 취해 ‘불행 배틀’을 하는 장면 또한 마찬가지의 설렘을 주는 멜로의 풍경이었다. 

2회에 들어서면서 <눈이 부시게>는 이 드라마가 그저 빵빵 터지는 코미디에 상큼 달달한 멜로로만 가는 그런 드라마가 아니라는 걸 여실히 보여줬다. 갑작스런 아빠의 사고를 되돌리기 위해 봉인해뒀던 시간을 돌리는 시계를 꺼내 무한정 돌려 결국 아빠를 살려내지만 김혜자는 할머니가 되어버린다. 아빠를 되살리기 위해 시계를 돌리고 사고가 나는 걸 막으려 달리고 또 달리는 모습은 눈물겨운 장면이 아닐 수 없었다. 상큼 달달에서 눈물 철철로 바뀌는 대목. 배우 한지민의 만만찮은 연기 몰입을 보여주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비극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갑자기 할머니가 되어버린 김혜자(김혜자)는 그 충격에 자기 방문을 걸어 닫았다. 그 변신(?)을 부정하다 포기하게 되는 그 과정은 어찌 보면 코미디가 될 수도 있는 장면이지만 연기자 김혜자는 이를 절절한 비극으로 소화해낸다. 희극과 비극은 종이 한 장 차이라는 걸 실감나게 해주는 연기가 아닐 수 없다. 극의 장르적 특징이 급변하고 그 인물의 감정도 급변하기 때문에 다소 어색해보일 수 있는 대목이지만 김혜자는 이를 너무나 자연스럽게 변환시키는 놀라운 연기를 보여준다. 

여기에 남다른 불행을 안고 사는 이준하 역할을 한 남주혁의 연기까지 더해졌다. 없는 게 차라리 낫다 여겨지는 아버지의 폭력 속에서 할머니와 의지하며 살아가던 이준하는, 갑자기 찾아온 아버지를 떨쳐내기 위해 자해를 한 후 가정폭력 신고를 한다. 결국 아버지는 잡혀 들어가지만 그 아들을 두고 볼 수 없는 할머니는 경찰서를 찾아가 그것이 자해극이었다는 사실을 밝힌다. 그리고 이준하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남긴 채 숨을 거둔다. 아무도 오지 않는 장례식장에서 풀려나온 아버지에게 두드려 맞으며 “이게 다 너 때문”이라는 질책을 듣는 이준하의 눈에는 핏발이 섰다. 

<눈이 부시게>는 타임리프 판타지가 섞여 있고 발랄한 코미디와 청춘 멜로가 더해져 있어 어찌 보면 가벼운 드라마처럼 여겨질 수 있다. 하지만 삶의 밝은 부분만큼 어두운 부분을 놓치지 않고 깊게 들여다보는 건 이 드라마가 가진 특별한 지점이다. 희비극은 그렇게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라고 이 드라마는 말해주는 것만 같다. 

중요한 건 이런 희비극이 우리네 삶의 정체라는 걸 우리가 알고 있다고 해도 그것을 드라마로서 납득시키는 건 다른 이야기라는 거다. 그래서 칭찬하지 않을 수 없는 건 김혜자는 물론이고 한지민이나 남주혁 같은 배우들의 호연이다. 이들의 눈부신 연기가 있어 인생의 희비극을 우리는 웃고 울며 눈앞에서 보고 있는 것이니 말이다.(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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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부시게’, 눈부신 한지민·남주혁 이들이 겪을 청춘의 시간은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시계를 가졌지만 그 시계를 사용하면 빨리 늙게 된다. JTBC 새 월화드라마 <눈이 부시게>의 타임리프 설정은 여느 유사 장르물들과 달리 그런 한계점을 덧붙여놓았다. 그래서 그런 ‘판타지의 룰’을 몰랐을 때 그 시계를 발견했던 어린 혜자(한지민)는 제 맘대로 시간을 되돌려 시험 점수를 올리거나 봉변을 모면하거나 했다. 하지만 그렇게 마구 시계를 쓰다 급성장해버리면서 혜자는 시계를 쓰지 않기로 한다. 


만일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시계가 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눈이 부시게>는 바로 이런 상상으로부터 시작한다. 여기서 중요한 건 이 시계를 갖고 있는 혜자(한지민)라는 인물이다. 이런 시계가 탐욕 가득한 인물의 손에 들어갔다면 이 이야기는 좀 더 살벌한 스릴러가 됐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혜자는 보통의 평범한 일상을 사랑하고, 그들을 위해서 자신을 어느 정도 희생할 줄도 아는 인물이다. 

물론 어린 시절부터 장난꾸러기였던 오빠 영수(손호준)의 장난에 늘 지지고 볶지만 그래도 큰 다툼을 벌어지는 않고, 미용실에서 일하는 엄마의 염색약에 거칠어지는 손과 ‘돈 들어갈 일’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는 동아리 선배의 추천으로 에로영화 더빙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한다. 좋아하는 선배 때문에 아나운서의 꿈을 키웠지만, 다른 사람과 결혼해 종군기자로 해외로 나간 선배를 여전히 마음에 두고 있다. 

에로영화 더빙 아르바이트를 할 정도의 힘겨운 상황이었다면 그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시계’를 써서 더 엄청난 짓을 벌일 수도 있었겠지만 혜자는 그러지 않는다. 대신 우연히 알게 된 준하(남주혁)과 술자리를 함께 하며 벌인 ‘불행 배틀’을 듣다 술기운에 시계를 꺼내든다. 그런데 그건 자신을 위한 일이 아니다. 자신 때문에 고생하신 할머니를 생각하며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절대 할머니를 찾아가지 않겠다고 한 준하를 위해서다. 

이처럼 <눈이 부시게>의 타임리프 판타지 설정은 거창한 스릴러가 아니라 보는 이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드는 동화 같다. 결국 시계를 되돌린 혜자는 자신의 청춘을 제대로 써보지도 못하고 훌쩍 날려버린 채 나이가 들어버린 혜자(김혜자)가 되어버릴 처지다. 반면 없느니만 못한 아버지 때문에 모든 걸 다 갖추고도 무기력한 청춘을 보내고 있는 준하. 그의 앞에 할머니가 된 혜자가 등장한다. 과연 이들의 이 기상천외한 관계는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것일까.

타임 리프라는 소재는 시간과 시간을 뛰어넘는다는 그 설정 때문에 대중들의 시선을 끌었다. 누구나 한 번쯤 갖게 되는 상상이지만 결코 일어날 수 없는 판타지. 하지만 <눈이 부시게>는 그런 시간을 되돌리는 판타지가 주는 어떤 결과들에 주목하기보다는, 이런 변화 속에서 ‘시간’이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가를 묻는 드라마다. 

<눈이 부시게>라는 제목은 그래서 아마도 눈부신 ‘청춘의 시간’을 지칭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 청춘의 시간이란, 너무 살날이 많이 남은 듯 느껴지는 탓에 그 소중함을 잘 모르고 지나치기 마련이다. 그 시간이 얼마나 눈이 부시게 빛났는지는 한참 시간이 지난 후 되돌아봤을 때 겨우 발견되기도 하니 말이다.

어찌 보면 거대한 판타지 설정이 있지만 그것을 소소한 일상 속으로 끌어들여 그 속에서 툭탁댔던 경험들조차 눈부신 일들이라 전해주는 이 드라마에서, 한지민과 남주혁, 손호준 같은 배우의 역할은 절대적으로 보인다. 지금 막 만화를 찢고 나온 듯한 이 배우들의 호연은 이 작품이 가진 동화 같은 매력을 비주얼만으로도 만족시키니 말이다. 

하지만 여기에 이제 나이 든 모습으로 돌아올 김혜자의 공력이 묻어나는 연기가 더해진다는 점이 이 드라마에 더더욱 기대를 갖게 되는 이유다. 25살의 연기를 김혜자는 어떻게 구현해낼까. 준하와 다른 시간대를 살아가게 될 2명의 혜자가 그와 엮어나갈 사랑과, 그 과정을 통해 알게 될 시간의 의미가 어떻게 그려질지 자못 궁금해지는 드라마다.(사진:JTBC)


Posted by 더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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